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8화
라온은 나무 상자의 뚜껑을 완전히 열고 그 안에 있던 비도를 들어 올렸다.
‘살기가 짙어.’
화살촉과 송곳을 합친 듯한 날카로운 형태의 비도에 섬뜩할 정도의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누구의 피도 마시지 않은 무기가 이런 독한 기운을 흘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게 진짜 비도인가….’
본래 비도라는 무기는 제압이 아니라, 살인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적의 급소를 찔러서 단숨에 숨통을 끊어버리는 게 비도의 존재 이유인데, 이 무기는 그 용도의 극점에 도달한 듯한 모습이었다.
‘냉기 대신 살기를 담았어.’
보르고스는 드레이크의 이빨에 어려 있던 냉기를 지워버리고, 날카로움과 살기를 최대한 끌어 올린 것 같았다.
라스가 비도를 내려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그 난쟁이 똥자루가 기괴한 물건을 만들어냈구나.
‘그래. 보통 무기가 아니야.’
라온이 비도를 말아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물건을 만들어서 보낼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특별한 비도를 보내실 줄은 몰랐어.’
결과야 어떻게 되었든, 비도를 얻는 과정이 협박이었기에 대단한 물건까지는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르고스가 보낸 이 비도는 제천검이나, 진혼검에도 그리 밀리지 않는 수준의 무기였다.
‘그것도 두 개나.’
비도를 세트로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하나로도 만족스러웠다.
두 개나 보낸 것을 보면 보르고스도 무리했을 게 분명했다.
-이 호구 똥자루 놈이!
라스가 본인의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이를 바득 갈았다.
-네놈에게 실컷 당해놓고서 이런 무기를 왜 만들어준단 말이냐! 이해할 수가 없느니라!
‘장인의 자존심 때문이겠지.’
보르고스는 발칸이 만든 제천검과 쿠베러드의 진혼검을 보고 경쟁심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그 두 검을 보여준 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잘 먹혔던 것 같다.
-정말 이상하느니라! 왜 네놈의 주변에는 호구가 끊이질 않는 것이냐! 파리가 똥을 쫓듯이 네놈에게만 달라붙느니라!
‘글쎄….’
라온이 분노에 떠는 라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호구의 화신이 붙어 있기 때문일지 모르지.
전생에는 이용하려는 놈만 붙었는데, 이번 생에는 어떻게든 퍼주려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전부 다 저 호구의 마왕 덕분인 것 같았다.
고맙다. 호구의 군주.
라온은 둥실 뜬 채로 불평을 내뱉는 라스에게 미소를 지었다.
“대단한 물건이로구나.”
도괴가 비도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예. 보르고스 님이 힘을 좀 써주신 듯합니다.”
“장인들은 자존심 때문에 대충 만드는 법이 없으니까.”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나무 상자 안에 있던 종이를 건네주었다.
라온이 그 종이를 받아서 펴보았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비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천살비….”
보르고스는 이 살기 짙은 비도에 하늘을 죽인다는 뜻의 섬뜩한 이름을 지어놓았다.
“무서운 이름이네요.”
“그 드워프는 예전부터 독한 이름을 짓기로 유명했다.”
도괴는 원래 그런 난쟁이라며 손을 저었다.
라온은 보르고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천살비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잘 쓰겠습니다.’
두 개의 비도를 품에 넣었다. 몸과 하나가 된 듯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라온은 비도를 넣어둔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하나 남았군.’
* * *
라온은 광풍단의 훈련을 모두 끝낸 뒤 새벽이 되어서야 별관으로 돌아왔다.
똑똑똑.
샤워를 끝낸 뒤 침대에 걸터앉아서 배고프다는 라스의 투정을 들어주고 있을 때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들어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주디엘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뚜껑이 덮인 접시를 내려놓고, 치마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아리안 가문과 죽음의 늪에 대해 정리한 자료입니다.”
새로운 임무가 내려왔다고 말만 했는데, 그 사이에 자료를 정리해서 책자로 만들어서 온 것 같았다.
“고마워.”
“아닙니다.”
주디엘은 고개를 젓고서 테이블에 올려 둔 접시의 뚜껑을 열었다.
햄과 치즈, 스크램블을 한 계란을 빵 사이에 끼워놓은 에그 샌드위치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식사를 거르셨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편하게 먹으라며 뚜껑을 옆에 내려놓았다.
-역시 정보 소녀! 간식 하나는 잘 챙기느니라!
라스는 이 정도라면 부하로 받아줘도 될 것 같다며 히죽였다.
-식기 전에 빨리 먹거라!
녀석은 당장 입에 물라면서 어깨를 작은북처럼 두드렸다.
‘보채지 좀 마.’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버터로 구운 바삭한 빵과 짭짤한 햄과 치즈 그리고 고소한 계란 스크램블이 어우러져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맛나느니라! 결정했다! 오늘부터 정보 소녀도 본왕의 부하로 삼겠느니라!
‘네. 네. 마음대로 하세요.’
라온은 라스가 제멋대로 놀게 놔두고 책자를 펼쳤다.
“음?”
검대 하나에 대주도 마스터 초입이라고?
아리안 가문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최고수가 마스터 초입이고, 검대도 하나밖에 없을 줄은 몰랐다.
예상 이상으로 약한 가문이었다.
“본래 아리안은 무력으로 이름 높은 가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슬리온에게도 밀리지 않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죠.”
주디엘은 이쪽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리안 가문이 지키고 있는 죽음의 늪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허약한 좀비와 스켈레톤 수준이다 보니 그들은 점차 무학 수련을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또, 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늪지 포도를 재배하고 있기에 돈이 부족하지 않아서 그들은 오랜 기간 나태한 생활을 해왔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라온이 차게 웃었다. 보지 않았어도 아리안 가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죽음의 늪은 좀비와 스켈레톤만 나오는 건가?”
“수백 년 전 그 늪지에서 태어난 아크 리치가 전쟁을 일으켰다가 지그하르트와 아리안에게 멸절당한 이후로는 좀비 수준의 언데드만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디엘은 이 짧은 시간에 모든 정보를 파악했는지,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책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불의 고리 덕분에 한 번을 읽어도 모든 내용이 머리에 박혔다.
“그럼 이 웬디라는 검사는 이 와중에 마스터를 찍은 건가?”
“지금 아리안 가문을 짊어지는 무인이죠. 실권은 약하지만, 그곳의 주민들이 가장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리안에 가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좀 보이네.”
주디엘이 워낙에 상세하게 조사를 해준 덕분에 아리안 가문에 가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그려졌다.
“요즘 중무전이나 진무전은 어때?”
책자를 주디엘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실적을 쌓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실적?”
“예.”
주디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풍단을 필두로 방계와 외부 인원들이 쌓은 실적에 위기를 느낀 건지 여러 임무를 빠르게 해결하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직계들이 조금씩 위협을 느끼는 것 같다며 옅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건 마음에 드네.”
자기들이 가주라도 된 듯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던 직계들이 바쁘게 움직인다고 하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직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은 케인과 트레빈 그리고 마르타의 아버지인 데니어뿐이었기에 더욱 고생하기를 바랐다.
“다른 내용은 없지?”
“이건 암시장에서 건너온 정보인데….”
주디엘이 책자를 다시 치마에 숨기고, 손을 내렸다.
“해적왕이라는 남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해적왕?”
“대륙의 해역을 모두 다녀왔다며 스스로를 해적왕이라 칭하는데, 무력이 보통이 아니라, 많은 세력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왕이라….”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는 자는 많지만, 남에게 인정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나름 실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쪽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어.”
“그럼 편히 쉬시길.”
“정보 고마워.”
“아닙니다.”
주디엘이 고개를 꾸벅이고서 방을 떠났다.
“자칭 해적왕이라.”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에는 흥미로운 일이 끊이질 않네.”
-해적왕이고 나발이고! 밥 먹다가 드럼 치지 말고! 샌드위치나 처먹으란 말이다!
* * *
황록색 늪이 지배하는 대지 위로 회색 성벽이 우뚝 솟아 있다.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름의 조화를 이룬 이 땅이 바로 아리안 가문과 죽음의 늪이었다.
성벽 위에는 활을 매고 있는 궁수들이 있었는데, 술이라도 한잔 걸친 것처럼 다들 눈빛이 탁했다.
궁수들이 지루함에 하품을 하고 있을 때 성벽 위로 작업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허리에 안전줄을 묶은 뒤 성벽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터억!
작업자들은 안전줄을 이용하여 성벽을 걸어 다니며 오래되어서 깨지고, 망가진 부분에 진흙을 바르고 돌조각을 끼워 넣었다.
“아, 귀찮네.”
“그러니까. 하급 언데드뿐인데, 왜 이런 일을 시키시는지 모르겠다니까.”
“어차피 좀비들은 성벽 근처에도 못 오잖아.”
“웬디 님은 진짜 걱정이 많아서 탈이야.”
“대충해. 대충. 겉만 깔끔해 보이게.”
그들은 성벽 보수를 하는데, 불만이 있는 듯 입을 쭉 내밀며 안쪽은 대충 채우고 겉만 깔끔하게 다졌다.
보수할 곳이 많았지만 워낙에 대충 작업을 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작업이 끝났다.
중년 작업자들이 성벽 위로 올라가고 가장 어린 청년이 마지막 확인을 할 때 늪지에서 작은 울림이 일어났다.
“음?”
청년은 뒤를 돌아보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좀비네.”
살점이 녹아내린 시체 한 구가 느릿하게 걸어서 성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알텔 형!”
그가 성벽 위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하품하던 궁수의 머리가 나타났다.
“너무 노는 거 아니에요? 좀비가 오고 있다구요!”
“아, 미안. 오늘 저녁밥을 생각하고 있었거든.”
알텔이라 불린 궁수가 입맛을 다시며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는 가볍게 시위를 튕긴 뒤 확인조차 안 하고 등을 돌렸다.
파아앙!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좀비의 머리를 뚫고 늪지에 박혔다.
하지만 좀비는 잠시 비틀거렸을 뿐 쓰러지지 않은 채 다시 성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
“알텔 형!”
젊은 작업자는 인상을 찌푸리고서 다시 위를 향해 소리쳤다.
“이제 활도 못 쏴요? 쟤 안 죽었어요!”
“어?”
알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활을 들었다.
“분명 맞췄는데?”
안 맞을 수 없는 궤도로 날아갔는데, 저 좀비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다시 활을 걸어서 좀비의 이마 정중앙을 노린 뒤 시위를 튕겼다.
뻐어어어억!
머리 중앙에 활을 맞은 좀비가 그대로 늪지에 처박혀 가라앉았다.
“귀찮게 하고 있어.”
“처음부터 맞췄으면 됐잖아요.”
“아니, 맞췄다니까! 저 좀비가 이상했던 거야!”
“흐음….”
“진짜라고!”
알켈이 고개를 젓다가 성벽을 손으로 짚었다.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저녁에 맥주 한잔 어때?”
“형이 쏘는 거예요?”
“난 이번 달 월급 다 날려서 없어. 네가 쏴야지.”
“그게 뭐예요!”
두 사람이 가벼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조금 전 좀비가 가라앉은 늪지에서 시퍼런 안광이 돋아났다.
그 안광은 어둠 속에서 아리안 가문의 모든 것을 살피듯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
* * *
라온이 출발 준비를 마치고 별관을 나섰다.
실비아와 시녀들은 정원에 원을 그리고 서 있었는데, 그 중심에 유아와 율리우스가 있었다.
“유아야. 어딜 가든 밥은 잘 차려 먹어야 해.”
“육포 말려놨으니까. 다 가져가.”
“요리 재료도 모두 챙겼지?”
“선배들한테 인사 잘하고.”
시녀들은 친동생처럼 여겼던 유아를 걱정하며 이것저것 다 챙겨주었다. 어느새 그녀의 배낭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언니들 고마워요!”
유아는 본인보다 더 큰 배낭을 들쳐 맨 채 방실거리며 웃었다. 시녀 한 명 한 명을 꼭 끌어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항상 주변을 살펴.”
“네가 막내니까. 작업을 할 때는 선배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해.”
“너 벌레에 많이 물리잖아. 노숙할 때는 꼭 벌레 퇴치 향을 켜.”
“전투가 벌어지면 뒤에서 다른 선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행동하렴.”
시녀들은 율리우스에게 겉옷을 입혀주면서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별관의 명예를 드높이고 오겠습니다!”
율리우스는 벌써 기사라도 된 듯 가슴을 쿵 두드리고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우, 이 귀여운 것들!”
“아직 가기엔 이른 것 같은데!”
“1년만 더 여기 있자! 응?”
시녀들은 동생처럼 키운 아이들이 위험한 곳에 간다는 걱정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 위험한 곳이 아니라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
실비아가 유아와 율리우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었다.
“위험할 때는 라온 뒤에 숨으렴.”
“네에!”
“검사된 자로서 은인의 뒤에 숨을 수는 없습니다!”
유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율리우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창하네.”
라온은 피식 웃으며 유아와 율리우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만 실비아와 헬렌, 시녀들은 그에게 자그마한 관심도 주지 않고 유아와 율리우스만 챙겼다.
“음식은 아무리 챙겨도 모자라지 않… 음?”
실비아가 두 사람의 가방을 확인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왔니?”
그걸로 끝. 그녀는 계속 유아와 율리우스의 상태와 짐을 확인했다.
“시간이 됐나 보네.”
“잘 다녀오렴.”
“계속 말하지만, 위험하면 도망치렴!”
시녀들도 라온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유아와 율리우스만을 챙겼다.
라온이 어색하게 선 채로 쩝 입맛을 다셨다.
‘이거 조금….’
평소에 실비아와 시녀들이 신경을 써주면 민망해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예 관심을 주지 않으니 조금 가슴이 무거워졌다.
-귀찮은 놈이니라.
라스는 요상한 성격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도련님!”
“다 끝났습니다!”
유아와 율리우스가 시녀들과 인사를 마치고 다가왔다.
“…가자.”
“라온! 유아랑 율리우스 잘 챙겨!”
“도련님. 애들 잘 부탁해요!”
“밥 잘 먹여야 해요!”
실비아와 시녀들은 갈 때까지 유아와 율리우스만 걱정했다.
“걱정 마.”
라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연무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두 아이는 뒤에서 재잘거리며 따라왔다.
이번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 받고 간다고 생각할 때 뒤에서 실비아와 시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온! 너도 조심해! 절대 무리하지 마!”
“유아야! 도련님 밥 잘 드시나 확인해!”
“율리우스. 도련님 너무 수련만 하지 못하게 하고!”
이번에는 두 아이가 아니라 라온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었다.
“다녀올게요.”
라온은 슬쩍 뒤를 돌아서 조금 전보다 훨씬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5연무장으로 향했다.
-지이이인짜 귀찮은 놈이니라….
라스는 라온의 뒤통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라온은 유아와 율리우스에게 여행에서의 주의점을 다시 알려주며 5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연무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단상 앞에 정렬해 있는 광풍단의 모습이 보였다.
유아와 율리우스를 맨 뒤로 보내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라온이 단상의 끝에 서서 광풍단을 굽어보았다.
“준비는 다 끝난 모양이네.”
단원들의 눈빛이 잘 갈린 칼날처럼 날카롭다. 육체와 기술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제대로 가다듬은 모습이었다.
“그리 어려운 임무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상은 모르는 법이다. 광견단에 방심하는 멍청이는 없다. 언제나 전력을 다하도록.”
“예!”
광풍단은 연무장이 뒤흔들릴 정도로 우렁찬 기합을 질렀다.
라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광견단이 아니라, 광견대로 불리게 될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광풍단은 이번에도 우렁찬 함성을 터트렸다.
“오오오! 광견… 어?”
버렌은 뻘게진 얼굴로 소리를 지르다 말고 멈춰 섰다.
‘다들 이상한 걸 못느끼는 건가?’
라온이 분명 두 번이나 광견이라고 말했음에도 검사들은 환호만을 질렀다.
“이런 미친!”
그가 턱을 치켜들며 눈을 부라렸다.
“광견이 아니라, 광풍이라고!”
왜 자꾸 미친개를 못 만들어서 안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