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73화 (373/653)

제373화

“단주님.”

라온은 손에 쥔 돌멩이를 허공에 던지며 입맛을 다셨다.

“급한 호출인가요?”

“아니. 조금 여유는 있지.”

리메르는 바로 달려갈 정도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하던 것만 하고 갈게요.”

가는 미소를 지으며 돌멩이를 가볍게 말아 쥐었다.

“대체 뭘 하는 건데?”

리메르는 지금 도착했기에 정확히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간단한 절벽 등반 훈련이죠.”

“간단?”

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밑을 향해서 손에 든 돌멩이를 내던졌다.

파아아아앙!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리자마자, 절벽 중간에서 광풍단원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꾸에에에엑!”

돼지 멱따는 괴성과 함께 광풍단원 한 명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크 괴튼이 부드럽게 잡아 준 덕분에 광풍단원은 아무런 부상도 없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은 커 보였지만.

라온은 뒤를 돌아 리메르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근본적인 훈련이라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어디 가서 이런 미친 짓을 배워오는 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리메르는 방금 떨어진 광풍대원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재밌어 보여!”

그는 히죽 웃으며 바닥에 있는 돌을 쥐었다.

“나도 해봐도 되지?”

역시 리메르. 재미가 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맞히는 게 다가 아니에요. 급소를 노려서 감각과 대응력을 키워주는 게 목적이니까.”

광풍단원을 단순히 고생시키고, 괴롭히기 위해서 이 훈련을 하는 게 아니다.

돌멩이를 단원의 약점을 향해 던져서 그들의 기감을 키우고, 대응 경험을 쌓아주기 위한 훈련이었다.

“어…?”

도리안은 라온의 말을 들으며 입을 떡 벌렸다.

‘그냥 괴롭히는 게 아니었어?’

맨날 헤죽거리면서 돌과 나무를 던지길래 심심해서 저러나보다 했는데, 지금 저 말을 들으니까 다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크레인을 상대할 때도 약점이 느껴졌어.

크레인이 방어하기 위해서 검을 들어 올릴 때 신기하게도 약한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을 향해 수련검을 내리치자, 크레인은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이마를 헌납했다.

‘전부 다 생각이 있으셨구나.’

역시 부단주님이야.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도리안은 속으로 감탄을 하고서 라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왜 갑자기 인사를 해? 너 내 욕했어?”

라온은 갑자기 인사해온 도리안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아, 아니에요! 절대 아닙니다!”

도리안은 눈코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흔들었다.

“이상한 생각 말고, 단주님께 돌멩이나 드려.”

“아, 예….”

그는 한숨을 흘리고서 리메르에게 돌멩이를 건네주었다.

“내가 왕년에 지그하르트의 날다람쥐라고 불렸지.”

리메르가 돌멩이를 매만지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왜요?”

“잘 도망쳐서!”

“그거 지금 상황이랑 아무 상관없지 않나요?”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그가 비튼 허리를 풀며 돌멩이를 내던졌다. 바람의 오러가 실린 돌멩이가 버렌의 이마를 내리찍고 바스러졌다.

“끄헉!”

두 번째로 이마를 얻어맞은 버렌은 짧은 비명을 지르고서 뒤로 넘어갔다. 힘이 빠진 듯 그대로 추락했다.

“버렌 니이이이임!”

“아아악! 버렌 님이 지금 가시다니!”

“라온! 이 악마 같은 자식!”

“이러다 진짜 다 죽어! 다 죽는다고!”

조장을 잃은 3조 조원들이 꽥꽥 소리를 질렀다.

“어때?”

리메르가 팔을 들어 올리며 시원하게 웃었다.

“나쁘지 않네요.”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리메르에게 쪼갠 돌멩이를 넘겨주었다.

“시작하시죠.”

“오냐!”

단주와 부단주. 사사롭게는 사제가 되는 두 사람은 사이좋게 돌멩이를 던져서 절벽을 기어오르는 광풍단원을 떨어뜨렸다.

콰과과과과!

광풍단원들이 단련된 육체로 절벽을 제집처럼 기어올랐지만, 비처럼 쏟아지는 돌멩이에 후려 맞아 균형을 잃고 하나씩 추락했다.

“커헉!”

마르타가 매서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십수 개의 돌멩이를 피했지만, 결국 라온과 리메르의 합공에 격추되었다.

“이 개자식아아아아아!”

그녀가 남긴 비명이 차디찬 절벽을 울렸다.

“이제 루난만 남았네.”

리메르가 절벽 중앙에 매미처럼 붙은 루난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 쟤 설마 자는 거야?”

“아까도 자더군요.”

“저러다가 수면검 개발하는 거 아니냐?”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서 루난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후우우웅!

바람의 오러가 실린 돌멩이가 벼락처럼 쇄도했지만, 루난은 눈을 감은 채로 어깨를 틀어 피해냈다.

“어쭈!”

이렇게 가볍게 피할 줄은 몰랐는지, 리메르는 소매를 걷어붙인 채 연속해서 돌멩이를 내던졌고, 루난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도마뱀처럼 기어가며 돌을 피해냈다.

라온은 열심히 돌을 던지는 리메르를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지금 열심히 던지세요.”

단주님도 내일부터는 절벽을 타야 하니까.

리메르가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연공만 하고 있기에 체력과 체격이 한참 부족하다.

내일이 되면 그도 저 절벽에 붙어있게 될 것이다.

“아.”

내일 괴성을 지를 리메르를 떠올리고 있을 때 루난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결국 리메르의 돌에 얻어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근데 저 밑에서 받아주는 아저씨는 누구야?”

리메르는 이제야 마크 괴튼의 정체가 궁금해졌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가신이 될 사람입니다.”

“가, 가신? 저 사람 마스터잖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마스터가 가신? 너 진짜 정체가 뭐냐?”

당황한 듯 리메르의 입이 가늘게 떨렸다.

“정말 우연이에요. 가주님께 가서 설명 드릴게요.”

라온은 리메르에게 손을 젓고서 절벽 끝으로 다가가 밑을 내려다보았다.

“전부 다 떨어졌으니까! 다시 올라와!”

오러를 실은 채로 밑을 향해 소리쳤다.

“훈련을 그만두고 싶으면 한 명이라도 올라오든가! 해가 뜨든가 둘 중 하나다!”

“끄아아아아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밑에서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개자식아!”

“두고 봐! 올라가면 죽여버릴 거야!”

“절대 가만 안 놔둬!”

“가자! 저거 죽여버려!”

광풍단원들은 돌멩이에 얻어맞은 게 분했던지 악을 지르며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네가 있어야 광풍단에 활력이 생긴다니까.”

리메르는 빠르게 올라오는 광풍단원을 보며 낄낄 웃었다. 내일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로.

라온이 그런 리메르를 바라보다가 도리안의 어깨를 잡았다.

“도리안.”

“네? 네!”

두 사람의 광기를 본 도리안은 입술을 떨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어떻게 하는지 봤지?”

“도, 돌 던지는 거요?”

“그래. 난 가주님께 가볼 테니까. 이번에는 네가 던져.”

“제, 제가 어떻게….”

“어차피 밑에 마크 경이 있으니까. 아무거나 다 던져도 돼.”

“맞아. 그냥 던져도 어차피 다 맞는다고.”

라온만이 아니라, 리메르도 간단할 거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부탁한다.”

두 사람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서 반대편 길을 통해 절벽을 내려갔다.

도리안은 부리나케 절벽을 올라오는 광풍단원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되, 될까?”

올라오는 광풍단원이 무섭지만, 저들을 저렇게 만든 라온이 더 무서웠다.

“에라 모르겠다!”

고개를 마구 흔들고서 배 주머니에서 길고 두꺼운 통나무를 꺼내 절벽에 굴렸다.

콰과과과!

절벽이 뭉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통나무가 광풍단 셋을 떨어뜨렸다.

“끄아아아악!”

“제기랄!”

“빌어먹을 라온 지그하르트으으으!”

광풍단원들은 떨어지면서도 라온의 욕을 뱉었다.

“재, 재밌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재밌다.

떨어질 때 욕을 먹는 것도 라온이었기에 아무런 부담도 없었다.

도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배 주머니에서 네모난 바위, 뾰족한 바위, 동그란 바위를 쏟아냈다.

“다 떨어져라!”

그가 광풍단원을 향해 돌과 잡동사니를 쏟아붓는 모습은 어딘가 라온을 닮아 있었다.

“크헤헤헤!”

억지로 몸을 늘려서 버티던 라스는 도리안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아니면 그놈만 만나면 다 미치는 걸까.

*     *      *

라온은 리메르가 열어준 문을 넘어 알현실로 들어갔다.

‘차갑군.’

올 때마다 느끼지만, 알현실은 지그하르트 내부에서도 가장 차갑고 오싹한 장소였다.

중앙의 카펫을 밟으며 걸어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좌측에는 로엔, 우측에는 셰릴이 서 있었고 단상 위에는 글렌이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늘도 건조한 눈동자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라온이 들리지 않게 혀를 차고서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선물을 준다고?’

선물은커녕 주먹이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인 분위기였다.

-저 영감은 왜 맨날 같은 표정이냐? 심통이 단단히 난 얼굴이니라.

‘나도 몰라.’

라온은 심호흡을 한 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일어나라.”

제대로 인사를 하기도 전에 일어나라는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허리 펴고 머리를 들어 올렸다. 글렌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싸늘했다.

“왜 복귀하자마자 찾아오지 않았지?”

“늦은 시간이라 실례가 될 것 같았습니다.”

밤늦게 찾아갔다간 좋지 않은 인상을 줄 것 같아서 내일 가려 했는데, 그게 더 독이 된 것 같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글렌이 주먹으로 턱을 괴며 오만한 눈빛을 쏘아냈다.

“의문인 점이 있어서 널 찾았다.”

“말씀하십시오.”

“세피아 상회주가 기반 시설과 도로망 확보를 위해 조만간 찾아온다고 하더군. 상회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게냐.”

그는 아직 세피아 상회에서 있었던 일을 모르는지 눈동자를 차갑게 가라앉혔다.

‘왜 화가 나셨는지 알겠네.’

그는 보고도 없이 기반 시설의 확대를 결정한 것 때문에 짜증이 돋은 것 같았다.

‘역시 먼저 물어봤어야 했나.’

가문에 좋은 일이라고 해도 가주는 글렌이다. 먼저 보고를 하는 게 맞는 일이긴 했다.

“조금 길어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말해보아라.”

글렌은 괜찮다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피아 상회에 돌아가자, 상회주인 아디스 세피아가 후계자 선정 시험을 한다고 했고….”

라온은 글렌과 그의 사람들에게 세피아 상회에서 일어난 후계자 경쟁에 대해서 모두 말해주었다.

흑탑과의 전투는 말했지만, 그림자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암살자와 독인들이라고만 말했다.

“…그렇게 되어서 상회주가 직접 지그하르트에 와서 기반 시설과 도로망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 같습니다.”

세피아 상회가 지그하르트에 서겠다고 한 일과 가장 먼저 한 요구가 지그하르트의 기반 시설과 도로망 확대라는 말에 알현실이 침묵에 잠겼다.

“저, 정말 세피아 상회가 지그하르트의 뒤에 서겠다고 했어?”

셰릴이 입을 떡 벌렸다.

‘세피아는 지금까지 중립이었는데….’

수많은 단체들이 세피아 상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들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전부 손님과 상인의 관계만 유지하던 그곳이 지그하르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대단하군요.”

로엔 역시 세피아 상회의 지지를 받아서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거기다 낙화도가 가신이라니, 마스터를 얻어서 돌아온 거잖아!”

“그러게요. 난 사람은 다르군요.”

낙화도를 얻은 것도 놀라운지 두 사람은 연신 감탄을 흘렸다.

“역시 내 돈줄답다!”

리메르는 라온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한 표정만 보면 본인이 무언가를 크게 해준 듯한 모습이었다.

라온은 세 사람의 칭찬을 들으면서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라온 지그하르트.”

붉은 카펫을 보고 있을 때 글렌의 부름이 들렸다. 시선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세 사람과 달리 싸늘함이 깃들어 있었다.

“왜 세피아 상회주에게 지그하르트의 개발을 부탁한 거지?”

글렌의 눈빛이 속을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롭게 빛났다.

“그가 마음을 뺏긴 건 지그하르트가 아니라, 너다. 네 잇속만 챙길 수도 있었는데, 어째서 지그하르트의 발전을 원한 것이냐.”

그리 길지 않은 질문이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머리를 굴려봤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제일인 것 같았다.

“전 솔직히 지그하르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광풍단에는 정을 주었지만, 가문 자체에는 별 감정이 없었죠. 다만 한 사건을 통해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라온이 그날의 기적을 떠올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납치된 저를 구하기 위해서 얼굴만 알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제 안의 무언가가 변했습니다. 가문이 뭔지, 세력이 무엇인지를 조금 알 것 같더군요.”

창밖으로 쏟아지는 붉은 달빛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부터 나 자신이 아닌, 가문의 일이 조금씩 떠올랐습니다. 가문이 무시당하면 제가 화가 났고, 가문이 지면 제가 나서서 이겨주고 싶었습니다.”

“흐음….”

글렌은 별 감흥 없는 눈으로 턱을 쓸어내렸지만, 말을 끊지는 않았다.

“이번 요구 역시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현재 지그하르트는 육황 중에서. 아니, 이름이 난 세력 중에서 가장 척박한 땅에 세워져 있습니다. 1년 내내 춥고, 폭풍이 불고, 몬스터는 가득해서 폐쇄적이기 그지없죠.”

라온이 손가락으로 알현실 바닥을 가리켰다.

“폐쇄적이라는 말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통용되는 말입니다. 가문의 검사들과 사용인들은 쉬거나, 즐길 곳이 마땅치 않아 주말에도 숙소에만 박혀 있습니다. 유흥지가 있지만, 그곳이 그곳이다 보니, 지겨워서 움직이지 않고, 돈은 쌓이게 되죠.”

“맞아! 맞아! 술집이 다 거기가 거기라고!”

리메르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손을 휘저었다.

“저희 단주님을 찾을 때도 술집 하나, 도박장 하나만 찾아가면 될 정도로 갈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리메르는 항상 낡은 주점과 도괴의 도박장만 다니기에 그를 찾는 건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다.

“어? 그, 그래서 그렇게 잘 찾은 거야? 난 네가 나한테 위치 추적 아티팩트라도 박아놓은 줄 알았는데….”

리메르가 귀신처럼 찾아와서 놀랐다며 고개를 떨었다.

“가문 주변에 기반 시설이 확장된다면 검사들은 휴일마다 외부로 나가서 돈을 쓸 테고, 그로 인해 주변의 상권이 점점 더 발달할 겁니다. 검사들은 스트레스를 풀고, 상인들은 돈을 벌겠죠.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돈이 돈을 부르니, 결국 가문의 확장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알현실은 사람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런 생각을 했다니, 정말 많이 변했구나.”

셰릴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두 손을 들어 박수를 보냈다.

“정말 그리된다면 많은 검사와 사용인들이 기뻐할 겁니다.”

로엔도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셰릴의 옆에서 박수를 쳤다.

“…….”

리메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라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야! 뭐해! 박수 안 쳐?”

셰릴이 팔꿈치로 리메르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커헉! 제자의 성장에 감동하는 중이라고!”

리메르는 얻어맞은 옆구리를 매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제자는 무슨? 저쪽이 스승 아니야?”

“그, 그런 말도 많이 듣지.”

그는 라온을 보며 옅게 웃었다.

“저 녀석 별관이랑 광풍단 빼고 마음을 닫고 있었는데, 계속 지그하르트라고 말하는 걸 진심으로 가문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

라온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정신력과 재능이 뛰어났지만, 마음은 꼭꼭 감추고 있었다.

광풍단과의 거리도 오랜 시간을 지나며 간신히 좁힌 건데, 납치 사건 이후 그의 생각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라온. 도박장 하나만 더 만들어줘!”

리메르는 활짝 웃으면서 셰릴 로엔을 따라 박수를 보냈다.

라온은 세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글렌을 올려보았다.

“후….”

글렌은 고민을 하는 듯 시선을 위로 올리며 짧게 숨을 뱉었다. 그의 턱이 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저는 가문의 사람들이 더 편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가문의 명성이 더 넓고, 높게 퍼졌으면 합니다. 그걸 위해서 가장 최선이 될 건 기반 시설의 확장이었습니다. 받아들여 주십시오.”

글렌이라는 남자는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진심을 밝혔는데 잘 먹혔는지 모르겠다.

글렌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내리감았다.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보니, 고민이 되는 듯 했다.

그가 충분히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크흠. 네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줄은 몰랐구나. 확실히 가문이 언제까지 멈춰 있을 수는 없겠지.”

글렌은 뭔가 억지로 해준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커험!”

리메르는 연달아 헛기침하며 입을 억지로 누르는 글렌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저 아저씨 또 시작이네.’

온몸의 근육과 오러를 이용하여 표정과 몸짓을 억제하고 있지만, 결국 힘이 풀려 입꼬리가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 얼굴의 반을 가린 손만 치우면 강아지처럼 활짝 웃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긴 기절 안 하는 게 용하지.’

손주가 대륙 5대 상회 중 하나를 물어온 것으로 모자라, 가문을 생각하는 요구를 해 왔으니, 그 어떤 할아버지가 눈이 안 돌아가겠는가.

지금 보니 글렌의 눈동자가 반쯤 풀려 있었다. 저 양반이 저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리메르가 훌쩍 뛰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옆에서 보니 글렌이 억지로 입매를 내리고 있는 게 그대로 보였다.

그의 입꼬리가 도토리를 씹는 다람쥐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큼! 넌 왜 올라온 것이냐.”

“이번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가주님이 더 잘 아시겠죠?”

리메르가 손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가문을 위해서 이런 어마어마한 이득을 물어온 라온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뭐 하나라도 내려주시는 게 어떨까요?”

그는 도움을 구하듯 셰릴과 로엔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오랜만에 맞는 말을 했네요. 저 역시 이번 건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셰릴이 미소를 지으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로엔 역시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허험! 세 사람이 그리 말한다면 어쩔 수 없군.”

글렌이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펴고 턱을 치켜들었다.

“가문을 위해 세피아 상회와의 교역을 이뤄낸 라온 지그하르트에게 금패를 내리겠다.”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로엔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금패가 놓여 있는 판자가 들려 있었다.

“라온. 올라가렴.”

“부단주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셰릴과 로엔이 라온에게 단상으로 올라가라며 손짓을 했다.

라온은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상으로 향했다.

‘뭐야….’

왜 이렇게 진행이 빨라.

본래 이런 임무나, 어떤 업적을 이루면 그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한 뒤에 보상받는데, 이번에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뭐, 상관없겠지.’

글렌은 논공행상에 있어서는 철저한 사람이고, 그가 금패를 내밀었다는 건 충분히 할 일을 했다는 뜻이다.

실비아를 직계로 만드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워졌으니 일단 기뻐하기로 했다.

글렌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는 보상을 무를 생각이 없다는 듯 금패를 내밀었다.

“네가 가문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았다. 앞으로도 그 생각이 변함없기를 바란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두 손을 들어 금패를 받았다. 자신의 손이 떨리는 건지 글렌의 손이 떨리는 건지 금패를 떨어뜨릴 뻔했다.

“세 분도 감사드립니다.”

“어딜 가려는 게냐.”

금패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셰릴, 로엔, 리메르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가려 할 때 글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당황하여 뒤를 돌 때 글렌이 살짝 달아오른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주고 싶지는 않지만 고작 금패 하나로 때운다면 내가 저 녀석들에게 욕을 먹겠지. 원하는 것을 말해보아라.”

그는 무얼 말해도 상관없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저는….”

“2개 말하거라.”

뭐가 계속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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