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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47화 (447/653)
  • 제447화

    빙향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핏물로 변한 마륜을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마륜은 당황한 와중에도 그 어느 때보다 완벽에 가까운 공세를 펼쳐냈다.

    사납게 뻗어나간 멸강륜에는 그 누구도 쉽게 받아칠 수 없는 마기가 깃들어 있었지만, 라온은 아이를 상대하듯 가볍게 검을 휘둘러 륜을 부숴버렸다.

    ‘들었던 것과는 너무 달라.’

    탑에서 전해준 라온의 무력 수위는 마스터 상급이었지만, 지금 보니 놈은 마스터 최상급에 올라서 있었다.

    ‘다만….’

    아무리 마스터 최상급이라고 해도 더 높은 경지에 서 있는 마륜을 저렇게 쉽게 죽이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놈은 무언가 균형이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마륜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결계 복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큰 실수였다.

    결계를 운용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합공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 라온을 막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어렵겠어.’

    자신이 마륜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단 일격으로 마륜을 태워버린 라온 지그하르트의 공세를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륜이 죽는 동안 결계를 복구했다는 건데, 다른 놈들이라면 모를까 마기에 저항력이 있는 저놈에게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크윽….”

    빙향이 입술을 깨문 채 시선을 들었다. 라온이 들어 올린 검에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살기가 피어오른다.

    조금 전에 했던 말대로 인질로 잡을 생각 따위 없이 바로 베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방법. 저놈을 조금이라도 약화할 방법을 찾아야… 어?’

    입술을 깨물며 눈동자를 굴리다가 천장에서 일렁거리는 마기를 보았다.

    결계가 복구되면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원한의 저주가 다시 일렁이고 있었다.

    라온이 결계에 침입하면서 일으킨 불꽃 폭풍에 상당한 양이 타버렸지만, 다행히 반 정도는 남아 있었다.

    ‘저거야!’

    저 저주밖에 없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반만 남았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다듬은 원한의 저주다.

    라온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무인인 이상 저주에 대한 면역이 있지는 않을 테니, 저 마기를 이용해서 놈의 무력을 약화시켜야 했다.

    고오오오.

    빙향은 뒷짐을 진 채로 손가락을 움직여 허공에 퍼져 있던 저주를 응집시켰다.

    저 마기는 무학이나, 마법이 아니라 저주로 이루어져 있기에 무조건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이라?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화가 난 듯한 표정 연기를 해주며 바닥까지 긁어모은 저주를 그대로 내리꽂았다.

    화아아아아악!

    백 이상의 인간들이 죽으면서 뿜어낸 원한의 저주가 검은 장막이 되어 라온을 휘감았다.

    “됐어!”

    빙향이 쾌재를 부르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 당황하고 있을 때 치면…어?’

    라온이 저주에 짓눌려 꼼짝도 못 할 때 숨통을 끊으려고 했는데, 놈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우우우우웅!

    그가 허리 뒤편에 꽂혀 있던 단검을 꺼내 들자, 기껏 끌어모은 원한의 저주가 칼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빙향은 단검에 흡수되는 저주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그 단검은 또 뭐냐고!”

    피를 바른 듯한 붉은 단검에서 피어나는 샛노란 요기가 라온에게 향한 원한의 저주를 모조리 씹어 삼키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어설픈 저주 따위는 통하지 않아.”

    라온은 빙향이 쏟아낸 저주를 모조리 갈라버리며 단검을 역수로 말아쥐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깊은 원한을 가진 녀석이 내 옆에 있으니까.”

    * * *

    라온은 청아한 검명을 울리는 진혼검을 내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움직여줄 줄은 몰랐네.’

    조금 전 빙향이 저주를 운용하고 있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인질이나, 부상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직접 맞고 태워버리려고 했는데, 진혼검이 뽑아달라며 검명을 일으켰다.

    녀석은 저주가 원한으로 인해 태어난 것을 알고 있는 듯 부드럽게 요기를 일으켜 죽어가는 사람들이 뿜어낸 원한의 저주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고맙다.’

    진혼검은 원한과 원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먼저 나서주었던 것 같다.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워서 검날을 쓰다듬어 주었다.

    “시간은 충분히 줬지?”

    라온이 제천검을 들어 올리며 만화공을 극성으로 일으켰다. 칼날 위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강기에 빙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끝을 보자. 더이상 이 냄새 나는 곳에 머물고 싶지 않으니까.”

    차가운 미소를 그리며 태화보를 밟았다. 저주와 핏물로 가득 찬 대지를 으깨며 빙향을 향해 돌진했다.

    “꺼져라!”

    빙향은 당황한 와중에도 냉기를 운용하여 빙판을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섰다.

    유연하게 움직이면서도 속도는 태화보와 엇비슷할 정도였다.

    “내가 이대로 당할 줄 아느냐!”

    그녀가 악귀처럼 얼굴을 구기며 손을 뻗었다. 손아귀의 중심에서 냉기의 폭풍이 뿜어져 나와 뱀처럼 전신을 휘감아왔다.

    콰아아아아아!

    마스터급 무인이 강기로 보호해도 피부가 찢겨나갈 정도로 지독한 기운이었지만, 마기의 악취를 제외하면 자그마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나.’

    라온이 피식 웃으며 들어 올린 제천검을 내리쳤다. 칼날에서 뿜어진 화염의 강기가 빙향이 일으킨 냉기 폭풍을 가볍게 베어 버렸다.

    “아….”

    찢어지는 냉기 뒤로 빙향의 표정이 보인다. 당황과 놀람을 그대로 드러낸 눈동자를 보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부, 분명 가뒀는데….”

    “정보가 너무 부족했어.”

    라온이 제천검을 뒤로 젖히며 눈매를 좁혔다.

    ‘그것도 많이 부족했지.’

    라스와 혹한의 저주에 시달린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냉기 저항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드레이크가 전력으로 뿜어낸 냉기의 숨결도 아무렇지 않게 버티는데, 어설프게 운용한 냉기 폭풍 정도는 간에 기별조차 가지 않았다.

    냉기가 최고의 무기인 빙향에게 자신은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 이건 평범한 냉기가 아닌데 어떻게….”

    빙향은 말이 안 된다고 중얼거리며 손을 떨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서리 조각들이 떨어져 땅에 박혔다.

    “평범한 냉기가 아니라고 해도 의미 없어. 냉기는 냉기니까.”

    비웃음을 그리며 태화이보를 밟았다. 찰나의 순간에 빙향의 우측으로 이동하여 바닥을 긁으며 강기를 쏘아냈다.

    “젠장!”

    빙향은 경악을 하고 있음에도 반응이 빨랐다. 빙판을 만들며 좌측으로 이동하며 두터운 벽을 세웠다.

    콰드드드득!

    붉게 타오르는 강기가 빙향이 만들어낸 냉기의 벽을 단숨에 녹여버렸지만, 이미 그녀는 뒤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허어억….”

    빙향은 긴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은 줄도 모른 채 거친 숨을 연달아 내뱉었다.

    “드러누워서 손가락만 까딱거리더니, 빠릿빠릿한 모습이 보기 좋네.”

    라온이 제천검과 왼발을 앞으로 뻗으며 미소를 지었다.

    “볼 건 다 봤으니, 이제 끝을 내도록 하지.”

    “끝나는 건 네놈이다!”

    태화보를 밟고 나아가려 할 때 빙향이 괴성을 지르며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웅!

    허공이 호수가 된 듯 출렁거리며 냉기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무기들이 튀어나왔다.

    마기까지 둘러서 시꺼멓게 타오르는 냉기의 무기들은 눈이 달린 것처럼 날아와 목과 심장을 비롯한 급소를 노려왔다.

    하나하나가 강기를 날리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아예 바보는 아니었군.’

    냉기 자체가 통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냉기로 이루어진 무기에 마기를 휘감아서 던지는 것을 보면 전투에 대한 적응은 빨랐다.

    ‘하지만….’

    그래도 의미는 없어.

    라온이 제천검으로 풍차처럼 원을 그렸다.

    콰아아아아아!

    더 굳건하고, 단단해진 만화공 염주벽이 쇄도해온 냉기의 무기들을 모조리 박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글렌과 렉타르의 수업은 새로운 검술만이 아니라, 기존의 검술까지 몰라보게 강화해주었다. 경지 자체는 그대로지만 이전과는 발휘할 수 있는 무력 자체가 달랐다.

    터어어엉!

    비처럼 쏟아진 냉기의 칼날들을 불태운 뒤 빙향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태화이보의 가속과 광아검의 흉폭함을 담아 제천검을 휘어 내렸다.

    “크으으윽!”

    빙향이 미끄러지는 보법을 운용했지만, 이미 두 번이나 보아서 흐름을 파악한 상태다.

    태화삼보로 발목을 틀며 그녀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여기까지다.”

    “아직이야!”

    라온이 목을 베려고 할 때 빙향이 바닥에 손을 짚었다. 당연히도 항복의 의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부터 가공할 양의 냉기와 마기가 터져 나오며 땅에서부터 천장까지 닿는 서리의 파도가 치솟았다.

    ‘백은의 오로라?’

    라스의 기술인 백은의 오로라와 비슷한 운용 방식이었다. 물론 그 위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지만.

    ‘날 통째로 얼려버리겠다는 뜻인가.’

    의미 없는 짓이야.

    라온이 비웃음을 흘리며 빙향과 같은 방식으로 만화공의 열기를 운용했다.

    쿠와아아아아!

    마기로 물든 땅을 녹여버리는 거대한 불길이 솟구치며 빙향이 일으킨 냉기의 파도를 모조리 가라앉혔다.

    “아, 아아….”

    빙향은 새하얀 수증기 속에서 눈동자를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등이 결계의 끝에 닿는 듯한 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부탑주라고 했지.”

    라온이 빙향에게 다가가며 턱을 모로 틀었다.

    “그가 날 노리는 건가?”

    “…그렇다.”

    빙향이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이 여기서 살아나간다고 해도 결국 그분에게 죽게 될….”

    “그러던가.”

    라온은 마음대로 생각하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노오오놈!”

    빙향이 두 손을 모았다. 마주 선 손아귀의 중심에서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냉기와 마기가 모여들어 응집되더니, 짙푸른 광선이 되어 쏘아져 왔다.

    “마지막 발악이로군.”

    라온이 고요하게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은색 칼날 위로 붉게 물든 열선이 돋아나며 섬뜩할 정도의 기세를 일으켰다.

    만화공 백화.

    적섬.

    만화공의 검술 중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검격이 빙향이 만들어낸 마지막 공세를 베었다.

    쩌어어어억!

    냉기와 마기가 응집된 광선이 갈라지고, 그 끝에 서 있던 빙향의 얼굴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너, 너는 절대….”

    빙향은 유언조차 뱉지 못하고, 반으로 나뉘어 쓰러졌다.

    스르르릉.

    라온은 이번에도 피가 묻지 않은 제천검을 가볍게 털어낸 뒤 검집에 넣었다.

    ‘확실히 발전했군.’

    글렌과 렉타르의 일대일 수업 덕분에 검술의 경지 자체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아직 그랜드 마스터의 벽에 닿지 못했지만, 마스터급은 누가 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아아….”

    “다 아는 검술인데 흐름이 안 보여.”

    “뭐, 뭐야? 저 둘 층주라며! 왜 저렇게 쉽게 죽어?”

    “저 인간은 왜 성장이 안 멈추냐….”

    광풍대 검사들은 두 명의 탑주를 가볍게 베어버린 라온을 보며 화등잔만 하게 눈을 떴다.

    “하, 하분성에서 본 지 얼마나 됐다고….”

    트레빈도 깜짝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으아아아….”

    “저, 정말 인간 맞아?”

    “미쳤다. 진짜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와.”

    철전대 검사들 역시 이런 상황을 생각 못 한 듯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턱을 떨었다.

    “사, 산 건가? 우리 산 거야?”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흑탑에 납치된 사람들은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라온은 두 손을 모은 채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죄도 없는 이들이 제물로 끌려온 것을 보자 전생의 자신이 떠올라 가슴이 쓰렸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내보내 주고 싶었다.

    “모두 모이세요.”

    손짓해서 광풍대와 철전대 그리고 인질들을 가운데로 불렀다.

    “어떻게 나가게? 마인들이 모두 죽었잖아.”

    “네가 죽이라고 해서 한 마리도 안 남겼는데.”

    “문답무용.”

    버렌과 마르타 루난은 살아남은 마인들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라온이 검명을 터트린 진혼검을 바닥에 박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이 이 결계를 이루고 있는 마기를 모조리 먹어 치울 테니까.”

    * * *

    “으음….”

    혈운겸은 누군가가 어깨를 흔드는 감각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어?”

    새하얗게 번져 보이는 시야 속에서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남자가 보였다.

    ‘백랑도 님이 왜 여기에?’

    백경 내부에서 자신보다 한 급 위에 있는 간부인 백랑도가 눈앞에 서 있었다.

    “괜찮나?”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그분께서 보내셨다.”

    백랑도가 혈운겸의 잘려 나간 팔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천기가 좋지 않으니, 가보라고 하셨는데 이 정도일 줄은….”

    그는 이런 상황은 예측 못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너희의 임무는 숨어 있다가 이곳에서 나올 마인들을 관찰하는 게 다였을 텐데.”

    “마, 맞습니다. 그게 다였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문제?”

    “예. 갑자기 라온 지그하르트가 나타나서….”

    혈운겸은 백랑도에게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뭐, 그런 미친놈이 다 있어!”

    백랑도는 백검룡이 그런 무식한 놈이었냐며 인상을 구겼다.

    “화를 낼 때가 아닙니다. 이, 일단 물러나야 합니다.”

    “아니,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예? 그게 무슨….”

    “아무리 너희가 지그하르트 영역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고 해도 팔을 베는 건 과하다. 백경의 자존심이 달렸다. 이대로 물러나서는 안 돼!”

    그는 이젠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세력과 세력의 문제라며 고개를 저었다.

    “네 팔을 자르고, 협박한 대가를 받아야겠다.”

    “아, 안 됩니다!”

    혈운겸이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놈 그냥 미친놈입니다! 말이 안 통해요!”

    먼저 공격을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어도 백랑도의 태도는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내 말은 들어야 할 것이야.”

    백랑도는 무력까지 쓸 생각을 하는지 허리춤에 매달린 도병을 잡고 입매를 비틀었다.

    “하, 하지만….”

    혈운겸이 제발 떠나자고 외치려 할 때 빙판의 중심에서 샛노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쿠와아아아아앙!

    갈라진 빙판이 뒤흔들리며 검은 차원이 아가리를 벌리고, 그 안에서 전신에 피를 칠한 검사들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미친….”

    혈운겸은 광풍대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정말 마륜과 빙향을 모두 죽인 거야?’

    검사들과 일반 사람을 제외한 마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적진이나 다름없는 결계에 들어가서 흑탑의 층주를 죽이고 나오다니, 어이가 없어서 헛바람만 나왔다.

    “으어어어억!”

    혈운겸은 라온을 찾다가 그의 건조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비명을 질렀다. 들어갈 때보다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어서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백랑도는 혈운겸의 비명을 들으며 시선을 돌렸다. 미려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되는 금발적안의 검사가 눈에 들어왔다.

    ‘저자가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정보대로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미모였지만, 붉은 눈동자에 맺혀 있는 날카로운 기세가 외모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소문대로의 무력이라 봐야겠군.’

    백랑도는 경시하려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라온에게 다가갔다.

    “그대가 백검룡이오?”

    “그렇소.”

    라온은 백랑도의 눈을 살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백경의 백랑도요. 당신이 우리 아이들을 저 꼴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겠소.”

    백랑도는 팔이 잘려 나간 혈운겸을 가리키며 눈매를 찌푸렸다.

    “백경 소속이라고?”

    “그렇소. 사람의 팔을 함부로 잘라놓았으니,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오. 지그하르트에 따져서….”

    “그럼 당신도 따라오도록.”

    “뭐? 내가 왜 너를 따라간단 말이냐!”

    “이번 일에 어디까지 관계되어 있는지 알아야겠다. 너도 팔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라온은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사람들을 살피며 입술을 씹었다. 그의 눈동자가 오싹하리만큼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닥치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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