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3화
라온이 허리를 곧게 폈다. 삼엄한 기세를 두른 세피아 상회의 주인 아디스 세피아와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아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세피아 상회로 오면서 신분을 드러낼 만한 행동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를 드러내는 가장 큰 특징인 금색 머리카락과 붉은색 눈동자 그리고 두 자루의 검을 숨겼는데 고작 5시간 만에 들켰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장사를 할수록 늘어나는 게 무엇인지 아시오?”
아디스 세피아가 손톱을 깔끔하게 다듬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사람을 보는 눈이라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나는 것도 사람을 보는 눈이지.”
그의 시선이 담백하게 가라앉았다.
“이 나이 먹도록 장사꾼으로 살았으니,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꽤 자신있다오.”
“동료의 아버지이시니,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라온이 아디스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것으론 대답이 안 됩니다.”
아디스의 말은 두리뭉실하게 들릴 뿐 제대로 된 답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을 보는 눈이 탁월해도 단번에 자신의 정체를 파악한다는 것 말이 안 되니까.
“광풍단 부단주인 백검룡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현재 대륙에서 가장 많은 소문이 돌고 있는 무력 단체가 광풍단이라는 것을.”
아디스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깐깐한 성격인지 말을 놓지 않았다.
“오웬 왕국에서 개최된 육황 결투 대련의 두 우승자가 모두 광풍단 소속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장사꾼으로서 그런 신성들의 정보를 파악하는 건 필수라오.”
그는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덤덤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부단주인 백검룡, 1조 조장 나찰검, 2조 조장 청월검, 3조 조장 선풍검을 비롯해 광풍단 검사 모두를 조사하면서 저 녀석도 끼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소.”
“조장만이 아니라, 단원 전부 조사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광풍단에 속한 검사들의 모든 정보를 모았소. 외형, 성격, 선호하는 것, 인간관계까지.”
“음….”
라온은 평온하게 말하는 아디스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단하네. 저래서 5대 상회의 주인인가? 아니, 저래서 5대 상회의 주인이 된 거겠지.’
광풍단이 유명해진 건 사실이지만, 세피아 상회가 이렇게 주목할 정도는 아니다. 말 그대로 유망주 대전에서 이겼을 뿐이니까.
언젠가 올 수 있는 거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모든 것을 조사했다는 게 놀라웠다.
“도리안이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부단주와 가장 많이 다니고, 친하다고 들었소. 그래서 저 아이가 이곳에 온다면 당신의 성격상 함께 올 거라고 생각했지.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은 바꿨지만, 키와 이목구비의 형태는 속이지 않았더구려. 그래서 알아볼 수 있었소.”
“…대단하시군요.”
순수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비슷하군.’
암살하기 위해서 목표물의 모든 것을 조사하는 암살자와 거래를 트기 위해 대상의 모든 것을 조사하는 상인과는 비슷한 점이 있었다.
-저, 저 영감도 스토커 기질이 있는 것 같느니라.
라스가 아디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대륙에는 왜 이리 요상한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느니라!
‘맞아. 스토커 느낌이지.’
그래서 이상해.
지금 아무 감정 없는 아디스의 눈빛과 처음 도리안을 봤을 때 드러낸 잔 떨림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까.
‘조금 떠볼까?’
라온이 어쩔줄 몰라하는 도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가 도리안과 함께 다니고,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별 게 아닙니다. 신뢰할 수 있는 동료이기 때문이죠. 세간은 저 혼자 많은 임무를 해결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녀석에게 도움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도리안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제가 에덴에서 구출될 수 있던 이유도 도리안이 용기를 내준 덕분이었습니다. 다만 그 때문에 도리안도 납치당했었죠. 아드님을 위험에 빠뜨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온이 아디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 내가 인사를 받을 이유가 없소. 일어나시오.”
아디스가 일어나라 손짓했다. 목소리가 잔잔한 것을 보니 도리안이 납치됐던 것도 알고 있던 것 같다.
“알고 계셨군요.”
“….”
“당연하겠지만, 아들에게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저런 노련한 상대에게 간접적인 말은 통하지 않는다. 칼을 들고 직접 찔러보았다.
“흠.”
아디스는 도리안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컵에 담긴 물로 입을 축였다.
‘생각을 정리하는 건가.’
지금까지 그는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바로 대답했다. 처음으로 시간을 끄는 것을 보니,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귀한 물건을 가져갔으니, 어디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소.”
아디스는 도리안의 배 주머니를 보았다. 담담함을 넘어 냉소적인 대답이었다.
“으윽….”
도리안이 불안한 듯 배 주머니를 쓰다듬으며 신음을 흘렸다.
“저도 광풍단의 소문을 많이 들었지만, 그 안에서 도리안의 이야기가 나오는 건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작고 사소한 정보를 모아서 상황을 파악하실 정도로 많은 조사를 하신 거겠죠.”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아디스가 무감정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매하군.’
능구렁이가 같은 사람이다. 그의 속을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정보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라온은 도리안과 아디스가 대화할 수 있도록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디스가 그 뜻을 알아듣고 도리안과 눈을 마주쳤다.
“나는 누구보다도 큰 보물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상회의 후계자 자리를 준다고 말했지. 넌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
“음….”
도리안의 손이 배 주머니로 가다가 멈춰 섰다. 그는 배 주머니가 아니라, 허리춤에 매고 있는 검병을 움켜쥐었다.
“검을 수련했습니다.”
“어떤 보물을 얻기 위해서 검을 수련했지?”
아디스의 눈동자에서 서늘한 기세가 피어났다. 오러가 아닌 사람 자체가 가진 분위기였다.
“사, 상회와 상관없이 살고 싶어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도리안은 솔직하게 어린 시절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물론 목소리는 잘게 떨렸다.
“상회와 상관없는 삶이라….”
아디스는 이번에도 놀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느냐?”
“후우….”
도리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 아뇨. 조금이지만 장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현재의 생각을 전했다.
“지금까지 검만 휘두른 녀석이 상회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그것도 조금? 장사가 우습게 보이는 것이냐!”
아디스가 책상을 내리치며 사나운 눈빛을 쏘아냈다.
“이 순간에도 장사에 목숨을 걸고 있는 이들이 수없이 많거늘. 그들 모두를 무시하는 말이다!”
“자, 장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도리안이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지그하르트 훈련생이 되었을 때도 전 정식 검사가 못 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용기를 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덕분에 지금 이 위치까지 설 수 있었죠.”
그의 시선이 라온 쪽으로 돌아갔다.
“자, 장사 역시 굉장히 어려울 게 분명하지만, 제가 의지를 다잡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뿌, 뿐입니다.”
도리안은 튕긴 고무줄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그래도 하나는 배워왔구나. 도움을 청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디스의 눈동자가 깃들어 있던 차가움이 조금 가시는 듯 보였다. 그가 눈을 내리감고 다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형제들도 모두 돌아왔으니, 조만간 시험을 하나 내릴 것이다. 그때 참여하도록.”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가보거라.”
“아, 알겠습니다!”
도리안이 고개를 꾸벅였다.
라온이 아디스와 도리안의 눈빛을 차례로 보고서 입맛을 다셨다.
‘아예 놓은 건 아니야.’
상회 일을 전혀 안 하고, 검만 휘두른 도리안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과 그의 잘못됨을 꾸짖은 점을 보면 아디스가 도리안을 후계자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시험을 치른다면 알 수 있겠지.’
달라진 도리안을 보게 된다면 그의 진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고 할 때 아디스가 손을 들었다.
“광풍 부단주.”
“예.”
“변장은 그만두셨으면 좋겠소. 상회의 어린 것들이 실례를 저지를까 걱정이 되는구려.”
“음….”
그 실례를 저지르라고 이 모습으로 온 건데, 그걸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 같았다. 역시 5대 상회의 주인.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꾸벅이고 도리안을 따라 아디스의 집무실을 나섰다.
“하아아아아아….”
도리안이 계단 위에 세워진 난간을 부여잡고 긴 한숨을 뱉어냈다.
“긴장되어서 죽을 뻔했어요.”
“잘하던데 뭘.”
라온이 도리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
“잘하긴요. 심장이 뛰어서 말이 안 나왔다구요.”
도리안이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대로인지 그의 다리가 살짝 떨렸다.
“원래 저렇게 담백하셔?”
“어렸을 때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전보다 조금 더 차가우신 느낌이에요.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그것도 말은 된다. 아들이 9년 만에 찾아왔으니, 섭섭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 평소보다 더 쪼그라든 느낌이니라.
라스가 어깨를 움츠린 도리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어. 태어나서 떠날 때까지 구박만 받았으니까.’
어린 코끼리의 다리를 쇠사슬로 묶어서 도망칠 수 없게 만들면, 성체가 되어서도 얇은 쇠사슬을 벗어날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도리안 역시 본인의 무력과 지위가 성장했어도 이곳에 온 순간 구박만 받던 어릴 때도 돌아간 느낌을 받아서 저리 위축되어있는 것이다.
‘그걸 깨줘야겠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가다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 아래에 있는 기운….’
아디스를 만나기 전에 찾아온 사람의 기척이다.
‘바로 변장을 풀라는 말은 안 했지.’
픽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도리안! 상회주님 앞에서 당차게 상회를 먹겠다고 말하는 거 보고 감탄했다!”
라온이 계단 아래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저, 전 그런 적 없는데요. 그냥 관심만 있다고….”
“도리안!”
도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대기실을 찾아왔던 그의 셋째 누나 팔렌이 악을 지르며 올라왔다.
“당장 따라와.”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인상을 구겼다.
“네 세월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반응이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자신의 정체를 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누나? 가, 갑자기 왜….”
도리안이 난간을 꽉 잡은 채 입술을 떨었다.
“입 닫고 따라오기나 해.”
“으윽….”
도리안이 라온에게 고개를 돌렸다. 큼지막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잘됐네. 너도 가만 놔둘 생각 없었잖아!”
그 말에 팔렌의 입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가자.”
라온은 네 힘을 보여주라고 중얼거리며 도리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허!
라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너어어어어는 진짜….
* * *
라온은 팔렌을 따라 세피아 상회 총단을 나섰다. 도리안은 사형대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허우적대며 그 뒤를 따랐다.
“어, 어디 가시는 건데요….”
“내가 입 닫고 따라오라고 했지.”
팔렌은 한참을 걸어서 상회의 무인들이 수련하는 곳으로 보이는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밤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이 켜져 있었고, 강한 기세를 피워내는 세 명의 무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꿀꺽.
도리안은 옆에 있는 사람이 들을 정도로 크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무슨….”
“말했잖아. 네가 쌓아온 시간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팔렌이 손짓을 하자, 무인 중에서 가장 젊어 보이는 20대 검사가 그녀의 옆에 섰다.
“정말 건드려도 되는 거예요? 상회주 아들이라며.”
젊은 검사가 도리안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자야. 그것도 아무 관심도 없는 서자.”
팔렌은 코웃음을 치며 도리안을 노려보았다.
“파, 팔렌 누나?”
“나를 꺾겠다고 자신하길래 준비했지.”
팔렌이 옆에 서 있는 젊은 검사를 가리켰다.
“견사검 토튼 로벨. 남서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무인이고, 너랑 나이도 비슷해. 딱 좋은 상대지.”
라온이 토튼 로벨이라 불린 남자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견사검이라….’
들어본 적 있는 이명이네.
육황의 무인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젊은 나이에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라 육황의 유망주급이라 여겨진다고 들었던 검사였다.
“서, 설마 저 사람이랑 대련하라고?”
도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그래. 나를 꺾겠다며 지금 여기서 증명해봐.”
팔렌이 도리안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이를 갈았다.
“나,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10분 뒤에 시작할 거니까. 준비해.”
팔렌은 도리안의 말도 듣지 않고 뒤를 돌았다.
“광풍단 소속이라던데, 잘 부탁합니다.”
토튼 로벨이 손을 흔들고서 떨어졌다.
“저, 저 사람 수준이 어느정도에요?”
도리안이 다급하게 다가와서 소매를 붙잡았다.
“익스퍼트 최상급이네. 확실히 나이에 비해 뛰어나.”
버렌이나, 마르타, 루난 수준은 아니지만 20대 초중반의 나이치고는 뛰어난 실력이었다.
“이, 익스퍼트 최상급? 아아아아악!”
도리안이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이거 어쩔 거예요!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괜히 얻어터지게 생겼잖아요!”
“괜찮아. 너라면 이길 수 있어.”
라온이 옅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전 이제 상급인데, 어떻게 최상급을 이겨요!”
“가능해.”
“불가능하다구요! 다 망했어!”
“크흠.”
도리안의 울부짖음에 대답하지 않고, 팔렌과 토튼 로벨쪽을 보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또, 또 뭘 하시려고….”
“뭐? 저 정도는 가볍게 발라버릴 수 있다고? 광풍단의 중심은 역시 도리안이네!”
라온은 연무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저 새끼가 또….”
“뭐?”
팔렌과 토튼 로벨이 뒤를 돌아 이쪽을 노려본다. 팔렌만이 아니라, 가벼워 보이던 토튼의 시선에도 칼날 같은 섬뜩함이 깃들었다.
“아아아아….”
도리안의 눈가에 눈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게처럼 입 주변에서 거품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뭐? 저 정도 상대는 준비할 시간도 필요 없다고?”
라온이 히죽 웃으며 도리안의 등을 살포시 밀었다. 물론 그 안에는 근력 300이 넘는 폭발적인 힘이 깃들어 있었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으어어어억!”
도리안이 그 무식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대련할 연무장 중심으로 달려 나갔다.
“이,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패고 싶어서 못 기다리겠다더니, 진짜 달려가네! 도리안 힘내라!”
라온은 도리안을 향해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꺾어버리고, 네 누나를 닥치게 만들라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원하게 웃어주었다.
“하!”
토튼 로벨이 헛웃음을 흘리며 도리안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지그하르트 광풍단이라고 해도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시는군. 이런 모욕은 오랜만이야.”
그의 전신에서 살기 수준으로 섬뜩한 기세가 줄줄이 피어났다.
“주제도 모르는 서자 따위가….”
팔렌 역시 죽일 듯이 도리안을 노려보았다.
“에헤헤….”
도리안이 두 사람을 보며 히죽였다. 썩은 물고기의 안구처럼 눈동자가 탁 풀려 있었다. 반쯤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라온이 연무장을 달구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씩 웃었다.
‘딱 좋은 분위기야.’
애는 원래 강하게 키워야 하는 법이지.
-아….
라스는 라온을 보며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겁에 질린 듯 얼굴이 창백했다.
-네가 사람 새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