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76화 (376/653)

제376화

라온은 비연회주 채드가 내려놓은 상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게 무엇이냐?

‘야수연맹에서 보낸 선물.’

저 상자 안에 든 건 야수연맹주 오그람이 보낸 사운환이다. 글렌과의 내기에서 패배한 뒤 보내준다고 했던 영약이 이제야 가문에 도착했다.

“그럼 열겠습니다.”

채드가 나무로 만든 듯한 갈색 열쇠로 바위처럼 두터운 상자의 자물쇠를 풀었다. 뚜껑은 직접 열라는 듯 그가 뒤로 물러났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채드에게 고개를 숙인 뒤 묵직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가장 위에는 거친 필체로 휘갈긴 편지가 올려져 있었다.

[약속은 지켰다.]

너무도 간단하기에 오그람이 보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의 편지였다. 서른 개가 넘는 사운환을 보내면서 생색조차 내지 않다니, 그릇이 얼마나 큰 건지 모르겠다.

편지를 치우고 상자 안을 보았다. 주먹만 한 목갑 수십 개가 들어 있었고, 솜보다 부드럽다는 레핑 덩굴이 내부를 보호하고 있었다.

간단한 편지와 달리 많이 신경 써서 보내준 것 같았다.

“사운환이로군요.”

채드가 상자 안에 있는 목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 야수연맹주께서 내기를 잊지 않고 보내주신 듯 합니다.”

“야수연맹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단순하죠. 약속하면 무조건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채드의 말대로 야수연맹의 무인들은 거짓말과 비겁함을 혐오한다. 당연히 보내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서른다섯 개인가.’

상자 안에 있는 사운환의 개수를 세어보니, 광풍단 숫자와 같은 서른다섯 개였다.

‘안 주신다고 해놓고 제대로 보내셨군.’

오웬에 있을 때 먼저 하나를 받았으니 34개가 와야 하지만, 오그람에게 광풍단 내부에 한 사람이 더 있다고 35개를 달라고 부탁했다.

싫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말과 달리 하나를 더 챙겨주었다.

“이렇게 많은 사운환이라니, 돈을 주고도 못 살 기연입니다.”

“그러게요.”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운환은 오러만이 아니라, 무인이 익힌 무학을 사용하기에 적합한 체격을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다.

괜히 야수연맹이 자랑하는 영약이 아니었다.

“무거웠을 텐데 이곳까지 가져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온이 일어서서 채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채드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저 좋은 소식을 빨리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그는 기뻐하시니 다행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 하겠습니다.”

채드는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뒤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것처럼 몸을 돌려서 북망산을 내려갔다.

그는 산 중턱까지 내려간 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됐어.”

이번에도 라온에게 좋은 인상을 심었다. 다른 요원들과 오지 않고, 홀로 저 무거운 상자를 들고 이곳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

라온은 오웬 왕국에서 벌어진 육황 결투 대련에서 대륙십이성을 모조리 꺾고 우승한 것으로 모자라서, 세피아 상회의 협조까지 얻어냈다.

아직 어리지만, 이 대륙에서 누구보다도 높이 올라갈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네 사람이 좋아하지.

지그하르트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글렌, 셰릴, 로엔 그리고 좀 후달리지만 리메르까지. 그 모두가 지지하는 사람이 바로 라온이다.

지그하르트의 미래는 분명 라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미리 잘 보여놔서 다행이야.’

라온이 그리 큰 활약을 하지 않을 때부터 그에게 좋은 인상을 보여주어서 마음이 놓였다. 지금까지 쌓은 친분은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사회생활이고, 줄이지.’

채드는 히죽 웃으며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북망산을 내려갔다.

*     *      *

라온은 채드가 떠난 숲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무슨 소식이 들리길 기대하겠다는 거지?”

이 영약을 먹고 강해질 광풍단을 기대한다는 건지 또 다른 활약을 기대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말만이 아니라, 채드의 행동 자체가 기이했다.

‘저 사람 이상하지?’

-그렇느니라.

라스가 눈썹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단체의 수장이라는 놈이 이 상자를 혼자 가져온 것부터 말이 안 되느니라.

‘그렇지.’

채드 밑에는 신뢰할 수 있는 부하들이 있다. 그들을 보내도 되고 혹은 상자를 들고 오게 시켜도 되건만, 이 무거운 걸 혼자서 가지고 온 게 영 이상했다.

‘잘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겠지.’

분명 속셈이 있을 거야.

이번 삶이 처음이라면 채드가 친절하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전생의 삶이 워낙에 험했기에 그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계속 주의해야겠어.’

채드를 경계할 사람의 목록에서 조금 더 위로 올린 뒤 목갑 안에 든 사운환을 살폈다. 서른다섯 개 모두 아무런 하자가 없는 진품이었다.

‘딱 좋네.’

라온은 상자의 뚜껑을 다시 닫고, 절벽의 끝으로 향했다.

채드와 대화를 하고 사운환을 확인하는 동안 광풍단은 어느새 절벽의 꼭대기 근처까지 와 있었다.

“저 악마 놈은 여기서 조져야 해! 단주 대우를 안 해주잖아!”

바닥까지 떨어졌던 리메르가 가장 위에서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십자가에는 제가 매달게요!”

마르타가 칼날을 벼린 듯한 섬뜩한 눈동자로 튀어 올라왔다.

“오냐! 목은 내가 딴다!”

두 사람은 어느새 죽이 맞아서 어떻게 라온을 제거할지를 토론하고 있었다.

“다 미쳤어….”

버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마르타에 못지않은 속도로 절벽을 기었다.

“하음.”

루난은 그러거나 말거나 나무늘보라도 되는 듯 꾸벅거리면서 느긋하게 절벽을 올랐다.

“죽인다!”

“절대 사망!”

“가자아아아!”

“이대로는 못 산다!”

광풍단원들이 일으킨 살기가 형체를 갖춘 채 피부를 찌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들은 이곳에 올라오자마자 칼을 휘두르려는 것 같았다.

‘많이도 올라왔네.’

시간을 너무 끌었기 때문인지 나무 비도만으로는 전부 떨어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네놈이라도 나무 비도로 전부를 떨어뜨리는 건 무리지.

라스가 올라오는 검사들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 훈련도 여기까지겠구나.

녀석은 아쉽겠다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설마 귀때기를 날렸듯이 검을 휘두르는 건 아니겠지? 치사하게?

‘당연히 그런 짓은 안 하지.’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리메르가 반칙을 했기에 검을 꺼냈을 뿐 다시 검을 쓸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럼 끝….

‘그래도 방법은 있지.’

-방법이 있다고? 이미 다 올라왔는데?

‘물론.’

라온이 영약이 들어 있는 상자를 잡고 절벽의 끝에 섰다. 살기를 두른 눈으로 올라오는 광풍단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판이 불리하면 그 판을 깨면 되는 거야.’

그대로 상자를 든 채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절벽 등반 훈련은 이걸로 끝. 빨리들 내려와라.”

바닥으로 하강하면서 절벽에 붙은 광풍단원들에게 턱짓을 했다.

-어?

‘훈련 담당자가 나니까. 끝도 내가 정하는 거지.’

현재 광풍단 훈련의 최고 결정자가 자신이기에 아무런 문제 없는 행동이었다.

“에?”

“가, 갑자기?”

“다 올라왔는데 무슨 끝이야!”

“이 망할 자식아! 어디 가!”

“으아아아악!”

리메르와 광풍단원들은 떨어지는 라온을 보며 분노의 괴성을 질렀다.

터엉!

라온은 땅에 닿기 직전 절벽을 걷어차서 부드럽게 바닥에 안착했다.

-너어어어어는 진짜….

라스는 악마도 안 할 짓이라며 입을 떡 벌렸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는 것 같았다.

도괴가 옆으로 다가오며 눈썹을 내렸다.

“하루종일 훈련 시킬 것처럼 굴더니 왜 벌써 내려온 것이냐.”

“더 급한 일이 생겨서요.”

라온이 손에 들고 있는 상자를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상자가 뭐길래 네놈 같은 수련 바보가 훈련을 포기한 거지?”

“아, 이건….”

상자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할 때 광풍단원들이 절벽에서 뛰어 내려와 바닥에 거칠게 착지했다.

“짜식아!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다 올라갔었다고!”

리메르가 다가와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오늘 조져야 합니다! 다 달려들어서 패버려야 해요!”

침착한 버렌도 화가 났는지 이를 갈았다.

“딱 대.”

마르타는 이미 칠 준비를 마치고, 주먹을 말아쥐고 있었다.

“…….”

루난은 자느라 상황을 못 봤는지 아직도 절벽에 붙어 있었다.

“진짜 제멋대로야….”

“네가 폭군이냐고!”

“갑자기 훈련을 왜 멈춘 건데요!”

도리안은 점점 감당하기 힘들다며 훌쩍였다. 다른 광풍단원들도 인상을 찡그리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래. 그래.”

라온은 상자를 깔고 앉은 채 광풍단원들의 투정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렇게까지 내 훈련을 원하면 어쩔 수 없네. 계속 훈련해. 대신…”

즐거움으로 가득 차오른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열었다.

“이 사운환은 전부 내가 챙길게.”

“허억!”

“사, 사운환?”

“오웬 왕국에서 야수연맹주님이랑 내기했던 그거?”

“드디어 왔구나!”

광풍단원들은 눈에 시뻘건 불길을 피운 채로 달려왔다.

“어허!”

라온은 강아지를 혼내듯 호통을 치며 상자를 닫았다.

“너희는 절벽 타는 훈련을 계속하고 싶다며.”

“헉!”

“흐읍!”

그 말에 조금 전까지 악을 지르던 광풍단원이 모조리 입을 다물었다.

“저 치사한 자식이….”

“어떻게 가면 갈수록 미치는 거지?”

버렌과 마르타는 사람이 점점 사악해진다면서 낯빛을 굳혔다.

“여, 영약….”

“그것도 사운환이야.”

“하지만 자존심이….”

광풍단원들도 조금 전까지 난리를 치던 게 있었기에 영약을 달란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특히 저 사운환을 얻게 된 이유는 라온이 육황 결투 대련 마스터급에서 우승한 덕분이었기에 더욱 할 말이 없었다.

“흥! 어차피 내 영약은 없겠지.

리메르가 눈매를 찡그리며 허리춤에 걸어놓은 검을 잡았다.

“난 그냥 여기서 저놈을 조져버리고….”

“있는데요?”

라온은 리메르가 검을 뽑으려고 할 때 깔고 앉은 사운환이 들어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제가 오그람 연맹주께 단주님도 광풍단이라고 꼭 챙겨달라고 했으니까요.”

“지, 진짜?”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하는 거 봤습니까?”

상자에 들어 있던 사운환의 갯수는 35개. 당연히 리메르 것도 있었다.

“라온 부단주니이이임!”

리메르는 본인의 영약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앞으로 달려나와 양손을 파리처럼 싹싹 비볐다. 목소리가 부드럽다 못해 간드러지게 변했다.

“전 평소부터 부단주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야수연맹주에게 요구를 하는 당찬 모습과 이 못난 단주를 생각하는 배려심까지! 앞으로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본인이 부하가 된 듯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혔다.

“이노오오옴들! 우리를 위해 고생한 부단주님께 당장 꿇지 못해? 앙?”

리메르는 라온에게 머리를 숙인 채로 뒤에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광풍단원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냈다.

“허약한 너희 때문에 우리 부단주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데! 당장와서 사과 드려!”

그는 이제 라온의 대변인이 된 것처럼 광풍단을 혼내기 시작했다.

“부, 부단주님!”

눈치 빠른 크레인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었다.

“저는 단주님이 시키는 거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죽으라고 해도 따르겠습니다!”

크레인은 광풍단 중에서 가장 많이 얻어맞고, 떨어졌음에도 누구보다 빨리 머리를 숙였다. 역시나 눈치 빠른 녀석이었다.

믿고 있던 리메르와 가장 크게 당한 크레인이 머리를 조아리자, 다른 광풍단원들도 질세라 앞으로 튀어나와 무릎을 꿇었다.

“부단주님! 사랑합니다!”

“평생 따르겠습니다!”

“라온! 라온! 라온!”

“광풍단의 빛과 소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욕을 하던 광풍단의 입에서 라온의 찬사와 환호성이 끝없이 튀어나왔다.

“응?”

이제서야 절벽에서 내려온 루난이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존잘. 존잘.”

루난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광풍단 옆에 붙어서 존잘을 외쳤다. 이제 남은 사람은 버렌과 마르타 뿐이었다.

“저 자식 전생에 사채꾼이거나, 진짜 악마였을 거야.”

마르타는 교주라도 된 듯 광풍단의 찬사를 즐기는 라온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사채꾼이라고 해도 지금은 돈을 빌릴 때야.”

버렌이 입술을 꾹 깨물며 라온에게 다가갔다.

“가면 자존심을 파는 거라고!”

“단주님 기는 거 안 보여? 저게 어른의 적응력이야! 굽힐 때는 굽혀야 한다고!”

“아….”

“자존심을 팔아서라도 강해져야 해. 그래야 다시는 저런 꼴 안 본다고!”

그는 말리는 마르타를 밀어낸 채 라온의 앞에 가서 고개를 숙였다.

“부단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3조장도 왔네.”

라온은 방긋 웃으며 버렌의 인사를 받았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남은 마르타에게 향했다.

고오오오오!

라온의 시선을 따라 광풍단원들도 고개를 돌렸다. 육십 개가 넘는 뻘게진 눈동자가 마르타를 짓눌렀다.

“끄윽….”

마르타는 이제 동료애를 느끼기 시작한 단원들의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좀비처럼 휘적이며 다가왔다.

“조, 존잘 라온….”

그녀는 루난의 옆에 붙어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결국 광풍단 모두가 굴복하며 절벽 훈련이 끝났다.

라온은 상자 위에서 다리를 꼰 채로 광풍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봤지? 이게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만드는 법이야.’

-어어….

라스는 경악한 듯 퍼래진 입술을 떨었다.

-이것이 마왕강림….

*     *      *

라온은 5연무장으로 돌아온 뒤 광풍단 검사들에게 사운환을 나눠주었다. 리메르를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사운환이 돌아갔고, 광풍단원들은 먹이를 본 강아지처럼 두 눈을 빛냈다.

“이게 사운환이구만.”

리메르가 목갑을 열어 사운환의 냄새를 맡고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바로 복용하죠. 사운환 정도의 영약이라면 지금 먹어도 모레까지는 연공을 해야 할 겁니다.”

버렌이 긴장한 듯 목갑을 감싸쥔 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시간 끌 필요 없잖아.”

마르타도 동의하며 연공실의 문을 열었다.

“영약을 먹고 연공할 때 조급함은 독이다.”

도괴가 연공실 앞을 막은 채로 눈매를 찡그렸다.

“특히 사운환처럼 강한 영약은 더욱 마음을 가다듬어야하지.”

그는 광풍단에게 정이 들었는지 진심을 다해서 조언을 해주었다.

“나와 저 마귀 녀석이 호법을 설 테니까. 차분하게 연공을 마치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라온이 도괴의 말을 끊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목갑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총관님도 연공을 하셔야 하니까요.”

“뭐? 이건 네녀석 것….”

“아뇨. 총관님 겁니다.”

“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이냐!”

도괴가 왜 헛소리를 하냐며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전 오웬 왕국에 있을 때 먹었습니다. 본래 같은 영약을 먹으면 효과가 반감되잖습니까. 제가 먹으면 사운환이 중급 영약만도 못하게 되니까. 총관님이 드시는 게 맞습니다. 그걸 위해서 35개를 달라고 한 거구요.”

사실을 밝히며 도괴에게 사운환을 내밀었다.

“으음….”

도괴는 어떨떨한 표정으로 사운환이 든 목갑을 받았다.

“정말이지 어떤 게 진짜 네놈의 모습인지 모르겠구나.”

그는 아까 보여준 악마가 진짜인지, 지금 보여준 배려심이 진짜인지 헷갈린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다 접니다.”

라온은 옅게 웃으며 도괴의 등을 밀었다.

“오랜만에 몸보신 좀 하고 오세요.”

“하, 하지만….”

“고생하셨잖습니까.”

도괴는 억지로 잡혔고, 한참 높은 연배와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광풍단의 수련을 충실하게 도와주었다. 그의 진심을 알기에 사운환 하나 쯤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 같은 늙은이보다는 젊은 놈이 2개 먹는 게 나은데….”

도괴는 말과 달리 사운환이 든 목갑을 꽉 말아쥐었다.

“아, 영감 어차피 먹을 거면서 귀찮게 구네. 그럼 나 줘. 내가 두 개 먹을 테니… 커헉!”

“넌 좀 꺼져!”

그는 다가와서 손가락을 까딱이던 리메르의 배를 걷어찼다.

짜악!

라온은 손뼉을 쳐서 광풍단 모두를 바라보았다.

“나와 마크 경이 여기에서 지킬 테니까. 전부 침착하게 연공을 마치고 나오도록.”

지시를 내리자, 광풍단원들이 모두 연공실 앞에 섰다. 그들은 들어가기 전에 뒤를 돌아 라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모두는 진심을 담아서 감사 인사를 전한 후에 연공실로 들어갔다.

“라온.”

리메르가 연공실 문 앞에 선 채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했다.”

“네?”

“저 영감까지 챙긴 거 말이야.”

그가 연공실로 들어간 도괴를 가리켰다.

“원래 뒤에서 일해주는 사람을 챙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 넌 좋은 수장이 될 거다. 내가 장담해.”

“도박꾼의 장담은 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요.”

“도박 끊었거든!”

“어제도 다녀오신 걸로 아는….”

“나 간다!”

리메르는 재빠르게 손을 흔들고서 연공실로 들어갔다.

라온은 모든 연공실에서 강대한 마나의 흐름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서 뒤를 돌았다. 마크 괴튼이 정자세로 연무장 중앙에 서 있었다.

“영약이 없어서 미안해요. 당시에는 마크 경이 없었으니까.”

“괜찮습니다.”

마크 괴튼은 당연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대신 다른 선물이 있습니다.”

도리안에게 빌린 아공간 주머니를 열고, 글렌에게 얻은 흑선도를 꺼내서 내밀었다.

“제 가신이 허름한 도를 쓰게 할 수는 없죠. 앞으로 그걸 사용하세요.”

“이, 이거 보통 도가 아닌 것 같은데….”

마크 괴튼은 흑선도의 도신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아직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이런 귀한 물건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마스터급 무인답게 흑선도의 가치를 알고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드리는 거 아닙니다.”

주머니에서 이번에 얻은 무학서 두 권을 꺼냈다.

“제 수련을 도와주는 대가로 드리는 거니까. 부담가지실 필요 없어요.”

“수련이라면….”

“저들이 강해져서 나올 테니까.”

라온이 광풍단원들이 들어간 연공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우리도 강해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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