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02화 (402/653)

제402화

버렌이 시원하게 길을 여는 기사와 마법사들을 보며 턱을 파르르 떨었다.

“뭐,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힘을 끌어내서 싸우고 있을 때 갑자기 기사와 검사, 마법사들이 나타나서 언데드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오웬 왕국에서 온 삼왕자와 보리니 키튼, 발카르의 모렐, 철전대와 트레빈 지그하르트까지. 생각지도 못한 지원 병력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방망이질 쳤다.

‘거기다 저들은.’

가장 먼저 나타나서 언데드 군단의 벽을 뭉개버린 기마대를 보았다. 갑옷에 박힌 장벽의 문양을 보니 저들의 소속이 떠올랐다. 하분성을 지키는 하분성주 밀랜드와 그의 기사들이었다.

“그럼 역시….”

버렌이 마른침을 삼키고 라온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들을 누가 불렀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저 사람들 모두는 라온과 큰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정말 감당 안 되는 녀석이야.’

이쪽은 언데드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지쳐 쓰러질 지경인데, 5일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싸워온 라온이 언제, 어떻게 저들을 부를 계획을 세운 건지 모르겠다.

이젠 아예 따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라….”

“네가 부른 거지?”

버렌이 라온에게 다가가려 할 때 마르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라온은 입에서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언제?”

마르타가 기사들의 기합성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늪의 파도가 떨어질 때부터.”

그는 늪의 파도가 밀려왔을 때부터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거 같아서 도리안의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진짜 더럽게 빈틈없네.”

마르타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고맙다.”

“어?”

“네 덕분에 살았어.”

“어어?”

라온은 고맙다는 말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고마운 줄은 알거든!”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그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 하기는 했어도 진심을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라온과 도리안이 납치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일 때 새아버지 이후에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 해야 하는 말만큼은 확실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고마웡! 헉!”

마르타는 긴장한 채 입을 떼다가 혀를 깨물었다.

“괜찮앙.”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대원끼리 그런 말 할 필요 없엉.”

“아, 따라 하지 말라고!”

“뜨르흐즈믈르그.’

루난이 마르타의 옆으로 다가오며 입매를 비틀어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야!”

마르타가 주먹을 휘두르자, 루난이 통통 튀며 옆으로 물러났다.

“재밌어 보여서.”

루난은 맹한 눈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 망할 것들이….”

마르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툭.

루난은 라온과 버렌, 마르타를 보며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두드렸다.

‘다들 밝아졌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뻔했던 위기 상황이었지만, 모두는 누굴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고 무사한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의 어둠에 빠져 항상 거뭇한 안색을 하고 있던 훈련생 시절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이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가족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잘 됐어.’

가족의 소중함과 추악함을 모두 알고 있기에 진짜 가족이 된 광풍단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가 가늘게 올라갔다.

이제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고 진짜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루난은 앞으로 뛰어 마르타의 옆에 서며 어깨를 툭 쳤다.

“나중에 아이스크림 먹으러 같이 가자.”

“안 가!”

“그럼 같이 가장.”

“좀 꺼져!”

마르타가 손을 뻗었고, 루난은 허리를 부드럽게 젖혀 피했다.

“너희 그만 좀 해라.”

“맞아요. 애들도 아니고.”

“점점 유치해진다니까.”

“그게 또 맛이긴 한데….”

버렌이 두 사람을 말리고, 광풍단이 끼며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 조금 전에 죽을 뻔했음에도 평소처럼 따스함이 깃든 분위기였다.

짜악!

라온은 손뼉을 쳐서 광풍단의 시선을 모았다.

“충분히 쉬었지?”

그는 언데드들을 아예 지워버리고 있는 네 세력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따라붙자.”

* * *

세 개의 기둥이 박혀 있는 죽음의 땅.

아크 리치는 전장이 비치는 구슬을 보며 지팡이를 쥔 손을 떨었다.

“저 인간들이 대체 어디서….”

혹시 몰라서 성 주변에 존재하는 연락망을 모조리 끊어버렸는데, 어디서 저놈들을 불러온 건지 모르겠다.

“빌어먹을….”

지그하르트의 어린 것들을 핏물로 만들고, 아리안 가문의 저주스러운 벽을 밀어버릴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또 방해가 들어와서 속이 뒤집힌 것처럼 울렁거렸다.

‘저놈이다.’

망할 지그하르트!

인간들의 움직임을 보니, 아리안이 아니라, 어린 지그하르트의 요청으로 지원을 온 것 같았다. 천 년 전에 이어 천 년 후에도 방해하는 지그하르트의 집요함에 이가 갈렸다.

“지금은 짜증을 낼 때가 아니다.”

청색 화안의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허리춤의 장검을 말아 쥐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이 속도라면 정오가 되기 전에 이곳까지 닿는다. 그 전에 싸울 준비를 끝내야 해.”

“그래야겠지.”

아크 리치가 느릿하게 턱을 끄덕였다. 그가 양손을 펼치자, 죽음의 땅에서 피어나는 사기가 한층 더 짙어지며 검은 땅 이곳저곳에 흑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저놈부터 잡아야 한다.”

데스나이트가 손가락을 들어 구슬에 나온 라온을 가리켰다.

“저 중에서 가장 강하지만, 크게 지쳐있고, 내상도 입은 듯하다. 놈을 죽인다면 전투를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거다.”

“저놈 때문에 이 꼴이 되었는데, 그걸 모를까.”

아크 리치가 시꺼먼 사기를 운용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땅끝에서부터 중상격의 언데드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준비하도록 하지.”

데스나이트는 기둥에 등을 기댄 채 구슬에 비치는 무인들의 움직임을 녹색 화안에 담았다.

그의 손가락이 검사들의 무학 흐름에 맞춰 까딱거렸다.

데스나이트와 아크 리치가 방어를 준비하고 있을 때 그들의 뒤편에서 망혼귀가 조용히 솟아올랐다.

“이건 나도 예상외였어.”

망혼귀는 구슬 속에 비치는 라온의 얼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독불장군인 줄 알았는데, 사람을 써먹을 줄도 아는 놈이었다니, 더 위험하군.’

마령주의 실험은 끝났으니, 버려야 하나?’

그는 서늘한 눈으로 언데드들을 노려보다가 손뼉을 쳤다.

‘아니지. 이건 오히려 기회야.’

지금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강자들이다. 저들을 모두 죽인다면 계획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좋아. 마지막까지 도와주도록 하마.”

망혼귀가 로브의 소매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 들었다.

고오오오오!

검게 물든 구슬에서 섬뜩한 기류가 흘러나와 데스나이트와 아크 리치 만이 아니라 그들이 밟고 있는 땅에 어마어마한 사기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갸아아아아.

망혼귀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기운은 아크 리치가 만든 흑마법진의 형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퍼져나갔다.

쿠구구구!

망혼귀는 땅에 박힌 세 개의 기둥이 뒤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죽음의 기운을 퍼뜨린 뒤 구슬을 챙겼다.

아크 리치와 데스나이트는 그가 뒤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 라온과 검사들을 죽일 계획을 짜기 바빴다.

“뭔가 조금 모자란… 아!”

망혼귀는 턱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술이 비틀어져 올라가며 가면이 살짝 흔들렸다.

‘그거면 딱 맞겠어.’

둔탁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라온은 선두에 서서 언데드 무리를 때려 부수는 하분성의 기마대 옆으로 다가갔다.

“성주님.”

하분성주 밀랜드가 이쪽을 돌아보며 코웃음을 쳤다.

“참 빨리도 오는구나.”

말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저 영감탱이도 오랜만이로군.

라스도 반가운지 동그란 손을 흔들었다.

“넌 왜 매번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냐.”

밀랜드는 아직도 가득한 언데드 무리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저희 쪽에 계실 때도 살짝 미친 짓을 하셨었죠.”

“살짝이 아니라, 많이 미쳤었죠. 성벽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구하려고 직접 뛰어내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때 아침까지 벽 앞에 서서 모두를 구했었지?”

“그래. 성벽 아래에서는 한 명도 죽지 않았어.”

밤여우 기사단과 설격대의 검사들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때 라온 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설격대에서 젊은 검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당시에 병사였다가 그 일 이후에 마나를 각성했다며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네 녀석이 이룬 위업들은 아직도 하분성에 남아 있다.”

앞만 보고 말을 몰던 밀랜드가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지금은 그 일을 갚는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마라. 뒤에서 힘이나 비축하도록.”

그는 그 말을 하고서 더 빠르게 말을 몰았다.

“전 밥이라도 사주십시오!”

“다 끝나고 뵙도록 하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기사와 검사들은 손을 흔들고 나아가 스파토이와 스켈레톤 워리어의 벽을 깨부쉈다.

라온은 밀랜드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오웬의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패가 돌아왔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삼왕자는 어깨에 매 한 마리를 얹은 채 미소를 지었다. 아까 날카로운 울음을 터트렸던 매인 것 같았다.

“흐음, 마르타 검사도 오랜만이오.”

그는 뒤로 시선을 돌려 마르타를 보며 한쪽 눈을 깜빡였다. 눈동자가 은은하게 풀리는 것을 보니, 여전히 마음을 뺏긴 상태인 것 같았다.

“뭐야! 느끼하게!”

마르타는 삼왕자의 눈인사에 짜증이 돋은 듯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어억….”

끼이이.

삼왕자는 충격을 받은 듯 목을 굽혔다. 그의 어깨에 앉은 매가 위로를 하는 듯 부리로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말씀드렸듯이 이건 해야 할 일입니다.”

보리니 키튼이 힘 빠진 삼왕자 옆으로 다가왔다.

“이런 전투에 참여하게 해주어서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그는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오히려 영광이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기사의 귀감이 되는 남자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보리니 키튼에게 마주 인사를 하고서 모렐과 살라만의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먼 곳까지 와 주셔서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멀었지.”

“정말 멀었지?”

“머, 멀었지요. 어? 아니, 이제 존댓말 안 해도 되잖아!”

모렐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빽 소리를 질렀다.

“농담입니다.”

라온이 얼굴이 붉어진 모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우, 됐고. 너 대체 어떻게 우리 왕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냐. 나한테 와서 빨리 가야 한다고 아예 빌더구나.”

모렐은 제이나 왕녀가 그렇게 굽히는 모습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설마 왕녀와 그렇고 그런….”

“절대 아닙니다.”

라온이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말씀하신 대로 싸가지 왕녀하고는 그런 관계가 될 수가 없지요.”

“그럼 대체 뭐냐?”

“가볍게 약속한 게 있습니다. 어쨌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리를 다루는 마법사로서 흑마법의 시체들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 네 부탁이 아니라도 깨끗하게 지울 것이다.”

모렐은 저 더러운 것들 때문에 마법의 수준이 격하된다며 손을 뻗었다.

거대한 뱀이 튀어나와 전방에 있던 스켈레톤 메이지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대주님.”

라온은 마지막으로 철전대에게 다가가서 농담을 건넸다.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겁니까.”

“이게 최대한 빨리 온 것이다.”

철전대주 트레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첫 번째 시험이후 철전대와 광풍단은 꾸준히 대련을 해 왔기에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저 녀석들이 너희가 없으면 심심하다니까 왔을 뿐이다.”

트레빈은 뒤를 힐끔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엥?”

“뭔 소리래?”

“본인이 빨리 준비하라고 채찍질하지 않았나?”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라온 구하러 가야 한다고 팬티바람으로 나온 사람이.”

철전대 검사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닥쳐?”

트레빈이 뒤를 돌며 인상을 찌푸리자, 검사들이 입을 꽉 다물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옅게 웃으며 트레빈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빚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필요 없다.”

트레빈이 고개를 저었다.

“고맙다면 광풍대로 올라가라. 우리 철전대의 라이벌이 단에 머물러 있으면 창피하니까.”

그는 그거면 된다고 말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다네요.”

“빨리 올라가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철전대 검사들이 미소를 지으며 트레빈의 뒤를 따랐다.

“허….”

라온이 헛웃음을 흘리며 트레빈과 철전대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정말 직계인가?’

지금까지 봐온 직계들과 너무 달라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직계들에게 눈총을 받을 텐데, 저렇게 담담하게 말해주니 더욱더 고마웠다.

“어이 부단주. 우리도 가서 조져야지!”

“그래. 손님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잖아.”

“빨리 끝내고 자러 가자.”

버렌, 마르타, 루난이 검을 말아 쥐고 오러를 운용하고 있었다. 뒤에 있는 광풍단의 눈동자도 투지로 번들거렸다.

“맞는 말이야.”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제천검을 고쳐 잡았다.

“따라붙어.”

길을 열어주는 하분 성과 오웬, 발카르, 철전단의 등을 향해 내달렸다.

콰과과과광!

모렐과 살라만의 마법사들이 응집시킨 화염 마법이 언데드 군단의 굳건한 진형을 망가뜨리고, 밀랜드가 이끄는 하분성의 기마대가 하나의 창이 되어 진형의 붕괴를 가속시켰다.

두두두두두!

삼왕자와 보리니 키튼은 매의 날개처럼 기사들의 전열을 넓게 펼쳐 흩어지는 언데드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거했으며, 트레빈 지그하르트와 철전대는 흑철검진을 운용하며 세 세력이 놓친 중상급 이상의 언데드들만 골라서 깨부쉈다.

라온은 광풍단을 이끌고 전방으로 뛰어나가 굴러들어오는 키메라 좀비에게 달려들었다.

꾸르르륵!

키메르 좀비 다섯 마리가 시체 폭발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몸을 부풀릴 때 태화보를 밟았다.

땅을 접어 달리듯 찰나의 순간에 좀비들의 공간을 파고들어 서리연을 그었다.

쩌저저정!

폭발하기 직전까지 몸을 부풀리던 키메라 좀비의 목이 날아가고 터지려던 놈들의 몸체가 서리연의 냉기에 의해 얼어붙었다.

챠아아앙!

뒤따르는 광풍단이 얼어붙은 키메라 좀비의 몸체를 사정없이 갈라버렸다.

“뒤에 있으라니까.”

밀랜드가 기마대와 검사들을 지휘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느리디 느리군.”

모렐이 한숨을 쭉 내뱉으며 우측에 뭉친 언데드들에게 화염의 뱀을 일으켜 태워버렸다.

“지쳤으니, 이 정도는 기다릴 만하지 않겠습니까.”

보리니 키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밴시의 몸체를 갈라버렸다.

“그, 그렇지요….”

삼왕자는 흔들리는 눈으로 강검으로 언데드들을 깨부수는 마르타를 훔쳐보기 바빴다.

“그래도 제 역할을 해줄 겁니다.”

철전대주 트레빈은 일단 움직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다시 광견단이 앞장서겠습니다.”

라온이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야이씨!”

“광견 아니라고!”

“월!”

버렌, 마르타, 루난은 조원들을 이끌며 다가오는 언데드들을 사정없이 갈라버렸다.

콰과과과광!

다섯 개의 세력은 지금까진 한 번도 손을 맞춘 적이 없음에도 톱니바퀴처럼 부드럽게 맞물리며 전장을 휩쓸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한쪽이 과한 힘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모두는 힘을 저축하면서 죽음의 땅 끝에 있는 기둥이 보이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이곳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를 생각인지 스파토이와 구울 로드, 듀라한 급의 몬스터들이 가득했고, 하귀와 중귀 급 데스나이트와 리치들도 끼어 있었다.

“후….”

라온이 숨을 고르며 시선을 쭉 들어 올렸다.

‘저기 있군.’

죽음의 땅 끝에 있는 기둥 앞에 눈에 푸른 불꽃을 일으키는 아크 리치가 있었다.

손끝이 떨릴 정도로 섬뜩한 기파. 예상했던 대로 상귀에 오른 아크 리치였다.

다만 놈이 준비한 건 저 병력과 사기만이 아니었다.

라온이 네 사람에게 동시에 오러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먼저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혹여나 공격당하더라도 막아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느낀 바에 의하면 놈들은 분명히 광풍단. 그것도 부단주인 자신을 노리고 있다.

‘날 죽이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 놨겠지.’

이대로 한 번에 들어갔다간 아크 리치가 준비한 덫이 발동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는 처음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옳았다.

[무슨 생각이 있는 모양이로군.]

[지쳐 보이지만 라온 님이라면 괜찮겠지요.]

[네 마음대로 해라.]

[또 요상한 전략이 나오겠어.]

밀랜드와 보리니 키튼, 모렐, 트레빈은 더이상 묻지 않고,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그들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준 뒤 시꺼멓게 물든 땅을 밟았다.

‘이걸 땅이라고 할 수 있나?’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대지는 흙이나 모래가 아니라, 죽음의 기운이 응집된 것처럼 독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익스퍼트 급 검사들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사이한 악취가 났다.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죽음의 땅 안쪽으로 들어갈 때 하늘과 땅이 출렁이며 시꺼먼 기운이 거세게 들끓었다.

치이이잉!

천지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흑마법진이 돋아나고, 검게 물든 바닥에서 푸른 화안의 데스나이트가 튀어나와 염옥검을 내질렀다.

땅의 어둠 속에서 기운을 감추고 있던 상귀 급 데스나이트였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을 듯한 위기의 상황이었지만, 라온의 눈동자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라스.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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