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6화
라온은 리메르에게 혀를 날름거리는 라스를 보며 픽 웃었다.
‘둘이 만나면 재밌을 거 같네.’
유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라스와 리메르가 만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기대되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애들처럼 싸우려나?’
리메르와 라스의 대화를 상상하고 있을 때 웬디 아리안이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리메르에게 다가가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광풍단주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련장에 도박판을 열고 싶다고 하기에 처음에는 돈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오해였다.
라온과 리메르는 아리안 가문을 구해준 것으로 모자라서 금전적인 지원까지 해주려고 이 도박 계획을 짰던 것 같았다.
‘역시 지그하르트고, 역시 광풍단인가.’
리메르에 관한 나쁜 소문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전부 헛소문이었던 것 같다.
라온에 이어서 연달아 영웅을 만나게 되니, 감격스러워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허허허….”
리메르는 로엔에 빙의한 듯 인자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가는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이렇게 많은 금액을 기부해주시다니….”
“아리안 가문은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새롭게 아리안 가문의 간부가 된 사람들도 리메르에게 고개를 숙이며 환호를 질렀다.
“허허허….”
리메르는 이번에도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헹가래를 쳐 드리자!”
“우와아아아!”
“리메르 님 감사합니다!”
웬디와 간부들은 리메르에게 헹가래를 쳐주며 다시 한번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허허허….”
리메르는 허공에 둥실 떴다가 내려오면서도 허허로운 미소만 그렸다.
아예 사람이 고장 난 것처럼 보였다.
“은인?”
“리메르 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라온이 리메르의 옆으로 다가갔다.
“기뻐하시는 겁니다, 원래부터 기부를 좋아하는 분이라.”
“아, 그러셨군요!”
“역시!”
“기부가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아리안의 간부들만이 아니라, 관객들도 다시 리메르를 칭송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하긴 저도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간부 중 한 사람이 리메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예전에 친구 녀석이 리메르 님이 보육원에 기부하는 걸 봤다고 했었죠.”
그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을 중얼거리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기부? 절도가 아니라?”
라온이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떴다.
“단주님이 직접 기부하신 적도 있습니까? 동명이인 아닙니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혹시 몰라서 리메르에게 물어보았다.
“몰라. 인마!”
리메르는 고개를 홱 돌리고서 대련장을 내려갔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은행!”
“옙!”
라온이 부름에 도리안이 펄떡 뛰어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계산은 끝났어?”
“당연하죠!”
도리안은 정말 은행장이라도 된 듯 장부를 훑어 내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웬디 님께 단주님의 기부금을 드리도록.”
“알겠습니다.”
그는 배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웬디 아리안과 간부들에게 건네주었다.
“아….”
“정말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웬디와 간부들은 수북하게 쌓인 금화 주머니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세피아 상회에 연락해서 아리안과 거래를 트라고 좀 전해 줘. 최상급 포도와 블루베리를 독점할 기회니까. 부리나케 달려 올 거야.”
동맹 세력이라고 해도 좋을 아리안 가문과 세피아 상회가 연결되며 더욱 두터운 관계가 만들어질 게 보여서 미소가 지어졌다.
“상회주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도리안이 냉큼 고개를 끄덕인 뒤 상회주에게 받았던 통신용 구슬을 꺼냈다.
“광풍단! 광풍단! 광풍단!”
“아니야! 요즘에는 광견단이라고 부른다고!”
“광견단! 광견단! 광견단!”
관객들은 아리안을 구하고 많은 금화를 기부한 광풍단을 찬양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광견이 아니라, 광풍이라고 이 새끼들아!”
마르타는 광견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에 불길을 일으켰다.
“으아아아악!”
“나찰녀다! 지그하르트의 악마견!”
“악마는 내가 아니라! 라온 놈이야!”
그녀가 관객석으로 뛰어들어 난동을 피웠지만, 그건 사소한 사고에 불과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미소를 지으며 오늘의 축제를 즐겼다.
‘아, 한 명 빼고.’
유일하게 웃지 않는 사람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 피눈물을 흘리는 빨간 머리 엘프 한 명뿐이었다.
“끄으윽, 내 돈. 내 꽃길….”
그는 도리안이 꺼낸 금화 뭉치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제 검귀 님과 한 약속을 지킬 때… 음?
라온이 검귀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춰 섰다.
‘저건….’
검귀의 뒤편에 있는 무스턴이 핏발이 돋아 오른 눈동자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웃지 않는 놈이 하나 더 있군.’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검귀는 대련 이후 무스턴을 힐난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했던 것 같은데, 그게 하나도 통하지 않은 느낌이다.
기세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눈동자에 실린 악의가 이전보다 더 독해졌다.
‘한 번 제대로 밟아야겠는데.’
마스터 최상급이 된 덕분에 무스턴이 제 실력을 발휘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꺾을 자신이 있었다.
힘으로 짓눌러서 서열정리를 해주어야 할 것 같다.
“렉타르 님.”
라온은 무스턴의 날카로운 시선을 여유롭게 받으며 검귀에게 다가갔다.
“다 끝났습니다.”
검귀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본인의 숙소 쪽으로 손짓했다.
“조용한 곳에서 차나 한잔하지.”
* * *
검귀가 찻잔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맞은편에서 차를 홀짝이는 라온을 보며 숨을 골랐다.
‘아무리 봐도 닮았어….’
라온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각각 갈색과 푸른색으로 바꾼다면 그 녀석과 비슷하게 보였다.
‘특히 싸울 때의 표정은 아예 똑같았지.’
지금처럼 평온한 얼굴이 아니라, 라온이 전력을 다해서 싸울 때는 그 녀석이 돌아와서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넓기에 어느 정도 닮은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정도로 비슷한 경우는 혈육 말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렉타르 님?”
“크음!”
라온의 부름에 렉타르가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흘렸다.
“미안하네. 잠시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아뇨. 괜찮습니다.”
라온이 잔잔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 쓸쓸해 보이셨는데.’
조금 전 검귀는 검의 귀신이 아니라, 나이를 그대로 드러낸 노인처럼 서글프게 보였다.
다른 생각이라고 한 것을 보니, 잠시 옛 추억에 빠진 모양이다.
‘무슨 질문을 하시려는 거지?’
부탁도 아니고, 제자와 재대결도 아니고 몇 가지만 묻겠다고 하다니, 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게.”
“예.”
“자네의 부친과 모친에 대해 좀 물어봐도 되겠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렇네.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자네를 이리 반듯하게 키웠는지 알고 싶네.”
검귀는 담담한 눈빛으로 스무 살의 나이에 무력과 정신력 그리고 인성까지 만들어진 게 신기하다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인성이라….’
검귀도 제자인 무스턴의 인성이 망가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제자를 위해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보자, 그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딱히 비밀도 아니니까.’
실비아의 아들이라는 건 이미 다 퍼진 상태였기에 말해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머니는 실비아 지그하르트. 본래 지그하르트의 검사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다만 검사 이상으로 마음이 굳건하시고,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입니다.”
라온은 실비아에 대해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조금 전에 인성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부끄럽게도 제게 협이라는 이명이 붙었던 건 저희 어머니 덕분입니다.”
실비아가 옛 지그하르트 검사처럼 남을 위해서 검을 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전해 주었다.
“…그렇군.”
검귀가 침음성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네의 부친은?”
“좀 이상한 말일 수 있지만, 전 아버지를 잘 모릅니다.”
“잘 모른다?”
“예.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나 뵙지도 못했습니다.”
“주, 죽었… 다고?”
검귀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의 입술은 가늘게 떨렸다.
“어떻게? 병이라도 걸린 건가?”
“외인에게 설명 드리기 좀 그렇지만 살해당하셨습니다.”
“…….”
검귀가 눈을 감았다. 강철처럼 굳건해 보였던 그의 어깨가 나뭇가지처럼 얄쌍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시지 않으셔서 솔직히 말하면 성함도 듣지 못했습니다.”
“사이가 안 좋았던 건가?”
“아뇨. 두 분 사이는 누구보다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크게 느낄까 봐 배려해주신 걸 겁니다.”
실비아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때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픈 안색이 되었다.
그 슬픈 표정을 보기 힘들어서 일부러 이름도 묻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표현해보자면 아버지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키가 크고, 검술 실력도 굉장히 뛰어났지만, 오러에 재능이 없어서 이름을 알린 검사는 아니라고 하셨죠.”
라온은 이전에 실비아가 자근하게 말해주었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만 아버지는 남을 위해서 검을 들고, 남 앞에 설 때 더 강해지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처럼 타인을 생각하게 된 건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어머니 덕분이겠네요.”
전생을 인성이 마모된 암살자로 살았기에 실비아가 아니었다면 검귀의 제자 무스턴처럼 어딘가가 파탄 난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비아와 별관의 사람들을 만난 건 최고의 행운이었다.
“…….”
검귀는 말없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몇 방울 남아 있는 찻물들이 증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미안하네만, 자네 부친이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 알 수 있겠나? 부탁하네.”
“…에덴입니다.”
“그…렇군.”
그가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검을 맞댈 때도 굳건했던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음….”
라온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검귀를 보며 입술을 매만졌다.
“혹시 저희 아버지와 아는 사이십니까?”
지금 검귀가 보여주는 행동은 아버지와 관계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다.”
검귀는 그사이에 감정을 조절했는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하긴 이 정도 설명으로 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아는 사이가 되는 게 더 신기한 일이다.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되겠나?”
검귀가 짧은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지그하르트로 돌아갈 때 함께 갈 수 있겠나?”
“혹시 저희 어머니를 뵈려고 하시는 겁니까?”
“자네 아버지에 대해 조금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네.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겠네.”
그는 검을 쥐는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올리며 검사의 맹세를 말했다.
“바로 가지 않고, 하분성에 들릴 생각인데 괜찮으십니까?”
“상관없네.”
“손님으로 오시는 거라면 괜찮을 겁니다.”
검귀가 적도 아니고, 만약 아버지와 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리 나쁜 감정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 큰 도움을 받았으니, 그를 초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고맙네. 정말….”
검귀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담백한 눈빛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달아오른 철판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아닙니다. 출발은 5일 뒤니까. 미리 준비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조리 잘하라고 말한 뒤 눈을 내리감았다.
라온은 고개를 숙인 뒤 검귀의 방을 나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네.’
검귀와 아버지의 관계를 생각하며 1층으로 내려가는데, 계단에서 무스턴이 올라왔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두 자루의 칼이 담겨 있었다.
“스승님과 무슨 말을 했지?”
무스턴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서늘한 기운을 일으켰다.
“네가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라온이 무스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알아야 할 일이었다면 너도 방에 부르셨겠지.”
“건방진….”
무스턴의 미간이 주먹으로 말아 쥔 종이처럼 구겨졌다.
“방심한 순간을 노려놓고, 네놈이 정당하게 이겼다고 착각하는 것이냐!”
“착각이 아니라, 현실이지.”
“내가 처음부터 본 실력을 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싸운다면 네놈은 내 상대가 못 돼!”
그는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다는 듯 검집을 꽉 쥐었다.
“렉타르 님을 보아서라도 한번은 참도록 하지.”
“네놈의 주둥아리로 스승님의 이름을 담지 마라!”
한숨을 내쉬고,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무스턴이 거칠게 어깨를 잡았다.
“너야말로 주제 파악을 더럽게 못 하네.”
라온이 몸을 돌리고, 무스턴에게 다가갔다.
쿠구구구!
자연스레 공명하는 불의 고리. 마스터 최상급에 도달하고, 더욱 높아진 격과 심상의 검결이 해방되며 장대한 기파를 일으켰다.
“끄으으윽….”
무스턴이 거대한 기세에 맞서기 위하여 격을 끌어 올렸지만, 칼날을 두른 듯한 날카로운 기파에 갈기갈기 뜯겨나갔다.
“이, 이게 무슨….”
그는 턱을 달달 떨며 계단에서 뒷걸음을 쳤다.
“으헉!”
라온이 기파가 더욱더 거칠어지자, 무스턴은 발을 헛디뎌서 계단을 굴러 바닥에 꼬꾸라졌다.
“무스턴.”
라온은 넘어진 무스턴을 굽어보며 건조한 음성을 흘렸다.
“승부의 세계에 방심 따위는 없다. 실전이었다면 지금 네 목은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거야.”
“으윽….”
“알았으면 입 닥치고 꺼져 있어.”
전신을 떠는 무스턴을 놔두고 검귀의 숙소를 나섰다.
-저놈, 질투에 먹혔느니라.
라스가 혀를 쯧 찼다.
-본래 질투라는 것은 본인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지. 더러운 뱀과 같은 마음이라고 하여 뱀심이라고도 하느니라.
‘뱀심….’
-마계에도 저런 놈이 있었느니라. 좋은 말을 해 줘도, 본인이 가진 게 넘쳐도 남을 질투하고, 질시했지. 다만 그 미친놈은 그 질투를 이용하여 거대한 힘을 얻었느니라.
녀석은 마족 중에서도 더럽게 추한 놈이라고 중얼거렸다.
‘그거 설마….’
-그렇느니라. 놈은 그 추한 질투의 힘으로 마왕의 자리까지 올랐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질투의 군주. 엔비. 라스가 부하들을 험하게 다룬다고 말해주었던 또 다른 마왕이었다.
‘질투의 힘으로 너랑 비슷한 수준에 오른 건가?’
-무슨 헛소리냐! 본왕이 놈보다 훨씬 강하느니라!
라스는 부하들의 질에서도, 본신의 무력에서도 엔비 따위는 짓밟을 수 있다며 코를 훌쩍였다.
‘뭐, 저놈은 찌질해서 마왕 따위는 안 되겠지.’
라온이 검귀의 숙소를 올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궁금하네. 검귀 님이 왜 저런 머저리를 제자로 받았는지….’
* * *
“후우….”
검귀가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확실해졌군.’
주제를 모르고 나서는 정의로운 성격과 오러는 약하지만, 검술은 뛰어난 점. 마지막으로 큰 키까지.
실비아에게 확인해야 알 수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라온의 아버지는 그 녀석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폐관 수련을 하고 있을 때 그 녀석이 큰 희생을 치르고 ‘련’을 나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일이 이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다.
‘하필 지그하르트인가….’
다른 가문도 아니고, 지그하르트에 속해있다는 것에 속이 아려 왔다.
‘하긴 네놈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지.’
검귀가 헛웃음을 흘리며 울렁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무스턴이 들어왔다.
“스승님. 조금 전에 라온과 무슨 대화를 하신 겁니까?”
그는 어딘가 일그러진 얼굴로 다가왔다.
“별일 아니다.”
검귀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하지 않을 일을 말할 수 없기에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나흘 동안 수련이나 하거라. 5일 째에는 광풍단과 함께 지그하르트로 갈 것이니 준비하고.”
“예?”
무스턴이 입을 떡 벌렸다.
“지, 지그하르트에 가신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곳은 저희의 적진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우리 정체를 모른다고 해도 거길 왜….”
“네 말대로 아직 너와 내 소속은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만 가능한 일이다.”
검귀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스승님이 재능 있는 육황의 무인들에게 가르침을 내린 건 몇 번 보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릅니다.”
무스턴이 이를 바득 갈았다.
“다른 육황이라면 몰라도 지그하르트와 저희의 골은 깊지 않습니까! 아무리 라온 지그하르트가 마음에 들어도 이건 선을 넘으셨습니다!”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정신 차리십시오! 당신의 제자는 접니다! 곧 련에 호출이 올 텐데, 그 전에 사고가 터진다면 큰 문제가 될 겁니다!”
무스턴은 절대 안 된다는 듯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검귀가 깊게 감았던 눈을 떴다. 암석처럼 단단한 의지가 깃든 눈동자가 시퍼렇게 번쩍였다.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