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0화
장기를 짓누르는 고통에 손이 바르르 떨린다.
라온은 주먹을 쥐고서 억지로 눈을 내리감았다.
‘지독할 정도로 강한 기운이야.’
바다의 생명력이 모여서 피어난다는 해령화도, 그 해령화의 기운을 빨아먹으며 성장한 유령 해파리의 내단에도 어마어마한 기운이 응집되어 있었다.
해령화의 이파리가 두 기운의 충돌을 완화해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많은 부위의 마나 회로가 파열되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무리한 건가.’
해령화만 흡수하기도 벅찬데, 유령 해파리의 내단까지 한 번에 먹은 게 조금은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이게 맞아.
유령 해파리의 내단은 맹독 그 자체다. 그거 하나만 먹었다간 지금의 자신이라고 해도 위험할 수 있다.
해령화와 해령화의 이파리로 독기를 지우며 순수한 마나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우우웅!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마나 회로에서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앙!
몸의 중심. 전신의 마나 회로가 지나가는 명치 부근에서 포탄이 터진 듯한 강대한 충격이 일어났다.
심장 부근을 쇠망치로 후려친 듯한 고통에 집중력이 깨졌다.
‘이파리를 하나 더 먹을 걸 그랬어.’
완충제 역할을 하기에 이파리 하나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다만 하나를 더 먹었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거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이대로 해결해야 한다.
치이이잉!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운용했다. 심장을 휘도는 일곱 개의 고리가 청아한 울림을 일으키며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줄이고, 강대한 힘을 뿜어내는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를 짓눌렀다.
‘지금 움직여야 해.’
아무리 불의 고리라고 해도 저 강대한 기운을 계속 억누를 수는 없다. 영약과 내단의 기운이 움직임을 멈춘 지금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라온이 입술을 씹으며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끌어 올렸다. 단전을 벗어난 열기와 냉기가 마나회로를 타고 질주했다.
‘으윽….’
마나 회로가 자극된 상태라 고통이 심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지금은 아픔 따위에 멈출 때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화아아아아아!
만화공의 열기로 내단의 독기를 억제했다. 본래 독은 불에 약한 법.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만화공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쪽도….’
해령화는 순도 높은 자연의 마나가 대부분이지만, 그중에서도 수속성을 가장 많이 띄고 있다. 글래시아의 냉기를 이용하여 해령화의 기운을 이끌었다.
‘크으….’
두 기운은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흐름을 따라 마나회로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워낙에 거대한 기운이었기에 움직일 때마다 머리에 아찔한 통증이 일었다.
라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죽겠군.’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운용하는 것도,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를 이끄는 일도 버거웠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방법이 두 기운을 흡수하기 위한 최선이었다.
찌이이이!
불의 고리가 만들어 낸 마나 장악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를 단전으로 끌어당겼다.
우우우우웅!
두 기운은 단전 바로 앞 마나 회로에서 멈춘 채 말을 듣지 않는 아이처럼 발버둥 쳤다.
길이 막히며 마나 회로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크윽!’
이 정도로 거친 건 별론데….
라온이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기운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마나회로가 찢어질 듯 부풀어 올랐지만, 육체와 정신의 굳건함을 믿고 오러를 운용했다.
육체와 정신 모두를 짓누르는 고통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입술을 곽 깨문 채 오러를 극성으로 휘돌려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를 단전으로 밀었다.
콰아아아앙!
몸속에서 절벽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돌조각이 떨어지는 것처럼 전신에 강한 충격이 연달아 일어났다.
‘더럽게 까다롭네….’
조금 전 솟구친 충격에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이 정도로 힘과 체력을 빼는 기운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버틴다.’
영약 따위한테 질 수는 없지.
마티오와 코시니, 리스본에게 복수하고, 데루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놓고 영약 따위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라온은 주먹을 꽉 말아쥐며 깨진 집중력을 되살렸다.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오러를 마지막 한 톨까지 짜내서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를 단전으로 밀었다.
콰아아앙!
수천 개의 북이 동시에 울리는 듯한 웅장한 소리와 함께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단전으로 들어갔다.
‘됐어.’
드디어 두 기운이 단전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정상적인 흐름을 따라간 게 아니기에 두 기운은 만화공의 열기도, 글래시아의 냉기도 되지 못했다.
우우우웅!
열기와 냉기라는 방해꾼이 사라지자,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두 기운이 부딪치며 단전이 찢어질 듯 부풀어 올랐다.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이 마나를 전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라의 독기는 거의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 두 기운이 부딪치게 되면 당연하게도 많은 양의 오러가 손실되며 사라진다.
‘다만….’
둘이 싸우는 곳은 내 단전이지.
두 기운은 단전에서 부딪치고 있기에 사라져야 할 마나가 그대로 자신의 기운이 되어주고 있었다.
즉, 고통만 참으면 두 기운이 부딪치며 알아서 순수한 마나를 만들어준다는 뜻이었다.
‘난 그걸 만화공과 글래시아로 만들면 되고.’
단전 내부에 순도 높은 오러 생성기를 만든 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미친놈이로다. 머리에 뇌 대신 파스타 면이 차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라스의 갈라진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전해져왔다.
-보통은 그 방식을 알고 있어도 절대 실행하지 않는다.
‘왜?’
-더럽게 아프니까! 고문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계속 참겠다고?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
며칠 동안 고문을 당했던 전생이 있기 때문일까. 이 정도 고통은 참을만했다.
쿠우웅!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다시 한번 부딪치며 전신을 뒤흔들었다. 기운이 줄었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통증이 덜 했다.
-허어….
라스는 헛바람을 흘리며 이해할 수 없다고 중얼거렸다.
고오오오!
라온은 라스를 놔두고 단전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서로를 향해 전력으로 부딪치며 강대한 마나가 피어난다.
그 마나를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흐름대로 이끌어 순도 높은 열기와 냉기를 만들어냈다.
더 강해진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오러는 해령화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또 부딪치도록 압박을 넣었다.
콰아앙!
두 기운이 격돌하며 다시 순수한 마나가 피어나고, 그게 열기와 냉기로 치환된다.
만화공의 열기와 글래시아의 냉기를 만드는 공장이 완성된 것이다.
‘제대로야.’
라온은 전신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조율하며 깊은 심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 또 들어간다고?
라스는 초집중 상태에 빠진 라온을 보며 악을 질렀다.
-무아지경이 네 집 안방이냐고! 심심하면 들어가는 게 말이 되냐아아아아!
* * *
도리안은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라온을 돌아보고, 입맛을 다셨다.
‘괘, 괜찮으신 건가?’
라온의 몸 이곳저곳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흡사 개구리나 두꺼비의 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몸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라온이 가진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힘들어 보이지만 영약을 흡수하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신기한 사람이야.’
잠시 놀고 온다더니, 5대 상회도 구할 수 없는 해령화를 따오지 않나. 냄새만 맡아도 중독될 것 같은 영물의 내단을 빼 오지 않나.
그릇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해령화의 이파리를 나한테 준 게 제일 신기했지.’
라온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해령화의 이파리를 자신에게 주었다.
그것도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수련을 열심히 한 게 기특해서였다.
‘이해하기 힘들어.’
12살 때부터 봐왔지만, 라온이라는 사람은 지금도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상자 같았다.
깔면 깔수록 다른 면이 나오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라온 지그하르트라는 사람의 배경을 듣고,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둘 다 가문에서 무시와 구박만 받았으니까.
‘다만 그 과정은 달랐어.’
상회에서 도망친 자신과 달리 라온은 물러서지 않고 가문과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모두에게 인정까지 받았다.
지금에 가문에서 라온을 싫어하는 건 직계들뿐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지.’
그런 라온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기에 상회로 돌아간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은인이었다.
‘감사합니다.’
도리안은 눈을 감은 채 연공을 하는 라온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검을 고쳐 쥐며 미소를 지었다.
‘부단주님이 절 지갑으로 생각하셔도….’
끝까지 지켜드리겠습니다.
도리안이 다짐하고 뒤를 돌았다. 그의 머리 위에서 날다람쥐 한 마리가 조용히 라온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져서 밤이 되었다.
조각상처럼 정지해 있던 라온의 어깨가 한차례 부르르 떨리고, 그의 몸이 주먹 하나 정도로 허공에 떠올랐다.
“어…?”
도리안이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라, 라온 님!”
기겁하며 라온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어디선가 날다람쥐 한 마리가 날아와 손을 깨물었다.
“으아아악! 이건 뭐야!”
도리안이 손을 털어서 쫓으려고 했지만, 날다람쥐는 그의 손을 물고 떨어지지 않았다.
“끼이익!”
날다람쥐는 도망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도리안의 앞을 막아섰다.
“이익!”
도리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날다람쥐를 손에 얹은 채로 라온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으려고 할 때 주변의 마나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더니, 라온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우우우웅!
라온의 전신 위로 상서로운 적광과 청광이 명멸하고 나서야 그가 바닥으로 내려섰다.
번쩍!
라온의 눈이 뜨이며 그의 안구에서 진한 금광이 폭발했다.
“도, 도련님?”
도리안은 긴장하여 예전 호칭을 부르며 라온에게 다가갔다.
그는 너무 놀라 날다람쥐가 사라진 것도 깨닫지 못했다.
“괘, 괜찮으세요?”
“그래. 최고의 상태야.”
라온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왜?”
“조금 전에 하늘에 떠 있으셨는데….”
“음?”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이만큼 떠 계셨다구요.”
도리안이 손으로 라온이 떠 있던 정도를 표현했다.
“일어나자마자 헛소리를 하네.”
“진짜라니까요!”
“하아, 장난은… 음?”
라온이 도리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 아직도 안 씻었냐?”
“씻다뇨?”
“몸에서 노폐물이 잔뜩 튀어나왔는데, 아직도 안 씻고 뭐 했어.”
“아니, 호법 서달라면서요!”
도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지켜달라고 해놓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눈치껏 따박따박 씻어야지.”
“그, 그게 말이 되는…하아.”
또 시작이시네.
일어나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라온이 맞았다.
“다녀올게요.”
도리안은 고개를 흔들고서 숙소가 있는 모트런 시로 향했다.
“숙소로 갈 필요 없어. 저기에 계곡이 있으니까.”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 숲 서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계곡이 있다구요?”
“그래.”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데….”
“쭉 가보면 맑은 물이 있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아시는데요?”
라오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 * *
라온은 도리안을 계곡으로 보내놓고 손을 바라보았다.
‘마스터 상급.’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무학들이 연공을 통해 정리되어 마스터 상급에 올랐다.
그것도 그저 벽을 넘어선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성큼 나아갔다.
기감을 넓게 펼치지 않았음에도 계곡의 위치를 알게 된 것도 모든 감각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더 신기한 건 아직도 다 흡수하지 못한 해령화와 유령 해파리의 독기가 몸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 기운들은 <나태>의 능력으로 잠을 자며 천천히 흡수될 것이다.
‘어디….’
주먹을 말아쥐고 오러를 끌어 올리려고 할 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만화공>의 경지가 5성으로 상승합니다.]
[<화속성 저항력>의 등급이 5성으로 상승합니다.]
[<화속성 친화력>의 등급이 2성으로 상승합니다.]
먼저 나온 건 만화공이 5성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대로 몸속의 열기가 한층 더 뜨거워진 게 느껴졌다.
[<글래시아>의 경지가 5성으로 상승합니다.]
[<수속성 저항력>의 등급이 7성으로 상승합니다.]
[<수속성 친화력>의 등급이 3성으로 상승합니다.]
이번에는 글래시아의 경지가 상승했다는 내용이었다. 속성 친화력과 저항력까지 덩달아 상승했다. 다만 아직도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최상위 영약과 내단을 흡수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포인트 상승합니다.]
[<설화의 감각>의 등급이 5성으로 상승합니다.]
[<암습>의 등급이 5성으로 상승합니다.]
[<집중>의 등급이 6성으로 상승합니다.]
[<설화의 은막>의 등급이 2성으로 상승합니다.]
끝없이 올라오는 메시지들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무엇이냐.
라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차오른 메시지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너무 많이 주지 않느냐! 무슨 능력치와 특성을 저렇게 많이 올려줘!
녀석은 말이 안 된다며 동그란 손으로 메시지를 긁어내렸다.
‘쌓인 게 터진 거지. 한동안 메시지가 없었잖아.’
최근에 스스로의 힘으로 <설화의 은막>을 얻어낸 것을 제외하면 능력치나, 특성 등급의 상승이 없었다. 그간 쌓이고 쌓인 경험치들이 순도 높은 마나와 어우러져 단번에 터진 것 같았다.
-터지는 건 본왕의 복장이니라!
라스는 개소리하지 말라며 이를 갈았다.
-대체 얼마나 빨아 먹혀야 이 지옥이 끝나는 것이냐! 능력치 20이라니! 국자도 아니고, 아예 대야로 퍼주고 있느니라!
녀석은 이러다가 뼈와 가죽만 남겠다고 울부짖었다.
“흐음….”
라온이 강아지처럼 으르렁거리는 솜사탕을 밀어내고 오랜만에 상태창을 불러왔다.
<상태창>
이름 : 라온 지그하르트.
칭호 : <살아남은 자>
상태 : 없음.
특성 : <분노>, <나태>, 불의 고리(7성), 수속성 저항력(7성), 설화의 감각(5성) 만화공(5성), 글래시아(5성), 화속성 저항력(5성), 블리딩 커스(2성), 암습(5성), 불굴의 의지(5성), 요기적응(4성), 집중(6성), 독 저항력(2성), 분노의 마안(1성), 나선력(4성), 수속성 친화력(3성), 진법 해석(2성), 화속성 친화력(2성), 설화의 은막(2성).
근력 : 336.
민첩성 : 335.
체력 : 333.
기력 : 372.
감각 : 374.
분노 : 75.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능력치가 전부 300이 넘었어?
이번에 능력치가 20포인트 올라갔다고 해도 이전에 이미 300이 넘었다는 뜻이다.
괜히 육황 중에서도 최강의 신체를 지닌 야수연맹을 힘으로 압도한 게 아니었다.
‘힘과 민첩성도 놀랍지만, 기력은 더 말이 안 되네.’
두 영약을 먹어 치웠기 때문인지 기력 수치는 한참 위에 있던 감각 수치를 따라잡을 정도로 성장했다.
‘당연한 일인가?’
마스터 상급에 오르며 한 번 더 확장된 단전을 가득 채운 오러를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네.’
마스터 최상급에 도달한 무인을 상대로도 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랜드 마스터만 아니라면 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뭔데!
라스가 달려들어서 어깨를 북처럼 두드렸다.
-뭐가 그렇게 놀라운 건데!
녀석은 빨리 말하라며 이를 갈았다.
‘모든 능력치가 300을 돌파했어.’
능력치가 올라갈수록 그 효용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300이 넘어가다 보니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육체 능력을 한참 벗어났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도 마스터 하급은 이길 것 같았다.
-사, 삼백….
라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본왕의 능력치가 삼백 개. 삼백…. 삼….
녀석은 삼이라는 단어만 중얼거리다가 입에서 거품을 물고 고개를 떨궜다.
“음….”
실제로는 300 중반이었지만, 아예 깨어나지 못할까 봐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최고의 결과인가.’
마티오와 코시니, 리스본에게 복수도 했고, 데루스가 가질 수 없게 영약도 챙겼으며, 큰 폭으로 무력이 성장했다.
처음 계획을 한참 뛰어넘는 최상의 결과였다.
라온이 만족스럽게 미소 짓고 있을 때 도리안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다가왔다.
“정말 계곡이 있었네요. 수풀이 우거져서 물 흐르는 소리가 안 들리더라구요.”
그는 물이 맑아서 좋았다며 씩 웃었다.
‘이제 남은 건 저 녀석의 일뿐이네.’
도리안의 본가인 세피아 상회에 가서 그를 무시했던 것들을 모두 치워버리는 일만 남았다.
“출발 준비는 다 해놨지?”
“물론이죠. 언제 오실지 몰라서 미리 다 끝내놨어요.”
도리안은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피아 상회를 먹으러 가자.”
“…예? 뭐, 뭘 먹어요?”
“아, 말을 잘못 했네. 세피아 상회에 가자고.”
라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금 세피아 상회를 먹어 치운다고….”
“기분 탓이야. 기분 탓. 가자.”
그는 오늘은 숙소에서 자고, 내일 출발하자며 손짓했다.
“어….”
도리안은 그런 라온의 등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데리고 가도 되는 걸까?’
다 때려 부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