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92화 (392/653)

제392화

라온은 광풍단의 검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좀비와 스켈레톤을 보며 목을 긁적였다.

‘조금 이상한데.’

본래 언데드 몬스터의 특징은 강한 재생력과 약한 방어력이다.

최하급 언데드인 좀비와 스켈레톤은 방어라는 게 없을 정도로 허약한데, 이곳에 있는 좀비들의 육체는 무인 이상으로 단단한 것 같았다.

“프리카 님.”

라온의 부름에 프리카가 옆으로 다가왔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광풍단의 거친 기파에 질겁한 프리카가 어깨를 떨려 다가왔다.

“좀비와 스켈레톤의 몸체가 생각보다 단단한 것 같은데, 아시는 게 있습니까?”

“어….”

프리카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모, 모조리 일격에 깨부수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그는 광풍단이 스켈레톤과 좀비를 가볍게 처리하는 모습을 가리키며 턱을 떨었다.

“다르니까요.”

평범한 좀비와 스켈레톤이었다면 광풍단이 일으킨 기파만 맞고도 몸이 쪼개졌어야 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육체는 기존 언데드들보다 몇 배는 더 단단했다.

“부단주님의 말씀대로입니다.”

프리카가 좀비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늪의 수위가 높아진 이후로 언데드들의 몸체가 단단해졌습니다. 급소인 머리를 화살로 맞춰도 쓰러지지 않는 경우도 몇 번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도 정찰을 안 나간 겁니까?”

“당연히 웬디 님이 가주님께 보고를 올렸지만, 좀비 따위를 겁낼 이유가 없다고, 한 발로 안 죽으면 두 발을 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두 발….”

라온이 헛웃음을 흘렸다. 위겐은 어제 느낀 것 이상으로 망가진 인간이었던 것 같다.

“레인저 대장이라는 사람은 왜 안 움직이는 거죠?”

“저, 정찰 나가는 걸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베인더 님입니다.”

“그런데 잘도 수장 자리에 앉아 있군요.”

“그게….”

라온은 말을 잇지 못하는 프리카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쯧.

라스도 어이가 없다는 듯 콧잔등을 찌푸렸다.

-늪지에 박힌 가문답게 악취 나는 쓰레기들뿐이로구나.

‘그래. 재활용도 안 되겠어.’

이 이상 현상에 대한 힌트는 많았다.

높아진 늪의 수위, 늘어난 몬스터의 숫자 그리고 단단해진 언데드의 육체 강도까지.

저 셋 중 하나의 현상만 일어나도 바로 튀어 나가 정찰을 나갔어야 했는데, 위겐은 귀찮다고, 어차피 별일 없을 거라며 무시했을 것이다.

‘머리에 그려져.’

늪을 살펴야 한다고 애원하는 웬디와 그녀를 무시하고 다른 간부들과 주지육림을 벌인 뱃살 가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본왕도 잘 보이느니라.

라스가 이마에 손을 얹으며 혀를 찼다.

-마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사고는 그 모자란 대가리들이 저지르고,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입게 되느니라.

녀석은 살려둘 가치가 없다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래. 늪보다 저게 더 급해.’

임무를 떠나 아리안 가문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위겐과 간부들만큼은 확실하게 치워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좀비 치우는 데 언제까지 시간을 끌 거야.”

라온이 왼발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갔다. 늪지 위로 가득 차오른 안개를 가르며 오른손 수도를 세웠다. 섬전처럼 뻗어나가는 팔에 강렬한 폭풍이 일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늪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파이며 진흙이 거꾸로 솟구치는 폭포수가 되었다.

쿠구구구구구!

허공에 떠오른 진흙이 다시 땅으로 추락했을 때 시야에 남아 있는 좀비와 스켈레톤은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라온이 뒤를 돌았다. 희미한 형태만 그려지는 아리안 가문의 성을 보며 서슬 퍼런 눈빛을 일으켰다.

“기대되네.”

돼지들이 어떤 핑계를 대며 자리를 지키려고 할지가.

*     *      *

아리안 가문의 레인저 3조장 프리카는 선두에서 늪지를 달리며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제 라온과 광풍단을 가주전으로 안내해준 뒤 쉬고 있을 때 레인저들의 대장인 베인더가 찾아왔다.

베인더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피곤하다고 말하며 떠나려 할 때 그가 어깨를 잡았다.

[프리카. 이제 너도 위로 올라갈 때가 됐지?]

그는 언제까지 3 조장 자리에 박혀 있을 거냐며 레인저 대장 자리에 관심 없냐고 물었다.

걸음이 자연스레 멎었다. 레인저 대장은 가문의 간부 중 하나로 돈과 지위, 명예.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보상에 비해서 해줄 일은 간단해. 수색 위치만 조금 바꾸면 되거든.]

베인더는 부드럽게 웃으며 지도를 펼쳤다.

그는 죽음의 늪 끝이 아니라, 우측으로 빠져서 아예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이 지점에서부터 발끝 수준으로 방향만 바꿀 거니까. 눈치 못 챌 거야.]

그는 아무리 라온이 마스터라고 해도 처음 와보는 늪의 방향을 알지는 못할 거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곳까지 갔다 오기만 하면 넌 1년 내로 내 자리에 있게 될 거야.]

그에게 늪의 끝에 정말 위험한 게 있으면 어쩔 거냐고 묻자, 그건 광풍단이 돌아간 뒤 황전검대를 보내서 해결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일단 우리가 먼저 살아야지. 광풍단에게 들키면 지그하르트에게 들키는 거야. 간부들만이 아니라, 레인저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텐데?]

당근 다음은 채찍이었다. 자신도 그리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기에 입술을 깨물었다.

[웰리스에게도 말해놓을 테니,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다리고 있으마.]

베인더는 그렇게 말하고서 떠났다. 많은 도움을 준 웬디를 위해서라도 거절해야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이. 조장.”

프리카가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고 있을 때 웰리스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레인저의 암호를 이용하여 말을 걸어왔다.

“언제 할 거야.”

웰리스는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이곳에서부터 틀어야 멀리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의 수신호를 보냈다.

“후우….”

프리카는 눈을 내리감고, 새벽에 있었던 웬디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내일 잘 좀 부탁해.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이 가문은 평생 늪을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그녀는 베인더와 다르게 당근도 채찍도 주지 않았다.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부탁을 해왔다.

‘웬디 아리안….’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바보 같은 여자.

웬디라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편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그 누구보다 험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영애들이 보석 박힌 팔찌를 찰 때 모래주머니를 찼고, 영애들이 양산을 들 때 검을 들고 땡볕을 달렸다.

모든 것을 걸고 가문을 바꾸려 했던 무인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기에 당근이 없어도 끌렸고, 채찍이 없어도 속이 아렸다.

‘망할 여자 같으니….’

애정이나, 측은함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웬디의 삶이 베인더가 내민 제안을 막아서고 있었다.

“조장!”

프리카는 다시 한번 들려온 웰리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여길 넘어가면 방향을 바꿔도 늦어.”

“미안하지만….”

프리카는 곧은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간다.”

“뭐? 그게 무슨….”

“이번이 이 가문을 바꿀 마지막 기회야.”

“이익! 조장이라고 무사할 거 같아?”

웰리스가 너도 진흙에 발을 담갔지 않냐며 눈을 부라렸다.

“베인더가 그렇게 협박하라고 한 모양이지?”

“그건….”

“괜찮아. 깨끗한 척할 생각 없으니까.”

프리카는 뒤에서 달려오는 라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죗값은 치른다. 더 이상 심장을 조이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조장!”

그는 웰리스의 부름에도 돌아보지 않고 더욱 속도를 높여서 늪을 달렸다.

*     *      *

죽음의 늪에 들어온 지 하루가 지났다.

광풍단이 수백이 넘는 언데드들을 빠르게 부순 덕분에 조금만 더 나아가면 목적지인 늪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온은 뜨거운 기백이 느껴질 정도로 달리는 프리카의 등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가문도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로군.’

프리카에게 다른 생각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웬디가 믿어달라고 했기에 추궁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그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은 듯 보였다. 나아가는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레인저의 대장이라는 자가 술수를 부린 건가.’

프라카와 웰리스가 레인저 소속이니, 그들에게 지시를 내린 건 베인더라는 이름을 가진 레인저의 대장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방향이겠지.’

이 넓은 죽음의 늪에서는 아주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베인더라는 놈은 늪의 중심이 아니라, 외곽으로 이끌어서 이곳에 별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게 분명했다.

‘어차피 통하지 않았겠지만.’

불의 고리와 설화의 감각이 있는 라온에게 이 정도 안개와 늪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만약 프리카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그 역시 복귀 후 처분 대상에 올랐을 것이다.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쪽도 문제는 없군.’

광풍단원들은 하루종일 싸우고 달렸음에도 누구 하나 지친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언데드 몬스터들을 쳐부수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 같았다.

‘유아와 율리우스도 기특하고.’

저 둘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선배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달렸다. 대견한 녀석들이다.

‘돌아가면 특별 수련을 짜주마.’

-그, 그건 상이 아니라, 벌이지 않느냐.

‘상이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건데.’

-그건 네놈 생각이고! 파인애플 소녀는 그런 상을 안 바란단 말이다!

라스는 네놈의 머리통을 열어보고 싶다며 이를 갈았다.

‘그럼 나중에 물어….’

라온이 다시 시선을 돌릴 때 전방에서 강렬한 기세가 일어났다.

고오오오.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죽음의 기운. 좀비와 스켈레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위 언데드가 분명했다.

‘이 정도 급이 있었다는 말이지?’

웃음이 나왔다. 저놈의 존재만으로 아리안 가문의 배불뚝이를 조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

“광풍단.”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앞에 적이 있다. 최대한 빨리 치우도록.”

“예!”

광풍단이 한 사람처럼 대답하고 레인저들보다 앞으로 튀어 나갔다.

끼이이익!

그렇게 달린 지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좌측 나무 뒤에서 좀비와 비슷한 외형이지만, 이동속도가 4배는 빠른 시체가 달려왔다.

그 반대편에서는 뼈가 탁한 회색을 띄고 있는 해골이 칼과 방패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어어….”

“구, 구울!”

“스켈레톤 워리어다!”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는 좀비와 스켈레톤에 비해 힘과 내구성이 강하고, 움직임이 빠르다.

독까지 있어서 좀비처럼 쉽게 봤다간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치리리링!

광풍단이 더 강하게 늪지를 박찼다. 그들의 검에서 피어나는 가지각색의 검기가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를 향해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늪지의 표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달려오던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가 수십 조각으로 잘려 가라앉았다.

“계속 온다!”

“정신 빠딱 차려!”

버렌과 마르타가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를 향해 달려갈 때 우측 덩굴 사이에서 거대한 말이 튀어나왔다.

키이이이잉!

시꺼먼 몸체에 체구는 정상적인 말보다 2배는 컸고, 그 위에는 붉은 갑주를 두른 거한이 타고 있었다.

다만 목 위에 있어야 할 머리를 왼팔에 끼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대형 도끼를 들고 있었다.

“듀라한!”

버렌이 듀라한을 보고 오러를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저 대가리는 내가 조진다!”

마르타가 늪지를 거세게 박차고 가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머리 안 무거워?”

루난은 듀라한이 안고 있는 머리통을 보며 검을 위로 세웠다.

세 조장이 먼저 나아가 동시에 검을 내리친다. 세 줄기 검기가 별자리처럼 어우러질 때 듀라한이 오른손에 든 도끼를 휘돌렸다.

쩌어어어엉!

도끼에서 퍼져나간 죽음의 기운이 버렌과 마르타, 루난의 검기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후우우웅!

듀라한은 방어에서 멈추지 않고, 도끼를 밑에서부터 쳐올렸다. 시꺼멓게 물든 사기가 세 사람의 목을 향해 쏘아졌다.

터어엉!

루난이 앞으로 나아가 서리의 기운을 풀어냈다. 물결처럼 부드럽게 펼쳐진 냉기가 사기를 휘어 감은 채 얼려버렸다.

“흐읍!”

버렌이 루난의 뒤에서 튀어나와 번갯불처럼 검을 내리쳤다. 칼날에 실린 삭풍이 듀라한의 사기를 뚫고 놈의 갑주를 갈랐다.

크르르륵!

듀라한이 왼손에 든 머리통에서 시뻘건 안광이 뿜어졌다. 놈은 버렌을 짓뭉개버릴 것처럼 말을 앞으로 몰았다.

쿠구구구!

사기에 휩싸인 말발굽이 버렌을 짓뭉개려 할 때 우측에서 마르타가 돌진해왔다. 그녀는 타이탄의 오러를 모조리 끌어 올려 두 손으로 잡은 검을 내리꽂았다.

끼기기긱!

듀라한이 도끼 자루를 끌어 올려 마르타의 검격을 향해 쳐올렸다.

쿠와아아아앙!

힘과 힘의 격돌에 늪지의 중심에서 격한 폭발이 일어나고, 듀라한과 세 조장이 각기 뒤쪽으로 물러섰다.

라온은 어깨에 실금이 가서 떨어져 나간 듀라한의 갑주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이제 확실해졌군.’

이곳의 언데드들은 죽음의 기운이 강해.

좀비와 스켈레톤은 너무 허약해서 애매했지만 듀라한 덕분에 확실해졌다.

듀라한이 언데드 중에서 굉장히 강한 체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버렌, 루난, 마르타의 공격에 저 정도 상처만 입은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곳의 언데드들은 평범한 언데드들보다 더 많은 양의 사기를 두르고 있었다.

“이놈 너무 단단해!”

“머리통이 없어서 공격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버렌과 마르타가 듀라한에게서 물러나며 입술을 깨물었다.

“말 대가리부터.”

루난은 듀라한이 타고 있는 말을 노려보며 냉기를 풀풀 일으켰다.

크으으으!

듀라한은 갑옷이 뭉개지고 이곳저곳의 뼈와 살점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처음보다 더 짙은 사기를 흘려냈다.

“이놈들 왜 이렇게 많아!”

“별거 없다며!”

“닥치고 일단 잡아!”

조장들이 듀라한에 막혀 있으니, 다른 광풍단들도 다가오는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의 숫자에 밀려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라온이 조용히 전장을 지켜보고 있을 때 마크 괴튼이 다가왔다.

“부단주님. 저도 나서겠습니다.”

“아뇨.”

마크 괴튼이 검을 뽑으려 할 때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들이 할 수 있어요.”

이곳의 언데드들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광풍단이 못 잡을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광풍단.”

라온이 호흡을 조금 들이킨 뒤 목소리에 오러를 실었다.

“내가 너무 부드럽게 훈련을 시켰나?”

그 서늘한 음성에 싸우고 있는 광풍단의 손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빠르게 치우라고 말했는데,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네. 새로운 훈련을 준비해야겠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광풍단의 어깨 위로 짙은 광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절대 안 돼요!”

도리안이 악을 지르며 검을 내뻗자, 전방에 있던 스켈레톤 워리어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도, 돌격!”

“으아아아아아!”

“모조리 쓸어버려!”

광풍단이 눈에 불을 켜고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를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검사들의 일검에 녹아내리는 언데드들을 보고 있으면 구울이 아니라, 좀비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뒈져어어어어어!”

마르타의 검 위로 강대한 황색 기운이 타오르며 듀라한의 어깨를 통째로 날렸다.

“새로운 훈련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고!”

버렌이 코를 훌쩍이며 듀라한이 탄 말의 몸통을 찔렀다. 검날에서 피어난 작은 폭풍이 흑마의 몸을 헤집었다.

“잠 좀 자자.”

루난이 설화를 길쭉하게 펼쳐낸다. 은빛 칼날에서 그보다 더 짙은 은색 꽃잎이 퍼져 나가 듀라한의 몸통을 휘감았다.

화아아아아!

화령과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냉기의 조각들이 균형을 잃은 듀라한의 몸통을 얼려버렸다.

쩌저어어엉!

버렌과 루난, 마르타가 동시에 돌진해 얼어붙은 듀라한의 몸을 사정없이 깨부쉈다.

쿠구구구구!

세 명의 조장과 광풍단은 언데드들을 모조리 찢어발긴 뒤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구,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를 이렇게 쉽게….”

“듀라한이 산산조각이 났어!”

“강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레인저들은 강렬한 사기를 두른 언데드를 손쉽게 물리친 광풍단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라온은 광풍단을 보며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봐. 하면 되네. 왜 시간을 끌고 있어.”

그 말에 광풍단의 눈동자에 맺힌 광기가 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끄응….”

“저 망할 자식!”

“지는 가만히 있으면서….”

“약한 게 죄야 죄.”

광풍단은 따지지도 못하고 주먹만 부르르 떨었다.

“프리카 님.”

라온은 옆에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프리카에게 손짓을 했다.

“이제 거의 끝이니, 빠르게 가죠.”

“아, 알겠습니다.”

레인저들은 다시 선두에 서서 라온과 광풍단을 이끌었다. 점점 더 안개가 짙어졌지만, 몬스터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듀라한을 끝으로 좀비 한 마리 마주치지 않은 채 늪의 끝에 있다는 세 개의 기둥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듀라한이 끝이었나?”

“그런가 봐.”

“다행히 쉽게 끝났네.”

모두가 긴장을 풀고 미소를 지으려 할 때 라온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정지.”

그의 지시에 광풍단과 레인저들의 걸음이 멈췄다.

“라온?”

“갑자기 왜?”

라온은 기둥 아래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늪의 주인이 올라오고 있으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둥 아래의 늪지가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황녹색 진흙이 시꺼멓게 물들며 새하얀 백골이 서서히 위로 올라왔다.

고오오오오!

백골은 전신에 흑적색 갑주를 둘렀고, 텅 빈 안구에서는 시뻘건 불꽃을 토해냈다.

쿠구구구구!

지금까지 보았던 언데드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파에 레인저만이 아니라, 광풍단마저 숨을 죽였다.

“허억!”

“데, 데스나이트?”

“이런 놈이 왜 이곳에….”

데스나이트의 지독한 사기에 레인저들은 턱을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죽음의 기사라는 데스나이트는 이지가 담겨 있는 화안으로 광풍단을 노려보았다.

“크으….”

“이게 데스나이트?”

“진짜 별거 다 보네….”

광풍단은 세 조장을 필두로 격을 끌어 올리며 데스나이트의 기파에 대항했다.

라온은 데스나이트와 광풍단을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좋은 교보재가 왔네.”

그 서늘한 음성에 광풍단의 어깨는 데스나이트를 보았을 때보다 더 격한 떨림을 일으켰다.

-여기서 그 대사가 맞냐고….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