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49화 (349/653)

제349화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다시 에메랄드 빛으로 돌아온 바다에서 데루스 로베르트가 떠올랐다.

진흙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섬뜩함과 사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데루스 로베르트가 하늘을 올려보며 괴성을 지르자, 바다 전체가 출렁이며 수십 개의 용오름이 치솟았다.

용오름은 서로 부딪치고, 뭉치며 검은 폭풍이 되어 바다 전체를 휩쓸었다.

쿠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폭풍은 인근 바닷속에 있던 어류와 몬스터들 그리고 육지의 나무들까지 뿌리째 뽑아서 갈아버리고 나서야 서서히 멈췄다.

후드드득!

쏟아지는 핏물과 살점 속에서 데루스 로베르트가 해변으로 내려섰다.

하늘에서 시뻘건 혈우가 내리고 있음에도 그의 몸과 얼굴에는 자그마한 핏방울 하나 스치지 않았다.

육지와 바다를 폐허로 만들고 나서도 데루스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쳐다보기 힘들 정도의 싸늘함이 번들거렸다.

데루스는 막대한 크기의 해일이 치솟은 바다를 돌아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빌어먹을….”

심해까지 내려가서 던전의 잔해를 살폈지만, 이전에 느꼈던 유물과 영물의 기척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뒤늦게 시체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심해어와 몬스터에게 물어뜯겨서 뼈만 남았다. 신원 파악은커녕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시체 하나가 있었지만, 던전이 무너져서 죽었는지 뼈와 살이 짓눌린 상흔뿐이었다.

‘무엇 하나 건진 게 없어.’

마티오와 코시니를 비롯한 그림자들을 잃었고, 유물과 영물은 사라졌으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악의 결과였다.

‘다만 하나는 확실해.’

이건 인간의 짓이야.

책임감 강한 마티오라면 모를까. 정신 조작이 특기인 코시니가 영물 따위에게 죽을 리가 없다. 못 잡는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도망쳤을 녀석이다.

유물과 영물의 기척도 사라진 걸 보면 다른 인간이나, 세력이 개입한 게 분명했다.

‘어떤 놈이지?’

마티오와 코시니의 감각을 피해서 모두를 죽이고 영물과 유물을 챙겨갈 정도라면 보통 고수가 아니다. 최소 그랜드 마스터급은 될 게 분명했다.

“나와라.”

데루스의 부름에 모래사장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림자들이 다급하게 튀어나와 무릎을 꿇었다.

“이곳을 지나간 사람이 있나?”

“인근 마을의 주민들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림자들은 고개를 조아린 채 주변을 지나갔던 주민들의 이름과 인상착의를 말했다.

“쓸모없는 것들.”

“아….”

“으….”

데루스의 거친 손짓에 그림자들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붉은 가루가 되어 모래사장에 흩날렸다.

“가주님.”

뒤늦게 와서 대기하던 레젤이 고개를 숙이며 새하얀 수건을 건넸다.

데루스는 상의와 장갑을 벗고 얼굴과 몸에 덕지덕지 묻은 진흙들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가, 가주님! 피가….”

레젤은 데루스가 사용한 수건에 시뻘건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턱을 떨었다.

“다친 게 아니다.”

데루스는 손등에 새겨진 검흔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 손해가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이 오래된 상처에서 핏물이 돋아나며 진한 통증을 안겨주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레젤.”

“예.”

“주변 마을을 조사해. 아니, 로베르트 영역 전체를 뒤져서 조금이라도 행적이 이상한 놈들을 찾아.”

“알겠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임에도 레젤은 담담하게 고개를 꾸벅였다.

데루스는 손등을 적신 핏물로 입으로 빨아들이며 서늘한 미소를 흘렸다. 그의 안구에서 시꺼먼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대륙의 끝으로 도망쳐도 찾아내 주지.’

절대 놓치지 않는다.

*     *      *

모트런 시 인근 숲.

거센 바람이 새벽 공기를 가른다.

바람의 근원은 도리안이다. 그는 숲의 작은 공터에서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후우우웅!

검을 휘두를 때마다 도리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적과 싸울 때처럼 한 초식마다 극한으로 집중하여 검술을 펼치는 일검중이라는 수련이었다.

새벽녘에 시작된 도리안의 검풍 소리는 태양이 하늘의 중심에 오르고 나서야 멈췄다.

“후우우….”

도리안이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부단주님 말대로네.’

강해질수록 검술이 어려워져.

강해질수록 쉽고 간단해야 할 검술은 성장할수록 또 다른 벽을 만들어냈다. 무학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 같았다.

‘난 언제 성장하려나.’

가문에 있는 다른 검사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꾸준히 검술을 수련했지만 수련할수록 검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성장하는 건 확실하지만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일단 밥이나 먹자.’

새벽부터 낮까지 수련했기에 배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숙소에서 받아온 도시락을 먹은 뒤에 나무에 등을 기댔다.

‘부단주님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거지?’

떠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라온은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어디를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았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물론 라온이 아니라, 그에게 얽힌 다른 사람들이.

도리안이 햇살이 아롱져 떨어지는 하늘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육황오마에 시비 걸고 오는 건 아니겠지?

지금까지 본 라온은 막무가내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경매장에 쳐들어가서 물건을 훔치고, 타국의 왕녀를 협박하고, 성벽을 뛰어넘어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오마에 납치된 후 살이 쪄서 온 기인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 에이! 아닐 거야.”

도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검을 쥐고 일어났다.

‘수련이나 하자.’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새로 익힌 유성 검술을 펼치며 온 정신을 집중했다.

도리안은 일검중의 수련법으로 해가 질 때까지 검을 휘두른 뒤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이 정도면 됐겠지?

사실 지금 검술을 수련하는 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온이 무섭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뭐라고 할지 모르니까.’

실력이 그대로라며 집중력 강화훈련을 시키거나, 대련하자고 할 수도 있기에 전력을 다해 수련을 해왔다.

‘지금 수준이면 아무리 그 악마라고 해도 뭐라 하지 못할 거야.’

이곳에 온 뒤 해가 뜨기 전부터 밤까지 수련을 해왔기에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 정도로 성장을 했으면 수련광 라온이라고 해도 칭찬해줄 게 분명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도리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검을 집어넣고 일어섰다.

짝짝짝!

주변을 정리한 뒤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 시원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냐!”

도리안이 턱을 떨며 검을 뽑은 순간 나무 위에서 키가 큰 적발의 남자가 떨어져 내렸다.

“어?”

도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머리카락과 눈 색이 다르지만, 몰라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부단주님!”

“바로 알아보네?”

“당연하죠!”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변장을 해도 몰라볼 수가 없었다.

“가신 일은 잘 끝나셨어요?”

“그래. 네 덕분에 잘 끝났어.”

라온이 아공간 주머니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근데 어디를 다녀오신….”

“그것보다.”

그가 말을 끊으며 자신의 전신을 훑어내렸다.

“난 지금 감동했다.”

“예?”

무슨 말인지 몰라서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갑자기 무슨….”

“이곳에서 놀고먹을 거라 생각한 네가 이렇게 열심히 수련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라온이 대단하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도리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지켜보셨던 건가?’

됐어!

오늘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검만 휘둘렀다. 그걸 보았다면 악마의 왕인 라온이라고 해도 인정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력이 꽤 올라온 걸 보니, 오늘만이 아니라 꾸준히 수련한 모양이네. 검술에 힘과 묘리가 깃들어 있어.”

“아, 아닙니다.”

도리안은 인정받았다는 희열과 라온의 추가 수련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에 히죽 미소를 지었다.

“부단주님 말씀대로 검이라는 게 강해질수록 어렵더라구요.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크으으!”

라온이 맥주 한잔 들이키기라도 한 듯한 탄성을 토해냈다.

“멋있네.”

그의 큼지막한 미소를 보니, 계획이 제대로 먹혀든 것 같았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수련하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선물 하나 줘야겠는데?”

“기념품인가요? 그럼 가시죠. 오늘은 회포를 풀고….”

“음? 가긴 어딜 가?”

도리안이 들뜬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리려고 할 때 라온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수, 숙소로 가야죠. 시간도 늦었고.”

“아니지. 선물을 준다고 했잖아.”

“선물은 숙소에서 주셔도….”

“안 돼. 여기서 밖에 못 주는 선물이라.”

“서, 선물이 뭐죠?”

라온이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나와의 대련.”

“미친….”

도리안이 입이 뻥 뚫리며 욕설이 튀어나왔다.

“가, 갑자기 왜 대련을….”

“혼자 열심히 수련한 네가 너무 기특해서 가만히 놔둘 수가 없네. 막힌 벽을 뚫을 수 있게 도와주마.”

“괜찮습니다! 제가 스스로 깨고….”

“아니야. 조금만 맞다 보면. 아니, 대련하다 보면 나아질 거야.”

라온은 빨리 시작하자는 듯 제천검을 뽑았다.

“조금 전에 앞으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부터 열심히 하자.”

“…저 하루종일 수련을 했는데.”

“그럼 이제 본 실력이 나올 때네. 빨리 검 들어.”

“아, 아니….”

실력을 키워서 대련이나 집중력 강화훈련을 안 하겠다는 계획과는 상황이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왜. 왜 이렇게 된 건데!’

도리안이 입술을 떨며 고개를 들어 라온의 눈을 보았다. 시뻘건 광기로 빛나는 눈을 보자 이해가 되었다.

‘아 맞네.’

이 인간 미친놈이었지….

*      *      *

도리안의 열정에 감동한 라온의 교육이자, 구타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흐어어어어….”

도리안이 젖은 수건처럼 바닥에 축 늘어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주, 죽겠다….”

그는 못 해 먹겠다며 손에 쥔 검을 내려놓았다.

“배 째요.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요.”

라온은 개구리처럼 배를 뽈록 부풀린 도리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그만하려고 했어.”

고개를 끄덕이며 제천검을 납검했다. 하루종일 수련하고 밤새 대련했으니, 지칠 만했다.

“수고했다.”

“…더 하자고 하실 줄 알았는데요.”

“더할까?”

“아뇨! 절대!”

도리안이 벌떡 일어나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상하면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까. 근데 아직 힘이 넘쳐 보이는데?”

“아, 아닙니다!”

그는 다시 드러누워서 헥헥 거렸다.

-한심하구나.

라스는 도리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녀석이 본왕의 부하라니….

‘그래도 알아서 수련한 게 대견하잖아.’

라온은 도리안의 성장한 기척을 느끼며 옅은 웃음을 흘렸다.

구박만 받던 집에 돌아가는 거라 부담을 주기 싫어서 놀고 있으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수련했다는 게 기특했다.

원래는 바로 내단과 해령화를 먹고 연공을 하려고 했지만, 도리안의 성취가 놀라워서 대련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 것이다.

‘조금만 더 도와줄까.’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해령화의 이파리 중 하나를 뚝 떼서 도리안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먹고 연공해.”

“투명한 이파리? 또 이상한 걸 가져오셨네요.”

도리안은 힘이 빠져서 떨리는 손으로 이파리를 받았다. 자신을 믿는지 그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입안에 욱여넣었다.

“마, 맛있는데요. 그리고…어?”

쩝쩝거리며 잎을 먹은 녀석이 그대로 바닥에 앉아서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맛있다는데? 하나 먹어보자꾸나!

라스가 위로 방방 뛰어오르며 도리안이 먹은 이파리를 가리켰다.

‘하아….’

라온이 라스를 보며 눈을 흘겼다.

‘변하질 않네.’

이 먹보 마왕은 이제 영약에서도 맛을 찾고 있다. 도리안 보고 한심하다더니, 지가 더 했다.

-그러지 말고 하나만….

‘조금 이따가 먹을 테니까. 좀 기다려.’

이파리와 꽃을 모두 먹을 거라고 말하며 라스를 밀어냈다.

고오오오오오!

도리안의 모공 사이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온다. 해령화의 이파리가 가진 해독 능력이 내부의 탁기를 빼내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네.’

라온은 도리안의 등에 손을 올리고 오러를 밀어 넣었다.

그가 해령화의 기운을 모두 흡수하고, 노폐물이 더 잘 빠지도록 만화공으로 연공을 도와주었다.

새벽에 시작한 연공이 낮이 되었을 때 도리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와아….”

그는 본인의 양손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한테 뭘 주신 거예요? 오러의 양도 늘었고, 몸은 왜 이리 가볍지?”

“해령화의 이파리.”

“해령화? 해령화가 뭐였더라…허어어억!”

도리안이 기겁하며 벌떡 일어섰다.

“해령화? 그 전설의 해령화요?”

그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그래.”

라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안은 말이 많은 것과 반대로 비밀은 잘 지키는 녀석이라 말을 해줘도 상관없었다.

“그, 그거 이야기속에서 나오는 영약이잖아요! 그런 보물을 어디서 구했어요?”

“바다에 가서 땄어.”

“어…. 어?”

도리안이 말을 잃고 입을 떡 벌렸다.

‘당연히 땄겠지.’

근데 그게 다냐고!

무슨 굴도 아니고, 바다에 가서 땄다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다예요?”

“응.”

라온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꽃 한 송이를 꺼냈다. 바다처럼 반짝이는 푸른 꽃잎과 매끄러운 줄기 그리고 투명한 이파리까지. 전설로만 듣던 해령화가 분명했다.

“해령화 맞네….”

근데 이게 인간이 구할 수 있는 거였어?

대륙 5대 상가인 자신의 상회에서도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해령화가 20살도 안 된 어린 인간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것도 있어.”

라온이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동그란 구슬을 꺼냈다. 속이 거북해질 정도로 숨 막히는 독기가 술렁술렁 피어 나왔다.

“이, 이건 뭔가요?”

“내단.”

“내단? 그건 또 어디서?”

“영물 잡고 뽑았지.”

“…….”

도리안이 눈을 질끈 감았다.

‘영물을 잡고 뽑았다니….’

못 따라가겠어. 진짜 모르겠다고!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영약에 영물이 붙는 건 상식이다. 다만 저 정도 독기를 뿜어내는 내단이라면 몬스터 따위와 비교 안 되는 수준의 영물이 있었을 텐데,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다는 것이 경악스러웠다. 특히 동네 마실 가서 사과 하나 따온 듯 말하는 라온의 여유로운 어투가 너무 무서웠다.

“아아….”

도리안은 라온이 20살이 넘으면 대체 어떻게 될지 겁이 나서 어깨를 떨었다.

‘육황오마 중에 하나 멸망시키는 거 아니냐고….’

*     *      *

라온은 도리안이 수련하던 공터를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리 잘 잡았네. 내단 때문에 숙소에서는 연공하기 힘들었는데.”

유령 해파리의 내단에 깃든 독기가 너무 강해서 숙소에서는 연공을 하기엔 불가능했다. 이곳은 넓기도 하고, 시야가 막혀 있어서 연공하기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몬스터나, 사람이 오지 못하도록 환상진을 설치하고서 공터로 돌아갔다.

“이제 네 차례다. 잘 지켜.”

“지, 지킬 수는 있는데, 그 내단 정말 드셔도 돼요?”

도리안은 독기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내단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해령화의 꽃잎과 이파리 하나를 뜯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해령화의 꽃잎에는 바다의 기운이 농축된 마나가 그리고 이파리에는 순수한 마나와 해독 능력이 깃들어 있다. 도리안의 몸에서 노폐물이 빠져나간 것도 해령화 이파리의 힘이었다.

“전 이제 부단주님이 감당이 안 되려고 하네요.”

“언제는 감당됐어?”

“그, 그것도 그러네요….”

도리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켜. 금방 끝낼 테니까.”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

그는 이마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라온이 피식 웃고서 해령화의 꽃잎을 입에 넣었다. 다섯 장의 꽃잎이 혀 위에서 녹아내리며 자연스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바다 내음과 함께 온몸에 청아한 기운이 가득 차 올랐다.

-그….

다음으로 독단과 해령화의 이파리를 먹으려고 할 때 라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이파리에 고기 싸 먹으면 맛있을….

‘좀 가.’

-으헉!

파리를 쫓듯 손등으로 라스를 쳐냈다.

‘집중하자.’

저 녀석에게 시선이 끌렸다간 정신력만 낭비한다. 다시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유령 해파리의 내단을 입에 넣었다. 이것 역시 마나가 뭉쳐있기 때문인지 입안에 넣자마자 형태가 풀리며 흘러내렸다. 내단에 가득 차 있던 뜨거운 독기가 퍼지며 입안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끄에에에엑!

라스가 바닥을 뒹굴며 전신을 파들파들 떨었다.

-마, 맛없어! 죽겠느니라!

‘조금만 참아.’

라온은 해령화의 이파리를 씹어서 청아한 기운과 함께 내단의 독기를 그대로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야! 그렇게 먹으면 맛을 못 느끼잖아!

‘조용히 좀 해.’

해령화의 꽃잎, 유령 해파리의 독단 그리고 해령화의 이파리가 어우러지며 전신을 찢어버릴 듯한 거대한 기운을 폭발시켰다.

해령화의 바다의 기운과 유령 해파리의 독기는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흐름을 밀어내며 서로를 향해 맹렬한 기운을 맞부딪쳤다.

‘괜찮아.’

해령화의 꽃잎과 내단 그리고 이파리는 이곳에 오면서 계속 생각했던 조합이다.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우우우우웅!

라온은 피를 토할 듯한 충격을 삼키고,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요동치는 두 기운을 짓누르며 떨리는 입매를 말아 올렸다.

‘나도 거친 걸 좋아하는데 잘됐어.’

전부 내 것으로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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