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5화
라온은 새롭게 엮은 만검과 함께 검귀의 압박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뿌드드득!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뼈는 조각나 바스러지고, 근육이 모두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가장 고통이 심한 건 뇌였다. 과하게 달아오른 상단전 때문에 머릿속이 시꺼먼 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크으으….’
어금니를 바득 깨물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검귀의 푸른 눈.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예측 범위 안이라는 건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것을 보니, 검귀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이쪽의 성장을 예측했던 것 같다.
‘좋아.’
그 표정을 깨주지.
통증을 참는 건 숨 쉬듯 해오던 일이다. 심장과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을 견디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우우우웅!
불의 고리의 영향을 받은 상단전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심상의 세계에 묻혀 있던 검들의 몸체가 조금 더 드러나며 제천검에 담긴 만검의 묘리가 찬란한 빛을 뿜었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멀기만 했던 검귀가 눈앞으로 다가왔고, 제천검 역시 검귀의 검과 닿을 것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캬아아아앙!
제천검과 검귀의 검이 맞부딪친다. 충격파도 굉음도 없다. 검날 사이에서 각자가 쌓은 만검이 힘을 겨루며 청아한 울림을 일으켰다.
쿠구구구!
다만 그 고고한 울림과 달리 검귀의 검에서 쏟아지는 압력은 두 배로 강해져 전신을 짓눌러왔다.
“크으으윽!”
진흙을 밟고 있는 것처럼 발목을 후들거리고, 무릎이 부러질 것처럼 꺾인다. 몸 전체가 멈추라고 악을 쓰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계속 간다.’
저자의 표정을 부수기 위해서.
얼마 남지 않은 오러를 모조리 쏟아부으며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고, 오직 검귀와 그의 검만이 보였다.
심상의 세계에 박혀 있는 검의 새싹들이 크게 솟아오르는 듯한 환상과 함께 제천검에 더 성숙해진 무학이 깃들었다.
뿌드드드득!
하늘의 무게를 담은 듯 끝없이 내려서던 검귀의 검이 처음으로 밀려난다.
폭포를 거꾸로 오르는 연어처럼 나의 만검이 검귀의 만검을 가르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수천 장의 종이가 단번에 잘리는 듯한 절삭음과 함께 검귀의 검이 한 뼘 이상 위로 올라갔다.
“음….”
검귀의 입에서 처음으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고, 시간이 멈춘 듯 무감했던 그의 눈동자도 파도를 맞은 것처럼 출렁거렸다.
‘조금만 더….’
육체는 죽을 것 같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다.
‘벽을 깰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마스터 최상급이라는 벽을 깼지만, 그보다 더 거대한 벽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운을 쥐어짜고, 검술의 묘리를 극한까지 다듬어 제천검에 담아냈다. 검귀의 검이 더 멀리 밀려났다.
우우웅!
검귀와 나만이 있는 백색 공간에서 갑자기 푸른 솜사탕이 튀어나왔다.
-이 멍청… 너… 이대로… 죽….
라스가 눈앞으로 나타나 동그란 손을 버둥거리며 소리를 지르는데, 뭐라고 하는 건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네 머리… 터지는… 그만….
또 뭔가가 먹고 싶은 건지 난리를 쳤다.
나중에 먹어줄게.
녀석을 무시하고 계속 힘을 끌어 올렸다. 심상의 세계가 확장될 것처럼 일그러지고, 눈앞에 장대한 빛무리가 차올랐다.
‘더 위로 갈 수 있어.’
한 차원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그 벽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곳까지 이끌어주던 검귀의 검이 너무도 쉽게 튕겨 나갔다.
“아….”
심장이 사라진 듯한 허무함에 제천검을 떨어뜨렸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던 거대한 벽이 가라앉고, 검귀와 둘만이 있던 새하얀 공간이 사라진다.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순간이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빌어먹을!’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남았는데, 그 벽 하나만 넘었으면….
잡지 못한 그 벽을 아쉬워하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아니, 힘을 주려고 하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커헉!”
심장과 머리. 아니, 전신에서 돋아나는 끔찍할 정도의 격통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허억! 허억!”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억지로 호흡했다. 텅 비어 있던 폐에 공기가 차오르며 닫혀 있던 시야가 열린다.
잊고 있던 수많은 관객과 망가진 대련장이 눈에 들어왔다.
“으윽….”
라온이 소매로 볼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제복이 뻘겋게 물들었다. 눈과 코에서 피가 나온 것 같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이 미친놈!
라스가 앞으로 튀어나와서 멱살을 쥐었다.
-네놈 죽다가 살았느니라!
녀석은 무리하게 상단전을 운용하다가 숨이 끊어질 뻔했다며, 멱살을 쥔 손을 흔들었다.
‘내가 죽을 뻔했다고?’
-그렇느니라! 숨도 쉬지 않고, 냉과 열의 마나를 모두 운용하면서 억지로 상단전의 문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몸이 어떻게 버티겠느냐!
‘아….’
-네놈의 육체는 본왕의 것이니라! 함부로 다루지 마라!
라스는 다시는 이딴 미친 짓을 하지 말라며 박치기를 해 왔다.
“괜찮은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렁이는 속을 가라앉힌다.
“으음….”
라온이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검귀가 처음과 같은 시선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니, 같지는 않다. 담담해 보이는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네. 조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걸 알고 있나?”
검귀는 라스와 같은 말을 하며 낮은 숨을 뱉었다.
“내 검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밀어내려다가 오히려 손해를 볼 뻔했네. 그것도 자네의 목숨이라는 다신 없을 손해를.”
그의 눈동자가 매서운 빛을 발한다. 깊은 꾸짖음이 담긴 눈빛. 검을 내리칠 때보다 더한 예리함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저 말이 맞느니라. 저 영감이 조금만 더 늦게 검을 거두었다면 네놈은 상단전은 폭발하여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니라.
라스는 검귀를 다시 보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검을 거뒀다고… 아!’
조금만 더 나아가면 거대한 벽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검귀의 검이 너무 쉽게 밀려났던 게 생각났다.
성장을 방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목숨을 구해준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럼 정말 가르침을 주시려고 했던 건가?’
검귀는 처음에 말했던 대로 제자의 불명예를 갚으려는 게 아니라, 한참 뒤에 있는 후배의 성장을 도와주려고 한 모양이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온이 입술을 깨물며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굽혔다.
“육체의 상처는 고칠 수 있네. 내상도 오래 걸리지만 회복할 수 있지. 하지만 단전은 한 번 망가지면 복구하기 어려워.”
검귀가 검지로 본인의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특히 상단전은 잘못 건드리면 폐인이나, 백치가 될 수도 있어. 다른 단전보다도 훨씬 섬세한 조작이 필요하네.”
“음….”
“태어났을 때부터 상단전이 열려 있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랜드 마스터가 된 이후에 열리게 되네.”
검귀는 멀리 있는 유아를 보았다.
“다만 자네는 그 어느 쪽도 아니야. 상단전이 열린 상태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성장하면서 상단이 열린 특이한 경우지. 이번에는 가늘게 열린 상단전을 한계 이상으로 운용하다가 폭주하여 이 상태까지 온 것이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마스터 상급. 아니, 지금 벽을 넘었으니 최상급이로군. 자네는 너무도 빨리 정상에 도달했어.”
검귀의 눈동자가 이쪽을 관조하듯 낮게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자네가 밟은 계단이 날카로운 바위로 만든 것들이라면, 앞으로 걸어야 할 계단은 썩은 나무 혹은 얇디얇은 종이로 만들었을 수도 있네.”
앞으로의 성장은 지금까지와 달리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한다는 것 같았다.
“잘나가는 나무꾼도 가끔은 도끼를 갈아주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법. 오늘 벽 하나를 넘었으니, 한동안 여유를 가지도록 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라온은 검귀의 현기 어린 조언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맞아.’
검귀와의 대련을 통해서 마스터 최상급에 올랐고, 만검에 대한 큰 깨달음도 얻었다.
그랜드 마스터와 검계현신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천천히 한 발씩 내디딘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전에서 무아지경에 빠진 채 성장한다는 건 평소 훈련에 전력을 다한다는 뜻이겠지. 자네가 왜 스무 살의 나이에 지금 경지에 올랐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군.”
검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앞으로도 정진하게.”
“예.”
라온이 그에게 다시 허리를 굽히고 일어났을 때 대련장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
“백검룡이 검귀의 일검을 막았다!”
“라온! 라온! 라온!”
“백검룡! 백검룡! 백검룡!”
사람들은 검귀가 검을 거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백검룡의 이름만을 외쳤다.
“어떻게 된 인간이 볼 때마다 강해지지?”
“지금 경지가 대체 어디야?”
“이제 대륙십이성 상위도 이기는 거 아니야?
“충분하지!”
관객들은 라온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떠들며 환호를 질렀다.
“그게 아닙니다!”
라온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내가….”
검귀가 스스로 물러났을 뿐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대련장에 있는 모든 관객이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소용이 없었다.
“괜찮네.”
검귀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검귀 님의 명성이….”
“명성 같은 건 중요치 않아.”
그는 본인에게 명성 따위는 의미 없다고 말한 뒤 시선을 내렸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자네에게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나?”
“얼마든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일 때 뒤에서 리메르의 함성이 들려왔다.
“꽃길이다! 이제 난 꽃길만 걷는 거야!”
수많은 사람이 환호를 지르고 있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귀에 쏙쏙 박혔다.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라온이 뒤를 돌아보며 서슬 퍼런 눈빛을 빛냈다.
“꽃을 좀 태워도 될까요?”
* * *
리메르는 라온에게 문제가 생긴 걸 알자마자, 튀어 나갔다가 멈춰 섰다.
‘다행히 괜찮아진 모양이네.’
라온이 무리하게 상단전을 운용했는데, 다행히 검귀가 제때 멈춰 세운 것 같았다.
‘냉정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의외로군.’
검귀가 몹쓸 짓을 할까 봐 긴장을 풀지 않았는데, 그는 오히려 라온의 경지를 높이고,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제자에게 망신을 준 라온에게 조언까지 해주는 것을 보니, 그는 날카롭다는 소문과 달리 대범한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대련은 잘 끝났고 나는….”
또 부자가 됐구나아아아아아!
오웬의 삼왕자에게 맡겼던 금화와 그로부터 얻을 수익에 수수료 40%까지.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수수료에 조금 반발하겠지만, 아리안 가문을 지원한다고 하면 잦아들겠지.’
사람들은 40%나 되는 수수료를 듣고, 난동을 부리겠지만, 아리안 가문의 지원을 위해서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역시 난 천재라니까. 그리고….’
리메르는 검귀와 마주 선 라온에게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우리 복덩이 라온은 나의 유일한 재신이시지. 앞으로도 잘 부탁…음?’
리메르는 마주 선 라온과 검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알겠군. 왜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지.’
검귀를 처음 보았는데, 왜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옆에서 멍하니 박수를 보내는 도리안에게 손짓했다.
“도리안.”
“예?”
“라온이랑 검귀 영감이랑 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어?”
“예에? 검귀 님도 잘생기시긴 했지만, 부단주님 정도는 아니죠.”
“머리카락이랑 눈동자 말고, 이목구비의 조화를 자세히 봐봐.”
도리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라온과 검귀의 얼굴을 차례로 살폈다.
“어? 오오!”
그는 리메르를 보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렇게 보니까 확실히 비슷하네요! 라온 님이 훨씬 화려한 외모지만, 검귀 님하고 비슷한 면이 있어요!”
도리안은 비슷한 게 아니라, 거의 똑같은 느낌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우연일지… 음?”
리메르가 입맛을 다실 때 라온이 그에게 손짓했다. 이곳으로 오라는 듯한 제스처였다.
“단주님. 부단주님이 부르는 것 같은데요?”
“그러네. 왜 부르는 거지?”
“조금 전에 훈련 이야기가 나왔으니, 단주님의 가르침 덕분에 검귀의 검을 버틸 수 있었다고 띄워주려는 것 아닐까요?”
“음, 그러려나?”
라온은 원래 명성에 별 관심이 없는 녀석이니,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험! 그럼 나가볼까.”
리메르가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우오오오오오!”
“광풍단주다!”
“백검룡의 스승!”
라온이 워낙에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인지 그의 스승으로 이름이 알려진 리메르에게도 함성이 터졌다.
“왜 불렀느냐?”
리메르는 조금 전까지 도박장을 운영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묵직한 음성을 흘렸다.
“단주님이 좋은 일을 하셨으니까. 알려야죠.”
“좋은 일?”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데, 라온의 눈빛이 무언가 불온하게 번들거렸다. 흡사 토끼를 노리는 매의 눈동자였다.
뚝.
라온이 손을 들어 올리자, 대련장 전체의 함성이 단번에 잦아들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대련장의 중심에 섰다.
“모두 저희 단주님이 도박장을 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왜 갑자기 도박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그하르트 무력단의 단주가 도박장 운영이라니, 이상한 일이죠. 다만 이 안에는 저희 단주님의 큰 계획이 있었습니다.”
“으음….”
라온의 말은 분명 칭찬에 가까웠지만, 이상하게 심장이 우그러들었다.
“잘 모르셨겠지만, 저희 단주님은 이번 도박의 수수료를 40%로 잡으셨습니다.”
“사, 사십?”
“미, 미친 거 아니야?”
“무슨 도박 수수료가 40%야!”
“거의 딴 돈의 절반을 가져가겠다는 거잖아!”
“저 사기꾼 자식!”
“저거 잡아서 귀 뽑아!”
리메르는 가판대에 마스터 급만 보일 수 있게 아주 작은 글씨로 수수료 40%를 적어놓았다.
그 내용을 지금 알게 된 사람들은 당장 대련장으로 뛰어 올라올 것처럼 검을 뽑고, 오러를 운용했다.
“뭐, 뭐야! 갑자기 그 말을 왜 해!”
리메르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라온에게 설명을 바랐지만, 그는 이쪽을 보지도 않았다.
“욕하고 싶겠죠. 고리대금업자도 그렇게는 안 받는다고 악을 지르고 싶겠죠. 하지만 단주님의 계획은 지금부터입니다.”
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저희 단주님은 두 번의 도박에서 얻은 수수료를 모두 이번에 큰 상처를 입은 아리안 가문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어? 내가?”
그 말에 리메르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사람들에게서는 다시 환호가 들려왔다.
“우오오오오오오!”
“역시 광풍단주!”
“괜히 40%를 받은 게 아니네! 큰 그림을 그린 거였어!”
“아리안 가문에 기부한다면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지!”
“리메르! 리메르! 리메르!”
사람들은 검을 든 채로 다시 리메르의 이름을 외쳤다.
“거기다!”
라온의 말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당장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단주님은 사비로 금화 1,000개를 추가 기부하고, 내일모레 두 번째 축제를 열기로 하셨습니다!”
“어어….”
금화 천 개면 삼왕자를 이용해서 번 돈을 모두 뱉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세상이 요지경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난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이 미친놈들아!”
리메르가 전신을 사용해서 아니라고 표현했지만,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
“리메르! 리메르! 리메르!”
“광검! 광검! 광검!”
“기부 천사 리메르! 당신 없인 못 살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중 가장 큰 환호가 터지고, 웬디를 비롯한 아리안 가문의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광검.”
검귀가 리메르에게 다가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도박장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깊은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네. 내 사과하지.”
그는 리메르를 다시 보았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단주님!”
“멋있으십니다!”
“전 돈에 미친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계획을 생각해놓으셨군요!”
“앞으로는 진심으로 따르겠습니다!”
광풍단도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리메르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
리메르가 사람들을 막으려던 손을 내렸다.
‘망했다….’
지금 여기서 그게 아니라는 소리를 했다간 수천 개의 칼침을 맞고 뒈질 상황이었다.
“제 사비로 기부를 하려고 했는데, 단주님 덕분에 필요 없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라온이 능글맞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에게 손 한 번 흔들어주시죠. 원하던 대로 꽃길에 오르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빨리하라는 듯 먼저 손을 흔들었다.
“이 미친 자식아! 이게 무슨 꽃길이야!”
“이것도 꽃길입니다. ‘불꽃 길.’”
“부, 불꽃….”
리메르는 억지로 웃음을 흘리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지독한 개자식….”
라스는 리메르가 속으로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낄낄 웃었다.
-어린 왕이 지독한 개자식이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