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62화 (462/653)

제462화

글렌이 완전히 몸을 돌렸다. 그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재밌는 일 이전에 조금 걸리는 말이 있구나.”

“어떤 말이….”

라온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글렌의 눈동자를 보며 손끝을 떨었다.

“철이 없다는 것. 내가 보기에 넌 철이 과하게 들었다.”

글렌은 라온이 어렸을 때부터 제 나이로 보인 적이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참고 있는 겁니다.”

라온이 민망한 웃음을 그리며 뺨을 긁적였다.

‘철이 안 들면 이상한 거니까.’

부모의 품에 안겨 있어야 할 나이에 납치되어 암살자로 살았다.

라온 지그하르트로 태어나기 이전부터 노예보다 독한 삶을 살았으니, 다른 아이와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참고 있다?”

“제 처지와 상황을 알고 있으니,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을 하며 시선을 깔았다.

“그런가….”

글렌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평소와 달리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럼 재밌는 일이라는 건 무얼 말하는 게냐.”

그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화제를 바꾸었다.

“희극제의 계획을 조금 어지럽히려 합니다.”

“희극제의 계획을?”

“예. 희극제는 본인과 백경을 건드릴 수 없도록 홀로 지그하르트에 오면서 여론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간단하지만, 깨는 건 쉽지 않죠.”

“맞는 말이다.”

글렌이 역시 희극제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희극제가 홀로 온다는 소문이 퍼진 이상 지그하르트의 움직임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가만히 당하는 건 재미없죠. 넘길 건 넘기더라도 얻을 건 최대한 뽑아내면서, 그녀에게 굴욕까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굴욕?”

“가주님이나, 전주 그리고 천검대주님은 명성과 지위 그리고 나이가 있으시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말 한번, 행동 하나 잘못했다간 수많은 가문과 왕국에 질타를 받을 테니까요. 하지만….”

라온이 다시 흥미가 피어나는 글렌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다릅니다. 그 자리에 참여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위와 실적이 있지만, 나이가 어리죠. 아직 한창 실수를 저지르고, 건방을 떨 나이 아니겠습니까.”

“실수와 건방이라.”

글렌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아이언드를 조롱했던 일을 말하는 게냐.”

“그걸 조금 더 얄밉게 해볼까 합니다.”

“…그건 확실히 재미있겠군.”

“예. 분명 재밌을 겁니다.”

라온과 글렌은 서로를 바라보며 꼭 닮은 미소를 그렸다.

“커흠.”

글렌이 먼저 시선을 돌리며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좋다. 너도 그 자리에 오도록.”

“감사합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제가 가주님과 희극제의 대화 중에 끼어들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라온이 고개를 숙였다. 이게 되어야만 희극제를 견제할 수 있기에 중요한 요청이었다.

“애들은 원래 사고를 치며 크는 법이다. 너는 어려서부터 철이 과하게 들었느니, 뒤늦은 사춘기가 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글렌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현실에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허가나 다름없었기에 이제 무서울 게 없었다.

-크으!

라스가 글렌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역시 우리 할아버지! 시원시원하네!

녀석은 감탄을 흘리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할아버지 아니라고.’

-사소한 건 신경 끄거라.

‘사소한….’

어처구니가 없어서 라스를 걷어차고 싶었지만, 글렌이 미친놈처럼 볼까 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럼 그때 보도록 하지.”

글렌이 손을 저으며 등을 돌렸다.

“얼마나 철없이 굴지 기대하마.”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라온은 떠나는 글렌의 등에 고개를 숙였다.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암시장에 연락을 좀 해놔야겠네.”

* * *

라온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라스가 포동포동한 손가락으로 아이스크림 상자를 가리켰다.

-녹기 전에 빨리 열어보아라!

‘이거 냉석으로 만든 거라 안 녹아.’

-됐고! 빨리 열라고! 할아버지가 무슨 맛을 골랐는지 궁금 하느니라!

라스는 본인을 챙기는 건 할아버지뿐이라며 헤죽거렸다.

“어휴, 알겠다. 알겠어.”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이스크림 상자를 열었다. 허연 냉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네 개의 구슬 아이스크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스크림의 색은 모두 똑같았다. 잘 구운 빵처럼 진한 황색이었다.

-어?

라스는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미, 민트초코가 없어? 거기다 맛도 다 똑같다고? 할아버지 맛알못이야?

녀석은 원하던 맛이 아니고, 맛도 전부 같은 것에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끄응, 어쩔 수 없지. 일단 구슬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에 일단 만족하겠느니라!

라스는 한 달 넘게 아이스크림을 못 먹었기 때문인지 아이스크림 자체에 만족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일단 맛부터 보자. 근데 이거 무슨 맛이냐?

‘음, 이건… 어?’

라온이 상자의 뚜껑을 보고서 눈을 부릅떴다.

‘…이거 빵 맛이야.’

-빵? 빵 괜찮지! 그래서 무슨 빵이냐! 파인애플 피자? 페퍼로니 피자빵? 아니, 단팥이랑 크림처럼 클래식한 맛도 좋으니라! 어떤 맛….

‘나딘빵.’

-에?

라스가 헤죽거리다 말고 눈동자를 돌렸다. 빛이 완전히 사라진 귀신의 눈이었다.

-너 방금 뭐라고….

‘나딘빵 맛이래.’

라스의 급격한 반응 변화에 헛웃음을 흘리며 답을 해주었다.

-거, 거짓말 마라! 그딴 고무 맛 빵으로 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말이 안 되느니라!

‘원래 특이한 거 많잖아.’

라스가 고르지 않아서 그렇지 구슬 아이스크림 매장엔 신제품으로 요상한 맛이 자주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도 나딘빵은 심하잖아! 오직 고무 맛뿐인데, 그딴 걸 좋아하는 놈이 어디에 있어!

‘난 괜찮은데.’

-네놈은 혓바닥이 변태이니라!

‘가주님도 좋아하시고.’

-그 영감탱이고 똑같이 변태이니라!

‘할아버지라며….’

-끄아아아아악!

라스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악을 질렀다.

-죽인다! 그 아이스크림 만든 놈 누구야! 이름 불러!

녀석은 당장 찾아가서 목을 조를 거라며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었다.

‘일단 먹어보자. 혹시 모르잖아.’

-으음, 그건 맞지.

라스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이니 단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라온이 구겨진 라스의 표정을 보며 구슬 아이스크림을 들었다. 나딘빵을 많이 먹었기에 별 거부감 없이 바로 입에 넣었다.

‘오.’

화악하고 입안 전체에 퍼지는 고무 맛과 이어지는 끈적한 쓴맛까지. 아이스크림이라 차가운 것만 빼면 나딘빵 그 자체였다.

다만 라스가 바라던 단맛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끄어어어억….

라스는 기대감이 깨진 얼굴로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혓바닥을 마구 문지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이건 아니니라! 이딴 건 아이스크림이 아니야!

“음, 제대론데?”

라온은 구슬 아이스크림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딘빵의 맛을 제대로 구현했어. 마음에 들어.”

-사, 살려줘. 제발….

라스가 바닥을 기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긴 혓바닥에 똥 발린 놈들밖에 없느니라!

* * *

글렌은 라온과 대화를 끝낸 뒤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엔, 셰릴, 채드가 일어섰다.

“가주님.”

세 사람이 고개를 숙이려 했지만, 글렌은 손을 저으며 상석에 가서 앉았다.

“진행은?”

“계속 회의를 해봤지만, 딱히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셰릴이 테이블 중앙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홀로 지그하르트에 오는 희극제를 막거나, 건드린다면 문제가 커질 겁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답답한 듯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맞는 말씀입니다.”

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희극제에게 붙여놓은 정보원들에 의하면 대다수 여론이 그녀에게 호의적이라고 합니다.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구요.

그는 희극제의 뒤에 따라붙는 추종자들도 많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약한 경우네요.”

로엔이 드물게도 짧게 혀를 찼다.

“싸움을 원해서 오는 경우라면 쉽게 처리할 텐데, 오히려 암살자들을 제거해줘야 할 판이니.”

그는 아쉽다는 듯 테이블 아래에 내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런 때는 명성과 지위가 높다는 게 방해가 되는군요.”

채드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경이 먼저 움직였고, 우리가 육황의 이름을 걸고 있는 이상 당할 수밖에 없는 수였다. 구치 중인 무인들을 돌려주되 얻을 수 있는 것도 그리 크지 않겠지. 다만….”

글렌이 창가에 이지러지는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구나.”

“재밌는 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셰릴과 채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로엔이 글렌을 보며 옅은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에 광풍부대주를 만나고 오셨죠. 그분이 무언가를 하신 겁니까?”

“글쎄?”

글렌은 알아서 생각하라는 듯 눈을 내리감았다.

“라온이에요? 그 녀석이 뭘 했는데요?”

“저도 궁금하군요.”

셰릴과 로엔은 글렌의 옆으로 붙으며 라온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나도 모른다. 그날이 되면 알 수 있겠지.”

글렌은 완벽하게 라온을 신뢰하는 말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대충은 아실 거 아니에요.”

“허허허.”

로엔은 파도가 치는 글렌의 입꼬리를 보며 눈웃음을 그렸다.

“그 선물은 좋아하시던가요?”

“나쁘지 않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아이는 나딘빵을 좋아하니까.”

글렌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왜 두 분만 아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저도 알려줘요!”

셰릴이 글렌과 로엔 사이를 파고들며 라온에 관해 말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음.”

채드는 라온의 이름을 꺼내며 웃음을 찾은 세 사람을 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역시 여기서 먹고 살려면 라온 님에게 잘 보여야 해. 내일 선물이라도 사서 가자.’

최고급 나딘빵으로!

* * *

지그하르트 지하 감옥 3층 심문실.

“끄으으윽….”

“어어억!”

혈운겸과 백랑도가 목에 핏물이 차오른 듯한 신음을 흘리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극악의 고통에 휘감긴 두 사람은 눈동자를 굴려 우측을 보았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의자에 걸터앉은 채 뭔지 모를 책을 읽고 있었다.

‘저, 저놈 대체 뭐야!’

‘왜 갑자기 와서 고문부터 시작하는 건데!’

라온은 오랜만에 이곳을 찾아와서 정보를 묻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고문을 시작했다. 저런 미친놈은 처음이었다.

‘이 귀신 같은 놈….’

‘악마도 말부터 걸겠다!’

백랑도와 혈운겸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책을 읽는 라온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저 괴물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라온이 다녀간 이후로 많은 고문관과 심문관이 찾아왔지만, 저놈만큼 독한 악귀는 아무도 없었다.

‘이, 이러다 죽겠어.’

‘대체 어디서 이런 고문법을….’

라온의 고문은 단순히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이 전부가 아니다.

수천 마리의 벌레가 전신을 기는 듯한 간지러움과 물어뜯는 따가움. 마지막으로 냉기와 열기가 번갈아 터지며 피부가 익고 얼어붙는 듯한 통증까지 추가된다.

고문을 견디는 훈련을 했지만, 저놈의 방식은 절대 견딜 수 없었다.

‘제, 제발 물어봐라.’

‘다 답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이미 용의 가면에 대해 말했기에 비밀을 말할 준비는 모두 끝났다.

물어보면 다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물어보지 않는 라온에게 섭섭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아….’

‘이, 이제 한계.’

백랑도와 혈운겸의 입에서 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기절하기 직전에 라온이 책을 넘기는 소리가 멈췄다.

“읽을 때마다 새롭네.”

라온은 창궁검의 무학서를 덮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흐으….”

“에엑….”

그는 무학서를 품에 넣고, 신음이 흐르는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백랑도와 혈운겸이 제발 그만두라는 듯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라온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두 사람을 억죄던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흐어어억!”

“끄으….”

백랑도와 혈운겸은 혼이 빠져나갈 듯한 거친 숨을 뱉으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대. 대체 뭐야. 왜 오자마자.”

먼저 정신을 차린 백랑도가 고개를 들었다. 혓바닥이 굳었는지 발음이 어그러졌다.

“날 잊지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라온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으….”

두 사람은 진짜 악마를 마주한 표정으로 턱을 떨었다.

“농담이고. 궁금한 게 생겨서.”

“구, 궁금한 거라면….”

“백경의 수장이자, 너희들을 버린 희극제가 어떤 인간인지 흥미가 생겼거든.”

일부러 둘을 버렸다는 말을 강조하며 미소를 지었다.

“음….”

백랑도가 미간을 찡그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지하에 있으니 시간 감각이 떨어졌겠지만, 밖은 이미 두 달이 넘게 지났어. 그리고 너희들의 처우에 대한 연락은 하나도 오지 않았지.”

“아….”

“그런!”

두 달이라는 거짓말에 혈운겸과 백랑도의 안구가 더 거세게 흔들렸다.

“그래서 궁금해지더라고.”

라온이 두 사람을 향해 서늘한 시선을 흘렸다.

“냉혈 그 자체인 희극제가 어떤 여자인지.”

정보를 빼낼 때 무조건 고압적이라고 좋은 건 아니다. 채찍을 치고, 당근을 주듯 가끔은 마음을 매만져 주어야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저것들 구하겠다고 오고 있잖아?

‘그래. 하지만 얘들은 모르지.’

지하 감옥은 완벽하게 정보가 통제된 곳이다. 간수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이들에게 희극제에 대한 정보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 진짜 뭐 이런 인간이….

라스는 질린다는 듯 턱을 떨었다.

“희극제의 성격은 어때? 냉정하고 단호한 편 같은데.”

백랑도와 혈운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두 사람이 말라붙은 입술을 벌렸다.

“그분은 무서운 사람이다.”

“무섭다?”

“그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시지. 그렇기에 네 말대로 끊고 맺는게 단칼 같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고, 되는 건 되는 것. 그걸 확실하게 정해서 움직인다.”

백랑도가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마, 맞습니다. 임무를 나가면 거의 그분의 말대로 이루어 집니다.”

혈운겸이 백랑도의 말을 받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군사 같은 성격인가.’

본래 예측을 잘하는 이들은 맺고 끊는게 단호하다. 본인들이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바로 버리는 냉정함이 있는데, 희극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럼 깨기 쉽겠어.’

머리 좋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건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미친놈이다. 미친놈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말이 안 통하기에 지낭(智囊)들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생각했던 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럼 내가 끼어드는 것도 예측했나?”

“지, 지그하르트가 올 거라는 건 말씀하셨습니다.”

혈운겸은 백련대가 오는 건 알려줬지만, 광풍대가 온다는 말은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이 녀석들을 데리고 오라는 말씀은 하셨지만, 네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백랑도는 위험하니 최대한 빨리 혈운겸만 데리고 오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그렇군.”

라온이 턱을 매만지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백련대가 움직이는 걸 알면서 나를 예측하지 못했다?’

내가 특이한 건가. 아니면 실수라도 한 건가.

실수일 가능성이 높지만, 자신이 아예 예측 범위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

‘천기를 본다고 했으니까.’

시선을 돌려서 인상을 구기고 있는 라스를 보았다. 저 녀석이 달라붙어 있고, 다른 두 명의 마왕의 힘을 얻었으니, 자신은 이 세계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몇 가지 더.”

라온은 배신감과 공포에 물든 백랑도와 혈운겸에게 희극제의 과거 행적에 대해 물으며 그녀의 성격을 파악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을 때 뒤에서 도리안이 다가왔다.

“부대주님. 와, 왔대요. 지금 설운 바위에 있다는데요?”

“그래?”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럼 두 시간 정도 걸리겠군.’

설운 바위에서 지그하르트까지 성인 남성의 걸음으로 두 시간가량 걸린다. 희극제가 도착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만 가봐야겠다.”

“어….”

혈운겸과 백랑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 누가 온다는….”

“누구긴. 너희들의 주인이 오고 있지.”

이미 정보를 다 빼냈기에 희극제가 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너희를 구하려고 온다나.”

“뭐, 뭐!”

“너 조금 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했잖아!”

“그건 사실이야. 그녀는 너희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방문한다고만 했지.”

희극제는 직접 와서 대화할 생각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방문하고 싶다고만 전해왔다.

“이이익!”

“라온 지그하르트! 네놈!”

“준비를 해야 해서 가보도록 하지.”

라온은 경쾌하게 손을 흔들며 뒤를 돌았다.

“이 악마 같은 놈!”

“마왕! 저건 마왕이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인성이 안 나와!”

두 사람은 라온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려는 듯 더욱 악을 질렀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라스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인상을 구겼다.

-이런 인성파탄자를 선한 마왕이랑 비교하지 말란 말이다!

‘…….’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62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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