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2화
다음날 오전.
라온의 소집 명령을 들은 광풍단 검사들이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내일까지 휴식 아니었어?”
가장 먼저 들어온 버렌은 몸이 찌뿌둥한지 어깨를 돌리며 단상 앞에 섰다.
“그러니까! 왜 아침부터 부르고 난리야!”
마르타는 까치집처럼 삐친 머리를 다듬지도 않은 채 인상을 찌푸렸다.
“흐아아암….”
루난은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듯 눈을 감은 채 하마처럼 하품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지? 누구 들은 거 없어?”
“모르겠어.”
“워낙에 충동적인 인간이라….”
“단주님은 왜 어제부터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지?”
광풍단 검사들은 어제 실컷 놀았는지 눈 밑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느, 느낌이 안 좋아….”
“이거 영 이상한데….”
도리안과 크레인은 위기 감각이 발동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타악!
광풍단 모두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실내 훈련장에서 라온이 걸어 나왔다.
“전부 모였네.”
라온은 단상 위로 올라가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사악하게 웃는 것을 보니, 또 괴롭힐 생각이로구나.
‘그럴 리가.’
괴롭힐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진심을 저들 모두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 과격해지더라도….
“내가 내일까지 쉬라고 했었지?”
라온은 팔짱을 낀 채로 피곤해 보이는 광풍단 검사들을 쭉 훑어보았다.
“맞아요!”
“휴식 시간 방해하지 말고, 빨리 사라져!”
“뭔 일을 시킬지 몰라서 무섭다구요!”
광풍단 검사들은 휴식을 방해하지 말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쉴 거야?”
라온이 단상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어…?”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말 쉰다니?”
광풍단 검사들은 그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내일까지 휴식을 주긴 줄 건데, 정말 쉴 거냐고.”
라온이 서늘한 안광을 두른 채 광풍단 검사들을 굽어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중에 전투를 치른 것도 아니고, 이동밖에 안 했는데 이틀이나 쉰다고? 아직 익혀야 할 검술과 보법, 훈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또! 논다고? 지그하르트의 적이 세상에 가득한데 또 쉬어?”
“아….”
“어윽….”
‘또’라는 말을 강조할 때마다 광풍단은 어깨를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놀 수야 있지. 놀 수는 있어. 실컷 놀아도 돼! 먹고, 쉬고, 자도 되지. 다만 그렇게 놀고 나중에 내 훈련을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는 정말 지옥이 될 텐데, 빠져나올 수 없는 생지옥.”
지옥이라는 단어에 무게가 실린 건지, 광풍단 검사들의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굽어졌다.
“하, 할게….”
“수련한다고! 하면 되잖아!”
“휴식 주지 말고, 처음부터 그냥 시키던가!”
“진짜 너무해요!”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광풍단 검사들은 악을 지르며 고개를 쳐들었다.
“다시 물어볼게.”
라온은 울분에 찬 광풍단의 외침을 못 들은 척 손을 들어 올렸다.
“혹시 오늘 놀고 싶은 사람?”
“…….”
당연하게도 거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훈련 참여를 해주다니, 이 부단주는 감동했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라온이 군인처럼 말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계의 ‘자발적’은 마계와 뜻이 다른 건가….
라스가 동그란 손으로 귀를 파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빌어먹을!”
“저 악마. 아니, 마왕 자식아!”
“넌 진짜 곱게는 못 죽을 거다!”
“귀신은 뭐 하는 거야! 저 인간 안 잡아가고!”
광풍단은 악을 지르며 연무장 곳곳으로 흩어져서 훈련 준비를 시작했다.
-미안하다….
라스가 패배한 무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귀신은 성불 당했고, 본왕은 잡혔느니라….
* * *
라온은 정오까지 광풍단의 훈련을 봐준 후 무스턴이 있는 의무실로 향했다.
무스턴은 아직 일어나지 못했고, 그의 옆에는 치료사 대신 검귀가 앉아 있었다.
“좀 괜찮습니까?”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나쁜 상태는 아니네.”
검귀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쪽을 올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후유증이나, 생명에 문제가 생기기 직전에 끝나서 큰 문제는 없을 걸세.”
“다행이네요.”
“자네 혹시 사람 패는 법을 배우기라도 한 건가? 거의 예술의 경지로 조져놨더군.”
그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상스러운 단어까지 말하며 대단하다고 헛바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스승님의 모욕을 들어서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커흠, 그건 내가 정말 할 말이 없어. 미안하네.”
조금 민망해져서 리메르의 욕 때문이라고 말하자, 검귀가 눈을 꾹 내리감았다.
“제자 교육을 잘못시켰으니, 녀석이 일어나면 바로 혼을 내겠네.”
검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욕을 먹어도 싸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라온이 고개를 저으며 검귀를 살폈다.
‘듣던 것과는 정말 다르네.’
검귀는 날카로운 눈매처럼 냉철하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함께 지내보니 훌륭한 인격을 가진 무인이었다.
이런 사람이 왜 저런 망나니를 제자로 삼은 건지 모르겠다.
“무스턴이 일어나면 이걸 먹이십시오.”
라온은 가지고 온 내상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내상도 입었을 테니,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맙네.”
검귀는 사양하지 않고, 내상약을 받았다.
“그럼 나중에 다시 들리겠습니다.”
라온은 고개를 꾸벅인 후 돌아가려다 멈춰서 다시 검귀를 보았다.
“그리고 이젠 말 낮추십시오. 한참 선배님인데, 제가 불편합니다.”
검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말을 놓지 않았기에 먼저 말을 낮추라 말했다.
“그건… 나중에 하겠네.”
검귀는 갑자기 몇 년은 늙은 듯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뭔가 사정이 있는 듯한 검귀의 안색에 더 이상 묻지 않고 병실을 나섰다.
“…….”
검귀는 라온이 나간 문을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잘 컸구나.’
그는 라온이 놓고 간 내상약이 든 목갑을 매만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빨리 만나보고 싶군.”
* * *
라온은 점심을 먹은 뒤 밀랜드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그의 집무실은 예전처럼 소박했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저거 뭡니까?”
술에 진탕 취한 빨간 머리 엘프가 우측 구석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여기서 술을 마시다가 지 혼자 쓰러졌다.”
밀랜드가 찻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냉정한 지그하르트의 광검이 어쩌다가 저런 멍청이가 됐는지 모르겠군.”
그는 사람이 망가지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해합니다. 단주님은 여기까지가 끝이겠지라고 생각하면 땅굴을 파고 들어가시더군요.”
라온은 배를 긁으며 잠꼬대를 하는 리메르를 보며 혀를 찼다.
“저 주정뱅이를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여긴 왜 온 것이냐?”
밀랜드가 책상 위 서류를 옆으로 치우며 고개를 들었다.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어보고 싶은 거?”
“예. 요즘 몬스터의 개체가 줄어든 겁니까? 거의 안 보이던데….”
“나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게도 네가 떠난 이후로 몬스터들의 숫자가 티 나도록 줄었다. 웨이브에서 오는 몬스터들도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감소했지.”
밀랜드는 덕분에 사상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며 활짝 핀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네가 우리의 복덩이였던 것 같아.”
그는 고맙다며 다가와 손을 잡았다.
“어? 복덩이는 내 거야! 내 돈. 내 재신. 근데 내 돈이 다 어디로… 켁!”
리메르가 잠꼬대를 하며 버둥거리기에 가볍게 걷어차서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잘됐네요.”
라온이 들뜬 밀랜드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약속을 지켰군.’
슬로스에게 몬스터 관리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적당히 숫자를 조절해 준 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 남아 있었군.’
그 나태한 마왕이 이곳을 떠나고도 그런 일을 해줄 리 없으니. 그는 아직 스터린 산 정상에 있는 게 분명했다.
“성주님. 잠시 스터린 산에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스터린 산? 거긴 왜?”
“오랜만에 돌아보고 싶어서요. 말씀대도 몬스터들이 줄었는지 확인도 좀 하고.”
“그럼 정찰대를 준비하마.”
밀랜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혼자 다녀오고 싶습니다. 정찰대가 따라오기 힘든 속도로 움직일 생각이라서요.”
“하긴 저 산 근처에 너보다 자주 간 사람은 없으니, 괜찮겠지.”
그는 믿겠다는 듯 손을 저었다.
“금방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라온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문을 향했다.
“아, 잠깐.”
밀랜드가 코를 골며 자는 리메르를 가리켰다.
“가는 길에 저것 좀 데리고 가라.”
“…….”
라온은 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는 사람이라….”
“야!”
* * *
라온은 가볍게 짐을 챙긴 뒤 하분성을 나섰다.
누구도 밟지 않은 새하얀 설원 위에 서자,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역시 눈은 여기가 최고라니까.’
세상에서 가장 하얀 눈이 내리는 곳답게 눈을 밟는 촉감 자체가 기분 좋았다.
‘가볼까.’
예전의 기억을 되새길 필요도 없이 멀리 보이는 스터린 산을 향해 보법을 밟았다.
‘보법 연습하기에 나쁘지 않겠어.’
스터린 산까지 거리가 있으니, 단순히 보법을 밟으며 뛰는 게 아니라, 보법 수련을 하면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라온은 태화보에 여러 무학의 조화시키는 연습을 하면서 스터린 산을 향해 나아갔다.
이전과는 무력의 격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수련을 하면서 왔음에도 늦은 밤이 되기 전에 스터린 산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온은 산을 올려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정말 개체 수가 줄어들었군.’
원래 스터린 산 주변에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가득한데, 밀랜드의 말대로 느껴지는 몬스터들의 기척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떻게 한 걸까?’
-뭘 어떻게 해.
라스가 스터린 산을 올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부 재운 거지.
‘재웠다고?’
-슬로스가 나태의 기운을 뿌려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을 재워버린 것이니라.
녀석은 몬스터들을 재워서 개체 수를 조절하다니, 미친 잠탱이라고 중얼거렸다.
‘재웠다고?’
설화의 감각을 개방해 몬스터들을 자세히 살폈다.
라스의 말대로 몬스터들은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낮은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 있었다.
‘진짜로군.’
산 주변으로 나태의 기운을 뿌려서 몬스터들을 재우다니, 독특하면서 효율적인 해결책이었다.
“대단하네.”
라온은 픽 웃으며 스터린 산을 올랐다.
“크르르르.”
“키아아악!”
다만 슬로스가 모두를 재운 건 아니었기에 사람의 냄새를 맡은 아이스 트롤 무리가 나타났다.
“크륵?”
“크으….”
놈들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다가 눈을 마주치자마자, 우뚝 멈춰 섰다.
“크으으….”
“끼이이….”
기세를 높이거나, 오러를 운용하지도 않았는데, 아이스 트롤들은 그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겁에 질려 꼬리를 만 개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본능인가.’
야생의 본능이 경고한 듯 덤빌 생각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석상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강해진 게 실감 나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저 아이스 트롤들과 생사가 달린 싸움을 했었는데, 지금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보자,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게 느껴졌다.
“물러나. 건드릴 생각 없으니까.”
라온은 위축된 몬스터들에게 손을 젓고서 계속 산을 올랐다.
중간중간 아이스 트롤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났지만, 놈들 역시 눈을 마주하자마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움직이지 못했다.
도끼날처럼 날카로운 협곡을 따라서 올라가자,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정산 근처라서 속도를 높이려는데, 전신의 힘이 풀리는 듯한 나른한 향이 느껴졌다.
“이건 뭐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산 정상 전체에서 흐릿한 검은빛이 스멀스멀 올라와 반원 형태의 거대한 막을 일으켰다.
‘보호막인가?’
넓은 범위를 둘러싸고 있음에도 기운이 워낙 단단해서 쉽게 깰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후후후.
라온이 벽을 보며 인상을 찌푸릴 때 라스가 얍실해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라스는 흐릿한 검은 벽을 보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나타나? 이게 뭔지 알아?’
-결계이니라.
‘결계?’
-그렇느니라. 그 잠탱이 놈이 다른 존재가 들어올 수 없게 결계를 쳐 둔 것이니라.
녀석은 슬로스가 결계를 치는 건 오랜만에 본다며 입맛을 다셨다.
‘결계의 효과는 뭔데? 설마 다가가면 재우는 건가?’
-그런 게 아니니라. 이 근처에 오는 순간 자연스럽게 귀찮은 감정이 떠올라 산에 올라가려는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귀찮음 또한 나태의 힘이니까.
라스가 인간과 몬스터 모두에게 통하는 방식이라고 중얼거렸다.
-다만 네놈처럼 나태의 힘을 느끼는 놈에게는 귀찮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단단한 벽을 세워버리지.
녀석은 손등으로 슬로스가 만들어낸 검은빛의 벽을 두드리며 혀를 내밀었다.
-허약한 네 녀석이 100년을 두드려도 이 벽은 깨지지 않느니라! 헛고생 아주 잘했느니라!
‘너 그럼 이거 알고 있었어?’
-본왕은 분노의 군주이니라. 당연히 알고 있었지!
라스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낄낄 웃었다.
-지금 그 당황한 표정을 보기 위해서 모른 척 연기했느니라!
‘이 자식….’
-오랜만에 네놈의 열받은 표정을 보니, 속이 시원하느니라!
라스는 어제 안 먹고 놔둔 파인애플 피자 두 조각의 원수라며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여튼….’
저 식충이 마왕은 도움이 안 된다니까.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노의 군주가 아니라, 유치의 군주다.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단해 보이는 건 사실이야.’
슬로스의 결계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까지는 은폐되어 느끼지 못했지만, 눈에 들어오니,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장대한 힘이 느껴졌다.
라스의 말대로 결계에 실린 나태의 힘이 너무 강해서 지금은 어떤 검술을 사용해도 깰 수 없을 것 같았다.
‘역시 난 아직 멀었군.’
얼마 전에 다짐했던 대로 마스터 최상급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더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
“그럼 슬로스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멍청한 녀석. 슬로스는 한 번 잠에 빠지면 년 단위로 일어나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 두들겨 패지 않는 이상 절대 깨지 않아.
라스는 무엇을 해도 헛고생이라며 비웃음을 흘렸다.
-절대 깰 수 없는 벽을 눈앞에 둔 기분은 어떠하냐. 속이 뒤집어 지겠지? 본왕은 매일 그 기분을 느끼고 있느니라!
녀석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 조롱을 속사포로 내뱉었다.
-네놈이 오늘 안에 그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본왕이 직접 능력치와 특성을 내어주마!
라스는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중얼거리며 방긋 웃었다. 피자를 먹을 때나 볼 수 있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대신 못 뚫으면 돌아가는 대로 파인애플 피자 다섯 판을 시켜서 먹거라!
‘그 약속 잘 기억해 둬.’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깬다.
라온이 숨을 고르며 슬로스의 결계로 손을 뻗었다.
우우웅.
결계를 직접 만져서 강도를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는데, 팔을 물에 넣는 것처럼 몸이 검은 기운을 가르고 안으로 쑥 들어갔다.
-엥…?
“어?”
라온이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왼팔도 결계로 밀어 넣었다. 이번에도 아무런 막힘없이 팔이 안으로 들어갔다.
“되는데?”
그것도 너무 쉽게.
-어? 어어? 어어어어억!
라스의 눈동자가 갓 잡은 물고기처럼 팔딱 뛰었다.
-이건 또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