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3화
화아아아.
하얀 페이지를 자유로이 부유하던 핏방울들이 기괴한 형상을 그린다.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니다. 얼굴은 검게 물들었고, 눈은 시퍼렇게 번쩍였으며, 머리 위에 소라 모양의 길쭉한 뿔이 돋아나 있었다.
핏물들은 괴인의 입을 그리다가 우뚝 멈춰 섰다. 겁에 질린 짐승처럼 격한 떨림을 일으키며 책자의 페이지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페이지의 모서리에 응집된 핏방울들의 진동이 거세지며 결국 종이가 찢어지고, 핏물이 책자 밖으로 흘러내렸다.
갈라진 페이지 사이로 핏물이 스며든다. 꼭 피에 젖은 손바닥으로 투명한 유리창을 내리친 듯한 형상이었다.
“아….”
아리엘은 책자에 새겨진 섬뜩한 무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오싹한 소름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이게 말이 돼?’
이 책자는 일월성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태양과 달의 흐름 사이에 인간을 끼워 넣어 천기를 내다보는 고대의 아티팩트로 제대로 운용되었다면 지금 라온의 미래가 노랫말이 되어 적혀 있어야 했다.
피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제멋대로 움직여서 페이지를 찢어버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분명 두려워했어….’
핏물은 예언의 노랫말을 적기는커녕 라온이라는 존재를 무서워하며 종이를 벗어나기 위해 난동을 부렸다.
이 책의 원래 주인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괴이한 현상이었기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아리엘이 피에 젖은 손을 들어 올려 일월성서의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글렌 지그하르트도 읽었는데, 라온 지그하르트를 못 읽는 게 말이 돼?’
지그하르트로 가기 전에 일월성서를 이용하여 그곳에서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 움직였었다.
글렌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노랫말도 새겨졌는데, 라온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거기다 난 라온 지그하르트만 생각했다고.’
대륙 전체의 미래를 알고자 한 것도 아니고, 천마에 대해 알아본 것도 아니다.
아직 마스터에 머물러 있는 애송이의 미래를 보고자 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당황스러워서 눈앞이 허예졌다.
“후우….”
아리엘이 폐에 차오른 탁한 숨을 내쉬며 지그하르트에 갈 때 적혔던 노랫말을 살폈다.
‘이 예언대로라면 난 그곳에서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등에 업고 나왔어야 했어.’
라온 지그하르트. 그놈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었나.
지금까지 일월성서의 예언이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글렌 지그하르트의 초월적인 격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라온이 찾아와서 중립 세력을 흡수해야 할 회의에 문제가 생겼고, 명성을 쌓아야 할 결투 대회에서도 놈의 이름값만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졌다.
일월성서의 미래시에 문제가 생긴 건 속에 무엇을 감췄는지 알 수 없는 라온 지그하르트 때문이었다.
바득.
아리엘이 소리가 울리도록 이를 갈았다.
‘천기를 볼 수 없는 놈이 끼었으니, 미래가 어그러질 수밖에.’
본래 전반적인 상황을 예측하고, 그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 일월성서를 사용하는데, 라온이라는 존재를 읽지 못했기에 모든 상황이 망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놈의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뭐지?’
대륙 제일이라 칭해지는 글렌 지그하르트의 움직임도 예측 가능한 일월성서가 티끌 같은 라온을 읽지 못한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나왔던 악마의 형상과 피조차 두려워하는 모습은 또 뭐고.’
무엇 하나 시원하게 밝혀지는 게 없어서 속이 갑갑해졌다.
“그놈 설마….”
아리엘이 입술을 깨물며 테이블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이번 일에도 영향을 주는 건 아니겠지?’
육황의 이름을 업고, 중립 세력을 받아들이고, 결투 대회를 이용하여 명성을 쌓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장 큰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신주오령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때문에 거기서 만큼은 절대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아리엘이 손가락으로 팔짱을 끼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지금이라도 죽일까?’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처리하는 게 좋아 보이지만, 부담이 너무 컸다. 글렌이 움직인다면 죽도 밥도 안 되니까.
‘그래. 무리할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의 일과 달리 곧 터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력이다.
아직 그랜드 마스터에도 오르지 못한 라온이 일을 어지를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아리엘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녀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정말이지 귀찮게 하는 놈이야.”
* * *
지그하르트 가주전 알현실.
“이 망할 놈이 또!”
글렌이 보고서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깊은 분노가 일었는지 서류를 쥐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으음….”
보고서를 가지고 온 채드는 얼굴이 붉어지는 글렌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광풍대주님이 또 장난을 치신 모양이로군요.”
로엔은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습니까?”
“딱 한 줄이다. ‘라온 깽판 대성공! 희극제 대실망! 와우!’라고 적혀 있어….”
글렌은 눈을 꾹 내리감으며 손에 쥐고 있던 보고서를 재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특히 느낌표가 열받는군.”
“허허허!”
로엔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놈을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지 궁금해.”
글렌이 한숨을 내쉬며 옥좌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예전처럼 시체로 지낼 때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느냐. 정말이지 극단적인 놈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우측에 놓였던 두 번째 보고서를 펼쳤다. 셰릴이 보낸 진짜 보고서였다.
“역시 다르군.”
글렌은 네 장이 넘는 보고서를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세 번째 장을 펼치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벌의 날갯짓처럼 퍼덕이기 시작했다.
리메르의 보고서를 읽을 때보다 훨씬 격한 떨림이었다.
“빌어먹을….”
글렌의 미간에 두꺼운 주름이 졌다.
“가주님?”
로엔의 눈이 둥그스름해졌다. 글렌이 저 정도로 화를 내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다.
대체 저 안에 무엇이 적혀 있길래 저런 반응을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대, 대체 왜….”
채드 역시 깜짝 놀란 듯 글렌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라온이 결투 대회에서 마스터 최상급 셋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창궁검의 두 번째 초식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글렌이 뼈를 씹는 듯한 거친 숨결로 말을 이어갔다.
“거기서 신주오령의 제자들에게‘너희들은 나의 하늘에 닿을 수 없다.’라는 명언을 했다는군.”
그는 직관을 갔어야 했다고 말하며 옥좌를 내리쳤다. 열 번 넘게 수리한 팔걸이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그 장관을 놓치다니!”
진심으로 분한지 글렌의 손 위로 붉은 뇌전이 요동쳤다.
“어어….”
채드의 입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허허허.”
로엔은 반대로 연한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건 아쉽군요.”
그도 글렌처럼 라온의 활약을 보지 못한 게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망할 오마 놈들 때문에….”
글렌이 이를 갈 때 보고서가 담겨 있던 봉투에서 작은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음?”
로엔이 그 종이를 줍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가, 가주님! 이걸 보십시오!”
그는 펄쩍 뛰어서 단상 위로 올라가 글렌에게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라, 라온?”
글렌이 종이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종이 안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라온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니, 그림이라기보다도 현실의 라온을 그대로 새겨놓은 것 같았다.
“이, 이게 뭐지?”
“뒤에 사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요난 가문의 막내가 만든 아티팩트로 그린 거라는군요.”
로엔이 사진에 적힌 설명을 읽어주었다.
“허어!”
글렌은 한참 동안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옥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주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디를 가시려고….”
“발칸에게 액자를 만들어달라고 할 것이다. 절대 깨지지 않는 액자를.”
그는 사진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단상을 내려갔다.
“아….”
채드가 입술을 파르르 덜었다.
‘발칸에게 액자를?’
발칸은 글렌의 진천검과 라온의 제천검을 만든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장인이었다.
지금 글렌은 대륙장인에게 액자를 만들어달라는 미친 요구를 하려는 것 같았다.
“가주님!”
로엔이 글렌을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좀 말려!’
채드가 로엔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말려달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그의 입에서는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말이 튀어나왔다.
“재료는 오르콘을 사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절대 깨지지 않을 겁니다.”
글렌을 말릴 줄 알았던 로엔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단단한 금속으로 액자를 만들자며 한술 더 뜨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로군.”
글렌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알현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역시.”
채드는 글렌과 로엔의 등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이 가문의 실세는 라온 지그하르트야….’
* * *
라온은 태양이 기지개를 피기 전에 연무장에 나왔다.
어제 훈련이 고됐기에 모두가 자고 있어서 저택 전체가 고요했다.
-흐아아암….
라스가 악어처럼 하품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네놈은 잠도 없느냐?
녀석이 날카롭게 눈을 흘겼다.
-쳐 자기만 해도 피로가 풀리고, 강해질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냐!
‘이 정도면 충분히 잤어.’
나태의 능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그리 많이 자지 않아도 이전보다 능력치 상승효과가 뛰어났다.
피로도 금방 풀리기에 오래 잘 이유가 없었다.
-끄으응….
라스가 허공을 향해 말아쥔 주먹을 흔들었다.
-그 망할 호구 자식! 본왕에게 걸리면 평생 잘 수 없게 만들 것이니라.
녀석은 슬로스를 호구의 마왕이라 칭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음….’
라온이 라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진짜배기 호구의 마왕은 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싸우기 싫어서 참았다.
‘그래도 무조건 좋은 건 아니야. 단점도 있어.’
-단점?
‘그래.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거든.’
나태의 효과 때문인지 자꾸 몸이 늘어지고, 게을러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예전이라면 침대에서 바로 일어났겠지만, 나태가 개방된 이후로 5초는 있다가 눈을 뜨게 되었다.
-오 초? 오오오오오 초?
라스가 얼굴을 들이밀며 턱을 비틀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데! 보통 인간은 그 정도 나태를 받았으면 침대랑 한 몸이 된다고! 본왕의 분노도 견디고 네놈의 정신력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 것이냐!
녀석은 어떻게 마왕의 감정을 이겨낼 수 있냐며 악을 질렀다.
‘글쎄다.’
당연히 불의 고리와 전생에서부터 키워온 영혼의 격 때문이겠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라온이 검술 수련을 위해서 검을 뽑으려고 할 때 숙소 정문으로 작은 인기척이 다가왔다. 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데닝로즈의 것이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그녀가 노크할 때 다가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아, 일어나 계셨군요.”
데닝로즈는 이른 시간에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수련하려던 중이라.”
“어제 그렇게 검사들을 갈구시고. 아니, 수련시켜 놓고 벌써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니까요.”
“아….”
그녀는 수련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놀라운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서요.”
데닝로스가 소매를 잡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근래 오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오마?”
“네. 백혈교와 흑탑이 이곳저곳을 쑤시고 있는데, 난잡하게 이동하고 있어서 움직임을 읽기 쉽지 않다더군요. 남북맹도 새로 물길을 열었다고 하고.”
그녀의 외안에서 이지적인 빛이 차올랐다.
“이번 신주오령의 축제가 그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아요. 축제가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라온 님을 노리는 오마가 많으니까.”
“하긴 성검련을 제외한 네 곳과 문제가 있으니까요.”
백혈교는 교주에게, 흑탑은 부탑주에게 찍혀 있다.
남북맹에선 원로원하고 문제가 생겼으니, 성검련을 제외한 전체와 척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검련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난다면 그쪽이 가장 큰 문제에요. 그 검귀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난 검사들을 추적하니까.”
데닝로즈는 사실 성검련이 가장 위험하다며 손가락을 매만졌다.
“음….”
라온이 꼼지락거리는 데닝로즈의 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긴 하군.’
성검련은 검술을 탐하는 아귀들이다. 창궁검과 직접 만든 검술을 사용하는 자신을 추적해 올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알려주시려고 오신 겁니까?”
“네. 바로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충고해 주신대로 축제가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나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데닝로즈는 라온이 수련하듯 해야 할 일일 뿐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찾아올게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꾸벅이고서 숙소를 떠났다.
라온은 데닝로즈를 배웅해준 후 좌측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서 데닝로즈 이상으로 잘 알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저분 말고 주변에 아무도 없지?’
-이 새벽에 또 누가 있겠느냐….
라스가 미친 건 너희들뿐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터억!
라온이 가볍게 담벼락을 뛰어넘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미처 그림자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체구가 작은 여성이 눈을 꿈벅였다.
“아?”
새벽부터 담벼락에 붙어 있던 건 셰릴이었다. 야행복이 눈에 띄기 때문인지 가벼운 여행복을 입었고, 머리는 검은색으로 염색한 상태였다.
“너 왜….”
“인기척이 느껴져서 나와봤습니다. 벌써 움직이시는 겁니까?”
라온이 기막을 펼치며 셰릴에게 다가갔다.
“네가 움직여서 나와봤어. 어제 새벽까지 애들 훈련 시키고 피곤하지도 않아?”
셰릴은 안 힘드냐고 물어보며 고개를 저었다.
“할 일이니까요.”
데닝로즈에게 했던 말을 반복했다.
“그렇군.”
셰릴은 데닝로즈와 달리 놀라지 않았다.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옅게 웃었다.
“어제 대련을 잘 봤다. 대놓고 까부는 놈들을 패는 모습을 보니, 체증이 확 내려가더구나.”
셰릴은 그렇게 재밌는 구경은 오랜만이었다며 시원한 미소를 그렸다.
“지그하르트를 대표해서 왔으면 그 정도는 해야죠.”
“크으, 역시!”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가주님도 그걸 보셨다면 자랑스러워하셨을 거다.”
“그럴까요?”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글렌은 고작 그 정도로 그리 큰 티를 내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해.”
셰릴은 확실하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음, 저는….”
라온이 글렌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려 할 때 셰릴이 조용히 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의 인상이 가득 찌푸려지고,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몸 왔다!”
리메르다. 어디에 있었는지 술에 잔뜩 취한 채 정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저 망할 놈….”
셰릴이 주먹이 운다는 듯 손을 바르르 떨었다.
라온은 놀고 먹는 리메르와 잠도 못 자면서 광풍대를 지키는 셰릴을 번갈아 살피고 헛웃음을 흘렸다.
‘너무 다르네.’
천검대주는 글렌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 인물이고, 무력은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 있다.
지그하르트 내부에서도 가장 급이 높은 인물이 잠도 못 자면서 한참 밑인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특히 리메르와 친구 같은 관계면서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녀가 더욱 고귀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진심을 담아 셰릴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 갑자기 왜 이래.”
셰릴은 인사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사실….”
그녀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올릴 때 눈앞으로 큼지막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성 <질투>의 능력이 개방됩니다.]
-아, 안 돼! 또 망할 호구가!
졸린 듯 눈을 껌벅이던 라스가 악을 질렀다.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93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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