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1화
뻐어어어억!
라온의 주먹이 무스턴의 얼굴을 관통하는 듯한 시원한 타격음이 설원을 뒤흔들었다.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버렌은 다리가 부러진 인형처럼 꼬꾸라진 무스턴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러다가 진짜 죽겠는데?”
아직 팔팔한 라온에 비해 무스턴은 주먹을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눈이 썩은 생선처럼 풀려 있는 것을 보니, 대항할 힘과 의지를 잃은 것 같았다.
“놔둬. 저놈이 알아서 하겠지.”
마르타가 라온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검귀의 제자인데….”
“담이 왜 이렇게 작아. 저 정도로 안 죽어.”
“지금 60대 넘게 맞고 있는데, 당연히 걱정되지! 저놈 죽으면 난리 난다고!”
“저 족제비 같은 녀석이 냉정을 잃을 리가 없어. 화난 것처럼 보여도 다 생각이 있을 거야.”
그녀는 라온을 신뢰하는 듯 큰일은 없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아닌데.”
루난이 개구리처럼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화났어.”
“뭐?”
“라온. 진짜로 화났다고.”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라온의 눈을 가리켰다.
“음…”
버렌과 마르타가 루난의 손가락을 따라 라온의 눈을 살폈다.
“어어…?”
“지, 진짜네. 저놈 눈깔이 살짝 돌아갔어….”
두 사람은 광견단을 운용할 때처럼 광기에 물든 라온의 눈동자를 보며 어깨를 떨었다.
“저, 저건 집중력 강화 훈련을 할 때의 눈이잖아….”
“흐으으, 트라우마가….”
“부단주가 왜 저렇게 화가 난 거지?”
“그러니까 이 대결을 갑자기 왜 하는 건데?”
광풍단은 왜 이 대결이 시작되었는지를 궁금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도 못 들었어요.”
도리안도 저 둘이 싸우는 이유는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알고 있어요.”
하분성의 3번 정찰대장 라딘이 손을 들어 올렸다.
“아까 검귀의 제자가 라온 님에게 너희 스승은 머저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광풍단 전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은 라온처럼 광기가 차오른 눈으로 무스턴을 노려보았다.
“단주가 머저리라고?”
“저 자식이 우리 스승을 욕한 거야?”
“저 싸가지 없는 새끼가….”
“우리도 내려가서 조질까?”
광풍단 검사들은 당장이라도 대련에 끼어들 것처럼 사나운 기세를 드높이다가 우뚝 멈췄다.
“근데….”
“그거 사실 아니냐?”
“맞지. 단주님이 조금 머저리 기질이 있긴 한데….”
“조금이 아니라, 대놓고.”
“그럼 별건 아니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야.”
모두는 틀린 말은 아니라며 드높이던 기세를 풀었다.
“맞는 말이지. 처맞는 말!”
마르타가 광풍단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다.
“그 인간이 머저리인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말을 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라고!”
그녀는 본인이 무스턴을 팼어야 했다고 말하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래. 라온이 저리 화난 이유를 알겠네.”
버렌이 라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욕을 해도 우리가 하지. 남이 하면 속이 뒤집히니까. 다만….”
그는 신음을 흘리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저러다 진짜 죽겠는데,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나?”
“놔둬! 죽어도 싸니까! 나라면 처음에 목을 날렸어.”
마르타는 직접 싸우지 못해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괜찮아.”
루난이 성 아래를 빼꼼히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라온. 이제 풀렸어.”
그녀는 무스턴의 허리를 후려 차는 라온을 보며 눈을 껌벅였다.
“저,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응. 이제 적당히 할 거야.”
라온은 루난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저 맹한 녀석이 어떻게 알았지?’
루난의 말대로다. 일부러 화를 참지 않고, 광기를 두른 채 무스턴을 패버렸지만, 성벽 위에서 광풍단이 화를 내주자, 분노가 가라앉았다.
-아주 걸레가 되었군.
라스는 축 늘어진 무스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네가 말했던 질투의 감정은 사라졌어?’
-아예 정신이 나갔는데, 뭘 알 수 있겠느냐!
녀석은 죽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을 만들어놨는데, 고통 빼고 뭐가 보이겠냐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놈은 이 땅에 있기에 아까운 재능이니라.
라스가 어깨를 잡으며 진중한 눈동자를 빛냈다.
-본왕과 함께 마계로 가자. 네놈이라면 농락과 폭력의 군주라는 새로운 마왕의 좌에….
‘잡상인 사절이요.’
라온은 라스를 밀어낸 후 무스턴을 내려다보았다.
‘대충 해결됐나 보네.’
역시 매에는 장사가 없다니까.
무스턴의 머리를 들어 올려 그와 눈을 맞췄다.
“몇 대 맞았는지 셌나?”
“…이, 일흔여덟 대.”
“넌 일곱 대까지밖에 안 셌는데?”
“그, 그건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다….”
“그건 네 사정이니까. 아직 아흔세 대 남은 거 맞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난 분명 숫자를 세, 셌는데….”
“내가 못 들었으면 안 센 거야.”
말아 쥔 주먹으로 무스턴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퍼어어억!
공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고, 무스턴이 새우처럼 허리를 굽힌 채 꺽꺽 비명을 내뱉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야말로 미친개! 역시 마계에 새로운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건 네놈뿐이니라!
‘조용히 좀 해.’
라스의 말을 무시하고 무스턴의 머리를 밟았다.
“네 스승이 소중하면 남의 스승도 소중한 법이야. 그게 설사 도박에 미친 망나니에, 게으름뱅이이자, 돈벌레고, 주인공 병에 걸린 머저리 스승이라고 해도.”
“너, 너도 지금 대놓고 욕을 하면서….”
“그니까 내 스승은 나만 욕하겠다는 뜻이다.”
라온이 발뒤꿈치로 무스턴의 관자놀이를 내리찍었다.
“끄어억….”
무스턴은 격통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은 채 고개를 떨궜다.
“우와아아아아!”
“잘했어! 우리 단주는 우리만 욕할 수 있지! 그 망할 도박쟁이!”
“어디 가서도 살아남을 미꾸라지 같은 엘프!”
“엘프와 지그하르트를 동시에 망신시키는 유일한 존재!”
광풍단이 리메르를 욕하며 손을 마구 흔들었다.
“일단 시원하기는 한데….”
라온이 망가진 장난감처럼 흐느적거리는 무스턴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이제 어떻게 하지?”
* * *
밀랜드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용해진 것을 보니, 다 끝난 모양이군요.”
“예.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정이 난 듯합니다.”
검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밀랜드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나가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말씀대로라면 그 아이가 졌을 텐데….”
“이쪽으로 오고 있을 테니, 저희는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겁니다.”
그는 이곳으로 다가오는 라온의 기척을 느낀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흐음….”
리메르가 잘게 썰린 파인애플을 씹으며 눈매를 좁혔다.
“그쪽 제자. 좀 심하게 다쳤을 것 같은데요.”
“괜찮소. 솔직히 말해서 무스턴이 제대로 깨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검귀는 담담한 눈빛으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내 제자 녀석은 어려서부터 오냐오냐 자랄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해 왔소. 본인보다 어린 라온에게 두 번이나 깨졌으니, 이제 그 녀석도 정신을 차리겠지.”
“많이 깨지면요?”
“조금 전에 말했잖소, 제대로 깨지기를 바란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몸이 망가질 정도로 맞으면 어떻게 할….”
리메르가 지금 걱정하고 있는 바를 말하려고 할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라온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밀랜드가 먹으려던 안주를 내려놓고 입을 뗐다.
끼이익.
낡은 문이 낮은 비명을 지르며 열리고, 기절한 무스턴을 업고 있는 라온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스턴 검사와 작은 다툼이 생겨서 대련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손을 과하게 써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온은 등에 업고 있는 무스턴을 힐끔 보고서 고개를 숙였다.
“괜찮네.”
검귀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본래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지. 신경 쓰지 말게나.”
“음, 맞아서 기절했는데….”
“팔다리가 잘리기라도 했나?”
“그건 아닙니다.”
“그럼 상관없네. 그 아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맷집이 좋아서 맞을 때 확실히 맞는 게 나아.”
“그래도 조금 심하게 때려서….”
“상관없다니까. 오히려 최선을 다해 싸워줘서 고맙게 생각하네.”
그는 정말 괜찮다는 듯 여유롭게 위스키를 들이켰다.
“무스턴은 내가 돌볼 테니, 돌아가 보게. 아직 할 일이 많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아, 잠깐.”
라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무스턴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 검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왜 다퉜는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그가 제 스승님을 모욕했습니다.”
“나? 쟤가 날 욕했다고?”
리메르가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 했지?”
“머저리라고 했습니다.”
“하아….”
검귀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미안하네. 내가 제자 교육을 잘못 시켰어.”
그는 즉시 리메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머저리라….”
리메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오리 구이가 담긴 그릇을 내려놓았다.
“내가 머저리라는 건… 딱히 틀린 말이 아니잖아? 그걸 바로 파악하다니, 대단한데?”
그는 무스턴의 눈썰미가 장난이 아니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오리 구이를 먹기 시작했다.
“단주….”
라온은 한심하다는 단어가 그대로 드러날 법한 표정으로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후우, 그리 말해줘도 마음이 편치 않군. 정말 미안하네.”
검귀는 리메르의 농담에도 표정을 굳힌 채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라온. 저놈을 아예 못 일어나게 패주지 그랬나.”
“음, 많이 팼는데….”
“기절 정도가 아니라, 다시는 그딴 소리를 못 하도록 주둥이를 뭉개 놨어야 했네.”
“뭉갰는데….”
“놈이 일어나면 입을 놀릴 수 없게 확실히 교육하겠네. 믿어주게나.”
그는 수고했고, 가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알겠습니다.”
라온은 무스턴을 내려놓고, 세 사람에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갔다.
“후우….”
검귀가 한숨을 내쉬고서 무스턴에게 다가갔다.
“이 한심한 놈. 운이 좋은 줄…어?”
그는 바닷가 바위에 걸쳐진 미역처럼 널브러진 무스턴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좀 많이. 아니, 너무 많이 맞았는데?’
예상과 달리 그의 제자는 10년 넘게 버려진 폐가처럼 망가져 있었다.
팔다리만 달려 있을 뿐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이었나?’
죽였으면 죽였지, 인간을 이렇게 잘 팰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라온에게 더 때리라고 말했지만, 여기서 더 맞았다간 정말 폐인이 되거나, 죽었을 것 같았다.
“허어….”
“말했잖아요.”
검귀가 얼떨떨한 눈으로 시선을 돌리자, 리메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온이 진짜 광견이라니까.”
눈 돌아가면 스승도 팬다고!
* * *
라온은 성주의 저택을 나와서 서리의 가지로 향했다. 대련 구경을 마친 광풍단이 먼저 도착해 있어서 주점 내부가 시끌시끌했다.
“이 맛이 그리웠어. 역시 스튜와 정식은 여기가 최고라니까.”
도리안은 점장이 만든 고기 스튜를 맛보며 헤죽거렸다.
“진짜 맛있긴 하네.”
“네가 그렇게 자랑한 이유를 알겠다.”
“피자만이 아니라, 음식 자체가 다 맛있어.”
“유아가 왜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지 이제 이해가 가네.”
광풍단원들은 식탁 위에 펼쳐진 다양한 요리들을 맛보며 행복스럽게 웃었다.
-무얼 하는 것이냐!
라스가 강아지처럼 혀를 날름 내민 채 테이블을 가리켰다.
-네놈도 빨리 앉아서 먹어라! 본왕이 이곳의 요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녀석은 상이 다 차려져 있는데, 왜 똥폼을 잡고 있냐며 어깨를 두드렸다.
‘난 먹으려고 온 거 아닌데?’
-아니라도 먹어! 좀 처먹으란 말이다! 네놈은 빠싹 말라서 살을 좀 찌워야 하느니라!
‘내가 마른 게 아니라, 네가 찐 거야.’
그 말을 하며 통통 늘어진 라스의 뱃살을 주물렀다.
“어? 오셨어요?”
라스의 뱃살을 치즈처럼 늘리고 있을 때 주방에서 유아가 걸어 나왔다.
이마에 두건을 쓰고, 양 갈래머리를 찰랑이는 모습을 보니, 저 아이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
“은인!”
유아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점장까지 뛰어나왔다. 그는 밀가루가 묻은 손을 털며 고개를 숙였다.
“오셨으면 앉으십시오. 이곳에 계실 때 좋아하시던 파인애플 피자와 파인애플 쿠키를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는 두 음식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면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라온 도련님을 위해서 파인애플 피자와 파인애플 쿠키의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셨대요.”
“파인애플 피자와 파인애플 쿠키….”
“그거 좋아하시잖아요.”
유아가 유일한 특별 취급이라며 싱긋 웃었다.
“금방 나올 테니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열심히 스튜를 마시는 도리안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파인애플 피자? 너 그런 거 먹어?”
마르타가 고기가 가득한 피자를 씹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민트초코 먹을 때부터 알아봤지. 쟤 입맛은 꽝이야.”
“피자에 파인애플이라, 사과를 땅콩버터에 찍어 먹는 급이로군.”
버렌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맛알못들.”
루난은 입을 삐죽 내밀며 유일하게 편을 들어 주었다.
“민트초코가 얼마나 맛난데.”
당연히도 파인애플 피자가 아니라, 민트초코에 대한 반박이었다.
“하아….”
라온이 옆에 둥둥 떠 있는 솜사탕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에 괴식꾼으로 소문나겠다.’
-그건 저놈들의 혓바닥이 이상한 것이니라! 파인애플 피자는 피자 중 으뜸이니라!
‘맛있긴 한데, 난 그냥 치즈피자가 더 좋아.’
-그런데 조금 전에 눈깔이가 말한 땅콩버터에 사과는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느냐?
‘좀 참아줘….’
이 와중에 또 먹는 생각을 하다니, 이 솜사탕의 식성에 한계는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빨리 앉아라! 파인애플 소녀와 점장의 성의를 무시해서는 안 되느니라!
라스는 잘 걸렸다는 듯 동그란 손으로 등을 톡톡 두드렸다.
“에휴….”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앉았다.
정말 따로 준비해놓았는지 얼마 기다리지 않았는데, 유아가 큼지막한 피자를 가지고 나왔다.
“드세요! 할아버지의 자신작이니까. 맛있을 거예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피자를 보자, 입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이전보다 토핑이 다양해서 눈으로만 보아도 맛있을 것 같았다.
-빠, 빨리! 빨리 입에 넣어라! 어서!
라스의 입에서는 수문을 연 댐처럼 침이 쏟아지고 있었다.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자 한 조각을 들었다. 고무줄처럼 치즈가 쭉 늘어나는 피자를 그대로 입에 넣었다.
잘 구워서 달달해진 파인애플과 짭짤한 돼지고기와 소고기 그리고 고소한 새우가 한데 어우러져 씹을 때마다 입안에 환희로 차오르는 것 같았다.
-크으으으!
라스가 시원한 신음을 흘리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통통 쳤다.
-수많은 토핑과 구운 파인애플의 조화가 대박이니라!
녀석은 이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거라며 헤죽거렸다.
‘여전히 맛 표현은 못 하네.’
파인애플 피자의 맛은 이전과 격이 달라졌는데, 라스의 맛 표현은 참혹할 정도로 그대로였다.
“도리안.”
라온은 손에 든 피자 조각을 모두 삼키고, 옆에서 후식을 먹고 있는 도리안을 불렀다.
“너 혹시 베개랑 이불 좀 있어?”
“당연히 있죠.”
“평범한 거 말고, 최고급으로.”
“까슬거리는 하품부터 최고급까지. 전부 다 있어요. 필수품이잖아요.”
도리안은 매트리스까지 종류별로 있다며 웃었다. 필수품이 아닌 게 대체 뭔지 모르겠다.
“그럼 최고급으로 하나씩만 좀 담아줘. 돈은 내 금화에서 빼고.”
라온이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서 도리안에게 내밀었다.
“드릴 수는 있는데 침구류가 갑자기 왜 필요하세요? 부단주님은 땅바닥에서도 잘 주무시잖아요.”
“내가 쓸 거 아니야.”
라온이 멀리 형상만 비치는 스터린 산의 정상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잠꾸러기에게 줄 선물이지.”
이제 슬로스를 찾아가서 조언을 들어야 할 때였기에 그에게 줄 선물이 필요했다.
“응?”
파인애플 쿠키를 오독이며 씹던 루난이 고개를 벌떡 들었다.
“나?”
아니, 너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