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1화
라온은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기 전에 광풍단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손짓을 했다.
“잠시만 밖에 나갔다가 올게.”
“이제 축제 시작인데?”
“어딜 가려고?”
“악어 좀 만나러.”
솔직하게 악어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에엥?”
“악어?”
“저건 또 무슨 미친 소리야!”
버렌과 루난, 마르타가 눈을 부릅 뜨고, 다른 광풍단 검사들도 무슨 소리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성벽을 내려갔다.
늪을 땅처럼 밟으며 악어의 앞에 서자, 녀석이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고 몸을 돌렸다.
‘손짓이라….’
악어는 의외로 굉장히 똑똑한 동물이다. 파충류 중 지능이 가장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인간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길 안내를 할 정도일 리는 없을 테니, 저건 당연히 멀린이었다.
“후우.”
라온은 한숨을 내쉰 뒤 살랑거리는 멀린의 꼬리를 따라 덩굴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크릉.
악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간 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흐으으!
라스는 밥을 먹고 싶다는 욕구조차 잊은 채 악어를 보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저 광녀가 이번에는 또 어떤 미친 짓을 했을지 상상도 안 가느니라….
‘그러게.’
무슨 말을 하려나.
멀린은 이전에 에덴의 간부들이 각자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서 서로의 일을 잘 모른다고 말했었다.
그녀 역시 망혼귀가 아리안 가문을 습격할지는 몰랐을 수도 있기에 신뢰할 수도, 신뢰하지 않을 수도 없는 조금 애매한 상황이었다.
“라온.”
멀린이 시선을 들어 올리며 파충류의 눈동자를 뒤르륵 굴렸다.
“부상은 어때?”
“부상?”
“그 망할 해골바가지 새끼 때문에 다친 곳은 괜찮아졌냐고.”
처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멀린은 망혼귀가 습격한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아픈 곳이 있으면 말해달라며 앞발을 내밀었다.
“이제 괜찮아.”
라온은 다 회복되어서 괜찮다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그런데 너는 이번에….”
멀린에게 이번 망혼귀의 습격에 대해 물어보려고 할 때 그녀가 먼저 고개를 푹 숙였다.
악어의 모습이었음에도 확실하게 머리를 내리는 자세였다.
“정말 미안해.”
그녀는 이번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깊은숨을 뱉어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라온이 무릎을 굽혀서 멀린과 시선을 맞췄다.
“망혼귀가 습격하는 걸 미리 알려주지 못했잖아. 너무 늦게 알았어.”
멀린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정보를 주지도, 곁에 있지도 못했다며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악어의 눈물이라….’
악어의 눈물은 믿지 말라고 하던데.
공교롭게도 지금 멀린의 모습은 악어였기 때문에 위선자를 뜻하는 악어의 눈물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다만 그녀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의심할 수는 없었다.
“망혼귀가 습격할 걸 알고 있었어?”
“아니.”
멀린이 떨리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그 해골바가지의 임무는 죽음의 늪에서 회수한 보옥을 사기로 물들인 후 복귀하는 거였어. 아리안 가문을 치고, 널 죽이려 한 건 놈의 독단이었지.”
그녀는 타천의 지시가 아니라, 오로지 망혼귀 혼자만의 판단이었다며 앞발로 늪지를 긁었다.
라온이 말없이 멀린의 기색을 살폈지만, 악어의 모습이라 무슨 표정인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믿지 않는구나.”
그녀가 입맛을 쩝 다셨다. 윗니에 끼어 있는 고기 조각이 조금 섬뜩했다.
“아예 믿지 않는 건 아니야. 네가 정말 날 죽이려면 다른 방법을 썼을 테니까.”
멀린도, 망혼귀도 바보가 아니다. 둘이 함께 이쪽을 습격하려고 했다면 훨씬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테니,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다만 에덴 소속인 그녀를 신뢰할 수 없기에 조금 거리를 두려는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느니라! 저런 광녀하고 붙어 다닌다면 네놈의 정신만 망가질….
라스가 빨리 돌아가서 밥이나 먹자고 말을 하려는 순간 멀린이 오른쪽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그럴까 봐, 이번에는 조금 준비를 했어.”
멀린이 들어 올린 앞발로 늪을 살짝 두드렸다.
찰팍하는 끈적한 소리와 함께 달빛이 내려오는 늪지가 투명하게 변하며 무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음?”
라온이 늪을 내려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시꺼먼 방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감싸 쥔 채 뒤집어놓은 벌레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널 건드린 놈의 최후.”
멀린의 입매가 비틀어져 올라갔다. 악어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름이 돋아오르는 미소였다.
“설마 저거….”
“맞아. 그 싸가지 없는 해골바가지야.”
그녀는 망혼귀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라온이 발버둥 치는 사람을 자세히 살폈다. 찢어진 로브와 이마 중앙에 구멍이 뚫린 해골의 가면. 멀린의 말대로 며칠 전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망혼귀였다.
“이놈이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금장의 어항이라는 아티팩트에 가뒀거든.”
그녀는 쥐덫으로 쥐를 잡은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가, 가뒀다고?”
“그래.”
멀린이 안구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 상처를 입혔잖아. 그것도 쓰레기 따위가.”
그녀는 도와주러 가기에는 너무 늦어서 망혼귀가 다시는 세상에 나올 수 없게 가둬버렸다고 중얼거렸다.
“이런 짓을 하면 타천에게 들키는 거 아니야?”
“죽이지만 않으면 안 들켜. 지금도 내 본체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
멀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다른 간부들의 움직임을 생각하고 저질렀다며 서늘한 미소를 흘렸다.
“근데….”
라온이 늪에 비치는 망혼귀를 가리켰다. 놈은 통증이 심한 것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저놈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어항에 갇혔을 뿐인데, 왜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저주를 내리고 있거든.”
“…저주?”
“응. 의념이 깃든 저주를 반복적으로 읊어서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거지. 마법이라기보다는 주술에 가까워.”
멀린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망혼귀를 내려보았다.
“어항에서 나오지도 못할 테지만, 만약 나오더라도 널 보는 순간 도망치게 될 거야.”
그녀가 앞발로 늪지를 한 번 더 치자, 영상이 변한다. 아래에서 어항을 올려다보는 시점을 통해 천장이 보였다.
‘저건….’
어항 위에 시뻘건 안광을 뿜어내는 거대한 멀린이 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끊임없이 달싹거렸다.
-아헉….
라스는 어항 위에 떠 있는 멀린의 눈을 바라보다가 기절하듯 뒤로 넘어갔다.
-저, 저거 진짜 미친년이니라! 돌고, 돌고 또 돌았느니라!
녀석은 마계에 있던 스토커보다 더 심하게 돌았다며 얼음 꽃팔찌로 숨었다.
‘으음….”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라스가 미쳤다고 말할 때는 별 느낌 없었는데, 저주를 내리는 장면을 보니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더 무서운 게 무엇인지 아느냐?
라스가 얼음 꽃팔찌 위로 머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지금 저 영상. 저 광녀의 수명으로 연결하고 있느니라.
‘아….’
맞다. 저 상태의 멀린이 마법을 쓰려면 수명을 깎아야 한다. 정말이지 무엇 하나 소름이 안 끼치는 게 없었다.
“그만해도 돼.”
“응? 더 보고 싶지않아? 널 괴롭힌 놈이야! 하루종일 봐도 부족할 텐데?”
“네 수명 깎이고 있잖아.”
“내 걱정해주는 거야? 널 위해서라면 천 년도 던질 수 있어!”
멀린은 감격한 듯 미소를 흘리며 화면을 더 키우려 들었다. 정말이지 감당하기 어려운 여자다.
“됐으니까. 꺼.”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망혼귀가 비치는 늪을 건드렸다. 물결이 치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 정도는 정말 상관없는데.”
멀린은 본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영상을 비추는 마법을 해제했다.
“어쨌든 망혼귀가 다시 나올 일은 없다는 거지?”
“응. 만약 나오더라도, 폐인이 되어서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그렇겠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위에서 거대한 멀린이 끝없이 저주를 퍼붓는다면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머리털이 쭈뼛 섰다.
‘어쨌든 다행이야.’
이번에 겪은 망혼귀의 능력은 무시무시했다.
그 보옥이라는 구슬이 없다고 해도 강자임은 분명하기에 놈이 힘을 쓰지 못한다면 에덴에도 영향이 갈 것이다.
‘나도 더 강해져야겠어.’
밀랜드를 포함한 네 세력의 지원과 리메르의 기습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를 입고, 많은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다.
조금 높은 곳에 있다고 만족하지 말고 더 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가문으로 돌아간 후 광풍단과 함께 지옥 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내렸다.
멀린은 조용히 이쪽을 올려보고 있었다.
“넌 정말 괜찮아?”
“뭐가?”
“혹시라도 타천에게 들키면 어쩔 건데.”
“우와. 오늘 내 걱정 두 번째네? 이제야 내 사랑이 스며드는구나.”
“헛소리 말고.”
“들킬 일은 없지만, 들켜도 나오면 그만이야.”
멀린은 이제 에덴에 미련 따위는 없다고, 널 위해서 이곳에 있는 거라고 속삭였다.
“하아….”
라온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말 하나, 행동 하나 소름이 안 돋는 게 없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가네.”
멀린이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난 이제 가볼게. 다음에 또 봐.”
그녀는 다 끝났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줘서 고맙다.
“아….”
멀린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입매가 가늘게 올라갔다.
“역시 내 선택은 옳았어.”
“이상한 소리 말고. 그 악어의 소원은 먹이겠지?”
라온이 악어의 이빨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간단하지.’
성벽만 넘어가면 맛난 고기가 줄줄이 늘어져 있다. 그중에 몇 덩이만 가지고 나오면 그만이다.
“아니야.”
멀린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
“등을 긁어달래.”
“드, 등? 등을 긁으라고?”
“응. 30분만 긁어주면 될 거야. 나중에 또 봐.”
그녀는 등 전체를 시원하게 긁어주라고 말한 뒤 손을 흔들었다.
크르릉.
멀린의 존재가 사라지고, 악어의 길쭉한 눈동자에 야생의 본능이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크릉!
악어는 빨리 약속을 지키라는 듯 등을 들이밀었다.
“하아….”
라온은 악어의 오돌토돌한 등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별 걸 다하네.”
-가, 갔냐?
* * *
무스턴은 스승인 렉타르의 등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오늘 왜 저러시는 거지?’
라온 지그하르트의 검술을 보고 싶다고 했던 스승은 실제 라온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검술에 대해 묻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서 하루종일 창밖만 올려보았다.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많은 시간을 지났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을…설마?’
스승은 라온이 남긴 검흔을 보고 감탄했고, 실제 그를 보았을 때는 아예 말을 잇지 못했다.
검에 미쳤다는 검귀가 그런 반응을 할 이유는 하나뿐이다.
‘재능인가?’
스승은 라온 지그하르트의 재능에 경탄하여 저런 반응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자신에게도 표정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스승이 약관을 갓 벗어난 어린 무인 때문에 변했다는 것에 짜증이 돋았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소검귀와 백검룡이라는 이명 모두 검귀의 제자인 자신이 받았어야 했다.
나이가 더 어림에도 그 모두를 가졌던 라온을 떠올리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특히 스승과의 관계가 평범한 사제 관계와는 거리가 멀기에 더더욱 열등감이 차올랐다.
무스턴이 가슴을 짓누르는 탁기를 내뱉으며 렉타르에게 다가갔다.
“스승님.”
“무슨 일이냐.”
렉타르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가라앉은 음성을 흘렸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나가서 축제나 즐기고 와라.”
그가 파리를 쫓듯 손을 저었다. 창문에 비치는 스승의 눈빛은 처음 보는 색을 띠었다.
‘놈이 그리도 대단한 건가?’
스승은 자신을 어쩔 수 없이 제자로 받았기에 지금 그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온한 생각이 피어났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그리 대단한 겁니까?”
“뭐라?”
렉타르가 처음으로 무스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매서운 빛이 피어났다.
“놈과 놈이 남긴 검흔을 보았을 때 스승님의 눈빛은 제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빛을 띠었습니다.”
“…….”
렉타르가 턱을 올리며 무스턴을 지그시 굽어보았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백검룡과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대련?”
“예. 라온 지그하르트를 꺾고 스승님의 제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게 저라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무스턴은 자신 있다는 듯 검병을 꽉 말아쥐었다.
“대련이라….”
렉타르는 생각을 알 수 없는 차가운 눈을 내리감았다.
“자신은 있느냐?”
“물론입니다!”
무스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렉타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네 마음대로 해보거라.”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무스턴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섰다.
“후우….”
렉타르는 그 뒤를 따라가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착각이었겠지.”
* * *
라온은 30분가량 악어의 등을 긁어준 뒤 성 위로 올라갔다.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되며 이곳저곳에서 흥겨움이 깃든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광녀를 상대해서 피곤하느니라. 빨리 밥부터 먹자!
‘일단 좀 씻고.’
악어가 등을 긁을 때마다 몸을 튕겨서 전신이 진흙 범벅이다. 일단 손과 얼굴부터 닦아야 했다.
“에휴.”
라온이 한숨을 내쉬고 성 아래로 내려갔다.
“진흙 장난이라도 했어? 옷이 왜 그 모양이냐?”
버렌은 진흙이 잔뜩 묻은 옷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악어랑 놀고 온 거야?”
루난은 재밌었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인도 가고 싶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 부단장이야. 그 나이에 진흙 놀이라니, 나잇값 좀 해라.”
마르타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니거든.”
악어 등을 긁어주고 왔다고 말하면 더 미친놈처럼 보일까 봐 대충 손을 젓고서 가까운 우물가로 향했다.
물을 퍼서 손과 얼굴을 닦으려는데, 하늘거리는 백의를 입은 청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검귀를 스승이라고 불렀던 청년이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사나운 기세를 일으키고 있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키가 커서 시선을 저절로 끌어당기는 검귀도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축제를 즐기러 나오신 건가?’
오늘 오전에는 반응이 좀 이상했지만, 도움을 받았으니, 먼저 인사를 하는 게 맞다. 검귀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그의 제자가 앞을 막아섰다.
“음?”
무슨 뜻인지 묻기 위해서 시선을 돌리는데, 그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소. 렉타르 님의 제자 무스턴이라고 하오.”
“광풍단의 라온 지그하르트라고 합니다.”
무스턴이 사나운 눈빛과 달리 나름 예의를 지켰기에 마주 인사를 해주었다.
“실례지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겠소?”
“부탁이라면?”
무스턴은 뒤에서 다가오는 검귀를 슬쩍 바라보고서 검집을 툭 쳤다.
“대륙 전체에 위명을 떨친 백검룡의 무력을 느껴보고 싶소. 나와 대련을 해주실 수 있겠소?”
그는 부탁한다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검귀의 제자라….’
두말할 것 없이 강자야.
검귀의 제자답게 느껴지는 기파가 장대하다. 수많은 무를 검술에 녹인 고수의 풍모가 느껴졌다.
‘나쁘지 않겠지.’
그와 대련하면 승패를 떠나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다.
‘다만….’
무스턴의 뒤에 선 검귀를 올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제자가 아니라, 스승과 싸운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
라스가 인정한 강자이니, 일검에 깨진다고 해도 무스턴과의 대련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게 분명했다.
지금보다 더 빠르게 강해져야 하는 자신에게 이번 기회는 알아서 굴러온 복이었다.
“알겠습니다.”
라온은 무스턴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검귀에게 시선을 보냈다.
“대신 저도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검귀가 처음으로 입술을 뗐다.
“제가 만약 제자분을 상대하고도 여력이 남는다면 렉타르 님과 검을 나눌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검을 나눈다는 건 대련이라기보다는 한 수 배우고 싶다는 의미였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무스턴이 자존심이 상한 듯 이를 드러내며 사나운 기세를 일으켰다.
“기회라….”
검귀의 시선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그
“자신 있는가?”
라온의 제천검의 검병을 매만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동자 위로 뻘건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