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01화 (401/653)

제401화

쿠구구구!

시꺼멓게 물든 하늘 아래 대지를 모조리 가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숫자의 언데드 군단이 다가온다. 놈들이 뿜어내는 지독한 사기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스르르릉!

라온은 제천검과 진혼검을 뽑아들고, 검집을 바닥에 던졌다.

제천검과 진혼검의 검집 위로 광풍단의 검집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모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검집을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건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창백한 얼굴의 가솔들이 검집을 소중하게 안아 들었다.

라온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서 성문 밖으로 나갔다. 죽음의 기운으로 달궈진 땅을 짓이기며 다가오는 언데드 군단과 마주섰다.

고오오오.

광풍단은 하나의 검과도 같은 기세를 유지하며 그 뒤를 따랐다.

“폐문.”

“폐문!”

성문이 닫히자, 죽음의 기운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뒤에 선 검사들의 떨림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라온이 불의 고리와 만화공을 동시에 운용하며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검이 아래로 향하는 순간 성벽 위에서 큼지막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졌다.

콰과과과광!

성벽을 타고 구른 바위들이 언데드들을 뭉개며 놈들의 전열을 무너뜨렸다.

이어서 하늘에서 밤을 지우는 듯한 불화살이 쏘아져 언데드들에게 내려꽂혔다. 가솔들이 짧은 시간에 온 힘을 다해서 만들어 준 화살들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쏴라!”

프리카의 외침에 레인저들은 피가 흘러내리는 손가락으로 활시위를 끝까지 당긴 뒤 풀어냈다. 화살의 깃털 부분에 묻어 있는 핏물에 가슴이 아렸다.

“으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시체들아!”

레인저들은 화살이 떨어지자, 투창을 내던져 광풍단 앞의 길을 열어주었다.

“원호는 충분해.”

라온이 제천검을 세웠다. 칼날이 붉게 물들며 어둠을 지우는 불꽃을 일으켰다.

“돌격!”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다.

“돌격하라!”

광풍단이 대광풍진을 펼치며 그 뒤를 쫓았다. 마크 괴튼과 웬디는 광풍단 옆에 선 채로 강기를 일으켰다.

화아아아악!

라온이 불길에 휩싸인 제천검을 어깨 뒤로 젖혔다.

‘여기서는….’

직선 대형으로 가득 늘어선 적을 죽이기에 가장 좋은 검술은 정해져 있었다.

만화공 백화.

염룡결.

검신에 가득 찬 화염이 폭풍이 되어 어둠 속에 적색의 길을 만들었다.

콰아아아아아!

불꽃의 선이 지나간 길에 남은 언데드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 워낙 많은 놈들이 있어서 길이 막히기 전에 지나가야 했다.

“이대로 돌진해!”

라온이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대지를 달렸다. 뒤따르는 광풍단에게서 꺾이지 않겠다는 철의 의지가 느껴졌다.

콰아아아아앙!

광풍단은 바로 뒤로 따라붙으며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언데드에게 돌진했다.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대광풍진의 첫 번째 형 녹중선풍의 위력에 언데드들은 검은 핏물이 되어 터져나갔다.

“듀라한입니다!”

웬디 아리안이 좌측으로 뛰었다. 그녀는 듀라한 무리가 돌진해오기 전에 먼저 다가가 검을 내리쳤다.

둔탁하면서도 묵직한 강기가 듀라한 두 기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벌써 데스나이트가….”

마크 괴튼이 숨을 참으며 데스나이트에게 쇄도했다. 놈이 지옥의 불길을 소환하기 전에 짓쳐 들어 도를 내리쳤다. 벼락처럼 떨어진 도격이 데스나이트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이쪽으로 오나.’

언데드들은 이제 성벽으로 다가가지 않고, 광풍단을 포위하는 것처럼 돌아섰다. 예상대로 놈들은 광풍단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이쪽도 생각이…음?’

상대의 심리를 생각하고 있을 때 우측에서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났다.

‘리치!’

마법 병단을 운용하던 리치와 스켈레톤 메이지였다. 놈들은 연계 마법을 사용하려는지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피아아앙!

라온이 거세게 진각을 밟으며 좌수에 든 진혼검을 내던졌다.

무결비의 구결을 얹고 날아간 요기의 칼날이 마법진을 가르고 리치의 머리통에 박혔다.

끄어어어!

리치가 관자놀이에 박힌 진혼검을 빼내려고 했지만, 요기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콰아아앙!

라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태화보를 밟고 나아가 광아검으로 리치의 몸을 갈가리 깨부쉈다.

혼의 구슬이 없으니, 부활하겠지만 그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쿠구구구구!

광풍단은 당연히 믿고 있었던 것처럼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쿠우웅!

마르타가 전방에 서는 황격중패의 형으로 거대한 철퇴가 되어 언데드들의 전열을 깨부쉈다.

-확실히.

라스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미친개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느니라.

‘그렇지.’

라온이 옅게 웃으며 그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이번 임무에 성공하면 진짜로 대 이름을 광견으로 바꿀 생각이야.’

라온은 광풍단이 알면 난리 칠 생각을 하며 전방으로 달려가 서리연을 그었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냉기의 칼날이 언데드들을 뭉개며 어설프게 엮은 포위망을 찢어버렸다.

“계속 간다!”

뒤에서 따라오는 광풍단과 마크 괴튼, 웬디 아리안의 의지가 느껴진다.

어떻게든 따라가서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강력한 기세에 미소를 지으며 죽음의 땅을 내달렸다.

라온이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땅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기가 짙어지고 있어.’

성이 있던 곳을 벗어나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자 죽음의 사기가 깊어졌다. 안쪽에서 다가오는 언데드들의 기파도 이전과는 격이 달랐다.

뿌드드득!

스켈레톤의 상위종이자 용아병이라 불리는 스파토이가 일어나고, 좀비와 구울을 소환하는 구울 로드도 튀어나왔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하귀 데스나이트들이 기회를 엿보며 지옥의 불길을 일으켰다.

우우우웅!

광풍단이 죽음의 기운에 영향받지 않도록 불의 고리가 일으키는 공명을 넓게 퍼뜨릴 때 스파토이 부대가 달려들었다.

“돌진!”

광풍단은 설묘신현의 형태로 스파토이 부대와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파죽지세로 나아가던 광풍단의 걸음이 처음으로 멈췄다.

쩌저저정!

웬디 아리안과 마크 괴튼도 양쪽에서 쇄도해온 데스나이트에 막혀 그들을 돕지 못했다.

“하아….”

라온이 입안 전체에서 차오르는 쓴맛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쉴 시간을 아예 안 주는군.’

진혼검을 입에 물고, 제천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앞으로 내딛는 발에 만근의 무게를 실은 채 거대한 원을 그리며 검을 회전시켰다.

만화공 백화.

염해무결.

물감을 찍은 듯 검극에서 피어난 붉은 선이 거대한 불꽃의 파도를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

치솟은 적해가 쏟아지며 주변을 에워싼 언데드 무리를 모조리 태워버렸다.

“시간 없어! 이동해!”

라온이 열린 길을 향해 손짓하면서 보법을 밟았다. 광풍단과 마크 괴튼, 웬디가 따라붙으며 미처 처리하지 못한 언데드들을 베었지만, 어느새 새로운 언데드의 벽이 나타났다.

‘이렇게 빠르다고?’

-네놈들을 잡기 위해서 이쪽에 전부 모아둔 것이니라.

성문 앞에서 싸울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언데드들이 차오른다. 라스의 말대로 이쪽에 모든 언데드들을 집중시켜놓은 듯했다.

콰아아아앙!

광풍단이 진형을 전환했다. 마르타에게 힘을 집중시켜 스파토이의 뼈를 으깨버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촤아아악!

마크 괴튼과 웬디 아리안도 짙은 강기로 데스나이트의 몸을 가른 채 광풍단 옆에 붙었다.

이곳의 모두가 라온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검격을 쏟아냈다.

“젠장….”

다만 라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역시 쉽지 않군.’

상위 언데드들이 강화까지 되어 나타나는데, 그 숫자까지 어마어마하다 보니 쉽게 길이 열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죽음의 땅에 들어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나아간 길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대로 싸움이 지속되면 기둥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 전에 라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뭔 놈의 해골바가지가 이렇게 단단해!”

“용의 이빨로 만든 용아병이라잖아!

“잘 얼지도 않아….”

버렌과 마르타, 루난이 입술을 깨물었다. 짙은 죽음의 기운을 두른 중급 언데드들의 방어력이 너무 강해 검기가 아니라면 뼈를 가를 수가 없었다.

오러가 빠르게 소모되며 광풍단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쯧.

라온이 혀를 차며 광아검의 묘리가 깃든 제천검을 내리쳤다. 사납게 갈린 강기가 길을 열었지만, 주변으로 다른 언데드들이 밀고 들어왔다.

‘이놈들만이 아니야.’

뒤에 또 왔어.

지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스파토이와 스켈레톤 워리어 뒤에 구울 로드와 듀라한으로 이루어진 벽이 세워졌다.

하늘에서도 스펙터가 날아다니며 죽음의 숨결을 내뱉고 있었다.

촤아아악!

라온은 화령을 뿌려 스펙터를 지워버린 뒤 뒤편으로 검강을 내질렀다.

스펙터와 스파토이를 지워도 새로운 언데드가 자리를 채워 앞이 보이질 않았다.

“하아….”

검을 쥔 손끝이 떨린다. 정신력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인지 체력과 오러의 소모도 빨라진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

“뒈져라! 이 해골바가지 새끼들아!”

“내 잠의 원수들.”

답답함에 머리가 눈앞이 멍해질 때 광풍단이 앞으로 돌진해왔다.

쿠와아아아앙!

사납기 그지없는 검격이 뻗어나가며 방금 채워진 언데드의 전열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캬아아아앙!

마크 괴튼과 웬디 아리안의 날카로운 강기가 광풍단이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열린 공간으로 파고들며 모여든 언데드들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어라?”

크레인이 뒤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부단장이 뒤처지는 건 아니죠?”

“에이, 설마 그러겠어?”

“맞아. 우리한테 열흘은 안 자도 된다고 한 사람인데!”

광풍단은 꼴사납게 벌써 지친 거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 녀석들….”

라온이 헛웃음을 흘리며 허리를 폈다.

‘더 힘들 텐데.’

쉬었다고 해도 고작 3시간이다. 정신 단련 훈련을 했다고 해도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텐데, 웃어주는 게 정말로 고마웠다.

“질 수는 없지.’

이곳저곳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불길함을 짓누르며 광풍단의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목줄을 안 잡으면 너희가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르잖아.”

라온은 전방에 서며 진혼검으로 요기에 젖은 검명을 터트렸다.

끼아아아아!

원망이 깃든 울음소리인 혈우가 퍼지며 모여들던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콰아아아앙!

광풍단과 마크 괴튼은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차고 언데드들의 뼈와 살을 으깨버렸다.

라온과 광풍단은 얼마나 싸웠는지, 얼마나 갔는지도 모른 채 앞에 가득 찬 시체들을 베고, 베며 이 길의 끝을 향해 달렸다.

힘을 주던 광풍단은 지쳐 검이 바닥을 향했고, 마크 괴튼의 허리는 노파처럼 굽었으며, 웬디 아리안은 환자처럼 식은땀을 흘렸다.

촤아아악!

라온은 아려 오는 단전을 부여잡으며 강기를 내뻗어 멀리서 마법을 날려 오던 스켈레톤 메이지들을 쓸어버렸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지난번에 와 보았기에 알 수 있다. 죽음의 땅의 반을 넘었다. 이제 곧 끝이 보일 것이다.

“곧 기둥이….”

키아아아아악!

광풍단에게 희망을 주려고 할 때 어린아이 수백 명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유령마에 타고 있는 녹색 화안의 데스나이트와 노파의 모습을 한 유령 밴시가 날아들고 있었다.

치이이잉!

데스나이트는 섬뜩한 녹색 안구를 번쩍인 채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라온이 눈매를 찡그렸다.

‘저놈 설마….’

느껴지는 기운이 익숙하다. 아무래도 죽음의 늪 끝에서 죽였던 그 데스나이트인 것 같았다. 왼발을 앞으로 내뻗으며 제천검에 맹수의 사나움을 담아냈다.

쩌어어어엉!

벼락처럼 떨어진 데스나이트의 염옥검과 제천검이 맞부딪치며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크으….”

내상 직전인지 속이 울렁거린다. 놈이 맞다. 데스나이트는 이전보다 더 강해져서 나타나 지옥의 불길을 일으켰다.

캬아아악!

끼아아아아아!

하늘 위에서는 뿜어내는 밴시와 스펙터들의 죽음의 숨결에 광풍단이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퍼어어어!

마크 괴튼이 무리하게 도약하여 밴시를 베었지만, 뒤편에서 날아든 스펙터의 공격에 맞아 바닥에 처박혔다.

“으으윽!”

웬디는 밀려드는 언데드를 막아내느라, 바빠서 다른 쪽을 도울 여력이 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라온이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어쩔 수 없어.’

이 데스나이트를 죽이려면 지금의 체력과 오러로는 무리다. 이긴다고 해도 많은 상처를 입어서 오히려 손해를 입을 것이다.

“으아아악!”

“이것들아! 어떻게든 버터!”

“거의 다 왔대….”

버렌과 마르타, 루난의 의지 덕분에 어떻게든 대광풍진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곧 깨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만약 진이 깨진다면 바로 학살이 시작될 것이다. 한계였다.

‘라스!’

-…….

라스는 대답하지 않고, 우측의 언덕만을 지켜보았다.

‘급해! 지금 당장 날 회복….’

라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라스를 부를 때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우측 언덕에서 죽음의 기운을 꿰뚫는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어? 이 나팔 소리는….”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도리안이다. 주저앉으려던 그가 턱을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설마!”

라온이 온 힘을 다해서 데스나이트를 밀어내고 우측을 돌아보았다.

새하얀 백마를 탄 노기사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죽음이 가득한 땅이로다.”

하분성주 밀랜드가 서늘한 눈빛으로 언데드 무리를 굽어보았다.

“그래도 하분 만큼은 아니지요.”

흑마를 탄 부성주 테리안이 그 뒤로 다가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창을 들어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을 찔렀다.

“집결!”

“집결!”

웅장한 포효가 울리고 그의 뒤로 밤여우 기사단과 설격대가 은빛 창을 들어 올렸다.

가늘었던 군기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치솟았다.

“하분 성의 은인을 위하여!”

“돌겨어어어어억!”

밀랜드가 창을 눕히며 말의 허리를 박찼다.

우우우우우우웅!

웅장한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기마대가 언덕을 달려 내려온다.

콰아아아아아!

밀랜드가 선봉에 선 돌격진은 수천 번 담금질한 창극과도 같았다.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았던 언데드의 장벽이 사정없이 박살 나며 은색의 길이 뚫렸다.

“젊은 놈이 늙은이를 찾아오라 하다니.”

밀랜드가 눈앞으로 지나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건방지구나!”

“오랜만입니다! 라온 님!”

“얼굴이 더 훤칠해지셨네요!”

“왜 힘든 싸움만 골라하시는 겁니까!”

기사단과 설격대 검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언데들을 모조리 지워버릴 듯이 나아갔다.

퓌요오오오오!

하분 성에 대한 감동이 가시기 전에 좌측에서 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괴물 친구가 왜 부르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이 정도 언데드는 저도 처음입니다.”

이번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웬의 삼왕자 그리어 드 오웬과 창첨검 보리니 키튼이었다. 둘은 각자가 속한 청색매 기사단과 은기사단과 함께 전열을 갖췄다.

“죽은 자들을 본래의 땅으로 돌려보내라.”

“돌격!”

하분 성과 달리 길게 늘어선 기마대가 돌진한다. 자세를 낮추고 속도를 높인 그들의 창날 앞에 언데드들의 벽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이 사람의 패를 언제 쓰나 했더니, 아주 제대로 이용해주시는구려.”

삼왕자가 옆으로 다가오며 씩 웃었다.

“저는 이번 일을 라온 님의 부탁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보리니 키튼이 그 옆을 따라가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대륙을 위한 일이니, 당연히 참여해야지요.”

그는 오싹할 정도로 날카롭게 다듬은 강기로 물러서 있던 데스나이트의 왼팔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갔다.

라온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을 때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열기가 솟아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언데드가 밀집되어있는 중앙에서 강대한 폭발이 터지며 두 기사단이 남기고 간 시체들이 잿더미가 되어 흩날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발카르 마법사단의 단장이자, 염화의 뱀이라 불리는 모렐이 손을 뻗고 있었다.

“우리 망나니 왕녀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군.”

그가 인상을 찌푸린 채 앞으로 손짓을 했다.

뒤에 있던 살라만의 마법사들의 손에서 뻗어나간 각종 화염 마법이 이곳저곳에 남은 언데드들을 뭉개버렸다.

키르르륵.

마법으로 인해 솟아오른 흙먼지 속에서 녹색 안광이 번쩍였다. 숨어서 몸을 정비한 데스나이트가 달려들어 염옥검을 찔러왔다.

콰아아아앙!

라온이 막기 전에 앞으로 튀어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절묘한 검격으로 데스나이트의 검을 흘린 뒤 놈의 머리를 깨부쉈다. 기습이라고 해도 가공할 무력이었다.

“한심하군.”

데스나이트의 두개골에서 검을 뽑은 남성이 뒤를 돌았다. 짧게 깎은 금발이 시원한 인상을 주는 중년인. 철전대주 트레빈 지그하르트였다.

“이깟 언데드들을 못 이겨서 우리를 부른 것인가.”

“철전대의 실력이 부족하니, 경험 좀 채워드리고 싶었습니다.”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은 잘하는군. 철전대!”

트레빈이 손을 들어 올렸다.

“광풍단이 무찌르지 못한 적이다! 모조리 깨부숴라!”

“예!”

그가 앞으로 나아감과 동시에 뒤에서 대기하던 철전대가 전방으로 나아갔다.

쿠구구구궁!

언데드들의 사기는 점점 더 강해졌지만, 트레빈을 필두로 길을 여는 철전대의 흑철검진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대로 도착했구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도리안의 일회용 아티팩트로 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모두 연락이 닿은 것 같았다.

라온이 피나도록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전과는 달라.’

납치당했을 때 구하러 온 사람들이 글렌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인 지그하르트의 힘이었다면 지금은 라온 지그하르트라는 이름에 모인 인연들이다.

나의 힘이자, 나의 인연을 보자 가슴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쿠구구구구!

여명과 함께 나아가는 검사들과 기사들이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찬 사해를 가르고, 금색의 길을 열었다.

“밤은 끝났어.”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말아 쥐고, 광풍단을 돌아보았다.

“놈들에게 낮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줄 때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