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85화 (485/653)

제485화

-과, 광녀?

라스의 통통했던 볼살이 홀쭉하게 쪼그라들었다.

-저 광녀는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이냐!

녀석은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다며 턱을 바르르 떨었다.

‘나도 몰랐어.’

라온이 아기 캥거루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는데….’

이 주변은 캥거루 서식지고, 숙소 주변은 도시 외곽이기 때문에 캥거루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아기 캥거루의 배 주머니에 엔시아가 찍은 사진이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대놓고 멀린이었다.

‘아까 없어졌다는 사진이 여기에 있었군.’

신주오령의 회의장에 가기 전에 엔시아가 A급 사진이 없어졌다면서 울상을 지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히 못 찾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저 광녀에게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

“멀린.”

라온은 기막을 쳐서 소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며 캥거루에게 다가갔다.

“응!”

멀린은 알아봐 줘서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의 입에서 끈적끈적한 여성의 음성이 흐르는 것도, 뺨에서 홍조가 떠오르는 것도 아직 적응이 안 된다. 팔뚝에 닭살이 돋아났다.

“너 한동안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언제 적인데, 널 보려고 빨리 끝내고 왔지.”

그녀는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왔다며 방실거렸다.

“좀 늦게 해도 되는데….”

라온이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멀린의 배 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온 사진을 가리켰다.

“그건 어떻게 가져간 거야?”

“그 아이가 잘 때 챙겼지. 어떻게 했는지 알려줘?”

“…아니.”

별로 알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신기한 아티팩트도 만들고, 너의 가치도 알고 있고. 착한 아이야.”

멀린은 엔시아가 잘 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며 웃었다.

-소, 소름이 돋느니라!

라스는 머리털이 갓 만든 솜사탕처럼 쭈뼛 선 채 어깨를 떨었다.

‘그러게….’

잠이 든 사이에 멀린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 다만 그녀의 말에 조금 의문인 점이 있었다.

“조금 의외인데.”

“뭐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았는데도 왜 사진 몇 장만 가져간 거지?”

평소 멀린의 성격이라면 사진기와 사진을 전부 다 챙겨야 했다.

다 놔두고 몇 장의 사진만 가져간 게 이상했다.

“그게 왜 의외야? 당연한 건데?”

멀린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진기를 놔두면 그 아이가 계속해서 네 사진을 찍어줄 거 아니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수는 없지.”

그녀는 엔시아가 도망치지 않도록 일부러 사진도 많이 챙기지 않았다며 웃었다.

“아….”

라온이 입술을 떨었다. 멀린의 말을 듣자마자, 오싹한 한기가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히이이익! 더, 더이상 못 있겠느니라!

라스가 기겁을 하며 얼음 꽃팔찌 속으로 도망쳤다.

라온이 방실방실 웃는 멀린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엔시아는 양반이었어.’

엔시아도 감당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쪽이 더 심각했다. 아니, 여긴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여긴 왜 온 거야?”

“당연히 보고 싶어서 왔지.”

멀린은 허초 따위는 없이 바로 칼을 던졌다. 이런 정직함 역시 적응이 안 된다.

“그리고 조금 걱정이 되어서.”

“걱정?”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무슨 걱정이 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오마가 나올 준비를 끝냈거든.”

“마지막 오마라면 성검련?”

“응.”

멀린이 성검련이 곧 봉문을 풀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검련….”

그 검귀들이 나오는 건가.

사람들은 성검련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신성 왕국처럼 성스러운 기운을 가진 검사들이 천하창생을 위해 활동할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성검련은 신성한 검이라는 뜻이 아니라, 검을 성스러이 여긴다는 뜻이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르지.’

성검련의 검귀들은 검과 검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웃으면서 부모 형제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미치광이들이었다.

“넌 모르겠지만, 지그하르트와 성검련은 굉장히 사이가 안 좋거든.”

멀린이 두 세력은 볼 때마다 싸웠다고 말하며 눈매를 찡그렸다.

‘그랬겠지.’

성검련은 명성 높은 검술명가들을 습격하고, 그들의 검술서를 강탈해 본인들의 무력을 강화시켰다.

육황 내에서도 검술로 이름 높은 지그하르트와 부딪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예전에 지그하르트 가주와 성검련주가 부딪친 적도 있었고.”

“그건 알아.”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그하르트가 멈추고, 성검련이 봉문을 한 게 글렌과 성검련주가 정면에서 격돌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니까.

다만 지금의 글렌을 보면 지그하르트의 실상은 소문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성검련을 만나면 일단 피하는 게 좋을 거야.”

멀린은 상대를 잘 보고 싸울지 말지를 결정하라며 손을 저었다.

“아, 우리 쪽도 조심하고, 물론 그건 내가 미리 말해주겠지만.”

“에덴? 거기도 뭔가가 있는 건가?”

“투구와 가면을 쓴 아이들이 늘었어. 특히 몇몇은 정말 강한 애들도 있고.”

“강한 애?”

“전에 한 번 말했잖아. 녹색의 왕. 그 투구의 주인이 각성까지 했거든.”

녹색의 왕이라는 이름을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기억이 났다.

“녹색의 왕이면 오크 왕의 투구겠군.”

“그냥 왕이 아니라, 대륙 전체의 오크를 지배한 로드의 힘이 어려 있지. 어린 그릇이지만 지금의 너보다 강할지도.”

멀린은 왕 중의 왕이라고 말하며 입매를 내렸다.

“지금 바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미리 조심해서는 나쁠 게 없으니까.”

“그것들을 말해주려고 온 건가.”

“보고 싶어서 왔다니까.”

그녀는 성검련이고, 녹색의 왕이고는 부차적이고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이라며 방실 웃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

멀린은 배 주머니에 튀어나온 사진을 꼭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널 보호하는 애가 오고 있거든.”

“셰릴? 그것도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만나 봤으니까.”

그녀는 한번 마주친 기척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팔찌 속에 있는 라스의 떨림이 느껴졌다.

“존잘 라온.”

“…그거 하지 마.”

“사진 찍는 아이에게 나도 라온 존잘교에 들어간다고 말해주렴.”

멀린은 재미있을 거 같다며 배를 긁적였다.

“싫어.”

“그럼 나중에 내가 직접 말하지 뭐.”

어디부터가 장난이고, 어디부터가 진심인지 알 수가 없는 여자다.

“이 아이도 털을 빗어달래. 등이 가려운 것 같아. 그럼 난 이만….”

멀린은 다음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탁.

아기 캥거루가 등을 긁어달라는 듯 폴짝 뛰어서 다가왔다.

“털을 빗는 정도는 가볍… 어?”

라온이 빗을 꺼내서 캥거루의 등을 긁다가 멈춰 섰다. 캥거루의 배에는 아직 사진이 남아 있었다.

‘멀린이 이걸 놓고 갔다고?’

평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너 설마….”

사진에 손을 가져가려고 하자, 캥거루가 손을 치며 뒤로 물러섰다.

“에이, 들켰네.”

멀린이 혀를 빼꼼 내밀고서 머리를 긁적였다.

“네 사진을 더 챙겨야 하는데 벌써 갈 수는 없잖아.”

그녀는 엔시아에게 사진을 맡겨놓은 듯한 말을 하며 수풀 속으로 도망쳤다.

“다음에 또 봐.”

“야!”

멀린을 불렀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차마 따라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한숨만 내쉬었다.

“아, 피곤해.”

라온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엔시아와 멀린에게 연속으로 시달리니 정신이 녹초가 되었다.

희극제에게 풀었던 스트레스가 다시 꽉 차오른 기분이었다.

‘좀 풀어야겠어.’

고개를 저으며 숙소로 들어갔다.

“오셨다!”

“부대주. 늦잖아요!”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빨리 보냈으면… 어?”

늦게 왔다고 따지려던 광풍대 검사들이 라온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집중력 강화 훈련을 시킬 때처럼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왜, 왜 저래?”

“눈깔이 맛이 갔는데?”

“아까 분명 기분이 좋았잖아!”

광풍대 검사들은 라온의 발밑에서 피어나는 섬뜩한 기운에 질려 어깨를 떨었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바로 훈련을 시작하지.”

라온은 지독하리만큼 차가운 음성을 흘리며 제천검을 뽑았다.

“실전 방식으로.”

실전이라는 말에 광풍대 검사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천계에서 뺨 맞고 마계에서 욕하는 격이로군.

라스가 팔찌 위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인성 하나는 차원 최강이니라….

* * *

“허억!”

마르타가 달아오른 숨을 내쉬며 검을 땅에 내리박았다. 전신에 힘이 빠져서 이렇게 버티지 않는다면 쓰러질 것 같았다.

“빌어먹을….”

“에후….”

버렌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했고, 루난은 대지와 하나가 된 듯 등을 땅에 붙인 채 고로롱 소리만 흘렸다.

“으아아….”

“주, 죽겠다.”

“오늘은 유독 심한데, 대, 대체 무슨 일이야.”

조장들이 쓰러지기 직전이었기에 광풍대 검사들 역시 모조리 쓰러져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음….”

마르타가 대련장을 쭉 훑으며 눈매를 좁혔다.

‘확실히 훈련 강도가 높아.’

이틀 뒤에 바로 결투 대회가 있기 때문인지 라온이 검사들을 몰아붙이는 정도가 평소보다 과했다.

정말 실전을 치르는 듯한 검세를 막느라 모두의 몸과 정신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쿠와아앙!

대지를 울리는 폭발음에 연무장 중앙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크 괴튼이 라온의 검격에 튕겨 나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크윽….”

마크 괴튼은 바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충격을 해소하지 못하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

라온이 아직도 신음을 흘리는 광풍대를 보며 길게 혀를 찼다.

“여기까지 오면서 제대로 된 훈련을 안 한 건 누구보다 너희가 잘 알잖아. 그게 한 번에 돌아온다고 생각해.”

“끄응….”

“뭐, 뭐라는 겨….”

광풍대 검사들은 지쳐서 대답할 힘도 없는지 고개만 떨었다.

“결투 대련에서 지그하르트의 이름에 먹칠 안 하려면 이 정도는 견뎌야지. 정신 차려.”

라온의 외침에도 광풍대는 버둥거리기만 할 뿐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명은 달랐다.

“크윽!”

마르타가 피가 맺힌 듯 뜨거운 숨을 뱉으며 허리를 폈다.

‘그래. 지금은 쓰러져 있을 때가 아니지.’

난 내 목표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으니까.

처음 그리고 유일한 목표는 엄마를 찾는 거였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엄마를 되찾고,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만 과거를 생각할수록 매일매일 엄마가 백혈교에 죽거나, 납치되는 꿈을 꾸며 신경이 끊어질 것처럼 날카로워졌다.

‘나 혼자만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며 세상 자체에 분노를 풀었지.’

광풍대 아이들에게 못 할 말과 행동도 많이 했었고 그게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몰랐다.

하지만 라온과 버렌, 루난 그리고 광풍대 검사들과 함께 지내며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중간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라온 구출 작전을 진행하면서 엄마의 몸을 차지한 백혈교주를 보고, 옛날처럼 내가 세상에 분노하는 시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라도, 무슨 일이라도 도와주겠다고 한 동료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인지 전처럼 악몽을 꾸지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파아악!

마르타가 땅에 박힌 검을 뽑았다. 검날과 함께 솟구친 모래 먼지가 가슴에 묻은 고통을 지우듯 시원한 물결을 그렸다.

“후….”

그녀는 숨을 들이켜며 라온을 보며 연한 미소를 그렸다.

‘바보 같은 놈.’

라온은 본인의 수련만 생각하기에도 바쁠 텐데, 항상 광풍대 검사들을 챙겨주었다.

그가 진심으로 광풍대를 대하는 게 느껴지기에 함께 수련하게 되면 지치는 줄도,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항상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네 덕분에 해야 할 일이 늘었어.’

백혈교주로부터 엄마를 해방하는 일은 최우선 과제고, 죽더라고 이뤄야 할 일이었지만,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바보처럼 동료만을 생각하는 멍청이의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라온도 무언가 목표가 있을 테니까.’

라온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검을 휘두른다. 그건 그저 강해지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인지 몰라도 중요한 목표가 있다는 뜻. 그게 무엇이라고 해도 꼭 도와주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는….’

지금 싸워야겠지.

마르타가 물 먹은 듯 무거운 육체에 오러를 휘감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비명을 지르는 팔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라온을 향해 한 발 내디뎠다.

“음?”

라온도 마르타가 일어날 줄은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우우웅!

마르타가 들어 올린 검으로 라온을 겨누며 입매를 비틀었다.

“아직 멀었어. 덤벼!”

* * *

결투 대회 당일.

신주오령의 회의장 뒤편에 세워진 거대한 연무장 중심에 고풍스러운 형태의 대련장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이번 축제 중 가장 큰 행사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결투 대회를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새벽부터 연무장을 찾았다.

아침 식사를 끝냈을 시간이 되었을 무렵에는 연무장 전체가 사람으로 가득 차서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대되네. 누가 이기려나?”

“지그하르트 아니야? 백검룡을 이길 사람이 없어 보이는데?”

“나이대가 서른이 아니라, 마흔까지잖아. 라온 지그하르트도 장담은 못 하지.”

“맞아. 야칸 가문의 어린 가주 정도면 백검룡도 이길 수 있을걸?”

“유펜 시의 수호대장도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관객들은 오늘 결투 대회에 누가 나올 것 같고, 누가 이길 것 같은지를 토론하느라 먹을 때보다 바쁘게 혀를 놀렸다.

“너무 작은 것만 보고 있네.”

머리가 벗겨진 도박꾼 한 명이 혀를 차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말이오?”

“신주오령의 설립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인데, 그들이 가만히 있겠어? 꼭꼭 숨겨둔 고수들을 내보내서 본인들의 실력을 자랑하겠지.”

“음, 확실히….”

“그렇겠네. 이름을 알리기 좋은 기회니까.”

“육황이 참여하면 오히려 좋아할 거야. 그들을 무너뜨리면서 명성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도박꾼은 돈을 따고 싶으면 신주오령이 나왔을 때 걸라고 말하며 손짓했다.

“그래도 라온 지그하르트는 다르지 않나? 검룡의 이명이 있는데?”

“그래봐야 아직 21살이잖아. 신주오령 수준이라면 마흔 아래에 백검룡보다 강한 무인이 있겠지.”

“하긴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해.”

“거기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못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광풍단은 어린 축에서는 강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은 미숙해.”

도박꾼들이 대화에 참여하며 이젠 객관적으로 누가 이길지를 판단하는 판이 열렸다.

해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신주오령의 주인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고, 대련장 근처에 마련된 귀빈석의 자리도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지그하르트다!”

“백검룡이 가장 앞에 있어!”

“왔네. 그런데 눈빛들이 왜….”

관객들은 라온과 광풍대를 보다가 입술을 떨었다.

다른 참여자들과 달리 지그하르트 검사들의 눈빛은 전쟁을 앞에 둔 군인처럼 시퍼렇게 번쩍였다.

다만 라온과 광풍대 검사들은 눈빛에 깃든 광기와 달리 조용히 대기석에 앉았다.

잠시 후 10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단상 위로 희극제가 올라왔다.

하늘을 걷는 듯한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걸음에 연무장 전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오!”

“희극제 님이시다!”

“백경! 백경! 백경!”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희극제는 연무장에 앉은 관객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한 뒤 대련장의 중심에 섰다.

“무인들의 축제는 그 무를 겨뤄야 끝이 나는 법이죠. 오늘은 이곳까지 찾아와주신 무인분들이 스스로 갈고 닦은 무를 겨루며 의를 드높이는 친목의 장이 될 겁니다. 다만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아공간이 열리고 네모난 상자가 튀어나왔다.

희극제는 상자를 위로 들어 올린 후 뚜껑을 열었다. 붉은 구슬에서 겨울의 냉기를 지우는 어마어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용암지대에서 산다는 영물. 라바시리의 심장입니다.”

그녀는 모두에게 라바시리의 심장을 구경시켜준 후 다시 뚜껑을 닫았다.

“이번 대회의 승자에겐 이 영약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대로 섭취하실 수 있게 냉기의 영약도 함께 제공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신주오령 최고다!”

“희극제 만세!”

어마어마한 상품에 연무장 전체가 파도치듯 일렁거렸다.

“시간을 오래 끌 필요는 없으니, 바로 결투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대회는 마흔 아래의 젊은 무인과 각 단체의 수장을 제외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승자는 남고, 패자는 내려가는 아주 간단한 방식입니다.”

희극제는 도전자가 나오지 않는 순간 결투 종료라고 외치며 대련장을 내려갔다.

후우웅!

그녀가 내려가자마자, 풀잎을 튕기듯 가볍게 대련장으로 올라온 남자가 있었다.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몸놀림이 가벼웠다.

“카탄 기사단의 제론이라고 합니다!”

그는 본인을 소개하고, 자신에게 도전할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라온은 바로 옆에 있는 크레인을 어깨로 쳤다.

“…또 저예요?”

“고유 크레인.”

“에휴….”

크레인이 이를 악물고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지그하르트의 크레인입니다!”

크레인은 대련장의 중심으로 다가가서 제론에게 고개를 숙였다.

심판이 다가와서 두 사람의 신분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지그하르트의 크레인, 카탄 기사단의 제론의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이 손을 내리고 물러서자마자, 크레인이 땅을 박찼다.

“자, 잠깐 인사는 제대로 나누고….”

“그딴 거 몰라!”

크레인은 훼까닥 돌아간 눈동자를 빛내며 햇살처럼 번지는 검격을 쏟아냈다.

캬아아아앙!

제론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이 치사한….”

“치사? 너 여기서 지면 어떻게 되지?”

“그, 그게 무슨 말이요!”

“너는 져봐야 혼 좀 나고 말겠지. 그런데 우리는 지면….”

크레인의 눈동자에 샛노란 광기가 차올랐다. 그는 악을 지르며 검기를 쏘아냈다.

“뒈진다고!”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85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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