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31화 (431/653)

제431화

“그이의 이름은 에드가.”

실비아는 어쩐지 남편과 닮은 검귀의 눈매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에드가라는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 그는….”

이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듯 가슴이 아려왔다.

코끝이 찡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 라온이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단단하면서도 따스한 아들의 손길에 울렁거리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와 처음 만난 건 카멜룬의 주점이었어요. 끊임없이 이어지던 임무 때문에 제 상태가 최악일 때였죠.”

실비아는 눈을 감으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지루하면서도 괴로운 시절이었지.’

아버지는 수련과 전쟁을 반복하며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고, 형제들은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으며, 간부들은 어떻게든 이용할 구석을 찾으려 했기에 가문을 떠나 외부를 돌며 내려오는 임무만 처리했다.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와 만나게 되었다.

“신분을 감추고, 주점 2층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1층에서 싸움이 벌어졌어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정뱅이들의 싸움이라 신경 안 썼죠.”

난장판을 만들며 싸우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음도 지쳐 있었고, 알아서 적당히 하리라 생각하며 계속 술만 마셨다.

하지만 주정뱅이 둘 다 꽤 큰 무가의 후계자였는지, 개인의 싸움이 단체가 되어서 주점 전체가 싸움터가 되어버렸다.

“귀찮아질 것 같아서 주점을 떠나려고 할 때 한 남자가 그 싸움에 끼어들더군요.”

실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검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낡은 검 한 자루만 들고, 양측의 무인들을 모두 제압했어요. 강한 기세나, 오러 따위 없이 오직 검술만으로 스물 넘는 무인들을 꺾었죠.”

“검술만으로….”

“더 웃긴 게 뭔지 아세요? 그 바보가 본인이 제압한 사람들을 모두 앉혀놓고 설교를 시작했어요. 주점에서 싸우면 점장에게 얼마나 피해가 가는지, 시민들은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검술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며 한참을 떠들더라구요.”

“…….”

검귀는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려 흔들리는 찻물을 바라보았다.

“의미 없는 짓이 분명한데, 그는 진지하게 모두에게 가르침을 내렸어요. 바보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처음에 기절한 무인이 그를 뒤에서 찌르려고 하더군요.”

자신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닌 사람이니, 기감으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의외로 뒤에서 습격하려는 자들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 일이 아니라서 놔둘까 고민했지만, 그가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에 놓여있던 포크를 날려서 습격하려던 놈의 어깨를 찍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죠. 칼날처럼 예리한 눈매인데, 푸른 눈동자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더군요.”

그는 본인을 습격하려던 자도 죽이지 않고, 설교를 한 뒤에 2층으로 올라왔다.

“저한테 고개를 숙이면서 살려줘서 고맙고, 이 은혜는 꼭 갚겠다고 했어요. 저는 은혜는 됐으니,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죠.”

처음에 물어보았던 건 왜 저들에게 설교를 하느냐였다. 해봐도 의미 없는 짓이 분명했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도 알고 있더군요. 대부분에게는 의미가 없는 짓이라고. 다만 단 한 사람이라도 새 인생을 산다면 본인의 말들이 도움이 되어 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 역시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실비아는 그날 처음으로 보았던 에드가의 웃음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로, 뛰어난 검술에 어울리지 않게 오러가 왜 그렇게 약하냐고 물었는데, 그는 밝은 얼굴로 ‘그저 그렇게 되었다.’라고 했어요.”

그녀는 흑색으로 굳어지는 검귀의 안색을 보며 에드가와 함께 했던 일들을 하나씩 읊어주었다.

* * *

“간단히 말해서 에드가는 약한 주제에 나대는 사람이었어요. 본인이 마스터라도 되는 듯 까불고 다녔죠. 다만 지그하르트에서. 아니,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성격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계속 눈길이 가더군요.”

“…그렇군요.”

검귀 렉타르는 실비아의 말을 들으며 옅게 웃었다. 다만 그의 속은 타버린 것처럼 시꺼멓게 갈라지고 있었다.

‘너답구나. 에드가.’

멍청한 아들은 련을 나가서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아비를 그리고 련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끝까지 그 이름을 사용하다니, 참으로 그 녀석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답답한 성격을 못 버리는 것도 그렇고.’

에드가는 련에 속해 있는 무인들과 다르게 선하면서도 정의로운 성격을 지녔다. 만약 평범한 세력에 속했다면 협객으로 이름을 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살 수는 없었지.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지만, 에드가는 그게 심했다. 원한 없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만년필이 어울리는 아이에게 평생 검을 잡게 한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그 녀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렸다.

에드가가 련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그 아이를 바꾸려고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제 어미에게 배웠는지 부러질지언정 절대 굽히지 않았다.

‘결국에는 스스로 련을 벗어났더구나.’

외부에 나가 련주의 부탁을 처리하는 동안 에드가는 련주의 시험을 받고, 본인의 힘으로 련을 나가버렸다.

차기 련주의 자리도 노려볼 수 있던 녀석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련을 벗어나 버렸다.

그제야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더 깊게 아들을 이해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몹쓸 녀석….’

련주의 부탁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방 한켠에 남아 있던 아들의 마지막 편지가 떠올랐다.

[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제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버지.]

에드가는 짧지만, 진심이 담긴 편지를 남기고, 련을 떠났다.

그 아이를 찾지 않는 게 아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그 아이가 남겨 놓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이는 무얼 하든 행복해했어요. 돈이 없어도, 어려운 상황을 맞아도 항상 웃었죠. 눈은 좀 무서웠지만, 태양처럼 밝은 사람이었죠.”

실비아가 바람에 흔들리는 정원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저도 바뀌었어요. 지그하르트에서 자라서 냉정했고, 정을 몰랐는데, 그 사람 덕분에 사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에드가와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제가 라온에게 사람을 위해 검을 들라고 했던 것도 에드가 때문이에요. 그처럼 세상을 위해 검을 들고, 항상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랐죠. 음, 두 번째는 애매하지만, 첫 번째는 이루어진 것 같네요.”

실비아는 조금만 더 웃어줬으면 좋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라온의 뺨을 만졌다.

“맞는 말이군요. 라온 검사의 의협심은 대륙 전체에 퍼져 있으니까.”

검귀는 실비아의 말에 동의해주며 손끝을 떨었다.

‘에드가. 넌 원하는 것을 이뤘구나.’

네 삶은 이곳에 녹아 있어.

라온에게 그의 아비가 죽었다고 들었을 때 에드가가 개죽음을 당했다고 여겼다.

련에 남아 있었다면 봉문이 풀렸을 때 검왕이라 불렸을지도 모르는 녀석이 스스로 상처를 입고 멍청하게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들의 의지는 죽지 않고 남아 이 둘과 함께 하고 있었다.

행복을 만든다는 에드가의 이름 뜻처럼. 녀석의 행복은 이곳에 남아 있었다.

‘으음….’

코끝이 따가워지고, 눈가가 찡해져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러까지 운용하며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검귀는 에드가와 함께 했던 삶의 즐거움을 말해주는 실비아를 보며 테이블 아래로 내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

‘힘들게 살았겠군.’

그녀는 일부러 이곳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분명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다.

무가에서 한 번 벗어난 자가 어떤 꼴이 될지를 알고 있기에 마음이 쓰라렸다.

“지그하르트를 떠난 저희는 북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았어요. 사람들은 다정했고, 인근에 산과 강이 있어서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죠. 다만….”

실비아의 밝은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 얼굴을 알아본 에덴의 귀신들이 습격을 해 왔어요….”

그녀는 에드가와 첫째 딸을 에덴에게 잃었다고 말하며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따, 딸? 라온 혼자가 아니었건 겁니까?”

검귀는 딸이 있었다는 말에 놀랐는지 라온을 이름으로 불렀다.

“네. 라온하고는 조금 나이 차이가 나는 누나가 있었죠. 하지만 그이와 함께 에덴의 손에….”

실비아는 결국 말을 마치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았다. 참고 참던 그녀의 눈매에서 가늘진 물기가 흘러내렸다.

찌익.

검귀가 혀를 꽉 깨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몸에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당장 기운이 폭발할 것 같아서 고통을 주며 억지로 힘을 짓눌렀다.

‘내게 손녀도 있었다고?’

턱을 부르르 떨며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며느리와 손자만이 아니라, 손녀도 있었다는 사실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꽉 조여들었다.

‘진작 찾았어야 했는데!’

아니, 가지 않더라도 알아봤어야 했는데.

막심한 후회가 든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들만이 아니라, 손녀까지 잃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에덴의 누구 습격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쌍두귀에요.”

쌍두귀라 하면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에틴의 힘을 이어받은 괴물이었다. 다만 놈의 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놈이 아들을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손녀를 죽였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군.”

검귀가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힘든 이야기까지 해주어서 고맙소.”

그는 실비아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기….”

실비아가 손가락 끝으로 잡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렉타르 님은 에드가와 아는 사이신가요?”

그 말에 가슴이 크게 울렁였다. 실비아만이 아니라, 라온도 무언가 느끼는 듯한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어떠한 확신이 들어서 있었다.

‘그럴만하겠지.’

자신과 에드가는 부자지간답게 얼굴이. 특히 눈매가 닮아 있었다.

라온을 보았을 때도 화려한 외모 속에 숨어 있는 아들의 얼굴을 발견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

아는 사이 정도가 아니라. 내가 네 시아버지고, 내가 네 친할아버지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돼.

현재 자신의 소속은 지그하르트와 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 일을 끝내지 않는 이상 이들에게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가뜩이나 아픈 이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줘서는 안 되니까.

“그건 아니오.”

검귀는 ‘아직은’ 이라는 말을 입안으로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가요.”

실비아는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실망하게 해드려서 미안합니다.”

검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짓누르며 눈을 내리감았다.

“아니에요! 저도 오랜만에 묻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속이 좀 시원해졌어요.”

“그럼 다행입니다.”

검귀는 미소를 짓는 실비아와 라온을 보며 입매를 꾹 다물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이 못난 할아버지가 너를 지켜주마.’

* * *

“다행히 아버지께서 보낸 호위가 도착해서 저희는 살아남을 수 있었죠. 그 이후로는 지그하르트로 돌아와서 라온을 키웠어요.”

실비아는 라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련한 미소를 흘렸다.

“힘들었을 텐데….”

검귀는 이곳의 삶이 어떨지를 아는 듯 눈썹을 내렸다.

“괜찮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편의를 많이 봐주셨으니까요.”

“편의?”

“네. 다른 형제나, 간부들과 부딪치지 않게 이 별관으로 보내주신 거요.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버지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신 것 같아요,”

실비아는 글렌이 이곳에서 편히 살 수 있게 힘을 써줬다고 말하며 웃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겠군.”

검귀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실비아의 연한 미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실비아가 가문을 벗어났다가 돌아온 후 별관으로 보내고, 이전의 시녀들을 그대로 보내줬다는 말에 냉정하지만, 그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었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보기와는 달라.’

직계든, 방계든 혹은 외부에서 온 인원이든 공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는 것도 그렇고 가문의 이름이 먹칠 당하면 직접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글렌 지그하르트라는 무인은 냉정한 외모와 다르게 속이 꽉 차 있는 남자였다.

라온은 몇 시간 째 실비아의 말을 경청해주는 검귀를 보며 두 손을 모았다.

그는 평온하게 대화하는 척하고 있었지만, 미약하게 떨리는 눈빛은 감추지 못했다.

‘안타까움인가?’

아직 사람의 감정이 어려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까움이 비치는 듯한 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대가 된 거지? 광풍대!”

실비아가 지금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부터 광풍대가 됐어요. 난 광견대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 그건 좀 품위가 너무 없어 보이는데….”

그녀는 턱을 떨며 그 이름을 아니라고 중얼거렸다.

“어쨌든 대가 됐으니까! 축하 파티도 하자! 대주님도 부르고….”

“아, 그 사람은 못 와요.”

“어? 왜?”

“한동안 못 움직일 거 같네요. 아니면….”

라온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럼 우리끼리 해야겠네. 준비해야 하니까. 모레쯤 열자. 렉타르 님도 함께 해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손님으로 와서 축하해주시면 되죠!”

“음,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실비아는 고개를 꾸벅이고서 시녀들에게 말을 해줘야겠다며 별관으로 향했다.

라온은 실비아의 등을 지그시 바라보는 검귀의 눈동자를 훑으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아버지와 관계가 없다고 했지….’

실비아는 확신을 가지고, 검귀에게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고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도 들었던 말이었어.’

아주 조금 다르지만.

하분성에 있을 때 실비아와 같은 질문을 했었고 검귀는 아니라도 대답했었다. 다만 그때는 앞에 한 단어가 더 붙어 있었다.

‘아직은 이라고 했었지.’

이미 죽은 사람과 아직은 모른다니, 굉장히 어색한 말이었다.

'확실해. 검귀와 아버지는 아는 사이였어.'

그것도 꽤 가까운.

검귀는 본인의 표정을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면 확연히 티가 났다. 그와 아버지는 분명 안면이 있었다.

라온은 빈 찻잔을 들어 올리는 검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께 큰 빚을 졌거나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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