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0화
“철전대가 실종?”
라온이 제천검을 아래로 내리고 도리안에게 다가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들은 건데?”
“저,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도리안이 입술을 꾹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 오는 길에 퇴근하는 비연회 호위 검사들과 만났는데, 철전대가 실종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는 철전대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연무장으로 달려온 거라고 말하며 거친 숨을 흘렸다.
“으음….”
라온이 도리안의 떨리는 동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비연회 호위 검사의 정보라면 진짜일 텐데.’
도리안은 친화력이 좋아서 광풍대 외에도 친한 이들이 많다. 비연회를 호위하는 검사들이 실종 같은 심각한 일로 거짓말을 할 리 없으니, 저 말은 분명 진실이었다.
‘대체 무슨 임무를 맡았기에 실종된 거지?’
철전대는 아리안 가문에서도 임무를 해야 한다며 먼저 가문으로 돌아갔다.
복귀한 이후에도 보이지 않아서 임무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종이라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왜 실종되었는지는 몰라?”
“네. 딱 실종됐다는 것만 들었어요.”
“음….”
라온이 이마를 쓸어 올리며 눈매를 찡그렸다.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겁니까.’
트레빈의 딱딱하면서도, 정 많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멍청할 정도로 메뉴얼을 따지는 그가 보고를 지나쳤을 리 없으니, 무슨 일이 터진 건 확실하다.
“어, 어떻게 하죠?”
“일단 정보를 얻어야겠지.”
제천검을 검집에 밀어 넣었다. 옷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고, 연무장의 출구로 향했다.
“어디 가시게요?”
“비연회.”
“거길 직접요?”
“그래. 지금 가야 해.”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안이 퇴근하는 호위 검사들에게 정보를 들었다고 했으니, 철전대 실종 소식은 밤부터 새벽 사이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간다면 실종에 관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
“부대주님?”
연무장을 나가기 위해서 문을 열었을 때 안으로 들어오려는 광풍대 검사들과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역시 제일 먼저 와계셨네요.”
“근데 어디 가세요?”
“오늘 아침 훈련은 패스?”
사정을 모르는 검사들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해왔다.
“오전 훈련은 자율이다.”
라온은 검사들에게 자율 훈련을 지시한 후 본관이 있는 방향으로 보법을 밟았다.
전력으로 운용한 태화보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비연회의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연회 정문 앞에는 석상처럼 서 있는 두 명의 검사들이 있었다.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기파와 차분한 호흡만 보아도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옷을 정돈한 후 호위 검사들에게 다가갔다.
“광풍부대주 라온 지그하르트입니다. 비연회주님을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급한 일이었지만, 순서를 지키지 않을 수는 없었다. 먼저 인사를 하고 용무를 밝혔다.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우측에 서 있는 노검사가 마주 고개를 숙이며 입을 뗐다.
“아뇨. 하지만 급한 일입니다. 소식만이라도 전해주십시오.”
“흠….”
노검사가 눈빛을 보내자, 좌측에 서 있던 중년 검사가 비연회 안으로 들어갔다.
-쯥
라스가 꽉 닫힌 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냥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냐? 둘 다 너보다 약하지 않느냐.
‘그래도 안 되지.’
라온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까. 지금은 체계를 지켜야 해.’
비연회에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이들을 무시하는 행사를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때일수록 예의를 차려야 한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정문이 열리고 중년 검사가 걸어 나왔다.
“회주께서 허가하셨습니다.”
그는 따라오라고 말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라온은 작게 고개를 숙이고, 중년 검사를 따라서 비연회로 들어갔다.
“이쪽밖에 없어! 우측은 아예 갈 곳이 없다고!”
“거긴 낭떠러지잖아! 사망신고부터 할 셈이야?”
“방향 이전에 일단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정보부터 캐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정보를 못 얻을 때를 대비해야지.”
비연회 소속 정보원들은 원형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서 지도를 펼쳐놓고 논쟁을 하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철전대의 실종 위치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거기 말고 다른 오마도 있었는지 조사해봐.”
“신주오령 놈들도 말만 중립이니까. 무조건 위치 파악하고.”
“하아, 임무 잘 끝냈다는 연락 보내놓고 이게 무슨 일인지….”
“시끄럽고, 오늘 안에 무조건 제대로 된 의견을 내!”
라온은 정보원들의 외침을 들으며 비연회 안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진짜였군.’
트레빈과 철전대가 정말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고, 이곳에 있는 많은 정보원이 그들을 찾기 위해서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노력한다는 것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직접 나가서 트레빈과 철전대를 찾겠다고 다짐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중년 검사가 멈춰 서 있었다.
“이곳입니다.”
중년 검사는 비연회주의 집무실을 가리키며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그에게 마주 인사를 하고서 집무실 앞에 섰다.
똑똑.
얇아 보이는 문에 두 번의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십시오.”
라온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지각색의 서류들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널찍한 책상 위에서 비연회주 채드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부단주님. 아니, 이젠 부대주님이시죠.”
“비연회주님을 뵙습니다.”
채드에게 고개를 숙인 후 집무실 문을 닫았다.
“진즉에 승급 축하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네요.”
그는 미안하다며 모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뇨.”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알현실에서 해주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알현실에서 채드가 임무 결과에 대한 확답을 해준 덕분에 직계들이 입을 다물었고, 여유롭게 금패를 얻었으며, 다른 이들의 인정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건 업무적인 거니까요.”
채드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며 웃었다.
“그런데 이 아침부터 비연회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우연히 들은 게 있습니다.”
라온이 채드의 담담한 눈동자를 보며 손등을 매만졌다.
“철전대가 실종되었다던데 정말입니까?”
“아, 그건….”
채드의 평온해 보이던 얼굴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표정을 보니, 거짓말로 얼버무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교대한 호위들이 말해준 모양이군요. 아, 신입 관리를 안 해서….”
그는 아직 신입들 입단속이 제대로 안 되었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금세 소문이 퍼질 내용이긴 하지만요.”
“역시 정말이었습니까?”
“네. 사실입니다.”
채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전대는 호피른 지역에서 몬스터 토벌 임무를 끝내고, 복귀하는 중에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전투 흔적이 아예 보이지를 않아서 실종을 파악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며 손톱으로 책상을 긁었다.
“전투의 흔적이 없다는 건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철전대의 동선에 전투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없어요. 억지로 흔적을 지운 티도 안 나고. 어떻게 실종되었는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그 말에 이곳에 오면서 들었던 정보원들의 논쟁이 떠올랐다. 그들 모두는 철전대에 어디로 갔고, 어떻게 실종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 흉수도 모르는 겁니까?”
“아뇨. 그건 의심 가는 곳이 있습니다.”
“의심 가는 곳?”
“예. 호피른 외곽에서 흑탑의 마인들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흑탑….”
라온은 흑탑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나 때문인가?’
도리안을 도와주러 세피아 상회에 갔다가 흑수장을 베고, 드레이크를 챙겼던 일 때문에 흑탑이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원한이 철전대로 향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부대주님 때문만은 아닙니다. 본래 본가와 오마는 원수지간이니까요.”
채드는 라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듯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철전대가 임무 중에 흑탑과 부딪쳤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제 탓입니다. 흑수장을 죽인 원한을 철전대를 통해 갚으려고 하는 겁니다.”
“으음….”
채드는 반박하지 못하고, 쓰게 입맛을 다셨다.
“흑탑에서는 누가 나왔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륜과 빙향입니다.”
“마륜, 빙향….”
둘 다 흑탑의 층주를 맡고 있는 고수로 대륙 전체에 악명을 떨친 마인들이었다.
“이건 절 노리고 있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흑탑의 선공일 겁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러니 기다리시면 다른 대주분들이….”
“아뇨. 그러니 제가 가야죠.”
라온이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지그하르트를 건드리면 어떻게 망하는지 직접 가르쳐주고 오겠습니다.”
* * *
라온은 비연회주에게 정보를 모아달라고 부탁한 뒤 바로 가주전으로 향했다.
알현실 앞에 도착했을 때 서류 뭉치를 들고 있던 로엔과 마주쳤다.
“부대주님?”
로엔은 자신이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긴 어쩐 일로….”
“가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라온은 담담하지만, 힘이 있는 눈동자로 로엔에게 고개를 숙였다.
“음….”
로엔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쭈어보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먼저 알현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고, 로엔이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보내왔다.
“허락하셨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감사합니다.”
라온이 로엔에게 인사를 한 뒤 알현실로 들어갔다.
차분히 붉은 카펫을 걸어 옥좌에 등을 묻은 글렌 앞에 섰다.
“가주님을 뵙습니….”
“귀따가우니, 아침부터 거창한 인사는 할 필요 없다.”
글렌은 인사 같은 건 되었으니,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본론을 말하라.”
“우연히 철전대의 실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라온은 일어나면서 글렌의 요청대로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음.”
글렌은 딱히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눈썹만 살짝 찡그렸다.
“저도 수색 임무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거만하구나.”
그가 주먹으로 턱을 괴며 옅은 비웃음을 흘렸다.
“철전대주가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실종되었는데, 네가 간다고 상황이 바뀔 것 같으냐?”
글렌은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호피른 지역에 가장 가까이 있던 백련대를 보내기로 결정했으니, 너는 관심 끄고, 대기하고 있도록.”
“하지만 이번 일은 저 때문에 터진 겁니다. 흑수장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가 분명한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만큼은 물러날 수가 없었다.
“말했을 텐데, 네가 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그 말이 귀에 꽂히기 무섭게 글렌의 웅대한 기파가 번져온다. 무시무시한 압박. 북망산 전체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무게였다.
뿌득.
라온이 부서지도록 어금니를 깨물었다.
‘크으윽.’
버텨야 해.
트레빈과 철전대도 말은 안 했지만,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리안 가문까지 도와주러 와주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번진 일인데, 아무것도 못 하고 드러누울 수는 없었다.
치이이잉!
라온이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운용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쿠웅!
글렌의 거센 기파를 밀어내며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점점 더 강해지는 압박을 의지의 검으로 가르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위험하다고 해서 돕지 않는다면 가족이 아닙니다. 철전대가 편지 한 장에 아리안 가문에 와주었듯 저도 그들을 위해서 싸우고 싶습니다. 공도, 상도 필요 없습니다! 수색에 참여할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힘을 보여주었으니, 이젠 진심을 보일 때였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위험을 피하고, 철전대 수색에만 집중하겠습니다. 혼자라도 보내주십시오!”
라온은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외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허가를 안 해주시면 담을 넘어서라도 갈 거야.’
그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 흑탑으로 흉수가 정해진 이상 신성력 있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혼자서라도 보내달라? 의지는 보였지만, 깨닫지는 못했구나.”
글렌이 옥좌의 팔걸이에서 손을 떼며 입매를 비틀었다.
“네 수하들은 어디에 두고?”
“예?”
그가 대답 없이 손짓하자, 로엔이 다시 알현실의 문을 열었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문이 개방되며 그 앞에 서 있던 자들이 매서운 눈빛을 일으켰다. 광풍대. 리메르를 제외한 광풍대 검사들 전원이 모여 있었다.
“어딜 혼자 가겠다는 거야!”
마르타가 달려오며 인상을 확 구겼다.
“진짜 뒈지고 싶어?”
그녀는 또 혼자서 다 처리하려고 하냐며 말아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마르타 말이 맞아.”
루난이 심통난 듯 입술을 축 내렸다.
“민트와 초코처럼 함께 가야지.”
그녀는 혼자는 못 보낸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만 철전대에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지 마.”
버렌이 검병을 꼭 말아쥐며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는 까불지 좀 말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철전대랑 인연이 있는 건 부대주님만이 아니에요!”
“혼자 다 감당하려고 하지 말라구요.”
“도움을 받았으면 이쪽도 도와줘야 맞죠.”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광풍대 검사들도 무조건 함께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라온이 신념이 깃든 광풍대 검사들의 눈동자를 보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난 또 나만을 생각했구나.’
저들의 말대로 광풍대와 철전대는 많은 친분이 쌓여 있었다. 내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며 광풍대 검사들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홀로 가겠다고 선언했던 것이 민망해졌다.
짝.
라온이 본인의 뺨을 치고서 다시 글렌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리는 그의 눈동자에서 붉은 기광이 번쩍였다.
“광풍대는 철전대 수색 임무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 말이 나오고 나서야 글렌의 입매에 작은 물결이 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