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0화
하늘을 뒤덮었던 강기의 해일이 조각나고, 달빛이 차오른 밤이 내려온다. 휘광처럼 이지러지는 빛무리가 결투의 끝을 알렸다.
라온이 제천검을 대지로 기울이는 순간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제롬과 메이슨, 펜들턴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오러와 체력은 남아 있지만, 투지 자체가 사라진 듯 세 사람의 눈동자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라온이 흑룡포에 맺힌 먼지를 털어내고, 메이슨 앞으로 다가갔다.
“바, 방금 그 검술은 대체 뭐야….”
메이슨이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올려보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어떻게 마스터가 그런 무학을 펼칠 수 있는 거냐고!”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하늘에서 눈을 내리지 못했다. 희극제를 닮은 듯했던 무던한 표정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빌어먹을….”
메이슨은 싸울 의지가 사라진 것처럼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아, 더럽게 쪽팔리네. 이게 무슨 꼴이야!”
제롬은 먼지 한 톨조차 묻지 않은 라온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할 싸움이었는데, 망할 사부 때문에!”
그는 장창을 내던지고 뭉개진 대련장에 드러누웠다. 더는 싸울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 마음대로 하라고 중얼거렸다.
“으으….”
펜들턴은 허무한 패배가 분한 것처럼 주먹으로 땅을 내리눌렀다.
이 결투에 큰 기대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승부욕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아직 패배를 인정한 사람은 없군.”
라온이 메이슨, 제롬, 펜들턴을 차례로 굽어보며 제천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 그게 무슨….”
메이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황 자체가 끝났는데, 무슨 패배를 말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미안한데, 내가 좀 무식해서….”
귀를 후비며 제천검을 검집채 들어서 어깨에 걸쳤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거지.”
“자, 잠깐 이건 그냥 끝….”
“처음에 싸울 때 말했잖아.”
라온이 메이슨의 말을 끊으며 선선하게 웃었다. 미소와 달리 어깨 위로는 시뻘건 열기가 피어올랐다.
“내가 멈추는 걸 모른다고.”
“아….”
“뭐?”
세 사람도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알아차린 듯 안색이 노랗게 질려갔다.
“져, 졌습….”
메이슨이 패배를 외치기 전에 어깨에 걸친 제천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뻐어어어억!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얻어맞은 메이슨이 눈을 까뒤집은 채 대련장 바닥에 파묻혔다. 바닥에서 삐져나온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자, 다음.”
“이 미친놈! 항복한 사람을 패는 게 어디 있느냐!”
제롬이 바닥에 던졌던 창을 도로 주우려고 손을 뻗을 때 발로 그 창을 밟아버렸다.
“크으윽!”
창과 땅 사이에 손가락이 끼인 제롬이 신음을 흘렸다.
“못 들었어. 그리고 대련에서 진 사람이 이렇게 멀쩡하면 되겠어?”
“안 멀쩡해! 네놈의 잘난 검술 때문에 내상을 입었단 말이다!”
제롬이 고개를 쳐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티가 안 나.”
“뭐?”
“내가 이겼다는 티가 안 나잖아. 그리고 쟤는 더 심하게 얻어맞았다고.”
라온이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루난을 가리켰다.
“처, 청월검을 찌른 건 우리가 아니라….”
“그 밥에 그 나물이지. 거기다….”
깽판을 치려면 제대로 쳐야하니까.
글렌이 내린 임무는 명성을 얻고 와라가 아니라, ‘깽판을 치고 와라.’였다. 용의 머리와 몸통은 그렸으니, 마지막으로 눈에 점을 찍을 때였다.
“이 또라이 새끼!”
제롬이 악을 지르며 일어서려 했지만, 손가락이 끼어서 팔과 어깨만 버둥거렸다.
-그거 칭찬이니라.
라스가 미친놈을 또라이라 부르는 건 그저 호칭일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이지.’
라온이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며 제롬의 손을 가볍게 밀어내고, 그의 턱을 올려 쳤다.
빠아아아악!
큼지막한 호두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터지고, 제롬이 피를 무지개처럼 뿌리며 꼬꾸라졌다.
“그럼 마지막….”
라온의 시선이 느릿하게 펜들턴에게 돌아갔다.
“죽여라.”
펜들턴은 아직 기가 죽지 않은 눈빛을 들어 올렸다.
“마음에 드는 눈빛이네.”
고개를 끄덕이고서 등을 돌렸다.
“어딜 가는 것이냐!”
펜들턴이 이를 갈며 벌떡 일어섰다.
“왜 나만 놔두는 거냐. 내가 여자라고….”
“안 놔둬.”
라온이 담담하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네가 키가 작아서 타점이 별로였거든.”
‘이제 좀 괜찮네.’라고 중얼거리며 제천검을 후려쳤다.
뻐어어어억!
제천검의 검집에 이마를 얻어맞은 펜들턴의 머리가 크게 출렁이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졌으면 맞아야지. 처음부터 봐줄 생각 없었어.”
라온은 제천검을 다시 허리에 패용한 후 망가진 대련장의 중심에 섰다.
“다음.”
신주오령의 제자 넷을 짓밟고도 다음을 외치는 그의 패기에 연무장에 밤과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크으, 다음을 저렇게 외쳤어야 했는데!”
크레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흐트러진 모습도 존잘! 패기로운 모습도 존잘! 이기는 모습도….”
엔시아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진기의 버튼을 연신 누르며 침을 질질 흘렸다.
“그러네요. 정말 존… 음.”
데닝로즈가 본인도 모르게 같이 존잘을 외치려다가 조용히 입을 막았다.
“저건 진짜 괴물이야….”
“오만한데, 그게 너무 잘 어울려.”
“무력만이 아니라, 성격까지 완성된 건가….”
“제대로 끝을 맺는 것도 시원시원하군.”
“난 그 마지막 검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하늘을 베는 것 같았다고.”
관객들은 라온이 보여준 무력과 패기에 질린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올라올 사람은 없겠지?”
“마스터 최상급 셋을 한 번에 깨부순 괴물한테 누가 도전하겠어. 그랜드 마스터가 아닌 이상 의미가 없지.”
“결국 우승자는 라온 지그하르트네. 명성이 또 한 번 오르겠어.”
“그것만이 아니지. 라바시리의 심장이랑 그와 비슷한 수준의 냉기 영약까지 얻잖아. 돈 주고도 못 살 보물들이라고!”
모두가 더는 도전자가 없을 거라고 여기며 우승자를 축하할 준비를 했다.
라온이 관객석과 귀빈석을 둘러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다음 아무도 없습니까?”
도전자가 없냐고 외칠 때 귀빈석의 중심에서 검은 로브를 걸친 사내가 올라왔다.
넉넉한 로브가 찢어질 정도로 거대한 체구를 가진 마탑의 유리아였다.
라온이 묵직한 걸음으로 올라오는 유리아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이건 예상외인데….’
유리아는 그랜드 마스터 급에 오르지 못했고, 이런 좁은 공간에서의 일대일은 마법사에게 불리했기에 그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군.’
육황 결투 대련에서도 마탑과는 싸워보지 못했기에 상대의 수법을 알아볼 좋은 기회였다.
라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리아에게 다가갔다.
“전 준비되었으니, 언제라도 들어오십시오.”
도전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 유리아가 로브에서 손을 뻗어냈다.
‘기습?’
생사결도 아닌 결투 대회에서 기습을 할 줄은 몰랐기에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데, 그의 손에서 나온 건 무기가 아니라 두꺼운 종이 한 장이었다.
“싸….”
“싸?”
“싸인 좀요.”
“…….”
라온이 어색한 자세를 풀며 눈을 꿈벅였다.
“패, 팬입니다!”
유리아는 그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몸을 배배 꼬며 고개를 숙였다.
“팬이요?”
“예! 설화검협이라는 이명을 가지셨을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회의장에서 보았을 때는 긴장 되어서 말을 못 했다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
회의장에서 나왔을 때 유리아가 노려보던 게 떠올랐다. 이제보니 표정이 굳어 있던 건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긴장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나중에 올라오지 왜 지금….”
“죄, 죄송합니다! 지금 너무 감격해서….”
유리아는 마스터 셋을 일검에 베는 것을 보고 감동해서 자신도 모르게 올라왔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외모와 달리 성격은 그 이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달칵!
사진기 소리가 다시 한번 고요해진 연무장을 깨웠다.
“와!”
엔시아가 사진기 위로 고개를 들며 유리아에게 손짓했다.
“존잘 라온 님 아시는구나!”
* * *
리메르가 헛웃음을 흘리면서 뒤편에 앉아 있는 작은 체구의 여성에게 오러 메시지를 보냈다.
[봤냐?]
[봤다.]
챙이 긴 모자를 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셰릴이 답을 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는 작은 책자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너 뭐하냐?]
[가주님께 올릴 보고서를 쓰는 중이다.]
[보고서? 그건 내가 보내는 거잖아.]
[내 건 오로지 라온만 관련된 거니까. 이건 라온 복음에 관련된 자료다.]
그녀는 라온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허….”
리메르가 뒤를 힐끔 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꿀맛 나는 대사가 나왔어. ‘너희들은 나의 하늘에 닿지 못한다.’라니, 광오해.]
셰릴이 조금 전 보았던 장관을 음미하듯이 라온의 대사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가주님은 좋아하시겠지. 아마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보지 못한 걸 평생 후회하실지도.]
그녀는 글렌의 일그러진 표정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라온 복음을 아직도 만들고 있어?]
리메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4권째다.]
[4권? 하여튼 팔불출 삼총사는 못 말린다니까.]
그는 고개를 젓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긴 나도 남 말할 건 아니지.]
그 말에 셰릴이 손을 멈추고, 리메르의 등을 바라보았다.
[라온 녀석은 이 대륙의 정상에 홀로 설 거야. 그게 보여.]
리메르는 도박에서 돈을 딸 때보다 더 희열이 차오른 미소를 지으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그래. 라온은 지그하르트의 이름으로도 거두기 힘든 녀석이지.]
[사실 다 떠나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재신이라는 거지. 오랜만에 10배 이상 터졌어! 난 다시 부자라고!]
그는 씩 웃으며 금화가 담긴 포댓자루를 자식처럼 쓰다듬었다.
[어차피 네가 쓸 돈도 아니면서.]
[내가 쓰지. 누가 써!]
리메르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중얼거리며 도박장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자, 재신 라온에게 돈을 건 사람들 빨리 오세요!”
셰릴은 리메르의 등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멍청이.”
* * *
“크으으으!”
귀살창이 라온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저놈 끝까지 예술이구만! 무력, 정신력, 성격 다 마음에 들어! 저런 놈이 마창회에 들어왔어야 했는데!”
그는 제자가 얻어맞아 기절했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박수만 보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악검후는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한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백검룡에게 도전할 사람은 없을 거다. 있어도 의미 없고.”
라온은 마스터 최상급 셋을 꺾은 게 다가 아니라,
이 연무장에 있는 다른 무인들의 마음까지 꺾어버렸다. 누구도 저 대련장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요….”
희극제가 하얗게 질린 입술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방법이 없군요.”
악검후의 말이 맞았다. 유리아가 사인을 받고 내려갔음에도 대련장에 올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결투 대회는 라온이 우승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으음….”
심판이 손을 바르르 떨면서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지, 지금부터 다섯을 세겠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다면 오늘 대회의 우승자가 라온 지그하르트 님으로 결정됩니다!”
그는 위로 들어 올린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외쳤다.
“하나, 둘, 셋, 넷….”
귀빈석에 앉은 무인들은 고개를 숙였고, 관중들은 우승자를 축하하기 위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다섯!”
“우와아아아아아아!”
“라온! 라온! 라온!”
“백검룡! 백검룡! 백검룡!”
“지그하르트가 우승했다! 역시 육황이야!”
심판이 다섯을 외치자마자, 관객들이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질렀다.
“후우….”
희극제가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아무도 없군.’
올라와도 의미 없었겠지만.
그랜드 마스터가 아닌 이상 라온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다 끝났다.
‘손해가 막심해.’
신주오령이 얻어야 할 명성에 최상급 영약까지 뺏기게 생겼다. 특히 라온에게 큰 도움이 될 영약이었기에 속이 쓰렸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온은 사람들의 환호에 답을 한 후 단상 위를 올려보았다. 빨리 내려와서 시상식을 하라는 것 같았다.
“후우….”
“희극제.”
희극제가 한숨을 내쉬며 단상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조용히 있던 사검마가 다가왔다.
“저놈을 이대로 놔둘 건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내게 맡겨라.”
사검마가 기막을 치며 입매를 비틀었다.
“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만, 라온 지그하르트는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이용해서 우리를 조롱해왔다. 지금이라면 그걸 역이용할 수 있어.”
“…자세히 말씀해보세요.”
희극제가 사검마를 보지 않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무학 중에 상대의 심장에 사기를 박아두는 수법이 있다. 사기는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여 몸의 주인 모르게 성장한 후 심장을 자극하여 숨통을 끊어버리지.”
사검마가 음습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한 수 가르침을 내린다고 하면서 그 수법을 사용할 테니, 분위기만 맞춰라.”
“정말 할 수 있나요?”
“물론이다. 저놈이 지그하르트에 돌아간 이후에 발동시킬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음….”
“그냥 분위기만 맞춰.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희극제는 자신감으로 번들거리는 사극제의 눈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해서 손해는 안 나.’
사검마가 무학으로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지금 흥분한 라온이나 관중들을 이용한다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 거절하면 겁쟁이가 될 테니까.’
가르침을 내려준다고 하는데 싫다고 한다면 이 좋은 분위기가 깨진다.
큰 명성을 얻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이용할 줄 아는 라온이기에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알겠어요.”
희극제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축하드립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라온의 앞에 섰다.
“처음에 참여할 때는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지만, 결국 실력으로 증명하셨네요.”
“감사합니다. 딱히 모양새도 이상하지는 않았죠. 당연한 권리였으니까.”
라온이 옅게 웃으며 인사에 답을 해주었다.
‘이놈 끝까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라온에게 이가 갈렸지만 숨을 고르며 참았다.
“그럼 시상식 준비를….”
“그냥 여기서 하죠.”
“예?”
“영광스러운 자리지 않습니까.”
그는 신주오령의 제자 넷을 꺾은 자리가 곧 시상대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겠네요.”
희극제가 사검마를 힐끔 본 후 아공간을 열었다.
그녀가 라바시리의 심장이 들어 있는 상자와 냉기의 영약이 들어 있는 상자를 꺼냈을 때 단상 위에서 사검마가 뛰어내렸다.
후우우우웅!
허공을 계단처럼 밟고 내려오는 신위에 관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승을 축하하네. 기념으로 제안 하나 해도 되겠는가?”
그는 라온과 사이가 좋은 것처럼 인자한 미소를 그리며 희극제의 옆에 섰다.
“제안이라고 한다면?”
“자네가 우리의 멍청한 제자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지 않나. 주제를 모르고 건방을 떨던 녀석들이니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걸세.”
사검마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어서 고맙다며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내가 실례를 한 부분도 있어서 자네에게 약간의 가르침을 주고 싶네. 그랜드 마스터를 넘어설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게야.”
그는 얻은 것만큼 보답을 해주고 싶다며 부드럽게 웃었다.
“우오오오오오!”
“사검마가 가르침을 내린다고?”
“영약 보다 좋은 기회잖아!”
“그랜드 마스터를 자신하는 거 보면 진심인가 본데?”
“좋은 구경을 하겠어!”
사검마의 말을 들은 관객들은 역대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를 그리는 듯 환호를 질렀다. 모두의 눈동자에 기대가 차올랐다.
“이 자리를 지켜준 관객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겠지.”
사검마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지 않냐며 픽 웃었다. 도발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준비하게나.”
그가 자세를 잡으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라온은 관객들을 차분히 살펴본 후 고개를 저었다.
“안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
사검마가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내게 배워서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도 있는….”
“그냥 안 할래요.”
라온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패기와 달리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거절의 말을 뱉었다.
“거, 겁이라도 먹은 겐가? 그저 한수 가르침을 내린다는 건데….”
“됐고. 상품이나 주세요.”
라온은 너랑 손을 나눌 생각 없으니까 상품이나 달라며 희극제에게 손을 뻗었다.
“자, 잠깐! 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네. 자네가 거절하면 이들 앞에서 겁쟁이가 될 거네!”
라온은 당황한 사검마를 보며 조용히 입을 오물거렸다.
응. 안 해.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90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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