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86화 (386/653)

제386화

라온은 손을 흔드는 어린 고슴도치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슴도치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인데….’

지그하르트는 사계절이 겨울이지만, 지금은 그중에서도 가장 추운 시기다.

야생의 고슴도치라면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땅속에서 자고 있을 때이기에 저리 웃는 낯으로 손은 흔드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무슨 생각이 그리 깊은 것이냐!

라스는 고슴도치가 헤죽 웃는 모습을 보며 턱을 덜덜 떨었다.

-뻔하지 않느냐! 그 광녀이니라!

녀석은 무섭다고 중얼거리며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얼음꽃 팔찌로 들어갔다.

‘나도 알고 있어….’

저 고슴도치 안에 누가 있는지 당연히 알고 있지만, 혹시나 진짜 고슴도치이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을 뿐이었다.

“후….”

라온이 한숨을 푹 내쉬고서 고슴도치와 눈을 마주쳤다.

“멀린?”

“응!”

고슴도치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따위는 없었다.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 온 거야.”

“어제 대결 잘 봤어.”

역시나 멀린. 그녀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었다.

“상황이 꼬여도 당황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난관을 헤쳐 가는 모습이 정말 멋졌어!”

멀린이 잘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고슴도치로 저 자세가 된다는 게 놀라웠다.

“그걸 다 봤다고?”

라온이 입을 떡 벌렸다.

‘가주님도 계셨는데?’

어제 전투를 치렀던 시가지 훈련장에는 글렌이 있었다. 언제 잡혀서 죽을지 모르는데, 그걸 끝까지 지켜본 배짱에 헛웃음이 나왔다.

“네가 지시를 내리며 싸우는 모습은 수명을 갈아 넣어서라도 봐야지.”

멀린은 몸을 배배 꼬며 우후후 웃었다.

-그, 그야말로 광녀이니라….

‘미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멀린에게 저 말은 농담이 아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읏차.”

멀린이 나무에서 내려와 슬금슬금 기어 왔다. 고슴도치의 육체를 그대로 쓰기에 느렸지만, 거리가 가까워 어느새 발밑에 닿아 있었다.

“해줄 말이 있어. 날 들어줘.”

“가시가 있잖아.”

“가시를 안 세우면 괜찮아. 아, 옆구리는 만지지 말아줘. 민망하거든.”

그녀는 옆구리 살이 잡히는 건 부끄럽다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하….”

미치겠네.

고슴도치의 모습으로 나타난 주제에 뭐가 부끄럽다고 몸을 꼬는지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정보를 가져온 건 분명해 보여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라온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서 멀린을 들었다. 그녀가 조종하는 건지 가시가 살짝 안쪽으로 말렸다.

“거봐. 안 아프지?”

멀린은 그것 보라며 작은 손을 흔들었다. 광녀가 들어간 것만 아니었다면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할 말이 뭔데.”

“흑탑에서 널 포착했어.”

그녀는 그 귀여운 외모와 달리 서늘한 음성을 흘렸다.

“포착?”

라온이 멀린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놈들도 내가 흑수장을 처치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건 알고만 있던 거고. 지금부터는 널 제거할 대상으로 정했다는 거야.”

멀린의 깜깜한 눈동자에 푸른빛이 스며들었다.

“흑탑은 은밀하면서도 끈질겨. 저층이라고 해도 흑탑의 층주 중 하나를 쓰러트렸으니, 널 연구한 뒤 더 강한 자를 보낼 게 분명해.”

“그렇겠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지독하니까.’

흑탑은 어둠의 기운을 쓰는 놈들답게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복수하러 올 게 분명했다.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비연회와 암시장도 흑탑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는데, 멀린에게 먼저 정보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잠입했거든.”

멀린은 동그란 코를 긁적이며 헤헤 웃었다.

‘잠입?’

지금 잠입이라고 한 건가?

에덴의 간부가 흑탑에 잠입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설마 나 때문에?”

“당연하지.”

“왜 잠입까지 해서….”

“네가 걱정되니까.”

멀린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녀의 말을 들을 때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고마우면서도 오싹했다.

-허억….

라스가 어이없다는 듯 팔찌 속에서 신음을 뱉었다.

“에덴도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멀린은 요즘 타천이 혼자 돌아다닌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도 잘 모른다고?”

“날 조금 의심하는 건지 타천이 직접 일을 처리하고, 자잘한 임무만 내어주고 있어.”

“의심?”

“네가 내 목표였으니까. 선이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역시 똑똑하다니까.”

그녀는 아직 들킨 건 아니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일단 의심부터 풀어야 해서 앞으로는 조심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멀린이 작은 손을 흔들었다.

“흑탑이나, 에덴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으면 다시 찾아올게. 그때까지 몸조심해.”

그녀는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며 작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알려줘서 고맙….”

“이 아이에겐 지렁이 스무 마리를 줘.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멀린은 고슴도치의 눈으로 윙크를 한 채 사라졌다.

“자, 잠깐! 지금 여기서 지렁이를 어떻게 구해!”

끽?

손바닥에 안겨 있던 고슴도치가 네 발로 선 채로 이쪽을 본다. 눈매를 좁히는 모습이 빨리 먹이를 내놓으라는 뜻 같았다.

“아….”

라온이 손에 고슴도치를 든 채 입술을 떨었다.

“지금 어디서 지렁이를….”

지그하르트 내부에서 멀린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아공간 주머니도 텅텅 빈 상태였다.

키이익!

고슴도치는 빨리 내놓으라는 듯 울음소리를 높이며 가시를 세웠다.

-무얼 하는 것이냐! 약속했으면 지켜야지! 빨리 땅이라도 파!

‘내가 약속 안 했다고….’

라온은 한숨을 내쉬고서 설화의 감각을 운용하여 주변에 있는 벌레나 지렁이를 탐색했다. 솔직히 거의 느껴지는 게 없었다.

“스, 스무 마리 말고, 열 마리만 하면 안 될….”

끼이이익!

“알겠다. 알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아주 미세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맨손으로 파기 시작했다.

-본왕은 저 광녀가 무섭지만….

라스가 옆으로 다가와 낄낄 웃어댔다.

-네놈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없이 즐겁느니라!

‘시끄럽고, 너도 빨리 지렁이나 찾아. 벌레 먹어버리기 전에.’

-끄엑….

*     *      *

라온은 간신히 지렁이를 스무 마리 찾아주고, 잠을 잘 수 있는 구멍까지 파주고 나서야 고슴도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녀석은 만족한 얼굴로 따봉을 날리고서 겨울잠에 빠졌다.

‘지쳤다.’

-배고프니라….

함께 지렁이를 찾은 라스가 팔뚝 위로 축 늘어졌다.

-집에 가자마자 밥부터 먹자꾸나.

‘자고 일어나서.’

-먹고 일어나라.

‘그건 무슨 말이야….’

-일단 먹자는 뜻이니라!

‘다들 자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방 창문을 넘으려고 할 때 별관의 문이 열렸다.

“라온. 이쪽으로 와.”

문에서 나온 실비아가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실비아에게 다가갔다.

“안 주무셨어요?”

“나이 들면 아침잠이 줄어들거든.”

실비아는 조금 전에 일어났다며 웃었다.

“그래도 조금 더 주무시지….”

“한 번 눈 뜨면 잠이 잘 안 와. 근데….”

그녀는 먼지로 가득한 손을 잡으며 눈을 흘겼다.

“너 왜 계속 존댓말인데.”

“이제 20살이 넘었잖아요.”

약관을 넘었으니, 존댓말을 쓸 때라고 생각했다.

“됐어.”

실비아가 라온을 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난 아직 네가 어른이 되는 거 별로니까.”

그녀는 아직 어리광 부릴 나이 아니냐며 웃었다.

“그런 나이는 한참 지났죠.”

“하긴 넌 어릴 때부터 애교가 없었으니까.”

“음….”

그건 반박할 말이 없었다. 아기부터 성인의 정신을 가지다 보니 애교와 어리광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한테는 아직도 애긴데.”

실비아가 양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밖에서는 영웅이니, 검룡이니 하면서 우뚝 선 무인으로 여기더구나. 네게 잘 보이려고 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

“그런가요.”

라온이 옅게 웃었다. 실비아를 직계로 올리기 위해서 하는 밑 작업이 잘 먹히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난 전부 거절하고 있고, 신경도 쓰지 않아.”

실비아가 눈을 마주친 채 미소를 지었다.

“엄마를 직계에 올리는 건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렴.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정말 해야 할 일이 있잖아.”

“그걸 어떻게….”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비아에게는 무얼 노리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기에 놀라움이 앞섰다.

“난 네 엄마잖아.”

“아….”

“주디엘이 오늘 당번이니까. 함께 샌드위치라도 만들어 줄게. 씻고 오렴.”

실비아는 손을 흔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저기….”

-엄마 최고이니라!

“….”

*     *      *

라온이 목욕을 하고 방문을 열자, 주디엘이 고개를 숙여왔다.

“오셨습니까.”

그녀는 테이블에 올려둔 샌드위치와 우유를 가리키며 드시라고 말했다.

-저 녀석이 만드는 샌드위치는 나름 괜찮지.

라스의 말대로 주디엘이 만든 샌드위치는 고소하면서도 깔끔해서 맛이 좋았다.

“잘 먹을게.”

라온이 테이블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한입 물었을 때 주디엘이 옆으로 다가왔다.

“도련님이 수련으로 자리를 비우시는 동안 암시장에서 오마에 관한 정보가 도착했습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말씀드릴까요?”

“네가 말해줘.”

주디엘은 정보 관리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재능이 있기에 그녀에게 듣는 게 훨씬 편했다.

“일단 오마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활동한 게 남북맹과 흑탑인데, 그들도 큰 움직임까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육황 회의 때문이겠군.”

“예. 육황의 동맹이 아직 단단하고, 가주님의 무력도 건재하다는 점을 알고 잠시 몸을 숨긴 것 같습니다.”

주디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다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도망치는 게 아니라, 힘을 키우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요.”

“그렇겠지.”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오마는 오랜 시간 동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미치광이들이다. 분명 다른 속셈을 가지고 숨은 게 분명했다.

“흑탑이 움직인 이유는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 정보는….”

“나겠지.”

라온이 주디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뻔하잖아.”

멀린 덕분에 흑탑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네 동생에 관한 정보는?”

“아직은 없습니다.”

“아쉬우면 아쉬운 티를 내도 돼.”

“괜찮습니다.”

주디엘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처럼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에 인형극을 할 때는 연기 잘 했잖아. ‘끄아아아악!’ 하고 실감 나는 비명을….”

“도, 도련님!”

그녀의 얼굴이 처음으로 뻘겋게 물들었다. 그것만큼은 창피했던 모양이다.

“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디엘은 귓불을 빨갛게 물들인 채 방을 나섰다.

-흐으응.

라스는 주디엘이 나간 문을 보며 동그란 빵 주먹에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항상 부하는 챙겨주는 척해야 한다….

‘챙겨주는 척이 아니야.’

-어쨌든 이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로구나. 마계에 본왕만큼 부하를 생각해주는 마왕은 없으니까.

‘그것 좀 안 적으면 안 되냐?’

-어제 말했듯이 네놈이 본왕의 힘을 훔쳐 가고 있으니, 본왕도 뭐 하나는 가져가야 하지 않느냐!

녀석이 절대 공짜는 없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릴 때 메시지가 올라왔다.

[더 높은 경지의 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8포인트 상승합니다.]

[정검과 예검의 성취가 상승합니다.]

트레빈을 상대로 이기면서 능력치와 정검과 예검의 성취가 상승했다는 메시지였다.

‘역시.’

대련 이후 정검과 예검의 묘리를 운용하는 게 더 편해졌는데, 그게 기분 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이걸 왜 또 줘!

라스는 필기하던 동그란 손을 툭 떨어뜨렸다.

‘네가 말했잖아.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고.’

라온이 입술을 덜덜 떠는 라스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강의비야.’

-닥치거라! 강의비는 지금까지 평생 치를 완납했느니라! 이건 사기이니라!

‘그럼 신고하시던가. 할 때가 없겠지만.’

-이 빌어먹을 놈아! 오늘은 못 참겠다!

라스가 오랜만에 폭발을 했고, 그날 근력과 민첩성이 추가로 올랐다.

*     *      *

“흐어억….”

율리우스는 북망산 절벽을 올려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저, 저길 올라가라고?”

미친 거 아니야?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그대로 굴러떨어지게 생긴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라니, 정신 나갔다는 생각만 들었다.

“올라와!”

절벽의 꼭대기에서 라온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늘은 진짜 저거 죽인다.”

“성격 존못 라온….”

“가자!”

광풍단의 조장인 마르타, 루난, 버렌이 솔선수범을 보이듯 먼저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고, 다른 광풍단 검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광풍단은 손목과 발목에 흑환이라는 쇳덩이를 찬 채로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절벽을 기어올랐다.

선배들에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바퀴벌레처럼 민첩했다.

‘저걸 달고 어떻게 저리 빠르지?’

흑환은 무게도 무게지만, 오러를 막아버리는 효과도 있다. 맨몸으로 저리 빠르게 절벽을 오른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우리도 가자!”

함께 광풍단 수습 검사가 된 유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겁도 없는 꼬맹이가….’

유아는 절벽이 겁나지도 않는지 빨리 올라가고 싶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넌 안 무서워?”

“이걸 위해서 3개월 동안 수련했잖아.”

“이걸 위해서가 아니지.”

율리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광풍단과 철전대의 대련 이후 3개월 동안 기초 수련을 했지만 저게 쉽게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끄아아아아악!”

절벽을 오르던 크레인이 차돌 같은 비도에 얻어맞고 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는 재빠르게 흑환을 풀어서 땅에 떨어지기 전에 오러로 몸을 보호했다.

쿠와아아아앙!

크레인이 대지에 처박히며 땅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끄으윽….”

그는 눈동자를 덜덜 떨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라온 이 망할 자식. 왜 맨날 나부터… 꺼헉!”

크레인은 라온의 욕을 중얼거릴 때 어디선가 날아온 돌이 그의 이마를 후려쳤다.

“재밌겠다!”

“으윽….”

유아는 방방 뜨며 즐거워했고, 크레인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걱정하지 마라.”

도괴가 두 아이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은 떨어져도 받아 줄 테니까.”

그는 다른 놈들은 이제 익숙해서 받아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절벽 위에서 광풍단원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빌어먹을!”

“저 미친놈은 왜 비도술이 점점 느는 건데!”

광풍단원들은 라온에게 욕을 뱉거나 비명을 지르며 연달아 땅에 처박혔다.

“가자!”

유아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죽이며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흑환을 착용하지 않았기에 올라가는 속도가 빨랐다.

“끄으응….”

율리우스가 이를 악물고 유아를 따라 절벽에 손을 짚었다.

‘이 녀석에게 질 수는 없어.’

다른 건 몰라도 저 방실이가 라온 님의 칭찬을 독차지하는 건 볼 수가 없다. 공포를 이겨내고 전력을 다해서 절벽을 올랐다.

라온은 뽈뽈거리며 절벽을 오르는 유아와 율리우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하네.’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오러 없이 절벽을 오르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둘 다 나름 잘 오르고 있었다.

‘유아는 즐거움이고, 율리우스는 오기인가.’

유아는 훈련 자체를 즐겼고, 율리우스는 그런 유아에게 지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절벽을 타고 있었다.

‘라이벌이 있다는 건 이게 좋지.’

피식 웃으며 손가락에 끼고 있던 비도를 아래로 내던졌다. 자그마한 파공음도 내지 않고 내려간 비도가 도리안의 이마를 노렸다.

“이, 이런!”

도리안이 위기를 느끼고 우측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비도는 바람을 탄 풀잎처럼 부드럽게 회전해서 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뻐어어억!

비도와 살이 닿았을 뿐인데 쇠망치를 후려친 듯한 굉음이 울렸다.

“꾸에에엑!”

도리안은 눈물을 흘리며 밑으로 추락했다.

“이 악마야!”

그는 차마 욕은 하지 못하고 악마라 떠들며 사라졌다.

-악마가 아니라, 마왕 후보이니라!

라스는 이미 악마의 단계는 한참 지났다며 고개를 저었다.

‘마왕 안 한다고.’

피식 웃으며 손에 든 비도를 내리꽂았다. 벼락처럼 쏘아진 비도가 광풍단의 어깨를 후려쳤다.

‘이젠 검에도 밀리지 않겠는데.’

광풍단이 성장하는 것 이상으로 무결비의 성장이 빨랐다. 몇 가지 절기도 추가로 만들었기에 광풍단이 이 절벽을 정복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거랑도 섞어볼까.’

무결비가 어느 정도 숙달되었으니, 예전에 데루스에게 받았던 비령도와 섞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조만간 날을 잡고….’

라온이 비령도의 구결을 떠올리고 있을 때 뒤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로엔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여전히 귀신같으시네.’

살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살수답게 기척을 죽이는 건 자신보다 한참 위였다.

“광풍 부단주님을 뵙습니다.”

로엔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로엔님 .”

라온은 그보다 더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마주 인사했다.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로엔은 부드럽게 웃으며 턱을 끄덕였다.

“가주님이 저를?”

“예. 아무래도 두 번째 시험이 결정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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