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97화 (397/653)

제397화

심장을 축으로 세운 불의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한다. 일곱 개의 고리가 하나 된 듯 공명하며 척추에 불길이 흐르는 듯한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밀려오는 늪의 해일이 느려지고, 성벽 위에 있는 사람들의 비명과 호흡이 멈춘다.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초집중의 시간.

라온은 그 세계에 발을 내디디며 라스를 불렀다.

-이 와중에 말을 걸다니, 꽤 성장했군.

라스는 조금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대로다 녀석은 혼이 연결된 존재답게 함께 이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네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줘.’

-기술? 설마 심상의 세계에서 보여주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냐?

‘그래.’

라온이 빠르게 눈꺼풀을 내렸다.

그 기술밖에 없어.

조금 전 손을 뻗으며 느꼈다. 지금 이 상태로 글래시아의 냉기를 모조리 퍼부어도 저 늪의 해일은 얼릴 수 없다. 어설프게 얼어붙은 얼음 조각이 떨어져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내 정신세계에서 네가 공간 자체를 얼려버렸던 그 기술을 알려줘.’

초집중의 세계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 느껴지는 것이지, 실제 느려지는 게 아니다. 늪의 해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뻔뻔한 놈 같으니.

라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알려주고 싶지도 않지만, 알려준다고 해도 지금 네놈에겐 무리이니라.

‘뭐?’

-그 기술은 본왕처럼 천재적인 냉기 운용 능력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느니라. 네놈 같은 허접한 인간이 써봐야 고드름이나 만들겠지.

녀석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라며 동그란 손을 저었다.

-본왕이 추천하는 건 광견 꼬마들만 모아서 강기의 막을 치는 것이니라. 그럼 저 녀석들만은 살 수 있….

‘오늘부터 돌아가는 날까지 네가 먹고 싶은 거 전부 사줄게.’

-어…?

‘여기 망가지면 너 포도랑 블루베리 특산품 못 먹어.’

-어어…?

라스의 고민은 짧았다.

-당장 본왕이 일으키는 흐름대로 글래시아를 운용해라!

녀석의 냉기가 마나회로를 파고 들어온다. 글래시아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그 흐름을 따라갔다.

‘크윽….’

한 번에 너무 많은 냉기를 운용하다보니, 마나회로가 터질 듯 아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이번에는 분노이니라.

라스에게서 분노가 스며 들어온다. 영혼의 밑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분노를 일으키며 라스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흐름을 쫓았다.

‘크으윽….’

라온이 부러질 정도로 어금니를 악 물었다. 몸이 부러질 것처럼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마나회로가 찢어지고, 뼈가 으깨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다시 손을 뻗었다.

-끌어당긴 분노와 냉기를 단숨에 방출해라! 이 기술의 이름은….

늪의 해일이 성벽 위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든 순간 손아귀에 막아두었던 둑을 열었다.

치이이익.

혈관을 흐르는 피가 얼어붙는 듯한 차디찬 감각과 함께 손아귀에서 은백의 서리가 피어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미지.

라스가 항상 말했던 이미지를 그렸다. 늪의 파도를 모조리 얼리겠다고 상상하며 손목을 비틀었다. 심장을 휘도는 불의 고리가 천지에 퍼진 냉기와 공명한다.

글래시아의 흐름을 오롯이 담아 단 한 톨의 냉기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쏟아냈다.

콰아아아아아!

오른손의 중심에서 솟아오른 찬란한 백은의 섬광이 늪의 해일을 뒤덮었다.

분노의 군주 결전기.

백은의 오로라.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급격하게 기울어졌던 늪의 파도가 은백색으로 물들며 흐름이 멎었다. 초집중 때문이 아니다. 늪 자체가 얼어붙으며 완벽하게 굳어버렸다.

고오오오.

조그마한 진흙도 흘러내리지 않은 채 얼어붙은 거대한 늪의 해일은 이 세계의 균형을 벗어난 듯 이질적이었다.

‘이게 백은의 오로라….’

하늘을 뒤덮은 천상의 커튼이라 불리는 오로라. 그 이름에 걸맞는 위용이었다.

“어어….”

“이, 이걸 얼린다고? 인간이야?”

“진흙 아이스크림….”

버렌과 마르타, 루난은 해를 가리는 거대한 해일의 그림자를 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허어억!”

“부, 부단주님!”

“진짜 미쳤어….”

“괴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성벽에 서 있던 광풍단 역시 뒤로 자빠진 채 파랑에 맞은 듯 눈동자를 떨었다.

고오오오.

라온은 사람들의 놀람을 들을 새도 없이 계속 불의 고리를 운용했다.

‘빌어먹을….’

더럽게 아파.

불의 고리를 회전시키고, 영혼의 격을 드높이고 있음에도 전신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일었다. 한 번에 너무 큰 기운을. 그것도 처음 운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후욱….”

고통이 깃든 숨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의 손으로 은백색으로 꽁꽁 얼어붙은 진흙의 해일을 만들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 해일을 만들어낸 건….’

역시 그놈이겠지.

늪에서 이 정도 규모의 해일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데스나이트를 소환했던 마법사가 벌인 일이 분명했다. 놈이 어디서 보고 있을지 모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뿌득!

라스는 담담한 표정을 한 라온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 미친놈이! 어떻게 한 것이냐!

‘네가 알려줘 놓고 왜 그러는 건데.’

-그게….

기술의 흐름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정말 해낼 줄은 몰랐다. 적당히 얼리고 뭉개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미친 녀석은 정말 통째로 늪의 파도를 얼려버렸다.

-정말 해낼 줄은 몰랐으니까!

‘상상했어.’

-뭐?’

‘네가 매번 말했잖아. 마나를 운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이미지라고. 심상 속에서 본 너를 되새기면서 저 늪을 모조리 얼려버릴 생각을 했지.’

-끄으, 다시는 안 알려줄 것이니라!

라스는 단단히 삐진 듯 이를 갈았다.

‘괜찮아.’

라온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외웠으니까.’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면서 백은의 오로라를 운용했기에 냉기의 흐름을 익혀두었다. 물론 이걸 홀로 사용하기는 힘들겠지만.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느니라!

‘아쉽네. 난 이제 네가 좀 마음에 드는데.’

-그 입 닫아라!

라온이 옅게 웃음여 제천검의 검병을 쥐었다. 만화공을 운용하여 전신에 차오른 냉기를 가라앉히며 검을 뽑았다.

촤아아아악!

붉은 선을 그리며 쏘아진 강기가 얼어붙은 늪의 파도를 가른다. 이 성만큼이나 거대한 파도 조각이 기울어져서 쏟아져 내렸다.

쿠와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크기의 얼음 조각이었기에 바닥이 무너질 듯 가라앉았다.

“후….”

라온이 느릿하게 숨을 고르고, 제천검을 납검했을 때 성벽 위로 웬디 아리안과 황전검대, 레인저 조장들이 올라왔다.

“라온 님!”

웬디는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입술을 떨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갑자기 왜 늪이 파도가 되어서….”

“죽음의 늪 끝에서 밀려온 파도 같습니다.”

“아….”

그녀는 새하얗게 얼어붙은 채 잘려 나간 진흙의 파도를 보며 탁한 숨을 뱉었다.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웬디는 제발 끝났다고 말해달라는 듯 손을 모았다. 다른 이들 역시 같은 대답을 듣고 싶은지 마른 입술을 축였다.

“…….”

라온은 대답하지 않은 채 성벽의 끝으로 다가갔다.

쿠구구구구구!

얼어붙었던 진흙이 바닥에서 피어나는 검은 기운에 녹아내린다. 성벽 위까지 올라가야 할 진흙 더미들이 먼지가 되어 사그라지고, 수백 년만에 시꺼멓게 물든 땅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의 기운.’

-언제 맡아도 더러운 냄새이니라.

넓고, 깊은 늪이 억누르고 있던 대지 속 사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선을 들어 죽음의 늪의 끝. 아니, 이젠 죽음의 땅이라고 할 곳의 끝으로 보냈다. 기감으로도 느낄 수 없이 머나먼 곳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놈은 일부러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후….”

라온이 짜증이 묻은 숨을 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떨리는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전쟁을 준비하세요.”

땅에서 피어나는 사기가 점점 강해지는 걸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언데드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놈들과 이 성을 두고 공성전을 벌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금은 준비가 됐다는 점이지.

웬디 아리안이 임시 가주를 맡자마자 한 일이 바로 전쟁 물자를 보충하고, 사람들을 훈련시켰던 일이기에 그나마 싸울 준비는 갖춰져 있었다.

“저, 전쟁?”

웬디가 입을 틀어 막은 채 어깨를 떨었다.

“전쟁이라니….”

“곧 시작될 겁니다.”

“전쟁….”

그녀도 대지에서 솟구치는 죽음의 기운을 느낀 듯 볼과 목이 빨개졌다.

“제, 제가 뭐부터 해야. 일단 준비. 아니 연락을….”

“웬디 님.”

라온이 패닉에 빠진 듯한 웬디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아리안 가문을. 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곳을 가장 잘 아는 당신이 움직여야 합니다.”

“아….”

그 말을 하며 성벽 위를 올려다보는 아리안 가문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제대로 된 기둥이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자, 웬디의 떨림이 멈췄다.

“알겠…습니다.”

웬디가 피나도록 주먹을 말아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전시 태세에 들어간다! 검대와 레인저는 공성전을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그녀가 기강을 잡았기 때문인지 검대만이 아니라, 레인저들도 떨면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땡땡땡!

수백 년만에 긴급 종소리가 울리며 가문의 모두가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라온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확인 한 뒤 뒤를 돌았다.

“집합.”

광풍단은 장난을 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 성벽 위에 정렬한 채 허리를 세웠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곧 언데드와의 전쟁이 시작될 거다. 숙소에 가서 연공을 하고 돌아오도록.”

“여, 연공을 하라고?”

“여기 안 지켜도 돼?”

“부단주님도 힘 빠졌잖아요.”

“맞아. 연공은 부단주님이 해야죠.”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인지 광풍단은 라온이 지쳐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난 여기서도 할 수 있어.”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불의 고리를 운용하고 있기에 이 정도 내상을 회복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희는 오전 내내 대련했잖아. 빨리 가서 몸과 정신을 만전으로 회복하고 돌아와.”

사기가 피어나는 땅을 돌아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지금이 아니면 연공할 시간도 없을 테니까.”

“윽….”

“살 떨리네….”

“알겠습니다.”

광풍단은 더이상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서 성벽을 달려 내려갔다.

“도리안. 잠시만.”

“네?”

“혹시….”

라온은 마지막에 내려가려던 도리안을 불러서 한 가지 물건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 그건 당연히 있죠. 필수품이잖아요. 지금 꺼낼… 어?”

그는 배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멈춰 섰다.

“근데 그거 사용하면 저희 임무 실패 아니에요?”

“괜찮아.”

라온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나의 아니, 광풍단의 힘이니까.”

*     *      *

라온은 모두가 떠난 이후에도 성벽에 남아 죽음의 땅을 지켜보았다. 불의 고리 덕분에 내상이 가라앉았고, 용기를 두른 채 전쟁을 준비하는 아리안 가문의 사람들이 있음에도 땅을 보면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이젠 독할 지경이네.’

늪 아래에 있던 대지에서 올라오는 사기는 끝없이 강해졌다. 마나가 없는 평범한 사람은 이 성벽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숨을 쉬지 못하고, 쓰러지게 될 정도였다.

-그것만 문제가 아니니라.

‘그렇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죽음의 땅 끝을 바라보았다. 저 끝에서부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들이 소환되고 있었다.

지독한 사기의 힘을 받아 한층 강화된 몬스터들의 기운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였다.

‘굉장히 위험….’

-아니, 그거 말고! 포도 샌드위치랑, 블루베리 파이 안 먹냐고!

‘지금 먹을 때가 아니잖아.’

-본왕은 그런 거 모르니느라! 약속을 지키거라!

‘가게 문 닫았거든.’

-그럼 열어!

라온이 늪처럼 달라붙는 라스를 밀어낼 때 웬디 아리안이 달려왔다.

“무,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면….”

“비상 통신망이 연결되지 않아요!”

웬디는 비상 통신이 몇 시간째 연결되지 않는다며 손톱으로 팔을 긁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하는 데스나이트를 소환하고, 늪으로 파도로 만드는 괴물이 다른 곳에 연락을 할 수 있는 비상 연락망을 놔둘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은 이대로 싸워야 합니다.”

라온은 품에서 두 개의 반지를 꺼내서 손가락에 꼈다. 하나는 요난 가문에서 받았던 청홍환이었고, 두 번째는 영화의 대마법사 체임버에게 받았던 반지였다.

“후우….”

웬디가 본인의 이마를 치고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우리끼리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녀는 의지를 다잡는 듯 검을 꽉 움켜쥐었다.

“맞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일 때 성벽 위로 광풍단이 올라왔다. 연공을 끝내고 돌아왔기에 모두의 안색은 이전보다 밝아져 있었다.

“우리는 끝났어.”

“여긴 우리가 지킬 테니까. 이번에는 네가….”

마르타가 연공을 하고 오라고 말을 하려 할 때 뒤편에서 땅이 들썩이는 느낌이 들었다.

라온을 포함한 모두가 성벽으로 달려가 죽음의 땅을 보았다.

뿌드드드득!

뼈로 된 꽃이 피는 것 같은 괴이한 소리와 함께 회색 해골과 녹색으로 물든 좀비들이 땅을 파헤치고 일어섰다. 죽음의 땅 전체에 뿌린 씨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아리안 가문의 성 앞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언데드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

“미, 미친….”

“저게 다 언데드라고?”

“이거 버틸 수 있는 건가?”

무수한 숫자의 언데드들이 일어서자, 성벽 위에서 대기하던 레인저들이 전신을 떨었다.

“이, 이거 좀 많은데?”

버렌이 끝없이 솟아오르는 스켈레톤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어떻게 된 게 땅보다 언데드 대가리가 더 많이 보이는 거야!”

마르타는 주먹을 말아쥔 채 좀비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두 사람 역시 이 정도 숫자일 줄은 몰랐는지 마른침을 삼킨 채 인상을 찌푸렸다.

“구슬 아이스크림 같아.”

루난은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보며 입맛을 쩝 다셨다. 이 와중에도 저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이지 특이한 아이였다.

“후우….”

“서, 성 안 무너지겠지?”

“그럼 다 뒈지는 거지.”

“시끄럽고, 준비해. 곧 온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물량에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 언데드들이 군대처럼 줄을 맞춰서 뒤를 돌았다.

놈들은 아리안 가문의 성이 아니라, 죽음의 땅에 있는 세 개의 기둥을 향해 무릎을 꿇고, 괴기스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으으으으으!

그르르르르!

그건 어둠의 찬가. 언데드들은 수백 년만에 본인들을 소환한 주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의 노래를 불렀다.

신관이 신을 숭배하고, 신성력을 얻듯이 놈들에게 깃든 죽음의 기운이 두텁게 자라났다.

으아아아아아!

끼아아아아아아!

수많은 언데드를이 죽음을 노래하자, 태양조차 겁에 질린 듯 구름 속으로 몸을 감췄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고, 전의를 다지던 성벽의 분위기가 초상이 난 듯 암울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 이게 뭐야!”

“저놈들 뭐 하는 건데!”

“소, 손발이 떨려….”

“악마에게 힘을 얻는 건가?”

레인저와 황전검대 만이 아니라, 광풍단도 언데드들의 노래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지랄을 하는군.”

라온이 비웃음을 흘리며 제천검을 뽑았다. 만화공을 극성으로 일으키며 오른팔을 뒤로 젖혔다. 활을 쏘는 듯한 자세로 화염이 응집된 검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

검신 전체에서 솟아오른 화염 폭풍이 어둠을 부르짖는 언데드 무리를 휩쓸었다.

수백의 언데드가 자그마한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녹아내렸다.

끝없이 울리던 놈들의 찬가가 멎고, 가라앉았던 태양 빛이 되살아나기 성벽 위를 비췄다.

“광견단.”

라온이 뒤를 돌았다. 잔불처럼 투지가 타오르기 시작한 사람들의 눈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원래 뼈에 붙은 살이 가장 맛있는 법이다.”

제천검을 들어 아직도 무수히 남은 언데드들을 가리켰다.

“모조리 뜯어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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