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12화 (412/653)

제412화

라온이 볼 안쪽을 깨물었다. 검귀의 서늘한 시선에 심장이 갈라지는 것 같았지만, 불의 고리를 운용하며 견뎌냈다.

‘이 사람은 진짜야.’

기세를 끌어 올린 것도, 오러를 운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존재감만으로 이런 압력을 만들어내다니, 대륙 전체를 떨쳐 울린 검귀라는 이명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중간중간 보이는 눈빛은 뭐지?

검귀는 무력과 정신력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음에도 호수에 돌을 던진 듯 눈빛이 가늘게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기세와 자신감만큼은 백검룡이라는 이명에 부족하지 않군.”

검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조금 전과 달리 바위를 얹혀놓은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좋네. 그 내기 받아들이도록 하지.”

“내기까지는 아닙니다.”

라온이 검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검의 길을 걷는 후배로서 선배의 검을 보고 싶은 바람이었을 뿐입니다.”

“건방은 다 떨어놓고, 말은 잘하는구나!”

무스턴이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사나운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네 검이 스승님께 닿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내 앞에서 끝날 테니까.”

그는 나름 지키던 예의를 가져다 버리고, 반말을 하며 이를 갈았다.

“그거야 검을 맞대어봐야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라온은 무스턴의 살벌한 눈동자를 마주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이 좋은 기회를 댁한테만 써버릴 수는 없거든.’

무스턴은 아직 명성은 없지만, 검귀의 제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력을 가지고 있다. 그와 싸워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경지에서는 검귀와 딱 한 번이라도 검을 맞대보는 게 훨씬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무스턴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기회를 잡고 싶을 뿐이었다.

“좋다. 검을 뽑아라. 지금 당장….”

“그만.”

무스턴이 검을 잡으려고 할 때 검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쪽은 아직 만전이 아니다.”

그는 한 번 살펴본 것만으로 라온의 무력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틀이면 되겠지?”

“예.”

나태의 수준이 높아진 덕분에 하루면 회복할 수 있지만, 성장한 무력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틀 뒤 정오에 보도록 하지.”

검귀는 바로 몸을 돌린 채 숙소로 돌아갔다.

무스턴은 검귀를 따라가지 않고, 라온을 노려보며 입술을 꽉 씹었다.

“너한테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다.”

그는 원한을 가진 듯 살벌한 눈동자를 번들거리다가 등을 돌려 검귀를 따라갔다.

라온은 무스턴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

내가 검귀에게 대련을 신청해서만은 아니야.

무스턴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냈고, 지금도 말투에 숨겨지지 않는 악의가 실려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기 전부터 날 싫어한 게 분명한데.’

만난 적이 없는데 왜 저런 반응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질투잖느냐.

라스가 인간이면서 다른 이의 감정도 모르냐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여튼 네놈은 인간답지 않으니라.

‘질투? 날 왜 질투해?’

검귀의 제자라는 누구나 부러워할 위치에 있으면서 남을 질투한다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질투는 인간이 가진 추악한 본능 중 하나. 그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라.

라스는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이유일 게 분명하니, 빨리 씻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중얼거렸다.

‘질투라….’

그럴지도 모르겠네.

인간은 스스로의 감정을 잘 알기 힘들다. 그 역시 본인이 왜 화내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검귀와 대련을 하는 기연을 얻었지만.’

라온은 진흙이 묻은 손과 얼굴을 씻은 뒤 축제가 진행 중인 대로로 향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취기 오른 사람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도리안이 꺼낸 긴 테이블에는 광풍단만이 아니라, 밀랜드와 보리니 키튼, 모렐 그리고 트레빈까지 와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부 모였네.’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너 대체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냐.”

얼마나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변한 리메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빠딱빠딱 와서 이 단주님께 술을 따라야 할 거 아니야!”

“예. 예.”

술주정하는 그를 무시하고 밀랜드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성주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어 있는 밀랜드의 잔에 술을 따르며 고개를 꾸벅였다.

“대체 그 말을 몇 번 하는 것이냐.”

밀랜드는 술잔을 받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 녀석이 하분성에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이곳에 온 하분성의 기사와 검사들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하며 씩 웃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왔다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울렁거린다. 거북함 따위는 없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밀랜드는 그 감각을 알고 있는 듯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저희 오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리니 키튼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라온님이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저희 오웬은 육황 회의를 개최해놓고 타천을 막지 못한 불명예를 안을 뻔했습니다. 사람과 명예를 모두 구해주셨으니, 그 은혜는 무엇으로도 갚기 힘듭니다.”

그는 그 일은 평생 갚아도 모자라다며 고개를 숙였다.

“거기다 이번 일은 대륙을 넘보려는 망혼귀와의 전투였죠. 오히려 저와 기사들에게 좋은 경험을 심어주어서 감사드립니다.”

보리니 키튼은 이번 일은 부탁으로 삼지 말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 그렇습니까? 왕자님?”

“으응? 아! 그렇지! 당연하지!”

삼왕자는 술을 홀짝이는 마르타를 바라보다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야! 아까부터 왜 꼬라보는 건데!”

“흐억!”

마르타가 성질을 내자, 삼왕자는 안 본 척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야아아아아!

라온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을 때 라스가 튀어나와 멱살을 잡았다.

-말 좀 그만해! 제발 말 좀 그만하고 처먹으란 말이다!

라스는 음식이 가득한데 왜 입만 터냐며 비명을 질렀다.

‘뭐부터 먹고 싶은데?’

-바로 앞에 있는 파이부터!

고개를 끄덕이고, 라스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울부짖었던 블루베리 파이를 입에 넣었다.

와삭.

여러 겹으로 쌓은 패스트리의 바삭함과 블루베리의 새콤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적신다.

작게 뿌려진 아몬드 조각의 고소함이 끝을 장식하여 단 한 입으로 만족스러움이 차올랐다.

‘괜찮네.’

라스가 먹어달라고 애원하는 게 이해가 가는 맛이었다.

-끄으윽….

라스는 파이를 모두 먹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맛있어?’

-맛있는 게 다가 아니라, 본왕이 지금까지 고생한 게 떠올라서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느니라!

녀석은 악덕 인간 밑에서 고생한 스스로가 대견하다며 본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다음이니라! 포도잼이 발린 샌드위치와 진흙 오리 구이를 앞으로 가져오거라!

라스는 걸신이 들린 것처럼 요리의 이름을 외쳤다. 피식 웃으며 녀석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크흡!

올챙이 배가 된 라스가 드러누워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이게 사는 거지!

라온은 식곤증 때문에 눈을 껌벅이는 라스를 놔두고 모렐에게 다가가 그의 빈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다 마음에 안 들지만, 포도주 하나만큼은 괜찮군.”

모렐은 포도주를 먹기 위해서는 다시 올 수 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입에 맞으시나 보네요.”

“아리안 가문의 포도주는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가 잔과 함께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아직도 말해줄 생각이 없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망나니 왕녀에게 어떻게 목줄을 채웠는지 궁금하거든.”

“목줄이라니요. 왕녀님께서 몇 가지 부탁을 들어준다고 약속했을 뿐입니다.”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뭐 그게 중요하지는 않지.”

모렐이 포도주로 입을 축였다.

“그 망나니가 나한테 무릎 꿇고, 빌었던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제이나 왕녀를 봐왔지만, 그 빳빳한 고개가 굽혀지는 건 처음이라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다행이네요.”

라온이 피식 웃었다. 제이나가 왕국 내부라고 참고 다녔을 리가 없으니, 모렐의 반응은 당연한 부분이었다.

라온은 모렐과 술잔을 부딪친 뒤 철전대가 모여 있는 테이블로 가서 트레빈의 옆에 앉았다.

“축제는 즐거우십니까?”

“나쁘지 않군.”

트레빈은 나름 구할 가치가 있는 음식과 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솔직하지 않으면서도, 정이 많은 사람이다. 여러모로 지그하르트의 직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심했을 뿐이었다.”

트레빈은 할 일이 없어서 왔다며 손을 털었다.

“우리 대주 또 저러시네.”

“당장 구하러 가자고 난리를 쳤으면서.”

“좀 솔직해집시다.”

“언제까지 저러려나?”

“다 닥쳐!”

트레빈은 철전대 검사들의 중얼거림에 얼굴을 붉히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가문의 검사들끼리는 그런 말을 할 필요 없다. 신경 쓰지 마라.”

트레빈은 그리 말하고 술잔을 들이켰다.

라온은 연거푸 술을 마시는 트레빈을 보며 손끝을 떨었다.

‘가문의 검사들끼리는 그런 말을 할 필요 없다라….’

다른 직계가 저 말을 했다면 비웃음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광풍단을 구하러 온 트레빈이 저 말을 하자 가슴에 큰 고동이 울렸다.

‘기억해두고 싶은 말이네.’

트레빈의 말대로 어떠한 상황이나, 사정도 상관없이 가솔을 구하러 가는 게 가문으로서의 역할이다.

혹여나 나중에 가문을 만든다면 그런 신의를 가진 곳으로 세우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트레빈과 철전대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뒤 식탁에 앉았다.

-으응?

어깨에 빨래처럼 널려 있던 라스가 뽈록한 배 위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차전이냐? 본왕은 더 먹을 수 있느니라!

‘배 터질 거 같은데?’

-무슨 소리냐! 배에 여유가 있으면 네놈이 나딘 빵을 쑤셔 넣을지 모르느니라! 더 채워야 한다!

‘에휴….’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아직 먹지 않았던 음식들을 접시에 담았다.

“그런데 너 왜 이렇게 늦게 온 거냐?”

삼왕자를 노려보다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마르타가 물었다.

“그러게. 늪에서도 오래 걸리고, 씻을 때도 오래 걸리고.”

버렌이 이상한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잤어?”

루난은 길바닥에서 잤냐며 이불을 주냐고 물어보았다.

“그게 아니라, 검귀 님이랑 그분의 제자를 만났거든.”

“그 사람들을 왜?”

“어쩌다 보니까. 대련하게 됐어.”

“대련?”

“갑자기 무슨 소리야?”

광풍단만이 아니라, 다른 세력의 무인들도 벌떡 일어나서 입을 떡 벌렸다.

“그게….”

라온은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검귀와 대련이라니….”

“기연이잖아!”

“그것도 보통 기연이 아니지. 오대 검수의 수좌이자, 검의 달인이니까.”

“부, 부럽다….”

사람들은 검귀와 대련을 하게 될 라온을 부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아니지. 일단 그 사람의 제자부터 꺾어야 하잖아.”

“기세가 보통이 아니던데.”

“눈빛만 봐도 고수였어.”

“검귀의 제자이니, 경지로 판단하기도 힘들지. 같은 경지보다 몇 배는 강할 거야.”

“그래도 라온이 이기지.”

“그럼 백검룡이라는 이명을 도박으로 딴 게 아닌데.”

모두는 술잔을 부딪치며 대련에서 누가 이길지를 점치기 시작했다.

“흐으음!”

조용히 술을 마시던 리메르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대련이라….”

그는 술잔을 든 채 조용히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 * *

라온이 테이블에 걸쳐두었던 제천검을 들고 일어섰다. 오른손으로 주먹을 말아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전이로군.’

하루의 휴식을 통해 몸을 회복시켰고, 하루의 수련을 통해 현재의 육체와 오러에 적응했다. 몸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확신이 들었다.

-만전은 무슨.

라스에게서 들려오는 비웃음에 옆을 돌아보았다. 살이 포동포동하게 차오른 솜사탕이 이죽거리고 있었다.

이틀 동안 회복을 위해 영양 보충을 하면서 녀석이 먹고 싶은 음식을 모두 먹어줬더니,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다.

-그 영감의 제자 따위에게 발리지 말고, 전력을 다해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더 빨리 강해져야 하니까.

부왕과의 대련도 이제 1년하고 반밖에 남지 않았다. 무스턴을 상대하는 것으로도 얻을 건 있겠지만, 검귀와 검을 맞대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싶었다.

라온은 전투용 제복을 입고, 허리에 제천검을 착용한 후 숙소를 나섰다.

오늘 대련에 대한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이틀 전의 축제가 이어지는 듯 먹거리 장이 열렸고, 많은 사람이 연무장 주변에 모여 있었다.

‘축제나 다름없군.’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이번 대련을 통해 아리안 가문 사람들에게 조금 더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저기 닭꼬치가 있느니라! 진흙으로 구운 닭꼬치는 흔하지 않지! 먹으러 가자!

라스가 우측에 있는 가판대에서 파는 진흙으로 구운 닭꼬치를 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나 지금 싸우러 가는데….’

-본래 배를 채워야 제대로 싸우는 법이니라!

‘밥 먹었잖아.’

-간식을 먹어야 식사를 했다고 말할 수 있지!

라온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라스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놈이 분노는 점점 쪼그라들고, 식탐만 늘어나는지 모르겠다.

식충의 군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성격을 잘못 골랐다. 이놈에게 분노의 군주라는 이름을 준 놈을 만나보고 싶었다.

-빨리 가자!

‘됐거든.’

라온은 달라붙는 라스를 쳐내고, 가판대를 구경하며 대련장이 있는 성의 중심으로 향했다.

“맥주 한 잔 주쇼!”

“난 팝콘까지!”

“이야, 오늘 누가 이길지 기대가 되네.”

“아 그걸 뭘 물어 당연히 은인이지!”

“하지만 오대검수 검귀의 제자라고! 저쪽이 나이도 한참 많아!”

“평범한 실력이 아닌 건 분명해.”

사람들은 먹거리를 즐기며 오늘 대련에서 누가 이길지를 떠들어댔다.

“음?”

대련장으로 향하는데 유독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큼지막한 가판대가 보였다.

“나는 우리 은인인 라온 님께 걸겠소!”

“나도! 당연히 은인께 걸어야지!”

“근데 무스턴이라는 검사도 장난이 아니던데. 눈빛이 맹수의 눈이야!”

“하긴 검귀라면 제자를 제대로 키웠을 테니까.”

가판대 위로 금화와 은화가 쏟아지는 게 보였다. 도박판인 것 같았다.

‘도박판은 당연히 있겠지.’

이런 결과를 알기 어려운 대련에 도박판은 당연히 따라오는 법. 저곳도 축제의 하나이니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단주님도 계시려나?’

-똥파리가 똥을 그냥 지나칠 리 없지.

‘하긴.’

당연히 그 망나니 엘프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아보려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돈을 걸고 빠졌나?’

리메르라면 배율을 보고 걸 거라 생각했는데, 먼저 배팅을 하고 빠진 것 같았다. 그냥 지나가려는데 가판대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잘들 모르시네. 이 전쟁을 끝낸 건 라온이 아니라, 나라고. 승패는 아무도 몰라!”

그 건들건들한 목소리에 다시 가판대로 시선을 돌렸다.

주인이 앉아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선 붉은 머리 엘프가 히죽 웃고 있었다.

-…….

‘…….’

라온과 라스는 도박을 하다못해 아예 도박장을 차린 리메르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저 엘프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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