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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88화 (488/653)

제488화

-말 한번 잘했느니라!

라스가 라온의 소매를 부여잡을 채 악을 질렀다.

-저놈부터 조져라! 우리 아이스크림 소녀를 아프게 한 놈은 죽여서 시원치 않아!

녀석은 루난을 기절시킨 리크리부터 그 일을 지시한 놈들까지 모조리 얼려버리라고 말하며 이를 갈았다.

다만 라스와 달리 수많은 사람이 가득 찬 연무장은 도서관이 된 듯 고요했다.

“아….”

“바,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혼자서 네 명을 상대하겠다고?”

“그게 다가 아니야. 지금 지목된 사람들 전부 마스터 최상급이라고!

“그것도 신주오령의 제자들이지….”

“그랜드 마스터나 가능한 일 아니야?”

“허, 허세를 부린 거겠지.”

관객들이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결투에 참여하기 위해서 허세를 부린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눈빛은 진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 진심인 거 같은데?”

“그럼 정말로 사 대 일을 하겠다고? 저 괴물들이랑?”

“아무리 검룡의 칭호를 받았다고 해도 이건 좀 무리 같은데….”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어서 자신감이 과한 것 같군.”

사람들은 아무리 라온이라고 해도 너무 과한 자만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후우….”

희극제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라온 님이 지목한 무인들은 전부 마스터 최상급입니다. 계기만 있다면 바로 벽을 깨고 그랜드 마스터에 오를 수 있는 인재들이죠.”

그녀는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조금 전에 하실 말씀은 실언으로 받아들일 테니, 물러….”

“아뇨.”

라온이 희극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실언이 아닙니다.”

아직도 당황하고 있는 관객들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제가 두려워서 참가 자격에 제한을 거셨으니, 저도 그냥 올라올 수는 없죠. 제 나름의 배려입니다. 부담 없이 들어오십시오.”

아직 대련장에 올라오지 않은 세 명의 무인들에게 차례로 손짓을 보냈다.

‘데닝로즈 님의 정보대로군.’

저들의 얼굴과 이름은 데닝로즈 덕분에 알게 되었다.

본래도 꽤 유명한 무인들이지만, 신주오령은 오늘 이 결투 대회를 통해서 저들의 명성을 대륙 전체로 퍼뜨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저들 넷을 한 번에 꺾어버린다면 신주오령의 이름이 날아오르기 전에 날개를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깽판을 위해서는 물러날 수 없었다.

“…….”

“저 새끼가….”

검을 쥔 여인은 잔잔히 눈을 내리감았고, 창을 든 무인은 불같이 화를 냈다. 신주오령의 제자들답게 성격도 비슷한 것 같았다.

“라온!”

대련장 아래에서 버렌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놀랐는지, 그의 눈동자에 당황이 비쳤다.

“야이 미친놈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험한 길을 골라가시는 거예요!”

“저 인간 진짜 머리에 칼 맞은 거 아니야?”

버렌만이 아니라, 도리안과 크레인도 팔짝 뛰었다. 숫제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 지금이라도 그만두세요!”

도리안이 불안한 듯 배 주머니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놀라운 활약을 많이 보았어도, 마스터 최상급 넷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주님! 안 말리고 뭐 하시는….”

그가 뒤를 돌아보다가 우뚝 멈췄다.

“자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전개가 너무 빨라서 돈을 못 거셨죠? 바로 지금이 인생역전의 기회입니다!”

리메르가 어느새 판을 열고 사람들의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라온에게 돈을 걸 사람들은 오른쪽, 신주오령의 무인들에게 돈을 걸 사람은 왼쪽으로! 빨리 빨리!”

“신주오령에 금화 열 개!”

“난 서른 개!”

“나는 금화 오십 개에 이 갑옷까지!”

대련이 빠르게 진행되며 돈을 걸지 못한 도박꾼들이 리메르에게 몰려들었다.

당연하겠지만, 대부분이 신주오령의 제자들에게 돈을 걸었다.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은 열 중 하나도 되지 않았다.

“허….”

“와….”

버렌과 도리안이 활기를 띤 리메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인간….”

라온이 눈을 내리감았다. 요즘 조용하다 싶었는데, 인간 또 시작이다.

어떻게 된 엘프가 도박할 때만 존재감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리메르도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콰아아아앙!

갑작스럽게 터진 굉음에 리메르를 향하던 시선이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리크리가 발을 굴러 대련장 중심에 깊은 족적을 새겼다.

“네놈….”

리크리가 라온을 노려보며 시퍼런 눈동자를 번득였다.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내가 안 보이는 것이냐!”

“아니, 보여.”

라온이 본인의 눈을 톡톡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검술만큼이나, 인성도 추잡한 놈의 얼굴이 안 보일 리 없잖아.”

“추잡하다고? 내가?”

“본래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에는 아무리 결투라고 해도 지도 대련처럼 3수를 양보하는 게 기본 아닌가?”

“그건 배려일 뿐이다. 꼭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니지.”

“맞는 말이야.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희극제가 있는 단상 위로 시선을 올렸다.

“너희들의 수장은 이 결투 대련을 젊은 무인들의 친분을 쌓기 위해서 열었다고 하지 않았나? 이게 너희가 친분을 쌓는 방식인가 보네.”

“그, 그건….”

리크리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인상을 구겼다. 그도 희극제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내 나름대로 친분을 쌓으려고.”

라온이 미소를 지우고, 건조한 눈빛으로 리크리를 바라보았다.

“당신들도 빨리 올라오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이니까.”

“…확실히 그 부분은 내가 실수했다. 하지만!”

리크리가 이를 갈며 검병 위에 손을 얹었다.

“이런 모욕은 받아들일 수 없다! 사대일? 당장 취소해라!”

“귀찮게 구네.”

라온은 리크리가 아니라, 아직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은 세 명의 무인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좋아. 그러면 내가 저자를 10합 안으로 제압하지. 그럼 삼대일의 대결을 받아들이겠나?”

리크리를 10합 안으로 꺾는다고 말하자, 세 무인들의 눈동자가 매서운 빛을 토했다.

“받아들인 것으로 알지.”

라온이 손목을 돌리며 광풍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렌.”

가장 앞에 서 있는 버렌에게 손가락을 까딱했다.

“어? 아, 응!”

버렌은 이 상황에서 본인을 부를 줄 몰랐는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도 기회가 있어야 공평하겠지. 잘 지켜봐. 다른 녀석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리크리가 너무 빨리 올라온 탓에 버렌이 대련장에 올라올 기회가 없었다.

녀석도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에 루난, 마르타와는 다른 보상을 주고 싶었다.

“으음….”

버렌은 지금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린 듯 왼손으로 오른손등을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지그하르트….”

라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때 뒤에서 이를 가는 듯한 리크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목소리가 크네. 그렇게 안 질러도 다 들려.”

라온이 귀를 후비며 리크리에게 다가갔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너 좋아하는 음식 있냐?”

“뭐? 갑자기 무슨 개소리를!”

“말이나 해봐. 무슨 음식을 좋아하지?”

“…….”

리크리는 대답 없이 살벌한 시선만 보내왔다.

“그것도 말하지 못하는 건가? 보기보다 겁이 많은….”

“통구이를 좋아한다.”

“돼지 통구이? 그거 맛있더군.”

“왜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본 것이냐.”

그는 대련 전에 왜 음식 따위를 물어보냐며 눈매를 찡그렸다.

“네가 배를 차서 기절시킨 애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거든. 여기에 와서도 아침을 먹으면 바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달려갔지.”

라온이 치료를 받고 있는 루난을 힐끔 보며 작은 미소를 그렸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 유일하게 기뻐할 때라 난 그 뒷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어. 함께 데려가 달라고 외치는 식충이 녀석을 놀리는 맛도 있었고.”

그 말을 하며 얼굴이 뻘게진 라스에게 시선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작은 행복이 너 때문에 사라졌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

“내가 짜증이 났다고.”

라온이 음성이 명계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아득하게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니, 10합은 너무 길어.”

“뭐?”

“네가 루난을 꺾을 때처럼 똑같이 3합 안에 부숴주마.”

“크으윽!”

리크리의 목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선을 길게 넘는구나.”

그는 인내심이 바닥을 친 듯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여기서 멀쩡히 나갈 생각은….”

“리크리!”

리크리가 더욱 흥분하여 얼굴까지 빨개지려 할 때 단상에 있던 사검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

리크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안색을 굳힌 채 사검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가 원하던 게 이것이었군. 날 흥분 시켜서….”

그가 이쪽을 돌아보며 바득 이를 갈았다.

“너 따위는 흥분하든 말든 상관없어.”

라온은 오싹하리만큼 냉랭한 시선으로 리크리의 굽어보았다.

“죽여 버리겠어….”

리크리가 심판을 향해 거칠게 손짓했다.

“빨리 시작해!”

입술을 떠는 심판이 양쪽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주, 준비되셨습니까?”

“됐다!”

“됐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을 들어 올렸다.

“지그하르트의 라온 대 사흑련의 리크리의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이 손을 내리고 단상을 내려가기도 전에 리크리의 왼발이 움직였다.

쿠우웅!

거대한 울림과 함께 리크리의 몸이 바람을 타고 쇄도해온다. 두 손으로 말아 쥔 장검을 허리에 고정해서 기병의 찌르기와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돌진은 기병대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검극이 수십 개로 번지며 매서운 강기의 폭풍을 일으켰다. 유성우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라온은 리크리의 검극이 가슴을 향해 다가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불의 고리를 휘돌리고, 설화의 감각을 운용한 채 그저 지켜만 보았다.

‘강기의 흐름이 거칠고, 검의 투로는 빠르면서도 변화가 무쌍해. 가느다란 육체에 적합한 검술과 보법이군.’

오러의 흐름, 검의 투로, 육체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리크리의 모든 것을 훑어 내리며 제천검의 검병을 움켜쥐었다.

쿠우웅!

라온이 오른발 진각을 밟으며 제천검을 뽑았다.

끼이이이잉!

청아한 울림과 함께 솟구친 시퍼런 칼날이 리크리가 내지른 검을 타고 올라갔다.

끼기기기긱!

검과 검이 맞물리며 청아했던 검명이 기괴한 소음이 되어 연무장으로 퍼져나갔다.

청우를 응용하여 발검술의 위력은 높이고, 상대의 감각 기관에 충격을 주는 한 수였다.

“크으으윽!”

리크리가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칼날에 맺혀 있던 강기가 미세하게 옅어졌다. 그 틈을 향해 제천검을 꺾었다.

캬아아앙!

리크리가 발검술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다.

상반신을 아래로 숙인 채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보법. 선공이 막힌 것에 당황하고 있음에도 육체의 균형이 완벽에 가까웠다.

“이걸로 일합.”

가볍게 운을 떼며 태화보를 밟았다. 공간을 접어버린 듯 시야가 좁아지며 한순간에 리크리의 일그러진 표정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어딜!”

리크리는 마스터 최상급에 거저 오른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짧은 순간에 강기로 이루어진 검막을 치며 반격을 준비했다.

‘검막은 깨부수면 되지.’

그것도 반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단호하게.

아래로 내려둔 제천검을 밀어 올렸다. 검극에서 치솟은 만화공의 불길이 바람을 타고 공간을 비틀었다.

매섭게 솟아오른 염화의 강기가 뭉개진 결투장을 긁으며 적색의 선을 세웠다.

쩌어어억!

거꾸로 운용한 적섬. 세계를 반으로 쪼개는 듯한 화마의 칼날이 리크리가 만들어낸 검막을 찢어발겼다. 마스터의 경지를 초월한 속도와 날카로움이었다.

“이합.”

라온이 덤덤하게 두 번째 검임을 밝히며 리크리를 향해 짓쳐 들었다.

“이익!”

리크리는 강기의 막이 이렇게 쉽게 깨질 줄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지만, 그 짧은 순간에 다시 도망칠 준비를 끝냈다.

왼발을 뒤로 뻗으며 보법을 밟으려고 할 때 라온이 아직 바닥에 붙어 있는 그의 오른발을 찍어 눌렀다.

콰아아아아앙!

라온의 발에 밟힌 리크리의 오른발이 바닥에 박히고, 대련장 전체에 거미줄을 닮은 균열이 돋아났다.

“어딜 가려고.”

라온이 피식 웃으며 위로 들어 올린 제천검을 내리찍었다.

빠드드득!

리크리가 검날 위로 두터운 강기를 응집시켰지만, 예상한 범위 내였다.

콰드득!

제천검에 전사경의 기운을 휘감아 리크리의 마지막 보루까지 깨버렸다.

“이게 마지막 삼합.”

“자, 잠깐 너 발을 썼잖….”

“발은 무효.”

차게 웃으며 제천검을 더 빠르게 휘둘렀다. 검면에 어린 두터운 오러가 리크리의 면상을 강타했다.

뻐어어어억!

청우를 일으켰을 때보다 더 소름이 돋아오르는 굉음이 터졌다. 리크리가 이빨을 모조리 뱉으며 대련장 아래로 추락했다.

“그으으으….”

지독한 고통 때문에 전신을 바르르 떠는 리크리의 입에서 피거품이 줄줄 흘러나왔다.

“루난이 더 아프겠지만, 너도 한동안 통구이는 못 먹을 테니 비긴 걸로 하지.”

어깨를 으쓱이자마자, 리크리가 고개를 떨궜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한 것 같았다.

-안 죽이는 것이냐?

‘나중에.’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시며 제천검을 털어냈다. 가느다란 핏방울이 떨어진 검날이 저물어가는 태양빛을 받아 오연한 빛을 토했다.

스르릉.

제천검을 다시 검집에 밀어 넣었다. 검날과 검집이 맞물리는 마찰음이 끝날 때까지 연무장에 있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탁.

이내 검날이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관객들이 숨을 내쉬었다.

“어….”

“지, 진짜 삼합 만에 리크리를 잡았다고?”

“둘 다 마스터 최상급이라며! 이게 가, 가능한 일이야?”

“마, 말이 안 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어….”

관객들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이 정도면 자격이 있다는 게 증명됐겠지?”

라온이 갈라진 연무장의 중심에서 서서 귀빈석을 굽어보았다.

“모두 올라와라.”

눈을 부릅뜬 신주오령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왜 지그하르트가 검의 황제라 불리는지 알려 줄 테니까.”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88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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