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74화 (474/653)

제474화

라온은 신주오령의 도시 바레네의 성문으로 향하며 글래시아를 끌어 올렸다.

오러를 운용하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냉기를 퍼뜨렸다.

“여기 살짝 추운데?”

“그래봐야 중앙이지. 지그하르트와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야.”

“그건 그래. 장갑이랑 부츠가 안 뚫리잖아.”

조심스럽게 오러를 움직였고, 겨울이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광풍대 검사들도 그가 냉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라온이 소매를 쓸어내리며 성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신주오령의 무인들이 창을 말아 쥔 채 성벽 앞에 서 있었고, 그 앞으로 도시에 들어오는 유명인들을 구경하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로 입구가 가득 차 있었다.

‘나라면 여기서부터 시작했을 거야.’

희극제가 지그하르트에 왔을 때 일부러 검사들을 보내 정문에서부터 압박을 주도록 지시를 내렸다.

만약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똑같이 복수하기 위해서 입구에서부터 신경을 건드릴 준비를 했을 것이다.

-허어.

라스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럼 네놈이 갑자기 냉기를 뿌린 게 미쳐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당연하지.’

-본왕은 네놈의 단전에 구멍이라도 난 줄 알았느니라.

‘그게 아니라, 저 안에서 수작을 부리는 놈들을 찾으려고 그런 거야.’

미리 냉기를 뿌려둔 이유는 희극제가 구경꾼들 틈에 넣어둔 선동꾼을 찾아내기 위한 조치였다.

-대가리에 기름칠이라도 했느냐? 왜 그렇게 잘 굴러가는 건데!

라스가 턱살을 흔들며 손바닥에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뭔지 모를 글씨가 적히기는 하는데, 대체 어디로 기록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라온은 라스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정문 쪽을 보았다.

‘아예 없을 가능성도 높지만, 혹시나 있다면 한 명이 아닐 거야.’

보통 여론전을 펼치려고 할 때는 대중 속에 소수의 선동꾼을 넣는다.

지금 입구 앞에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으니, 희극제에게 지시를 받은 이들도 최소한 다섯이 넘을 것이다.

‘그럼 오히려 쉽지.’

신호만 찾으면 되니까.

선동꾼들은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조금씩 목소리를 높인다.

놈들이 움직이는 신호만 찾는다면 몇 명이 있고, 어디에 있는지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오오오.

조용히 설화의 감각을 운용했다. 미리 깔아둔 오러에 8성에 이른 설화의 감각이 더해지자, 성문 앞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손에 닿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일단 위병은 아니고.’

위병들의 눈빛은 신기한 동물을 본 듯 반짝일 뿐 정면만 보고 있어서 어떠한 신호도 보낼 수 없었다.

‘그럼 구경꾼들 사이에 있나?’

라온이 구경꾼들에게 감각을 집중했다. 눈동자의 움직임, 얼굴 근육, 손짓과 턱짓을 모두 살펴보았지만,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없는 거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겠네.’

구경꾼들을 모두 살펴도 신호를 느낄 수가 없었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음?’

희극제의 성격에 대한 예측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우측에서 한 구경꾼의 어깨가 떨렸다.

평범한 반응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곳에 있던 여섯 명도 똑같이 우측 어깨를 가볍게 털었다.

라온이 기감을 어깨를 턴 일곱 명에게 집중했다. 모두 적당한 무력을 지녔으며 굉장히 젊었다. 선동꾼으로 움직이기 딱 좋은 이들이었다.

‘찾았다.’

라온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척 오히려 존재감을 가라앉히며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성문 앞에 선 위병 대장과 눈을 마주쳤을 때 조금 전 기척을 잡은 일곱 명이 차례로 시선을 보내왔다.

살기 같은 게 아니다. 관찰하고 탐색하는 거북한 눈길. 다른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비호감이 섞인 시선이 있었지만, 자연스러움이 달랐다.

-진짜 있었다니….

라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진짜 뭐 하는 놈이냐?

녀석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눈동자를 빠르게 깜박거렸다.

‘평범한 사람.’

라온이 가볍게 대꾸하며 미리 깔아둔 오러를 조금씩 이동시켜서 선동꾼 일곱 명의 주변으로 퍼뜨렸다.

저 기운은 자신이 원하는 순간 얇디얇은 기막이 되어 저들을 가둘 것이다.

‘이제 말할 때가 되었는데.’

보통 선동꾼들이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려고 할 때는 저렇게 노려보다가 가벼운 한 마디를 흘린다.

욕은커녕 비난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서 따지는 사람만 쪼잔해 보이게 만드는 수위일 것이다.

욕을 한다면 오히려 선동꾼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라온이 구경꾼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반쯤 지났을 무렵 우측에 있던 젊은 무인이 입을 벌렸다.

“저자가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그런 것 같네.”

“듣던 것과 달리 비실비실….”

욕도 아니고, 비난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뭐라고 따질 수가 없는 수위의 신경만 건드리는 말이었기에 저들이 희극제가 보낸 선동꾼임을 확신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비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해보라는 듯 도발하는 표정이었다.

라온이 찰나의 순간 기막을 일으켰다.

고오오오!

평소처럼 공간 자체를 감싸는 게 아니라, 비실비실이라고 말했던 놈과 자신만을 감싸는 극소의 기막이었다.

백련대주 아이언드가 사용했던 방식이지만, 이젠 그보다 더 깔끔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동태 눈깔로 뭘 꼬라보냐.”

기막 속에서 그에게만 들리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선동꾼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 되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선동꾼은 혼자서 들은 말을 모두에게 했다고 생각했는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에는 기막을 풀었기에 그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어?”

“음….”

당연히도 다른 사람들은 그를 미친놈처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왜들 그렇게 보는 건데! 조금 전에 저 자식이 나한테 한 말 못 들었냐고!”

선동꾼이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삿대질을 해댔다.

오러 메시지로 보냈다면 속지 않았겠지만, 미세한 기막이었기에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직 부족했다. 저 선동꾼을 끌고 가서 심문하기 위해선 조금 더 강한 수위의 말이 필요했다.

‘희극제에 대한 걸 꺼내 볼까.’

라온은 선동꾼이 당황하여 입을 닫은 순간 다시 기막을 일으켰다.

“어이 생선. 대가리도 물고기야? 나한테만 들리게 말하면 어떻게 해. 너희 주인이 그렇게 가르치든?”

진중한 표정을 유지한 채 말은 날 것을 담았다.

“크윽!”

이미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주인의 욕을 먹었기 때문인지 선동꾼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났다. 바로 기막을 풀었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그딴 개소리를!”

선동꾼이 이를 갈며 당장 달려들 것처럼 살기를 일으켰다.

“어….”

“왜, 왜 저래?”

“몰라. 미쳤나?”

“말은 잘하는데. 죽을 말이라서 그렇지….”

성문 앞에 선 모두가 급발진한 선동꾼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다른 선동꾼들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렸다.

“무슨 개소리야! 저놈이 욕한 걸 못 들었다고? 진짜 다들 귀에 송충이를 처넣었나!”

선동꾼은 여전히 본인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도 모른 채 분노로 턱을 떨었다.

라온이 다시 기막을 일으키며 눈매를 찡그렸다.

“고맙다. 덕분에 네 주인에게 얻을 게 많겠어.”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 이 자식이!”

이미 부동심이 깨진 선동꾼은 본인이 무엇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악만 질렀다.

-…너 진짜 마귀냐?

라스가 입을 떡 벌렸다.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녀석은 인간 중에 이렇게 사악한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어깨를 떨었다.

“애, 앨런!”

조금 전 선동꾼에게 신호를 받은 이가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이!”

마르타가 먼저 튀어 나가 선동꾼의 앞에 섰다.

“두꺼비같이 생긴 놈이 지금 우리 부대주한테 뭐랬냐? 뒤지고 싶어?”

“흐으윽….”

그녀의 기세에 질린 선동꾼들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 착각을 한 겁니다! 이 친구가 가끔 헛것을… 헉!”

선동꾼을 옹호하려던 다른 선동꾼이 손을 젓다가 목에 닿은 검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움직인 루난이 두 사람의 목에 검을 대고 있었다.

“죽일까?”

루난은 말만하라는 듯 맹한 눈을 껌벅였다. 죽인다는 말을 하면서 졸린 눈을 보이다니, 어떤 의미에선 쟤가 가장 무서웠다.

“백검룡을 뵙습니다.”

위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자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뇨.”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이쪽은 대놓고 희극제나 신주오령의 세력이다. 넘겨주는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제게 욕을 하고, 살기를 일으켰으니, 직접 처리하도록 하죠.”

“하지만 이런 일은… 크윽!”

가라앉혀 놓았던 기세를 개방했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흉폭한 기파에 위병 대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물러났다.

“이 자가 신주오령과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까?”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럼 제가 데리고 가도 되겠네요.”

“으음…”

위병대장은 입술을 씹은 채로 시선을 돌렸다.

구경꾼들 역시 모욕을 당한 사람이 직접 처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챙겨.”

“알겠습니다.”

크레인과 광풍대 검사들은 앨런이라 불린 남자와 그를 말리려고 했던 다른 선동꾼을 들쳐 매고 뒤에 따라붙었다.

“어리숙하시네.”

라온이 성문을 넘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희극제를 떠올리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조금 더 분발해보세요.”

* * *

뿌드드득!

아리엘이 손으로 잡고 있던 창문틀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분발하라고?”

저 쥐새끼 같은 놈이….

그녀는 안내인을 따라서 지그하르트의 숙소로 향하는 라온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메케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아리엘의 옆으로 다가갔다.

“앨런이 왜 역으로 잡혀서….”

“라온 지그하르트가 술수를 부렸어요.”

조금 전 라온은 본인과 앨런만을 가두는 얇디얇은 기막을 만들어냈다.

어찌나 정교한지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러에 둘러싸인 앨런도 기막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간악한 놈이야.’

아무리 라온의 오러 운용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 짧은 순간에 앨런의 정체를 파악하고, 누구도 느낄 수 없는 기막을 설치하는 건 무리다.

‘이쪽의 생각을 처음부터 읽은 게 분명해.’

처음 바레네에 들어올 때부터 앨런 같은 이들을 뿌려놓은 것을 예측하고 대비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앨런과 선동꾼들에게 노골적으로 건드리지 말고, 신경만 살살 긁으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다른 구경꾼들도 할 수 있는 말과 눈빛일 텐데, 대체 뭘 보고 찾아낸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

메케인이 희극제의 말을 알아듣고, 눈동자를 떨었다.

이 짧은 순간에 그런 판단을 내리고 앨런을 역으로 잡아먹은 라온의 심계가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아리엘이 허벅지에 끼워 놓은 보라색 책자를 매만지며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이 장면을 내가 읽지 못했다는 점이지.’

라온이 바레네로 온다는 것을 확인한 후 전체적인 천기를 읽어보았다.

이곳에서 여러 일이 터지지만, 그중에 저 장면은 나오지 않았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그하르트에 직접 찾아갔을 때도 미리 천기를 읽고 갔기에 자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라온의 움직임에 모든 계획과 계책이 깨져버렸다.

본래 천기를 읽는다고 완벽한 상황을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읽은 상황도 바뀌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아예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것 자체는 처음이었다.

후드득.

아리엘이 창틀을 움켜쥐고 있던 왼손을 들어 올렸다. 손아귀에 잡혀 있던 돌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라온 지그하르트….’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글렌이나, 다른 육황의 수장들처럼 하늘에 올랐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고작 마스터 최상급인 어린놈이 자신의 예측을 벗어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조사가 필요할 것 같군.’

이렇게 된다면 귀찮아도 머리와 몸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정보를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정보로 라온이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는 게 옳았다.

“저, 주군….”

메케인이 슬쩍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앨런과 크플이 잡혀갔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여나 찾아와서 문제 삼는다면….”

“어차피 그 둘은 백경 소속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요.”

아리엘이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미 제가 지시를 내렸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예요. 지금 보여준 행동은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고겠죠.”

라온은 앨런과 크플을 잡아간 것으로 본인과 광풍대를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제 같은 방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아마 이번 일이 모두 끝낸 후 둘을 돌려보내면서 은근히 요구를 걸어올 겁니다.”

아리엘이 붉은 입술을 가늘게 깨물었다.

‘다시 속이 도진 것 같군.’

기껏 회복한 내상이 재발한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정신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렸다.

“메케인.”

아리엘이 메케인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2단계는 건너뛰고, 3단계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메케인은 허리를 깊게 굽힌 후 집무실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30분이 지나기 전에 다시 집무실로 달려왔다.

“주, 주군! 라온 지그하르트가 찾아왔습니다!”

아리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망나니 새끼가 진짜!’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74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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