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5화
인간의 분노라는 폭풍이 지나간 시가지 훈련장.
수백 개의 발자국이 박혀 있는 갈라진 대지에서 리메르가 몸을 일으켰다.
“어우욱….”
리메르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격한 신음을 흘렸다.
“지, 진짜 뒤질 뻔했네.”
농담이 아니다. 훈련할 때 아껴둔 오러를 모조리 방어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승행 돛단배를 타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가주님이 덜 아플 정도였어.’
이게 인간의 악의라는 건가.
광풍단과 철전대의 주먹도 아팠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도박꾼들의 발길질이었다.
7배라는 대박에서 간신히 원금만 되찾은 그들의 분노는 오러를 뚫고 뼈와 살에 박혀 지독한 고통을 일으켰다.
“에휴!”
리메르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프고, 돈은 없고. 한동안 밥은 나딘 빵으로 때워야겠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하신 겁니까.”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려고 할 때 우측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라온이 섬뜩한 기운을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허억!”
리메르가 질겁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아, 아직도 안 갔어?”
“…….”
라온은 대답하지 않고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눈빛을 가라앉혔다.
“설마 또 밟으려고? 그, 그건 아니지?”
“…….”
“나 오러도 다 써서 더 맞으면 진짜 황천행이야! 깨꼬닥 저승으로 하강한다고!”
뭐라고 말을 걸어도 라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붉게 물든 눈동자를 내렸다.
그 눈을 보자, 속이 울렁거리며 딸꾹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끅! 라, 라온아. 미안하다. 근데 진짜 사고를 치려던 게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공포에 턱을 떨고 있는데 라온은 주먹을 날리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
“때리긴 뭘 때립니까. 누가 들으면 깡패인 줄 알겠네.”
라온은 피식 웃고서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도리안이 먹는 동그란 과자와 육포, 위스키 두 병을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 뭐냐?”
리메르는 급소를 막는 방어 자체를 풀며 입술을 떨었다.
“술이나 한잔하시죠.”
라온은 위스키 뚜껑을 열고, 리메르에게 건네주었다.
“어? 어….”
리메르는 다리가 꼬인 문어처럼 어색한 몸짓으로 위스키를 받았다.
라온은 물을 마시듯 가볍게 위스키를 들이켰다. 더 맞기 싫었기에 그를 따라 위스키를 마셨다.
‘맛있는데….’
꽤 고급인지 위스키에서 바닐라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목을 치는 듯한 알코올의 강렬함도 마음에 들었다.
“괜찮네.”
리메르는 술기운이 돌았는지 위스키를 홀짝인 뒤 앞에 꺼내둔 과자를 씹었다.
“위스키 급에 비해 안주가 싸구려지만 이런 게 또 좋지.”
“단주님.”
그가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기분이 달아오를 때 라온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 대주직을 넘기려고 하신 겁니까?”
그의 나지막한 음성에 육포로 향하던 리메르의 손이 뚝 멈췄다.
라온이 눈동자를 떠는 리메르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한테 직책을 넘기려고 하셨군.’
오늘 리메르는 평소와 달랐다.
단이 대가 되는 중요한 시험이니, 글렌이 오는 건 당연했는데,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술수를 부렸다.
그 일로 인해서 여론 자체가 광풍대로 승급할 때 리메르가 아니라, 라온 지그하르트가 수장을 맡으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저 바보 같은 엘프가 무엇을 노렸는지를.
리메르는 본인의 평판을 최악으로, 라온이라는 이름의 평판을 최고로 만든 뒤에 대주의 자리를 넘기는 게 당연한 상황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귀때기가 쓸데없는 짓을 벌였군.
라스도 무슨 말인지 이해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정은 많고, 멍청한 녀석이니라. 그런데….
‘왜?’
-저놈의 귀가 정말 탈부착식인지 한 번 당겨보면 안 되는 것이냐?
‘제발 좀 가라.’
리메르의 길쭉한 귀를 이리저리 살피는 라스를 손등으로 날려버렸다.
“왜 그러신 겁니까?”
라온은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지며 육포를 씹었다.
“하아….”
리메르는 대답하지 않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딱 좋았는데 술 깨네. 너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르냐?”
그는 피식 웃으며 위스키를 들이켰다.
“라온. 너는 내 예상. 아니, 그 누구의 예상보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 정도 맞아. 지금의 너라면 대주를 맡아도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수 있어.”
리메르가 너는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다며 웃었다.
“이젠 널 위에서 내려보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받쳐줄 때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
라온은 담담하게 읊조리는 리메르의 말을 들으며 위스키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바로 삼켰기 때문인지 식도와 뱃속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 열기를 담아 입을 열었다.
“대주가 되면 가주님께 불려가는 일도 많을 테니,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뒤에서 애들이나 가르칠 테니, 귀찮고 혼나는 일은 단주님이 계속해주시죠.”
“얌마! 나도 힘들어! 그 영감 나만 보면 벼락을 날린다고! 이제 단전에 바람보다 뇌기가 더 많을 지경이다!”
리메르는 단전이 찢어지겠다며 꽥 소리를 질렀다.
“어쨌든 난 이제 못해! 너는 조금만 있으면 날 뛰어넘을 테고, 애들도 콩나물처럼 쑥쑥 크고 있으니까 광풍대로 바뀌는 김에 네가 대주를 맡아서….”
“단주님. 아니, 스승님.”
라온이 술병을 내리며 리메르의 말을 끊었다.
“저는 스승이라는 존재가 그저 무학만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생에 살인 기술을 가르친 건 스승이 아니라 사육사였다.
그저 사람을 죽이는 기술만을 배웠기에 진짜 스승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리메르와의 관계는 소중하고 중요했다.
“저와 광풍단은 아직 단주님의 등을 보면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대주가 되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지금의 광풍단이. 리메르와의 사제관계가 더 길게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이 술도 스승과 처음으로 마시고 싶어서 가져온 겁니다.”
“라온. 너….”
라온이 병에 남은 위스키를 단숨에 털어내고 일어섰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서 그대로 수련장을 떠났다.
“하아….”
리메르는 깊은숨을 내뱉고서 고개를 떨궜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제자 한번 더럽게 잘 뒀네.”
그는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마신 후 입매를 끌어 올렸다.
“이러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
* * *
-쯥, 아깝느니라.
라스는 뭔가가 아쉬운지 길게 입맛을 다셨다.
‘뭐가 아까워?’
라온이 라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때기의 귀가 정말 조립식인지 확인해봤어야 했는데….
‘….’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본관 쪽으로 가려는데 훈련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광풍단이 달려왔다.
“부단주님!”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탈락하지 않은 도리안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오는군.”
“다 끝났는데, 왜 기다리라고 한 거야!”
“…….”
버렌은 평온한 미소를 지었고, 마르타는 인상을 찌푸렸으며, 루난은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히끅….”
크레인은 천적을 만난 꿩처럼 땅만 바라보며 어깨를 떨었다.
라온은 광풍단의 앞에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모두 수고했다. 누구 때문에 큰 문제가 있었지만, 계획대로 잘 해줬어.”
“그 지옥을 견뎠는데 당연하잖아!”
“모두가 하나가 된 덕분에 이길 수 있었지.”
마르타가 콧방귀를 뀌고, 버렌이 꽉 말아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부단주의 수련을 통과했으니, 이 정도는 가볍죠.”
“그때는 정말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시험 하나만 더 통과하면 우리도 대가 되는 건가?”
“기대되네. 광풍대!”
광풍단은 앞으로 광풍대로 불리는 게 기대되는 듯 들뜬 웃음을 흘렸다.
“오늘.”
라온의 서늘한 음성에 광풍단의 웃음이 멎었다.
“모두가 제 역할을 할 때 큰 실수를 한 사람이 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크레인을 향했다.
“끄윽….”
크레인이 덜덜 떨며 손을 들어 올렸다.
“제, 제가 떨어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도리안이 지휘하느라 뒤를 못 봐서 막아주다가 제가 역으로 당한 거라구요!”
그는 도리안이 뒤를 신경 쓰지 못한 탓도 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 저요? 전 아니에요! 제대로 방비하면서 움직였다구요!”
도리안은 화들짝 놀라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을 흔들었다.
“진짜 널 보호해주다가 당했다고!”
“거짓말 좀 치지 마세요!”
“정말이라니까! 네가 지휘자니까 보호해줘야지!”
“저는 뒤에도 눈이 달려서 그쯤은 다 피할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 맞다 아니다 싸우며 소리를 질렀다.
짜악!
라온이 손뼉을 치자, 크레인과 도리안이 입을 다물었다.
“누가 잘못을 했든 크레인이 먼저 쓰러진 건 변하지 않지.”
“으윽….”
“후후!”
크레인이 턱을 덜덜 떨고, 도리안은 승리의 표정을 지었다.
“크레인에게 벌을 주는 게 맞겠지만, 난 조금 전에 버렌이 한 말이 떠오른다.”
“응? 나?”
“그래. 광풍단이 하나가 되어서 이겼다는 그 말.”
라온의 입매가 둥실 올라가자, 광풍단의 눈동자에 불안의 빛이 스며들었다.
“즉, 동료 하나의 잘못은 모두의 잘못. 오늘은 전부 나머지 훈련이다.”
“아….”
“이, 이 미친 자식이 또!”
버렌과 마르타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겼는데, 단체 훈련을 하겠다고?”
“저 인간 진짜 정신 나갔어!”
“뇌에 훈련이라는 두 글자만 박혀 있는 게 분명해!”
광풍단 검사들도 부릅뜬 눈동자를 떨었다.
“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크레인만 문제가 아니었거든. 일단 마르타는 돌진할 때 동료와의 연계를 생각하지 않았고, 버렌은 중간에서 쿠션 역할을 할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갔어야 했고, 루난도 너무 방어에만 몰두했어. 조금 더 움직임을 빠르게 가져갔다면 카망을 더 쉽게 잡았을 거다. 그리고 도리안은….”
라온은 트레빈과 전투를 치른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광풍단이 실수했던 것을 읊었다.
“저, 저걸 어떻게 봤대?”
“눈이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인가?”
“귀신이야. 사람이 저럴 수가 없어….”
“이, 이렇게 되면 정말 훈련해야 하는 거야?”
“시험이 막 끝났는데… 크흑!”
“저놈 보면 악마가 친구하겠다고 달려들 게 분명해!”
광풍단은 질렸다는 듯 이를 바득 갈았다.
-미안하느니라. 친구가 아니라, 목줄이 잡혔느니라….
라스는 같은 처지라고 말하며 훌쩍였다.
“주, 죽여! 저거 안 죽이면 진짜 우리가 죽는다!”
“이번만큼은 마르타가 맞아! 가자!”
“지쳐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으아아아아아!”
광풍단이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라온은 철전대와 싸울 때보다 더한 투지를 일으킨 광풍단을 보며 흥겨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반항이 있어야 재밌지.”
* * *
글렌은 갑자기 가주전으로 찾아온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무슨 일이냐.”
“가주님.”
허튼소리를 하면 당장 벼락을 떨어뜨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리메르가 고개를 들었다.
리메르의 눈동자는 ‘그 일’이 있기 전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불릴 때로 돌아간 듯 예리하게 번쩍였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빨랐나 봅니다.”
리메르는 글렌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이라면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이번 시험이 끝날 때 라온을 대주로 보내고, 저는 부대주나 호법으로 빠지려고 했습니다. 다만 조금 더 위에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글렌은 전부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멍청한 짓은 골라서 하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바람이 분 것이냐.”
“제 안이 아니라, 외부에서 분 바람 꽤 거세서 반항할 수가 없네요.”
리메르가 창밖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이 대주직을 넘기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더럽게 눈치 빠른 녀석이에요.”
“그 아이가 뭐라 했지?”
“스승이라는 건 그저 무학만 가르쳐 주는 자리가 아니라고. 조금 더 오래 광풍단의 앞에 서달라고 하더군요.”
“음….”
글렌이 입맛을 다시며 리메르를 보았다. 썩은 생선처럼 죽어 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돈다. 저런 모습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 녀석은 정말….’
라온은 누구보다 냉정한 듯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따스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말에 리메르가 힘을 얻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네 생각은…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이전에는 아이들이 조금 더 성장하고, 라온이 가문의 정상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면 지금은….”
리메르가 구김 없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도 조금은 진지해져야 할 듯 합니다.”
“그런가.”
글렌이 가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끼던 수하가 제 모습을 되찾았고, 그걸 만들어낸 게 아끼는 손자라는 것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로엔.”
“적고 있습니다. 이건 1권에 적어두는 게 좋겠군요.”
로엔은 라온 복음에 조금 전 리메르가 전해준 라온의 명대사를 적기 시작했다.
“라온과 술을 하다 보니 저도 옛 생각이 떠올라서….”
“뭐?”
글렌의 서늘한 음성에 부드럽게 풀렸던 분위기가 다시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네?”
“방금 뭐라 했냐고.”
“라온이랑 술 한잔했거든요. 처음일 텐데 참 잘 먹던…엑!”
리메르가 말을 하다가 입을 떡 벌렸다. 알현실 천장에 지금까지 중 가장 거대한 뇌기가 치솟고 있었다.
“가, 가주님? 갑자기 이게 무슨….”
분명 분위기가 좋았는데, 왜 뇌기를. 그것도 정말 죽일 것처럼 끌어 올린 건지 모르겠다.
“저, 저 이번에는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그냥 라온하고 술만 마셨다구요!”
“그게 네 죽을죄다.”
“예?”
글렌은 백혈교주와 타천을 상대할 때도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으로 이를 꽉 물며 뇌기를 떨어뜨렸다.
“자, 잠깐!”
“죽어!”
* * *
라온은 광풍단과 자정까지 훈련을 마친 뒤 별관으로 향했다.
‘다들 만족했지.’
시험 이후로도 지독하게 굴려서 다들 눈에 독기가 차올라 있을 때 일주일의 휴가를 줬더니, 모두의 눈동자가 비 온 뒤 하늘처럼 맑게 개었다.
-끄응….
라스가 이쪽을 보며 앓는 신음을 흘렸다.
-이해되지 않느니라. 일주일 휴식은 원래 주기로 한 건데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냐.
녀석은 시험이 끝난 후에도 훈련을 시킨 악마를 왜 좋아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그게 수하를 다루는 법이야.’
밑의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당근과 채찍을 언제, 어떻게 주느냐였다.
크레인 때문에 며칠 동안 진행할 줄 알았던 훈련을 하루 만에 끝내고, 원래 주기로 했던 일주일의 휴가까지 그대로 제공했으니, 모두가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으음, 일단 괴롭히고 풀어주는 방식인가….
라스는 본인의 동그란 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너 뭐하냐?’
-네놈이 인간을 조련하는 법을 필기하고 있느니라.
녀석은 고개를 돌리며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마계로 돌아가거나, 네놈의 몸을 차지하면 써먹을 것이니라! 이 교육을 습득한다면 차원 정복도 꿈은 아니니라!
‘…그러냐.’
차원 정복처럼 꿈 같은 소리는 모르겠지만, 수하를 제대로 다루는 일은 쉽지 않다.
한 명 한 명의 감정과 상태를 파악해서 각각 다른 조치를 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눈치 없는 라스라면 말을 듣게 만들기도 전에 전부 기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열심히 해봐. 애들 죽이지 말…어?’
라온이 푹신푹신한 라스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다가 입을 떡 벌렸다.
별관 앞에 있는 나무 위에서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고, 고슴도치가 인사를….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