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64화 (364/653)

제364화

본래 은검몽이라는 검식은 적을 향해 뻗어나가는 거짓 칼날 뒤에 진짜 칼날을 숨겨 급소를 단번에 찌르는 필살의 무학이다.

다만 흑수장과 록탄 같은 쓰레기에게 그런 편한 죽음은 어울리지 않았기에 검식의 흐름을 바꿨다.

일격으로 적의 숨통을 가르는 검을 수십 개로 나눠 끝없이 이어지는 칼날의 폭풍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난무. 은검몽’ 난은 상대의 모든 급소를 베어버리는 사악한 검술이었다.

콰아아아아!

푸른 빛을 휘감은 칼날이 흑수장과 록탄의 빈틈을 헤집는다. 검흔에서 뿜어진 핏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을 때 좌측과 우측에서 각기 다른 기운이 쏘아져 왔다.

쩌어어억!

라온이 진혼검을 옆으로 그어 심장과 목을 노리고 다가온 기운을 동시에 갈라버렸다.

“크윽!”

“허어억….”

진혼검에 잠시 무게가 쏠린 순간 흑수장과 록탄이 탁한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조금 전 마법과 독기를 쏘아낸 독인과 키 작은 마법사가 옆으로 붙었다.

“록탄 님!”

“조,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다. 저 새끼 듣던 것보다 더 위험해.”

록탄이 입에 고인 피를 뱉으며 억지로 상처를 지혈시켰다. 그는 피나도록 입술을 씹으며 단전에 독기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흑수장이 마법사에게 손을 저으며 허리를 폈다. 그는 핏물이 흘러내리는 상처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전신에 어둠의 기운을 뒤덮었다.

고오오오오!

록탄과 흑수장이 피워낸 기운이 밤하늘에 닿을 정도로 솟아올랐다. 두 사람 뒤로 살아남은 독인들과 흑령이 모여들었다.

라온은 그 거대한 기운 너머에 있는 봉우리를 살폈다.

‘잘 버티네.’

도리안은 드레이크에게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싸우고 있었다.

-이건 저 녀석에게도 기회이니라.

라스가 도리안을 올려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저 녀석은 항상 도망부터 생각하는 놈이다. 절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니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니라.

‘그렇겠지.’

드레이크는 도리안을 얕보고 냉기의 숨결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것만 조심한다면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대비는 해놔야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도리안에게 설화의 감각을 집중한 뒤 흑수장에게 걸어갔다.

“버릇이 없네.”

라온이 록탄과 흑수장을 살린 독인과 흑탑의 마법사를 보며 차게 웃었다.

“어른들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는 말 못 들어 봤나?”

-그게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기세를 드높이자, 독인과 마법사가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폭렬단을 먹고, 풍혈괴진을 일으켜!”

록탄의 지시에 독인들이 품에서 검은 단약을 꺼내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들의 이마 위로 힘줄이 돋아나며 가진 독기가 순간 2배 이상으로 부풀어 올랐다.

고오오오오오!

그림자들이 동시에 독기를 일으키자, 막대한 바람이 솟아올라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마을 하나를 독으로 지워버렸던 악의로 가득 찬 진법 풍혈괴진이었다.

“이즈젤. 마해를 열어라.”

흑수장이 마법사의 이름을 부르며 바닥을 가리켰다.

“예!”

이즈젤이라 불린 마법사가 바닥에 손을 짚고 기이한 영창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터엉!

라온이 피식 웃으며 대지를 박찼다.

“날 너무 무시하네.”

찰나의 순간에 우측으로 이동해 이즈젤이라 불린 마법사에게 쇄도했다.

“이놈.”

흑수장이 등에 날개처럼 솟아오른 여덟 개의 검은 발톱을 채찍처럼 내리쳐왔다.

터엉!

태화보로 뭉개지는 대지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흑수장이 재차 공격을 이어올 때 만화공 백화 화령을 펼쳤다.

화아아아아!

화염의 꽃송이가 개화하며 어둠의 기운을 밀어내고, 뚫고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냈다.

푸아악!

직선으로 내달려 제천검으로 이즈젤의 심장을 갈랐다. 그녀의 가슴에서 살벌한 양의 핏물이 치솟았다.

“끄윽….”

“적을 기다려주는 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 상관없어. 이미 발동됐으니까.”

그녀의 비웃음과 함께 바닥이 시꺼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해. 마탑의 괴인들이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장이 차올랐다.

“흐음….”

라온이 제천검을 휘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풍혈괴진은 알고 있어서 이쪽부터 처리한 건데, 귀찮게 됐네.’

-귀찮은 표정이 아닌데?

라스가 자신의 눈빛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주문한 요리가 막 나와서 한 입 뜨기 전의 행복을 느끼는 표정이니라.

‘그 표정이 뭔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너도 눈치가 좀 생겼네.’

-흥! 본왕은 마계에 있을 때부터 눈치 천재라 불렸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피식 웃으며 제천검과 진혼검을 고쳐 쥐었다.

‘뭐, 어쨌든 네 말이 맞아. 제대로 힘 좀 써보고 싶었거든.’

해령화의 꽃잎과 유령 해파리의 내단을 흡수한 뒤 전력을 발휘한 적이 없었다.

상회에서 벌어진 대련에서는 강기조차 일으키지 않았기에 강대한 적을 상대로 진심을 발휘해보고 싶었다.

고오오오오오!

록탄과 독인들이 만들어낸 풍혈괴진에서 시퍼런 독기가 타올랐다. 어찌나 지독한 지 바닥이 새까맣게 녹아내리고, 주변의 나무와 수풀이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쿠와아아아아!

흑수장과 흑령들이 일으킨 기운은 더욱더 강맹했다. 속이 거북해질 정도로 짙은 어둠의 기운이 하늘 끝까지 치솟아 허공을 뒤덮었다.

“죽어라.”

“좀 뒈져! 이 괴물 자식아!”

흑수장과 록탄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독기와 어둠의 기운을 쏟아부었다.

손끝이 덜덜 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동이 하늘과 땅을 뒤덮으며 밀려왔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이 뭔지 알아?”

라온은 그 거대한 기운 앞에서 입매를 말아 올렸다.

“희망을 주고 다시 빼앗는 거야.”

왼발로 땅을 짓누르며 진혼검을 뻗어냈다. 시뻘건 칼날의 뒤편에서 새하얀 그림자가 피어난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5형 백영섬.

진혼검을 두른 백색의 그림자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떨어지는 독기와 어둠의 기운을 파고들었다.

후우우우웅!

빠르지도, 강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검. 하지만 그 무엇보다 장대한 기류가 악의로 가득 찬 독기와 어둠의 마나를 포용했다.

치이이이잉!

반격을 포기한 대신 방어에 온 힘을 집중한 백영섬이 제 역할을 다하고 가라앉을 때 시뻘건 칼날이 솟구친다.

만화공 백화.

염해무결.

제천검의 검극에 응집된 한 방울의 불꽃이 번지며 거대한 흐름을 일으킨다.

바닥에서부터 타오른 불꽃의 해일이 천지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허억!”

“마, 막아!”

“아아아….”

“저, 저 불꽃은 뭐야….”

눈앞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화염의 파랑이 독인들과 흑탑을 한순간에 덮쳤다.

콰아아아아아아

불꽃의 격류가 가라앉은 곳에 남아 있는 건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주저앉은 흑수장과 록탄뿐이었다.

“흐으으….”

“이, 이 미친….”

흑수장과 록탄은 모든 힘을 다 사용했는지 비틀거리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고통에 잠긴 신음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후….”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쥔 양손을 바라보며 짧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강해졌군.’

해저던전에 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른 열기. 저 둘의 무력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무력이었다.

“끄으으….”

흑수장이 턱을 덜덜 떨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시꺼먼 안구에 분노와 고통이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록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너희가 먼저 날 죽이려고 찾아오지 않았나?”

“그, 그걸 어떻게… 크헉!”

록탄은 의문을 다 풀기도 전에 숨이 끊어져서 뒤로 넘어갔다.

“세상에 비밀은 없거든.”

마지막으로 흑수장의 목을 베기 위해서 제천검을 세웠을 때 놈이 이를 악물었다.

“네, 네놈 설마 저 쓰레기들을 제물로 삼았다고 우리를 공격한 건가?”

“…쓰레기?”

“어차피 존재 가치가 없는 것들이지 않느냐! 힘도, 지성도 없는 버러지들 때문에 흑탑에 싸움을 걸다니, 네놈의 삶도 불쌍하군.”

흑수장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비웃음을 흘렸다.

“네놈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흑탑의 층주들이….”

“곱게 죽지 못하는 건 너야.”

라온이 찬웃음을 흘리며 진혼검을 흑수장의 어깨에 박아넣었다.

‘부탁한다.’

우우우우웅!

진혼검은 알겠다는 듯 검명을 터트리며 흑수장의 내부에 거대한 요기의 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백혈교와 비슷한 짓을 한 놈이었기에 진혼검에게도 감정이 실린 것 같았다.

뿌드드득!

진혼검이 주입한 요기가 흑수장의 마나회로를 찢어발기며 전신을 헤집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흑수장이 처음으로 비명을 터트리며 발버둥 쳤다. 꺼져가는 생명을 억지로 살릴 정도의 고통에 놈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주, 죽여. 죽여 줘….”

“고통 좋아하잖아. 먼 길 갈 때 주는 선물이니 잘 챙겨가도록.”

“으어어어억! 제, 제발….”

“죽어서도 그 고통을 잊지 마라.”

라온은 흑수장이 요기에 말려 죽도록 놔둔 뒤 드레이크의 둥지를 올려보았다.

‘아직 할 만한가 본데?’

-누구 부하인데 당연하지!

무리라고 생각되면 바로 도와주려고 했는데, 도리안은 드레이크에게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철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라온이 피식 웃으며 제천검을 휘돌렸다.

“애들은 빨리 큰다니까.”

-너도 애잖아….

*     *      *

도리안은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생명체를 바라보며 턱을 떨었다. 놈의 날갯짓에 피부가 깎여나가는 것 같았다.

“키에에에에에엑!”

웅장한 포효에 심장이 쪼그라든 것처럼 위축된다. 상급 몬스터들만 사용한다는 피어였다.

후우우웅!

드레이크가 하강하며 거대한 손톱을 내리친다. 고수의 검격처럼 강대한 위력이 느껴졌기에 바로 우측으로 보법을 밟았다.

콰아아아앙!

드레이크가 발톱을 내리친 곳이 무너져 내리며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 비틀거렸다. 조금만 더 충격이 컸다면 몇 명은 밑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피, 피해서는 안 돼.’

평소처럼 보법으로 공격을 피했다간 뒤에 있는 사람들이 죽게 된다. 무조건 맞서서 싸워야 했다.

‘이, 일단….’

살리고.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두터운 판자를 꺼내서 사람들이 굴러떨어지지 않게 바닥에 박아놓은 뒤 일어섰다.

“키에에에에!”

드레이크가 우측 손톱을 내리쳐온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강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에라이!”

도리안이 입술을 씹으며 십문현검을 펼쳐냈다.

쩌어어어엉!

전력을 다해서 초식을 펼쳐낸 검이 부러질 듯 꺾였다. 오러를 마구잡이로 밀어 넣으며 간신히 버텨냈다.

“크르르르….”

드레이크는 더 화가 난 건지 가뜩이나 무서운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처럼 번들거렸다.

“우리, 말로 하면 안 될….”

“키이에에에엥!”

드레이크는 닥치라는 듯 포효를 터트리며 마구잡이로 손톱과 발톱을 내리쳤다.

콰과과과광!

십문현검을 극성으로 펼쳐내며 방어를 했지만, 어깨와 무릎이 부러질 것처럼 삐걱거렸다. 힘과 체력 하나는 자신 있는데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부단주님은 대체 언제… 헉!’

라온을 떠올리고 있을 때 길쭉한 무언가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쇄도해 왔다. 드레이크의 손과 발은 전부 자신의 시야 안에 있었으니,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꼬리!’

칼날처럼 날카롭고 길쭉한 꼬리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아!”

도리안이 진각을 밟으며 십문현검의 회현중결을 펼쳐냈다. 무겁게 피어난 구름 뭉치가 드레이크의 꼬리와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앙!

팔이 잘 안 올라갈 정도의 충격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지만,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크에에에에엑!”

드레이크는 꼬리 공격을 막은 것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는지 포효를 터트리며 날개를 쭉 펼쳤다. 그대로 비상한 뒤 발톱을 내리찍어왔다.

“드레이크가 왜 이렇게 공격 방식이 다양한 건데!”

도리안이 악을 지르며 십문현검의 절기 청화유운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구름 조각이 응집되며 굳건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쿠와아아아앙!

드레이크의 발톱과 청화유운의 검기가 격돌하며 봉우리의 중심에 금이 가고 외곽이 깨져나갔다. 내상도 입었는지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크르르르….”

이것조차 버틸 줄은 몰랐는지 드레이크가 약이 바짝 오른 표정으로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놈은 뒤로 떨어진 채 주둥이를 길게 벌렸다. 시꺼먼 목구멍 안에서 어마어마한 냉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내, 냉기의 숨결?”

그제야 데닝로즈에게 들었던 정보가 떠올랐다. 둥지 근처에서 냉기의 숨결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는 말이.

“마, 망했다!”

도리안이 모여드는 냉기를 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저걸 어떻게 막아!’

막을 수 있든, 없든 이미 드레이크의 냉기는 한껏 응축된 상태였다.

‘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드레이크가 나타나자마자 냉기를 막는 장비들을 착용했지만, 저 숨결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평온하게 살다가 습격받은 저 사람들을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으득!

도리안이 어금니를 부서져라 씹으며 오러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 없다. 까무러치더라도 해봐야 한다.

콰아아아아아아!

드레이크의 주둥아리가 끝없이 벌어지며 시퍼런 기운이 시야를 가득 덮었다. 냉기의 숨결. 봉우리 전체를 얼릴 듯한 무시무시한 냉기가 쏟아졌다.

“으아아아아! 라온 지그하르트 이 인성파탄자 자식아!”

도리안은 라온의 욕을 외치며 끌어올린 오러를 단숨에 폭발시켰다. 십무현검의 마지막 절기 대십현참이 펼쳐지며 허공에 자욱한 오러의 구름이 피어났다.

우우우우웅!

본래 십자로 펼쳐지는 구름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원형 오러의 벽을 만들어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냉기의 숨결에서 뻗어 나오는 어마어마한 힘의 격류에 온몸이 찌그러질 듯 아려왔다. 손끝과 발끝이 얼어붙는 듯 감각이 사라지고, 호흡에서 단내가 나온다. 아니, 그 숨결마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퇴로가 없다는 게 이렇게 막막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으아아아아!”

도리안은 단전에 남은 오러를 쥐어짜며 마지막까지 오러의 벽을 풀지 않았다. 오러가 차츰 얇아지며 결국 깨지기 직전 드레이크가 먼저 입을 다물며 냉기의 숨결이 멎었다.

“허어억….”

도리안은 모든 힘을 사용한 반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크르르르….”

다만 드레이크는 더 살벌한 기운을 두른 채 다시 입을 벌렸다. 더 강해진다는 두 번째 냉기의 숨결이 놈의 목구멍에서 서슬 퍼런 빛을 일으켰다.

‘이, 이건 안 돼….’

검을 잡고 일어서고 싶지만, 정말 힘이 없다.

“이익! 라온. 이 말미잘, 쭈꾸미, 해삼, 족제비 같은 놈. 천벌을 받을….”

“족제비는 그렇다 치고, 말미잘, 쭈꾸미 해삼이 뭐냐?”

“전부 미끌거리고 능글맞은… 어?”

도리안이 뒤를 홱 돌 때 라온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는 하늘을 나는 듯 비상해 냉기의 숨결을 뿜으려던 드레이크의 머리를 검으로 내리찍었다.

퍼어어어억!

은빛 칼날이 드레이크의 가죽과 뼈를 가르고 수직으로 박혔다.

“끼에에에에엑!”

드레이크는 칼에 찔린 상태에서도 버둥거리며 반항하려 들었지만, 라온의 무식한 힘에 짓눌려서 거칠게 추락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바로 밑에 있는 봉우리에서 지진이 난듯한 어마어마한 충격이 터졌다.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니, 머리에 칼이 박힌 드레이크가 봉우리 중앙에 쓰러져 있었다.

“허어억….”

도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저게 저렇게 쉽게 죽는 거였어?’

딱히 강기도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데, 드레이크는 이미 절명하여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라온은 드레이크의 머리에서 검을 뽑은 뒤 단번에 봉우리 위로 올라왔다.

“어, 언제 오셨어요?”

“저 드레이크가 꼬리치기를 할 때쯤?”

“위험할 때잖아요! 왜 안 나선 거예요!”

“재밌어 보여서.”

라온은 뭘 묻냐는 듯 씩 웃었다.

“브, 브레스 때도?”

“그건 더 재밌어 보였지.”

“허….”

도리안의 눈동자가 탁 풀렸다.

‘이게 진짜 인간인가?’

점점 악마화 하는 라온을 보자,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브, 브레스 때는 진짜 위험했다구요! 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죽을 뻔했어요!”

“그래도 해냈잖아.”

라온은 냉기에 영향받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쉬운 일만 해서는 성장할 수 없어.”

“아….”

담담하게 내뱉는 라온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성장할 기회를 준 건가….’

이제 와서 느끼지만 브레스를 막았을 때 힘은 빠졌지만, 해냈다는 뿌듯함에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였다. 라온이 대신 나섰다면 절대 이 기분을 느낄 수 없었을 거다.

거기다 그는 자신이 놓친 냉기를 막아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막아주었던 것 같다. 가벼운 듯하면서 무겁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럽다. 정말이지 속을 알기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 하나는 그가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정말 감사합….”

“아, 그렇지.”

도리안이 고개를 숙일 때 라온이 손가락을 튕기며 뒤를 돌았다.

“인성 파탄자에 말미잘, 쭈꾸미, 해삼, 족제비라고 했지?”

“아, 그, 그건….”

“돌아가는 대로 지이이이인짜 인성 파탄자가 뭔지 보여줄게.”

그 살벌한 웃음에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원래도 사악한 인간인데,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안 되었다.

“기대해.”

“크윽!”

도리안이 얼어붙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훌쩍였다.

‘저 인간 진짜 악마야. 그건 분명해!’

“너 지금 속으로 악마 같은 인간이라고 욕했지?”

“끄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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