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6화
라온은 답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냥 뱉어서는 안 돼.’
가주의 길에 뜻이 있냐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다름 아닌 지그하르트의 가주다. 생각 없이 답해서는 안 될 문제였다.
-음?
라스가 뭐하냐는 듯 눈을 흘겼다.
-빨리 대답 안 하고 뭐하는 것이냐. 저 영감이 나딘빵을 주기 전에 대답하라고! 네놈 어차피 가주 같은 거 될 생각 없지않느냐!
녀석은 마계에 가서 마왕을 할 놈이 무슨 가주냐며 손을 저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지.’
가장 최근에 가주에 관한 대화를 한 사람은 세피아 상회의 주인 아디스 세피아였다.
그는 떠나기 전 지그하르트의 가주에 오를 생각이 있느냐 물었고, 당시에 아직은 모르겠다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조금 변했지.’
글렌에게 아디스 세피아 때와 같은 대답을 하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의 사고는 그 당시와 달라져 있었다.
‘아리안 가문을 보고 왔으니까.’
아리안 가문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무능한 지도자가 가문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가솔들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았기에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가주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자격 없는 놈이 가주가 되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상태라면 지그하르트의 차기 가주는 전주 중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가문을 떠나 있는 글렌의 첫째 딸이나, 중무전주 카룬, 현무전주 데니어, 진무전주 발데르 이 넷 중 하나가 차기 가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 외에 로엔이나 셰릴 같은 그랜드 마스터가 극소수 있지만, 그들은 가주에 오를 생각 자체가 없었다.
지그하르트의 정문을 넘어서 습격하는 미친놈들이 나오지 않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전주 중에서 데니어가 가장 나아 보이지만, 사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데니어가 직계 중에서 가장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데루스 같은 놈이 있기에 사람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아리안 가문처럼 욕심 많은 돼지가 가주가 되어 지그하르트를 멋대로 주무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지그하르트에 정이 들었나 보네.’
정 같은 감정은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처음 지그하르트에서 태어난 걸 알아차렸을 때 원하는 것만 얻은 뒤 가문을 떠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실비아와 시녀들에게 마음을 열고, 리메르를 스승으로, 광풍대를 형제로 삼으며 이 가문에 작지만은 않은 애정이 돋아났다.
데루스 로베르트의 목을 베겠다는 목표는 확고했지만, 가문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다….’
시선을 들었다. 조용히 답을 기다려 주는 글렌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젠 가주님의 성격도 약간은 알 것 같으니까.’
아직도 글렌의 냉랭한 눈빛과 기세에 뼈가 시리지만, 그가 무엇을 싫어하고, 선호하는지는 느낌이 왔다.
“음.”
라온이 생각을 정리한 뒤 목을 가다듬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 길이 가주를 향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주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가 가주가 되는 꼴을 보느니, 제가 그 자리에 앉는 게 낫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생각했던 바를 거짓 없이 말해주었다.
-에엥? 무슨 가주야!
라스가 빽 소리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놈은 마왕이 되어야 하느니라! 관상부터가 딱 마왕상이야! 마계에 가서 다 조롱하고 농락하라고!
녀석은 마계에 가서 다른 마족들도 놀려먹으라고 외쳤다. 마왕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계에 갈 생각은 딱히 없었다.
글렌은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가 가는 미소를 그렸다. 저런 웃음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생각의 범위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구나.”
글렌의 목소리가 평온한 것을 보니, 자신의 대답이 나름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잡설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군. 오늘은 조금 더 길게 해야 할 것 같구나.”
“예.”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창궁검의 첫 번째 초식을 펼치려고 할 때 별관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실비아가 하얀 쟁반을 가지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글렌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시, 시간이 늦어서 출출하실까 봐 준비했어요.”
실비아는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었다고 말하며 호수 앞 테이블 위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버터로 구운 빵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오오!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라스가 고개를 벌떡 들어 올렸다.
-역시 우리 엄마이니라!
‘너희 엄마 아니라고!’
라온은 엉겨붙는 라스를 쳐내고 실비아에게 다가갔다.
“안 주무셨어요?”
“요즘 잠이 잘 안 와서.”
실비아가 반쯤 뜬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티를 내지는 않지만, 아이언드와 검투를 벌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걱정이 많아진 것 같았다.
“그, 가주님….”
그녀는 슬쩍 눈동자를 돌려 글렌을 바라보았다.
글렌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니에요! 라온. 가주님께 잘 배우렴. 지금 만든 거니까 바로 드세요!”
실비아는 글렌에게 고개를 숙인 후 빠른 걸음으로 별관으로 돌아갔다.
‘아직 무서우신 건가.’
라온은 씁쓸한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보다가 쟁반을 들고 글렌에게 다가갔다.
“어머니가 다른 음식은 못 해도 샌드위치는 잘 만드십니다. 실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신 있는 표정으로 쟁반을 내밀었다.
“…그런가.”
글렌은 옅은 김이 올라오는 샌드위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듯한 손으로 샌드위치를 잡고 한입 씹었다.
라온도 글렌의 옆에 서서 샌드위치를 잡았다. 군침을 삼키는 라스를 보며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하면서 고소한 빵과 안에 발라진 과일잼, 그리고 햄과 치즈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크으, 역시 맛나느니라! 나딘빵 같은 것과는 천지 차이야!
‘나딘빵은 안 먹은 지 오래 됐잖아.’
-흥. 방심하지 마라! 저 영감 품에 또 다른 나딘빵이 있을지 누가 알겠느냐.
‘설마.’
라온이 고개를 저을 때 글렌의 음성이 들려왔다.
“맛있군.”
그는 낮은 탄성을 흘리며 샌드위치를 조금씩 베어 물었다. 꼭 사라지는 게 아까운 것처럼.
“그렇죠.”
라온이 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이 이어진다. 고요하게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두 사람이 샌드위치를 씹는 소리만이 호수의 표면을 적셨다.
“오늘은 한 시간 더 하겠다.”
“알겠습니다.”
“나딘빵을 가져왔는데 필요 없겠군.”
“…….”
-거봐!
* * *
“으윽!”
버렌이 발밑부터 하늘까지 닿는 녹색 용오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주변을 맴도는 칼날 같은 바람에 피부가 뜯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버티기 힘들었다.
‘반격이나, 막을 수가 없으니까.’
리메르가 오러를 운용하여 막지도, 검으로 베지도 말고 몸과 정신으로 견디라고만 말했기에 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 견뎌야지. 어떻게 해서든.’
라온의 등을 보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이 정도 고통쯤은 참을 수 있었다.
‘하긴 난 조금 낫지.’
버렌이 한숨을 내쉬며 우측을 바라보았다.
“끄으응….”
루난은 수영복을 입은 채 얼음물에 들어가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가 몸을 담그고 있는 물은 평범한 얼음물이 아니었다.
리메르가 지그하르트 내부 마탑의 부탑주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낸 얼음보다 더 차가운 냉수였다. 5서클 마법 이상의 냉기를 품고 있다고 들었다.
“후우….”
루난이 퍼렇게 질린 입술을 깨물며 본인의 얼굴이 비치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너무 추워….’
태어나면서부터 서리의 축복을 받아 추위를 타본 적이 없었기에, 냉기의 고통이 칼에 찔리는 것보다 사무쳤다.
‘아직은 견딜 수 있어.’
육체는 한계에 도달했지만, 정신은 더 버틸 수 있다.
라온에게 진 빚을 하나라도 돌려주기 위해서는 이 고통을 이겨내고 최대한 빨리 마스터에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오빠의 일도….’
시리아와의 대립도 아직 끝난 일이 아니다. 그에게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후….”
루난이 새하얀 김을 뱉을 때 반대편에서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빠드득.
마르타다. 그녀는 땅에 묻혀서 목만 뻬꼼히 내민 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어이! 나만 대우가 너무 각박하잖아!”
마르타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는 리메르를 노려보며 악을 질렀다.
“왜 나만 땅에 묻히는 건데! 그리고 이거 계속 압박해온다고! 몸이 찌그러질 것 같아!”
그녀는 고통이 심한지 눈썹을 가늘게 떨었다.
“으하함….”
리메르가 길게 하품하며 목만 까딱 일으켰다.
“왜긴 왜야. 네가 대지 속성이니까 그러고 있는 거지.”
그가 목을 벅벅 긁으며 입맛을 다셨다.
“버렌은 바람 속성이니까 바람에, 루난은 냉기니까 얼음물에, 넌 대지에 친숙하니까 땅에 묻힌 거라고. 처음에 다 설명했잖아.”
“안 했는데.”
“안 했어요!”
“안 했어!”
루난, 버렌, 마르타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런가. 까먹었네.”
리메르가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귀찮으니까 대충 이야기하자면 너희의 속성 친화력은 상당히 높은 편이야. 엘프와도 엇비슷하지만, 그걸로 무언가를 이루기엔 부족해. 한참 더 끌어 올려야 하지.”
그의 눈동자에 진중함이 차올랐다.
“내가 직접 겪고 깨달은 거니까. 믿어도 좋아.”
리메르가 인상을 찌푸린 조장들을 보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지금의 고통을 견딘다면 너희의 속성과 심상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거야.”
자신 역시 글렌의 벼락에 꾸준히 노출되면서 뇌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검계현신의 격까지 높일 수 있었다.
재능이 뛰어나고 나이가 어린 저 녀석들이라면 분명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좀….”
“힘들어.”
“그래. 죽을 것 같다고.”
“그럼 그만둬도 좋아. 근데 그거 알아?”
리메르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라온이 가주님에게 또 수련받는 다고 하던데. 이제 정말 등이 안 보이는 거 아니냐?”
그가 휘휘 손을 젓자, 세 사람의 눈동자에 더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엉!”
“그래. 별 거 아니야!”
“응.”
마르타와 버렌, 루난은 언제 불평했냐는 듯 입매를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좀 잘게!”
리메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흔들의자에 몸을 묻었다.
“근데….”
루난이 목만 나온 마르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찰녀. 얼마든지 할 수 있엉?”
그녀는 마르타가 혀를 깨문 것을 놀리며 눈을 껌벅였다.
“너 이씨!”
마르타의 턱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지금 그녀는 땅에 묻혀서 나올 수가 없었다.
“죽인다!!”
“나오고 말해.”
“이야아아아!”
“그만 좀 싸워라….”
리메르는 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이도 좋네.”
* * *
라온이 눈을 감은 채 호수 위에 서 있었다.
그의 호흡과 호수의 결이 조화를 이루며 잔잔한 물결이 퍼지던 호수 표면이 나지막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라온이 발을 얹고 있고, 강한 바람이 불고 있음에도 호수에는 자그마한 흔들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약하게나마 이전의 글렌이 보여주었던 공간 장악이 이루어진 것이다.
라온은 그 놀라운 업적에 신경 쓰지 않고, 호수의 흐름과 오러의 동화에만 집중했다.
고오오오오.
호수와 라온이 하나가 된 듯 그의 숨결과 오러가 호수 속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라온이 한참동안 명상과 수련을 동시에 이루고 있을 때 호수 밖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주디엘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그녀가 평소처럼 담백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대련장에 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라온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해가 하늘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시간 참 빠르네.’
수련만 했기 때문일까. 아어인드와 검투를 치르기로 한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글렌에게 배운 것을 하루종일 수련하다 보니, 시간이 평소와 다르게 지나간 것 같았다.
-네놈은 빨리 갔겠지.
라스가 어깨를 떨며 인상을 구겼다.
-아직도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 본왕은 굼벵이처럼 느리고 느리게 갔느니라!
‘그래서 구슬 아이스크림으로 뷔페를 차려주겠다고 했잖아.’
-한 달 동안 약속을 안 지킨 놈을 어떻게 믿겠느냐!
‘오늘 싸움 빨리 끝내고 바로 갈게. 진짜로.’
-저, 정말이지?
‘오늘은 믿어도 좋아. 이제 다른 일도 없으니까. 응원이나 하고 있어.’
-알겠느니라!
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그란 손을 마구 흔들었다. 본인 나름 응원하는 것 같았다.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호수에서 걸어 나왔다. 예전과 달리 수면에는 작은 물결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조금은 되는군.’
글렌 정도는 아니지만, 이 작은 호수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드는 건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았다.
“어머니는?”
“긴장되어서 못 견디겠다고 먼저 검투장으로 향하셨습니다. 덜덜 떠는 헬렌님을 업고 가셨죠.”
“그래?”
라온이 피식거렸다. 실비아와 헬렌은 믿겠다며 걱정 안 하겠다는 듯 말했지만, 실제로는 크게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준비해야겠네.”
별관으로 가서 흑룡포를 챙기려 할 때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적발의 여성이 별관의 정원을 가로질러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화려한 미모의 여검사. 공검대주 세레나였다. 그녀가 앞에 서며 작게 눈인사를 보냈다.
“오랜만에 보는군. 광풍부대주.”
“대주님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나?”
라온이 주디엘을 보았다. 그녀는 아직 여유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세레나를 데리고 정원으로 향했다.
라온이 가면처럼 무표정한 세레나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죄송하지만, 공검대주께서 백련대주와 친분이 있다고 해도 검투에서 그를 봐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그 녀석과 훈련생 동기였다. 시작이 같았지.”
세레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택식에서 서로 다른 대에 들어갔지만, 비슷한 시기에 조장과 부대주를 달았다. 친구라기보다는 호적수 같은 존재였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아이언드와 세레나는 선택식 전에 가장 먼저 자신에게 찾아온 대주들이었다.
“다만 서로 대주가 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차이가 벌어졌다. 내가 녀석보다 먼저 벽을 넘었지.”
그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사실 세레나가 그랜드 마스터가 되기 전부터 가문의 검사들 대부분이 아이언드보다는 세레나를 높게 쳤지만.
“아이언드와 가끔 만나서 논검을 벌였는데, 언젠가부터 자리에 나타나지 않더군. 녀석은 계속 가문 밖을 돌며 임무만 수행했지.”
세라나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 줄은 모르기에 일단 가만히 듣기로 했다.
“우리 공검대와 백련대는 라이벌이었기에 서로 대원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백련대 인원들의 얼굴이 모르는 자들로 바뀌어 가더군.”
“음….”
“처음에는 임무가 많다보니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점점 심해졌다. 재능이 출중한 이들은 살아남고, 없는 이들은 죽어 나갔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실제 전장은 강자만 살아남지 않는다.”
“그렇죠.”
재능이 뛰어나다고 무조건 계속 살아남을 수는 없고, 재능이 없다고 무조건 죽지도 않는다.
그날의 상황과 운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겹치기에 약자만 죽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난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피했던 것 같아. 알아서 정신을 차리겠지. 나쁜 녀석이 아니니까.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심해졌어. 이번 일에는 내 탓도 있다. 이 검투가 끝나면 가주님께 말씀드릴 생각이다.”
“그럴 필요까지는….”
“아니,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조금 더 빨랐다면 좋았겠지만….”
세레나가 처음으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 봐줄 생각 없다고 했지? 당연히 그게 옳다. 본래라면 내가 그놈을 패 죽여야 하지만, 네가 선수를 쳤으니, 제대로 꺾어라. 팔이라도 베어버리면 정신 차리겠지.”
그녀는 잘 부탁한다며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후 떠나갔다.
“미안하지만….”
라온은 떠나가는 세레나의 등을 보며 제천검의 검집을 매만졌다.
“팔 하나로는 한참 모자랍니다.”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456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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