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0화
덤트칸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아리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트벤 가문의 검사들은 광풍대 검사들과의 대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아리엘이 손을 무릎에 얹으며 검사들과 비슷한 웃음을 그렸다.
“그런데 라온 님의 검술이 깨달음까지 줄 정도였나요?”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한순간에 제 강기를 자르고 들어오는데, 반격할 틈 자체가 없더군요.”
덤트칸은 그렇게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운 검격은 처음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일검에 패배했지만, 부끄럽지 않더군요. 제대로 안계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너무 짧게 끝나서 아쉽지는 않던가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일합에 깨졌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상대해준 라온에게 고마울 뿐이라 말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음, 제가 너무 시간을 뺏은 것 같군요. 밤이 늦었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덤트칸은 라온과의 대련을 통해 깨달은 바를 정리해야겠다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응접실을 떠났다.
“후우….”
아리엘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라온. 라온 지그하르트….”
이제 라온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두통이 일어나서 자연스레 관자놀이를 만지게 된다. 좋지 않은 버릇이 될 것 같았다.
‘일검에 나가떨어져 놓고 고맙다는 소리나 하다니, 한심한 놈들.’
조금 전 응접실을 떠난 트벤 가문만이 아니라, 라온에게 보냈던 모든 가문과 왕국의 무인들이 라온에게 크게 배웠다고 주절거리고 돌아갔다.
라온을 칭찬하는 주둥이를 막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속이 거북해질 지경이었다.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라온은 본인에게 친절한 이들은 친절히 대해주고, 본인에게 악의를 가진 이는 더한 악의로 답해준다.
그런 그의 성격을 예측하여 신주오령 소속이 아니면서 무학에 삶을 바친 진짜 무인들을 보냈다.
무인들의 대련 요청을 거절하면 겁쟁이로 만들 생각이었고, 대련을 받아들인 후 적당히 상대한다면 무인의 신념을 모르는 무지렁이로 소문을 낼 예정이었다.
라온과 지그하르트의 무학을 빼내는 건 덤이었다.
‘하지만….’
다 망가졌어.
라온은 무인들의 대련 신청을 정중하게 받아들인 뒤 정작 대련에서는 일검에 박살을 내버렸다.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야.’
지금까지 봐온 라온의 성격이라면 정중하게 다가온 무인들을 단칼에 잘라낼 게 아니라, 지도 대련처럼 적당히 상대를 해줘야 했다.
고작 21살짜리 어린 놈을 파악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아리엘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누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메케인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택을 휘감고 있는 안개 때문에 라온과 광풍대가 어떻게 싸웠는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분명 옅은 안개인데, 내부를 보려고만 하면 진해진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흑장미 계집이 깜찍한 짓을 한 거예요.”
“암시장주의 제자 말입니까?”
“네. 진법을 배운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유선운무진을 설치할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아리엔이 입술을 비틀며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직접 볼 걸 그랬어.’
수하들이 알아서 잘하리라 믿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데닝로즈가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다.
정말이지 라온과 관련되면 일이 제대로 풀리는 경우가 없었다.
“엔시아 요난도 아직 그 안에 있나요?”
“예.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지그하르트의 숙소에 있을 겁니다. 요난 가문에게 배정해준 숙소는 아예 쓰질 않더군요.”
“그쪽이랑은 면을 터야 하는데, 귀찮게 됐네요.”
데닝로즈는 조롱하기 위해서 불렀지만, 요난 가문은 정말 친분을 쌓기 위해서 초대장을 보냈다.
다만 그녀는 인사조차 오지 않고, 바로 지그하르트쪽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둘 다 라온에게 목숨을 구제받았기 때문인가.’
사람에게 생명의 은인은 무엇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데닝로즈와 엔시아는 라온에게 도움을 받은 후 그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냥 놔둬선 안 되겠어요.”
“주군.”
아리엘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릴 때 메케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놈. 귀살창에게서도 금화 4,000개를 뜯어냈다고 합니다.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 놈이 분명하니, 흥분해서는 안 됩니다.”
“알고 있어요.”
메케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살창이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뜯겼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지.’
신주오령에서 라온의 손으로 넘어간 금화가 5,500개에 가깝다.
상단 하나를 세울 수도 있는 무지막지한 금액이었기에 남의 일이라고 비웃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아리엘이 새하얀 손가락으로 붉은 입술을 매만졌다.
“이번에 움직일 건 제가 아니니까.”
“예?”
“신주오령의 수장들이 모이는 회의에 그 셋을 초대할 생각이에요. 그러면….”
그녀가 붉게 물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누르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판이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요.”
* * *
꺼뭇한 새벽.
리메르가 텅 빈 골목을 지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다 타짜밖에 없지?”
그가 텅 빈 주머니를 툭툭 털며 고개를 흔들었다.
“라온 그 녀석은 대체 어떻게 따는 거야!”
어느 도박장에 가도 타짜와 고수밖에 안 보이는데, 상대가 누구든 돈을 따먹는 라온의 도박 실력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기술을 쓰는 게 분명한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놀라웠다.
“아이씨. 그런 좋은 기술이 있으면 공유 좀 하지!”
리메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벽을 걷어찼다.
“아니야. 따지고 보면 내가 잃은 것도 전부 고놈 때문이잖아!”
라온이 금화 6,000개가량을 따버리는 바람에 바레네에 있는 모든 도박장에 비상이 걸렸다.
보통은 호구들에게 적당히 져주고, 훗날 몇 배 크게 빨아먹는 게 도박장의 수법인데, 놈들은 라온에게 털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도박장에 들어오는 손님을 모조리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덕분에 도박의 신이라 불리는 자신 역시 땡전 한푼 남기지 않고 모조리 털려버렸다.
밥 처먹고 도박만 하는 건지 하나 같이 진짜 선수들이었다.
“아, 밥 먹고 도박만 하는 놈들 맞… 커헉!”
하늘을 보며 인상을 찌푸릴 때 옆구리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뻐어억!
그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아아악! 더럽게 아프….”
리메르가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타나 발로 입을 틀어막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보라색 장발이 살랑거리는 고귀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처음 보는 듯하지만,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셰, 셰릴?”
“입 닥쳐.”
“너 그 꼴은 뭐냐! 무슨 귀족이라도 되려고… 케헥!”
“닥치라고 했지.”
리메르가 비웃음을 흘릴 때 셰릴이 그의 쇄골을 밟았다.
“이게 대가리 칼 맞았나. 지그하르트를 대표해서 와 놓고, 도박장만 싸돌아다녀? 진짜 미쳤어?”
“라, 라온도 갔는데….”
“걔는 신주오령 놈들을 자극하려고 간 거고! 넌 진짜잖아!”
셰릴이 이를 갈며 리메르를 걷어찼다.
“아하하….”
리메르가 얻어맞은 등을 매만지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놀고 있어도 라온이 다 알아서 해준다니까. 나랑 다르게 믿을 수 있는 녀석이라고.”
그는 라온만 믿으면 일이 다 잘 풀릴 거라며 손을 저었다.
“됐고. 가주님께 보낼 보고서 꺼내 봐.”
“어, 그게….”
“오늘은 보내야 하잖아. 빨리!”
“으응.”
리메르가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보고서 꼴 봐라.”
셰릴이 리메르의 손에 있던 보고서를 채가서 펼쳤다.
“라온이 돈을 무지하게 땄습니다. 돌아오면 전부 회수해서 가문의 배를 채우기를 추천 드립니다. 물론 정보를 제공한 저한테는 10%의 보상이 있어야….”
그녀가 보고서를 읽다 말고 눈을 내리감았다.
“흐읍!”
리메르가 셰릴의 눈치를 보며 어깨를 떨었다.
“너 진짜 벼락 맞아서 뒤지고 싶냐?”
“아니, 돈 딴 건 사실이잖아! 그게 가문을 위해서 쓰이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그냥 배가 아픈 거잖아!”
“끄응….”
그는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시 써.”
셰릴은 리메르의 보고서를 단숨에 태워버리고, 눈을 부라렸다.
“아니면 여기서 죽던가.”
“알겠다. 알겠어. 자고 나서 다시 쓸 테니까. 너도 들키지 않게 이만하고 가.”
리메르가 몸을 일으키며 손을 휘휘 저었다.
“지금은 못 들어가. 라온이 무아지경에 들어갔으니까.”
셰릴이 리메르의 어깨를 잡으며 지그하르트 숙소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무아지경?”
리메르가 숙소를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누구는 평생 검을 휘둘러도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한데, 고놈은 왜 거길 제집처럼 들어가는 거야!”
부러워하는 말과 달리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이제 냉기와 열기를 같이 쓰게 되겠는데.”
“냉기와 열기?”
“그래. 작년부터 그 둘을 동시에 운용하려고 용을 쓰더라고. 아마 그 깨달음일 거야.”
“그거라면 네가 힌트를 줬으면 됐잖아.”
“다 알려주게 되면 자기 것으로 만들기 힘든 법이라,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어. 물론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지만.”
그는 라온이 진짜 난놈이라며 히죽였다.
“그럼 라온이 깨어날 때까지 여기에 있어야겠네.”
리메르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셰릴? 돈 좀 있으면 아침에 먹을 해장 스튜 하나만….”
“야.”
셰릴이 리메르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타박할 때와는 결이 다른 시선이었다.
“너 맞지도 않는 옷을 언제까지 입을 건데. 시간도 흐를 만큼 흘렀잖아.”
“엘프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니까.”
리메르의 셰릴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조금 전과는 기질이 달랐다.
“하아….”
셰릴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해야겠어.”
“뭘?”
“성검련.”
성검련이라는 말에 리메르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마른 석고처럼 부서졌다.
“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있어.”
“성검련….”
리메르의 허무함이 담겨 있던 눈동자에 귀기 서린 빛이 스쳤다.
“죽지 않고 산 보람이 있네.”
* * *
라온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분명 저녁이었는데, 천천히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졌던 건가.’
흐릿한 기억이 돌아온다. 데닝로즈, 엔시아와 대화를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게 떠올랐다.
‘사진기 때문이었지.’
데닝로즈가 떨어뜨린 사진을 보고, 사진기의 원리가 궁금해져서 엔시아에게 질문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가장 갈망하던 깨달음이었지.’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동시 운용.
작년부터 많은 시간을 들이고도 실패했던 냉기와 열기의 연계 운용에 대한 물음이 드디어 풀리게 되었다.
‘답은 두 속성을 바꾸는 게 아니라, 다른 속성을 이용하는 거였어.’
지금 경지로 불꽃과 서리의 기운을 한 번에 운용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른 속성을 이용했어야 했다.
‘답은 내 안에 있었지.’
바람 그리고 성속성.
현재 내 단전 내부에는 만화공의 열기와 글래시아의 냉기만이 아니라, 리메르에게 얻었던 바람과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도 함께 하고 있었다.
바람과 신성의 기운을 이용하여 냉기와 열기를 흘려보낸다면 상반되는 두 기운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어디 한 번….’
다시 눈을 감고,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운용하려고 할 때 주변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광풍대 전원이 검병을 움켜쥔 채 숙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몰랐는데, 모두가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지켜주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일어났군. 늦잠이다.”
버렌이 검을 쥐고 있던 손으로 본인의 뒷목을 매만졌다.
“하룻밤이면 전보다 빠르네. 제대로 정리는 했냐?”
마르타가 등을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맨날 라온만 들어가.”
루난은 매번 혼자 무아지경에 빠진다며 입술을 내밀었다.
“왜 혼자만 강해지는 건데요!”
“대체 어디서 깨달음을 얻는 거야!”
“우리도 좀 데리고 가라고!”
“여기서 더 차이가 나면 어쩌라는 겁니까!”
광풍대 검사들도 반항하듯 손을 휘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라온이 검사들을 돌아보며 연한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광풍대 검사들이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벽 공기를 마시고 있음에도 가슴이 따스해졌다.
“고맙다.”
민망한 인사를 원하지 않는 검사들의 바람을 흘리며 솔직하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두 분도 감사드립니다.”
라온은 우측에서 대기하던 엔시아와 데닝로즈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데닝로즈는 잔잔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제 진을 해제해야겠다며 바늘집을 챙겼다.
드레스 밑단에는 사진이 몇 장 더 추가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사진 안 찍었는데, 이제 찍어도 되죠?”
엔시아는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봐 지금까지 사진을 참았다고, 다시 찍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중독 증세가 있다는데, 거짓말이 아닌지 정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라온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멀린과라 말려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야아!
엔시아의 포즈 요청을 들어주고 있을 때 팔찌에서 라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 라스?’
라스의 솜사탕 몸땡이가 평소와 달리 뻘겋게 변해 있어서 못 알아볼 뻔했다
‘너 왜 몸 색이 빨개졌냐?’
-네놈 때문이잖느냐!
‘내가 왜?’
-네놈이 약속을 어긴 것 때문에 분노가 차올라서 이렇게 변했느니라!
라스는 어제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화병이 났다며 멱살을 잡았다.
‘아, 그러네.’
갑자기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면서 저녁으로 랍스터와 족발을 먹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라스가 화낼만한 상황이 맞았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일부러 그런 거잖아! 본왕을 억까하려고!
‘절대 아니야. 무아지경이라는 현상 자체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니, 네놈은 다르니라! 전에는 화장실 변기에서 무아지경에 빠졌잖느냐! 세상에 너 같은 놈은 없단 말이다!
라스는 분명 알면서 사기를 쳤을 거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녀석을 휘감은 붉은색이 점점 진해졌다.
-역시 인간은 믿을 수가 없느니라!
‘그거 보통 마족이 하는 말 아니냐?’
라스는 인간이 마족에게 할 말을 역으로 외치며 몸을 홱 돌렸다. 단단히 삐진 것 같았다.
‘대신 오늘 저녁은 더 화려하게 먹자. 랍스터, 족발, 새우 소금구이랑 바지락 술찜까지. 어때?”
-안 믿느니라!
‘지금 예약하고 올까?’
-…….
예약한다고 하자, 빨갛게 달아올랐던 라스의 몸이 천천히 퍼래지기 시작했다.
‘와플 아이스크림도 있던데, 그건 후식으로 먹고.’
-와, 와플 아스크림 세트….
어느새 포도 맛으로 돌아온 솜사탕이 슬쩍 눈동자를 돌렸다.
-진짜냐?
* * *
라온은 광풍대에게 휴식을 지시한 후 홀로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차분히 숨을 고르며 눈을 내리감았다.
‘급할 필요는 없어.’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방식대로 천천히 풀어내기만 하면 된다.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운용하기 전에 먼저 단전 내부를 배회하던 바람의 기운을 끌어냈다.
따스함과 서늘함을 모두 갖추고 있는 녹풍이 전신으로 퍼지며 포장지처럼 마나회로를 휘감았다.
고오오오오!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운용했다. 바람의 기운을 타고 오른 냉기와 열기가 더 빠르고, 강렬하게 내달리며 중단의 마나회로를 가득 채웠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운용하다 보면 서로 교차되는 마나회로가 존재한다. 그 전쟁터는 바람의 기운이 아니라,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으로 채웠다.
우우우웅!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듯이 신성에 의해서 나누어진 두 기운이 경합하지 않고, 각자의 길을 나아갔다.
콰아아아아!
라온이 한 호흡을 내쉬며 끌어낸 냉기와 열기를 양손으로 배출했다.
오른손에서 만화공의 불벽이 타오르고, 왼손에서 글래시아의 폭풍이 치솟았다.
불과 냉기.
작년부터 이뤄내지 못했던 목표가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게 다가 아니지.’
본래 바람은 불길을 더 크게 키우고, 서리를 더 차디차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나회로를 휘감은 바람이 깃들었기에 만화공과 글래시아 모두 따로 운용할 때보다 더 강맹한 기운을 뿜어냈다.
‘모든 무학이 더 강해지겠… 음?’
깨달음을 체화한 기쁨에 미소를 지으려 할 때 심상 속에 만들어 두었던 불꽃의 검과 서리의 검이 일순간 약동했다.
태양과 달처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두 자루의 검이 심상의 세계에 거대한 흐름을 일으켰다.
고오오오오!
검에 깃들어 있던 열기와 냉기가 땅으로 번지며 아주 심상의 세계가 아주 천천히 붉고,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심상도 바뀌고 있어.’
작은 깨달음이 이어지고, 이어지며 심상의 세계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예상보다 빠르게 미완성의 검계현신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다만….’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오러의 소모가 막심한 것도 있지만, 네 속성을 한 번에 운용하다 보니 정신적인 피로도 극심했다.
적응될 때까지 많은 수련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제야 깨닫다니, 한심 하느니라.
라스가 허접하다고 중얼거리며 손을 저었다.
‘뭐?’
-네놈의 몸에는 재료가 다 있었는데 제대로 쓰지를 못했느니라.
녀석은 처음부터 가능했던 일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거지.’
라온은 괜찮다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끙….
라스는 그런 라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 망할 놈은 정말 무엇이냐….’
겉으로 뱉은 말과 달리 지금의 깨달음을 얻으려면 아무리 못해도 내년은 되어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랜드 마스터 이후에야 성공할 거라 생각했고, 만약 깨달아도 실행하는 건 더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저 미친놈은 그걸 바로 성공해버렸다.
‘진짜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성격도 그렇고, 재능도 그렇고 정말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인간도 마족도 아닌 다른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 무슨 생각 하냐.”
라온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라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무슨 생각이겠느냐! 당연히 네놈 때문에 못 먹은 족발을 생각하지!
‘너도 예약한 거 봤잖아. 오늘은 약속했던 대로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매번 말하는 그놈의 풀코스는 본 적도 없느니라! 실존하기는 하냐고!
‘이번에는 진짜야.’
라스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손을 저을 때 숙소 정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느껴보았던 기척이었다.
-부, 불안한데?
“들어오세요.”
들어오라고 말을 하자, 조용히 문이 열리고, 희극제의 비서인 메케인이 들어왔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연무장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죠?”
“주군께서 라온 님을 오령회의에 초대하셨습니다.”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80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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