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61화 (361/653)

제361화

갈색 머리카락의 절반이 하얗게 물든 중년인이 망태기를 등에 멘 채 작은 숲을 걸어 나온다.

망태기 안에는 밤이 가득 차 있었는데, 크기가 크고 껍질에서 윤기가 흘러내려 겉으로만 봐도 맛나 보였다.

“네지!”

중년인이 돌벽 중앙에 있는 철문 위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철문 위에서 20대로 보이는 청년의 얼굴이 빼꼼 나왔다.

“조렌 아저씨. 일찍 오셨네요. 하긴 남들은 주말이라고 쉬니까.”

네지라는 이름의 청년이 중년인을 보며 헤헤 웃었다.

“도시로 좀 나가봐야 할 것 같아서 빠르게 끝내고 왔다. 그래도 꽤 많이 담았어.”

조렌이라 불린 중년인이 등에 메고 있는 망태기를 가리켰다.

“와, 밤이 실하네요. 올해도 거뜬하겠는데요.”

네지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만이 아니야. 산딸기도 물이 올라서 맛있더구나.”

“요즘 값도 잘 쳐주던데, 조만간 마을 확장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걸 알아보러 가는 거다.”

“저, 정말요?”

“그래. 작업 인원이 많이 필요하니, 미리 도시에 가서 인부들을 구해보려고 한다.”

“와아아! 뭐 하세요! 빨리 안 들어오시고!”

네지가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철문이 반으로 갈라져서 열렸다.

“네 녀석이 지금 열었지 않느냐.”

조렌이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뒤편에서 묵직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칠흑처럼 검은 로브를 두른 사람들이 마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들은…?’

웨더스 마을은 산딸기와 밤이 유명하여 관광객들이 가끔 찾아오는 곳이지만, 저들에게선 관광의 기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위험해….’

30년 넘게 용병으로 살았던 감각이 빨리 도망치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자신의 집과 가족을 놔두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조렌은 열리는 철문을 다급하게 닫고서 문 앞에 섰다.

“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

많은 사람들이 있건만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마을 입구까지 다가왔다.

가장 앞에 선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듯한 검은 안구. 그 눈을 본 순간 전신에 오싹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아, 아저씨! 저 사람들은….”

“나오지 마!”

조렌은 네지에게 손을 젓고서 문에 등을 기댔다.

“여기가 웨더스인가?”

흑안 사내의 입이 열렸다. 지하 깊은 곳에서 말하는 듯 울리는 목소리에 뭔지 알 수 없는 시꺼먼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아아….”

그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렇소.”

조렌이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사는 인간이 몇 명이지?”

“그걸 왜 묻는 거요.”

“몇 명이지?”

“누군지는 몰라도….”

“네 기회는 끝났다.”

흑안 사내가 파리를 쫓듯 손을 저었다.

“무슨 소리를…아!”

그 손짓에서 나온 새까만 발톱에 조렌의 몸이 네 조각으로 찢겨 나갔다.

“아아아아악!”

“시끄럽군.”

위에 있던 네지가 비명을 지르며 종을 울리려고 할 때 남자의 손이 지휘를 하듯 부드럽게 내려섰다.

콰드드득!

그 손에 깃든 검은 발톱이 사선으로 떨어졌다. 철제문과 돌담이 모조리 터져나가고, 그 위에 있던 네지마저 핏물이 되어 쏟아졌다.

“허어억….”

“아아….”

“이, 이게 뭐….”

벽 뒤에 있던 웨더스 마을 사람들은 흑안 사내의 지독한 기운에 질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을의 인간들을 전부 모아라.”

“예.”

흑안 사내의 지시에 검은 로브를 입은 괴인들이 유령처럼 흩어졌다.

“아악!”

“놔, 놔줘요!”

“으윽….”

괴인들은 가축을 대하듯이 검은 기운이 흐르는 갈고리로 사람들의 몸에 구멍을 뚫은 채 가운데로 끌고 왔다.

“쥐새끼가 한 마리 있었군.”

흑안의 남자가 우측으로 손을 저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어둠의 손톱이 떨어지며 단단하게 여문 집이 뭉개지고, 대지에 거대한 상흔이 새겨졌다.

푸카아악!

무너지는 벽 뒤에서 살벌한 양의 핏물과 함께 누군가의 어깨와 살점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쿠구구구!

건물이 무너지며 팔이 잘려 나간 사람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잔해에 처박혔다.

흑안 남성은 집이 무너진 곳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을 사람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땅만 바라보았다.

“서른아홉. 제물로 쓰기에는 충분한 숫자로군.”

그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은?”

“끝났습니다. 모두에게 마기를 박아넣었습니다.”

키가 작아서 로브가 땅에 질질 끌리는 여성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 데리고 간다.”

“예.”

지시를 들은 키 작은 여성이 사람들 앞에 섰다. 그녀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괴이한 울림이 흘러나오자, 마을 사람들의 눈동자가 탁 풀렸다.

그들은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서서, 자마리 산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흑안 남성은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떤 괴물로 재탄생을 할지 궁금해지는군.”

*     *      *

라온이 참지 못하고 데닝로즈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놈들이 왜 웨더스 마을을 습격한 거죠?”

웨더스 마을이 자마리 산맥에서 가까운 것은 맞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

우측으로 한참 돌아가야 하는 마을을 왜 찾아가서 습격했는지 이해되질 않았다.

“저도 모르겠어요. 마을에 있는 저희 요원도 당했는지 흑탑 습격이라고만 연락이 오고, 답이 없어요.”

데닝로즈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녀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아끼던 요원이었던 것 같다.

“뭐, 그런….”

도리안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듯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일단 이건 가정일 뿐이에요.”

데닝로즈가 걸음을 늦추며 시선을 살짝 돌렸다.

“말씀해보세요.”

“제 생각에는 마을 사람들을 제물로 쓰려는 것 같아요.”

“제물?”

“드레이크에게 어둠의 마나를 심은 사람들을 먹여서 부정적인 기운을 쌓은 뒤에 잡으려는 게 아닐까 해요.”

“부정적인 기운….”

라온이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아.

데닝로즈의 말대로 드레이크를 노리던 놈들이 갑자기 마을을 습격한 이유는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아니, 그래야 많은 사람이 살아 있을 테니, 흑탑 놈들이 제물로 쓰기 위해서 사람들을 잡아갔기를 바라야 했다.

-어둠의 마나라고?

라스가 바득 이를 갈았다.

-마족의 힘을 빌리는 미천한 것들이 감히 본왕의 디저트 시간을 방해했단 말이냐!

녀석은 마을이 습격당해서 먹고 싶었던 음식을 못 먹게 된 것에 화가 났는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분노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조금 달라.’

-뭐가 다르다는 것이냐.

‘흑탑이 어둠의 마나를 이용하는 건 맞는데, 그냥 어둠의 마나는 또 아니야.’

-그럼?’

‘놈들은 본인의 원기에 어둠의 마나를 흡수시켜서 사용하거든.’

흑탑은 단순히 어둠의 마나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어둠의 마나와 본인의 생명력인 원기를 합치는 정신 나간 방식을 사용한다.

그 때문인지 마법이든, 무학이든 평범한 마나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만들어냈다.

-마족도 아니고, 원기에 어둠의 마나를 섞는다고? 새로운 자살 방식이냐?

‘아쉽게도 안 죽더라고.’

라온이 한숨을 내쉬고서 라스를 보았다.

‘산딸기 파이든, 밤 조림이든 먹고 싶으면 도와.’

-물론이니라! 본왕만 믿어라!

라스는 맡기기만 하라는 듯 동그란 햄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평소에는 식충이지만, 이럴 때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도리안은 놓고 가는 게 좋겠지.’

흑탑이 먼저 움직였고, 인질이 있는 이상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겁 많은 도리안을 데리고 갔다가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놔두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도리안. 넌… 음?”

라온은 도리안을 돌아보고서 눈을 부릅떴다.

‘뭐지?’

겁먹은 채 떨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도리안이 검병을 움켜쥔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예 무섭지 않은 건 아닌지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선명하게 빛났다.

“저, 저도 갈게요.”

도리안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분명 저도 할 일이 있을 거예요!”

라온은 그 눈빛을 마주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성장했군.’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었어도 별 느낌을 받지 않았는데, 지금 저 눈을 보니 도리안이 확실히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데리고 가는 게 좋겠구나.

‘그래.’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데닝로즈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시가 급하니 바로 가보겠습니다.”

“외진 곳이다 보니 차원 관문은 없어요. 중간에 말을 바꿔 탈 수 있게 준비해놨으니, 부탁드릴게요.”

데닝로즈는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다음 준비를 해놓은 것 같다. 대단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을 데리고, 로칸 시 밖으로 나갔다.

‘혹시 몰라.’

도시 밖에 있는 수풀 쪽으로 다가가서 도리안에게 들리지 않게 멀린을 불렀다.

‘멀린. 멀린!’

평소와 달리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진짜였던 것 같다.

-본래 저런 광녀들은 필요할 때 없느니라.

라스가 광녀의 특징이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네.’

이대로 가는 수밖에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말에 올라탔다. 조금 늦어지겠지만 지금은 이 방법 뿐이었다.

“도착할 때까지 휴식은 없어.”

“네!”

도리안은 마른침을 삼키고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라온은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는 도리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자.”

*     *      *

끼익.

데루스 로베르트가 한량처럼 보이는 가벼운 인상의 사내와 마주 앉아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레젤이 들어왔다.

“가주님.”

레젤은 자세를 바로한 채 데루스에게 허리를 굽혔다.

“확인이 끝났습니다. 자마리 산맥 꼭대기에 드레이크의 둥지가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팔렌 세피아의 말이 진실이라는 뜻이로군.”

데루스가 레젤을 보며 서늘한 미소를 흘렸다.

“예. 긴장을 풀 필요는 없지만, 의심스러웠던 부분은 해결되었다고 봐도 될 듯합니다.”

레젤이 눈을 내리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록탄.”

데루스가 옆에 서 있는 중년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 가주님.”

록탄이라 불린 중년인은 경박한 인상과 달리 묵직한 음성으로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라온 지그하르트를 제거할 수 있나?”

데루스 로베르트의 말끝이 의문형이긴 했지만, 이건 질문이 아니었다. 무조건 해내라는 명령이었다.

“물론입니다.”

록탄은 그 삼엄한 명령에 위축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좀 쓰는 어린아이 정도야 가지고 놀면서 죽일 수 있죠.”

“그렇게 무시할 녀석이 아니다. 놈은 상대의 무학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으니까.”

데루스가 대련장 위에서 보았던 라온의 검술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가주님의 인정할 정도의 천재라는 뜻이시군요. 그럼 더 편하겠네요.”

록탄이 손목을 빙글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전 그런 하룻강아지들을 사냥하는 데 천재니까요.”

“믿겠다.”

“감사합니다.”

“다만 쓸데없는 학살은 하지 말도록.”

“당연하죠. 전 쾌락 살인마가 아닙니다.”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마을을 통째로 녹여버리는 살귀 놈들이 잘도 말하는군.”

“하하. 그건 어릴 때라….”

록탄이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다만 그의 눈동자는 지워지지 않는 살의로 번들거렸다.

“필요한 건 없나?”

데루스가 차가운 눈동자로 록탄을 내려보았다.

“하나 있습니다.”

“뭐지?”

“정보를 모으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어서 다 끝난 후에 도착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동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록탄은 걷기도 귀찮다고 중얼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레젤.”

데루스 로베르트는 록탄이 아니라, 레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준비하라고 말하라.”

“예.”

레젤이 허리를 굽히고 집무실을 나섰다.

“산맥 앞까지는 무리지만, 근처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믿어주시니, 확실하게 처리해 보이겠습니다.”

록탄이 빙긋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위로 색이 다른 기운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차기 대륙제일인이라 불리는 천재는 본인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숨이 끊어질 겁니다.”

놈의 시체는 녹이고, 드레이크 하트를 선물로 들고 오지요.

*     *      *

라온은 계속 말을 바꿔 타고, 전력으로 보법까지 밟아서 웨더스 마을 근처에 도착했다.

‘을씨년스럽군.’

예전에 보았던 웨더스 마을은 담벼락은 두껍지만 따스함이 드러나는 전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멀리서 보이는 마을은 폐허가 되어 무너져 있었다. 흡사 드래곤이 발톱으로 내리찍은 듯한 모습이었다.

“가자.”

“네….”

라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어 마음을 다잡은 뒤 웨더스 마을로 들어갔다.

“우욱….”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도리안이 입을 틀어막고 신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의 시체가 종잇장처럼 찢어져 있었고, 갈라진 살점이 썩은 듯 부패되어 있었으니까.

거름처럼 고약한 악취와 사이한 기운이 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라온은 검게 썩어버린 시체들을 보며 어금니를 지그시 씹었다.

‘어둠의 마나.’

당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몇 달은 썩은 듯한 저 상태가 어둠의 마나에 당한 흔적이었다.

-더러운 냄새로군. 네 말대로 마기에 무언가가 섞였느니라.

라스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후….”

라온은 잔혹함에도, 악취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고 마을을 확인했다.

‘시체가 적어.’

마을의 규모를 볼 때 못해도 30명에서 50명은 있어야 하는데 보이는 시체는 10명도 되지 않았다.

즉,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서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 정말 끌려갔다는…음?’

숨소리?

데닝로즈의 예측이 맞았다고 생각할 때 무너진 건물에서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얇고 가는 소리였다.

라온이 보법을 밟으며 달려가 무너진 건물 잔해를 들어 올렸다. 거대한 돌덩이 아래에서 팔이 잘려 나가고, 복부에 구멍이 난 남자가 힘겹게 눈을 들어 올렸다.

‘이건….’

카본 연공법!

심각한 상처를 입었지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을 때 숨을 죽여서 죽은 척하는 수법이다.

다만 호흡법을 끝내는 순간 무조건 죽게 되고, 버티는 동안 지독한 고통을 참아야 하기에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당장 죽고 싶은 고통을 참으며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혹시 암시장 소속이십니까?”

“마, 맞습니다.”

예상대로 이 남자는 데닝로즈가 이곳에 파견한 암시장의 요원이었다.

“라, 라온 님이시군요.”

요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맞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흐, 흑탑의 흑수장이 와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드, 드레이크에 먹일 제물이라고 하면서 어둠의 마나를 육체에 박아넣었습니다.”

요원은 하나 남은 왼손으로 본인의 목을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 어둠의 마나에 중독된 사람들을 먹으면 드, 드레이크에게 어둠의 마나가 쌓인다고 하, 하더군요. 놈들은 사람들을 둥지에 올려서 드레이크에게 먹이를 준 뒤 잡으려고 하는 것 가, 같습니다….”

“일단 물부터 드시고.”

도리안이 요원에게 물을 내밀었지만, 그는 옅게 웃으며 거절했다.

“흐, 흑수장의 손아귀에서 마기로 이루어진 손톱이 나옵니다. 방비를 해도 막을 수가 없더군요. 키, 키가 작은 마법사도 하나 있는데, 굉장히 강한 마력을 가졌습니다.”

요원은 흑수장의 공격 방식과 수하들의 수준까지 파악해서 정보를 전해주었다.

“부, 부탁합니다.”

그는 본인의 이름을 말하지도,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한 채 손을 잡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가늘게 이어지던 숨결의 실이 툭 끊어졌다.

라온은 온기가 식어가는 요원의 손을 꽉 잡았다.

이 요원은 파견을 당해서 이곳에 왔다.

마을 사람들과 잘 알지도, 친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이기에 하는 부탁.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서 버틴 남자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 부탁, 받겠습니다.”

라온이 이름 모를 요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리안.”

“네엡!”

도리안이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앞으로 달려왔다. 겁은 많고, 눈물은 더 많지만, 이젠 믿을 수 있는 녀석이다.

“네가 해줄 일이 있다.”

“뭐, 뭐든지 할게요.”

라온이 그의 대답을 들으며 지도를 펼쳤다. 드레이크의 둥지가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 그 뒤편을 가리켰다.

“흑탑 놈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이 뒤편 절벽을 타고 둥지로 올라가.”

“사, 산맥을 타라는 건가요?”

“그래. 드레이크나, 흑탑에게서 마을 사람들을 지켜줘.”

“그게… 아, 알겠어요!”

평소처럼 겁에 질려서 고개를 저으려던 도리안이 입술을 깨물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기척을 죽이는 아티팩트를 전부 끼고 가.”

“그럴게요.”

도리안이 배 주머니에서 이런저런 장비들을 꺼내서 몸에 착용했다.

“부단주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는….”

라온이 지도를 덮고, 자마리 산맥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를 올려보았다. 어둠을 직시하는 눈동자에서 시뻘건 뇌광이 번쩍였다.

“저곳에 있는 쓰레기들을 치워야지.”

단 한 마리도 남겨놓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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