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75화 (375/653)
  • 제375화

    라온이 저택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니 더 확실해졌다. 저택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실비아와 헬렌을 비롯한 별관의 시녀들이었다.

    다만 안에는 그녀들 말고도 이곳에 오기를 바라고 있던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들어가 봐야겠어.’

    자고 있다면 모를까. 전부 깨어 있기에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끼익.

    저택의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별관에 들어간 듯한 따스한 온기와 함께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은은한 조명이 쏟아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로비에서 별관 시녀들의 손길이 느껴졌다.

    ‘다 저쪽에 있네.’

    저택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척은 우측에 있는 가장 큰 방에서 느껴졌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와 달리 방의 조명은 오직 단상 위로만 내려오고 있었다.

    유아와 헬렌을 비롯한 시녀들은 단상 위에 놓인 검은 책상 뒤에서 인형을 움직이고 있었고, 단상 아래에서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뒤통수만 보인 채 열심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 아이들이니라!

    라스가 앞으로 날아가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환호를 질렀다.

    -전부 무사히 살아 있었군! 다행이니라!

    녀석은 어린 것들은 오래 살아야 한다며 방실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마왕이라고는 할 수 없는 따뜻한 말이었다.

    -그런데 너희 시녀들 지금 무얼하고 있는 것이냐?

    ‘인형극을 하는 것 같은데.’

    유아가 금발의 기사로 보이는 인형을 움직였고, 다른 시녀들은 병사들과 몬스터 인형을 조작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공격은 점점 더 거세졌어요. 결국 성벽이 깨지고, 병사들이 성 아래로 추락하게 되었죠.”

    실비아는 해설하는 건지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본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쓰러진 병사들에게 흉악한 몬스터들이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

    실비아의 설명과 함께 유아가 손을 움직여 금발의 인형을 성벽 아래로 내렸다.

    “영웅 라온 지그하르트가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병사들의 앞에 섰답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라온 지그하르트의 뛰어난 검술 앞에 몬스터들은 쓰러져나갔고.”

    “아아아악!”

    몬스터를 조종하던 시녀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몬스터 인형들을 바닥으로 던졌다.

    “끄으아아아악!”

    의외로 주디엘은 정말 칼이라고 맞은 듯 실감 나는 연기를 하며 몬스터 인형을 눕혔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한발도 물러나지 않은 채 붉은 달빛이 지고, 금색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성벽 아래에서 사람들을 지켰답니다.”

    실비아의 힘이 깃든 목소리와 함께 시녀들이 몬스터 인형들을 모두 기울였다.

    율리우스가 기어서 책상으로 다가가 달 모형을 빼고, 해 모형을 걸었다.

    “서리 고원의 차디찬 성벽을 지킬 수 있는 건 기사의 검이 아니라….”

    유아는 라온의 인형을 조종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청아하면서도 선명한 목소리가 방 안에 있는 시선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라온은 노래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이며 미소를 지었다.

    ‘또 성장했군.’

    유아의 목소리와 노래를 부르는 감각은 이전보다 한층 더 발전했다. 이젠 말 그대로 사람을 홀릴 만한 가수가 된 것 같았다.

    -파인애플 소녀! 파인애플 소녀!

    라스가 유아를 향해 동그란 주먹을 마구 흔들었다. 녀석의 주먹에서 서리가 피어나며 별빛처럼 반짝였다.

    “라온.”

    라온이 유아의 노래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옆으로 거렁뱅이 차림을 한 성자 페드릭이 다가왔다. 그가 있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집중하여 관람하고 있기에 말을 걸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성자님.”

    “네가 이룬 업적을 듣는 기분이 어떠냐.”

    “민망하네요.”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라고 하던데, 민망할 게 있나.”

    “약간 각색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저 아이는 100% 실화라고 하던데?”

    페드릭은 라온 지그하르트 인형을 조종하는 유아를 보며 인자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유아가 썼군.’

    저 이야기를 제대로 알만한 사람은 유아뿐이니, 그녀가 대본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라온은 단상 아래에서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다가 페드릭에게 몸을 돌렸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를 바로 한 채 페드릭에게 허리를 숙였다.

    “인사 같은 건 됐다.”

    페드릭은 해변에 다가오는 파도처럼 가늘게 손을 저었다.

    “네 부탁이 아니라도 도와야 할 일이었으니, 신경 쓰지 말거라.”

    그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라온이 계속 이어지는 인형극을 보며 물었다.

    “왜 이 시간에 인형극을 하고 있는 거죠?”

    아이들이 인형극을 좋아할 나이기는 하지만 잠을 잘 시간에 하는 건 이해되지 않았다.

    “저 아이들에게 밤은 공포의 시간이니까.”

    “아….”

    “아이들에게 암살자 교육을 한 시간은 밤이었다고 하더구나. 잠을 잘 시간에 고문당하고,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배웠으니, 밤이 무서울 수밖에 없지.”

    페드릭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화가 단단히 났는지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서 저 아이들은 밤에 잠을 자지 못하더구나. 잠이 들어도 바로 악몽을 꾸며 일어나서 스스로 목을 졸랐지.”

    “그렇군요….”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그랬군.’

    전생의 라온으로 살 때 겪었던 일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밤은 지옥이었고,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다.

    “이 인형극은 밤에 대한 아이들의 공포를 즐거움으로 바꾸기 위한 심리 치료다.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아이들이 흔쾌히 도와주었지.”

    페드릭은 진심을 다해 인형극을 진행하는 실비아와 시녀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효과는 있습니까?”

    “늦은 새벽이기는 하지만 이제 깨지 않고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자더구나.”

    “그럼 세뇌도 풀 수 있는 겁니까?”

    “그래.”

    페드릭이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뇌가 완성되기 전에 아이들을 구했기에 치료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눈을 내리감은 채 가슴을 쓸어내렸다. 될지 안 될지 계속 걱정했기에 페드릭의 확답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후우우우우!

    라스도 안심했는지 긴 한숨을 흘렸다.

    -다행이니라! 그 어떤 종족이라도 어린 것들은 귀하게 키워야 하느니라!

    녀석은 이번에도 마왕 같지 않은 소리를 하며 콧김을 뿜었다.

    “저 아이들의 치료가 끝나면 어떻게 할 셈이냐?”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라온은 아이들을 보며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전생의 라온이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9호가 얻지 못한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역시 물어볼 필요도 없었군.”

    페드릭은 기껍다는 듯 어깨를 두드렸다.

    “누구라도 이렇게 했을 겁니다. 딱히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별거 아니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페드릭은 그 손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기를 지웠다.

    “흥을 깨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쁜 소식도 전해야 할 것 같다.”

    “나쁜 소식이요?”

    “저 아이들 말고, 이미 세뇌가 완벽하게 걸린 사람은 구할 수 없을 것 같구나.”

    페드릭은 검게 가라앉은 허공을 올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들에게 걸린 세뇌는 뇌에 수백 미터의 철사를 휘감아서 절대 없앨 수 없는 철조망을 만드는 방식이다. 일단 완성된다면 푸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 죽기 직전의 상처를 입은 뒤 생존본능이 몸을 지배하지 않는 이상 절대 풀리지 않을 것이야.”

    “죽을 만한 상처….”

    그래서 내가 세뇌를 벗어난 건가.

    임무를 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덕분에 세뇌의 끈이 느슨해졌고, 그 틈에 불의 고리를 익힐 수 있었다.

    운과 운이 겹친 덕분에 데루스의 세뇌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이 세뇌를 만든 인간을 잡는다고 해도 푼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다. 세뇌에 걸린 사람들을 만난다면 편안하게 보내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구나….”

    페드릭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뇨. 세뇌를 건 놈들이 쓰레기일 뿐입니다.”

    라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데루스를 죽여야 이 지옥 같은 싸움이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빨리 성장해야 해.’

    지금도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지만, 더 빨리 성장해서 놈의 시간을 끝내버리고 싶었다.

    “나쁜 소식을 말했으니, 이번에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마.”

    페드릭이 손가락을 들어 심장 부근을 가리켰다.

    “세뇌는 잡지 못했지만, 레이지 웜은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이십니까?”

    “시간이 좀 필요하지만, 심장에 박힌 벌레를 제거할 방법이 만들어질 것 같구나.”

    그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거의 확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레이지 웜이 박혀 있는 자들은 데루스의 심복들이다. 그들의 입을 열 수만 있다면 데루스의 약점을 찾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밖에서 돈 좀 벌어 왔나 보군.”

    “예. 어쩌다 보니….”

    라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세피아 상회의 협조를 구한 것을 말해주었다.

    “허! 세피아 상회?”

    페드릭은 세피아 상회가 지그하르트에 붙을 줄은 몰랐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그의 외침에 인형극이 중지되고,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성자님. 갑자기…어? 라온!”

    “도련님?”

    “언제 오신 거예요!”

    “도련님이 오셨다!”

    실비아와 헬렌을 비롯한 시녀들이 불을 켜고 단상에서 뛰어내렸다.

    “얘들아! 저분이 라온 님이셔! 라온 지그하르트!”

    유아는 목소리에 오러까지 실어서 아이들에게 라온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라온?”

    “지, 진짜 영웅?”

    “라온! 라온! 라온!”

    “와아아아아아아아!”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들까지 뛰어나와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진짜 일주일 동안 싸워서 사람들을 구하셨어요?”

    “마왕 물리친 거 정말이에요?”

    “용도 잡으셨어요?”

    유아의 대본이 대체 어디까지 갔는지 마왕과 용을 잡았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그게 아니라…아.”

    저 아이는….

    라온은 고개를 젓다가 파인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었던 어린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어둠에 물들어 있던 눈동자에는 희망과 빛이 가득했고, 지하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던 친구와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밝은 얼굴을 보자, 영혼 깊은 곳에 있던 무언가가 녹아내렸다. 그건 전생의 응어리일 수도 있고, 희망일 수도 있으며, 9호가 남긴 원망일 수도 있었다.

    “그래.”

    라온은 뭔지 정확히 모를 감정을 떠나보내며 아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은 잡았지.”

    “진짜요?”

    “정말 마왕을 잡으셨어요?”

    “그래. 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호구 마왕이야.”

    “우와아아아아아!”

    아이들은 손을 들어 올린 채 환호를 질렀다.

    -라스라는 이름의 호구….

    라스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눈에 시퍼런 분노의 불을 켰다.

    -야이 자식아!

    *     *      *

    다음날 정오.

    라온은 느긋하게 점심 식사까지 마친 뒤 북망산 절벽으로 향했다.

    오전에 미리 말을 전했기에 광풍단원 모두가 절벽 아래에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들은 어제와 달리 굉장히 상쾌하고 시원한 얼굴로 절벽 아래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라온.”

    루난이 먼저 달려와 고개를 까딱였다.

    “이제 오냐?”

    버렌이 그 뒤로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예전 같으면 새벽부터 와 있었을 텐데, 게을러터졌네.”

    마르타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오랜만에 집밥을 좀 먹고 싶었거든.”

    어제 삐진 라스가 점심까지 먹고 가자고 보채서 어쩔 수 없이 아침과 점심을 별관에서 먹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만족스럽느니라.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지금은 배영을 하듯 허공에 붕 뜬 채로 히죽이고 있었다.

    라온은 절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도괴에게 다가갔다.

    “총관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귀찮은 일은 다 맡겨놓고 이제야 기어오다니,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런 것 치고는 단원들의 성취가 많이 올라갔던데요.”

    “심심해서 놔둘 수 없었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도괴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광풍단원들이 이렇게 성장한 건 그의 훈련 덕분이었기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절벽 등반하는 겁니까?”

    “어제로 충분하지 않아요?”

    “거의 10번은 떨어졌는데….”

    광풍단원들은 또 그 짓을 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끄응, 아, 안녕하세요.”

    신음이 들려서 옆을 보니, 온몸에 붕대를 감은 도리안이 와 있었다. 배 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알아보지도 못 했을 것 같았다.

    “넌 왜 그 꼴이냐?”

    “부, 부단주님 때문이잖아요!”

    “나? 내가 왜?”

    “어제 돌 던지라고 맡겨놓고 가셔서 사람들이 처음부터 제가 돌 던진 줄 알았다구요!”

    도리안은 빨리 사실을 밝혀달라며 광풍단원을 가리켰다.

    “아….”

    라온은 도리안과 광풍단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

    이제 왜 저 꼴이 되었는지 알겠다. 도리안은 적당한 때 빠지지 않고 끝까지 돌을 던지다가 버렌, 마르타, 루난에게 잡혀서 얻어터진 게 분명했다.

    “난 한 번만 하고 빠지라고 했잖아.”

    라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부, 부단주님이 대체 언제….”

    도리안이 두꺼비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분명….”

    “역시 그랬구만!”

    “저 자식이!”

    “넌 이따가 죽었어!”

    광풍단원들을 뻘게진 눈으로 도리안을 노려보았고, 도리안은 퍼래진 입술을 떨었다.

    “다들 왔냐?”

    우측에서 힘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붉은 머리가 검게 그을리고, 양 눈덩이가 시퍼렇게 멍 든 리메르가 와 있었다.

    “단주님은 왜 그 모양입니까?”

    “몰라. 인마. 빨리 시작이나 해.”

    리메르는 절벽에 등을 기대며 인생 살기 너무 힘들다고 중얼거렸다.

    ‘진짜 신기한 집단이라니까.’

    라온은 피식 웃으며 단원들의 앞에 섰다.

    “정렬.”

    오랜만에 정렬이라고 지시를 내리자, 여기저기 흩어져서 집중 못하던 광풍단원들이 일시에 모여들어 진열을 갖췄다. 눈빛 역시 당장 전투를 치러도 문제 없을 정도로 매섭게 번쩍였다.

    “일단 소개부터 하겠다. 마크 경.”

    이름을 부르자, 뒤에 빠져 있던 마크 괴튼이 앞으로 나왔다.

    “안면은 익혔지?”

    “아주 잘 익혔지. 첫 만남이 구조라서 문제지만….”

    버렌이 마크 괴튼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턱을 저었다.

    “실력 좋아 보이는데, 누구야?”

    마르타는 호승심을 느낀 듯 흑진주 같은 눈동자를 굴렸다.

    “잘 잡아줘.”

    루난은 착지가 안락했다며 고개를 꾸벅였다.

    “이분의 이름은 마크 괴튼. 기사 출신의 도객으로 아직 광풍단 소속은 아니지만, 함께 할 일이 많을 테니,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거야.”

    마크 괴튼이 광풍단에 들어오고 싶다면 넣겠지만, 그는 가신으로 있고 싶어하기에 일단 별관 소속으로 넣었다.

    “…….”

    루난은 이름과 신분에는 관심 없는지 멍하니 마크 괴튼을 바라보았다.

    “못 들어봤는데.”

    마르타는 그에 대해 모르는지 마크 괴튼이라는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렸다.

    “마크 괴튼? 설마 낙화도… 흡!”

    버렌은 낙화도라는 이명을 말하다가 입을 닫았다.

    “맞습니다.”

    마크 괴튼이 한 발 앞으로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락한 무인이라는 뜻의 낙화도라 불리는 마크 괴튼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명의 뜻을 당당하게 밝히며 미소를 지었다.

    “밑바닥보다도 더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라온 님 덕분에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크 괴튼은 한참 어린 광풍단 무인들에게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환영합니다!”

    버렌은 무언가 동질감을 느낀 듯 가장 먼저 박수를 치며 시원하게 웃었다.

    “이따가 한 판 붙어보죠!”

    “구슬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

    마르타와 루난은 각자 본인다운 말을 해댔고, 다른 광풍단원들도 웃으며 환호를 보냈다.

    짝!

    라온은 마크 괴튼이 광풍단원들과 통성명을 끝냈을 때 크게 손뼉을 쳤다. 광풍단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진중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사는 끝났으니 어제에 이어 절벽을 오르는 훈련을 계속한다. 모두 자리를 잡도록.”

    검사들 사이를 이동하면서 그들의 마나회로를 차단했다.

    “그래.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고생을 좀 해야… 어?”

    낄낄 웃던 리메르의 목을 눌러서 마나회로를 막자, 그가 눈을 부릅뜬 채 뒤를 돌았다.

    “라, 라온아? 실수를 한 거 같은데? 나도 오러를 막은….”

    “실수 아닙니다. 단주님도 하셔야죠.”

    “얌마! 난 단주….”

    “무력이 원상복구 될 때까지 제게 훈련 맡긴다고 하셨잖습니까.”

    라온이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 짬밥에 저 꼬맹이들이랑 훈련을 같이 할 수는 없잖아!”

    “단주님. 배에 기름기가 낀 게 보이네요. 오러 연공만 하느라, 육체 훈련 빼먹으셨죠?”

    “윽, 그, 그건….”

    리메르가 어깨를 움찔하고서 시선을 내렸다.

    “한 번이라도 정상에 올라오시면 빼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물론이죠.”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광풍단 전체를 내려보았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내 방해를 뚫고 한 번이라도 정상에 올라온다면 이 훈련을 빼주도록 하지.”

    “오오!”

    “좋았어!”

    “이제 익숙해졌는데! 오늘 끝내자고!”

    광풍단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할 수 있다고 외쳤다.

    라온은 검사들의 환호를 들으며 옆에 선 도괴에게 고개를 숙였다.

    “총관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참. 너 때문에 별 걸 다하는구나.”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면서 절벽 쪽으로 다가갔다. 마크 괴튼도 훈련을 해야 하기에 도괴가 오늘의 안전요원이었다.

    “그럼 이따 보자고.”

    라온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서 단숨에 절벽 정상으로 올라갔다. 절벽의 꼭대기에 도착한 후 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훈련 시작!”

    “가즈아!”

    “이 지랄맞은 훈련은 오늘부로 끝이야!”

    “으아아아아!”

    훈련 시작을 외치기 무섭게 광풍단원들이 메뚜기처럼 펄쩍 뛰어서 절벽에 달라붙었다. 해가 떠 있고 이미 몇 번 왕복을 했기 때문에 올라오는 속도가 어제보다 2배는 빨랐다.

    “빠르네. 그래봤자지만….”

    라온은 피식 웃으며 비수 형태의 나무 조각을 꺼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나무 조각을 끼운 채 그대로 아래를 향해 쏘아냈다.

    피이이이잉!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쏘아진 나무 비수가 가장 앞에서 올라오던 크레인의 광대뼈를 후려쳤다.

    “꾸엑! 왜 또 나부턴데요오오오오!”

    크레인은 두꺼운 비명을 지르고서 그대로 밑으로 추락했다. 도괴는 한숨을 내쉬고서도 움직여서 그를 받아주었다.

    “이게 아닌데.”

    라온은 짧게 혀를 차고서 품에서 책자를 하나 꺼냈다. 어제 받았던 백뢰비도의 무학서였다.

    “아, 손 모양이 조금 잘못됐네.”

    -네, 네놈 설마….

    라스가 라온을 보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저 녀석들로 비도를 날리는 연습을 하려는 것이냐?

    ‘그래.’

    라온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좋은 목표물을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

    비도 수련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움직이는 목표를 맞추는 것이다. 전생에서 비도술을 익힌 덕분에 정지한 물체를 건너뛰고 바로 움직이는 목표부터 노리기로 했다.

    ‘쟤들은 감각과 대응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고, 난 맞추는 훈련을 하면 일석이조잖아.’

    -뭐 이런 미친놈이….

    라스는 진짜 또라이가 됐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게 바로 가성비 훈련이라는 거야.’

    라온은 피식 웃으며 두 번째 비도를 날렸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날아간 비도가 광풍단원의 겨드랑이를 후려쳤다. 급소를 공격당한 검사가 꽥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아직 좀 부족하네.”

    이번에는 정확성이 늘었지만 속도가 조금 부족했다. 오러를 조금 더 강하게 주입하며 올라오는 광풍단원을 향해 나무 비도를 날렸다.

    퍼버버버벅!

    무학서와 불의 고리를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했기에 비도는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해진 채 광풍단원들읊 폭격하기 시작했다.

    “으리야아아아!”

    신명나게 광풍단원들을 추락시키고 있을 때 어느새 리메르가 절벽의 중간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는 내부의 오러 대신 주변의 바람을 이용하여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이건 반칙이지.’

    라온이 고개를 저으며 비도에 오러를 가득 담아 리메르를 향해 쏘아냈다. 벼락처럼 떨어진 비도가 그의 이마를 치려는 찰나 녹색 바람이 일어나 비도의 방향을 바꾸고 위력을 줄였다.

    “라온아! 넌 아직 어리단다!”

    리메르는 이게 바로 어른의 대응력이라며 히죽거렸다.

    “흐음….”

    몇 번 더 비도를 날렸지만, 리메르는 바람을 이용하여 비도의 위력을 줄인 뒤 곱등이처럼 펄쩍 뛰며 절벽을 타고 올랐다.

    “어쩔 수 없네.”

    라온은 당황하지 않은 채 검을 뽑았다. 제천검의 칼날 위로 만화공 회천을 일으켰다.

    -어…?

    라스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네, 네놈 설마….

    ‘그 설마가 맞아.’

    빙긋 웃으며 리메르를 향해 칼날에 어린 불꽃을 쏘아냈다.

    콰아아아아!

    원형의 톱날처럼 회전하는 칼날이 리메르가 타고 오르던 절벽의 모서리를 통째로 부숴버렸다.

    “끄악!”

    손과 발을 짚고 있던 벽이 떨어져 나가자, 리메르의 눈동자가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검을 안 쓴다는 말은 안 했으니까.”

    “라온! 이 미친 자식아아아아아!”

    리메르도 오러를 사용하지 못했기에 절벽과 함께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

    “저, 저거 왜 또라이가 되어서 온 건데?

    “도리안! 쟤 왜 저래!”

    “원래 저랬어요!”

    도리안은 마르타에게 손을 둥실거리며 저었다.

    “이건 반칙이지.”

    라온은 피식 웃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다시 비수를 날리려고 할 때 뒤편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사람이 걸어 올라왔다.

    “부단주님. 오랜만입니다.”

    뒤를 돌자, 큼지막한 상자를 든 비연회주 채드가 고개를 숙여왔다.

    빠아아악!

    라온은 들고 있던 비수로 도리안의 이마를 맞춘 뒤에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좋은 소식이 있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채드가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야수궁에서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야수궁의 선물….”

    라온은 채드가 내려놓은 상자와 열심히 절벽을 오르는 광풍단원들을 번갈아 보며 흥겨운 미소를 지었다.

    ‘이게 있으면 훈련의 강도를 올려도 되겠는데?’

    -…진짜 애들 죽일 생각이냐?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