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69화 (369/653)

제369화

라온이 입술을 파르르 떠는 도리안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는지 흰자를 드러내며 눈치를 봤다.

‘하여튼 특이하다니까.’

아디스가 말해주었던 시험 내용을 다시 읊어주었을 뿐인데, 거기서 전해라는 말까지 전해버릴 줄은 몰랐다.

[그 말은 할 필요 없었는데.]

[죄, 죄송합니다!]

도리안답게 오러 메시지로도 녀석의 떨림이 전해져왔다.

[뭐, 이미 저지른 건 어쩔 수 없지.]

당당하게 나가는 수밖에.

라온은 도리안에게 지시를 내리는 걸 들켰음에도 자신감 있게 턱을 치켜들었다.

-진짜 또라이인가?

라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매를 찡그렸다.

-네놈 납치당했을 때 광녀에게 정신 조작이라도 당한 거 아니냐?

‘어차피 저 사람은 내가 지시를 내린다는 걸 알고 있어.’

보르고스의 눈빛을 보면 그는 이미 이 거래를 결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전해라는 말은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을 뿐이다.

“그럴 거면 서 있지 말고 앉으시오.”

보르고스는 라스와 같은 말을 하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저는 이번 일에 부외자라서요.”

라온은 미소와 함께 손을 저었다.

“부외자? 내가 보기엔 이쪽이 부외자로 보이는데.”

보르고스가 도리안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도리안이야말로 이 세피아 상회의 후계자가 될 사람인데.”

-그 후계자가 네놈의 손바닥 위에 있지않느냐!

‘난 도리안을 생각해서 움직일 뿐이야.’

-웃기고 있느니라! 네놈의 눈동자에 가득 찬 욕심이나 버리고 말하거라!

라온이 소매로 눈가를 슥슥 비빈 뒤 눈을 깜빡였다.

‘버렸어.’

-끄으으! 때려죽이고 싶느니라!

분노가 가득 차오른 라스가 통통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젊은 사람을 상대하는데, 이렇게 진땀을 뺄 줄은 몰랐군.”

보르고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탁하지. 앞에 앉아주시오.”

“어른의 부탁을 두 번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라온은 기다렸다는 듯 도리안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럼 전 일어설게요!”

도리안은 기다렸다는 일어서서 방실 웃었다. 두 사람 다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역시 이게 맞군.”

보르고스가 힘 빠진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속 시원하게 말해보도록 하지. 백검룡. 당신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닐 것이오.”

라온 지그하르트 정도 되는 인물이 그저 돈만 바랄 리가 없었다. 다른 것을 노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떤 것을… 아!’

라온의 움직임을 떠올리다 보니 그가 우연처럼 보여주던 검집들이 생각났다.

‘장검은 발칸, 단검은 쿠베러드의 느낌이었지.’

그렇다면 설마….

보르고스가 시선을 들어 라온을 보았다. 깊은 호수처럼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자, 예측이 확신이 되었다.

‘그거였어.’

그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계약서를 매만졌다.

“…….”

라온은 평소처럼 담담한 눈동자로 보르고스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닌데.’

돈만 생각했는데….

보르고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원했던 건 돈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드레이크는 부수입일 뿐이니까.’

이 상회에 온 목적은 도리안을 후계자로 만드는 게 전부였다.

드레이크를 가져오는 시험 덕분에 실비아의 단전을 만들 재료인 드레이크 하트까지 구했으니, 사체는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제값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럴 줄 알았소!”

보르고스는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난쟁이 똥자루가 지금 뭐라는 것이냐.

라스는 보르고스를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글쎄….’

-그저 돈독만 오른 이놈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녀석은 돈 욕심만 가득한 놈일 뿐이라고 소리쳤다.

“계속 망토를 걷은 이유도 내게 두 검을 보여주려고 한 모양이겠군. 장검은 발칸, 단검은 쿠베러드의 작품 아니오?”

“그건 맞습니다.”

검을 보여주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제천검과 진혼검이 발칸과 쿠베러드의 작품은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볼 수 있겠소?”

“예.”

라온은 보르고스가 어디까지 가나 싶어서 제천검과 진혼검을 풀어 앞으로 내밀었다.

스르르릉!

보르고스는 먼저 진혼검을 뽑았다. 칼날에 깃든 붉은빛을 본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요검. 그것도 자신을 희생하여 원망의 불꽃을 태우는 요검이야. 쿠베러드가 이런 걸 만들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나 보군.”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진혼검의 칼날을 어루만졌다.

“가진 실력을 모두 발휘한 모양이오. 쿠베러드의 작품에서도 상위에 놓일 것 같소.”

보르고스가 감탄을 흘리며 진혼검을 검집에 넣고, 제천검을 뽑았다.

“정갈하면서도, 고고한 마무리. 딱 발칸의 세공 솜씨로군. 이 검은 주인과 함께 성장하는 검이오. 쓰기에 따라서는 신검도, 마검도 될 수 있지. 그리고 당신의 길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모양이구려.”

그는 제천검의 칼날을 눈에 담으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구경을 했소.”

보르고스가 미소를 지으며 두 검을 돌려주었다.

“백검룡. 당신이 원하는 건 그 두 검에 지지 않을 무구겠구려.”

그는 잘 알아들었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저는….”

“두 검을 보여줘서 이 보르고스를 자극하다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소.”

“어….”

“이 보르고스가 발칸과 쿠베러드 따위에게 질 수는 없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주시오!”

보르고스가 주문만 하라는 듯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라온은 불에 타오르는 듯한 보르고스의 눈동자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이게 이렇게 되나?’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돈만이 아니라 대륙 장인의 무구를 얻게 생겼다. 세상은 참 기이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럼 비수 한 세트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것도 기회이니, 평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비수를 부탁했다.

“암기술도 익히고 있소?”

“약간은 할 줄 압니다.”

“좋소! 내가 만들지 못하는 건 없으니까!”

“아, 그리고….”

라온이 뒤를 돌아서 멍하니 서 있는 도리안을 가리켰다.

“이 녀석의 검이 부러져서 새것으로 하나 얻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흠, 그건 내 제자가 해드릴 것이오. 저리 허약해 보여도 길드에서 내 다음가는 장인이오.”

보르고스는 뒤에 서 있는 그의 수제자를 가리켰다. 근육으로 오크를 찌부러뜨릴 것 같은 거한에게 허약하다는 수식어가 붙을 줄은 몰랐다.

“저, 저는 상관없어요!”

도리안은 그저 감사할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금괴 다섯 개에 비수 한 세트 그리고 검 한 자루가 되겠군.”

보르고스가 계약서에 수정을 한 뒤 내밀었다.

“좋습니다. 그리고 이제 말 놓으시죠.”

라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보르고스의 손을 잡았다.

-뭐, 뭐냐?

라스는 보르고스와 라온의 악수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왜 다들 이놈만 만나면 알아서 호구가 되어주는 건데! 왜 자꾸 호구가 생기는 건데!

*     *      *

라온은 협상을 끝낸 뒤 보르고스와 함께 총단을 나섰다.

“나한테 그것까지 부탁할 줄은 몰랐네.”

보르고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제일이니까요.”

라온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틀린말은 아니로군. 다만 백검룡이 이렇게 능글맞은 사람일 줄은 몰랐어.”

“저도 제 성격을 잘 모릅니다.”

거짓이 아니다. 자신의 성향과 성격은 검계현신의 성장과 함께 천천히 변하고 있었으니까.

드레이크가 있는 연무장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주변에서 상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도리안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의류 전문 매장 카메린을 운영하고 있는 라트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밀을 유통하는 시제른이라고 합니다!”

“도리안 님! 후계자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카멜룬과 교역을 하는….”

“도련님!”

“도련님. 잠시만….”

수많은 상인들이 달려와 도리안에게 달라붙었다. 새로운 후계자가 된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선물을 밀어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 부단주님!”

“잘 해봐.”

도리안이 사람들에게 파묻혔지만, 라온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보르고스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안 도와주는 건가?”

“앞으로 계속 겪어야 하는 일이니, 익숙해져야죠.”

라온이 연무장 문을 열며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자네는 정말 아이답지 않군. 무력이야 재능이라고 쳐도 경험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보르고스가 이쪽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좀 힘들게 살아왔거든요.”

라온은 어깨를 으쓱이며 드레이크의 앞에 섰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참.”

보르고스는 입맛을 다시고서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얇고 가는 단검에서 은은한 붉은빛이 피어 나왔다.

우우우웅!

그는 그 단검으로 드레이크의 목 부분을 조심스럽게 가른 뒤 그 안에서 찬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육각형의 물체를 꺼냈다.

라온은 그 빛을 두 눈에 담으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드레이크 하트.’

드래곤만큼은 아니지만, 대량의 마나를 넣어둘 수 있는 자연의 마나 저장소였다.

‘이거면 충분하겠어.’

냉기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 역시 순도 높은 자연의 것이기에 실비아의 단전 재료가 되는 데는 아무런 이상도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보르고스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드레이크 하트를 받았다. 직접 꺼낼 수도 있지만, 조그마한 상처도 입히고 싶지 않았기에 전문가인 그에게 부탁했다.

“드레이크 하트를 팔 생각이 있다면 내가 좋은 곳을 소개해주겠네. 경매보다도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보르고스는 이번에도 도와주려는 듯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건 쓸 곳이 있어서요.”

이건 실비아만을 위한 물건이기에 천금을 주어도 팔 생각 따윈 없다. 사실 이것만 구하면 드레이크가 얼마에 팔리든 상관없었다.

“그런가. 알겠네.”

보르고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약속한 물건들은 지그하르트로 보내면 되나?”

“예. 지그하르트에서도 광풍단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그는 웃음을 흘리고서 품에서 천을 꺼냈다. 그 천이 드레이크의 몸에 떨어지자, 35m가 넘어가던 거체가 5m정도로 줄어들었다.

회색 망치 길드의 장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드레이크가 놓여 있는 판자를 들고 보르고스의 뒤에 섰다.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보르고스는 여유롭게 손을 흔든 뒤 연무장을 떠났다.

-호구가 갔군.

라스는 호구 중에 상호구라며 침을 뱉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

-왜 아니라는 것이냐! 알아서 돈도 퍼주고, 물건도 퍼주는데!

너만큼은 절대 아니니까.

세상 그 어떤 호구가 찾아와도 아낌없이 주는 라스에 감히 비빌 수 없었다.

라스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총단으로 돌아가려 할 때 머리를 말끔하게 정리한 중년인이 다가왔다.

“라온님.”

“음?”

라온이 그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외모는 많이 변했지만, 탁한 기운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연무장에서 꺾었던 낙화도 마크 괴튼이었다.

“그 생각은 언제 끝나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생각이라고?

잠시 입을 다물고 마크 괴튼이 한 말을 생각해보자, 이전에 그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받아들여달라고 했었지.’

그는 팔렌과 함께 찾아와서 따르게 해달라고 빌었었다. 당시에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기다리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때 이후로 한 달이 지났는데, 그는 이 상회를 떠나지 않고 정말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기사이기 때문인가?’

그는 본래 워너 왕국의 기사였다. 기사들은 검사와 달리 주군의 말을 무조건 따르기에 지금까지 그 명령을 이행했던 것 같다.

‘진심이었나.’

아무래도 그가 자신을 따르고 싶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짜 마스터를 꽁으로 얻는 건가? 아니, 아니지.’

지금은 진심이라도 금방 변할지도 몰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그의 진짜 인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마크 괴튼.”

“예.”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군요.”

“죄송합니다. 단련은 하고 있지만….”

“저기 산 보이십니까?”

라온은 로칸 시 서쪽에 있는 깎아지른 듯한 돌산을 가리켰다.

“오러를 운용하지 않은 채 저 산을 하루에 4번씩 왕복하세요. 망가진 육체를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할 수 없다면….”

“하겠습니다!”

마크 괴튼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웃옷을 벗고, 곧장 산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부, 부단주님!”

그의 등을 보고 있을 때 도리안이 헥헥 거리며 다가왔다.

“버리고 가시다니 진짜 너무하세요!”

도리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미안.”

라온은 도리안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혹시 사람들에게 도망치고 싶어?”

“네.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지금와서 찾아온 게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도리안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방법이요?”

-안 되느니라!

라스가 머리를 치켜 들었다.

-저놈이 저렇게 웃으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니라!

녀석이 강하게 경고했지만 당연히 도리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할래?”

“할게요!”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 마크 괴튼이 달려간 돌산을 가리켰다.

“저기 가면 마크 괴튼이 있을 거거든. 그 사람을 감시하면서 하루에 4번씩 암벽 등반을 해.”

맨손 암벽 등반은 검을 쓰는데 중요한 손가락과 손목만이 아니라, 상반신과 하반신 그리고 균형감각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직 육체가 완성되지 않은 도리안에게도 좋은 훈련이었다.

“자, 잘못 들었습니다?”

“산 타라고. 자 출발!”

“저, 저 안 할게요.”

도리안이 마구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여기서 사람들 만나는 게….”

“그러고 보니까 너 나한테 인성 파탄자라고 했었지? 그럼 집중력 강화 훈련을….”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귀를 막은 채 부리나케 돌산으로 뛰어갔다.

라온은 앞에 가는 마크 괴튼과 그 뒤를 쫓는 도리안의 등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광경이야.”

-너 전생에 사채꾼이었냐?

*     *      *

다음 날.

라온은 집사 리그윈의 안내를 받아 아디스 세피아의 집무실로 향했다. 도리안과 함께 그를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혼자 불리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다.

‘왜 부르는 거지?’

후계자가 정해졌고, 거래도 끝났는데, 그가 왜 자신을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본왕은 알고 있느니라.

라스가 입꼬리를 길게 말아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뭔데?’

-뭐긴 뭐겠느냐. 기껏 겁쟁이 꼬마를 후계자로 삼아놨더니, 네 쫄다구가 되어 있는데 부모로서 열 안 받겠냐고.

녀석은 대형 상회의 후계자에게 감시역을 시킨 건 미친 짓이었다며 낄낄 웃었다.

‘으음….’

그럴 수도 있으려나.

아디스는 겉과 달리 도리안을 아끼고 있었기에 아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다른 가족의 형태에 대해 잘 모르니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네놈은 좀 혼나야 하느니라!

라스는 즐겁게 구경하겠다며 히죽였다.

-이럴 때 산딸기 파이를 먹으면서 구경하면 딱인데.

‘하여튼.’

라온은 혀를 내밀며 놀리는 라스를 걷어차고 아디스의 집무실 앞에 섰다. 이번에는 리그윈도 들어가지 않는지 조용히 문만 열어주었다.

“들어가십시오.”

리그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와 달리 아디스 세피아는 책상이 아니라, 중앙에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와주어서 고맙소. 앉으시오.”

아디스의 음성이 평소보다 더 딱딱하고, 차가운 듯 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난 잡설을 싫어하오. 바로 이유를 말씀드려도 되겠소?”

그의 시선 역시 더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 라스의 말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라온이 짧게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부터가 열 받았구나. 이제 욕 먹을 준비나 하거라.

라스는 손가락을 흔들며 춤을 췄지만, 그가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피아 상회는 지그하르트에. 아니, 라온 지그하르트에게 투자를 하고 싶소.”

아디스 세피아는 진중한 눈빛으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에?

라스가 아디스의 뚜렷한 눈동자를 보며 입술을 꾹 씹었다.

-얘, 얘도 호구였어?

녀석은 말이 안 된다며 허공에서 발버둥을 쳤다.

-5대 상회라며! 왜 알아서 호구 짓을 하려는 건데!

집안 내력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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