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86화 (486/653)

제486화

“이야아아아아!”

크레인은 기합이 아닌 괴성을 지르며 검기를 내리꽂았다. 살기를 두른 듯한 매서운 검격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제론의 전신을 두드렸다.

“크윽…….”

제론은 정면에서 뻗어오는 크레인의 검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떨었다.

‘빈틈!’

크레인은 제론의 팔이 흔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땅을 짓누르며 나아가 그의 팔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캬아아앙!

중첩된 충격이 터지며 제론이 손아귀에서 피를 뿌리며 검을 놓쳤다.

치이잉!

크레인은 제론이 다시 검을 잡을 수 없게 길목을 막은 채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져, 졌소.”

제론은 고개를 떨구고, 본인의 패배를 인정했다.

“승자! 지그하르트의 크레인!”

심판이 손을 들어 올리며 크레인의 승리를 선언했다.

“다음!”

크레인이 거친 숨을 내쉬고 귀빈석에 앉아 있는 대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역시 지그하르트야! 시원시원하네!”

“약관을 넘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저런 패기라니! 지그하르트는 다 저런 거야?”

“미친놈일세. 광풍대를 괜히 광견대라 부르는 게 아니라니까!”

관중들은 크레인의 당돌한 기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환호성을 지르며 빨리 다음 시합을 시작하라고 외쳤다.

투웅!

첫 상대인 제론과 달리 사마귀처럼 길쭉한 체형의 무인이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그는 장창으로 대련장을 찍은 후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세크린 가문의 로기안이오!”

“지그하르트의 크레인!”

“호흡을 고르시오.”

“필요 없소.”

크레인은 휴식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며 심판을 바라보았다.

“음…….”

시선을 받은 심판이 대련장으로 올라오며 두 사람을 차례로 살폈다.

“두 분 다 준비되셨습니까?”

“준비됐소.”

“…….”

심판의 물음에 로기안이 담담하게 대답했고, 크레인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두 번째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결투 개시를 알리지마자, 크레인이 로기안의 정면으로 짓쳐들었다.

“흐읍!”

로기안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전방으로 창을 내질렀다. 푸른 오러기 깃든 창날이 매섭게 나아갔다.

후우웅!

창의 거리를 이용한 절묘한 한 수. 평범한 검사라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매서운 공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는 크레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크윽!”

크레인은 창날이 어깨를 찢었음에도 물러나지 않고, 로기안의 공간을 파고들었다.

“으음…….”

로기안은 크레인이 창을 맞으면서 들어올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가 보법을 밟으며 우측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어딜!”

크레인은 한 번 잡은 기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 섬전처럼 쇄도하여 로기안의 허리를 향해 검격을 내리쳤다.

후우웅!

로기안이 다급하게 창대를 휘돌려 방어 태세를 갖추려고 했지만, 크레인의 검격은 이미 완벽한 투로를 이룬 채 뻗어나갔다.

빠아아악!

오러가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 로기안의 창대가 부러지며 그가 대련장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후욱…….”

크레인이 피가 배어나는 어깨를 훔치며 턱을 치켜들었다.

“다음!”

일순간 대련장 전체에 침묵이 일었다. 유일하게 라온과 광풍대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우측 귀빈석에 앉아 있던 기사가 대련장으로 올라왔다. 걸치고 있는 갑옷처럼 묵직한 기운이 느껴지는 고수였다.

“슈페른 신성 왕국에서 온 호펜이라 합니다.”

그는 지그하르트 숙소로 와서 대련을 신청했던 슈페른 신성 왕국의 무인이었다.

“지그하르트의 크레인.”

크레인은 어깨의 상처를 툭툭 쳐서 이상이 없음을 보였다.

심판은 두 무인의 준비되었다는 사인을 보고서 바로 결투를 시작시켰다.

“흐읍!”

크레인이 숨을 참으며 보법을 밟았다. 호펜의 수준은 지금까지의 상대와 다르다. 이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전력을 모조리 다 쏟아내야 했다.

터엉!

전신의 근육을 자극하며 검격을 내리긋는다. 육체와 함께 폭발하는 오러가 더 빠르고, 날카로워졌다. 송곳처럼 매끄럽게 갈린 검기가 호펜의 갑옷을 향해 휘어졌다.

“매섭군.”

호펜이 두 손으로 잡은 검날에서 새벽안개를 닮은 빛이 피어난다. 슈페른의 성기사들이 지닌 신성력이었다.

콰과과광!

오러의 검기와 신성력의 검기가 맞부딪치며 뇌기가 우는 듯한 충격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공세를 이어가는 건 크레인이었지만, 호펜은 신성력을 방패처럼 두른 채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젠장!”

크레인이 호펜의 담담한 눈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지면 악마 놈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호펜의 신성력 방패를 깨지 못하고 진다면 무조건 집중력 강화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저 방패를 부숴야 했다.

‘여기서 승부를 내야 해.’

검기를 연달아 날린 후 검을 뒤로 젖혔다. 검기를 응집시켜 신성력의 방패를 뚫어버릴 절기를 운용하려고 할 때였다.

우우우웅!

연격이 끝난 것을 알아차린 호펜이 신성력을 응축시키며 두터운 백색의 대검을 일으켰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호펜은 단숨에 끝을 내려는 듯 신성력이 압축된 대검을 구붓하게 내리쳤다.

“이익!”

크레인이 운용하던 절기를 포기하고, 호펜을 검격을 흘려내기 위해 검을 쳐들었다.

하지만 대검에 실린 거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팔이 접힌 채 대련장 바닥에 내리꽂혔다.

“커헉, 아, 아직…….”

“끝났습니다.”

“아직이라고!”

“일어난다고 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크윽…….”

크레인이 일어서려고 했지만, 호펜이 그의 목에 검을 대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 하면 죽을 수도…….”

“죽여! 죽이는 게 나아! 당장 죽여!”

그는 당장 죽이라는 듯 호펜에게 악을 질렀다.

“어…….”

“스, 승자 슈페른 신성 왕국의 호펜!”

호펜이 당황하여 눈을 꿈벅일 때 심판이 다가와 판정을 내렸다.

“이런 젠장!”

심판의 선언에 크레인이 힘없는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으…….”

그는 슬쩍 눈치를 보며 일어서서 대련장을 내려와 라온의 앞에 섰다.

“죄, 죄송합…….”

“잘 싸웠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상대는 너한테 질려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했으니까.”

라온은 다시 피가 터진 크레인의 어깨를 지혈시켜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십니까? 그러면…….”

“하지만 세 번째 결투에서는 상대의 방어에 조급해져서 멍청하게 대놓고 힘을 모으다가 얻어터졌지. 따라서…….”

그가 지혈을 끝낸 크레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집중력 강화 훈련 당첨.”

“아아악…….”

크레인은 패배했을 때도 지르지 않았던 비명을 터트리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다음.”

라온이 손짓을 하자, 바로 뒤에 있던 광풍대 검사가 대련장 위로 튀어 올라갔다.

“지그하르트 광풍대의 피트란입니다!”

“으음, 슈페른 왕국의 호펜이오.”

심판은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시합을 시작시켰다.

“이야야야야!”

크레인이 잘 싸우고서도 집중력 강화 훈련을 받는 것을 본 피트란은 눈동자에 광기를 물들인 채 호펜을 몰아쳤다.

“죽어! 죽어!”

눈동자에 광기를 두른 채 싸우는 피트란의 살의에 호펜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이 인간들 왜 이래!’

* * *

신주오령이 개최한 결투 대회는 육황의 결투 대련과는 방식이 달랐다.

따로 참가자를 받는 게 아니라, 결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무인들이 직접 대련장에 올라온 뒤 승부를 겨룬 이후에 승자는 남고, 패자는 내려간다.

그렇게 계속 결투를 진행하여 도전자가 없을 때까지 대련장 위에 남는 자가 이 대회의 우승자가 된다. 축제에 가장 걸맞은 방식의 대회였다.

대련장에 늦게 올라올수록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명성 높은 가문과 왕국의 무인들은 먼저 나서지 않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지만, 딱 한 곳은 달랐다.

지그하르트는 첫 번째 결투에 크레인을 내보낸 후에도 계속 검사들을 올려보내서 모든 결투에 참여했다.

대련이 60번 넘게 진행된 지금에 와서는 지그하르트 대 다른 세력 같은 구도로 결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그하르트는 축제를 제대로 즐기네.”

“그러게. 다른 가문이랑 다르게 눈치 따위 안 보고 계속 올라오잖아.”

“사람도, 가문도 시원시원해. 응원하게 된다니까.”

“검사들도 몸을 아끼지 않고, 전력을 다하는 것도 좋지 않아? 표정에서부터 진심이 넘친다고.”

“왜 육황육황 하는 건지 알겠어. 결이 달라.”

“지그하르트! 우승해라!”

사실 광풍대 검사들은 라온의 집중력 강화 훈련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관객들은 광기를 두른 채 싸우는 광풍대가 마음에 든 듯 반 이상이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을 보냈다.

라온은 관객들의 함성을 등으로 받으며 대련장을 올려 보았다.

“흐으윽…….”

도리안이 검을 꼭 말아 쥔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는 상대의 검에서 뿜어지는 강기의 불꽃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왜 마스터랑…….”

사실 광풍대 검사들이 조금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마스터가. 그것도 초입을 벗어나 하급에 오른 무인이 나타나서 부조장들이 너무 쉽게 떨어져 버렸다. 조장을 제외한 검사는 저 위에 있는 도리안뿐이었다.

‘칼론이라고 했지.’

도리안의 상대는 쾌검식으로 유명한 검술명가 데픈의 직계 칼론이었다. 실전 경험은 좀 적어 보이지만, 수련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은 티가 났다.

“항복해라.”

칼론이 도리안에게 검을 겨누며 턱짓을 했다.

“검사가 상대에게 겁을 먹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기권을 하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겁? 겁은 먹었죠. 그런데…….”

도리안은 칼론이 아니라, 대련장 아래에 있는 라온을 힐끔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진짜로 겁먹은 건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그는 진짜 미친놈한테 겁을 먹은 거라고 외치고서 칼론에게 돌진했다. 그가 내지르는 검날이 다섯 개로 번지며 푸른 검기의 파도를 이루었다.

“흥.”

칼론은 코웃음을 치며 파리를 쫓듯 가볍게 검을 그었다.

캬아아아앙!

장난을 치는 듯한 휘두름이었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극쾌의 묘리가 담긴 검격이 검기의 파도가 사정없이 갈라버렸다.

“으윽!”

도리안이 재차 달려들려고 했지만, 칼론이 그린 극쾌의 검격에 얻어맞고 대련장에서 튕겨나갔다.

“끄에엑…….”

그는 충격이 심한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망했다…….”

도리안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쉴 때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평온한 표정의 라온이었다.

“부, 부대주님?”

“수고했다. 잘 버텼어.”

라온이 도리안을 일으키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가, 감사…….”

“다만 마지막에 무작정 검기를 내던질 게 아니라, 상대의 수를 읽으며 움직였다면 최소 3수는 더 버틸 수 있을 거다.”

“아…….”

도리안은 결과를 예측한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따라서 너도 집중력 강화 훈련 당첨.”

“끄아아아아악! 안 돼요! 제발!”

도리안은 라온의 바지 밑단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 가서 치료나 받아!”

라온은 난동을 부리는 도리안을 걷어차서 치료실로 보내고, 대련장 위를 올려보았다.

‘저건 힘들겠군.’

칼론은 마스터 하급에 적응을 끝낸 무인이다. 마크 괴튼과도 자웅을 겨룰 수준이기에 마르타와 루난, 버렌을 차례로 올려도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

‘그래도 좋은 경험은 되겠지.’

마크 괴튼과는 다른 마스터와 상대할 좋은 기회였기에 세 조장에게 모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르타.”

마르타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이제야 부르네.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마르타는 흑단 같은 머리칼을 툭 치고서 대련장으로 향했다. 한참 경지가 높은 마스터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조금도 긴장한 표정이 아니었다.

라온은 사자처럼 무게감 있는 걸음으로 나아가는 마르타의 등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기질이. 아니, 성격이 변했군.’

마르타는 백혈교주를 본 이후로 꾸준히 성향이 변해 왔지만, 요즘에는 아예 다른 사람을 보는 듯 바뀌고 있었다.

‘수련부터 그렇지.’

예전의 마르타라면 리메르에게 도움을 받지도 않고, 버렌이나 루난과 함께 수련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대원들까지 하나하나 챙기고 있어서 영혼이 바뀌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나처럼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거겠지.’

같은 변화를 겪었기에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던 마르타의 사고에 동료와 친구가 끼어들며 그녀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말대로다. 소고기 소녀는 확실히 변했느니라.

라스가 마르타의 등을 보며 입매를 축 내렸다.

-저 아이의 가슴 속에 타오르던 분노가 가라앉았느니라. 매력이 많이 떨어졌어.

녀석은 분노가 사라져서 인상이 나빠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보통 반대 아니냐?’

라온이 다정한 흙내음을 흘리고 간 마르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오늘 일을 치를지도 모르겠는데.’

* * *

마르타가 대련장으로 올라가서 칼론과 마주섰다.

‘더럽게 세네.’

칼론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날카로운 기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앞에 있는 검사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만……’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선언할 수는 없지.

검을 맞대지도 않았는데 겁을 먹고 물러나는 건 광풍대의 스타일이 아니다. 아무리 대련이라고 해도 팔다리가 끊어질 각오로 물고 늘어져야 했다.

“지그하르트 광풍대 1조장 마르타.”

마르타는 다른 광풍대 검사들과 달리 본인의 소속을 확연하게 밝히고 검병을 쥐었다.

“데픈 가문의 칼론.”

칼론 역시 명가 소속답게 한참 어린 마르타 앞에서도 정중하게 본인의 이름을 밝혔다.

“두 분 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심판의 물음에 마르타와 칼론이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합 시작!”

그가 손을 내리고, 대련장을 내려갔지만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

마르타는 평소처럼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천천히 단전의 오러를 깨우며 상대의 기운을 훑어내렸다.

‘정면에서는 무조건 밀려.’

비슷한 수준의 무인이라면 타이탄 오러의 굳건함으로 압도할 수 있겠지만, 상대가 여러 방면에서 한참 위다. 함부로 달려들 게 아니라, 빈틈을 노려야 했다.

“오지 않는가? 듣던 것과 다르군.”

칼론이 검을 중단에 세운 채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듣던 것?”

“나찰녀라 부르면 바로 달려든다고 들었는데.”

“나찰녀가 아니다!”

마르타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련장을 박찼다. 그녀가 밟은 땅이 마른 나뭇잎 조각처럼 박살 났다.

“아, 나찰검. 실수를 했군.”

칼론은 그럴 줄 알았다며 미소를 지은 채 검을 휘돌렸다.

“알면 사과부터 쳐해!”

마르타는 분노한 듯 거칠게 나아갔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움직임을 간결하게.’

칼론이 도리안을 상대하는 건 보았지만, 그는 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밀어붙여 상황을 주도해야 했다.

후우우웅!

마르타가 황색빛으로 물든 검에 대지의 기운을 담을 때 칼론의 손목이 돌아갔다. 극쾌의 검술. 빛살처럼 뻗어나간 그의 칼날이 목을 향해 짓쳐 들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분명 먼저 검을 내리쳤는데, 먼저 다가오는 건 칼론의 검이었다.

‘젠장!’

마르타는 검에 담긴 힘을 빼서 속도를 높였다.

쩌어어어어엉!

검과 검이 맞부딪쳤는데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마르타는 칼론의 검을 밀어내며 낮은 신음을 뱉었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아.’

칼론이 강기를 운용하고 있지 않았지만, 오러의 수준 차이 때문에 타이탄의 오러가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처럼 일격에 튕겨 나갔을 것이다.

“역시 조장인가? 제법이군.”

“나를 평가하지 마라.”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며 왼발 진각을 밟았다. 대지의 힘을 끌어내며 그대로 검격을 내리쳤다.

쩌어어엉!

첫 일격보다 더 강해진 검격에 칼론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벌어졌다.

“전력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입 다물라고 말했지.”

“까다롭군.”

칼론은 눈썹을 살짝 내린 채 중단에 둔 검을 끌어서 내려온다. 빠르면서 정확한 검로에 예리함까지 휘감겼다. 마스터다운 완성도 높은 검격이었다.

“흐읍!”

마르타가 숨을 참으며 왼발을 내디뎠다. 육체의 힘을 모조리 끌어 올리며 검을 다잡았다.

‘내 장점은 돌진력.’

라온이 말해주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패기라고.

‘광풍대의 돌격대장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마.’

응축된 근육과 오러를 단숨에 폭발시키며 검을 쳐올렸다. 대련장을 긁으며 솟구친 검극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뻗어나갔다.

“이건 제법…….”

칼론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옷을 털듯이 손목을 휘어 내렸다. 검기가 맺힌 검날이 벼락이 되어 떨어졌다.

콰아아앙!

두 번째 검격이 충돌하며 매서운 오러의 조각들이 사위로 퍼져나갔다.

칼론과 마르타는 서로의 몸에 두른 오러를 믿는지 오러의 폭발 속에서 연달아 검격을 나눴다.

“물러나는 게 좋을 텐데?”

칼론은 마르타의 어깨와 복부에서 피가 터지는 것을 보며 손을 저었다.

“입 닫고 검이나 휘둘러!”

마르타는 부상을 입을수록 더 강한 오러를 운용하며 검격을 쏟아부었다. 그녀가 방어를 포기하고, 모든 오러를 공격에 돌렸지만 칼론의 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인정하지. 마스터 초입이라면 내가 밀렸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칼론의 검에 비친 빛이 더 짙어지며 강대한 풍압이 돋아났다. 상대의 몸을 옥죄이는 방식의 쾌검술이었다.

그 순간 마르타의 눈동자 위로 황색 뇌기가 번쩍였다.

‘지금이다!’

칼론이 승부를 빠르게 끝내기 위해서 검술을 변화시킬 때 아주 작은 틈이 비쳤다. 저 빈틈이 그를 이길 유일한 기회였다.

쿠우우웅!

심장 박동을 증폭시키며 광폭화를 일으켰다. 시야가 빨갛게 변하며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울림이 일어났다.

-네 몸을 넘겨라! 세상 그 누구라도 죽여주마!

몸을 맡기라고 외치는 유혹의 목소리.

‘입 닥쳐.’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며 그 음성을 밀어냈다. 광기 속에 숨은 힘만을 취한 채 칼론의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쿠와아아아앙!

단전에서 폭발하여 심장을 거쳐 부풀어 오른 오러가 검극 위에서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으으윽!”

칼론의 검이 밀려나고, 그가 거친 신음을 토했다. 찰나의 순간에 광폭화를 일으킬 줄은 그도 모른듯 했다.

마르타가 턱을 부르르 떨었다. 광폭화 속에서 이성을 유지하느라 숨을 쉬기 어려워 폐가 쪼그라든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간다!’

이성을 유지한 채 광폭화를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다. 지금 순간을 놓친다면 기회가 없다.

대지의 무거움과 열기를 담은 열후지혼을 내쳤다. 대지에서부터 솟구친 강대한 기파가 칼론의 검을 밀어냈다.

쿠와아아아앙!

연무장이 연달아 터지며 칼론이 입고 있던 제복이 찢어지고, 그의 입술에서 연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이대로……아!’

계속 밀어붙여서 승부를 끝내려고 할 때 칼론의 검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빛이 솟아올랐다.

쩌어어어엉!

광폭화를 일으켜 2배 이상의 오러가 휘감긴 검기가 사정없이 잘려 나간다. 강기. 칼론이 드디어 검강을 운용했다.

“크으…….”

칼론은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찌그러뜨린 채 검강으로 마르타를 몰아붙였다.

찌지지지직!

마르타가 타이탄의 오러를 중심으로 만들어낸 오러의 방패들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여기까지다.”

칼론의 검에 맺힌 강기가 어느새 마르타의 목에 닿아 있었다. 그녀의 목에서 얇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인정하지. 솔직히 강기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마르타의 실력이 소문보다 한참 위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날 뛰어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칼론이 검을 내리지 않은 채 기권을 하라며 턱짓을 했다.

“후욱…….”

마르타는 거친 숨을 내쉰 채 눈을 내리감았다. 아직 광폭화를 끄지 않았기에 머릿속 울림은 계속 되었고, 전신이 쪼개질 듯한 고통이 일었다.

그녀는 칼론의 부름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내 입으로는 패배를 말하지 않아.”

“마르타 지그하르트!”

“계속 물러날 수는 없어.”

“이건 고작 대련일 뿐이다! 여기에 목숨을 걸겠다고?”

“넌 몰라.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물러서기만 했는지.”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물러날 곳이 없어.’

엄마의 몸을 차지한 괴물은 그랜드 마스터도 넘어선 초월자다. 아무리 대련이라고 해도 이제는 물러날 수 없다. 어리다고 배려를 받을 나이는 지났다. 모든 일에 목숨을 걸어야 강해질 수 있다.

으득!

마르타는 광폭화를 유지한 채로 다시 한번 전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백검룡! 말리시오! 고작 결투에서 이게 무슨!”

칼론은 마르타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한 듯 라온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말려야 합니까?”

라온은 마르타의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칼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대로라면 죽거나, 크게 다치는…….”

“광풍대의 1조장은 생각 없이 움직이는 자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지금 그 자리에 있죠. 죽더라도, 크게 다치더라도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는 마르타를 믿겠다는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광풍대 검사들 역시 신뢰를 두른 눈으로 마르타를 바라보았다.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신뢰에 전신이 떨렸다.

예전이라면 남들이 무엇을 해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이젠 아니다. 저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고오오오.

평생을 달고 살았던 분노와는 다른 감정이 따스하게 심장을 적신다.

발을 딛고 선 대지에서 솟구친 웅혼한 기운이 육체와 정신을 관통한다.

오싹하리만큼 거대한 희열이 전신을 휘감으며 바닥을 드러냈던 오러가 들불처럼 끓어올랐다.

쿠구구구구!

이글거리며 피어난 황색의 불꽃이 목을 겨눈 칼론의 검을 밀어낸다.

뿌드드드득!

마르타가 대련장을 짓이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육체가 벼락으로 화한 듯 쏘아지더니, 이내 태산 같은 무게를 뿌렸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던 흐릿한 검기가 꼬이고, 꼬이더니 황혼 같은 빛무리를 일으켰다.

“이런!”

칼론이 마르타의 검에 맺힌 기운을 보고, 기겁하며 강기를 뻗어냈다.

우우우우웅!

마르타가 검에 홀린 듯한 눈으로 오른손을 쓸어내린다. 무거움 속에 숨은 황혼의 맹수가 칼론의 강기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쿠와아아아앙!

주홍빛 노을과 푸른빛 파도가 격돌하며 강렬한 폭풍이 연무장을 휩쓸었다.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86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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