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7화
라온이 은은한 미소를 짓는 로엔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드디어 온 건가.’
첫 번째 시험이었던 철전대와의 단체전이 끝난 뒤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데, 이제야 두 번째 시험이 정해진 것 같았다.
‘오래도 걸렸군.’
본래라면 한 달 안쪽으로 시험이 정해졌어야 하지만, 이쪽을 노리는 흑탑이나, 폐관에서 나오지 않는 리메르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어진 것 같았다.
-지루했지만, 또 행복했느니라.
라스는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온 볼을 만지며 히죽거렸다. 유아와 헬렌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영체 상태임에도 살이 찐 상태였다.
“혹시 어떤 시험인지 알고 계십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로엔은 평소와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다. 암살자답게 이 가문에서 가장 표정을 읽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잘 따라가고 있습니까?”
로엔이 절벽의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로엔 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에 배우는 게 빠르더군요.”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에 든 비도를 던졌다. 빛살처럼 쏘아진 비도가 우측에서 올라오던 마르타의 어깨를 노렸다.
“제기랄!”
마르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팔과 다리를 동시에 밀어 절벽을 박찼다. 짐승처럼 몸을 튕겨 비도를 피하려 했겠지만, 이미 예상하던 움직임이었다.
뻐어어억!
비도의 궤도가 유연하게 회전하며 다시 절벽을 붙잡으려던 마르타의 허리를 후려쳤다.
“끄으윽!”
하지만 마르타는 비도를 얻어맞았음에도 절벽에 박아놓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강인한 인내심이었다.
‘이제 잘 버티네.’
마르타는 조장답게 비도 한 번으로는 쓰러지지 않는 체력과 정신력을 키웠다. 대견하면서도 조금은 섬뜩했다.
“비도술이 능숙해지셨군요.”
로엔이 옆으로 다가오며 미소를 지었다.
“계속 연습해 왔으니까요.”
“제가 조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경청하겠습니다.”
로엔은 살왕이라는 이명을 가졌던 암살자다. 비도술에도 일가견이 있을 테니, 귀를 세웠다.
“부단주님은 지금 팔 위주로 비도를 날리고 계십니다. 어깨에서부터 손끝까지. 몸 전체를 이용해서 던진다면 비도가 더 강하고,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로엔은 직접 비도를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깨에서부터 손끝까지….”
라온이 로엔의 손짓을 떠올리며 무결비의 구결을 읊조렸다.
조금 전과 같은 수준의 오러를 칼날에 담은 채 로엔의 조언을 발판 삼아 비도를 쏘아냈다.
자그마한 소리도 없이 내려간 비도가 마르타를 향해 쇄도했다.
뻐어어억!
마르타는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오른팔에 비도를 얻어맞고,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난이도를 올리면 어떻게 해! 이 빌어먹을 자식아아아아아!”
그녀는 항상 그렇듯 축복을 해주고 사라졌다.
“아, 미안.”
라온은 마르타에게 손을 흔들며 로엔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달라지는군요. 감사합니다.”
“잠시 잊고 계신 기본을 되새겨 드렸을 뿐입니다.”
“그게 중요한 거죠. 저 아이들이 빠르게 성장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한참 아래에 있는 유아와 율리우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아는 재능이 뛰어난 것을 떠나 모든 일을 즐기더군요. 성격 자체가 가장 훌륭한 재능입니다.”
유아는 아무리 힘든 수련을 시켜도 웃으며 끝내고, 주변의 사람들마저 미소 짓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리듬감과 상대를 보는 눈이 좋아서 감각검을 익히기에 제격이었다.
-커험! 괜히 본왕의 파인애플 소녀가 아니니라!
요 솜사탕은 아무것도 안 해주고서 왜 잘난 척인지 모르겠다.
“율리우스는 딱딱한 성격과 달리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본래라면 할 수 없는 일도 유아를 라이벌 삼아서 어떻게든 완수하더군요.”
재능만 따지면 유아가 조금 위였지만, 율리우스는 지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성격답게 어떻게든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딱딱하면서도 체계적인 정검에 어울리는 재능이었다.
“둘 다 재밌는 녀석들이에요.”
“허허허.”
로엔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인자한 웃음을 흘렸다.
“제대로 보고 계셨군요. 리메르 님이 아니라, 부단주님이 오셨을 때 보낸 보람이 있습니다.”
“제가 데리고 왔으니, 당연히 책임을 져야죠.”
유아와 율리우스만이 아니라, 암살자로 키워진 그 아이들까지 모두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바쁘지 않으실 때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로엔이 유아와 율리우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가실… 음?”
그는 뒤를 돌려다가 정상에 가장 가까이 올라온 마크 괴튼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착각인가? 아니, 달라졌어.’
마스터 하급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박혀 있던 마크 괴튼의 경지가 아주 조금이지만 상승해 있었다.
“…성장했군요.”
“역시 알아보시네요.”
라온이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지만 위로 올라왔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높이 가겠죠.”
“대단하군요.”
뒤늦게 발동이 걸린 마크 괴튼도, 그를 그렇게 만든 라온에게도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
아디스 세피아와 글렌이 했던 말이 이제야 와 닿는다.
라온 지그하르트라는 사람은 정말 다른 사람의 삶에 거대하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안쓰러웠고, 지금은 그저 대견하다고 생각했던 라온이 갑자기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거대한 그릇이 눈에 비치는 느낌이었다.
‘이런 아이가 이 가문의 가주가 된다면….’
* * *
라온은 로엔에게 광풍단의 훈련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뒤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알현실 전체에 깔려 있는 서늘한 냉기를 가르고 중앙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불필요한 인사는 됐다. 일어나라.”
글렌은 파리를 쫓듯이 손을 저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고개를 숙이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 미친 수련은 계속하고 있나 보구나.”
우측에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던 넝마의 성자 페드릭이 손을 흔들었다.
“미친 게 아니라 조금 힘들 뿐입니다.”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광풍부단주.”
글렌은 라온과 페드릭의 대화를 끊듯이 묵직한 음성을 흘렸다.
“광풍단주가 아직 폐관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너를 불렀다.
“예.”
라온이 시선을 내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는 하네.’
리메르는 철전대와의 대련 이후 갑자기 폐관 수련을 하겠다고 본관 뒤편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3일도 지나지 않고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3달이 넘도록 나오지 않아 모두가 경악하는 중이었다.
“본래라면 광풍단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지만, 언제까지 두 번째 시험을 미룰 수도 없는 일이지.”
글렌은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턱을 들었다.
“지금의 광풍단으로 두 번째 시험을 치르도록.”
“알겠습니다.”
이곳에 부를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험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실제 가문의 임무 중 하나를 내려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볼 것이다.”
‘역시.’
라온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예전에 도괴가 말해주었던 방식과 똑같았다.
“아리안 가문에 대해 알고 있나?”
“지그하르트 봉신 가문 중 하나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아리안은 지그하르트와 시작을 같이 한 가문으로 지금까지 죽음의 늪이라 불리는 곳을 막아내고 있다.”
“죽음의 늪….”
죽음의 늪이라고 말을 하니 생각난다. 아리안 가문은 지그하르트의 영역에서 서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하급 언데드들이 나오는 죽음의 늪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죽음의 늪?
라스가 팔찌 위로 올라오며 입맛을 다셨다.
-꽤 거창한 이름이구나. 마음에 드느니라.
‘실제로 보면 별로일걸.’
죽음의 늪이라는 오싹한 이름을 가졌지만, 실제로 나오는 몬스터는 좀비나, 스켈레톤 같은 하급 몬스터들뿐이었다.
아리안 가문도 딱히 무력으로 이름 높은 곳이 아니었다.
-시시하느니라!
라스는 김이 샜다며 다시 팔찌로 들어갔다.
“이번에 그 아리안 가문에서 연락이 왔다.”
“어떤….”
“언데드 몬스터들의 개체가 늘어나고, 늪지의 수위가 높아졌다고 하더군. 원인 파악을 위해 검사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렇게까지 듣자 글렌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예측이 되었다.
“죽음의 늪에 가서 언데드의 개체가 늘어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게 광풍단에 주어진 두 번째 시험이다.”
글렌이 주먹으로 턱을 괴며 눈썹을 내렸다.
“못할 것 같다면 지금 말하도록.”
‘배려해 주신 건가?’
리메르도 없고, 철전대와의 전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두 번째 시험은 상대적으로 쉬운 것으로 배려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선택권 따위는 없다. 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나가야 할 길이었다.
“이번 임무는 가문의 지원 없이 광풍단의 힘만으로 해결해야 한다.”
글렌이 시선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아리안 가문을 지키기에 광풍단의 힘이 모자라서 가문에 지원을 요청한다면 그 순간 임무는 종료다.”
“알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었기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출발은 언제입니까?”
“그것도 네 자유다.”
“예?”
“대는 단보다 임무에 대한 자유도가 높지. 언제 출발하든 임무만 완수하면 그만이다.”
“음….”
자유가 많다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더 큰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었으니까.
‘조심해야겠어.’
아무래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과 계획을 짜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숙인 후 글렌을 바라보았다. 돌아가라고 할 줄 알았지만, 그는 눈매를 좁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예.”
“…혹시 술을 좋아하나?”
“예? 어….”
글렌에게서 나올 줄 몰랐던 질문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무슨 뜻이시지?’
왜 술을 좋아하냐고 묻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술이라….’
전생에서는 당연히 먹을 수가 없었고, 현생에서도 딱히 즐기지 않았다.
먹었던 건 두 번인데, 도괴와는 내기였고, 제대로 마셨다고 할 건 리메르가 처음이었다.
“일단 못 먹는 편은 아닌데….”
“음.”
라온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훈풍이 불어온 듯 알현실의 냉기가 살짝 녹아내렸다.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무인으로서 술을 멀리하는 게 맞는 답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금 부드러워진 분위기가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뭐지?’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
“…….”
글렌과 말없이 눈을 마주치는데 점점 더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럼 리….”
“예?”
“아니다.”
그가 건조해진 눈동자로 고개를 저었다.
“가보도록.”
“예….”
라온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뒤 알현실을 나섰다.
‘갑자기 술이라니, 무슨 생각이신 거지?’
턱을 긁적이며 머리를 굴려보았다.
‘가주님이 술을 좋아하시는 건가?’
-멍청한 녀석! 그게 아니니라!
라스가 팔찌 위로 나오며 코웃음을 쳤다.
-저 냉정한 영감이 갑자기 술에 대해 묻는다면 뻔한 것 아니더냐!
‘뻔해?’
-그렇느니라! 그 근처에서 맛난 술과 안주를 사오라는 뜻이니라!
녀석은 그것도 모르냐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본왕이 가장 맛있는 안주가 무엇인지를 찾아줄 테니, 일단 그곳의 유명 식당부터 들리는 게….
‘좀 가라.’
* * *
글렌은 라온이 서 있던 알현실 중앙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술을 안 좋아한다고?’
도괴와의 술자리는 내기였으니 무효, 리메르는 스승이라고 치고, 다음 술자리만큼은 함께 하고 싶었는데,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럴 거면 리메르랑도 술잔을 부딪치지 말았어야지….’
소중한 손자가 그 엘프 놈의 꾐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당장 ‘그 동굴’에 들어가서 리메르의 귀를 뽑고 싶었다.
우드드득!
힘 조절이 되질 않아 옥좌의 팔걸이가 뭉개지고, 허공에 붉은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후욱….”
“나참.”
글렌이 억지로 호흡을 고를 때 페드릭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싶으면 직접 말을 하던가.”
페드릭은 인상을 찌푸리는 글렌을 보며 혀를 찼다.
“맨날 구박만 하는데, 라온이 돌려 말하는 걸 이해하겠냐고.”
글렌이 평소부터 잘해줬다면 라온도 술자리를 하자는 말로 이해했겠지만, 볼 때마다 무섭게 짓누르는 사람이 술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니 어떤 뜻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커험!”
글렌이 헛기침을 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그, 그게 아니네. 본래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하는 법인데, 술고래인 도괴나, 날라리인 리메르와 마셨으니 조금 걱정이 되었을 뿐이야. 별 관심은 없어!”
그는 별거 아니라면 빠르게 손을 저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해. 둘 다 술을 배우기 좋은 어른들은 아니지.”
페드릭이 그건 맞는 말이라며 턱수염을 쓸어 내렸다.
“그럼 내가 라온하고 술자리 한 번 만들어볼까?”
“저, 정말인가!”
글렌은 관심이 없다고 한 것과 달리 목을 기린처럼 쭉 뺐다.
“그래.”
“출발 전에 말인가?”
“임무 준비로 바쁠 테니, 그건 힘들지. 돌아오는 대로 준비해보겠네.”
“크흠! 그, 그렇지.”
글렌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단상을 내려가 이전에 아디스와 술을 마셨던 방으로 향했다.
“흐음….”
그는 낮은 콧노래를 부르며 술들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첫술은 역시 이게. 아니, 이놈이 조금 더 부드럽지. 아냐. 최고급으로….”
라온과 함께 마실 술을 찾는 그의 얼굴에는 살짝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정말이지….”
페드릭은 그 모습을 보며 허허 웃었다.
“저런 손주 바보는 처음 보는구만.”
* * *
라온은 바로 아리안 가문으로 출발하지 않고, 수영장이 딸린 실내 훈련장에서 광풍단에게 늪지를 걷는 법을 가르쳤다.
죽음의 늪에 도착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해가는 게 옳았다.
“늪지를 걷는 요령은 물 위를 걸을 때와 비슷해. 발에서 발출하는 오러와 물의 흐름을 동일하게 만들어서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거야.”
“그, 그게 말처럼 쉽냐….”
버렌이 물에 빠진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익스퍼트 급에서 물 위를 걷는 건 너나 가능한 일이라고!”
마르타가 분한 것처럼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물 기분 좋아….”
루난은 발로 물을 밟는 게 아니라, 배영을 하면서 코로롱 잠에 빠졌다.
“헤헤!”
“야! 실례잖아!”
유아는 아예 헤엄을 치면서 놀고 있었고, 율리우스는 그녀를 말리느라 바빴다.
“주목.”
라온이 손뼉을 쳐서 광풍단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너희 말대로 물 위를 걷는 건 마스터급이나 가능한 일이지. 다만 늪지는 물과 모래가 섞여 있어서 너희도 충분히 걸을 수 있어.”
늪지는 잠겨 드는 시간이 물보다 느리기에 지금 광풍단 수준이라면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전부 다시 시작.”
광풍단 검사들에게 훈련 지시를 내린 후 뒤로 물러섰다. 전부 실력이 상승했기 때문인지 외부의 기운을 느끼며 전보다 조금 더 오래 버티다가 물에 빠졌다.
‘사흘 정도 수련하면 늪지에서 버틸 수 있겠어.’
조금만 더 수련한다면 늪지를 걷는 건 충분해 보였다.
‘마크 경은 원래부터 할 수 있었고.’
마스터인 마크 괴튼은 당연히 물 위를 걸을 수 있었기에 늪지 정도라면 땅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다음 주에는 출발해도 되겠군.’
라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훈련을 지시하려고 할 때 훈련장으로 도괴가 들어왔다.
“너와 주머니 앞으로 온 물건이다.”
그가 가지고 온 목제 상자 두 개를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상자의 겉면에 새겨진 두 자루의 회색 망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회색 망치 길드의 장인 보르고스와 그의 수제자가 보낸 선물이었다.
“도리안!”
라온은 물에 거꾸로 꽂혀 있는 도리안에게 손짓을 하고서 첫 번째 상자를 열었다.
도리안이 주문한 대로 묵직한 형태의 검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부르셨어요?”
도리안이 헥헥거리며 다가왔다.
“네 검이다.”
그에게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검을 건네주었다.
“오! 오오오!”
도리안이 바로 검을 뽑았다. 수영장의 물처럼 푸른빛이 흐르는 검이 강렬한 예기를 뿜어냈다.
“무겁고 손에 딱 맞아요! 근데 검이 좀 차가운 느낌인데….”
“네 느낌이 맞아. 우리가 잡은 드레이크가 냉기를 지니고 있었잖아.”
본래 속성이 있는 몬스터를 재료로 무구를 만들면 그 속성이 깃들기 마련이다. 도리안의 검에도 꽤 강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내가 아니라, 회색 망치 길드에 감사하다고 해야지.”
“이 검을 받은 게 부단주님 때문이잖아요!”
도리안은 다시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했다.
“괜찮다니까. 나중에 연락이나…음?”
라온이 두 번째 상자를 열다가 멈춰 섰다. 그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부풀었다.
‘이건….’
상자 안에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비도가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