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95화 (495/653)
  • 제495화

    라온이 적발의 남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저건 뭐야.’

    괴물이다. 아니, 그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폭력적인 위압감이 전해져온다.

    달빛조차 그의 존재가 두려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듯했다. 홀로 수만을 압도하는 기세. 인간의 육체에 하늘의 무신이 강림해 있었다.

    ‘초월자. 그것도….’

    단순히 초월의 경지에 오른 게 다가 아니라, 한 발 더 위로 올라선 것 같았다.

    신주오령의 수장들도 대륙 정점을 노릴 수 있는 무력을 지녔지만, 일대일로는 결코 저 남자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체 누구지?’

    적발, 스물을 갓 넘긴 것 같은 어리고 아름다운 용모에 청색 용포까지. 저 정도 무력과 특징이면 바로 알 수 있어야 하건만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아아….”

    데닝로즈가 비에 젖은 아이처럼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서, 성검련주….”

    그녀는 적발의 미청년을 성검련주라 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성검련주…?”

    성검련은 오마 중 하나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륙 전체의 검과 검술을 수집하는 검귀들의 연합체다.

    그리고 그 아귀들을 짓밟고 왕좌에 오른 게 바로 당대의 성검련주 흑야검신 다르칸이었다.

    ‘젊음을 얻은 건가.’

    전생에 데루스가 주었던 정보에 의하면 다르칸은 글렌과 비슷한 연배라고 했었는데, 지금 그의 외모는 아무리 높게 봐도 20대 중반이었다.

    봉문을 하는 동안 무언가를 이룬 것 같았다.

    -호오.

    라스가 홀로 대중을 압도하는 성검련주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저것도 인간치고는 제법이로구나. 나름 특이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특이한 기운?’

    -지금까지 네놈이 못 보았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듯하구나.

    녀석이 괜찮아 보인다고 말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저 수준이 제법이라니, 역시나 마왕의 기준은 알 수가 없었다.

    “저자가 왜 여기에….”

    데닝로즈는 성검련주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그녀는 당황하여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듯 보였는데, 성검련이 이곳에 나타나는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성검련의 등장을 알리기에 가장 좋은 무대니까.’

    성검련은 오랜 기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과거에 보여준 압도적인 무력 덕분에 지금까지 오마에 속해있지만, 다른 오마에 비해 현재의 악명이 부족했다.

    이 장소는 그런 성검련의 이름을 하늘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다.

    라온이 마른 입술을 축이며 신주오령이 있는 단상 위를 올려보았다.

    귀살창은 성검련주의 무력에 흥분한 듯 혀를 날름거렸고, 사검마의 이마는 긴장으로 인한 주름이 가득 올라와 있었으며, 악검후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손이 빨개지도록 검집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희극제는 이 상황에 당황한 듯 눈동자를 떨었다. 하지만….

    ‘놀라지 않았어.’

    지금까지 여러 차례 희극제를 조롱했었기에 알 수 있다.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상태였다.

    ‘천기를 읽었던 건가?’

    희극제에겐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이 상항을 예측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한 거지?’

    그녀의 의도를 생각하고 있을 때 성검련주가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적진이 아니라, 성검련에 머물고 있는 듯한 여유를 보이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이곳에 좋은 검 두 자루가 있다고 들었는데.”

    성검련주의 시선이 단상 위에 있는 사검마와 악검후를 향했다. 노란 눈동자 속에 폭풍 같은 욕망이 들끓었다.

    “얼마나 날카롭게 갈린 검이지 확인해보고 싶군.”

    그가 손을 뻗자, 사회자의 몸을 갈랐던 흑검이 저절로 떠올라 그의 손에 잡혔다.

    “미친….”

    라온은 사검마에게 검을 겨누는 성검련주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신주오령을 혼자 상대하겠다고?’

    성검련주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초월에 닿은 신주오령의 수장 넷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둘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세상 물정을 모르네.”

    귀살창이 뒷목을 주무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갈통에 창이 박혀야 눈이 뜨이려나?”

    “쓰레기는 빠지도록.”

    성검련주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검사가 아닌 자와는 말을 섞는 것조차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그의 음성이 가라앉자, 어둑한 그림자가 들끓는 듯한 오싹함이 피부를 적셨다.

    “그리고 누가 혼자라는 거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을 가르고 거대한 범선이 다가왔다.

    시꺼먼 돛에 새겨진 별이 깃든 검의 문양. 성검련주의 비행 전선 검익이었다.

    쿠구구구구!

    검익이 광장의 중심에서 멈추자마자, 성검련의 표식을 새긴 검사들이 광장으로 뛰어내렸다.

    하나 같이 육체와 오러를 제대로 단련한 고수들이다.

    중간중간 검주 급으로 보이는 마스터들도 눈에 띄었다.

    쿠구구궁!

    대지에 발을 내린 성검련의 검사들은 광장의 출구 두 곳을 막은 채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검을 날렸다.

    “아아아악!”

    “크헉!”

    “허윽….”

    무인도, 시민도 상관없었다. 성검련의 검귀들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검광을 뿌렸다.

    “당황하지 마라! 전투를 준비해!”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듯 검을 뽑고 성검련의 검귀들과 맞섰다.

    “흩어지지 마라!”

    중립 세력에서도 강자라 불릴 법한 슈페르 신성 왕국의 기사단장 바이튼이 성광을 두른 검을 들어 올렸다.

    “민간인부터 보호해!”

    그가 사람들을 보호하며 검귀들을 베어넘길 때 좌측에서 새하얀 그림자가 다가왔다.

    “바이튼!”

    라온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를 때 투명하리만큼 새하얀 손이 바이튼의 목을 움켜쥐었다.

    뿌드드득!

    목뼈가 꺾이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흐르고, 바이튼의 어깨가 말라붙은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그의 육체가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지고, 그 뒤에서 비단처럼 매끄러운 흑발을 쓸어 올리는 여성이 흥겨운 미소를 지었다.

    ‘백혈교주!’

    라온이 흑발의 여성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글렌에게 패한 후 모습을 감췄던 그녀가 이곳에 와 있었다.

    “역시 신성 왕국 애들의 피가 괜찮다니까.”

    백혈교주가 붉게 물든 입술을 매만지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쿠우우웅!

    대지가 호수라도 된 듯 투명하게 출렁이더니 그 아래에서 인간의 형상이 솟구쳤다.

    새하얀 로브와 후드 중앙에 새겨진 줄. 백혈교도의 신복이었다.

    일반 신도만이 아니라, 10사도와 이름 모를 두 명의 사도까지 걸어 나와 백혈교주 앞에 부복했다.

    “축제를 즐기렴.”

    그녀는 마음대로 하라는듯 손을 펼쳤고, 백혈교도들은 괴이한 신언을 읊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가 사람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우우우우우웅!

    진혼검이 백혈교의 등장에 분노하는 듯 검날이 부러질 것 같은 검명을 터트렸다.

    평소 백혈교를 보았을 때보다 더 격한 울림이었다.

    “크윽!”

    라온이 지그시 어금니를 씹었다.

    ‘백혈교까지 오다니….’

    다만 성검련의 등장보다는 덜 당황스러웠다.

    ‘올 가능성이 충분했으니까.’

    지금 이 도시는 수많은 무인으로 가득 차 있다.

    성검련과 함께 움직인다면 차려진 밥상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백혈교에게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이쪽도 시작해야지.”

    “내가 저 둘을 맡으면 되는 건가?”

    성검련주가 사검마와 악검후를 바라보며 눈동자에 붉은 이채를 띄었고, 백혈교주는 희극제와 귀살창을 훑으며 입맛을 다셨다.

    4대2의 대결이지만 누가 이길지 쉽게 점칠 수가 없었다.

    다만 희극제의 눈빛에는 여전히 당황이 드러나지 않았다. 백혈교의 등장도 예측했던 것 같았다.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희극제가 기도를 하듯 두 손의 손가락을 맞대며 눈을 내리감았다.

    그녀의 입에서 고속의 언령이 흘러나오자, 도시 상공에 태양과 달을 비추는 듯한 별자리가 그려졌다.

    광활한 밤하늘 아래에 새겨진 음양의 형상이 찬란한 빛무리와 함께 쏟아졌다.

    우우우우웅!

    천지를 뒤흔드는 강렬한 파동이 일어나며 음양의 빛을 내리받은 신주오령의 무인들의 기운이 폭발할 것처럼 요동쳤다.

    “음….”

    “진법인가?”

    “이건….”

    땅거죽을 뒤짚을 듯한 막대한 기파에 백혈교와 성검련의 무인들의 손이 멎었다.

    희극제와 다른 신주오령의 수장들의 기세 역시 조금 전과는 격이 다를 정도로 증폭됐다.

    붉은 불꽃 위를 홍색의 화염이 휘감은 듯한 느낌.

    4대2였어도 비등할 것 같았던 균형의 추가 신주오령 측으로 기운 듯한 느낌이었다.

    “검은 날카로울수록 맛이 좋은 법이지.”

    “발버둥치는 애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성검련주는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백혈교주는 귀찮다고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두 초월자는 중력을 지운 것처럼 허공으로 떠올라 단상에 서 있는 신주오령의 수장들과 마주 섰다.

    “저놈은 내가 맡겠다. 무시하던 창으로 꼬치를 만들어주지.”

    “내 검을 맛보다간 혓바닥이 찢어질 것이다.”

    귀살창은 방천화극으로 성검련주를 겨누었고, 사검마는 살기를 짙게 두른 눈빛으로 검병에 손을 얹었다.

    “이대로 싸운다면 절대 지지 않을 겁니다. 빠르게 끝내고 희생을 줄이죠.”

    “알고 있다.”

    희극제는 사람들을 지키자고 말하며 두 손을 펼쳤고, 악검후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초월자들이 일으키는 오러의 충돌만으로 천공이 일그러지고,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야말로 자연재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후우….”

    라온이 숨을 고르며 뒤를 보았다.

    ‘괴물은 괴물끼리 싸우라고 놔두고….’

    광풍대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할 때 좌측에서 거센 바람과 함께 리메르가 다가왔다. 그는 샛노란 귀기를 두른 채 성검련주와 성검련을 바라보았다.

    “성검련주….”

    진지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장난기가 아예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를 채우는 건 오직 분노와 살의뿐이었다.

    ‘분노의 대상이 성검련이었나?’

    머리 색처럼 붉게 물든 그의 녹안이 성검련의 무인들을 살핀다. 꼭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어디냐.”

    리메르가 입술을 꾹 깨물며 검을 뽑았다.

    “대주님?”

    “라온. 광풍대를 맡긴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

    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리메르가 대지를 박찼다.

    한 줄기 벼락이 되어 튀어 나간 그는 성검련의 무인의 목을 베며 전장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부, 부대주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크레인과 도리안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다가왔다.

    “음….”

    라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신주오령과 오마가 부딪치고 있기에 지금 물러나면 아무런 피해도 없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 커헉!”

    “방비를 좀….”

    “길이 다 막혔어!”

    하지만 그 사이에서 아무 죄도 없는 중립 세력과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물러나더라도 저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치이이이잉!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동시에 뽑아서 성벽이 가장 가까운 동쪽으로 나아갔다.

    터엉!

    길목을 막은 채 혈기를 뿌리는 대주교에게 돌진했다. 주교가 수도를 내리치기 전에 들어올린 제천검을 우측으로 기울였다.

    치이이익!

    주교의 로브에 가느다란 선이 새겨지며 그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백혈교도들은 주교가 죽은 것을 보았음에도 겁을 먹지 않고 혈기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왼발을 부채꼴로 펼치며 허리와 함께 검격을 휘어 그렸다. 회전이 담긴 화염의 궤적이 짓쳐든 백혈교도들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십수 명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인지 일순간 백혈교도의 움직임이 멈췄다.

    ‘기회다.’

    지금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만화공을 더 끌어내며 일검을 쏟아냈다.

    콰아아아앙!

    앞을 막고 있던 성검련의 무리가 시뻘건 피를 터트리며 지워진다.

    찌이이이잉!

    뒤에 따라붙은 백혈교도들은 혈우의 울림을 견디지 못하고, 오공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압도적인 화력과 잔혹함에 백혈교도와 성검련의 검귀들의 눈동자가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화아아아악!

    라온이 화염이 휘몰아치는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겁에 질려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제천검의 열기처럼 뻘겋게 달아올랐다.

    “광풍대는 길을 열어라!”

    그 외침에 광풍대의 눈빛이 변한다. 당황하고, 겁을 먹었던 시선 위로 광기와 의지가 차올랐다.

    라온이 전방의 길을 뚫고, 광풍대가 그 길을 넓힌다.

    전투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백혈교와 성검련이 막고 있던 길이 뚫리고 가장 가까운 동쪽 성벽이 드러났다.

    찌지지직!

    라온이 제천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오른발로 대지를 짓눌렀다.

    마나회로를 터트릴 것처럼 요동치는 열기에 바람을 더해 위력을 극한으로 끌어냈다.

    만화공 백화 염룡결. 검극에서 솟구친 화룡의 숨결이 성벽의 중심을 꿰뚫었다.

    하지만 아직 구멍은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크지 않았다.

    ‘조금만 더.’

    라온이 염룡결이 만들어 놓은 구멍에 제천검을 넣고, 다시 한번 단전의 불길을 일으켰다. 마나회로를 질주하며 솟구친 열기가 검극에 강렬한 인력을 만들어냈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2형 중천포.

    무거움이 깃든 막대한 검격이 동쪽 성벽에 작렬했다.

    쿠구구구구구!

    염룡결의 여파로 새겨졌던 실금이 두껍게 돋아나며 성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마, 막아라!”

    “저놈들을 막아!”

    “모두 이쪽으로!”

    라온은 탈출을 막기 위해 다가온 백혈교도와 검귀들을 베어버리고, 열린 길을 가리켰다.

    “아아….”

    “기, 길이 열렸어!”

    “저쪽이다! 저기로 가면 살 수 있어!”

    백혈교와 성검련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이 동쪽 성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조금 더 넓혀야겠어.’

    외부로 나가야 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탈출구를 넓히기 위해서 적섬으로 양쪽의 벽까지 갈라냈다.

    라온이 벽을 무수고, 검귀들을 베고 있을 때 단상 위에 있던 시선들이 그를 향해 굽어졌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군.”

    성검련주가 라온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 아이가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이대로 자란다면 대륙 제일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어린 검이다.”

    “…….”

    성검련주의 바로 아래에 서 있던 젊은 검사는 그 말을 듣고 라온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혈검주를 데리고 올 걸 그랬어.”

    그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라온 지그하르트?”

    백혈교주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아직 떠나지 않았던 건가!”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신주오령의 간부를 찢어발기던 중년의 사도가 라온을 향해 쏘아졌다.

    “용현검주.”

    성검련주가 뒤편으로 손짓을 하자, 전선 검익에서 문사처럼 깔끔하게 수염을 기른 중년인이 뛰어내렸다.

    “무얼 하는 것이지?”

    백혈교주의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저 아이는 내 것이야.”

    “나도 저 어린 검에는 관심이 있거든.”

    백혈교주와 성검련주는 신주오령의 수장 넷을 앞에 두고도 여유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럼 누가 더 먼저 끝내냐로 결정할까?”

    “그게 좋겠네.”

    성검련주가 가볍게 손을 젓자, 백혈교주가 농염한 미소를 그렸다.

    “망할 새끼들이!”

    “죽여주마.”

    귀살창과 사검마가 의념을 일으키자, 단상의 기둥이 무너지고, 대지가 들끓었다.

    쿠와아아아아앙!

    여섯 명의 초월자가 격돌하는 순간 강렬한 빛이 천지를 뒤덮었다.

    “크윽….”

    라온은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는 충격파에 정신이 멍해진 상태에서도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눈앞으로 이름 모를 사도와 용현검주가 돌진해오고 있었다. 둘 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초고수. 쇄도해오는 속도가 빛살과 같았다.

    ‘무슨 사도지? 그리고 저쪽이 용현검주라고?’

    용현검주에 대해서는 들어보았다. 검주 중에서도 제일 가는 재능이라고 들었다. 다만 그의 우수는 텅 비어 있었고, 좌수에 검을 들었다.

    오른팔을 잃은 것 같은데 느껴지는 기파가 불길할 정도로 섬뜩하다. 무력 이상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나한테서 떨어져!”

    라온이 광풍대를 밀어내며 두 검을 들어 올렸다.

    ‘창궁검을 펼칠 시간이 없어.’

    펼친다고 해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셰릴에게 얻은 쌍검술로 두 개의 절기를 동시에 펼치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바람이 스며든 마나회로가 급격히 팽창하며 전력을 끌어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진각을 밟으며 서리연과 적섬을 펼치려고 할 때 허공에서 흑백 섬광이 교차하며 떨어졌다.

    쩌어어어어엉!

    백뢰와 흑뢰가 사도의 수도와 용현검주의 검을 막아선 채 한 치도 밀려나지 않았다.

    셰릴이다. 위장을 위해 입고 있던 하얀 드레스를 찢고 나타난 그녀가 두 그랜드 마스터를 홀로 막아섰다.

    “천검대는 길을 막으라!”

    그녀의 외침에 천검대가 앞으로 나와 사도와 용현검주를 따라오던 백혈교도와 성검련의 검귀들을 막았다.

    천검대 검사 중 하나가 등에 업고 있던 마르타를 도리안에게 넘기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라온! 잘했다!”

    셰릴이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듯 전방을 바라보며 외쳤다.

    “사람들을 데리고 빠져나가!”

    “하지만 홀로 둘은 무리….”

    “걱정마. 곧 그 바보가 올 테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측에서 풍뢰가 몰아쳤다.

    “킬리스!”

    리메르가 눈동자에 시꺼먼 살기를 일으킨 채 용현검주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엉!

    리메르와 검을 맞댄 킬리스가 검상이 새겨진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좋아 보이는군. 리메르.”

    “살아 있을 줄 알았다!”

    그가 이를 바득 갈며 검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살았지. 그리고….”

    용현검주가 비어버린 오른쪽 어깨를 보며 픽 웃었다.

    “더 강해질 수 있었고.”

    그의 검에서 광활한 크기의 강환이 튀어나와 리메르를 몰아붙였다.

    콰아아아앙!

    리메르가 그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크으윽….”

    “수하들을 그리 죽이고서 새로운 아이들을 받았다고 하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용현검주가 리메르를 바라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수장의 자격은 없지만, 스승의 재능은 있었던 모양이야.”

    “닥쳐!”

    리메르는 얼굴에 핏줄이 돋아나도록 악을 지르며 용현검주에게 달려들었다.

    라온이 두 사람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대주님의 분노의 대상이 저 자였나?’

    정확한 건 모르지만, 성검련주가 아니라 저 남자가 분노의 대상인 것 같았다. 다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도를 막는 셰릴과 용현검주를 막아선 리메르에게 고개를 숙이고 뒤를 돌았다.

    “사람들과 함께 빠져나가! 당장!”

    광풍대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민간인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었다.

    “이제 앞으로….”

    라온이 벽을 더 부수고 도시를 빠져나가려 할 때 천공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하얗게 물든 창강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크윽!”

    위를 올려보니 10사도가 그 지랄맞은 창을 지닌 채 서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사람들을 구하면서 10사도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죽여달라고 목을 가져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을 버리라는 건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두 번째 창격이 쏟아져 내린다.

    10사도의 표정은 네가 죽든가 사람들을 버리든가 선택하라는 듯 담담했다.

    “개자식!”

    라온이 하늘을 향해 두 검을 들어 올릴 때 밤하늘이 오로라처럼 일렁거리며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폭발했다.

    일그러진 공간을 가르고, 노파의 가면을 쓴 멀린이 걸어 나와 남색 로브를 쳐냈다.

    “내 것을 건드리지마.”

    가면 속 붉은 눈동자가 섬찟하게 번들거렸다.

    “죽여 버리기 전에.”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95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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