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32화 (432/653)

제432화

라온은 대화 자리를 파하고, 렉타르와 무스턴을 별관의 손님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고맙네.”

렉타르는 아무것도 없이 온 불청객을 이렇게 맞이해주어서 고맙다며 턱을 주억였다.

“제가 받은 게 훨씬 많습니다.”

그는 도망친 아리안 가문의 간부들을 잡아주었고, 진심을 담아 검술을 가르쳐주었다.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그에게 받은 건 값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대련이었지.’

렉타르가 살의를 담아 내리친 일검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엔비의 일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스터린산 정상에서 시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 그런 소리 마십시오. 그리고….”

라온이 무언가 답답해 보이는 렉타르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젠 말을 놓아주십시오. 함께 한 시간도 제법 지났고, 수련을 도와주실 때 불편하지 않습니까.”

“음….”

렉타르의 입술이 가늘게 흔들렸다. 여러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게 맞겠지. 알겠네. 아니, 알겠다.”

그는 앞으로 말을 편하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도 좀 편해지겠네요. 감사합니다.”

라온이 옅게 웃으며 아래로 내린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아직은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

렉타르에게서 아주 자그마한 악의도 느껴지지 않기에 억지로 그의 뒤를 파야 할지, 아니면 말을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잘 모르겠다.

무스턴처럼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파겠는데, 렉타르에게서는 씁쓸함과 안타까움만 가득해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럼 쉬십시오.”

“잠깐.”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돌아가려는데, 렉타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조만간 모든 것을 말해줄 때가 올 테니, 기다려주었으면 좋겠구나.”

렉타르는 이쪽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눈동자를 차분하게 빛냈다.

“전에 ‘아직은’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준비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암살자의 기억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리 말할 것 같아서 떠오른 그대로 읊었다.

“…….”

렉타르는 아무 말도 없이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나만 더.”

라온이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할 때 렉타르가 팔을 밖으로 내밀었다.

“혹시 내일도 수련할 셈이냐?”

“쉴 이유가 없으니, 연무장에서 새벽 수련을 할 생각입니다.”

“쉴 이유가 없다라. 알겠다.”

렉타르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라온은 렉타르의 방문 앞에 선 채로 눈을 내리감았다.

‘먼저 말씀해주실 줄은 몰랐지만, 역시 예상대로였어.’

이젠 확실해졌다. 어떠한 이유가 있기에 말을 못 할 뿐, 렉타르는 분명히 돌아가신 아버지와 관계있는 사람이었다.

라온은 머릿속으로 렉타르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시녀들이 청소를 해왔기 때문인지 방은 떠나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흑룡포를 벗었다. 방에 들어온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다니, 사람들이 집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말들 더럽게 많으니라!

라스는 왜들 그렇게 말이 많냐며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들은 약한 만큼이나 입이 가벼워. 본왕은 마계에 있을 때부터 과묵하고, 입이 무겁기로 유명했느니라. 필요한 말이 아니면 아예 입을 열지 않았지. 그리하여 붙은 이명이 침묵의 마왕이라는 소리였느니라. 다른 마왕들이 본왕을 두려워….

“…….”

라온이 속사포처럼 입을 놀리는 라스를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말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데, 어떻게 침묵의 마왕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너 입 좀 다물라고 침묵의 마왕이라 불린 거 아니냐?”

-아니니라!

라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흥분한 거 보니까. 맞네.’

-아니라고! 본왕은 마계에서 가장 무거운 마왕….

‘먹어서 무거운 거 아니냐고.’

-끄윽! 이 건방진 놈이….

녀석의 붉어진 얼굴을 찌르며 놀리고 있을 때 문에서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주디엘의 신호였다.

“들어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주디엘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디엘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시녀가 아니라, 주인을 따르는 복종의 인사였다.

“그거 안 해도 된다니까.”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손을 저었지만, 그녀는 본인의 의지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잘 지냈어?”

“예. 이제 별관이 제집 같습니다.”

주디엘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라….”

라온이 평온한 주디엘의 얼굴을 보며 옅게 웃었다. 그녀 역시 전생의 자신처럼 안주할 곳을 찾지 못했는데, 별관에 정이 든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별일은 없었어?”

“지금까지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앞으로 생길 거야.”

“그게 무슨….”

주디엘은 어떤 의미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현실에서 가주님과 렉타르님이 내 칭찬만 했거든.”

“그럴만하죠. 에덴의 망혼귀를 쓰러뜨리셨으니까.”

그녀는 당연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만하지. 금패까지 받았으니까.”

라온이 글렌에게 받았던 금패를 꺼내 들었다. 이상하게 전에 받았던 금패보다 조금 무거운 느낌이었다.

“다만 조용해서는 안 될 둘이 조용하더라고.”

“중무전주와 진무전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주디엘은 단번에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카룬과 발데르의 이름을 꺼냈다. 이래서 그녀와 대화하면 편했다.

“예전 같았으면 카룬과 발데르가 가장 먼저 금패는 과하지 않냐고 따졌어야 했는데, 입을 다물고 있었어.”

금패말고, 은패를 주라고 말해도 그 둘에게는 큰 손해가 없기에 분명 따질 만도 한데, 오늘은 조용한 것을 넘어 다른 직계들의 입까지 막았다.

“네가 더 잘 알겠지만, 그럴 사람들이 아니거든.”

카룬과 발데르는 직계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기에 오늘 어떻게든 태클을 걸었어야 했다. 조용한 것을 보니, 분명 노리는 게 있을 것이다.

“그럼 제게 연락이 올 가능성이 있겠군요.”

주디엘은 그 이후를 생각한 듯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래. 내 최신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를 내리겠지.”

새로 익힌 무학이 무엇인지, 어떤 경지에 올랐는지, 좋아하는 공격 방식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자세한 정보를 가져오라고 할 게 뻔했다.

“그럼 가짜 정보를 준비해놓겠습니다.”

주디엘은 3할의 진실에 7할의 거짓을 섞어서 정보를 조작하겠다고 말하며 두 손을 모았다.

“그렇게 해줘.”

라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선을 들었다.

“아, 혹시 신주오령이라는 자들에 대해서는 들어봤어?”

“알고 계셨습니까?”

주디엘의 눈동자에 의외라고 말하는 듯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니, 난 몰랐는데 가주님께서 말씀해주셨어.”

“신주오령은 대륙에 새롭게 발호한 다섯 개의 단체입니다.”

주디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동자를 살짝 위로 올렸다.

“아리안 가문으로 떠나시기 전에 알려드린 해적왕에 대해서 기억하시나요?”

“해적왕….”

해적 주제에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기에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그자도 신주오령의 수장 중 하나야?”

“네. 해적왕, 악검후, 사검마, 귀살창, 희극제까지. 이 다섯이 육황과 오마 모두에 속하지 않은 중립 세력을 일으켰어요. 하나 같이 뛰어난 강자였고, 수하들의 무력과 숫자도 육황오마에 닿을 정도라서 대륙 전체가 술렁이고 있죠.”

주디엘은 신주오령이 지하에서 꽤 오랜 기간을 준비한 게 분명하다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정도라면 육황오마도 쉽게 움직일 수 없겠군.”

“맞습니다. 발호한 위치 역시 육황과 오마의 경계선 사이에 끼어 있어도 어느 쪽도 움직이기 힘들 것 같더군요.”

“그렇겠지. 신주오령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오마가 쳐들어온다면 큰 피해를 입을 테니까.”

저런 이명을 지닌 강자들을 상대하려면 육황에서도 꽤 많은 병력을 보내야 할 텐데, 그 틈을 노리고 오마가 습격할 수도 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역시 파악이 빠르시네요.”

주디엘은 지금 신주오령에 대해 들어놓고, 바로 그들의 움직임과 의도를 파악한 게 신기하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어쨌든 대륙의 정세는 더욱 복잡해지겠군.”

라온은 신주오령 수장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외우며 눈을 내리감았다.

“난세라…. 그 말 그대로일지도 모르겠네.”

글렌이 말했던 대로 곧 난세가 도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라온이 낮은 숨을 뱉으며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조사해줬으면 하는 놈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주디엘은 말만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덴의 쌍두귀. 놈의 과거와 최신 행적에 대해 모두 알아 봐줘. 암시장의 정보까지 써도 좋아.”

“갑자기 쌍두귀는 왜….”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라온이 눈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기광이 뿜어졌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누나지만….’

복수는 해야겠지.

* * *

글렌은 리메르를 죽기 직전까지 팬 후 알현실로 돌아와 옥좌에 앉았다.

“으음….”

그는 망가진 옥좌의 팔걸이를 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허허허.”

로엔은 글렌의 이마에 그어진 강줄기를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뭔가 고민이 많으신 얼굴이시군요.”

“고민은 무슨.”

글렌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지만, 생각이 복잡한지 금방 로엔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검귀라는 남자를 어떻게 보았지?”

“지그하르트에 대한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고, 듣던 것 이상으로 인격을 갖추신 분 같았습니다.”

로엔이 오늘 처음 보았던 검귀를 떠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글렌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광풍단에게 검을 가르치며 모두와 친해진 듯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라온 도련님과 가까워 보이더군요.”

로엔이 별생각 없듯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글렌이 본인도 모르게 왼팔에 힘을 주었다.

뿌드드득.

간신히 남아 있던 왼쪽 팔걸이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허허허.”

로엔은 또 고쳐야겠다고 중얼거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 가까워 보인다?”

글렌은 팔걸이가 망가진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창밖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실제로도 친하겠죠. 검술을 가르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테니까요.”

로엔은 글렌의 표정을 모르는 듯 그를 더욱 자극할 법한 말을 내밀었다.

“왜 광풍대주님이 그쪽이 정말 할아버지 같다고 말한 건지 알 것 같았습니다.”

“헛소리!”

글렌이 눈썹을 찡그리며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그리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피가! 피가 이어져야 진짜 할아버지라 불릴 수 있는 거다!”

그는 아무리 친해지고,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내도 혈육의 힘은 이길 수 없다며 이를 악물었다.

“안 되기는 무슨….”

검게 그을린 채 구석에 박혀 있던 리메르가 떨리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그러다가 손자 뺏긴 후에 울부짖어도 아무도 안 도와줍니다.”

그는 옥좌에 앉은 글렌을 올려보며 놀리듯 혀를 내밀었다.

“평생 동굴에 박혀 있다가 라온이랑 술 한 잔도 못 하고 늙어 죽으십쇼.”

“저놈이….”

글렌의 이마에 힘줄이 뚜둑 돋아났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벼락 줄기가 쏟아져 리메르의 머리에 꽂혔다.

“꾸에엑!”

리메르는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의 정수리에서 시꺼먼 김이 피어올랐다.

“크윽!”

글렌은 거품을 문 채 쓰러진 리메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분하지만. 정말 분하지만….’

저놈 말이 틀리진 않아.

혈육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의로 이루어진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리메르나 로엔의 말대로 라온과 검귀가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관계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기에 속이 갑갑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라온에게 아직 부상을 주지 않았다는 거겠지.

본래 라온에게도 다른 광풍대 검사들처럼 무학서를 주려고 했었지만, 검귀의 눈빛을 보고 라온을 직접 가르쳐주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역시 이 방법밖에 없어.’

검귀가 라온의 검술을 봐주며 관계를 쌓았듯이 자신 역시 그렇게 손자와 가까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로엔. 내일 새벽에 5연무장으로 가겠다.”

글렌은 로엔에게 내일 일정을 모두 취소하라고 말한 뒤 옥좌에 앉았다.

‘내가 직접 가르쳐주마.’

라온은 아리안 가문을 구하고, 망혼귀를 잡은 일등 공신이니, 직접 무학을 가르쳐주어도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기다리거라.’

내가 검귀 같은 것보다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려줄 테니까.

글렌이 오른쪽 팔걸이도 부수며 다짐을 하고 있을 때 리메르가 입에서 검은 김을 뿜어내며 눈을 껌뻑였다.

“난 왜 맞은 건데….”

“허허허.”

* * *

다음날 새벽.

라온은 어둑한 별관의 정원을 지나 5연무장으로 향했다. 햇볕을 두르지 않은 서늘한 공기가 폐로 흘러내리며 새벽의 나른함을 깨워주었다.

-끄으응!

라스가 팔찌 위로 올라오며 인상을 꽉 찌푸렸다.

-돌아오자마자 또 새벽 수련이라니, 정말 징한 놈이니라….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네놈은 잠이 없겠지만, 본왕은 졸리단 말이다! 대체 왜 쉬지를 않는 건데!

녀석은 나태의 수치가 높아졌는데, 왜 변하지를 않냐며 비명을 질렀다.

‘변화 있어. 나태 때문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

나태의 수치가 늘어나면서 귀찮음이 심해졌다.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이 확연하게 강해졌다.

‘물론 이겨내는 게 어렵지 않지만.’

평생을 암살자로 살았던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지금 수준의 나태 정도는 불의 고리 없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정말이지 지겹느니라. 네놈도, 저 연무장도!

라스는 좀 더 자야겠다며 다시 팔찌 안으로 들어갔다.

‘난 그리운데.’

라온은 피식 웃으며 아무도 없는 연무장의 고운 모래를 밟았다.

한동안 사람이 없었음에도 연무장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광풍단이 없는 동안 도괴가 연무장을 다져준 것 같았다.

‘귀찮다고 하시면서도 할 건 다 해주신다니까.’

총관 한번 잘 구했다고 생각하며 연무장 중앙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시작해볼까.’

라온은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사선 베기, 찌르기부터 시작하는 기본 검술부터 검귀의 조언을 듣고 발전한 광아검과 설풍검결까지 펼쳐낸 뒤 제천검을 내렸다.

집중해서 검을 휘둘렀기 때문인지 어느새 안개가 걷히고, 은은한 햇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여기가 편하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수련해 온 공간이었기 때문인지, 외부에서 검을 펼치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고, 검에도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이제 부족한 부분을….’

라온은 광아검의 초식에 아직 숙달되지 않은 절검의 묘리를 담았다.

보기에는 화려하고, 절도 있어 보였지만,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참 모자라.’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광아검을 펼치려고 할 때였다.

후우웅!

연무장의 우측과 좌측 담벼락에서 거센 질풍과 함께 옷자락이 담벼락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술 그렇게 하는 거 아닌….”

“검술은 그리하는 게 아니라….”

연무장의 담벼락을 넘어온 선 두 사람은 비슷한 말을 뱉으며 멈춰 섰다.

“음?”

“아.”

글렌과 렉타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어…?”

라온은 연무장의 끝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글렌과 렉타르를 살피며 입을 떡 벌렸다.

‘이분들 지금 여기서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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