제499화
“후욱….”
마크 괴튼이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꿇었다. 절규 같은 포효를 터트려서 쌓인 울분을 모두 토해냈더니,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졌다.
십 년 넘게 묵었던 체증이 한번에 내려간 기분이었다.
‘드디어 올라섰어.’
마스터 중급에.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선배, 동기 그리고 후배가 앞서 나갔을 때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내가 드디어 벽을 뛰어넘어 계단 하나를 오를 수 있었다.
‘그래. 딱 하나의 계단이지.’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작은 계단이겠지만, 나에겐 목숨보다 소중한 계단이었다.
‘그분을 따르길 잘했어.’
라온과 만난 일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기연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과 명예를 버리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전심전력을 다해서 수련한 뒤 땀을 식혀주는 바람의 시원함, 같은 길을 걷는 동료와 함께 먹는 식사의 따스함 그리고 노력을 쌓아서 벽을 부수는 성취감까지.
라온 덕분에 한참 전에 잊었던 감정들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의 뒤를 쫓기로 결정한 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마크 괴튼은 지금 이곳에 없는 라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눈을 내리감았다.
심장처럼 약동하는 중단전의 호흡을 느끼고 있을 때 뒤편에서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마크 괴튼이 황급히 눈을 떴다.
‘맞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광풍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크윽!”
일어서려는데 참기 힘든 통증이 일어났다. 옆구리와 허벅지가 찢어졌고, 내상까지 입어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억지로 몸을 세워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
마크 괴튼은 등을 돌리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 끝났다고…?’
성검련주의 제자와 함께 왔던 검사 중 마스터는 모두 죽어 있었고, 남은 수신호위도 이제는 셋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 역시 부상이 심해서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개미 떼처럼 몰려왔던 백혈교도들은 서리 조각에 몸이 관통되어 모두 죽어 있었다.
“어, 언제 이렇게….”
“다 우셨어요?”
마크 괴튼이 입술을 떨고 있을 때 옆으로 버렌이 다가왔다.
“버렌? 아니, 너!”
버렌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전신이 상처투성이였고, 내상까지 입은 듯 보였지만, 그의 눈빛에선 이전에는 없던 정광이 흘러넘쳤다.
기세 자체가 달라졌다. 벽을 부수고 새로운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변화였다.
“마스터에 오른 거냐?”
“네. 그리고 저만이 아니에요.”
버렌이 드물게도 큼지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루난이 보였다.
‘상처가 심해. 그런데….’
루난의 부상은 버렌보다 심각했다. 살점이 뜯겨나갔는지 허리와 어깨가 완전히 피로 젖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에게서 피어나는 기파 역시 이전과 격이 달랐다. 여린 호수 같았던 기운이 거친 바다가 된 듯 출렁였다.
“두, 둘 다 마스터가 됐다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죽기 직전이긴 하지만.”
버렌이 본인의 몸에 그어진 검흔들을 보며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이놈이 그런 말을 했었군.”
전투에 집중하느라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왜 발벤이 상황이 꼬였다는 말을 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끄아아악!”
“커흑….”
마지막으로 버티던 수신호위들의 목이 날아가고, 심장이 꿰뚫렸다.
엔시아와 데닝로즈의 호위들도 성검련의 검사들을 제거했기에 이제 남아 있는 적은 아무도 없었다.
“이, 이겼다….”
크레인이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훔치며 드러누웠다.
“어우, 주, 죽는 줄 알았네.”
도리안이 조심스럽게 마르타를 내려놓으며 식은땀을 닦았다.
“으아아아아.”
“우리가 이겼어.”
“개자식들! 이게 지그하르트고, 우리가 광견대다!”
“오마 따위가 어딜 감히….”
광풍대는 손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다만 그들 역시 크게 지쳤기에 목소리에도, 들어 올린 손에도 힘이 빠져 있었다.
“음….”
루난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녀는 가장 심하게 부상을 입었음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버렌과 마크 괴튼에게 다가갔다.
“루, 루난!”
“너 이 정도로….”
가까이서 루난의 부상을 본 버렌과 마크 괴튼이 눈동자를 떨었다. 예상보다 훨씬 상처가 커서 죽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미, 미안하다. 내가 더 빨리 끝냈어야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내 싸움에 정신이 팔려서.
두 사람은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 같은 루난의 상처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저 검흔은 성자에게 치료를 받아도 흔적이 남을 것 같았다.
“잘했어.”
하지만 루난은 원망 따위는 하지 않았다. 통증 때문인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들어 버렌과 마크 괴튼의 어깨를 톡 두드렸다.
“아무도 안 죽었어.”
그녀는 뒤를 돌아서 광풍대를 가리켰다. 다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모두가 살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찰녀도 무사해.”
루난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심한 상처를 새긴 채 온기가 흐르는 미소를 지었다. 자그마한 구김도 없는 웃음이었다.
“너….”
버렌이 루난의 투명한 눈동자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루난이라고?’
루난은 본래 광풍대에서 가장 겉돌던 녀석이다.
라온만 따를 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광풍대가 살아남은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녀석의 변화에 가슴이 아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어휴! 움직이지 말라니까!”
뒤편에서 달려온 엔시아가 루난을 잡고, 손에 든 하얀 가루를 마구잡이로 뿌렸다.
“아파.”
“참아! 지혈하고, 재생 포션도 발라야 하니까!”
엔시아는 루난에게 지혈제와 성수를 번갈아 뿌렸고, 데닝로즈는 뭔지 모를 약을 먹였다.
“두 분도 받으세요.”
데닝로즈는 버렌과 마크 괴튼에게도 내상약을 건넨 후 엔시아와 함께 루난을 끌고 갔다.
“그놈 때문인가. 다 변해가는…음?”
버렌이 질질 끌려가는 루난을 보며 헛웃음을 흘릴 때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마크 괴튼의 매서운 눈동자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 마크 경?”
“윽….”
“또 우시는 거예요?”
“아, 아니다.”
마크 괴튼이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참을 수가 없군.’
조금 전 루난이 수고했다고 말하며 어깨를 잡았던 손이 너무도 따스했다. 이전의 동료들을 떠오르게 만들던 다정함이 느껴졌다.
뒤늦게 광풍대에 들어왔고, 대원들과 나이 차이가 나서 함께 어울리기도 힘들었다.
같은 공간, 같은 소속에 있다고 동료라고 할 수는 없기에 작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루난의 한 마디에 그간의 서러움이 깨끗하게 씻겨나갔다.
이제야 내가 진짜 광풍대 소속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고하셨어요.”
버렌은 마크 괴튼의 마음을 아는 듯 연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니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마크 괴튼은 뻘게진 눈을 비비고 나서 버렌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라온 님을 기다릴 건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아뇨.”
버렌이 턱을 들어 바레네를 바라보았다. 첨탑이 무너지고, 건물들이 붕괴한다. 아직도 초월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저희는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맞습니다.”
라온이든, 바레네든 가봐야 도움이 안 된다. 천검대와 리메르가 걱정되지만, 지금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특히 그 괴물 녀석은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버렌이 라온이 사라진 방향을 힐끔 돌아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맞아.”
어느새 돌아온 루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밀가루를 바른 듯 허예진 얼굴로 눈을 꿈벅였다.
“카멜룬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면 돌아올 거야.”
그녀는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분이라면 알아서 쫓아오실 거예요.”
데닝로즈가 루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엔시아가 라온이 사라진 곳을 보며 손끝을 떨었다.
“대주님은 괜찮으실 겁니다. 걱정할 필요가….”
“성검련주의 제자를 바르는 라온 님도 대존잘일 텐데, 그걸 못 찍네. 어휴!”
마크 괴튼이 라온을 믿으라고 말하려 할 때 엔시아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음…….”
버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손뼉을 쳤다.
“다 일어서! 바로 이곳을 떠난다!”
* * *
쿠와아아아앙!
발검술의 격돌에서 폭발한 충격파가 어둠이 내린 대지를 가른다.
라온은 다섯 걸음을 물러났지만, 클라우드는 고작 세 걸음 밀려나는데서 그쳤다.
쯧.
라온이 뭉개진 바닥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역시 정면에선 저쪽이 위인가.’
동시에 발검술을 꺼내 들었지만, 상대의 검이 더 빠르고 강맹했다.
육체의 강건함과 민첩함은 위였지만, 역시나 경지의 차이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고작 그 정도인가.”
클라우드가 여유롭게 검을 내리며 입매를 끌어 올렸다.
본인이 한참 위에 서 있는 듯 거만한 표정. 방심하는 게 아니라, 이쪽을 도발하고 있었다.
“네 검보다는 혀가 날카로운 것 같군.”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건 사자나 하는 짓이지. 난 용이라서.”
라온이 제천검을 휘돌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여유가 넘치는군. 남기고 온 이들이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
그가 광풍대를 남기고 온 방향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빙긋 웃었다.
“지금쯤이면 네 수하들의 머리가 하나씩 떨어지고 있을 텐데?”
“난 그 녀석들을 그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았어.”
라온이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은회색 검신 위로 타오르는 열화의 강기. 아름다울 정도로 고요한 흐름이 시꺼먼 어둠을 밝혔다.
“남의 애들 신경 쓰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하는 게 좋을 거다.”
“대가리에 꽃이 핀 놈이로군.”
클라우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발을 굴렀다. 바닥을 가볍게 밀어내는 듯 보이지만, 전해오는 울림이 쾌속하다.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질러 다가와 상단에 세운 검을 내리긋는다.
‘중검인가?’
어깨가 짓눌리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검격에 태산 같은 무게가 담겨 있었다.
발검술에서 보여주었던 쾌검과 강검도 상당했는데, 중검은 그 이상이다.
정면으로 받으면 내상을 입을 듯했기에 우측으로 몸을 돌리며 제천 위로 유검의 묘리를 둘렀다.
치이이이잉!
제천검이 클라우드의 검격을 흘려내려는 순간 그의 검이 뱀의 머리처럼 꺾이며 가슴을 파고들어 왔다.
‘이건….’
절검?
찰나의 순간 중검이 절검이 되어 유검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렇게 빠르게 검술의 묘리를 전환할 줄은 몰랐다.
‘막을 시간이 없어.’
제천검이 아래로 꺾여 있어서 클라우드의 검을 차단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급히 허리를 뒤로 젖혔다. 클라우드의 검이 이마를 스치며 앞머리가 잘려 나갔다.
“도망 하나는 잘 치는구나.”
클라우드가 비웃음을 흘리며 손목을 비틀었다. 허공을 가르던 검이 기묘하게 꺾이며 라온의 목을 향해 뚝 떨어져 내린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참격이었다.
라온이 허리와 허벅지의 마나회로에 만화공의 열기를 두르며 제천검을 쳐올렸다.
쩌어어엉!
절검의 묘리가 깃든 설풍검결의 투로가 클라우드의 검격을 거칠게 쳐냈다.
하지만 중심이 어긋나서 충격을 모두 흡수하진 못했다. 허리에 시큰한 통증이 일었다.
“너….”
뒤로 물러선 라온이 클라우드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만검을 익힌 건가?”
여러 검술 묘리를 사용하고, 그 전환까지 자유로운 건 만검의 수련자뿐이었다.
“주제넘게 만검에 대해서도 아는군.”
클라우드가 검을 어깨에 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나는 련주님의 뒤를 따라 만검의 길을 걷고 있지. 네 검술이 어떤 묘리를 담고 있다고 해도 내겐 닿지 못한다.”
그는 끝난 싸움에 시간을 끌지 말라며, 당장 덤비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재밌네.”
라온이 가는 웃음을 흘리며 태화보를 밟았다.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것밖에 못 하는군.”
클라우드가 차게 웃으며 어깨에 기대두었던 검을 그대로 내리꽂는다. 바람을 부수고 쏟아지는 극쾌의 검격에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쾌검에 흡검까지. 하지만….’
빠름은 느림과 정확함으로 제압할 수 있어.
라온이 제천검을 찔러넣었다. 클라우드의 쾌검과는 차원이 다른 듯 느릿한 속도.
하지만 그 검은 가장 중요한 공간을 선점하고 있었다.
쩌어어어엉!
클라우드의 검이 제대로 힘을 받기 전에 제천검과 충돌하여 튕겨 나갔다.
“이놈….”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다시 한번 검을 내리그었다.
검신 위에서 거센 폭음이 터진다. 마법처럼 오러가 폭발하는 폭검이 강검의 흐름을 따라 굽이쳤다.
터엉!
라온은 공간을 찢어발기는 폭발을 보고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폭검과 강검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제천검에 두르고 손목을 쳐들었다. 대지를 쓸어 올리며 솟구치는 설풍검결의 절기에 중검과 패검의 묘리를 휘감았다.
콰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격돌하며 어마어마한 충격이 사위를 휩쓸었다.
대지를 찢어발긴 두 검사가 회색 먼지를 가르고 튕겨 나갔다. 다만 이번에는 라온이 네 걸음, 클라우드가 세 걸음이었다.
“네놈 설마….”
클라우드가 살기를 두른 눈빛을 일으키며 입매를 꼬았다.
“그래.”
라온은 클라우드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만검을 익히고 있다.”
비웃음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너 혼자 만검을 이룬다고 생각하면서 잘난 척을 하는 꼴이 어찌나 우습던지.”
“이 버러지 놈이….”
클라우드가 살기를 드높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다만 생각 없이 달려드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괜히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건 아닌 모양이다.
“련주님과 혈검주가 네 재능이 특별하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군. 만검을 익히고 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그가 투레질하는 말처럼 발로 바닥을 가볍게 긁었다.
“네놈과 내 재능은 격이 다르다!”
클라우드는 재능에 대한 욕망 혹은 열등감을 드러내며 쇄도해왔다.
보법에도 스며들어 있는 쾌검과 환검의 묘리. 어긋난 성격과 달리 무학만큼은 제대로 단련한 것 같았다.
치이이이잉!
환검의 묘리를 이용하여 허깨비처럼 몸을 세 개로 나눈 클라우드가 우측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동시에 뻗어 나오는 칼날에는 패검과 충검의 묘리가 깃들어 있었다.
‘위력이 강해.’
라온이 낮은 숨을 내쉬며 클라우드의 검격을 향해 설풍검결의 절기 은풍회류를 펼쳐냈다.
쿠와아아앙!
은색의 바람과 함께 치솟은 강인한 절검의 묘리가 클라우드의 검을 후려 찍었다. 꺾여나간 검이 바닥을 치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지금.’
라온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클라우드의 공간을 파고들었다. 설풍검결의 전반 초식을 연달아 쏟으며 강한 압박을 가했지만, 놈은 만검의 수련자답게 꺾이지 않는 중검의 묘리를 담아 공세를 벗어났다.
쩌저저저정!
비슷한 수준의 오러로 싸우고 있지만, 경지가 더 높은 클라우드의 검격이 조금씩 우위를 드러낸다. 시스템으로 얻은 능력치와 불의 고리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밀려났을 것이다.
'역시 그랜드 마스터의 벽은 높군.'
그랜드 마스터의 특별함을 느끼며 검을 다잡을 때 클라우드가 하늘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내가 왜 네놈과는 격이 다르다는 건지 보여주마.”
클라우드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얼어붙은 대지를 갈랐다. 그의 검이 어디선가 본 듯한 투로로 휘어지며 거센 바람을 불러왔다.
‘이건 설마….’
라온이 눈을 부릅뜬 채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광아검을 펼치려는데, 클라우드의 검극에 휘감긴 바람이 감각검의 흐름을 끊고 들어왔다.
쩌어어어엉!
검술을 끊어버리는 절검의 힘. 설풍검결의 초식과 흡사한 움직임이었다.
“보았나?”
클라우드가 다시 한번 바람을 일으키며 턱을 치켜들었다.
“네놈의 검술 따위는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다. 아니, 더 위력적으로 펼칠 수 있지.”
그는 정신을 무너뜨릴 생각인지 한 번 보여주었던 은풍회류마저 더 강한 흐름을 일으켜 재현했다.
후우우웅!
피부를 긁어내는 듯한 삭풍에 제천검에 어린 강기가 뜯겨나갔다.
“이제 느껴지나? 진짜 재능이 무엇인지? 이 자리에서 네게 주어진 용의 칭호를 가져가도록 하지.”
“상대 입장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이런 느낌이었군.”
라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번들거리는 눈동자에서 붉은 희열이 피어나고 있었다.
“너한테는 뜯어먹을 게 많겠어.”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99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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