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0화
라온은 땀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도리안에게 다가갔다.
“성수 더 있지?”
도리안은 강박적으로 물건들을 쟁여 놓는 성격이다.
흑탑에 당한 사람들을 구할 때 성수를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녀석은 훨씬 많은 양을 보충해놨다고 했었다.
“있긴 한데 좀 아껴야 하지 않아요?”
“아니, 지금 써야 해.”
라온이 언데드 군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성수와 불꽃 장벽 때문에 다가오지는 못하지만, 곧 다시 진격을 시작할 것이다.
“어차피 아침까지 못 버티니까.”
“예에?”
“이대로 있으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성이 무너질 거야.”
겁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다. 5일간의 전투로 지친 모두는 저 물량의 진격을 절대 막을 수 없다.
“그, 그럼 지원은 포기하신 거예요?”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겠죠….”
도리안은 겁나는 듯 떨리는 손으로 나머지 성수 여섯 개를 꺼내주었다.
“이게 다예요.”
“고맙다. 돈은 내 예금에서 빼.”
“저, 전 은행이 아닌데….”
라온은 이젠 주머니에서 은행이냐며 투덜거리는 도리안을 뒤로 하고 손뼉을 쳤다.
성벽 위에서 침중한 얼굴을 하고 있던 광풍단이 모여들었다.
“웬디 님이랑 프리카 님도 이쪽으로 오세요.”
황전검대와 레인저를 지휘하는 두 사람까지 불렀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 한계입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마르타조차 입을 다문 걸 보면 모두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마지막 방법?”
“그게 뭐야! 빨리 말해 봐!”
버렌과 마르타가 동시에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라온은 모두의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문을 열고 나갈 겁니다.”
“서, 성문을 연다구요?”
프리카의 뺨이 부르르 떨렸다.
“무슨 말씀이에요! 아직 저렇게 많은데!”
그는 다가오지는 않지만, 천천히 성을 포위하는 언데드 군단을 보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침까지 버티는 건 불가능합니다. 해가 뜨기 전에 성이 무너지고, 학살이 시작될 겁니다.”
지금까지는 성의 보호 능력 덕분에 죽음의 기운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성벽이 무너지면 그것조차 사라진다.
가솔들은 물론이고, 레인저들도 쓰러져서 적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 언데드 군단을 돌파해서 아크 리치를 잡는 방법뿐입니다.”
라온이 광풍단과 마크 괴튼 그리고 마지막으로 웬디 아리안을 바라보았다.
“나가는 건 저와 광풍단 그리고 웬디 님입니다. 언데드들이 저희를 쫓아올 테지만, 혹시 모르니 다른 분들은 이곳에서 성벽을 지켜주세요.”
황전검대는 대부분 익스퍼트 하급이었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수정예로 최대한 빨리 시체들의 벽을 뚫고 달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웬디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데리고 갔으면 억지로라도 따라올 것 같은 눈빛이었다.
“부탁한다. 프리카.”
그녀는 프리카의 어깨를 잡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모해 보이는데, 이게 될지….”
프리카는 걱정되는 듯 깊게 가라앉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아주 좋아!”
마르타가 손바닥으로 성벽을 강하게 쳤다.
“깔짝깔짝 검기만 날려 대서 짜증 났는데, 드디어 때가 왔네!”
그녀는 이제야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나도 동감이다.”
버렌은 드물게도 마르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 지켜보는 거 지겨웠어.”
그는 호흡을 고르며 언데드 무리를 노려보았다.
“빨리 끝내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루난은 맹한 눈을 껌뻑이며 입매를 아주 가늘게 말아 올렸다.
“진작 나갔어야지!”
“망할 언데드 새끼들 다 뒈졌어!”
“대가리 조심해라. 시체 놈들아!”
광풍단 역시 그간 스트레스가 쌓인 듯 검을 움켜쥐며 서늘한 기세를 일으켰다.
“도리안.”
라온이 도리안을 부르며 손짓을 했다.
“청연단을 꺼내줘.”
청연단은 영약이라 아니라, 회복약의 일종으로 소모된 오러를 보충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네!”
도리안이 배 주머니에 손을 넣어, 사람 숫자에 맞게 청연단을 꺼내주었다.
“청연단을 먹고 두 시간 동안 연공하고 와.”
“두 시간이라고?”
“성수를 뿌려도 한 시간이면 다 마를 텐데?”
“그동안 혼자 어떻게 버티려고요?”
“아무리 부단주 님이라고 해도 혼자는 무리에요!”
“혼자가 아니야.”
라온이 루난의 뒤에서 조용히 선배들을 지켜보고 있는 유아에게 손짓했다.
“우리 광견단의 비밀 병기가 있으니까.”
“광견 아니라고….”
* * *
웬디 아리안은 오랜만에 침실의 문을 열었다. 고작 5일 동안 오지 못했는데, 1년 만에 오는 듯 어색했다.
“안 돼….”
그녀는 자연스럽게 침대에 향하는 몸을 억지로 멈춰 세운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대를 배신할 수는 없어.’
라온은 지금도 성벽 위에서 싸우고 있다.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잘 때가 아니라, 콩알만큼이라도 더 많은 오러와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겪을수록 감탄만 나오네.’
라온이 대단한 건 그가 이곳에 오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최연소 마스터이자, 백검룡이라는 선망의 이명을 받았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건 무력적인 면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고 해도 아직 어리기에 경험은 미숙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어.
라온 지그하르트는 경천동지할 무력만이 아니라, 뛰어난 심계와 독심 그리고 전장을 보는 눈까지 가지고 있었다.
미숙한 검사가 아니라, 이미 완성을 향해 가는 무인이었다. 처음으로 훨씬 어리지만,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후….”
웬디가 청연단을 매만지며 짧게 숨을 뱉었다.
‘힘들겠지. 끝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몰라.’
2시간 동안 오러를 회복시켜봐야 전력의 반도 회복할 수 없다. 반면에 적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었다.
언데드 군단을 뚫고, 죽음의 땅의 끝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라온과 함께 라면 그 기적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웬디는 청연단을 감싼 천을 벗기고 입에 넣었다. 눈을 감고 오러 연공을 하는 그녀의 입매에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 * *
라온이 남은 성수 세 개로 성벽을 적신 지 1시간이 지났다.
성수의 효과가 사라지자, 언데드들이 더 짙은 사기를 휘감은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라온 님!”
프리카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노,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는 가솔들이 직접 만든 화살들을 가리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화살이라도 날리면….”
“그건 아껴두세요.”
얼마 되지 않는 화살과 투창은 출진할 때 써야 한다.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버텨야 했다.
“유아야.”
“네!”
유아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억지로 짓는 미소였지만,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 듯 보였다.
“로엔 님이랑 수련할 때 내가 검으로 연주했던 거 기억해?”
“아, 네!”
그녀는 당연히 기억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와 같아. 지금부터 내가 검으로 연주를 할 테니까. 넌 그에 맞게 노래를 불러줘.”
“노래요?”
“어떻게 부르든, 무얼 부르든 상관없어. 다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지킨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돼.”
“해, 해볼게요!”
유아가 양 갈래머리를 찰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라온은 유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성벽 앞으로 향했다.
쿠구구구구!
헤아릴 수 없는 언데드 무리가 움직이자, 흡사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성수가 마르고, 불길도 그쳤기에 놈들은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진격해왔다.
“라, 라온 님!”
“옵니다!”
“빠, 빨리 지시를!”
프리카와 레인저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라온은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저어주고서 허리에 차고 있던 진혼검을 뽑았다.
챠아아앙!
요검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청명한 발검 소리를 즐기며 진혼검을 쓸어내렸다.
‘부탁한다.’
우우우웅!
진혼검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낮은 검명을 울렸다.
“시작할게.”
유아에게 눈빛을 보내고서 진혼검에 만화공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우우우우우웅!
진혼검이 뻘겋게 달아오르며 장대한 검명을 터트렸다.
원망의 기운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상서로운 울음에 언데드들의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유아야. 이 흐름대로.”
“네에!”
유아가 앞으로 달려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내리감았다.
“북방의 회색 장벽을 지키는 하분의 이름은….”
그녀가 선택한 건 군가. 그것도 하분 성의 군가였다.
‘이유를 알겠군.’
유아에게 있어서 모두를 지키는 노래란 어려서부터 수없이 듣고 자랐던 군가였던 것 같다.
우우우웅!
이 땅의 모두를 지키겠다는 진혼검의 의념과 유아의 의지가 조화롭게 맞물리며 어둠을 비트는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아아!
오러가 깃든 음률이 퍼지며 언데드 무리의 발이 땅에 고정된 듯 멈췄다. 놈들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단 한 걸음도 다가오지 못했다.
“아아….”
프리카가 닭살이 돋아 오른팔을 꽉 움켜쥐었다. 라온이 장담한 것처럼 언데드들은 노래에 막혀서 움직이질 못했다.
“으, 음률로 이런 기적이 가능하다니….”
음률을 익힌 무인이 홀로 수천의 병사를 막아냈다는 전설은 들어봤지만, 그게 정말로 이뤄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소름이 돋아 올라서 몸이 떨렸다.
“음.”
율리우스가 입을 꾹 다문 채 유아의 옆에 섰다. 굳은 표정에 무슨 일이 있어도 유아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라온은 부드럽게 웃으며 진혼검에서 피어나는 요기를 더 자연스럽게 운용했다.
우우우우웅!
청우를 펼칠 때처럼 검명의 흐름이 물길처럼 연결되며 유아의 노래가 더 넓게 퍼져나갔다.
치이이잉!
의지가 깃든 노래가 날카로운 검이 되어 언데드들을 밀어낸다. 흐느적거리며 뒷걸음질 치던 놈들은 서로 엉겨 붙어 알아서 무너져 내렸다.
-어이.
라온이 유아의 노래에 맞춰서 검명을 조절하고 있을 때 라스가 팔찌 위로 튀어나왔다.
-정말 나갈 것이냐?
‘나가야지. 방법이 없으니까.’
-지금 저 언데드를 조종하는 놈은 네게 나오라고 유혹을 하고 있는 것이니라. 얌생이인 네놈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라스는 추잡함으로는 인간 제일이면서 왜 모르냐고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
라온이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 리치인지 혹은 그 뒤에 있는 놈인지 꽤 똑똑하더라고.’
아리안 가문의 분위기를 아는 것처럼 최악의 순간에 공격해오고, 강한 몬스터가 아니라, 소모전으로 체력과 정신력을 깎는 것을 보면 라스의 말대로 나오라고 유혹하는 게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 왜 가려는 것이냐?
‘이쪽도 비수가 있으니까.’
-비수?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 라스를 가리켰다.
-본왕이 비수라는 것이냐?
‘그래. 아크 리치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 5일 동안 계속해서 싸운 나야. 지칠 대로 지쳐서 검강도 제대로 못 뿜어내는 상태를 원하겠지. 하지만….’
눈에 서늘한 한기를 두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네 도움을 받는다면 무력만큼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라스와 거래를 하면 정신은 더욱 피폐해지겠지만, 오러와 체력은 원상태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이라면 버틸 수 없겠지만, 그림자로서의 삶과 한 번의 죽음을 겪었기에 버틸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 신성력까지 있잖아.’
오러와 체력을 회복한 뒤 신성을 담은 검격을 날린다면 아크 리치든, 데스나이트든 간에 일격에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차디찬 북해의 바람을 견뎌내고서 오르는 산을….]
라온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의념이 깃든 유아의 노래를 들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다시 떠오른 그의 눈동자에 붉은 뇌전이 번쩍였다.
“놈은 내가 있을 때 일을 저지른 걸 후회하게 될 거야.”
* * *
유아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광풍단과 마크 괴튼, 웬디 아리안은 체력과 오러를 충분히 회복한 뒤 돌아왔다.
라온은 성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정렬해 있는 광풍단과 웬디 아리안에게서 칼날처럼 예리한 기세가 피어나고 있었다.
‘마음도 만전이군.’
이들에게 시간을 준 건 그저 체력과 오러를 회복시키기 위함만이 아니다.
마지막 전투를 치를 의지를 다지고 오라는 뜻이었는데, 충분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가 진짜 전투의 시작이겠군.”
버렌이 양쪽 손목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손끝까지 몸을 풀어 둬.”
그는 광풍단원을 한 명씩 살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역시 머리통은 검기 따위가 아니라, 직접 깨야 제맛이지.”
마르타가 서늘한 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크 리치의 대가리는 내가 뽀갤 거야.”
그녀는 누구에게도 양보 못 한다며 입맛을 다셨다.
“라온은 괜찮아?”
루난이 한 발 앞으로 다가오며 고개를 들었다.
“계속 안 잤잖아.”
그녀는 잠을 못 자서 충혈된 눈동자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부단주님이 우리 쫓아올 수 있으려나?”
“그러니까! 혼자 뒤처지는 거 아니야?”
“늦으면 놓고 갈 겁니다!”
“그런 말은 크레인한테 해야지.”
라온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크레인을 가리켰다.
“아, 맞네!”
“가장 먼저 떨어지는 건 항상 크레인이잖아!”
“고유 크레인!”
“퇴장 전문 검사!”
광풍단은 크레인을 돌아보며 낄낄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운이 나쁜 거였다고요!”
크레인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승부의 세계에 운이 어디 있어!”
“맞아. 다 실력이지!”
“오늘도 떨어져 나가면 부조장 자리 때려치워!”
광풍단 검사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언데드 군단을 앞두고 있음에도 서로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라온이 신뢰를 담은 눈으로 광풍단을 바라보았다.
“크레인은 떨어져 나가겠지만 광견단은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그 말에 광풍단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웃음이 암울한 상황을 지워내는 것 같았다.
“근데 광견단이 아니라고….”
“작전은 간단해. 광견단은 중앙에서 대광풍진을 유지한 채 돌진, 마크 경과 웬디 님이 양쪽에서 보조.”
버렌의 말을 흘리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라온은?”
루난이 라온의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전방에서 길을 열어야지.”
라온이 검집을 툭 쳤다. 이번 전투의 핵심은 속도. 빠르게 포위망을 돌파해서 기둥이 박힌 죽음의 땅 끝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다.
“전력으로 달릴 테니까. 무조건 따라붙어.”
“예!”
광풍단이 하나가 되어 우렁찬 함성을 질렀다.
“끝까지 쫓아가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마크 괴튼과 웬디 아리안도 주먹을 말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미소를 지은 채 남은 성수를 부은 물뿌리개로 모두의 몸을 적셔주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지만, 한동안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성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들은….’
아리안 가문의 가솔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에 몸을 떨면서도 부탁드린다는 듯 고개를 숙여왔다. 말이 없었기에 오히려 진심이 느껴졌다.
“라온 님! 놈들이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성벽 위에서 프리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나가야 합니다!”
“후우.”
라온이 성문 앞에 선 채로 숨을 골랐다. 앞에서 느껴지는 사기가 정점에 올랐을 때 위를 향해 소리쳤다.
“개문.”
“개문!”
성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삐걱거림과 함께 성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