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0화
리메르는 라온에게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광풍단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하루만에 사람이 달라지네.”
광풍단이 미친개마냥 사나워진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라온은 광풍단 검사들을 후려팰 때마다 그들의 마나회로를 자극해서 아직 다 받아들이지 못한 사운환의 흡수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광풍단은 라온에게 얻어터질수록 오러가 늘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으며 하루종일 검을 휘둘렀다.
“저게 보통 일이 아닌데.”
광풍단과 싸우면서 그들의 마나회로를 자극하는 일은 오러와 체력만이 아니라, 정신력까지 크게 소모한다.
라온이 평소와 달리 조금 지친 듯한 안색이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여튼 너무 착하다니까.”
저 힘들고 귀찮은 일을 자정까지 홀로 해내다니, 이럴 때 보면 라온만큼 동료를 위해주는 녀석이 없었다.
“흥.”
도괴가 리메르의 옆으로 다가오며 콧방귀를 끼었다.
“그럼 좀 도와주지 그러냐?”
“이거 안 보이슈?”
리메르가 멍이 든 왼쪽 눈두덩이를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품에서 달걀을 꺼내 눈 주변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부상이 심하다고.”
“제대로 맞은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귀찮아서 가만히 있는 거 아니냐?”
도괴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무, 무슨 소리야! 육체적 통증도 심하지만, 부하들에게 밟힌 내 마음의 고통은 지금도 쓰라리다고! 이건 약 발라도 안 나아!”
리메르는 고개를 홱 돌린 채 코를 훌쩍였다.
“하여튼 엄살은.”
도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고 애들에게 말 안 해주는 것이냐?”
“뭘?”
“대결에서 꼭 이길 필요는 없다는 것 말이다.”
단에서 대로 승격할 때 치르는 첫 번째 시험은 보통 무력대와의 대결이다. 다만 대가 단보다 강한 것은 당연하기에 무조건 이길 필요는 없었다.
“그 대결을 치르는 이유는 보다 강한 세력을 상대로 어떤 싸움을 만들어내는지를 보기 위함이지. 승리가 조건은 아니잖느냐.”
“맞아. 이길 필요 없지. 하지만 애들에게 그 말을 해줄 생각도 없어.”
리메르는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승리만을 노리게 만들어 아이들을 성장시킬 셈이었나? 하긴 지금 저 아이들의 수준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겠군.”
“응? 아닌데?”
그는 광풍단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날 밟은 저 녀석들이 조금 더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속이 밴댕이만도 못하구나.”
“사실 밴댕이보다 더 작지. 그게 내 자랑이라고.”
리메르는 스스로를 속 좁은 남자라고 말하며 낄낄 웃었다.
“끄응, 너란 놈은 정말….”
도괴가 앓는 소리를 내며 한심한 눈으로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재미없을 것 같네.”
리메르의 목소리가 바람을 탄 듯 경쾌하게 퍼졌다. 그는 싸울수록 점점 더 독한 광기를 일으키는 라온과 광풍단을 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흘렸다.
“이 균형의 수호자님이 좀 나서야겠어.”
* * *
정사각형의 연무장 위로 하늘을 으깨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진다.
회색 수련복이 땀에 젖어 갈색이 될 정도로 훈련에 열중하는 철전대의 기합 소리였다.
대 흑철검진을 운용하면서 검을 내리치는 철전대 검사들에게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위압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거기까지.”
단상 위에 서 있던 금발의 중년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철전대 검사들이 절도 있게 검을 내렸다.
손짓 한 번으로 철전대를 움직이는 이 남자가 바로 철전대주 트레빈 지그하르트였다.
“대 흑철검진 훈련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조끼리 움직여서 소 흑철검진을 운용하도록.”
“예!”
철전대 검사들은 즉시 고개를 숙이고서, 3개의 조로 나뉘어 연무장에 흩어졌다.
그들이 펼치는 소 흑철검진에는 웅장한 무게감 대신 보고만 있어도 피부가 베이는 듯한 날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1조. 중심의 오러가 흩어진다. 기운의 분배를 정확하게 하도록. 2조는 진의 균형이 무너졌다. 검을 조금 더 위로 들어라. 3조는….”
트레빈 지그하르트는 세밀한 시선으로 각 조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보완할 방법까지 말해주었다.
그의 가르침을 들은 철전대 검사들은 더 짙은 예기를 일으키며 검을 내리쳤다.
“후….”
1번 부대주 카망이 트레빈의 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훈련이 끝나질 않네.”
“그러게. 적당히 하셔도 될 텐데.”
2번 부대주 오레스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내가 우리 대주님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저 조심성만큼은 이해가 안 간다.”
“조금 심하긴 하시지.”
“대주님의 조심성 때문에 승격도 늦어진 거잖아.”
원래라면 한참 전에 대가 되어야 했지만, 대주인 트레빈이 완벽한 승격을 준비한다며 시간을 끌어서 간신히 3년 전에 대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좀 말려야겠네. 애들 죽겠다.”
“그게 좋겠어.”
두 부대주는 짧게 숨을 내쉬고 트레빈에게 다가갔다.
“대주님.”
카망이 트레빈의 뒤에 서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내일이 대결인데, 애들도 좀 쉬어야죠.”
“맞아요. 고작 광풍단 따위를 상대하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오레스가 카망의 말을 받았을 때 트레빈의 시선이 돌아갔다.
“고작 광풍단?”
트레빈의 시선이 싸늘할 정도로 가라앉았다.
“허억!”
말을 잘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오레스가 급히 입을 막았다.
“그 고작 광풍단이 육황 결투 대련에서 우승한 걸 잊었나?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단이 승격을 치르는 게 우습게 보이나 보지?”
“그, 그게 아니라….”
“광풍단주 리메르는 아직 실력을 다 회복하지 못했다고 해도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불렸던 괴물이고, 라온 지그하르트는 육황에서도 역대급이라 불리는 천재다. 우리가 우습게 볼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트레빈은 두 부대주를 짓누르는 듯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거기다 광풍단은 지금 일주일째 연무장에서 나오지 않고 훈련을 하고 있지. 놈들이 어떻게 움직여도 이길 수 있도록 완벽하게 대비해야 하는 게 철전대가 보여야 할 모습이다.”
“죄,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오레스와 카망은 어떠한 핑계도 대지 않은 채 그저 잘못했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쉬게 하는 것도 맞는 말이지.”
트레빈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의 위치를 보니 이미 자정이 지나간 듯 보였다.
“모두 정렬.”
그는 손짓을 해서 철전대 검사들을 단상 앞으로 불렀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겠다.”
“대주님!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내일이 대결이니, 조금만 더 수련하다가 가겠습니다!”
“광풍단은 일주일째 연무장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잖습니까.”
“놈들에게 질 수는 없죠!”
철전대 검사들은 트레빈이 부대주에게 한 말을 들은 듯 더 수련하고 싶다고 외쳤다.
“내일이 대결이기에 몸을 쉬게 해서 최고의 상태를 만들어두어야 한다. 이건 휴식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대비다.”
트레빈이 그 말을 하며 단상 위에 올려둔 작은 책자들을 가리켰다.
“광풍단의 정보가 들어 있는 책이다. 내일 대결 전까지 전부 외워서 오도록.”
“알겠습니다!”
철전대는 흔들림 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트레빈은 책자를 챙기는 철전대 검사들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광풍단….’
지금 싸운다고 해도 광풍단을 이기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있다.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라온과 광풍단을 우습게 보다가 패배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지. 하지만 난 그런 멍청이가 아니다.’
트레빈은 하늘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철저하게 깨부숴 대와 단의 차이를 보여주도록 하지.’
* * *
광풍단과 철전대의 결투 당일.
북망산 동쪽에 위치한 붉은 첨탑 위로 글렌과 아디스 세피아가 섰다.
“저곳이 오늘 결투가 일어나는 장소입니까?”
아디스가 첨탑 아래로 보이는 망가진 시가를 가리켰다.
“그렇소.”
글렌이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군요. 전 결투를 한다고 하길래 대련장에서 일대일 승부를 벌일 줄 알았습니다.”
“이번 전투는 단을 대로 승격시키기 위한 시험이오. 개인의 무력이 아니라, 단체로서의 힘을 봐야 하지.”
“아, 확실히 그렇겠군요.”
아디스는 글렌의 뜻을 알아차리고 볼을 긁적였다.
“제가 무지한 상인인지라 그런 방식인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오. 내가 거기까지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함께 술자리를 가진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럼 광풍단이 오늘 승리하면 대로 승격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소. 시험은 두 번을 치러야 하고, 오늘 진다고 해도 대가 될 수도 있지.”
“진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렇소. 단보다 대가 강한 건 당연한 사실. 이기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오.”
글렌은 단이 대를 이기고 승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더 강한 적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느냐를 중점적으로 보겠군요.”
“이해가 빠르시구려. 맞소. 그게 이 전투의 목적이지. 시가지에서 싸우게 만드는 이유도 그 대응을 보기 위함이오.”
“육황의 시험은 무엇 하나 간단하지 않군요.”
아디스는 감탄했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무섭기로는 상회도 못지않을 텐데?”
“그래도 저희는 입과 돈이 오가지, 칼이 오가지는 않으니까요.”
“그 말과 돈이 어떤 때는 칼보다 무섭지 않소.”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합니다.”
글렌이 옅은 미소를 지었고, 아디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전투는 세피아 상회주도 편히 볼 수 있게 조치를 해놨으니, 상황을 아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음?”
아디스가 고개를 숙이다가 시가지로 들어오는 검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광풍단이 들어오는 듯합니다.”
그가 상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휴대용 망원경을 꺼내 눈에 가져다 대었다.
“그렇군.”
글렌이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돌려 광풍단을 보았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을 보니, 살짝 긴장한 것 같군요.”
“확실히 자신감이 차오른 얼굴이오.”
“저래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라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녀석이지.”
“옷이 구겨졌군요. 정리가 안 되는 건 항상 똑같습니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겼군. 확실히 저게 낫소.”
두 사람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지 본인이 할 말 만 떠들었다.
로엔은 어긋나는 대화를 이어가는 글렌과 아디스를 보며 보드라운 미소를 지었다.
‘두 분 다 재밌으시군.’
저 둘의 말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렌은 라온만을, 아디스 세피아는 도리안만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있기에 두 사람의 말이 연결되지 않는 중이었다.
‘왜 저리 빠르게 친해졌는지 알겠어.’
한 번의 술자리를 가졌을 뿐인데, 왜 글렌과 아디스가 따스한 분위기를 풍기는지 알 것 같았다. 둘 다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젠 도련님이 가주님께 친구도 데려다 주시는군.’
로엔은 시가지의 중심으로 걸어가는 라온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항상 재밌는 구경을 하게 해줘서 감사합니… 음?’
그는 라온의 뒤를 따라가는 광풍단 검사들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왜 다들 무섭게 이를 드러내고 있지?’
* * *
라온은 폐허처럼 이곳저곳이 무너진 시가지를 살피며 안쪽으로 걸었다.
‘처음부터 훈련용으로 만든 곳이군.’
시가지의 건물과 벽들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진 훈련용 시설들이다. 훈련할 때 지리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위치를 바꿀 수 있게 설치된 것 같았다.
‘그럼 지금 외우면 되겠지.’
옅게 웃으며 지금 보이는 시가지의 지리를 모두 머릿속에 넣었다. 지리를 파악하며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시가지의 중심에 도착했고, 반대편에서 오는 검사들이 보였다.
‘저게 철전대인가.’
철전대는 검사 한 명 한 명이 검으로 보일 정도로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냈다. 괜히 대에 승격한 후에도 많은 실적을 올리는 무력단체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라온이 철전대의 중심에서 걸어오는 금발의 중년인을 보았다.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는 검사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압감을 두르고 있었다. 저 남자가 바로 철전대주 트레빈 지그하르트인 것 같았다.
-죄다 허약하구나.
라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혀를 찼다.
-네놈의 부하들은 쫄겠지만, 너무 약한 것들을 상대로… 어?
녀석은 뒤를 돌아서 광풍단을 살피다가 입을 떡 벌렸다.
-안 쪼네?
‘열 받았으니까.’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았다. 광풍단 전원은 본인들에게 지옥 훈련을 하게 만든 철전대에 대한 원한으로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지시만 내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후우우욱!”
“저것들 때문에 우리가 그 개고생을 했단 말이지.”
“내 잠의 원수….”
버렌과 마르타, 루난은 다가오는 철전대를 보며 특히나 강한 기파를 일으켰다.
-허어!
라스가 광풍단의 광기를 마주하며 헛바람을 흘렸다.
-왜 네놈이 괴롭혔는데 저쪽에 화를 내는 것이냐? 이해가 되지 않느니라!
‘그게 사람을 다루는 법이지.’
-그거 본왕도 알려주어라. 배우고 싶느니라!
‘수강료를 내야지.’
-수강료? 이 미친 인간 놈이!
녀석은 무슨 헛소리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매일 같이 능력치를 뺏어가면서 뭘 더 원하는 것이냐!
‘그건 상납금이고.’
-사, 상납금….
라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라온은 달라붙는 라스를 밀어내고, 바로 앞까지 다가온 철전대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군.”
철전대주 트레빈 지그하르트가 리메르에게 턱짓을 했다.
“이야. 트레빈. 많이 건방져졌네.”
리메르는 트레빈을 보며 보며 피식 웃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당신은 내려갔고, 나는 올라갔으니까.”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리메르와 광풍단을 굽어보았다.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리메르는 별 관심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라온이 리메르의 어깨 뒤에서 트레빈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맞는 말이야.’
주디엘의 정보에 의하면 트레빈은 침착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고 했었다. 지금 그는 일부러 도발을 하는 것 같았다.
‘다만, 선택을 잘못했네.’
여기서 도발이 먹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리메르는 나풀거리는 종이 같은 사람이라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광풍단은 이미 미쳐 있는 상태였기에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고오오오.
라온은 설화의 감각을 열어 철전대 전체의 기운을 살폈다.
‘주디엘의 정보를 받았을 때보다 강해지기는 했지만 큰 차이까지는 아니야.’
트레빈 지그하르트를 상대하는 동안, 리메르가 두 명의 부대주를 막아준다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철전대로는 광견으로 화한 광풍단을 막을 수 없었다.
후우우우욱!
뒤에 있는 광풍단에게서 뿜어지는 광기와 더운 숨소리가 너무도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광풍단과 철전대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갈색 제복을 입은 중년인이 다가왔다.
“오늘 결투의 심판을 맡은 해리슨입니다.”
그는 리메르와 트레빈에게 차례로 고개를 숙였다.
“결투 방식은 간단합니다. 상대 진형에 있는 깃발을 차지하거나, 적 모두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면 승리입니다.”
해리슨이 어렵지 않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만 오늘 결투에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누가 누구를 쓰러뜨렸는지를 알려주게 될 겁니다.”
“그건 왜 알리는 거지?”
트레빈이 해리슨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해리슨이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전투 불능 상태는 자네가 파악하는 건가?”
“예. 저와 주변에 퍼져 있는 부심들이 판단할 겁니다. 추가로 기권을 해도 전투불능으로 말하게 될 겁니다.”
“알겠다.”
트레빈은 궁금한 게 모두 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광풍단 측에서는 질문 없으십니까?”
“딱히 없어.”
리메르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30분 뒤에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광풍단은 서쪽, 철전대는 동쪽 진형으로 이동해주십시오.”
해리슨의 지시에 광풍단과 철전대가 서로를 스쳐지나가며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쪽? 좋은데.’
동쪽에서 들어왔기에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이 시가지의 모든 지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철전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지형을 저쪽보다 더 잘 이용할 자신이 있었다.
‘철전대주와의 승부가 기대되는군.’
라온은 이번 전투는 재밌을 거라 생각하며 동쪽 진형을 향해 걸어갔지만, 그 예상은 전투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광풍단주 리메르 전투 불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