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46화 (346/653)
  • 제346화

    별빛처럼 우아한 조명이 흘러내리는 바비룬 공작가의 연회장.

    데루스 로베르트와 바비룬 공작이 단상 위에서 경쾌하게 술잔을 부딪쳤다.

    “아드님의 어깨는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바비룬 공작이 데루스 로베르트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빠르면 3달, 늦어도 4달 안에는 부상 전의 감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군요. 공작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데루스가 바비룬 공작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라니요. 동맹 관계에서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섭섭합니다.”

    바비룬 공작이 손을 저었다. 겸손한 말과 달리 그의 눈동자에는 욕망이 그득하게 차올라 있었다.

    “그렇습니까.”

    데루스는 은은하게 피어나는 바비룬 공작의 욕망을 느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돼지 같은 놈.’

    바비룬 공작에게 능력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그는 그 능력 이상의 욕심을 부렸다.

    최근 후작들에게도 밀리고, 발카르의 기둥 중에서도 썩고 문드러졌다고 불리는 이유도 저 욕심 때문이었다.

    ‘다만….’

    이 살집 두둑한 돼지에게 구워 먹을 부위가 많다는 건 확실하지.

    카디스의 어깨를 치료하는 일만이 아니라, 발카르를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이 돼지의 지위와 힘이 필요했다.

    회복이 주력인 다른 가문에 들리지 않고 이곳부터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요. 원하시는 게 있다면 가감 없이 말씀해주십시오.”

    데루스는 얼마든지 말을 하라며 손을 살짝 올렸다.

    “정말 괜찮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저희 공작령은 천검성께서 와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바비룬은 말과 달리 더 짙은 욕심이 깃든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겸손하시군요. 다만 제 못난 아들을 구해주신 일은… 허억!”

    데루스가 말을 하다 말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뭐야….’

    조금 전 두 마리의 레이지 웜이 죽었다. 그것도 버러지들에게 넣어둔 게 아니라, 자신이 신뢰하는 두 명에게 넣어둔 벌레들이.

    ‘마티오와 코시니가 죽었다고?’

    코시니의 정신 조작 마법은 영물은 물론이고, 마스터 상급 이상의 무인도 조종할 수 있다.

    해저 던전에 있는 몬스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도망치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거기다….’

    공포와 고통이 가득했어.

    레이지 웜은 상대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마티오와 코시니의 레이지 웜이 마지막으로 보낸 신호는 경악과 공포 그리고 고통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마티오는 평범한 인간의 감정을 모두 지워버린 암살자다. 그가 저리 격한 감정을 느끼며 죽었다는 것에 머리가 멍해졌다.

    “가주님?”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평소와 같은 평정심도, 표정 관리도 되지 않았다. 속을 들키지 않게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가주님! 몸이 좋지 않으시다면 제가 진단해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좋지 않은 병일 수도 있….”

    “됐다고 했잖아.”

    “흐윽!”

    데루스가 뿜어낸 살기 짙은 안광에 바비룬 공작이 살을 푸르르 떨며 뒤로 자빠졌다. 그는 바비룬 공작을 노려보다가 등을 돌렸다.

    ‘망할….’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다. 얼마 전 9 사육장에서 벌어진 일까지 떠올라 손끝이 떨렸다.

    고오오오오!

    데루스는 침묵이 내려앉은 연회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뒤에는 레젤이 어느새 따라붙어 있었다.

    “가주님?”

    “마티오가 죽었다.”

    “예…?”

    레젤도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던전에서 문제가 생겼겠지.”

    다만 던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그런 지독한 감정을 느끼며 죽은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그림자들을….”

    “아니.”

    데루스가 고개를 젓고서 가지고 나온 코트를 걸쳤다. 그의 안광에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내가 직접 간다.”

    *     *      *

    라온이 양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몸을 점검했다.

    ‘나쁘지 않아.’

    오러 소모가 꽤 많았지만, 염해무결의 깨달음 덕분에 검술 경지가 크게 상승했다.

    이번 일을 다 끝내고 연공에 집중하면 능력치만이 아니라, 만화공이나, 글래시아의 경지도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었네.’

    멀린에게 밥이라도 사야 하나.

    데루스가 던전의 보물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려고 찾아왔을 뿐이지만, 마티오에게 복수를 했고, 새로운 검술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다람쥐의 모습으로 이곳의 정보를 알려준 멀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뭐라도 하나 주고 싶었다.

    ‘이제 남은 건….’

    바닥 아래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보물을 챙긴 뒤 이 던전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일뿐이었다.

    -오러와 체력을 회복해서 만전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저 아래에 있는 놈의 기운은 네놈과 맞먹느니라.

    “맞먹는다라….

    확실히 저 밑에서 살기를 드높이는 영물의 기운은 강대했다. 라스의 말대로 체력과 오러를 회복해서 가는 게 옳은 일이다.

    “그게 낫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라온이 천장 위를 보며 찬 미소를 흘렸다.

    “시간이 없어.”

    -시간?

    “그래. 개 주인이 찾아오고 있으니까.”

    지금쯤이면 데루스에게 마티오와 코시니의 죽음이 전해졌을 테고, 놈이라면 바비룬 공작가에서 나와 직접 이곳으로 찾아오고 있을 것이다.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을 테니까.’

    9 사육장의 붕괴 그리고 믿고 있던 마티오의 죽음으로 데루스는 냉정을 잃었을 게 분명하다. 놈과 마주치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우우우우웅!

    라온이 제천검으로 바닥을 겨눈 채 오러를 응집시켰다. 검극에 압축된 기운이 단숨에 폭발한다.

    한층 더 강해진 중천포의 위력에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져 붕괴했다.

    사아아아아!

    바로 아래에서 전해지는 섬뜩한 살기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라온이 시선을 내려서 살기를 보낸 영물의 모습을 확인했다.

    ‘저건 설마….’

    해파리인가?

    설원처럼 하얗게 빛나는 해파리 한 마리가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몸통의 크기는 4m 정도였고, 촉수의 길이는 40m가 넘어 보였다.

    -꽤 아름답구나.

    라스는 해파리의 출렁임을 보고 옅게 웃었다.

    -물론 잡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 유령 해파리니까.’

    투명하면서도 매끄러운 몸체와 촉수가 허공을 떠도는 유령 같아서 유령 해파리라 불리는 해양 몬스터였다.

    다만 그 크기는 평균적인 유령 해파리의 3배 이상 거대했다.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귀찮은 놈이 걸렸군.’

    유령 해파리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바닷속이든, 육지에서든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는 가속 능력이다.

    웬만한 무인들보다도 빨라 일단 놈의 눈에 띈다면 이미 촉수가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해야 한다.

    정말 무서운 건 두 번째 특징인데, 유령 해파리는 그 어떤 독물이나, 독충에게도 밀리지 않는 맹독을 지니고 있었다.

    평범한 유령 해파리의 독이 검기를 녹일 정도이니, 영물이 된 저놈의 독은 강기에도 통할 게 분명했다.

    후우우웅!

    유령 해파리가 살의를 일으킨 채 촉수를 뻗어왔다. 마스터가 내지른 쾌검 이상의 속도. 허공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을 노린 공격이었다.

    후우우우웅!

    라온이 빛살처럼 다가오는 촉수를 향해 제천검을 내리쳤다.

    캬아앙!

    검과 촉수가 부딪쳤는데, 쇳덩이가 부딪친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강해.’

    검에 강기가 타오르고 있음에도 촉수가 다 잘리지 않았다. 영물답게 촉수도 단단해진 것 같았다.

    끼이이이이!

    유령 해파리가 천천히 가라앉으며 몸을 펼친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촉수가 단번에 떠올랐다가 휘어져 내리꽂힌다. 천공에서 떨어지는 햇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콰아아아아!

    촉수 하나하나에 실린 기운이 어마어마하게 강했고, 그 움직임은 검을 든 무인처럼 날카로웠다. 변검과 환검의 초고수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고수의 검에는 가짜가 섞여 있지만, 이건 전부 진짜라는 점이었다.

    터엉.

    라온이 태화보를 밟으며 좌측으로 내달렸다. 유령 해파리의 촉수들은 눈이 달린 것처럼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서 따라붙었다.

    ‘머리도 나쁘지 않군.’

    유령 해파리의 몸통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을 경계하면서 촉수로만 공격하고 있었다.

    콰드드드득!

    유령 해파리의 촉수가 박힌 대지가 새하얗게 녹아내린다. 구멍 난 바닥에서 바닷물이 차올랐다.

    ‘저게 무서운 점이지.’

    맹독의 위력이 정상적인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예상대로 영물이 된 유령 해파리의 독은 강기마저 지울 수 있을 것이다.

    ‘꽤 힘들겠네.’

    코시니는 정신 조작 마법으로 저 유령 해파리를 손쉽게 제압했겠지만, 자신은 독을 뚫고 잡아야 하기에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았다.

    화아아아!

    유령 해파리는 한쪽만 공격해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양옆으로 촉수를 펼쳐서 공간을 압박해왔다. 움직임과 반응만이 아니라, 생각도 빨랐다.

    ‘다만….’

    그건 내가 노리는 거였어.

    라온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유령 해파리의 몸통을 치기 위해 촉수가 갈라진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아아아아!

    제천검 위로 냉기를 최대한 끌어 올려 서리연을 쏘아냈다.

    검과 냉기의 칼날이 거의 동시에 뻗어나가는 찰나 유령 해파리의 삿갓 부분에서 새하얀 맹독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냉기로 이루어진 칼날이 독기와 맞부딪치며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예상대로 이 유령 해파리의 독은 강기와 맞먹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쯧.”

    라온이 혀를 차고서 뒤로 물러섰다.

    ‘이런 건 못 봤는데.’

    촉수만이 아니라, 삿갓 부위에서도 맹독을 뿜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영물로 성장하면서 생긴 새로운 능력인 것 같았다.

    후우우우웅!

    유령 해파리는 위협을 느낀 듯 본체를 압축시켜 크기를 줄인 뒤에 촉수 전체를 움직였다.

    콰아아아아!

    수백 개의 검을 쥔 검사들이 동시에 달려드는 느낌에 등골에 오싹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경계하고 있어.’

    놈은 이전처럼 공격에 모든 촉수를 사용하지 않고, 일부는 방어를 위해 몸통 주변에 남겨두고 있다. 머리를 쓸 줄 아는 놈이었다.

    끼기기기긱!

    라온이 제천검을 아래에서부터 긁어 올리며 화령을 피워냈다. 붉게 물든 꽃잎들이 허공을 유영하며 맹독이 깃든 촉수와 맞부딪쳤다.

    콰과과과광!

    독기와 열기가 격돌하며 허공에서 수없이 많은 폭발을 일으켰다. 던전 벽이 갈라지며 회색 먼지가 퍼져 나왔다.

    터엉!

    라온이 태화이보를 밟았다. 섬전처럼 나아가 유령 해파리의 측면으로 짓쳐 들었다. 가속도를 그대로 이용하여 뒤로 젖힌 검을 내질렀다.

    만화공 백화.

    염룡결.

    초대 가주의 검흔을 통해 성장한 화룡의 숨결이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끼이이이이!

    유령 해파리가 기괴한 음성을 흘리며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놈의 삿갓에서 은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전보다 더 지독해진 맹독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염룡결의 열기와 해파리의 맹독이 정면에서 부딪치며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으음….”

    라온은 독기가 퍼지지 않도록 뒤로 훌쩍 물러섰다.

    -미물치고는 제법이로구나.

    라스도 흥미로운지 유령 해파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무인하고 싸우는 것 같아.’

    몬스터는 움직임이 단순한 경우가 많은데 저 녀석은 영물의 격에 닿았기 때문인지 이쪽의 행동을 예측하면서 움직였다. 쉽지 않은 상대였다.

    후우우웅!

    유령 해파리는 자신의 이동 방향을 예상하고 촉수를 내리쳐왔다.

    이번에는 위에서만이 아니라, 좌측과 우측 그리고 아래에서까지 네 방향으로 몰아쳤다.

    ‘빠져나갈 공간 자체를 막는군.’

    독한 놈이야.

    라온이 눈매를 좁히며 제천검을 반원으로 올려 그었다.

    캬가가가강!

    강기를 두른 제천검으로도 유령 해파리의 촉수는 쉽게 베이지 않았다. 강철을 친 듯한 반탄력과 함께 오히려 검이 밀려났다.

    “확실히 강하지만, 파악은 끝났어.”

    라온은 두 번째로 뻗어오는 유령 해파리의 촉수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좀 바빠서 더 이상은 못 놀아주겠다.”

    평소라면 유령 해파리의 공세를 보며 무학 연구를 했겠지만, 차원 문을 탄 데루스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기에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쿠웅!

    진각을 밟으며 만화공을 극성으로 일으켰다. 회전하는 화염의 칼날을 불태워 유령 해파리의 촉수를 후려쳤다.

    촤아아아악!

    지금까지 쇳덩이 같았던 유령 해파리의 촉수가 천 조각처럼 잘려 나갔다.

    끼에에에에엑!

    유령 해파리가 괴성을 지르며 잘려 나간 촉수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폭주하는 듯 보이지만, 아니다.

    놈은 촉수 안에 있던 맹독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도 소용없어.”

    제천검의 검신 위로 광아검의 묘리를 휘감았다. 불타는 맹수의 발톱이 맹독을 태우고, 촉수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촤아아악!

    성난 불꽃이 춤을 출 때마다 해파리의 촉수가 수십 개씩 찢겨 나갔다.

    끼에에에에!

    유령 해파리는 촉수의 반 이상이 잘려 나갔음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죽이기 위해 마구잡이고 공격을 이어갔다.

    ‘그 말은….’

    라온은 유령 해파리의 몸체가 떠 있는 물웅덩이를 보고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놈 밑에 이 던전의 보물이 있다는 뜻이지.’

    유물이나, 영약에 의해서 영물이 된 몬스터들은 그 자리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공격당하고 있음에도 물러나지 않는 걸 보면 놈이 있는 곳에 영약이 있는 게 분명했다.

    터어엉!

    라온이 태화보로 땅을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후우우우웅!

    유령 해파리가 남은 촉수를 모조리 모아서 내리쳐왔다. 수백 개의 촉수가 거대한 몽둥이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낱개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네.’

    좋은 생각이야. 조금 늦었지만.

    피식 웃으며 제천검을 벼락처럼 내리쳤다.

    만화공 적섬. 열화의 광채가 하나로 뭉쳐진 거대한 촉수를 단번에 갈라버렸다.

    끼아아아아아!

    유령 해파리가 비명을 지르며 움직인다. 놈은 허공에 가득 차오른 맹독과 삿갓에서 뿜어낸 독을 몸통에 두른 채 쇄도해왔다.

    삶을 포기한 게 아니다. 이 순간에 가장 효율적인 공격을 해오는 것이다.

    ‘이건 위험하겠어.’

    지독할 정도의 맹독 물결에 손끝이 떨려왔다. 독 저항이 있음에도 머리가 아찔할 정도였다.

    치리리링!

    라온이 유연하게 제천검을 뽑아냈다. 검날 위에 가라앉은 검은 그림자가 백광으로 명멸하며 장대한 빛을 뿌렸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5형 백영섬.

    백색 칼날이 흘러가자, 유령 해파리가 끌어모은 맹독들이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끼이이이이!

    유령 해파리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삿갓에서 맹독 덩어리를 뿜어냈지만, 새하얀 그림자 앞에서는 피지도 못한 채 져버리는 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화아아아아!

    맹독을 집어삼킨 백영섬이 끌어모은 기운을 폭발시켰다. 차디찬 벼락이 내리꽂히며 유령 해파리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졌다.

    끼이이이….

    유령 해파리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독을 뿌렸지만, 그것 역시 백영섬을 넘지 못하고 먼지처럼 사라졌다.

    ‘무시무시하네.’

    직접 사용했지만, 적의 모든 기운을 지운다는 건 역시나 사기스러운 능력이다. 이게 있다면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망할!

    라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조금 더 버텨야지! 지금까지 이곳의 기운을 빨아먹어 놓고 이게 무슨 꼴이냐!

    녀석은 허무하게 진 유령 해파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손바닥으로 촉수를 찰싹찰싹 때렸다.

    “전리품을 챙길 시간이네.”

    라온은 양손에 만화공을 가득 일으킨 채 유령 해파리의 몸을 뒤졌다.

    ‘찾았다.’

    왼쪽 몸통에서 은색으로 번쩍이는 구슬이 하나 잡혔다. 맹독으로 가득 찬 유령 해파리의 내단이었다.

    ‘그냥 먹을 수는 없겠는데.’

    독기가 너무 심해서 이대로 먹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일단 제쳐두고.”

    유령 해파리의 시체를 옆으로 치웠다. 죽어서도 비키지 않던 물웅덩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라온은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차오른 웅덩이의 중심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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