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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89화 (489/653)

제489화

“리크리….”

사검마가 거품을 물고 기절한 리크리를 보며 눈동자를 부르르 떨었다.

힘겹게 키운 제자가 머리를 가누지도 못한 채 입에 흙을 처박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라온이 리크리를 이길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얼마나 버티느냐가 문제였는데, 놈은 고작 네 번의 공격으로 결투를 끝내버렸다. 압도적인 차이였다.

“이건 말이 안 돼!”

라온이 의념을 두른 검격을 사용했다면 지금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일합에 끝났다고 해도 인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의념은 조금도 끌어내지 않고, 오직 검술과 기세만으로 리크리를 압도했다.

급 자체가 달랐다. 같은 마스터 최상급끼리 어떻게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으음….”

악검후도 라온의 무위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문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짓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저거 진짜 물건이네.”

귀살창이 헛웃음을 흘리며 의자에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턱을 매만지는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의념 없이 같은 수준의 무인을 사합에 끝냈어. 이런 게 가능한 놈은 대륙 전체를 뒤져도 없을 거야.”

그는 지금까지 보았던 천재들을 모조리 짓밟아버리는 폭력적인 재능이라고 중얼거렸다.

“으음….”

사검마가 입매를 비틀었다. 라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속이 끓어올랐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저놈 정말 21살이 맞는 건가?’

그랜드 마스터의 벽에 닿지도 못한 놈이 벽에 닿은 리크리를 사합으로 제압했다는 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의문을 만드는 놈이었다.

“말려야 합니다.”

희극제가 세 명의 수장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지만, 만약 저희 쪽이 진다면 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거예요.”

이 결투 대련은 중립 세력과 육황에게 신주오령의 무력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다.

당연히 신주오령의 제자들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라온이 명성을 챙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신주오령의 이름에 먹칠까지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멈추는데?”

귀살창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맛을 다셨다.

“라온은 미리 선언했던 대로 리크리를 가볍게 발라버리고 실력을 증명했잖아. 여기서 빼면 난리가 날걸.”

그가 두꺼운 손가락을 들어 관객석을 가리켰다.

“우와아아아아아!”

“라온! 라온! 라온! 라온!”

“나와라! 나와라! 나와라!”

“삼 대 일! 삼 대 일! 삼 대 일!”

관객들은 신주오령의 제자들과 라온의 결투를 원하는 듯 목이 터지도록 삼 대 일을 외쳐댔다.

“으음….”

희극제가 아래를 내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천기를 보신다는 우리 희극제 님도 이런 상황은 예측이 안 됐나 봐?”

귀살창은 잘 걸렸다는 듯 히죽 웃었다.

“이미 늦었다.”

악검후가 다시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여기서 물린다면 지는 것보다 더한 불명예를 안게 될 거다.”

“그게 맞지. 신주오령 앞에 겁쟁이라는 이명이 붙을지도 몰라.”

귀살창이 악검후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우리 애들을 믿어보자고.”

그는 아무리 의념의 무학을 쓴다고 해도 마스터 최상급 셋을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 손짓을 본 마창회의 무인 하나가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뭘 보여주려나.”

귀살창은 대련장으로 올라간 제자가 아니라, 라온을 바라보며 보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

“크윽.”

악검후도 말없이 라온을 지켜보았고, 사검마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듯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후우….”

희극제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라온을 보며 어금니를 지그시 씹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대체 언제까지 깽판을 칠 셈이냐!

* * *

라온이 대련장에 가장 먼저 올라온 남자를 보았다.

어깨를 훤히 드러내는 가죽 조끼에 은색 갑주를 덧대어 입었다. 왼손에 들고 있는 장창만 보아도 그가 어느 소속인지 알 수 있었다.

“마창회의 제롬이다. 실력은 인정하겠지만, 정말 자신 있나?”

제롬은 이름을 밝히며 장창으로 대련장을 내리찍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어투와 표정이었다.

제롬 다음으로 올라오는 건 연보랏빛 무복을 입은 키가 큰 여성이다. 피부는 연하게 그을려 있었지만, 눈동자는 설원을 보는 듯 맑았다.

“무검각 펜들턴.”

짧게 이름과 소속을 밝힌 펜들턴이 허리춤에 매달린 검병을 잡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결투 전에 정신을 가다듬는 것 같았다.

저벅.

마지막으로 대련장에 올라온 건 젊은 남성이다.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백의를 입었고, 흑색 장발을 곱게 묶어 뒤로 넘겼다. 우뚝 솟은 콧날과 고아한 눈빛만 보아도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갔다.

“백경의 메이슨이라고 합니다. 백검룡과 겨루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해 왔다. 희극제의 제자다운 모습이었다.

라온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세 사람의 무위를 파악했다.

‘전부 마스터 최상급이로군.’

데닝로즈가 주었던 정보대로 눈앞에 있는 이들은 전부 마스터 최상급이었다.

저 나이에 저 경지라면 각 세력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이 분명했다.

‘저 셋이 여기서 모조리 깨진다면 볼만하겠지.’

희극제가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이 확실하기에 꼭 이루고 싶었다.

“음….”

심판이 어색한 걸음으로 대련장으로 올라왔다. 처음에 비해 안색이 창백해졌다.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을 보니, 이 결투 대회가 빨리 좀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저, 정말 하실 겁니까?”

그가 라온 앞으로 다가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물론입니다.”

라온은 당연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세 분은….”

“위에서 까라잖아.”

“약속했으니까.”

“받아들이겠습니다.”

제롬과 펜들턴, 메이슨이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지그하르트의 라온 대 마창회의 제롬, 백경의 메이슨, 무검각의 펜들턴의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가르고서 대련장을 뛰어 내려갔다.

“내가 성질이 좀 급해. 그러니까….”

제롬이 장창을 휘돌려 바람을 일으킨 후 단숨에 땅을 박찼다.

“너희들이 나한테 맞춰!”

그는 거센 돌진과 함께 장창을 내질러왔다. 창대가 유연한지 창극의 흔들림이 격했다. 창날이 십수 개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답은 하나.’

불의 고리가 공명하며 육체와 오러의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시야를 가득 채웠던 창날의 진동이 지워지며 본래의 모습이 비쳤다.

화아아아악!

라온의 오른손이 벼락이 되어 뻗어나갔다. 손아귀에 잡힌 제천검에서 적염이 휘몰아쳤다. 조금 전에 꺾었던 리크리의 쾌검식을 이용한 만화공 회천이었다.

캬앙!

열기를 두른 제천검이 가슴으로 짓쳐 든 창날을 쳐내고, 제롬을 향해 나아갔다.

“큭!”

제롬이 빠르게 창을 돌린다. 창대가 길목을 막으며 바위처럼 두터운 창강을 일으켰다.

‘예상대로의 반격.’

라온이 제비가 비상하듯 허리를 낮춘 채 태화보를 밟았다. 창대의 범위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린 후 제롬의 공간을 파고들었다.

후우우웅!

그대로 제천검을 내리치려고 할 때 양옆에서 강대한 파동이 일어났다.

“멈춰.”

“거기까지입니다!”

우측에서 펜들턴이 꺼뭇하게 물든 손으로 발검술을 펼쳐냈고, 좌측에서는 메이슨이 권강을 내질러왔다.

기습보다는 물러나라는 시위의 의미의 담긴 공격이었다.

“그래. 삼 대 일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다만….”

라온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멈추는 법을 몰라.”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리며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히 물러설 거라 생각한 듯 창을 멈춘 제롬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푸카아악!

제롬의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허리까지 이어지는 긴 검상이 돋아나며 시뻘건 핏물을 뿜어졌다.

‘이젠 공격을 막을 차례로군.’

펜들턴의 검과 메이슨의 주먹이 등을 향해 쇄도해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도 방어하기에는 늦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게 있지.

라온이 차게 웃으며 흑룡포의 비늘 위로 글래시아의 냉기를 응집시켰다. 서리가 피어나는 원형의 방패가 흑룡포의 비늘을 뒤덮었다.

본래라면 만화공을 운용하고 있어서 불가능했겠지만, 바람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지금은 두 기운을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었다.

“음!”

“저, 저건….”

펜들턴과 메이슨은 서리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둥그스름한 빙벽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눈치가 빠르네.’

루난의 서리 방패와 같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지만, 공격을 멈추기엔 이미 늦었다.

쩌저저저저적!

두 사람의 강기에 얻어맞은 빙벽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며 충격을 흡수했다.

그와 동시에 뜯어져 나간 조각들이 서리의 비수가 되어 펜들턴과 메이슨을 향해 쇄도했다.

“크윽!”

“이….”

메이슨은 권강을 연달아 내지르고, 펜들턴은 검막을 쳐서 서리의 비수들을 갈라버렸다.

라온은 두 사람이 방어에 치중하고 있을 때 제롬을 살폈다.

살벌하게 뿜어진 핏물과 달리 검흔은 그리 깊지 않았다. 검을 맞는 순간에 몸을 뒤로 빼서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인 것 같았다.

‘아예 바보는 아니라는 건가.’

검의 투로를 파악하고 물러난 것도, 빙벽을 보자마자 루난의 기예를 떠올린 것을 보면 셋 모두 마스터 최상급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실력이었다.

‘그래도….’

달라질 건 없지만.

라온이 오른발을 비틀었다. 발목 아래에 있는 마나회로와 허벅지의 대퇴근에 스며든 만화공의 열기를 폭발시켰다.

터어엉!

그저 속도만을 추구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대련장 끝까지 물러선 제롬에게 돌진했다.

“이익!”

제롬은 그 짧은 사이에 정비를 마치고, 거리를 둔 채 장창을 내질렀다.

푸른 강기가 휘감긴 창날이 거대한 망치 같은 모습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속도, 위력, 날카로움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는 뛰어난 공세였지만, 또한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치이이잉!

제천검으로 파도를 닮은 선을 그렸다. 설풍검결의 운하지봉. 태산처럼 쏟아지던 창강이 뚝 흘러내려 바닥을 때렸다.

허공을 디디던 왼발로 창을 내리밟고, 제롬의 공간으로 들어가려 할 때 우측에서 검은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후우우우웅!

서리의 조각을 모조리 쳐내고 추적해온 펜들턴이다. 그녀가 붉은 눈을 빛내며 검을 내질렀다.

빠른 건 당연했고, 공간을 가를 듯한 예리함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검사라기보다 암살자의 살검 같았다.

‘이건 막아야겠군.’

조금 전처럼 서리의 벽을 만들기엔 늦었다. 몸에 바람구멍이 날 것이다.

제롬을 베는 것을 포기하고, 어깨를 돌리며 염주벽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

제천검의 투로를 타고 오른 불꽃의 방패가 펜들턴의 검격을 차단하고, 제롬의 창대까지 밀어냈다.

하지만 이 대련장에 있는 사람은 둘이 아니다. 뒤편에서 거대한 오러의 파동이 느껴졌다.

메이슨이 처음에 선 자리에서 주먹을 내질렀다. 황금빛 강기가 대련장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쇄도해왔다.

‘특이하군.’

평범한 무학이 아니다. 뻗어오는 방식은 권격이되, 범위는 장법처럼 넓으며, 검격보다 빠르다. 이미 닿은 염주벽으로 막을 수가 없었다.

라온이 등을 돌리며 제천검을 뒤로 젖혔다. 왼발과 함께 뻗어나가는 칼날 위로 화룡의 숨결을 풀어냈다.

콰아아아아아!

염룡결의 불꽃이 메이슨이 내지른 황금빛 권격과 격돌하며 강맹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다리에 무게를 실어서 버티고 있을 때 좌측에서 제롬의 창날이 파고들어 왔다.

창대와 함께 흔들리는 창날이 송곳처럼 길어지며 강기의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제롬 역시 본인의 절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재밌군.’

라온이 흑룡포의 밑단을 치며 제천검으로 하늘을 찔렀다. 검날을 질주한 냉기가 둥근 막을 일으키며 제롬의 창강을 모조리 갈라냈다.

검막이 사라지자마자, 펜들턴이 하단을 노리고 검을 그어온다. 어둠에 휩싸인 검에서 오싹한 예기가 드러난다.

폭발하듯 솟구치는 펜들턴의 검을 향해 광아검을 내리쳤다.

쿠구구구구!

강기가 연달아 터지며 손아귀에 아릿한 통증이 일었다. 만화공을 두른 제천검이 한순간이지만 밀려날 정도였다.

‘중첩인가?’

펜들턴은 칼날을 휘감은 검은 오러에 강기를 중첩해서 덤벼든 것 같았다.

라온이 뒤로 물러나며 가는 미소를 지었다.

‘배울 게 많아서 좋군.’

펜들턴의 중첩 검강, 메이슨의 원거리 권격 그리고 제롬의 변화무쌍한 창법까지. 하나 같이 배울 가치가 있는 무학들이었다.

‘모든 게 공부라고 하셨지.’

글렌과 렉타르 두 사람은 만검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겪고, 느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들의 말대로 제롬, 메이슨, 펜들턴의 절기는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조금만 더 저들의 무학을 마주한다면 새로운 창궁검의 초식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웃는다고?”

“…….”

“그 미소를 지워드리죠.”

제롬이 인상을 구겼고, 펜들턴이 입술을 깨물었다. 메이슨 역시 화가 돋은 듯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쿠구구구!

라온은 각자의 절기를 펼치며 쇄도해오는 세 사람을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여기가 내 식당이니까.

-어디? 어디야!

* * *

콰아아아앙!

메이슨이 권강을 가볍게 갈라버리는 라온을 보고서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이상해….’

싸우면 싸울수록 권격이 먹혀들질 않는다.

결투가 길어질수록 상대의 무학에 익숙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라온의 경우는 그게 심했다.

얼마 싸우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무학을 모조리 파악한 것 같았다.

우우우우웅!

메이슨이 숨을 참으며 운천신권을 내질렀다. 권강이면서도 검기보다 빠르고, 장법처럼 넓은 범위를 지워버리는 소운권의 절기였다.

후우우웅!

라온은 검날이 아니라, 검면을 휘둘러 강기를 일으켰다. 그의 검에서 폭발하듯 치솟은 강기가 운천신권과 격돌했다.

쿠와아아아아앙!

붉게 타오르는 강기가 운천신권을 지워버리고, 대련장 바닥을 폭삭 주저앉혔다. 어마어마한 위력.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지, 지금 저자가 뻗어낸 강기는….’

운천신권과 비슷했어.

라온의 장거리 참격은 분명 모자람이 있었건만, 조금 전부터 운천신권의 장점을 따온 것처럼 빠르면서도 범위까지 넓어졌다.

믿기 힘들지만, 그는 이 전투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저놈 대체 뭐야!”

“흑선검이….”

제롬과 펜들턴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온은 제롬을 상대할 때는 폭풍 같은 오러가 감긴 환검을 사용했고, 펜들턴과 겨룰 때는 강기를 중첩시키며 정면에서 부딪쳤다.

‘설마 저 미친놈이?’

라온은 자신을 포함한 3인의 무학을 같은 속성으로 깨고 있는 것 같았다.

빠드드득!

메이슨이 거칠게 이를 갈았다. 운천신권을 펼쳐서 라온의 앞에 있던 대련장 바닥을 부쉈다.

후우우웅!

연기로 그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이용하여 제롬과 펜들턴의 옆으로 물러났다.

“모두 알고 계시겠죠? 이대로 가면 필패입니다.”

“젠장….”

“…….”

제롬과 펜들턴은 반박하지 못했다. 분한 듯 라온이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방법은 딱 하나. 저자가 먼지 속에 갇혀 있는 지금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 단번에 끝을 내야 합니다.”

“비밀을 탈탈 털라는 건가.”

제롬이 입술을 깨물었다.

“삼 대 일로 졌다는 불명예를 쌓고 싶다면 숨기셔도 됩니다.”

“난 하겠어.”

펜들턴이 검을 고쳐 잡았다.

“지금도 처참하지만, 진다면 더 추해지니까.”

“맞습니다. 신주오령의 명예를 걸고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왜 저딴 놈한테 걸려서!”

메이슨이 고개를 끄덕이고, 제롬이 욕을 내뱉으며 창대를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라온이 모래 먼지를 걷고 나온 순간 세 사람이 동시에 대련장을 박찼다.

제롬이 하늘을 찍어 누르듯 창대를 내리쳤다. 창날에 휘감긴 강기가 다섯 줄기의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메이슨은 주먹이 네 배 이상 크게 보일 정도로 권강을 응축했다.

그의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대련장 전체를 뒤엎을 크기의 웅대한 권강이 뻗어 나왔다.

펜들턴은 칼날이 부러질 정도로 강기를 중첩 시킨 채 구붓하게 검을 그어 내렸다. 검게 물든 초승달이 라온이 선 공간을 갈라냈다.

세 사람의 절기가 한 호흡에 펼쳐지며 대련장 위로 시꺼먼 그림자가 졌다. 강기로 이루어진 해일 그 자체였다.

“결말을 내기에 좋은 때로군.”

라온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우악스러운 기운들을 앞에 둔 채 연한 미소를 그렸다.

‘빼낼 건 다 빼냈으니까.’

결투를 치르면서 저 셋의 절기에 담긴 묘리를 모두 익혔다. 새로운 영감이 자리를 잡고, 새로운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싹이 그리는 이미지는 글렌이다.

에덴의 지부에서 보았던 글렌의 등. 백혈교주와 타천을 일검으로 몰아붙인 절대자의 검이 떠올랐다.

그 때의 글렌처럼 차분히 나아갔다. 제천검을 좌측으로 젖히며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끌어냈다.

청아한 바람을 타고 오른 열기와 냉기가 제천검을 휘감으며 장엄한 서광을 일으켰다.

‘내 하늘은 그분.’

글렌 지그하르트의 일검을 그리며 제천검을 그었다.

“너희들은 나의 하늘에 닿을 수 없다.”

창궁검 이초식 창천불선.

제천검을 따라 흐르는 상서로운 빛무리가 하늘을 가득 채운 강기의 해일을 갈랐다.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89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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