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3화
다른 언데드 몬스터와 달리 데스나이트와 아크 리치에겐 등급이 존재한다.
두 최상급 언데드 몬스터의 강함은 생전의 경지를 따라가기에 이름으로 위험도를 구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스터 하급에서 중급 사이는 하귀, 마스터 중급에서 상급 수준은 중귀 그리고 상급 이상의 고위 언데드에게는 상귀라는 등급이 붙는다.
라온은 시뻘건 안광을 불태우는 데스나이트를 보며 손가락을 비볐다.
‘하귀.’
마스터 중급 수준에 올랐던 검사가 죽은 뒤 데스나이트로 타락하며 마스터 하급 수준의 무력으로 격하된 것 같았다.
-그리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되느니라.
‘그렇겠지.’
라온이 라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늪은 평범하지 않으니까.’
죽음의 늪은 이름과 달리 죽음의 기운인 사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언데드를 강화시키는 힘이 있다.
저 데스나이트 역시 마스터 하급보다 더 높은 경지라고 생각하고 싸워야 한다.
‘버렌과 마르타, 루난. 셋으로는 힘들어.’
광풍단의 세 조장은 큰 피해 없이 철전대 1번 부대주 카망을 이겼지만, 그건 생사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망이 마음먹었다면 셋 중 하나는 죽었을 것이다.
저 데스나이트는 당시의 카망보다 강하기에 광풍단 전체가 상대해야 한다.
“광풍단.”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는 데스나이트를 가리켰다.
“처리해.”
“예.”
광풍단은 라온이 부단주로서 내린 지시에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않고, 땅을 박찼다.
데스나이트를 향해 쇄도하는 그들의 눈동자에는 적을 말살하겠다는 의지만이 가득 찼다.
“데, 데스나이트를 광풍단에게 맡기신다는 겁니까?”
프리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좋은 기회이니, 싸워봐야죠.”
“저기에는 마스터가 없는데 어떻게….”
“이기든 지든 상관없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길은 열리지 않아요.”
“어….”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눈빛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개진!”
버렌이 가장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들어 올렸다.
“개진!”
그의 외침을 들은 광풍단은 바람을 탄 눈송이처럼 유연하게 퍼지며 원형의 검진을 만들었다.
광풍단 모두가 하나가 되어 펼치는 대광풍진이었다.
‘어, 어떻게든 죽여야 해!’
‘저거 안 죽이면 내가 뒈져!’
‘앞에 있는 건 데스나이트지만, 뒤에서 마왕이 기다린다고!’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고! 빌어먹을 인생!’
검사들은 이 전투에서 진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며 검을 고쳐 잡고,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구!
광풍단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오러를 모으자, 데스나이트에게도 그리 뒤지지 않는 기파가 솟구쳤다.
화아아아아!
데스나이트의 장검에서 시뻘건 불길이 일어난다. 지옥의 불꽃을 소환한다는 염옥검이었다.
광풍단이 대광풍진의 첫 번째 형 녹중선풍을 펼쳐냈다. 진법 중앙에 응집된 기운이 버렌의 검에 휘감겨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데스나이트의 염옥검과 녹중선풍이 맞부딪치며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치솟았다.
죽음의 늪이 갈라지며 허공에서 진흙 뭉치가 쏟아져 내렸다.
트드드득!
데스나이트와 광풍단이 뭉개지는 늪지에서 동시에 밀려난다.
“전환!”
버렌의 지시에 광풍단의 위치가 바뀐다. 3조가 뒤로, 1조가 앞으로 나오며 마르타의 주변으로 강대한 기운이 응집되었다.
-전에는 굼벵이가 기어가듯 느렸거늘….
라스가 번갯불처럼 변화하는 광풍단을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진의 변환이 빨라졌구나.
‘그래.’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변했어.’
이전에는 조와 조의 위치를 바꾸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오러의 이동도 조잡했는데, 지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광풍단 모두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대가리부터 깨부숴 주마!”
마르타가 악을 지르며 검을 비틀어 내린다. 한순간의 광폭화. 다만 광기를 두른 순간에도 혼자 달려들지 않았다.
그녀는 뒤를 받치는 1조와 함께 전력을 담아낸 검격을 내리꽂았다.
쿠와아아앙!
건물이 뭉개지는 듯한 굉음이 터지고, 데스나이트가 뒤로 밀려난다. 놈의 화안에 분노의 감정이 담겼다.
-소고기 소녀는 무력보다 정신력이 더 성장한 듯하구나.
‘잘 보고 있었네.’
-본왕의 부하가 아니더냐. 말했듯이 부하는 제대로 챙겨야 하느니라!
라스의 말대로 마르타는 무력 이상으로 정신력이 강해졌다. 지금도 힘을 집중하는 찰나의 순간에 광폭화를 일으킨 뒤 조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바로 정신을 찾았다.
트드드득!
데스나이트의 턱이 삐걱거리며 열린다. 화가 단단히 난 듯 안구에 강렬한 불꽃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치이이이잉!
광풍단의 위치가 다시 한번 바뀐다. 2조가 전방을 맡는 가장 단단한 형태. 다섯 번째 형 설묘신현이었다.
챠아아아앙!
루난이 앞으로 나아가며 설화를 휘돌린다. 리본 끈처럼 풀려나가는 냉기가 허공을 뒤덮으며 유려한 검막을 만들어냈다.
쩌어어어엉!
서리의 칼날과 데스나이트의 불검이 정면에서 격돌하며 어마어마한 수증기를 일으켰다.
더욱더 지독해진 안개 사이로 은빛 칼날이 솟구쳤다.
피아아앙!
데스나이트가 아니다. 진의 끝머리에 선 루난이 설화를 내질러 데스나이트의 광대뼈를 찌른 것이다.
치이이익!
죽음의 기운 때문에 큰 상처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광대에 작은 검흔이 새겨졌다.
-오오오!
라스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저런 반격을 할 줄이야! 아이스크림 소녀도 달라졌느니라!
‘그러네.’
루난은 항상 방어만 했으니까.
루난은 다정한 성격답게 서리의 오러를 갈고 닦아서 모두를 지켜주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그녀의 성향도 바뀌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방패 속에 숨겨둔 날카로운 얼음송곳을 망설임 없이 내찔렀다.
끼기기긱.
데스나이트는 화가 단단히 났는지 살짝 긁힌 뺨을 툭 치고, 염옥검을 다잡았다. 시꺼먼 칼날에서 솟구친 불꽃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쩡! 쩌정! 쩌저저저정!
데스나이트와 광풍단이 정면에서 격돌하며 늪이 요동친다.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안개가 찢겨나가며 하늘이 열렸다.
화아아아아아!
일몰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주홍빛으로 물드는 천공 아래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라온은 광풍단의 검격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장만이 아니야. 모두 변했어.’
버렌과 마르타, 루난만이 아니라, 광풍단의 모두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성장해 있었다.
“으아아아아!”
광풍단. 아니, 지그하르트 제일의 겁쟁이 도리안조차 진의 중심에서 물러나지 않은 채 검을 꽉 말아 쥐고 버텼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끝까지 뒤를 받쳐주었다.
“꾸에에엑!”
모두가 잘 견디고 있을 때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한 검사가 튕겨 나갔다.
“이런 빌어먹을!”
크레인이다. 그는 입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데스나이트가 추가타를 날리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항상 첫 번째로 탈락하기 때문인지 복귀가 날다람쥐처럼 빨랐다.
-저건 글렀느니라. 불운의 화신이니라.
‘조금 그런 면이 있지.’
크레인은 3조 부조장으로 광풍단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하지만, 항상 먼저 당하고 쓰러진다.
근성보다는 운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적당히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저 해골 특이한 놈이니라.
‘알고 있어.’
라온이 데스나이트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언데드라….’
본래 언데드 몬스터는 성장이 더디다. 인간이 생을 버리고, 사를 취했기에 성장이 느릴 수밖에 없는데, 저 데스나이트는 그 저주에 걸리지 않은 듯,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것도 죽음의 기운만이 아니라, 검술까지.’
이 늪지의 힘을 받아서 사기가 강해지는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 짧은 시간에 검술마저 성장한다는 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광풍단이 데스나이트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데스나이트가 광풍단에 익숙해지는 게 훨씬 빨랐다.
쩌어어엉!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광풍단이 내상을 입은 채 패퇴하게 될 것이다.
“부단주님.”
마크 괴튼이 허리춤의 흑선도를 잡으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음, 그럼….”
라온이 허락을 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유아가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유아야!”
마크 괴튼이 말리려고 할 때 손을 저어 막아섰다.
“부단주님?”
-야! 파인애플 소녀를 막아!
“잠시만 지켜보죠.”
언제라도 유아를 구할 수 있도록 마나회로에 열기를 휘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고오오오오!
유아는 두 손을 모은 채 오러를 운용했다. 푸른 기류가 고풍스러운 비단처럼 풀려나갔다.
[아아아아아아!]
유아가 선택한 건 검이 아니라, 목소리. 백익의 천사가 강림한 듯 성스럽게 풀려나는 노래가 늪지에 새로운 파동을 일으켰다.
끼기긱….
칼을 맞아도 분노만 일으켰던 데스나이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놈의 사이한 눈동자가 광풍단을 너머 유아에게 향했다.
“뭐, 뭐야….”
“내, 내상이 가라앉고 있는 건가….”
“체력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버틸 수 있겠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절할 뻔했는데….”
“이게 유아의 힘인가?”
반대로 광풍단은 내상이 가라앉은 듯 안색이 밝아졌다.
이게 바로 에덴이 노렸던 유아의 능력. 적에게는 피해를, 아군에게는 활력을 주는 세이렌의 목소리였다.
크아아아아아!
데스나이트가 검을 움켜쥔 채 포효를 터트리자, 늪지가 울렁거리며 다수의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가 튀어나왔다.
끼이이이!
캬아아아!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는 광풍단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고, 유아를 향해 내달렸다.
차아아악!
독이 깃든 손톱이 유아의 목을 찌르려고 할 때 시퍼런 검광이 번쩍였다.
키이익!
구울은 팔이 통째로 잘려 나간 채 늪지에 처박혔다.
“너만 활약하게 놔둘 수는 없어!”
율리우스가 유아의 앞에 선 채로 이를 악물었다.
“네가 하면 나도 한다!”
그는 로엔에게 배운 직선적인 검술 적악검을 운용하여 다가오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베어냈다.
긴장으로 인해 전신에서 식은땀이 뚝뚝 흘러내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쿠구구구궁!
우측 늪이 파도처럼 솟구치며 듀라한이 솟구쳤다. 조금 전에 처치했던 놈보다 더 강한 기운을 두른 채 유아에게 달려갔다.
‘듀라한까지 소환이 가능하다고?’
본래 데스나이트는 등급에 따라 소환할 수 있는 종이 다르다.
듀라한까지 부르는 것을 보니, 저 데스나이트는 그새 하귀에서 중귀까지 성장한 것 같았다.
“저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마크 괴튼이 흑선도를 뽑고 달려 나갔다. 듀라한이 장창으로 유아를 찌르기 전에 앞을 막아섰다.
쩌어어엉!
마크 괴튼의 강렬한 도격이 듀라한의 거체를 밀어냈다. 그는 이쪽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벽란도의 초식을 뿌려 흑색 장창을 깨부쉈다.
-이전에는 지저분해서 꼴 보기 싫을 정도였는데, 좀 나아졌구나.
라스의 말대로 마크 괴튼의 벽란도법은 강하기만 할 뿐 그 어떠한 감정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지금 그의 도격에는 오싹할 정도의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쩌저저저적!
마크 괴튼은 벼락처럼 떨어지는 도격으로 단숨에 듀라한의 몸체를 베어버렸다.
듀라한이 신음조차 내뱉지 못하고 늪에 가라앉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광풍단의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콰아아아앙!
데스나이트가 일으킨 검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익스퍼트 중급 수준의 검사들이 피를 토하고 밀려났다.
상급에 도달한 검사들도 내상이 도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간신히 버티는 건 최상급에 오른 세 명의 조장과 도리안뿐이었다.
[아아아….]
유아도 점점 더 강해지는 데스나이트의 기운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고, 율리우스도 지쳐서 거친 숨을 뱉었다.
“부단주님.”
듀라한을 처리하고 온 마크 괴튼이 심각한 표정으로 눈매를 찡그렸다.
“설마 저 데스나이트 강해지고 있는 겁니까?”
“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마스터 하급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중급에 오르기 직전이네요.”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마크 괴튼이 입술을 깨물고서 광풍단의 우측으로 돌아 들어갔다. 듀라한의 몸을 가른 도격을 그대로 내려쳤지만, 데스나이트는 아주 가볍게 그의 도를 튕겨 냈다.
“흥!”
마크 괴튼은 예상했다는 듯 허공에서 몸을 휘돌린 후 두 번째 도격을 쏟아냈다. 천공에서 떨어지는 낙뢰처럼 궤도를 읽기 어려운 벽란도의 초식이었다.
“우리도 가자!”
광풍단도 가장 공격력이 강한 열한 번째 형으로 전환하며 마르타에게 오러를 맡겼다.
화아아아아!
양쪽에서 강대한 기운이 쏟아질 때 데스나이트가 염옥검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단순한 검격 속에 깃든 강대한 기운이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쿠와아아아앙!
데스나이트는 광풍단과 마크 괴튼의 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쭉 밀려나 세 개의 기둥에 등을 부딪쳤다.
꽤 큰 충격을 입은 듯 몸이 삐걱거렸지만, 사기는 이전보다 더 강하게 타올랐다.
콰아아아아아!
시뻘겋게 타오르던 데스나이트의 화안이 녹색으로 뒤바뀐다. 그와 동시에 놈의 발밑에서 피어나던 죽음의 기운이 하늘까지 솟구쳤다.
-벽을 넘었느니라.
‘그래. 중급에 올랐어.’
라온이 데스나이트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데스나이트는 마스터 중급에 확실하게 안착했다.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갔다.
‘아무래도 싸울수록 강해지는 것 같은데?’
-본왕의 생각도 같다. 저런 언데드는 오랜만에 보는군.
라스는 마계에도 드문 희귀종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콰아아아아앙!
마스터 중급에 오른 데스나이트의 염옥검에 광풍단과 마크 괴튼이 동시에 늪에 처박혔다.
“크으….”
“크허헉!”
“비, 빌어먹을….”
“저 해골 놈 말도 안 되게 강해진 것 같은데?”
“이, 이젠 못 버텨….”
마크 괴튼과 광풍단은 지독할 정도로 짙어진 사기에 어깨를 떨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아으….”
“야! 더 버텨! 이게 끝이 아니잖아!”
유아도 힘이 빠져서 주저앉았고, 율리우스 역시 지쳐서 검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라온이 늪지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었다.
“내가 끝내야겠네.”
저 데스나이트는 위험하다. 광풍단도 나름의 수확을 얻었으니 최대한 빨리 끝을 내는 게 옳았다.
만화공과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운용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벅.
출렁거리는 늪지를 걷고 있음에도 땅을 밟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그 발소리를 들은 광풍단이 머뭇거림 없이 뒤로 물러섰다.
뜨드드득.
분노와 파괴로 타오르는 데스나이트의 녹안이 이쪽을 향한다. 섬뜩한 정도의 사기가 심혼을 옥죄어온다. 놈은 이 순간에도 강해지고 있었다.
“어디까지 강해지는지 지켜보고 싶지만, 책임져야 할 사람이 좀 많거든. 여기서 끝내자.”
그 말에 화가 돋았는지 데스나이트가 늪을 박찼다. 녹색 빛살이 되어 다가와 염옥검을 그어 내린다.
단순하게 보이는 검로에 현묘한 무리가 녹아든다. 하나의 칼날이 열 개로 번지며 피하고 막을 방위를 모조리 에워쌌다.
지옥의 불길을 두른 염옥검의 열기에 피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허리춤의 진혼검이 진동으로 위험하다고 경고할 때 제천검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소리 없이 뽑힌 제천검의 칼날 위로 염옥검보다 더 짙은 불꽃이 타오른다. 유성의 꼬리처럼 치솟은 불길의 선이 장대한 궤적을 그렸다.
뿌드드득!
붉은 칼날이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찬 염옥검을 가르고 백골의 중심에 박혔다. 힘을 주어 검을 끝까지 뻗어냈다.
콰아아아아!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았던 죽음의 기운이 갈라지며 지옥불로 타오르는 데스나이트의 심장이 으깨졌다.
라온은 몸을 잃고 떨어지는 데스나이트의 두개골을 잡으며 뒤를 돌았다. 넋이 나간 듯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자.”
이제 돼지들을 조질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