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94화 (494/653)
  • 제494화

    라온은 질투가 개방됐다는 메시지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왜 여기서 질투가 나오지?’

    엔비에게 <질투>를 얻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질투심이 들지 않았다.

    전생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암살자가 가족과 스승, 동료를 얻었고, 평생을 두고서라도 이뤄야 할 목표가 있었으니, 질투 따위가 생각날 틈이 없었다.

    ‘이 능력은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현재 자신의 재능과 위치에 만족하고 있어서 나태와 달리 아예 능력 자체를 운용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개방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특히 셰릴은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하고 선망하는 인물이다. 왜 하필 그녀 앞에서 이 능력이 떠오른 건지 모르겠다.

    라온이 질투가 개방된 이유를 생각하며 눈매를 찡그리고 있을 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상에게 <질투>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질투>의 속성이 <선망>으로 전환됩니다.]

    [현재 선망의 대상 <셰릴>이 지닌 무학들을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올라오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왜 셰릴 앞에서 질투가 개방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질투가 선망으로 바뀌어서 적용된 거야.’

    질투와 선망은 한 끗 차이의 감정.

    둘 다 그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질투는 악의를 담고 선망은 선의를 담는다.

    시스템은 누구에게도 질투하지 않는 자신을 위해서 비슷하면서 다른 선망이라는 감정을 이용한 것 같았다.

    ‘거기다….’

    <질투>의 능력은 제대로 적용되고 있어.

    라스의 말에 의하면 엔비는 다른 이를 질투할수록 강해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와 똑같이 셰릴을 선망하는 만큼 그녀의 주특기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이런 미친!

    라스가 메시지를 노려보며 빽 소리를 질렀다.

    -대가리에 헬파이어를 맞았나! 가만히 박혀 있지. 시스템 주제에 왜 나서고 지랄인 것이냐!

    녀석은 본인의 머리채를 잡은 채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게. 이렇게 배려를 해줄 줄은 몰랐어.’

    라온이 메시지를 보며 기꺼운 미소를 지었다.

    ‘분노의 군주님이 만든 거라 그런지 성능이 대단하네.’

    -크윽….

    라스는 오랜만에 칭찬을 들었기 때문인지 얼굴의 반은 기뻐하고, 반을 찡그리는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닥쳐!

    다만 결국 짜증이 돋았는지 욕을 내뱉으며 주먹질을 해댔다.

    -왜 이놈만 이렇게 일이 잘 풀리는 건데! 하늘은 왜 있냐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잖아. 열심히 하니까. 잘 되는 거지.’

    -세상에 열심히 안 사는 놈은 없느니라!

    ‘너 있잖아. 맨날 놀고 먹고 불평하는 너.’

    -억….

    라스는 대꾸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당황한 라스를 보며 웃고 있을 때 셰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온?”

    그녀는 괜찮냐는 듯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라온이 셰릴에게 고개를 숙인 후 조금 전에 하지 못했던 말을 이어 붙였다.

    “대주님과 천검대가 저희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는데, 지금처럼 보호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가문의 식솔끼리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같은 대주끼리 높고 낮은 것도 없어.”

    셰릴은 그런 잡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퉁명스레 전해진 말이 가슴을 울렸다.

    시스템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선망을 가지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럼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게 있지.’

    질투가 개방되면서 선망의 대상이 가진 특기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했다.

    셰릴이 선망의 대상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그녀의 진짜 특기가 무엇인지를 들어야 했다.

    ‘사실 못하시는 게 없겠지만, 더 잘하는 건 따로 있을 테니까.’

    셰릴은 모든 검술을 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무학 전반에 능통하지만 만검의 수련자는 아니다.

    집중해서 익힌 게 있을 것이기에 확실하게 알아야 했다.

    “뜬금없지만, 하나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라온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셰릴에게 한발 다가갔다.

    “말해.”

    셰릴이 뭐든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검술을 다 잘하시는 건 알고 있는데, 특히 자신 있는 검술이 있으십니까?”

    “정말 뜬금없네.”

    셰릴이 피식 웃었다. 관심이 있다고 여겨서 그런 건지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내 진짜 무기는 쌍검이다.”

    그 말이 맞다. 셰릴은 등에 하나의 검을 차고 있지만, 발검할 때는 백검과 흑검 두 자루로 나뉘어서 뽑힌다.

    “당연하게도 쌍검술에 자신이 있고, 검술 묘리는 두 검의 정확성을 높이는 정검과 상대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절검, 균형을 잡는 충검 그리고 상대를 현혹하는 환검과 변검을 익혔지.”

    “쌍검을 사용하시니, 오러 운용 쪽에도 강하시겠군요.”

    쌍검을 사용한다는 건 두 검 모두에 오러를 두른다는 뜻. 오러 운용에 능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게으른 엘프보다야 자신 있지.”

    셰릴은 리메르가 지나간 쪽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것 아니다.”

    그녀는 선선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좋은데.’

    셰릴의 장기인 쌍검술과 정검, 절검, 충검, 환검, 변검 그리고 오러 운용까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가슴이 빠르게 두방망이질 쳤다.

    “대주님. 잠시만 제 검술을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여기서?”

    “예.”

    라스를 통해서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진짜 너란 녀석은….”

    셰릴이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쳤다. 그녀 역시 위험 요소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할 거면 빨리 해.”

    “예.”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제천검과 진혼검을 뽑았다.

    ‘재밌겠는데.’

    작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에 든 제천검으로 광아검을 펼치고, 좌수에 든 진혼검으로 설풍검결을 일으켰다.

    오러 없이 그저 검술만을 운용했기에 강맹한 기파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검격의 날카로움은 더 진해진 것 같았다.

    라온은 두 검술을 끝까지 펼쳐내고 나서 셰릴을 바라보았다.

    “너 쌍검술 배운 적 없지?”

    셰릴이 팔짱을 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예.”

    전생에 배운 건 쌍검술이 아니다. 두 손에 든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법이었기에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럴 줄 알았어.”

    셰릴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을 이었다.

    “쌍검술은 두 손에 검을 들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양손으로 각자의 검술을 펼치되 두 검술이 조화를 일으켜야 하지. 너는 그냥 두 검을 차례로 펼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녀는 두 손으로 수도를 만들어서 조금 전 광아검과 설풍검결을 펼칠 때의 모습을 재연해주었다.

    처음 펼치는 검술이다 보니 움직임은 어색했지만, 둘의 조화만큼은 자신보다 훨씬 나았다.

    “이렇게 왼손에 든 검이 우측으로 이동해서 공격하면 오른손에 든 검은 좌측으로 이동하여 방어를 해야 하지. 아니면 아예 두 쪽 다 다른 곳을 노리는 공격을 질러도 되고.”

    라온은 불의 고리를 휘돌리며 셰릴의 조언과 시범을 모조리 눈과 귀에 담았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선망의 대상자인 셰릴이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지금 당장 펼쳐도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공간도 좁고 시간도 없어서 애매하지만, 느낌은 알았을 거다.”

    “다시 해볼게요.”

    “그건 바로 되는 게 아니야. 네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한 번만 더 봐주십시오.”

    라온이 고개를 젓고서 다시 두 검을 들었다. 육체의 중심을 낮추며 셰릴이 지적해주었던 부분을 뇌리에 떠올렸다.

    머릿속에서 광아검과 설풍검결이 어우러지는 이미지를 그리며 두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좌검과 우검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두 검과 두 무학이 서로의 투로를 막지 않고 더 빠르고 강맹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며 두 번째 초식을 펼쳐냈다.

    후우우우웅!

    제천검이 미친 맹수의 이빨을 드러낸 순간 진혼검에서 시퍼런 북풍이 일어난다. 공격과 방어가 맞물리듯 교차하며 찰나의 순간 공기가 변한다.

    제천검이 뒤로 물러나며 불길의 방패를 두르고, 진혼검이 전방으로 쏘아지며 차디찬 바람의 칼날을 뻗어냈다.

    라온이 두 검을 다시 반대로 운용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셰릴이 알려준 쌍검술의 묘리가 순식간에 머리와 육체를 파고든다.

    단순히 불의 고리의 효용이 아니다. 선망으로 변한 질투를 통해 얻은 성장의 힘이었다.

    “아….”

    셰릴이 라온의 검을 보며 턱을 떨었다.

    ‘어떻게 이런….’

    실전과 겉멋이 기이하게 조화되어 있던 검술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던 라온의 쌍검술이 이 짧은 순간에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두 자루의 검은 서로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고,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투박하지만, 이전과 달리 쌍검술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 되었다.

    ‘이게 말이 돼?’

    고작 한 번의 시범과 조언을 해주었을 뿐인데, 몇 달은 수련한 듯한 모양새다.

    라온에게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말이 되질 않았다.

    “이것도 해봐.”

    셰릴은 처음 보여준 것과 달리 중급 기예라고 할 수 있는 쌍검술의 묘리를 보여주었다. 공격과 방어가 아니라, 공격과 공격 그리고 방어와 방어를 이루는 묘리였다.

    라온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천천히 두 검을 들어 올렸다.

    첫 시작은 애매했다. 공격도 공격이 아니고, 방어도 방어 같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검술을 두 번째로 펼칠 때부터 두 자루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방어 위주로 움직이던 두 자루 검이 라온의 왼발과 함께 뻗어 나오며 심장이 아릿할 정도의 검세를 일으켰다.

    하나를 알려주었더니, 둘을 지나치고 셋으로 나아가는 모양새였다.

    “이 무슨….”

    셰릴이 눈을 부릅뜬 채 헛바람을 흘렸다.

    “다, 다시! 이것도 해봐!”

    그녀는 해가 뜨기 전에 떠나겠다는 말을 잊은 채 라온에게 더 높은 수준의 무학의 묘리들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 * *

    쿠웅!

    라온이 제천검을 아래로 진혼검을 들어 올렸다. 단전에 깊은 울림을 일으키며 두 검을 사선으로 교차시켰다.

    짐승의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리듯 스치는 칼날 위로 붉고 푸른 검광이 번쩍였다.

    제천검이 광기의 불길을 두른 채 공격을 주도하고, 진혼검이 글래시아의 냉기로 서리의 벽을 세웠다.

    공격과 방어의 완벽한 조화였지만, 두 자루의 검은 끈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에 공격과 방어가 전환되며 광아검이 방어, 설풍검결이 공격인 형식의 쌍검술이 이루어졌다.

    치이이이잉!

    설풍검결보다 광아검의 전개가 먼저 끝났지만, 제천검의 움직임은 아직 멎지 않았다.

    진혼검이 펼쳐내야 할 설풍검결의 후반 초식을 휘감으며 밤이 찾아온 대지에 서리의 바람을 내뿌렸다.

    라온은 광아검과 설풍검결의 초식을 모두 펼쳐낸 뒤 자세를 낮췄다.

    팔을 교차시켜 제천검을 좌측 상단으로 진혼검을 우측 하단으로 내린 후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제천검 위로 적염이 들끓고, 진혼검의 짧은 칼날 위로 서리의 파도가 범람한다.

    왼발 진각을 밟으며 두 검을 동시에 뻗어냈다.

    진혼검에서 치솟은 서리연이 대기를 꿰뚫고, 제천검에서 타오른 은검몽이 꿈결처럼 공간을 찢어발겼다.

    두 절기의 동시 사용.

    이전에도 사용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격이 달랐다.

    서리연과 은검몽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초식처럼 서로의 빈틈을 보조하며 머리에 그렸던 적의 숨통을 꿰뚫었다.

    동시에 펼친 두 가지 검수이 아니라, 하나의 쌍검술을 펼친 것이다.

    “후우……”

    라온이 숨을 고르며 두 검을 내렸을 때 뒤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너란 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셰릴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쌍검술의 투로와 오러 운용의 기본만 알려줬는데, 혼자서 고급 단계에 가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그녀는 라온의 재능에 질릴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셔도 되는 겁니까?”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납검하며 옅게 웃었다.

    “축제 마지막 날이라 모든 시선이 광장을 향해 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따라붙어 있던 시선들도 모두 사라졌어.”

    “아, 하긴.”

    신주오령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거대 규모 폭죽 마법을 사용한다고 했기에 모두 광장으로 몰려간 상태였다.

    “신주오령의 수장들도 축제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 바쁜 것 같다. 다만….”

    셰릴이 주변을 둘러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경계는 평소보다 훨씬 삼엄해. 꼭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는 것처럼.”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요?”

    “모르겠다. 신주오령 자체가 무슨 의도로 튀어나왔는지 모를 애매한 집단이니까.”

    그녀는 신주오령의 목적을 모르겠다고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그렇긴 하죠.”

    라온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불꽃놀이인가 뭔가 보러 안 가는 거냐? 다른 녀석들은 다 놀라고 놔두고?”

    “루난도 안에서 마르타를 지키고 있습니다.”

    루난과 마르타가 함께 쓰는 방을 가리켰다. 마르타는 여전히 경지를 정리하고 있는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그 왈가닥은 천검대가 지키고 있을 테니, 다녀와라.”

    셰릴은 지그하르트의 대표로 왔으니, 마지막까지 행사에 참여하라며 손짓했다.

    “다른 녀석들도 데리고 가고.”

    “흠….”

    라온이 하늘을 올려 보았다. 달이 떠오르지 않은 꺼뭇한 밤하늘이라 불꽃이 잘 보일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서 숙소로 들어가서 루난의 방에 노크를 했다.

    “왜?”

    루난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튀어나왔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데닝로즈도 루난과 함께 나왔는데, 그녀의 손에는 사진이 가득 들려 있었다. 이젠 저걸 봐도 놀랍지 않은 자신이 싫어졌다.

    “헉! 땀 흘리는 모습도 존잘이야!”

    그 뒤에 있던 엔시아가 사진기의 버튼을 연속해서 두드렸다. 저건 초기작이면서 대체 왜 고장이 안 나는 건지 모르겠다.

    라온이 얼굴을 가리면서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축제의 마지막이니, 참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마르타를 확인한 후 세 사람에게 마지막 행사에 가자 말했다.

    “마르타를 지킬 사람은 따로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어.”

    루난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겉옷을 걸쳤다.

    “네에!”

    “알겠습니다.”

    엔시아는 물어볼 것도 없이 바로 튀어나왔고, 데닝로즈도 조용히 옆에 붙었다.

    라온이 세 사람과 저택을 지키고 있던 광풍대를 데리고, 중앙 광장으로 나가려고 할 때 정문으로 들어오던 버렌과 다른 검사들을 마주쳤다.

    “왜 돌아오는 거지?”

    “너희만 놔두고 놀기는 좀 그렇잖아.”

    버렌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눈깔이도 많이 변했구나.

    라스가 이전보다 각도가 완만해진 버렌의 눈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쯧, 독기가 있을 때가 좋았는데.

    ‘독기는 아직 있어.’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버렌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니, 이젠 카룬을 넘겠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의 독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강해지고 있었다.

    “다들 따라와.”

    버렌과 광풍대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마르타는… 아!”

    버렌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어.”

    라온은 옅게 웃으며 광풍대를 이끌고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축제 한번 무지하게 기네요.”

    도리안이 배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주오령의 이름을 알리고,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 거겠지. 물론….”

    버렌이 라온을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그 명성은 전부 저 녀석이 가져갔겠지만.”

    그는 명성과 돈을 빨아먹는 아귀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불꽃놀이로 발악이라도 하려는 것 같아요.”

    크레인이 버렌의 말을 받으며 씩 웃었다.

    “불꽃놀이가 뭔데?”

    “밤하늘에 불꽃 마법을 터트려서 축제의 마지막을 알리는 행사래.”

    “축제는 성공하겠지만, 신주오령은 망했네.”

    버렌이 허공을 올려 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 마법 폭죽을 터트릴 시간이 안 됐음에도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 행사였기에 모두가 참여한 것 같았다.

    “광풍대다!”

    “안 올 줄 알았는데….”

    “백검룡이나 광풍대나 전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지 않아?”

    “그런 미친 결투를 봤는데, 전이랑 같아 보일 수가 없지.”

    “신주오령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육황은 다르네.”

    폭죽 행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광풍대를 알아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예전처럼 환호를 지르는 게 아니라, 경외하듯이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마스터 최상급 셋을 한 번에 꺾었던 일이 아직도 충격이었던 것 같다.

    라온은 인사를 해오는 중립 세력의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지그하르트에 배정된 귀빈석으로 향했다.

    정해진 자리에 앉은 후 광장 위에 세워진 단상을 바라보았다. 신주오령의 네 수장이 모두 나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검마는 무시하겠다는 듯 아예 눈을 내리감았고, 귀살창은 반갑다는 듯 솥뚜껑만 한 손을 흔들었다.

    악검후는 잔잔한 시선을 보내왔고, 희극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군.’

    희극제나 악검후는 몰라도, 사검마와 귀살창까지 이 자리에 올 줄은 몰랐다.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이질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이 행사가 그렇게 중요한 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턱을 매만질 때 단상 바로 아래에 세워진 분수 위로 인상이 선해 보이는 중년인이 올라왔다. 물을 타는 보법이 보통이 아니다. 잘 단련한 마스터였다.

    “아름다운 밤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러를 씌운 목소리가 광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번 행사의 사회를 맡은 케반입니다.”

    스스로를 케반이라 소개한 사회자가 광장 전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축제의 마지막을 즐길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은 광장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함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환호가 마음에 드네요. 그럼 지금부터 축제의 마지막을 터트려보겠습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단상 뒤편에서 시뻘건 불길이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쿠와아아아앙!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폭발한 불꽃이 햇살처럼 이지러지며 밤하늘을 뒤덮었다.

    그 뒤로 노란색, 파란색, 녹색, 보라색 불꽃들이 연달아 터진다. 깜깜했던 밤하늘에 무지개가 찾아오며 대낮이 된 듯 환해졌다.

    “우와아아아.”

    “이게 불꽃놀이인가?”

    “대단하네.”

    “돈 좀 들였겠어.”

    광풍대도 불꽃놀이의 규모에 놀란 듯 입을 떡 벌렸다.

    라온은 생각보다 더 크고 화려한 불꽃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걸 무학에 응용할 수는 없으려나?’

    폭죽 마법을 검술에 이용할 방법을 떠올리며 좀 더 자세히 관찰하려고 할 때 하늘에 검 모양의 불꽃이 솟구쳤다.

    다만 검의 폭죽은 화려하게 터지지 않고, 사이하기 그지없는 거뭇한 기운만을 드러냈다.

    ‘저건….’

    불꽃이 아니다. 진짜 검이었다.

    촤아아아악!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진 검이 사회자의 머리를 부수고 분수를 갈랐다. 투명했던 물이 뻘겋게 익으며 대지를 적셨다.

    불게 물든 대지 위로 한 남자가 내려선다.

    핏물보다 더 짙은 적발 아래로 신검이 깃든 듯한 샛노란 눈동자가 거센 뇌전을 일으켰다.

    천신 같은 미모 위로 하늘에 오른 초월자의 무력이 드러났다.

    퍼버버버벙!

    피에 젖은 듯한 붉은 폭죽 아래로 침묵이 범람한다.

    남자가 걸친 청색 용포가 바람에 휘어지는 소리만이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렸다.

    “축제에 피가 없으면 쓰나.”

    그의 시선이 라온을 향해 구붓하게 떨어져 내렸다.

    “늦었지만 끼워줄 수 있겠지?”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94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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