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74화 (374/653)

제374화

-뭐, 뭐냐?

라스가 허공으로 떠올라 글렌을 위아래로 노려보았다.

-두 개라니! 이 얼음덩어리 영감까지 왜 이러는 것이냐! 왜 요놈만 보면 못 퍼줘서 안달이야!

녀석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게 맞냐며 꽥 소리쳤다.

“가주님.”

라온은 라스를 무시하고, 다시 글렌의 앞에 섰다.

“방금 하신 말씀, 진심이십니까?”

“그렇다.”

글렌이 거만한 자세로 턱을 끄덕였다. 그의 긴 손가락이 단상 아래에 있는 셰릴과 로엔 그리고 리메르를 향했다.

“저 녀석들을 보아라. 네게 무엇 하나 쥐어서 돌려보내지 않으면 밤새 떠들어 댈 기세이니, 적당히 내어줄 수밖에.”

“그런데 왜 두 개를 말하라고 하신 겁니까?”

금패라는 가장 큰 보상을 주었으니, 하나만 말하라고 해도 될 텐데, 그는 원하는 것 두 가지를 말하라고 했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네가 한 일이 워낙 기… 시끄럽고 빨리 원하는 것이나 말해라!”

글렌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손을 휘저었다.

“언제까지 날 깨어있게 만드려는 것이냐.”

조금은 따스해졌던 그의 기세가 다시 차갑게 굳으며 어깨를 짓눌러왔다.

-이 영감탱이야!

라스가 글렌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렇게 화를 낼 거면 처음부터 주지 말라고!

녀석은 너까지 호구가 될 줄은 몰랐다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죄송합니다.”

“뭐래.”

라온이 고개를 숙일 때 뒤에서 리메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불러놓고, 못 잔다는 건 무슨 말이야? 너는 이해가 가는 상황… 커헉!”

“닥쳐.”

리메르가 어깨를 으쓱일 때 셰릴이 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리메르….”

글렌은 당연히 그 말을 들었기에 죽일 듯이 리메르를 노려보았다.

“음….’

라온은 더 서늘해진 분위기에 살짝 손끝을 떨었다.

‘맞는 말이지만, 바보네.’

리메르는 분명 합당한 말을 했지만, 가주 앞에서 대놓고 할 소리는 아니었다. 볼 때마다 신기한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라….’

세피아 상회의 조력을 얻은 덕분에 금패를 얻을 건 예상했지만, 추가적인 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들을 떠올렸다.

“먼저 비도에 관한 무학서가 필요합니다.”

“비도? 이제 와서 비도를 배우겠다고?”

“미숙하지만 익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비도에 관한 무학서를 원하는 것이지?”

“세피아 상회에서 만난 대륙 장인 보르고스에게 비도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비도에 걸맞은 무학을 익히고 싶습니다.”

알고 있는 비도술은 그림자 시절에 익히고 있던 것들이다. 그걸 사용할 수는 없기에 글렌에게 비도술 무학서를 얻어 아예 새로운 무학을 만들 생각이었다.

“보르고스라면 회색 망치 길드의 장을 말함인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글렌은 빨리 말하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라온은 조금 전에 설명하지 않았던 보르고스와 거래를 했던 일까지 말해주었다.

“…그렇군.”

글렌은 갑자기 등을 깊게 파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원하는 무학서는 있느냐?”

“가주님이 추천해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는 금패로도 얻기 힘든 광아검이라는 검술을 은패 하나에 넘겨주었다. 이번에도 그런 실수를 하기를 바라며 맡겼다.

“커흠! 그럼 내가 적당한 것으로 골라주도록 하지.”

글렌이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번째 요구는 무엇이냐.”

“쓸만한 도를 구하고 싶습니다.”

라온이 허리춤의 검을 한 번 보고서 고개를 숙였다.

“도? 검을 쓰는 녀석이 왜 도를 구하려는 것이냐.”

“제가 아니라, 제 가신이 쓸 무기입니다.”

“가신이라고?”

“이것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귀찮게도 구는군. 빨리 사정을 말해라.”

글렌은 말과 달리 눈동자에 은은한 빛을 발하며 손짓을 했다.

“예. 후계자 시험을 치르기 전에 팔렌 세피아와 문제가 생겨서….”

라온은 마크 괴튼을 얻게 된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그 마크 괴튼이라는 아이가 널 따른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별의별 일을 다 치르고 왔군.”

글렌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다만 네가 그를 받아들인 이유를 모르겠다. 실패자가 아닌가.”

“길고, 어두운 실패를 해봤기에 앞으로 성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으니까요.”

마크 괴튼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실제 무력이 강해진다고 확답은 못하지만, 그의 정신은 분명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글렌은 어딘가 씁쓸한 눈빛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금빛 차원이 열렸다.

우우우웅!

장대하게 펼쳐진 차원의 문에서 수십 개의 도가 튀어나와 눈앞을 가득 메웠다. 하나 같이 명도라 불릴 만한 무기들이었다.

“도는 네가 직접 고르거라.”

“알겠습니다.”

라온은 마크 괴튼이 본래 사용하던 무기와 비슷한 형태의 검은색 도를 골랐다. 도의 날에 흑선도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무학서만 남았군.”

글렌이 두 번째로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가득 찼던 도가 차원 속으로 사라지고, 두 개의 책이 튀어나왔다.

“가져가라.”

“어? 이건 2권인데….”

“세트이니라.”

“세트요…?”

라온이 글렌에게 받은 책을 살폈다. 첫 번째 무학서의 이름은 <백뢰비도>였고, 두 번째 책의 이름은 <거폭비>였다. 둘의 이름은 너무 달라서 절대 세트가 될 수 없었다.

“백뢰비도는 속도, 거폭비는 힘 위주의 비도술이다. 너라면 그 두 비도술을 합쳐서 새로운 것을 만들 테니, 세트라는 것이다. 아닌가?”

글렌의 말이 갑자기 1.5배가량 빨라졌다. 아니라고 하면 뺏을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세, 세트 맞네요. 감사합니다.”

어쨌든 좋은 일이다. 글렌에게 진심을 담아 허리를 굽혔다.

-이이이익!

라스가 몸을 쭉 늘려서 글렌의 얼굴로 다가갔다.

-이러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지 않느냐! 이 영감이 호구 중의 호구. 흑우이니라!

녀석은 글렌의 멱살을 쥐고 마구 흔들었다. 물론 아무런 영향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여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라온은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글렌에게 한발 다가갔다.

“가주님. 먼지가 묻어있습니다.”

먼지를 떼어 주는 척하면서 글렌의 멱살을 쥐고 있는 라스를 내팽개쳤다.

“음….”

글렌은 해를 입힐 의도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섬뜩할 정도의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받을 것을 다 받았으면 이만 가보도록.”

그는 더욱 차가워진 음성으로 파리를 쫓듯이 손을 저었다.

“예.”

다시 고개를 숙이고서 단상 위에서 내려왔다.

“두 분도 정말 감사합니다.”

응원해주고, 칭찬해주었던 셰릴과 로엔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가 뭘 했다고. 다 네가 한 일이지.”

“맞습니다. 전부 부단주님의 공이지요.”

두 사람은 빨리 가서 쉬라며 미소를 지었다.

“야! 나는!”

홀로 인사를 받지 못한 리메르가 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 계셨습니까?”

“계, 계셨습니까아아아? 얌마! 나 아니었으면 너 그거 못 받았어! 돈을 퍼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조금 장난을 쳤을 뿐이지만, 그 말이 맞았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주님. 내일 뵙겠습니다.”

절벽에서.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리메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크으! 그래. 잘 가라.”

리메르는 삐진 게 풀린 듯 방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라온은 도 한 자루와 두 권의 무학서 그리고 금패를 챙긴 뒤 알현실을 나섰다.

글렌은 라온이 나간 뒤 1분이 지난 후에야 등을 옥좌에 기댄 채 긴 숨을 뱉었다.

“후우우우….”

그는 밑에 있는 셰릴과 로엔, 리메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보았나?”

“세피아 상회를 움직이다니, 나가실 때마다 대형 사고를 치시는군요. 허허!”

“점점 더 그릇이 커지는 느낌이네요.”

로엔과 셰릴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라! 라온의 무위가 마스터 상급에 올랐지 않나! 이 짧은 시간에 결국 상급에 도달하다니, 저 아이의 한계가 어디까지 모르겠어.”

글렌의 굳어진 눈동자가 봄눈 녹듯 풀렸다.

“저렇게 뛰어나고, 현명하며, 착한 아이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야.”

그는 눈앞에 라온이 있다면 끌어안을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기세가 달랐군요.”

“세피아 상회와의 거래가 너무 대단한 업적이다 보니,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로엔과 셰릴은 이제야 라온의 기운이 떠올랐는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건 보았느냐?”

글렌은 지치지도 않는 듯 들뜬 눈동자로 처음과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대륙 장인 보르고스를 압박해서 돈만이 아니라, 비수 제작까지 맡긴 건 놀랍더군요.”

“낙화도를 데리고 가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를 얻은 건 최초입니다.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는 뜻이죠.”

“둘 다 아니야. 이번에야말로 세피아 상회와의 거래를 말씀하시는 거라고!”

로엔과 셰릴, 리메르는 각자가 생각한 글렌이 라온을 칭찬할 만한 부분을 외쳤다.

“그따위 것들 말고! 조금 전 라온이 먼지를 떼어 주는 걸 보았냐는 말이다! 그 짧은 순간에 먼지를 발견하고 치워주지 않았느냐! 어찌 그리 따뜻한 녀석인지….”

글렌은 다른 무엇보다도 본인의 옷에 묻은 먼지를 치워준 게 기특하다는 듯 기꺼운 미소를 흘렸다.

“어….”

“아….”

셰릴과 로엔도 그런 쪽으로는 상상 못 했다는 듯 찢어질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에휴, 유치해서 같이 못 놀겠네.”

리메르는 지친다며 등을 돌렸다.

“저 먼저 가볼게요. 오늘 일찍 자야 내일 그 괴물 녀석을… 엥?”

그가 알현신 출구로 향하려 할 때 셰릴과 로엔이 불쑥 나타나 양팔을 붙잡았다.

“뭐, 뭐야! 또 왜!”

“아까 가주님이 너랑 좀 놀고 싶다고 하셔서.”

“무슨 헛소리야! 난 아무것도 안 했다고! 놔!”

“허허허!”

로엔은 피가 안 통할 정도로 팔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아, 그렇게 웃지 좀 마요! 무서워 죽겠으니까!”

리메르가 버둥거리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두 사람의 팔은 억센 덩굴처럼 풀리지 않았다.

쿠르르릉!

머리 위에서 들린 굉음에 입술을 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

글렌의 손짓을 따라 붉은 벼락이 칼날처럼 갈리며 알현실 천장 전체로 번졌다. 괴수가 울부짖는 듯한 뇌성에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오늘도냐고….”

리메르의 허무한 목소리와 함께 벼락이 내리꽂혔다.

“끄아아아악!”

*     *      *

북망산 절벽 정상.

도리안 주변은 전당포라도 되는 듯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그는 꺼낸 물건 중에서도 큼지막한 것들을 절벽 아래로 마구 쏟아부었다.

“으아아악!”

“끄어어억!”

“라온 이 빌어먹을 자시이이이익!”

그때마다 밑에서 광풍단원의 비명이 들려왔다.

“너, 너무 재밌어.”

돌이나, 큼지막한 물건을 떨어뜨릴 때마다 단원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즐거워서 계속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도리안은 히죽 웃으며 배 주머니에서 마차 바퀴를 꺼냈다. 자마리 산맥에서 구한 사람들을 태웠던 마차에 들어가는 거대한 바퀴였다.

“에라이!”

크레인이 올라오는 방향을 향해 마차 바퀴를 던졌다.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바퀴가 크레인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으아아아악!”

손에 힘이 풀린 크레인은 마차 바퀴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라온! 이 개자식아!”

그는 라온에게 욕을 퍼부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욕먹는 게 아니니, 부담이 없다니까.”

광풍단원들은 떨어질 때마다 라온만을 욕했기에 두려움이 없이 계속 바위와 물건들을 던질 수 있었다.

도리안은 낡은 의자나, 책상까지 던져서 올라오는 광풍단원들을 계속 떨어뜨렸다.

시간조차 잊고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때 바로 밑에서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

깜짝 놀라서 급하게 절벽을 살폈다. 버렌과 마르타 그리고 루난이 코앞까지 올라와 있었다.

‘뭐, 뭐야! 이 사람들 왜 여기에 있어!’

아까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버텨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안 돼! 걸리면 죽을 거야!’

정작 단원들을 계속 괴롭혔던 라온은 이곳에 없다. 걸렸다간 얻어터질 게 분명했다.

“이이익!”

도리안이 빠르게 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금까지 중 가장 큰 바위와 통나무를 꺼냈다.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

세 사람이 올라오고 있는 방향으로 통나무와 바위를 굴렸다.

쿠구구구구!

절벽이 무너질 듯 흔들리며 강렬한 충격이 버렌과 루난, 마르타를 휩쓸었지만, 세 사람은 절벽에 주먹을 박아넣은 채 끝까지 버텨냈다.

“안 돼!”

도리안이 다급하게 팔두마차를 통째로 꺼내려고 할 때 절벽 위로 손 여섯 개가 올라왔다. 그 후에 올라오는 건 섬뜩한 눈동자 세 쌍이었다.

악마처럼 휘적이며 돌아가던 눈동자들이 이쪽을 향했다.

“도리안.”

“라온이 아니라, 네놈이었냐.”

“죽인다!”

루난, 버렌, 마르타가 동시에 절벽 위로 올라와서 다가온다. 낫을 든 사신이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저 아니에요! 부단주님이랑 단주님이 돌 던지다가 도망가셨다구요!”

도리안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뒤로 기며 고개를 저었다.

“음?”

“도망갔다고?”

루난과 마르타가 멈춰서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야.”

버렌은 도리안이 아니라, 절벽에 늘어놓았던 장비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는 그중에서 깔때기 같은 아티팩트를 들며 눈동자에 불꽃을 일으켰다.

“이거 목소리 변환하는 아티팩트잖아! 전부 저 자식이 라온의 목소리로 한 거였어!”

“그, 그건 그냥 늘어놓은 것뿐이에요! 전 진짜 아니… 캬학!”

“닥쳐!”

도리안은 마르타의 주먹에 얻어맞고 땅에 처박혔다.

“밟아!”

“으아아아아아!”

“…….”

마르타와 버렌, 루난이 도리안을 밟기 시작했고, 뒤늦게 올라온 다른 광풍단원들도 그 숭고한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아아아아아악!”

알현실에 이어 북망산의 한쪽 절벽 위에서도 누군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

라온은 본관을 벗어나며 귀를 매만졌다.

“누가 내 욕을 하나. 계속 귀가 간지럽네.”

신기하게도 가주전을 벗어난 이후부터 양쪽 귀가 모두 간지러웠다.

-본왕이 하고 있느니라!

라스가 불쑥 튀어나와서 콧잔등을 찌푸렸다.

-네놈과 네놈에게 퍼먹이는 호구들을 욕하고 있었느니라!

‘역시.’

라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내 욕을 하고 있었군.’

얼음꽃 팔찌 내부에서 가느다란 소리와 진동이 울렸는데, 라스는 그 안에서 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참으로 일관된 녀석이었다.

-절벽으로 돌아갈 것이냐?

라스가 광풍단과 도리안이 있는 절벽 쪽을 바라보았다.

“음….”

라온이 그 시선을 따라가며 입맛을 다셨다.

‘걔들도 쉬어야 하니까. 이쯤 하는 게 좋겠지.’

원래는 바로 절벽으로 가서 돌멩이를 던지려고 했지만, 좋은 보상을 받았기 때문인지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해 뜰 때까지 시간은 남았지만 봐주기로 했다.

‘도리안이 알아서 잘하겠지.’

도리안도 적당히 돌을 던지고 빠졌을 테니, 지금쯤이면 모두 숙소로 돌아갔을 것이다.

-으음, 아닐 텐데.

라스는 그럴 수가 없다고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집으로 가는 것이냐?

집이라….

마왕인 라스가 별관을 집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파인애플 소녀에게 피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거라! 본왕은 아까부터 배가 고팠느니라!

‘시간을 좀 봐라. 이 식충아. 네 파인애플 소녀 지금 자고 있다고.’

-시, 식충이? 운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놈이 감히!

‘그 운을 제일 퍼주는 건 어딘가의 마왕님이시구요.’

-그놈은 또 누구냐! 어떤 멍청한 마왕 놈이야!

‘….’

어벙한 라스를 놀리면서 별관으로 걸어가는데, 항상 비어있던 별관 근처 저택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 온 건가… 어?’

누군가가 입주했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려 할 때 저택 안에서 모를 수가 없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어머니와 시녀들이 저기 있는 거 같은데?’

-파인애플 소녀도 있느니라!

라스도 빨리 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건물을 쭉 살피던 라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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