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56화 (356/653)

제356화

마크 괴튼이 도를 쥐고 있는 오른손을 부르르 떨었다.

“떨어뜨린다? 고작 검기로 강기를?”

짜증만 가득 차 있던 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분노가 타올랐다.

“저 꼬마 녀석보다 더하군. 광풍단은 입을 잘 터는 놈들만 뽑는 건가?”

마크 괴튼이 도리안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조금 그런 면이 있지.”

라온이 피식 웃으며 도리안의 옷을 잡고 뒤로 던졌다. 벽에 부딪칠 것처럼 거칠게 날아간 도리안의 몸이 느려지며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섰다.

“음….”

마크 괴튼은 그 모습을 보고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아예 헛소리는 아니라는 건가.”

그가 도를 앞으로 겨눴다. 초승달 같은 칼날 위로 더욱 짙은 강기가 솟구쳤다.

“너는 물주와 관계도 없으니, 반 죽여놔도 상관없겠지.”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건방진 놈!”

그 말과 함께 마크 괴튼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 이동을 한 듯 좌측에서 나타나 도를 내리찍어왔다.

후우우웅!

강대한 풍압을 두른 도격이 어깨를 찢을 듯 떨어져 내렸다.

터엉!

라온이 오른발을 우측으로 뻗었다. 도격이 내려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몸을 기울였다.

쿠와아아앙!

종이 한 장 차이로 마크 괴튼의 도강이 어깨를 가르지 못하고 땅을 쳤다.

“흥!”

마크 괴튼은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바닥을 가른 도를 꺾어 우측으로 내질러왔다. 이동방향을 따라 피할 수 없는 도격을 쏘아냈다.

‘꽤 빠르군.’

라온이 왼쪽 발목을 안쪽으로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걸음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가람 보법이 마크 괴튼의 도격을 흘려냈다. 도강에 잘린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발재간이 제법이군. 하지만!”

마크 괴튼이 매서운 눈빛을 쏘아내며 땅을 박찼다.

찌지지직!

가람 보법의 이동 방향을 예측하고 공간을 선점하여 도를 올려 긋는다. 빠르면서도, 단호한 도격. 도라는 무기의 가장 큰 장점인 빠름과 예리함이 담겨 있었다.

‘향락에 빠졌다더니, 아예 폐인이 된 건 아니었군.’

유흥에 쓸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한다더니, 아예 단련을 게을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러의 양과 질만큼은 수준급이었다.

‘딱 좋군.’

해령화와 유령 해파리의 내단을 먹고 상승한 능력치를 시험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후우우우웅!

라온은 가람보법을 연달아 펼치며 마크 괴튼의 섬뜩한 도격을 가볍게 흘려냈다.

“내 강기를 떨어뜨린다면서 언제까지 도망만 칠 것이냐!”

마크 괴튼이 인상을 찌푸리며 속도를 높였다.

첫 번째 도격을 내지른 뒤 바로 뒤로 이동하여 두 번째 도격을 쏘아낸다. 벼락처럼 절묘하게 꺾이는 강기가 앞과 뒤에서 쏟아져 내렸다.

“조금 상황을 봤을 뿐이야.”

라온이 발목과 허리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상체가 물길을 탄 나뭇잎처럼 유연하게 돌아가며 첫 번째 도격을 절묘하게 회피했다.

후우우웅!

마크 괴튼이 직접 돌진해오는 두 번째 도격을 보며 가람 보법을 멈추고, 무게 중심을 낮췄다. 손목을 가늘게 비틀며 연성검술을 펼쳐냈다.

“멍청한 놈!”

마크 괴튼이 비웃음을 흘리며 도격을 내리꽂았다. 도에 가득 찬 강기의 파동이 전신을 짓눌러왔다.

‘이 정도쯤이야.’

육체의 힘만으로 강기의 압력을 깨부순 뒤 장검을 들어 올렸다. 칼날 위에 피어난 검기를 나선으로 일으켜 도를 휘감은 강기를 깎아냈다.

치지지지징!

붉게 물든 용오름이 도강 주변을 휘감아 내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어?”

밑으로 기운 도를 올려 치려던 마크 괴튼이 우뚝 멈춰 섰다. 그는 쥐고 있던 도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강기가 깎여나갔다고?’

조금 전 붉은 기운이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도를 두르고 있던 강기가 짐승에게 물에 뜯긴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검기로 강기를 깎아낸다는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너….”

마크 괴튼이 마른침을 삼키고 라온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보법을 밟고, 검술을 펼쳤지. 왜? 검술 이름도 알려줄까?”

라온은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마크 괴튼이 뜯겨나간 강기를 다시 일으킨 채 쇄도해온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립된 투로가 그의 도법에 깃든다. 제대로 된 무학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온은 비틀어져서 쇄도해오는 도강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특이하군.’

우측과 좌측을 번갈아 움직이는 거친 형태의 도법인데, 평범하게 내리찍는 것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강맹했다.

‘다만….’

못 깰 정도는 아니야.

도법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장검을 뻗어냈다. 강기는 검기가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오러의 응집체. 결국 검기를 수없이 내지른다면 깎일 수 밖에 없다.

찌지지지직!

나선력의 진의가 담긴 연성검술이 별자리처럼 이어지며 마크 괴튼의 강기를 뜯어냈다.

피이익!

라온은 방어만으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강기를 가른 검기를 섬전처럼 쏘아내 마크 괴튼의 허리를 뚫었다. 갈라진 상처에서 핏물이 치솟았다.

“크윽!”

마크 괴튼이 허리를 잡으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인해 파르르 떨렸다.

“…회, 회전인가?”

아예 감이 없는 건 아닌지 그는 어떻게 강기가 뜯겨나갔는지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래. 회전이 깃든 검기로 네 강기를 긁어냈지.”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장검을 겨누었다.

“그, 그건 말이 안 돼. 내 벽란도의 투로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움직임을 파악해서 강기를 깎는단 말이냐!”

“물론 모르지. 다만 어디로 움직일지는 뻔히 보이더군.”

마크 괴튼이 말한 벽란도라는 도법은 벼락처럼 각진 형태의 투로로 도를 그어 내리는 무학이었다.

속도와 예리함, 그리고 강함이 담겨 있지만, 그의 수련이 미숙하여 그 흐름을 읽기 어렵지 않았다.

“기본 보법과 기본 검술만도 못한 성취다. 검기조차 아까울 정도야.”

“이 새끼가….”

마크 괴튼이 피나도록 이를 바득 갈았다.

“재능. 그놈의 재능 차이라는 것이냐!”

그의 기세가 이전과는 격이 다를 정도로 거대해졌다. 전력을 끌어올리는지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내겐 없는 재능이 왜 남들에게 다 있단 말이냐!”

마크 괴튼이 악을 지르며 바닥을 부수고 달려온다. 그의 도에서 흉악한 형상의 강기가 뻗어 나왔다. 경

지는 마스터 하급이지만, 수십 년 동안 쌓은 거대한 오러가 일시에 뿜어져 나왔다.

쿠와아아아아!

도에서 피어난 강기가 수십 개의 난폭한 궤적을 그리며 오러의 폭풍을 일으켰다. 조금만 닿아도 살점이 통째로 뜯겨나갈 만한 위력이었다.

-정말 검기로만 상대할 것이냐?

라스는 의미 없는 짓이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정체를 밝힌 건데 그냥 강기를 써도….

‘무인이 한번 말을 했으면 지켜야지.’

라온이 차게 웃으며 도강의 폭풍 속으로 파고들었다. 도법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그 투로를 휘감는 거대한 흐름을 일으켰다.

쿠구구구!

마크 괴튼이 펼친 벽란도의 절기보다 더 빠르고, 더 예리하고, 더 장대한 검술의 흐름이 도강의 폭풍을 둘러싸며 시뻘건 서광을 일으켰다.

화아아아아아!

연무장을 뒤덮었던 강기가 모조리 사그라들고, 마크 괴튼의 도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그의 전신에서 검기에 베인 상처가 벌어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조금만 더 들어갔어도 치명상이 됐을 상처들이었다.

“아….”

마크 괴튼은 끈 떨어진 인형처럼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온 힘이 다 빠졌는지 그의 사지가 달달 떨렸다.

“이제야 낙화도라는 이명에 어울리게 되었군.”

라온이 장검을 어깨에 걸치며 피식 웃었다.

“너, 너는 뭐냐….”

마크 괴튼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빛에서 절망의 빛이 피어났다.

“검기로 벽력천풍을 지우다니,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소문도 나지 않고….”

“내 이름이 뭔지는 알고 있나?”

“그, 그건….”

이제야 자신의 이름도 듣지 않고 싸웠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마크 괴튼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감이 과했다. 마스터는 무적이 아니야. 검기가 무조건 강기에 지는 것도 아니지.”

“그건 네놈처럼 재능이 있는 놈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마크 괴튼이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처럼 평범한 놈은 평생에 걸쳐도 너처럼 될 수 없다.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르지? 대체 무엇을 했기에 그런 재능을 가질 수 있단 말이냐!”

그는 울분을 터트리듯 악을 질렀다.

“재능. 재능. 지겹군.”

라온이 마크 괴튼을 굽어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네 말대로야. 난 재능이 있고, 운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네 약함과 무슨 상관이지?”

“나도 너 같은 재능이 있었다면….”

“재능은 그저 태어나면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석고상을 조각하듯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과 절망을 겪으며 만들어지는 게 재능이다.”

이번 생에선 운과 시기가 겹쳐서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다만 그 환경을 이뤄낸 건 자신의 선택과 노력이었다. 수십 번의 혈로를 걸었으며 죽을 위기를 넘긴 적도 많다.

“아까 어떻게 도법의 흐름을 읽었냐고 물었지?”

라온이 차가운 눈으로 마크 괴튼을 굽어보았다.

“간단해. 네 초식이 허술했으니까. 초식 수련을 대충했더군.”

“무, 무슨 헛소리냐! 난 지금도 도를 놓지 않았어!”

“그래. 놓지 않고, 도법의 묘리와 오러 연공에만 힘썼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식으로 초식을 펼쳤던 게 언제지?”

“으음….”

“무학과 오러 경지에 매몰되어 초식을 제대로 단련하지 않았지? 네 초식은 죽어 있다. 무인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지.”

평범한 인간이라면 죽고 싶을 고통을 참으며 만들어낸 재능을 제대로 노력하지 않은 이가 폄훼하는 것에 짜증이 돋았다.

특히 전생에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할 수 없는 삶을 살았기에 자유를 가지고 있으면서 절망만 하는 마크 괴튼에게 짜증이 일었다.

“죽을 위기는 얼마나 겪었지? 훈련하다가 기절한 적은 있나? 네 스스로 남들과 다른 업적을 쌓은 적은? 네가 한 도전은 무엇이지?”

“그, 그건….”

마크 괴튼은 그 어떠한 말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턱을 떨며 라온을 바라볼 뿐이었다.

할 말이 없는 건지, 말할 게 없는 건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었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작은 시련도 이겨내지 못하는 법이지.”

라온이 왼 주먹을 말아 쥔 채로 마크 괴튼에게 다가갔다.

“네 나태와 무능을 재능 탓으로 덮지 마라.”

그 말을 하며 주먹으로 마크 괴튼의 턱을 후려쳤다.

뻐어어어억!

마크 괴튼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뿌드드득!

대지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다. 마크 괴튼은 일어나지 못하고 대자로 뻗었다.

“뭐, 뭐야! 이게 뭐냐고!”

팔렌이 벽이 무너지며 피어난 연기를 보며 턱을 파르르 떨었다.

“일어나! 당신에게 준 돈이 얼만데 익스퍼트한테 쳐지고 앉았어!”

그녀는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한 마크 괴튼에게 삿대질을 하며 악을 질렀다.

“일어나라고!”

팔렌이 계속 외쳤지만, 마크 괴튼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이.”

라온이 장검을 어깨에 걸친 그대로 팔렌의 앞으로 다가갔다.

“으윽….”

기세를 끌어 올리지 않았기에 팔렌은 인상을 찌푸릴 뿐 그리 위축되지 않았다.

“이,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녀는 라온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저런 버러지 따위는 이번 일을 위해 잠깐 고용했을 뿐이야. 진짜들을 데려온다면 너 따위는 언제라도 짓밟을 수 있어.”

“짓밟을 수 있다라….”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턱을 들어 올렸다.

“정말인가?”

“너도 어리네.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건 없어. 인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딴 걸 믿는다고? 돈만 있다면 지그하르트도, 로베르트도 당장 데려올 수 있지. 널 꿇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다시 묻지.”

라온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의 손길을 스친 적발이 찬란한 금빛 물결이 되었고, 바다 같았던 푸른 눈동자가 증발하며 시뻘건 불꽃을 토해냈다.

“그, 금발적안….”

팔렌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고오오오오!

라온의 기세가 들불처럼 일어섰다. 찰나의 순간에 이 연무장 전체가 그가 지배하는 공간이 되었다.

“나를 짓밟을 수 있나?”

“아, 아….”

팔렌의 눈동자가 거대한 파도를 맞은 돛단배처럼 출렁인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듯 이빨을 부딪치며 전신을 떨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이 괴물이 왜 여기에 있지?

라온을 납치했다가 에덴은 지부가 통째로 지워지고, 백혈교는 교주가 심한 부상을 입었다.

라온이라는 인물의 무력을 감당할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보리니 키튼, 가로나, 카디스를 연달아 깨부순 백검룡을 상대할 사람은 흔하지 않으니까.

다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무섭다.

새빨간 달보다 더 짙고, 깊은 저 붉은 눈을 보자, 머리가 새하얗게 비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당장 무릎을 꿇고 저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말하라. 나를 짓밟을 수 있나?”

“…어, 없습니다.”

팔렌은 굴복하듯 고개를 숙였다.

“끄으윽….”

그녀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세와 정신적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여 뒤로 넘어갔다.

라온의 시선이 팔렌의 옆에 있던 덩치 큰 무인에게 향했다.

“항복할 텐가?”

“아, 예! 절대 싸울 생각이 없….”

덩치 큰 무인은 투지가 아예 사라진 듯 양손을 마구 흔들었다.

“필요 없어.”

라온은 인상을 찌푸리고서 덩치 큰 무인의 얼굴을 후려쳤다.

쿠와아앙!

힘을 아끼지 않았기에 무인의 거대한 몸이 거꾸로 땅에 꽂혔다.

“무인이 싸우지도 않고 패배를 말하다니, 한심하군.”

라온이 혀를 차며 손을 탁탁 털었다.

-허….

라스는 라온과 땅에 꽂힌 무인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이거 진짜 미친놈 아니야?

지가 항복할 거냐고 물어봐 놓고, 항복하니까 패버린다. 세상에 이런 악마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왔느니라. 네놈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마계….

‘시끄러.’

*     *      *

도리안이 입술을 꾹 깨물며 라온의 등을 바라보았다.

라온이 마크 괴튼을 쓰러 뜨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의 무력은 마스터 상급조차 꺾을 정도였으니까.

‘정말 놀라운 점은….’

검강을 검기로 깨부쉈다는 것.

그는 정말 검강을 일으키지 않았다. 특별한 무학조차 사용하지 않고, 검기와 기본 무학만으로 마크 괴튼을 쓰러뜨렸다. 눈앞에서 봤음에도 믿기 힘들었다.

‘다만….’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정말 자신에게 깊게 와닿는 건 라온의 무학이 아니라, 그가 했던 말이었다.

[네가 돈을 벌었다고 자랑했듯이 도리안은 지그하르트에 와서 인연을 쌓았다. 내가 그의 힘이라는 뜻이지.]

[나도 다른 광풍단 검사들도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검을 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건 절대 돈으로 살 수 없어.]

그 말이. 너무나 담담하게 흘러가던 그 말이 머리속을 끊임없이 맴돌고 가슴을 강하게 찔러왔다.

인연.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라는 뜻의 이 짧은 단어가 이렇게 진한 감동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특히 그 말을 한 사람이 평소 농담을 잘 하지 않는 라온 지그하르트였기에 더더욱 가슴이 울컥했다.

‘진심이라는 뜻이니까.’

라온은 다른 건 몰라도 광풍단에 관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했다는 건 정말 모든 광풍단이 자신을 저리 여긴다는 뜻이었다.

‘나만이 아니었어.’

자신의 진짜 집은 이 상단이 아니라, 광풍단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수 있는데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으윽….”

도리안이 검을 지팡이 삼아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홀로 고고히 서 있는 라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멍청이를 꾸짖어 주어서.

라온은 팔렌을 협박하듯 말했지만, 정말 깨우치길 원하던 건 자신이었을 거다.

‘넌 혼자가 아니다. 라온 지그하르트와 광풍단이 네 뒤에 있다.’라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이번 일을 계획한 게 분명했다.

‘정말 감사….’

“너 뭐하냐?”

도리안은 눈물을 훔치며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눈앞에 큼지막한 그림자가 지며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는 감사를….”

“아, 시원하네.”

라온이 손목을 돌리며 씩 웃었다.

“반말 섞을 때부터 네 누나가 마음에 안 들었거든. 다 깨부수니까. 속이 좀 풀린다.”

“…….”

도리안이 딸꾹질을 하며 시선을 들었다.

“그, 그러면 저 때문이 아니라….”

“너? 너 뭐 했냐? 얻어 터지고 끝난 거 아니었어?”

“아니, 제 뒤에 서 있다고 하셔서….”

“그런 말을 해야 네 누나가 충격을 받을 거 아니냐.”

라온은 피식 웃으며 기절한 팔렌을 가리켰다.

“저한테 깨우침을 주시려고….”

“아닌데?”

“어….”

도리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팔렌은 그 정신적 충격에 정신을 잃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 진심이 아니었나?’

아쉬움에 눈을 내리 깔 때 라온이 어깨를 툭 쳤다.

“그냥 사실을 알려줬을 뿐이야. 수고했다. 오늘은 광풍단의 검사다웠어.”

라온은 어깨를 꽉 주물러준 뒤 연무장 출구로 걸어갔다.

“아….”

도리안은 거칠게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됐고, 가자.”

“예!”

없는 힘을 다해 대답하고서 라온의 뒤를 따라갔다.

“시끄럽네….”

“죄, 죄송합니다! 너무 기뻐서….”

“너 말고 밥 달라고 난리를 부리는 놈이 있거든.”

라온은 배가 고프다면서 손목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귀찮은 솜사탕이라고 중얼거리고서 고개를 돌렸다.

“일단 밥부터 먹자.”

“하긴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까요.”

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준비하라고 부탁을 해놓겠습니다.”

“너도 같이 가.”

“아, 저는 일단 의무실에….”

“그런 건 침 바르면 나아. 밥 먹으러 가자.”

“아니, 칼에 맞았는….”

“훈련 좀 더 하고 갈까?”

“가, 가겠습니다!”

도리안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이 인간은….’

오늘 정말 멋있게 보여서 감동했는데, 다시 악마로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에휴….”

도리안이 한숨을 내쉬고 연무장을 나가려는데 라온이 따라오지 않고, 서쪽에 있는 나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 가세요?”

“저 나무 위에 날다람쥐가 있었던 것 같아서.”

라온은 연무장 서쪽 끝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날다람쥐요?”

도리안이 나무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러냐.”

라온은 노이로제 걸리겠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 날다람쥐는 모르겠지만, 박쥐들은 꽤 있네.”

그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내일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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