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6화
엔비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인상을 구겼다. 그녀는 한참동안 눈동자를 굴리다가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지, 질투의 권능을 달라고? 네 그릇에게?”
“그렇느니라.”
라온은 다시 분노를 일으키며 라스의 어투와 표정을 연기했다. 얼굴만이 아니라, 기운까지 조절해야 하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계약에 계약서가 필요하듯 맹세에도 증거가 필요한 법이지. 네 권능을 본왕의 그릇에 넘기는 것으로 맹세를 받아 들이겠느니라.”
분노가 깃든 목소리로 무게감을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엔비는 자존심이 상한 건지, 권능을 주고 싶지 않은 건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처음 봤을 때도 확인했지만, 네 그릇은 인간답지 않게 질투가 전혀 없어. 권능을 주어도 아무런 의미도 없을 거야.”
그녀는 다시 이쪽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어 올린 뒤 고개를 저었다.
-마, 맞느니라!
라스가 입에서 흘러나온 침을 닦으며 눈을 번쩍 떴다. 아직 제정신은 아닌지 동공이 푸들푸들 떨렸다.
-다른 건 몰라도 네놈은 찌질하게 질투 따위 안 하잖느냐! 추잡한 질투 따위 받아도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니라! 지금이라도 그만두어라!
녀석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필사적인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니, 있어.’
<나태>에서도 능력이 태어났으니까.
전생과 현생 모두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지만, 슬로스에게 <나태>의 권능을 받으며 잠만 자도 강해지는 능력을 얻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질투한 적이 없었지만, 엔비에게 <질투>의 권능을 받게 되면 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능력이 개화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건 모두 저 솜사탕 덕분이겠지.’
라스에게 <분노>를 얻고, 녀석과 함께 지내며 마왕의 권능에 대한 적응력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불길하게 인사 같은 거 하지 말고, 빨리 거절이나 하란 말이다!
‘인사를 해도 난리네.’
라스가 호통을 쳤지만, 무시하고 정면에 선 엔비를 바라보았다.
“질투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으니라. 처음에 말했듯이 질투의 권능을 받는 건 네가 굴복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니라.”
라온이 입매를 길게 말아 올렸다. 턱까지 치켜들어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아, 안 돼! 지금도 지랄 맞은 놈인데, 마왕의 권능이 세 개가 되면 정말 못 막느니라!
라스가 동그란 손을 파들파들 떨었다.
-절대 주면 안 되느니라! 엔비! 정신 차려! 너 마왕이야! 자존심 챙기라고!
녀석은 제발 멈추고, 도망치라고 외쳤지만, 엔비는 눈썹을 가늘게 떨 뿐 움직이지 못했다.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라온이 고뇌하는 엔비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눈빛을 가라앉히며 다시 분노와 나태를 동시에 일으켰다.
화아아아아!
오른손에서 차오른 분노의 냉기가 백은의 광휘를 이루고, 왼손에서 뻗어나간 나태의 기류에 슬로스가 깨어난 듯 몸을 떨었다.
‘후우욱….’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두 마왕의 권능을 운용하다 보니, 전신이 개미에 갉아 먹히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그래도 멈춰서는 안 돼.’
혀끝을 씹으며 고통을 경감시켰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저 찌질이의 권능만큼은 무조건 가져가야 한다.
“슬로스. 이제 잠에서 깰 때다. 본왕에게 반항하고, 네 잠을 방해한 추잡한 뱀의 독니를 뽑고, 목을 뜯어내거라.”
“으흡!”
라스의 어투를 따라 하며 입매를 비틀자, 엔비가 겁에 질린 듯 어깨를 떨며 뒤로 물러섰다.
“아, 알겠어! 줄게! 준다고! 그러니까 눈깔 좀 곱게 떠!”
엔비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녹안은 진한 빛을 잃어버리고, 짜증과 질투 그리고 창피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그릇에 담아주면 되는 거겠지?”
“그렇다. 허튼 수를 쓰면 재미없을 것이야. 본왕이 바로 본신을 드러내고, 슬로스가 일어날 테니까.”
라온은 자그마한 떨림도 없는 평온한 어조로 질투의 군주를 협박했다.
내장이 가루가 될 정도로 긴장되었지만, 불의 고리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여기서 술수를 부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거든?”
엔비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간을 구겼다.
-멍청하지 않기는! 대놓고 돌대가리지 않느냐!
라스가 엔비에게 날아가 머리를 박았다.
-이 멍청하고, 추잡한 뱀 놈아! 어떻게 이 정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이냐! 그냥 도망치란 말이다!
녀석이 엔비의 머리를 깨물고, 복부를 후려쳤지만,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영광인 줄 알아라. 내 통제를 벗어난 질투를 내어주는 건 처음이니까.”
엔비는 이를 바득 갈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강렬한 푸른빛이 일렁거린다. 이전처럼 살기로 물들지 않았음에도 폐부를 찌르는 듯한 아릿한 기운이었다.
화아아아아!
진녹색 기운이 뱀처럼 꾸물거리며 허공을 타고 날아와 손목을 물었다.
찌릿한 고통과 함께 마나회로를 통해 질투의 기운이 파고들어 왔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막으려고 들었지만, 엔비의 질투는 라스가 분노를 보내는 것처럼 마나 회로의 끝으로 나아가 영혼의 바닥을 향했다.
파지지직!
깊게 가라앉은 영혼의 끝을 진녹색으로 물들이던 엔비의 질투는 충분한 권능을 주었다고 생각했는지, 단호하게 흐름을 끊고 물러났다.
슬로스 때와 같은 감각인 것을 보니, 더러운 수를 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질투>의 능력 일부가 혼과 육체에 스며듭니다.]
[적응 기간이 끝난 뒤 능력이 발동됩니다.]
그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손목을 휘감고 있던 엔비의 질투가 꼬리를 무는 어린 뱀의 형상으로 변하고, 등에서는 연녹색 꽃이 피어난 기묘한 팔찌가 되었다.
“네 취향에 맞췄다. 성질머리와 다르게 여전히 냄새나는 쓰레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로군.”
엔비가 손목에 걸린 얼음 꽃팔찌와 검은 꽃팔찌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
라온은 손목를 휘감고 있는 세 개의 꽃팔찌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또 꽃팔찌라니!’
꽃팔찌 말고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라스의 취향이 저거라 말을 꺼내는 순간 의심의 싹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 정도 기운이라면 더 요구할 필요는 없겠어.’
한 번에 너무 많은 기운을 얻으면 통제를 할 수 없기에 이 정도 양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후우….”
엔비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조금 모자라느니라.”
라온은 충분한 양의 질투를 받았음에도 일부러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은 무리야! 마왕의 권능이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지금 본왕에게 따지는 것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마왕이라고 해도 마족. 엔비는 무너진 힘의 균형에 굴복하며 고개를 떨궜다.
-아아아악! 다 망했어!
라스가 본인의 솜사탕을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질투는 저 찌질이의 것이지만, 보상을 주는 능력치는 본왕에게서만 빠져나가지 않느냐!
녀석이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며 땅을 후려쳤다.
-이게 요즘 유명한 쾌락 없는 책임이냐고!
‘요즘 유명한 건 책임 없는 쾌락이고.’
라온은 울부짖는 라스를 밀어내고, 엔비를 굽어보았다.
“맹세의 증거로 충분하기는 하군.”
“그럼 이제 가도 되는 거겠지? 네가 말한 대로 다 해줬잖아.”
엔비는 당장 떠나고 싶은 듯 발뒤꿈치를 가늘게 들었다.
“아니, 그릇이 네게 원하는 바가 있다고 하느니라.”
라온은 분노를 꺼뜨리지 않은 채 입맛을 다셨다.
-네놈 또 무엇을 하려고!
라스가 불안한 듯 입술을 떨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왔으면 가죽까지는 털어먹어야지.’
눈빛을 가라앉히며 엔비에게 손을 들어 올렸다.
“본왕의 그릇이 질투를 다루는 네놈의 기예를 원한다고 하느니라.”
“아앙?”
엔비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부릅떴다.
“기, 기예? 지금 질투를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거야?”
“그렇느니라.”
라온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왕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질투를 다루는 법까지 알고 싶다는군. 훌륭한 수하이니라.”
슬로스와 달리 엔비는 다시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 질투를 다루는 법을 배워놓지 않는다면 권능의 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어려운 건 필요 없느니라. 본왕이 그릇에 강림하기 전까지 이 녀석이 다룰 정도면 충분하느니라."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
라스가 엉금엉금 기어 와서 발목을 붙잡았다.
-본왕의 이름 좀 그만 팔란 말이다! 인생이 망했….
‘마생.’
-마생이 망했느니라!
녀석은 분노의 군주라는 이름값이 바닥을 친다며 코를 훌쩍거렸다.
"후우."
엔비가 회색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정말이지 지랄 맞은 날이네."
“분노가 아니라, 지랄을 맞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라온은 차갑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고쳐주었다.
“어설픈 수를 써서 속이려고 했다가는 네 목이 날아갈 것이니라.”
“알아. 이런 걸로 널 속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고!”
엔비는 돌아갈 수 없는 외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번만 들려줄 테니까. 잘 들어라.”
그녀의 입에서 처음 듣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기괴한 발음. 따라 할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언어였다.
-멍청한 놈!
라스가 땅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홱 들어 올렸다.
-저건 마계의 언어이니라! 네놈이 듣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니라!
녀석은 절대 해석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처음 듣는 언어야. 그런데….’
라온이 가늘게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듣겠는데?’
라스와 함께 있었기 때문일까. 마계의 언어로 말하는 엔비의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 지, 진짜로?
‘그래. 어렵지 않네. 지금은 육체에 질투를 두르는 호흡을 말하고 있잖아.’
-아아….
‘능력치도 주고, 마왕도 불러주고, 이젠 언어까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해주다니, 역시 네가 최고라니까.’
라온이 입을 떡 벌린 라스에게 미소를 흘렸다.
‘오랜만에 아낌없이 주는 라스 등장인가?’
-이,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데! 이젠 머리가 아프느니라!
라스는 다시 기절하고 싶다며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여기까지다.”
엔비가 마계의 언어로 기예를 설명한 뒤 눈을 내리감았다.
“설마 다시 말해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당연히 필요 없느니라.”
라온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움직이는 방식인지 이해를 했으니까.”
“…바로 이해했다고?”
“네가 알려준 질투의 기예는 본래 가진 격보다 더한 기세를 끌어내는 허장성세의 능력이지 않느냐. 본래 질투라는 건 서열에 집착하며 만들어진 감정이니, 이해가 가는군. 네놈답게 찌질해."
불의 고리를 통해 단숨에 엔비의 능력을 파악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지금 엔비가 알려준 기예를 응용하면 분명 다른 길에도 도달할 수 있을 테니, 큰 이득이었다.
-빌어먹을….
라스가 입술을 꾹 씹었다.
-왜 이런 미친놈한테 재능과 운이 붙는 것이냐! 하늘은 대체 뭐 하냐고!
녀석은 마신과 천신을 동시에 찾으며 기도를 올렸다.
“줘도 지랄이네.”
엔비는 짜증이 돋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되었다. 네 맹세는 받았으니, 가보도록 하라.”
라온은 파리를 쫓듯이 손을 저었다.
“네놈이 하인들을 아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그릇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모양이로군.”
“특별? 아니다.”
턱을 모로 틀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본왕의 부하는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 네놈처럼 쓰레기로 여기는 아이는 하나도 없지.”
“흥! 입으로는 뭔들 못하겠어.”
엔비는 콧방귀를 뀌고서 등을 돌렸다.
“그만 가보도록 하지. 맹세는 지키되, 이곳의 일은 절대 잊지 않겠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엔비는 처음처럼 거만한 눈동자를 두르며 사나운 눈빛을 드러냈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네.'
힘에 굴복해놓고, 살자마자 저렇게 똥폼을 잡는 것을 보니, 웃음만 나온다. 마계의 마왕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없었다.
“그럼….”
“잠깐.”
엔비가 뒤로 물러나서 무스턴과 함께 떠나려고 할 때 라온이 손을 저었다.
“그건 내려놓고 가라.”
“뭐? 이건 내 노예야!”
“네 노예가 노리고 있는 게 본왕의 그릇이었지 않나. 별거 아니겠지만, 놔둘 수는 없지. 놓고 가도록.”
무스턴이 엔비를 따라가면 후에 어떤 위협이 될지 모르기에 죽이더라도 여기서 죽여야 한다.
“빌어먹을….”
엔비가 입술을 깨물며 손을 내렸다. 허공으로 떠오르던 무스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은 뜨고 있는데, 의식은 없는지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지도 않았다.
“오늘은 손해뿐이네. 아주 엿 같게도!”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이 사선으로 갈라지며,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녹색 차원이 열렸다.
“좆 같은 놈들!”
엔비는 라온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서 진녹색 차원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
라온이 분노를 꺼뜨리지 않은 채 느릿하게 시선을 굴려 라스를 보았다.
‘갔냐?’
-갔다. 갔다고! 이 개자식아!
라스가 달려와 멱살을 쥐었다.
-네놈의 대가리엔 뇌 대신 마요네즈가 들어갔냐? 대체 거짓말을 몇 개나 흘린 것이나!
‘나도 잘 모르겠어.’
긴장이 풀려서일까. 머리가 멍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아…."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힘을 뺏다간 기절하겠어.’
육체가 망가진 상태에서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휘돌리고, 마왕의 기운을 운용했으며, 머리까지 굴렸기에 당장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간신히 살았군.’
정말 한 끗 차이로 살아남았다. 이곳이 슬로스의 둥지였고, 엔비가 직접 찾아와서 다행이었다.
“허….”
라온이 뒤를 돌아서 슬로스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고블린 왕의 마석을 꼭 끌어안은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괜히 나태의 군주가 아니네.”
슬로스는 나태의 군주라는 이름을 땅따먹기로 받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듯 지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본왕은 저 잠탱이가 아니라, 네놈의 대가리를 열어보고 싶으니라! 어떻게 그런 얍실한 생각만 할 수 있는 것이냐!
‘급하니까 되더라고.’
라온이 피식 웃었다.
‘물론 네 덕분에.’
이번 일은 라스가 했던 말들을 잘 들어둔 것과 무스턴을 미리 만나보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지금 이곳은 마왕 셋의 전쟁터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살아서 다행이야.’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꾹 참으며 쓰러진 무스턴에게 다가갔다.
‘얘는 왜 계속 이러고 있는 거지?’
죽은 것도,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왜 눈을 뜬 채로 기절했는지 모르겠다.
-계약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계약?’
-엔비 그 멍청한 놈이 계약을 다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슬로스를 찾아와서 주종의 계약이 종료되지 않았느니라.
라스는 한심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얘는 어떻게 해?’
-저대로 굳은 채로 뒤지는 거지. 누가 와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니라!
녀석은 찌질한 놈의 최후로 잘 어울린다며 입매를 비틀었다.
“음….”
라온이 무스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질투를 하다못해 질투의 군주까지 불러올 놈이니, 차라리 여기서 사라지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렉타르 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라온이 무스턴의 손목을 잡았다. 그를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처리하려고 한 것인데, 손에 풀이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왜….’
당황하여 손을 떼려고 하는데, 조금 전 영혼에 달라붙은 진녹색 질투의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 솟구쳤다.
파아아아!
그 기운이 무스턴의 손목에 닿자마자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종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인에게서 <질투>를 흡수하시겠습니까?]
라온은 그 메시지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주종의 계약?”
주종이라 하면 주인과 하인이라는 뜻으로 지금 무스턴이 하인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놀라서 속으로 말하는 것도 잊고 육성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거기다 질투를 흡수해?’
무스턴이 가진 질투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놈이 가진 질투의 감정을 가져와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본왕은 그냥….
라스는 그 메시지를 보며 방실 웃었다.
-뒈질란다!
녀석은 동그란 주먹으로 본인의 정수리를 후려치며 울부짖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니라! 평생 이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을란다!
그 말이 정말인지 라스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연달아 머리를 내리쳤다.
“음….”
라온이 라스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가뜩이나 몸 상태가 안 좋은데, 옆에서 시끄럽게 구니 현기증이 일었다.
‘그만해. 돌아가면 파인애플 피자 먹을 테니까.’
-…….
그 말에 라스의 주먹이 우뚝 멈췄다.
-몇 판? 쿠키 추가 가능?
‘…….’
진짜 먹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