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44화 (444/653)

제444화

백련대 부대주 프란이 보법을 밟아서 앞서가는 아이언드의 옆으로 붙었다.

“대주님.”

아이언드가 시선을 돌린다. 그는 이미 평정심을 회복한 듯 무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라온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음에도 이 짧은 순간에 감정을 가라앉히다니, 그릇의 크기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프란은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힘이 빠진 백련대 검사들의 안색을 살피며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상관없다.”

아이언드는 뒤에서 따라오는 백련대 검사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번 임무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어차피 다음 임무에서 죽을 놈들이다. 발판은 발판의 역할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야.”

백련대의 규모가 크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다. 끝까지 데리고 갈 인원들은 이미 정해놓았기에 나머지는 죽든 살든 관심 없었다.

“하지만 라온의 말이….”

“분명 영향은 있겠지. 하지만 저것들은 알면서도 백련대를 떠날 수 없다. 스스로 대를 나가는 건 패배자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망가지지만 않게 적당히 다독여주도록.”

“알겠습니다.”

프란이 가는 숨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잔인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백련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라온 지그하르트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안 들으셔도 되겠습니까?”

라온은 당장 검을 뽑고 싸울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에서 다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가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 같아서 마음이 걸렸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분명 다른 방식으로 시비를 걸었을 테니까. 직계들을 견제하기 좋을 듯해서 힘을 실어주려 했는데, 예상 이상으로 건방지고 거만해.”

아이언드가 자그마한 흔들림도 없던 라온의 붉은 눈동자를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 망할 자식….’

금발적안. 그 화려하면서도 압도적인 빛을 본 순간 하늘 위에 선 글렌 지그하르트가 떠올랐다.

라온 그놈은 벌써 글렌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으음, 지금도 기세를 계속 올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저것도 놈의 술수일 수 있다. 관심 꺼.”

아이언드는 앞만 보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돌아가는 대로 내가 직접 짓밟아버릴 테니까.”

* * *

“네놈….”

혈운겸이 분한 듯 사납게 이를 갈았다.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내뱉다니,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그는 진심으로 분노가 차올랐는지 눈동자에 뻘건 핏줄이 돋아났다.

“이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지그하르트에 제대로 항의를….”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라온이 코웃음을 치며 혈운겸에게 한발 다가갔다.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건 너희가 아니라, 우리다.”

“그게 무슨….”

“두 호수 사이에 난 소도를 경계로 북쪽은 지그하르트의 영역이다. 즉, 네놈들은 문제가 일어난 지그하르트의 영역 안에서 몰래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거지.”

오른손을 힘을 주며 제천검을 뽑았다. 칼날이 검집을 스치는 소리가 아릿하게 울렸다.

스르르릉.

오싹한 발검음에 혈운겸과 백경 무인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백경인지, 신주오령인지 근본도 없는 너희들을 즉참하는 게 옳겠지만, 기회를 주지.”

라온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며 제천검으로 혈운겸의 목을 겨누었다.

“네놈들이 왜 이곳에 숨어 있었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말하라.”

백경은 신주오령 중 희극제가 세운 단체로 심해와 천공을 모두 노니는 흰고래처럼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다고 들었다.

정보와 잇속에 밝은 놈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이곳에 숨어 있을 리가 없었다.

“대, 대주!”

“이놈! 이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혈운겸에게 겨누어진 칼날을 본 백경의 무인들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놈들은 라온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움직이지 마.”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목 날아간다.”

“가만히.”

버렌과 마르타, 루난이 어느새 그들의 뒤로 이동하여 검을 겨누고 있었다.

“당신도 가만히 있으시오.”

마크 괴튼이 마지막 남은 무인의 어깨를 잡으며 섬뜩한 음성을 흘렸다.

“이 더러운 놈들이….”

혈운겸이 오러를 끌어 올리며 눈썹을 찌푸렸다.

“우리의 왕을 모욕한 것으로 모자라, 기습까지 하다니, 지그하르트가 백경에 시비를 건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거냐?”

“시비?”

라온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시비라는 것도 체급이 맞아야 가능한 말이지. 고래들의 틈바구니 사이에 끼어서 살아남으려는 새우 따위에게 시비는 무슨.”

“우리를 모욕하지 마라!”

“네놈들과 입으로 싸울 생각 따위는 없다.”

“으윽….”

“말하라.”

라온이 섬전처럼 예리한 기세를 일으켜서 혈운겸을 짓눌렀다.

“왜 하필 이곳에 숨어 있던 거지?”

혈운겸과 백경 무인들의 기척을 죽였던 아티팩트를 이용한다면 이 호수 말고도 숨을 곳은 많았다.

두 호수 중에서도 더 찾기 쉬운 얼음 호수 근처에 숨어 있던 이유가 궁금했다.

“다시 말해주지. 너희가 몸을 숨기고 있던 나무 위는 지그하르트의 영역이다. 네놈들의 잘난 왕과 신주오령은 도움이 안 돼.”

마나회로를 거칠게 질주하여 뻗어 나온 만화공의 열기에 제천검의 칼날 위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그냥 죽이자.”

마르타가 목을 잡고 있는 무인에게 칼을 가져다 대며 입맛을 다셨다.

“이런 놈들은 아무것도 몰라. 시간 낭비라고.”

“동감이다.”

버렌이 무인의 팔을 꺾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주오령 중 희극제는 여러 가지 술수에 능하다고 들었어. 눈앞에서 그랜드 마스터 둘의 심혼을 쏙 빼놓은 적도 있다더군.”

그는 이미 신주오령에 관한 정보를 얻었는지, 희극제는 위험하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백경에서 이 정도 급의 인물을 그냥 보냈을 리가 없어. 다른 짓을 하기 전에 처리하는 게 나아.”

“난 준비 됐어.”

루난은 언제라도 검을 찌를 수 있다는 듯 눈동자를 껌벅였다.

라온은 살기가 피어나는 광풍대의 눈동자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연기 한 번 잘하는군.’

상대가 누구든 절대 죽이지 말고 제압만 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는데, 조장들은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벌한 협박을 하고 있었다.

이제 어디에 내놔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인이 된 듯했다.

‘거기다….’

협박이 제대로 먹혔어.

혈운겸을 제외한 백경의 무인들은 마르타와 루난, 버렌이 진심이라고 생각한 듯 살기에 질려서 퍼런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마지막이다.”

라온이 칼끝처럼 서늘한 시선으로 혈운겸을 굽어보았다.

“왜 이곳에 있었는지를 말하라.”

그 말이 진심이라는 듯 제천검 위로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살기가 돋아났다.

고오오오오!

혈운겸만이 아니라, 광풍대마저 그 살기에 질려 손끝을 떨 정도였다.

“으음….”

혈운겸은 섣불리 덤비거나, 달려들지 못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태양빛을 휘감은 듯한 찬란한 금발과 술잔 위로 붉은 달을 띄운 듯한 투명한 적안. 화려한 외모 덕분에 눈앞의 검사가 백검룡 라온 지그하르트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무력 수위는 백경의 정보와 차원이 달랐다. 자신과 동급인 마스터 상급이라 여겼는데, 직접 보니 범접할 수 없는 기세가 느껴졌다.

라온은 편해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검을 들어 올리고 있을 뿐인데, 어디에서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공격했다간 자신의 목이 땅으로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만약 마스터 상급이 아니라, 최상급에 올랐다고 해도 이상해….’

말이 안 되지만, 만약 라온 지그하르트가 성장해서 마스터 최상급에 올랐다고 해도 이 정도로 압도적인 기파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거의 그랜드 마스터급….’

마스터가 아니라, 그랜드 마스터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 차이가 느껴졌다.

‘그래도….’

혈운겸이 혀끝을 씹으며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물러나서는 안 돼.’

제왕께서 직접 내어주신 임무다. 수하의 실수 때문에 위치를 들키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정보까지 내어 줄 수는 없었다.

“왜 이곳에 있었는지가 궁금하다는 거지?”

그 말을 하며 혁대 뒤편에 걸어두었던 낫을 움켜쥐었다. 언제라도 라온의 목을 칠 준비를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면 내가 아는 것을 말해주마. 하지만 그 이상을 요구할 생각을 하지 말도록.”

공포에 질린 것처럼 말을 더듬어서 라온의 방심을 일으키며 단전의 오러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쓸데없는 짓은 안 하는….”

라온의 입이 열린 순간 혈운겸이 혁대에서 낫을 뽑아 아래에서 위로 올려 그었다. 혈잔규겸의 초식 중 가장 빠르면서도 난해한 적쾌참열이었다.

치이이잉!

혈운겸이 붉게 젖은 낫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됐어!’

적쾌참열의 기운이 깃든 낫이 붉은 강기를 일으키며 라온의 가슴을 향해 쏘아졌지만, 그의 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완벽한 기습이었다.

‘바로 다음으로….’

라온을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서 혈잔규겸의 절기를 운용하려 할 때였다.

번쩍!

눈앞으로 붉은 벼락이 내리꽂히더니, 우측 어깨에서 강렬한 통증이 일어났다.

“아, 아… 아아아아악!”

혈운겸이 비명을 지르며 시선을 돌렸다. 적쾌참열을 올려 긋던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어깨에서는 피 분수가 뿜어지고 있었다.

“어, 어떻게….”

왼팔로 오른 어깨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섰다.

라온이 자신의 기습을 알아차린 게 문제가 아니다.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빠르고, 강맹한 반격을 해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알고 있었어도 막지 못할 섬뜩한 참격. 육체와 정신적 충격이 겹쳐서 어떠한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말했지. 쓸데없는 짓 말라고.”

라온은 피 한 방울도 묻지 않은 제천검을 혈운겸의 왼쪽 어깨에 박아넣었다.

“끄으으으윽….”

혈운겸은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쓰러져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버둥거렸다.

라온은 턱을 덜덜 떠는 혈운겸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움직임이 가벼워.’

혈운겸의 기습은 분명 빠르면서도 복잡했지만, 그 흐름을 깨부수는 게 숨 쉬는 것처럼 간단했다.

아직 체감이 확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글렌과 렉타르 덕분에 검술이 성장한 건 분명했다.

“이, 이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거라….”

“왜 이곳에 숨어 있었지?”

라온은 혈운겸의 협박을 무시하며 그의 어깨에 박혀 있는 제천검을 우측으로 비틀었다.

“크아아아아악!”

혈운겸이 격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트렸다. 극심한 고통에서도 정보를 불지 않는 것을 보면 꽤 독종이었다.

하지만 목표로 잡은 건 혈운겸만이 아니었다.

라온은 혈운겸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그의 양쪽 어깨에서 뿜어지는 살벌한 양의 핏물을 보면서도 제천검을 한 번 더 비틀었다.

“으으으으, 난 모른….”

“그럼 죽어라.”

“잠깐!”

제천검으로 혈운겸의 목을 베려고 할 때 뒤쪽에서 목이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그의 수하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청년이었다.

“이, 이곳에서 다른 일이 벌어질 때까지 대기하라는 지시였어!”

이들의 시선과 대화를 볼 때 음지 세력치고는 의리가 있는 듯해서 노려봤는데,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네 이름은?”

“토린….”

“제대로 말해.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게 무슨 말이지?”

라온이 혈운겸이 죽지 않도록 어깨를 지혈해준 뒤 일어섰다.

“토린. 이 멍청한….”

혈운겸이 창백한 표정으로 말라붙은 입술을 뗐다.

“말하지 마라. 그건….”

“닥쳐.”

라온이 혈운겸의 턱을 걷어차서 입을 막아버렸다.

“어차피 중요한 내용도 아니지 않습니까!”

토린은 혈운겸의 말에도 다시 입을 열었다.

“우, 우리도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해. 그냥 여기서 대기하다가 이 호수에 변화가 일어나면 그걸 모두 지켜본 뒤 돌아오라는 말만 들었어.”

그는 그게 위에서 받은 명령의 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지켜보라고 했다고?”

라온은 제천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얼어붙은 호수를 살폈다.

‘왜지?’

딱히 특별한 건 느껴지지 않는데?

불의 고리와 설화의 감각을 운용하여 호수 주변과 호수 밑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느껴지는 건 없었다.

“토린.”

라온이 기감을 가라앉히며 토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명령 위에서 내려온 건가?”

“그, 그래….”

“이곳에서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고?”

“아예 이동에 관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어.”

그는 본인들이 사용했던 은신 아티팩트도 움직이는 순간 효과가 사라지는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흠….”

라온이 제천검의 검병을 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희극제라.’

희극제는 무력도 무력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인간이라는 소문이 많았다.

육황에도 비견된다는 세력을 운용하는 괴물이 저 정도 실력자들에게 아티팩트까지 줘서 그냥 보냈을 리는 없었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거겠지.’

희극제는 이곳에서 일어난 철전대의 실종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이제와서 찾아갈 수는 없지.

희극제를 만나는 것도 무리지만, 만나도 정보를 내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이곳에서 주어진 정보만으로 철전대를 찾아야 했다.

‘그래도 이곳에 뭔가가 있다는 힌트는 얻었어.’

라온이 주저앉아서 얼음 호수에 손을 얹었다. 역시나 느껴지는 건 없었지만, 자신에게는 마기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남아 있었다.

‘양이 적어서 아끼고 싶었지만….’

단전에 차올라 있는 여러 가지 기운 중 가장 이질적이면서 어둑한 힘을 끌어 올렸다.

고오오오오.

만화공과 글래시아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이 마나회로를 타고 올라 손바닥에서 피어났다.

화아아아아.

라온은 만화공으로 이뤄낸 기감만이 아니라, 신성력까지 손에 적신 뒤 다시 얼어붙은 호수를 살폈다.

신성이란 마기를 찾아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 특히 자신의 신성력은 사기와 마기, 요기 같은 음의 기운을 통해 피어났기 때문에 더러운 기운을 찾는 건 훨씬 더 뛰어났다.

우우우우웅.

호수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실처럼 얇게 펼쳐서 얼어붙은 호수에 펼쳐냈다.

그물처럼 퍼진 신성력을 통해 마기를 찾으려고 하는데, 한참을 운용해도 느껴지는 건 짙은 냉기뿐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인가.’

철전대가 사라진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곳에서 어떤 일어났어도 이제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어떻게 해야…음?’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신성력을 거두려고 할 때 얼어붙은 호수 중앙 부근에서 미세한 마기의 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라온이 다급하게 일어났다. 호수 중앙으로 달려가서 다시 신성력을 운용했다.

‘있어!’

호수 아래가 아니라, 지금 밟고 있는 빙판의 반대편에서 아주 연한. 아니, 잔향만 남아 있는 마기가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위쪽도 아니고, 얼어붙은 호수 속에 있는 안쪽 빙판에서 마기가 느껴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쯧쯧.

라스가 얼어붙은 호수를 빼꼼히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야 찾았나.

‘알고 있었어?’

-비틀림을 느꼈느니라.

‘비틀림?’

라온이 라스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네놈이 느낀 기운은 이 공간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니라.

‘그러면?’

-다른 차원과 연결된 숨구멍에서 아주 옅은 양의 마기가 흘러나온 것이지.

‘다른 차원?’

그럼 결계를 열었다는 건가?

빙향이라면 가능할지도.

빙향은 냉기와 마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인이다. 몇십 년 전부터 활동하며 힘을 키운 그녀에게 빙판을 이용한 결계 능력이 생기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빙판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살폈다.

라스의 말대로라면 이 빙판은 철전대를 가두고 있는 결계와 닿아있기에 들어가거나 깨트릴 방법도 있을 것이다.

고오오오오!

라온이 불의 고리까지 운용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연한 마기의 흐름 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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