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83화 (483/653)

제483화

신주오령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처음은 각 세력에 관한 설명이었다.

희극제는 차분하게, 귀살창은 혈기 넘치게, 사검마는 음울하게, 마지막으로 악검후는 건조하게. 각자 본인들의 집단이 어떻게 성장했고, 무슨 목표를 가졌는지를 읊어주었다.

그 이후에는 각 세력이 최근에 무슨 일을 해왔는지에 대한 보고였다. 당연하겠지만, 악행에 관한 건 하나도 없었고 전부 오마와 싸우거나, 선행을 베푼 일뿐이었다.

라온은 신주오령의 수장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트집을 잡지 않고, 회의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회의를 주도하는 건 당연히 희극제였고, 다른 세 사람은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유연한 대답만 주절거렸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단했다.

신주오령은 육황과 중립 세력을 적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대륙 수호를 위해 오마와 싸울 준비까지 마쳤다고 한다.

즉, 적이 아니니까 고깝게 보지 말고, 으쌰으쌰해서 서로 잘 지내보자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들이 저희의 진심입니다.”

희극제는 대륙의 모든 세력들과 잘 지내보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드리고 싶군요!”

“요즘 들려오는 선행의 대부분은 신주오령에 관한 것들이더군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렇게 먼저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신주오령의 설립을 축하한다고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았기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이곳에 초대된 중립 세력들도 한가락 하는 곳들이지만, 신주오령과는 비교할 수 없기에 대우를 받는 느낌일 것이다.

다만 라온은 친근해진 회의장의 온기에 빠지지 않은 채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다 어리숙하군.’

희극제와 정면에서 부딪쳤기에 알고 있다. 신주오령의 진짜 목적은 중립 세력과 친분을 나누는 것 따위가 아니다.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중립 세력을 이용하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감사합니다.”

희극제가 다시 고개를 숙인 후 테이블 앞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저희만이 아니라, 젊은 층도 친분을 다지게 하기 위해서 마흔 이하의 무인만 출전이 가능한 결투 대회를 열려고 합니다. 특별한 상품이 나올 테니, 참여를 독려해주세요.”

그녀는 자기들끼리 뜻을 모았으니, 어린 친구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며 웃었다.

“아이들이 모일 일이 없었는데, 좋은 생각입니다!”

“아리엘 님께서 특별하다고 하실 정도의 상품이라니, 기대가 되는군요!”

“저희 애들을 모두 출전시키겠습니다!”

“마흔인가? 아깝게도 나는 못 나가겠군.”

“이미 쉰이 한참 지났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재밌을 것 같다며 서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흔 이하라고 해도 가문을 대표하시는 분은 출전할 수 없답니다.”

희극제의 시선이 느릿하게 라온을 향해 굴러갔다. 너도 대표니까 나올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말씀만 더 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듯 회의 테이블의 중앙으로 나오며 손을 들어 올렸다.

“여러분과 이렇게 말이 잘 통할 줄 몰랐었다 보니,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시끌벅적했던 회의장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지금은 희극제가 이곳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끼리 임시로 동맹을 맺는 게 어떨까요?”

“도, 동맹?”

“갑자기 동맹은 좀….”

“너무 급한 거 아니오?”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갑작스럽게 나온 동맹이라는 단어에 놀라 눈을 부릅떴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대륙의 정황은 좋지 않아요.”

희극제가 직사각형 테이블의 중심에서 걸음을 멈췄다. 창을 뚫고 쏟아지는 월광이 그녀의 존재를 더욱 신성스럽게 그려냈다.

“흑탑과 백혈교, 남북맹은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에덴은 숨어서 귀신들을 키우고 있죠. 거기다 얼마 전에는 성검련의 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정보도 있었어요.”

그녀의 묵직한 음성이 고요했던 회의장을 짓눌렀다.

“오, 오마?”

“성검련의 검귀들이 다시 세상에 나오려는 건가….”

“에덴의 새로운 귀신이라니,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나, 나도 들었어. 유르트 시가 백혈교에 습격을 받아서 잿더미조차 남지 않았다고 하더군.”

“흑탑도 마찬가지야. 부탑주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오마가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단순히 등장만 한 게 아니에요. 이름만 같이 놓았던 괴물들이 연계해서 움직이고 있어요.”

희극제가 눈꺼풀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오싹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 눈을 마주친 중립 세력의 무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대륙에 언제 화마가 치솟을지 모르기에 여러분들이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녀가 다시 테이블의 끝으로 돌아가 등을 돌렸다.

“음?”

“도, 도와달라니….”

“동맹이라고 하시더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수장들은 희극제의 도와달라는 말에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저희 신주오령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죠. 무력은 자신 있지만, 아직 기반이 부족합니다. 그 부족함을 여러분들이 함께하여 채워주셨으면 합니다.”

희극제가 동맹을 도와달라는 말로 돌려 말하자, 수장들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음성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으로 변하며 회의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확실히 서로에게 좋은 방식이네. 주고받는… 음?’

라온이 생각을 정리하다가 눈매를 찌푸렸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서로에게 좋은 방식일 리가 있겠는가.

이곳에 있는 이들끼리 동맹을 맺으면 명성은 전부 신주오령이 먹고, 화살받이는 전부 중립 세력이 하게 될 게 뻔하다. 절대 좋은 방식일 수가 없었다.

‘근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언제라도 트집을 잡을 생각만 했는데,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정상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설마….’

라온이 혀끝을 살짝 씹었다.

‘희극제의 짓인가?’

그녀의 음성은 오러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귀에 때려 박듯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우우우웅!

바로 불의 고리를 운용했다. 일곱 개의 고리가 공명하며 회의장 내부의 기운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오러는 아니야.’

희극제는 자그마한 오러도 운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회의장 내부의 공기가 요동친다. 음성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건 확실했다.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냐.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숨을 툭 뱉었다.

‘저게 뭔데?’

-뭐긴 뭐야. 의념이지.

녀석이 희극제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업적을 쌓아서 영혼의 격을 높이고, 그 격을 바탕으로 펼치는 기예가 바로 의념이니라. 즉, 의념은 영혼의 힘. 저 여자는 본인의 음성에 의념을 담아서 저 멍청이들을 설득하고 있느니라.

‘그게 가능해?’

-과하면 역효과가 나지만, 저 녀석은 한두 번이 아닌지 아주 매끄럽구나.

‘별 방식이 다 있군.’

그저 무학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식으로 쓸 줄은 몰랐다. 역시 희극제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저 인간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니라. 부하들을 구하겠다고 찾아왔던 건 모두 연기였던 것 같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믿고 싶었느니라.

라스는 부하들을 생각하는 이들 중에 악당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매번 느끼지만, 부하에 관해서는 참으로 여린 마왕이다.

‘어쨌든 저게 의념이 맞다는 거지.’

-그렇느니라. 다만 깨기는 쉽지 않을 것이야.

‘일단 해보고.’

라온은 계속해서 목소리에 의념을 담는 희극제를 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는 좋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신주오령과 함께라니 영광입니다!”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당장 동맹 합의서를 만들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악의가 담긴 기운이 아니기에 본인들이 무엇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적합한 이유와 희극제의 말솜씨 그리고 그녀가 펼친 의념이 만들어낸 완벽한 결과였다.

“저희를 이해해주시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희극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올리는 중립 세력의 수장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숙였다.

“마침 이 자리에 지그하르트와 마탑에서 오신 손님들도 계시니, 이 동맹의 증인이 되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자신감을 얻은 듯 이쪽을 보며 달큰한 미소를 지었다.

‘저 여자….’

라온이 희극제의 눈을 마주하며 손끝을 매만졌다.

‘이게 목적이었나?’

중립 세력과 동맹을 맺고, 육황을 증인으로 내세워서 물릴 수 없게 만드는 것.

신주오령은 분명 강인한 무력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숫자와 명성이 부족하다. 그 빈틈을 중립 세력으로 채우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저들은 지금 수준에서 멈출 생각 없이 더욱 규모를 키우려는 것 같았다.

빨리 동맹을 하자고 외치는 덤트칸이나, 바이튼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희극제의 술수에 넘어가는 꼴은 못 보지.

‘내가 여기에 온 건 깽판을 치기 위해서니까.’

허수아비가 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기에 지금이 나설 때였다.

라온이 탁한 숨을 내뱉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냉랭한 눈으로 희극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증인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모두 허언을 하실 분들은 아니지만, 이런 기쁜 날에 함께 하고 계시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무얼 위한 동맹입니까?”

불의 고리를 통해 느낀 희극제와 비슷한 느낌으로 목소리에 의념을 담았다. 그녀처럼 매끄럽게 운용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따라 하려고 시도했다.

“말씀드렸듯이 난잡해진 대륙의 정세에 대비하기 위해서….”

“어떻게 대비를 하죠? 전쟁이 벌어질 때 누가 앞에 섭니까? 도와주었을 때의 대가는 무엇이죠? 전리품은 누가 가지고. 사상자에 대한 보상은? 동맹이 아니라, 신주오령의 이름 아래에 모이는 거 아닙니까?”

퉁명스러운 말투 속에 희극제에게 홀린 사람들을 깨우겠다는 강한 의념을 담았다. 사실 아직 의념이 익숙하지 않기에 조절할 필요 없이 알아서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찌지지직!

스파크 튀는 듯한 이질적인 소리가 울리며 희극제가 만들어 놓은 부드러운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졌다.

“으음….”

“화, 확실히 그건 정하고 도장을 찍어야지.”

“맞아. 동맹은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닌데, 왜 이리 흥분해서….”

“분위기에 취할 때가 아니었어.”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동맹을 하더라도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건….

라스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힌트 덕분이야.’

-본왕의 힌트?

‘과하면 역효과가 난다며. 그걸 이용했지.’

라스가 과하면 역효과가 난다고 하길래 일부러 있는 대로 힘을 담아서 희극제가 만들어 놓은 의념의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상황을 보니,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진짜 이 치사한 놈! 맨날 정보만 빼가고, 밥은 안 주고!

‘…미안.’

그것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아….”

희극제의 눈동자가 유리창에 비친 달빛처럼 휘어진다. 처음 보는 눈빛.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았다.

“그렇죠. 그것부터 조율해야죠.”

그녀는 경악한 상황에서도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봐도 희극제의 진짜 힘은 무력이 아니라, 저 정신력이었다.

“신주오령은 그저 틈만을 노리나 봅니다.”

라온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누르며 턱을 모로 틀었다.

“그게 무슨….”

“이름을 띄울 때도 육황과 오마가 서로를 견제하는 틈을 비집고 들어왔고,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듯이 동맹을 해서 다른 세력들을 등에 업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려는….”

“스스로의 힘에는 자신이 없는 겁니까?”

코웃음을 치며 손을 저었다.

“지그하르트는 대륙에 자신들의 피와 살을 뿌리고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라온의 눈동자 위로 어둠을 가르는 붉은 벼락이 번쩍였다.

“남의 피, 남의 칼, 남의 위업을 훔치려고만 한다면 평생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신주오령 그리고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라온이라는 인간 자체에서 피어나는 존재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전 여기까지 하죠.”

라온은 차디찬 눈동자로 모두를 스치고서 등을 돌렸다.

“저도 가보겠습니다.”

데닝로즈가 기다렸다는 듯 일어섰고, 엔시아는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일어났다. 여전히 들리는 달칵 소리. 이 여자 진짜 멀린 과다.

“크하하하하!”

귀살창이 머리를 부여잡은 채 폭소하며 걸어 나왔다.

“정말이지 너 마음에 쏙 든다. 마창회에 안 올거면 나랑 의형제라도 맺을래?”

“나이가 안 맞잖아.”

“의형제는 그런 거 안 가려!”

그는 희극제를 저렇게 무너뜨린 건 처음 본다며 낄낄 웃었다.

“아, 그리고 내일모레에 열리는 대회에 꼭 와라. 좋은 거 준비해 놨으니까.”

“생각해보도록 하지.”

라온은 고개를 끄덕인 후 회의장을 나섰다. 논쟁이 벌어졌는지 내부가 시끄러웠다.

“두 분 괜찮으십니까?”

“네. 시원하더군요.”

데닝로즈는 기분이 풀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안색이 밝은 것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었나요?”

엔시아는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든 상관없이 그저 사진만 찍으면 그만인 것 같았다.

“하….”

어이가 없어서 눈을 껌뻑일 때 회의장의 문이 다시 열리고, 유리아가 걸어 나왔다. 그는 입매를 꾹 다문 채 강인한 시선으로 이쪽을 내려보았다.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라온이 유리아의 곰 같은 체구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

유리아는 대답 없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꼭 당장이라도 돌진해올 것 같은 들소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는 떡 벌어진 어깨를 떨다가 고개를 젓고서 바로 회의장을 떠났다.

라온은 유리아의 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쟨 뭐야.’

* * *

라온은 데닝로즈, 엔시아와 함께 숙소 앞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희극제가 너무 말이 많았었기에 이미 영업이 끝났을 것 같지만, 라스의 재촉에 일단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음?”

불이 켜져 있네.

당연히 문을 닫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안쪽에서 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빠, 빨리! 빨리 들어가거라!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광풍대가 가벼운 안주를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 이제 왔어요?”

“늦으셨네요!”

입구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크레인과 도리안이 손을 흔들었다.

“회의는 잘 끝났어?”

안쪽에 앉아 있던 버렌이 빙긋 웃었다.

“무슨 회의가 이렇게 오래 걸려!”

마르타는 지금이 몇 시냐고 말하며 인상을 구겼다.

“빨리 앉아.”

루난은 본인의 옆자리를 팡팡 치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음….”

라온이 광풍단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음식 냄새도 거의 없었고, 테이블에 있는 건 마른 안주와 맥주 뿐이었다.

“밥 안 먹었어?”

“네가 안 왔는데 어떻게 먹어.”

마르타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며 혀를 찼다.

“맞아. 물주가 없잖냐.”

버렌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기다렸어.”

루난은 빨리 앉으라는 듯 더 빠르게 의자를 두드렸다.

“이제 오셨군요!”

주방에서 중년의 여인이 나와 고개를 숙였다. 예약할 때 보았던 점장이었다.

“얘들이 억지로 기다리게 한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광풍대분들께서 추가금을 내시면서 라온 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시더군요.”

점장은 돈은 충분히 받았다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지금부터 바로 식사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점장은 재료와 사람은 다 있다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해.”

라온이 광풍대 검사들을 보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너희나 빨리 먹고 들어가지.”

말은 퉁명스럽게 뱉었지만, 속은 이상할 정도로 따스해졌다.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던 광풍대를 보자, 오랜 임무 후에 별관에 돌아간 기분이었다.

“부끄러워하는 거 존잘….”

“후후.”

엔시아가 어느새 앞으로 이동해서 사진기를 누르고 있었다. 데닝로즈는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린 채 미소를 지었다.

-크흥!

코를 먹는 소리에 우측을 보았다. 라스가 붉어진 채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짜식들아!

광풍단에 감동을 한 듯 녀석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좋느니라! 본왕이 너희들은 전부 챙겨주겠느니라! 어린 것들이 의리가 뭔지 알고 있느니라!

라스는 광풍대가 모두 마음에 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쉬운 녀석이었다.

라온이 피식 웃고서 루난이 팡팡 두드린 자리에 앉았다.

“전부 모여.”

아직 식사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기에 먼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단순한 연합은 아니겠네.”

“신주오령이 중립 세력을 먹으려고 하는 거 같은데….”

“행보가 엄청 빨라.”

광풍대 검사들은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더 있어.”

라온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틀 후에 결투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마흔 아래의 무인은 누구라도 나올 수 있다고 하니, 너희 모두 참가하도록.”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니야?”

“등록하지 않고 바로 참여할 수 있는 즉석 방식이니까 상관없어요.”

데닝로즈가 대신해서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마흔 아래면 마스터도 좀 나오겠는데.”

“지금 내 수준을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좋네요.”

“저는 무조건 참여하겠습니다!”

“나도!”

광풍대 검사들은 당장 뛰고 싶은 듯 미소를 지었다.

“흔쾌히 참여한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만약 지그하르트가 우승 못 하면….”

말을 하며 뚜둑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말아쥐었다.

“너희 다 죽는 거야.”

“어….”

“그, 그건 좀….”

“거기 마스터도 올 텐데?”

“우, 우승을 하라고?”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라온이 광풍대를 보며 섬뜩한 미소를 흘렸다.

“우승자 소속이 광풍대가 아니면 가문으로 돌아가서 한 달 내내 집중력 강화 훈련이다.”

오싹하리만큼 차가운 음성에 광풍대의 웃음과 화기애애함이 뚝 끊겼다.

-이 망나니 놈아!

라스가 라온의 뒤통수를 치며 악을 질렀다.

-왜 부하들한테도 깽판을 치는 건데!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83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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