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46화 (446/653)

제446화

쿠구구구구!

라온의 뒤를 이어 광풍대 검사들이 뜯겨나간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다.

“전열을 갖춰라!”

그들은 결계 내부에서 피어나는 마기를 느꼈음에도 자그마한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철전대를 보호하는 검진을 세웠다.

높은 영역에 이른 상황 파악과 행동력이었다.

화아아아!

라온은 만화공의 열기로 마기를 불태우며 결계 내부를 살폈다.

‘이곳이 빙판 속 결계인가.’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땅에서는 사악한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런 거대하면서도 음습한 공간을 빙판의 이면 속에 숨겨놓았다는 게 놀라웠다.

이런 격 높은 능력을 고작 납치에 사용하다니, 역시나 흑탑의 마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놈이 마륜인가?’

트레빈의 목을 륜으로 가르려던 노인을 보았다.

겨울에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바짝 말랐지만, 눈빛은 흉흉했고, 오싹할 정도로 강렬한 마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비루한 외모와 사용하는 무기를 볼 때 흑탑의 층주 마륜이 분명했다.

‘그럼 빙향은 저쪽이겠군.’

마륜으로 의심되는 노인 뒤편에서 백발의 여성이 일어났다.

엘프처럼 가냘프면서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미녀였지만, 찢어진 눈매 때문에 인상이 사나워 보였다.

마륜보다 짙은 마기를 휘감고 있는 걸 보면 더 높은 층에 올라 있는 것 같았다.

‘둘 다 흑수장보다 강해.’

비연회의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마륜과 빙향 모두 이전에 싸웠던 흑수장보다 강렬한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저들에게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감 같은 게 아니라, 이긴다는 게 당연하게만 여겨졌다.

“네, 네놈은 뭐냐….”

마륜이 깨져나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대체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이냐!”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이건 말이 안 돼.”

빙향 역시 당황한 듯 라온의 얼굴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결계를 깨기는커녕 찾는 것도 불가능했을 텐데, 대체….”

라온은 빙향과 마륜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의 뒤편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내렸다.

‘여기에 왜….’

일반인이 있는 거지?

지금 이 결계 안에는 흑탑과 철전대 소속이 아닌, 일반인이 가장 많았다.

흑탑 놈들이 납치한 건 분명하지만, 오러도 없는 이들을 왜 데리고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라, 라온. 네가 어떻게 이곳에….”

트레빈도 마인들처럼 놀랐는지 검을 쥐고 있는 손가락을 떨었다.

“여긴 빙판의 이면 속에 숨겨져 있었을 텐데….”

“빙판이 아니라, 마계에 숨어 있다고 해도 와야죠.”

“너….”

그의 굳건하던 눈동자가 격동으로 인해 출렁거렸다.

“라, 라온 님.”

철전대 검사들도 라온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끼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보다 대주님.”

라온은 트레빈과 철전대 뒤편으로 시선을 보내며 왜 이곳에 일반인들이 있는지를 물었다.

“제물이다.”

트레빈이 소매로 입술에서 떨어지는 핏물을 훔치며 이를 갈았다.

“저들을 이 결계를 유지하기 위한 제물로 바치기 위해 잡아 온 거지. 그리고….”

그가 무너진 결계의 천장을 가리켰다. 염룡결의 열기에 반 이상 녹아내린 검은 기류가 분노하듯 일렁거렸다.

“사람들이 죽을 때 내뿜는 원한을 이용하여 네게 저주를 내리려고 했다.”

“인신공양이군요.”

라온이 원한의 저주가 담긴 마기의 응집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흑수장과 똑같은 놈들이로군.’

흑탑은 사람을 제물로만 보는 건가?

조용히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마기를 박아서 드레이크에게 먹이려고 했던 흑수장과 사람들을 납치해와서 원한의 저주를 만드는 이들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화 따위는 필요 없었다. 모조리 목을 날려야 할 쓰레기들이었다.

“네놈이 라온 지그하르트였군.”

마륜이 뱀처럼 섬뜩한 동공을 드러냈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 됐군. 찾으러 갈 수고를 덜었어.”

그는 본래의 목표가 알아서 찾아와 주었다며 입꼬리를 길쭉하게 말아 올렸다.

“마륜.”

빙향이 라온의 담담한 표정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죽이면 안 되는 거 알지? 부탑주의 지시를 떠나서 어떻게 결계를 찾아냈는지 알아내야 하니까. 무조건 살려.”

그녀는 궁금증을 풀어야겠다며 살려서 잡아 오라고 손짓했다.

“알고 있다.”

“난 너희를 살릴 생각이 없는데.”

라온이 마륜과 빙향에게 비웃음을 흘리며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긴말은 필요 없으니, 시작하지.”

“잠시만!”

만화공을 극성으로 일으키려 할 때 트레빈이 어깨를 잡았다.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 여긴 마기로 이루어진 결계 내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넌 몰라. 결계 내부에서 흐르는 마기가 우리의 체력과 오러를 갉아먹고, 마인들의 마기는 증폭시켜주고 있어. 외부에서 싸울 때처럼 움직였다간 금세 지칠 거다!”

트레빈은 본인도 결계에서 운용되는 마기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도 그걸 못 느끼다니, 듣던 것과 달리 둔한 놈이로군.”

마륜은 결계를 믿고 있는 듯 자신감이 차오른 얼굴로 두 자루의 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넌 스스로 무덤에 들어온 꼴이니까.”

“그래?”

라온이 평온한 얼굴로 손에 든 제천검을 휘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트레빈과 철전대 그리고 광풍대의 기세가 마기에 짓눌려 있는 듯 느껴지긴 했지만, 자신에게 이 결계의 마기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숨쉬기 편하고, 몸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상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니라!

라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를 쭉 폈다.

-네놈에게 마왕 셋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데, 이따위 마기에 영향을 받으면 뒈져야지!

녀석은 마기로 인한 공격이라면 모를까. 이런 결계에 맺힌 마기로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거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다 본왕 덕이니까. 나중에 맛난 거나 사라!

‘그러지.’

-네놈은 분명 안 된다고 할 테지만… 엑?

라스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지, 진짜? 정말루?

‘그래. 돌아가면 구슬 아이스크림 한 세트 사줄게.’

라스 덕분에 이 결계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처음부터 보답하려 했었다.

“광풍대.”

라온은 헤죽거리며 달라붙는 라스를 밀어내고, 광풍대에게 손짓했다.

“결계의 마기가 독하다는데? 싸울 수 있나?”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광풍대는 자신과 달리 마기에 영향을 받고 있을 텐데도 자그마한 티도 내지 않고 검을 세웠다.

전우의 시체를 본 그들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인들을 죽여라.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두.”

“명을 받듭니다!”

광풍대는 결계가 뒤흔들릴 정도의 기합을 지르며 마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가장 먼저 튀어 나간 건 당연히 마르타였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 대가리를 갈아 마셔주마!”

그녀는 분노를 참지 않고, 광폭화를 일으키며 마인들에게 강맹한 검격을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앙!

광기에 물든 마트타의 검기가 마인들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마귀 같은 놈들.”

버렌이 혀를 차며 푸른 오러를 일으켰다. 북해에 몰아치는 바람처럼 매섭게 피어난 삭풍이 인질을 잡고 있던 마인들의 몸을 사선으로 갈랐다.

“역해.”

루난 역시 화가 단단히 난 듯 입매를 꾹 다물고, 검날에 짙고 푸른 서리를 휘감았다.

그녀의 검에 스친 마인들은 방비할 새도 없이 전신이 얼어붙어 기괴한 표정을 드러내는 얼음 동상이 되었다.

“뒈져! 이 쓰레기들아!”

“악마만도 못한 것들!”

“한 놈도 살려두지 마!”

광풍대 검사들 역시 조장들을 따라 살기가 뚝뚝 흘러넘치는 매서운 검세를 펼쳤다. 마인들의 숫자가 더 많았지만, 기세에서 밀렸기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듣던 대로 건방지군.”

마륜은 마인들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미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 당당함이 언제까지 갈까?”

그가 턱을 모로 틀며 두 자루의 륜을 쏘아냈다. 보름달처럼 둥글게 말린 륜이 섬뜩한 파공음을 터트리며 쇄도해왔다.

키이이이잉!

라온은 제천검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며 강렬한 회전을 일으키는 륜을 살폈다.

‘빠름과 날카로움, 정확함에 지랄맞은 회전을 더했군.’

목과 가슴을 향해 짓쳐 드는 륜을 보는 것만으로 그 안에 어떤 묘리와 힘이 실려 있는지 느껴졌다.

쩌어어어엉!

앞서서 돌진해오는 륜의 빈틈을 향해 광아검을 내리쳤다. 붉게 물든 맹수의 송곳니가 륜의 투로를 막고 그 흐름을 가볍게 꺾어버렸다.

휘이이이익!

두 번째 다가온 륜이 살아 있는 뱀처럼 손목을 노려왔지만, 예측 범위 내였다.

손목을 우측으로 비틀어서 제천검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려 그었다.

빠드드득!

두 번째 륜 역시 회전이 멎은 채 거칠게 튕겨 나갔다.

“이게 다인가?”

라온은 경쾌하게 손목을 털어내며 비웃음을 그렸다.

“결계가 어쩌고 하더니 실망인데?”

“시끄럽다!”

마륜이 손짓을 하자, 바닥과 벽에 처박혔던 두 자루의 륜이 실을 당긴 것처럼 다시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제법 검술에 조예가 있는 듯하지만, 여기까지다.”

그가 어금니를 바득 갈며 마기를 폭발시켰다. 새하얗던 륜의 날이 먹을 칠한 듯 검게 물들며 이전과는 격이 다른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어둠이 녹아내린 륜을 보니, 지금부터가 마륜의 진심인 것 같았다.

“가라!”

마륜이 두 자루의 륜을 비틀어서 쏘아냈다. 륜의 칼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며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우우우웅!

찰나의 순간에 륜의 개수가 늘어나며 시야가 검게 물든 륜으로 가득 찼다.

“섞었나.”

라온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륜의 변화를 살폈다.

‘기존의 묘리에 환과 변을 추가했군.’

마륜은 내던진 륜의 위력과 회전력을 강화시킨 것으로 모자라, 변화와 환상까지 담아냈다.

조금 전에 보여준 초식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과 난해함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 보여.

글렌과 렉타르의 가르침이 이미 피와 살이 되었는지 마륜의 무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두 눈에 들어왔다.

터어어엉!

라온이 바닥을 박찼다. 마기로 들끓는 대지를 뭉개며 앞으로 나아갔다.

치이이잉!

목을 노리고 쇄도해오는 륜을 향해 광아검을 쏟아냈다. 광기를 휘감은 미친 맹수의 발톱은 환상과 변화를 무시하고, 마기로 차오른 륜을 사정없이 깨부쉈다.

빠드드드득!

마륜이 일으킨 마기의 흐름이 모조리 뜯겨나가고, 그의 무기인 륜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바닥을 뒹굴었다.

“이, 이 무슨!”

마륜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마륜회절을 어찌 저렇게 간단히….’

그냥 륜을 날린 것도 아니고, 마기를 폭발시켜서 쏘아낸 절기가 저렇게 쉽게 막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검술의 위력과 속도, 정확성이 인간의 무학을 벗어난 듯 보였다.

하지만 라온의 무학에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놈이 시뻘건 열기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마륜이 욕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어쩔 수 없어.’

품에서 아끼고 아껴둔 애병 멸강륜을 꺼내 들었다. 크기는 작지만, 살기와 강도는 대륙장인이 만든 명검에도 뒤지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마기만이 아니라, 잠력까지 끌어 올렸다. 멸강륜의 날에서 시꺼먼 불길이 치솟은 순간 전력을 다해서 쏘아냈다.

키아아아아앙!

세상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멸강륜이 어둑한 밤의 달빛처럼 번진다.

결계를 모조리 뒤덮은 마기의 륜. 위력, 속도, 회전에 변화와 환상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절마륜의 마지막 절기 금마선륜이었다.

트득!

멸강륜이 일으킨 마기의 파도가 결계 안의 모든 것을 찢어발기려 할 때 라온의 눈동자에 붉은 기류가 차올랐다.

치이이이잉!

라온은 불의 고리를 통해 멸강륜의 흐름을 읽으며 제천검을 내질렀다.

나아가는 은빛 칼날 위로 극성으로 일으킨 만화공의 불꽃이 치솟았다.

화아아아아!

검신을 달구던 열기가 수십 송이의 꽃봉오리를 이루고, 피어난다.

개화. 화염의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천공의 별자리를 붉은 선으로 잇는 듯한 장관이 펼쳐졌다.

만화공 백화.

화령.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웠던 만화공의 초식이지만 오늘은 이전과 달랐다.

열기로 피어난 꽃잎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춤을 추며 멸강륜의 앞을 막아섰다.

콰과과과광!

열화의 조각과 마기로 가득 찬 륜이 수없이 맞부딪치며 결계 전체가 뒤흔들렸다.

뿌드드득!

멸강륜은 박살이 나서 추락했지만, 화령의 꽃잎은 지지 않고 허공을 자유로이 노닐었다.

“너, 넌 뭐냐!”

마륜이 핏발 선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는 내상으로 인해 검은 피를 토하면서도 악을 질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무학을 어떻게….”

그는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구겨진 멸강륜을 보며 눈동자를 일그러뜨렸다.

우우우우웅!

라온이 제천검을 상단으로 들어 올렸다. 열기의 조각들이 검의 흐름을 따라 사선으로 회전하며 모여들었다.

하늘을 다듬어 붉은 칼날을 세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넌 알 자격이 없다.”

그 말과 함께 제천검을 내리그었다. 검극에 닿아 있던 화령의 꽃잎들이 낙화한다. 수백 개의 강기가 폭풍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크아아아아아!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마령이 괴성을 터트리며 마기를 불태웠다. 륜을 쏘아낼 때보다 더 짙고 두꺼운 마기의 벽이 솟아올랐다.

쿠와아아아아앙!

응집된 화령의 열기와 마기가 맞부딪치며 두 번째 폭발이 터져 나왔다.

산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고, 결계가 터져나갈 것처럼 진동했다.

봄을 지낸 벚꽃처럼 가라앉는 화령의 꽃잎이 붉은 웅덩이를 찰랑인다.

마륜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가 서 있던 곳에는 피 웅덩이만이 번져 있었다.

“마, 마륜 님?”

“마륜님이 이렇게 쉽게….”

“말도 안 돼….”

마인들은 무릎만 남은 마륜의 시체를 보며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라온이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그 칼끝이 향하는 건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있는 빙향이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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